언제나 그렇듯, 다소 황당하지만 귀여운 그녀와 덜 떨어진 듯 순수한 그가 만나 에피소드는 이뤄진다. <엽기적인 그녀>이후로 곽재용 감독의 머릿속엔 그저 대조적인 성향의 여자와 남자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 밖에 없는 것 같다. <싸이보그 그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닌 싸이보그 그녀(아야세 하루카)는 먼 미래에서 지로(코이데 케이스케)에게 날아와 한시도 그의 옆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남녀의 동거가, 엄밀히 말하면 싸이보그와 주인의 합숙이 시작된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 게 좋다. 그걸 안다고 해 봤자 모르는 것만큼이나 속 터지는 일이 될 테니까. <싸이보그 그녀>는 두서 없는 영화다. 인과관계에 대한 납득은 좀처럼 불가능하다. 그저 시트콤 같은 상황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된 서사엔 스토리텔링에 대한 장기적인 배려 따윈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자아도취되는 영화의 감정선 따위에 몰입할 가능성은 반 푼어치도 발생할 리 없다. 거대한 지진을 묘사하는 영화의 끝머리에 다다르면 이 영화의 태생적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할 수조차 없게 된다. 한국 개봉을 앞두고 일본 개봉판을 재편집했다는데 전자도 딱히 궁금하진 않다. 영화의 말미에 묘사되는 지진만큼이나 100분의 러닝타임이 끔찍하게 막장이라 원래 형태를 되새김질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아야세 하루카의 미소가 작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