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 Her
한효주는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녀가 그랬다.
오늘 촬영한 컷들을 유심히 보던데, 무슨 생각을?
잘 나왔네. 오늘 괜찮네(웃음). 솔직히 한효주라는 배우를 잘 모르겠더라.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모른다는 것 자체가 불안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감시자들>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게다가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가 있더라. 사실 상황을 주도하는 여자 캐릭터는 별로 없다. 남자에게 끌려가거나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 중 하나를 채우는 캐릭터는 있어도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를 찾긴 어렵다. 하지만 <감시자들>엔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가 있었고, 내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영화를 선택했다. 처음 액션을 시도했는데. 솔직히 액션배우라 불릴 정도는 아니다. 고작 한 신 정도니까(웃음). 물론 그 한 신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액션스쿨에서 보냈다. 짧지만 나올 건 다 나온다. 발차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고(웃음), 핸드폰 액션도 선보인다. 핸드폰이라니? 여자 혼자 맨몸으로 남자 둘을 상대하는데 사실 말이 안되지. 그래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면 좋겠다고 논의하다가 무술감독님께서 ‘핸드폰으로 한번 해볼까?’라고 하셔서 해봤다. 생각보다 말이 되는 액션이 나왔다. 키도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액션연기에 유리한 체형이다. 시원시원해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뭐 하나 어설프면 티도 너무 잘 난다(웃음). 기억력이 좋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실제로 본인은? 별로다(웃음). 다만 순간 암기력이 좋아서 대사 같은 건 금방 잘 외운다. 돌아서면 다시 까먹고(웃음). 추억을 되새기는 편인가? 사실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좋은 성격인지 몰라도 힘든 기억은 금방 까먹는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게 된다. 그 당시에 되게 힘들었다는 느낌만 있지, 정확하게 왜 힘들었는지 까먹는다. 가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사람과의 기억조차 까먹고 너무 반갑게 인사해버려서 의아한 눈초리도 받는다(웃음). 낙천적인 편인가? 낙천적이란 말까진 어울리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밝게 살려고 노력한다. 원래 그런 성격이라기 보단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우울함이 있나? 그럼.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함을 갖고 있으니까. 단지 어느 정도 크기인지 모를 뿐이지. 나도 그렇고.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들과 닮았다고 느낀 적은? 늘 그렇게 느낀다. ‘얘는 나랑 좀 닮은 부분이 있네?’ 아직까진 아예 동떨어진 캐릭터를 연기해보진 못했다. 내 안에 내 동생들이 좀 많다. 다중이처럼(웃음). 어릴 때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섭렵했다던데. 초등학교 때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 대부분은 엄마가 시켜서(웃음). 어떤 것들이었나? 피아노, 바이올린, 서예, 구연동화. 초등학교 때 왠 구연동화를? 엄마가 시켰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무대에 서는데 자신감을 얻으라고. 우리 엄마가 유치원 교사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거 같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자 하는 욕심도 많았다. 하지만 끈기는 별로 없고(웃음). 3개월 바짝 배워서 조금 잘한다 싶으면 다른 거 배우고 싶다고 엄마한테 조르고, 그럼 엄마는 “하는 거나 잘해!” 이러시고(웃음). 지금도 그런가?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얼마 전 탭댄스를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뉴욕에 놀러 갔다가 뮤지컬을 많이 보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거기 있는 동안만이라도 배워볼까 싶어서 알아봤더니 브로드웨이 댄스 센터에서 5회 단기 과정이 가능하더라. 제일 만만하게 할 수 있는 게 탭댄스가 아닐까 싶어서 등록했는데 이게 왠걸, 전혀 못하겠더라. 게다가 영어로 시키니까 더 못하겠고. 심지어 기본 과정이 기본이 아니더라. 다 너무 잘하니까 완전 주눅들어서 자신감도 상실하고. 학원을 나오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국 가자마자 탭댄스 배울 거라고(웃음), 그래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시작했다. 정적인 성격 같은데 동적인 분야에 대한 흥미도 있나 보다. 둘 다 있다. 사실 옛날엔 내 성격을 잘 몰랐다. 그리고 연기를 하다 보면 어떤 성격을 하나씩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성격들은 점점 구체화돼서 내 몸 안에 남아있는 느낌도 들고 감정 기복도 심해진다. 밝음과 우울함 간의 차이가 점점 커진다고 할까. 연기를 거울 삼아 자신을 본다는 말처럼 들린다. 감정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게 많다고 느끼는데 여기 아니면 어디서 풀 수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소용돌이를 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니까 그냥 하면 된다. 결국 연기하는 게 내겐 이로운 일이구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웃음).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매력이다. 이 분야, 저 분야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이면서 얻어지는 것도 있고. 경찰도 되고, 의사도 되고, 심지어 중전도 되고, 배우가 아니었다면 관심 갖지 못했을 분야를 배우게 된다. 얼마 전, (지)진희 선배가 그랬다. 배우는 늘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서 배우라고. 와닿더라. 늘 배워야 한다. 그게 좋다. 새로운 것에 끌리는 편인가? 사람은 늘 도전하고 싶어하지 않나? 아니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많지. 그런데 난 호기심이 많은 거 같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낀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똑같은 일을 할 때 지겹다고 느끼는 편이다. 연기는 단순한 흥미로 시작했을까? 사실 처음 시작할 땐 정말 ‘멘붕’이었다. 그냥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가 점점 다양한 캐릭터들을 접하고 다양한 연기 방식을 시도하면서 디테일들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조금씩 연기하는 재미를 느꼈다. 요즘은 정말 연기하는 게 즐겁다. 지금은 그래서 안정적이다. 처음엔 뭘 모르니까 너무 불안정했고. 그런 안정감은 언제부터 느꼈나. <반창꼬> 때부터 연기 자체를 부담감 없이 즐겼다. 그 전까진 늘 잘해야 된다는 압박과 부담을 안고 연기했는데 그때는 감독님도, 촬영장 분위기도 편안했던 거 같다. 이렇게도 노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명해진 뒤로 얻어진 스트레스는 없나?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신경을 기울이고 모든 걸 조심할만한 입장은 아니다. 그럴만한 위치가 아니니까. 그래서 솔직히 아직 그런 어려움까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일을 오래할수록, 해를 거듭할수록 책임감을 느낀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진짜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늘 공식석상에서 무언가를 대변할 때,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는 좀 예민해진다. 진짜 나를 잘 모르면서 자신들만의 기대감을 갖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늘 조심해야 된다. 언제부터 생긴 책임감인가. 처음부터 똑같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 크기가 좀 더 커졌다고 느낄 뿐이다. 항상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욕심이 많다는 소리 같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좀 더 과했고. 연기를 잘하고 싶었다. ‘왜 저렇게 연기 못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과하면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번쯤 걸러지는 과정도 있기 마련이다. 이젠 그런 욕심은 덜어졌다. 물론 지금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같이 작품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작품을 하는 동안의 시간이 모두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뭔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생기는 여유 같다. 모든 것이 새로울 땐 새로운 걸 하겠다고 바짝 긴장하거나 너무 들떠있게 된다. 그런 과정은 지난 거 같다. <감시자들>은 청계천, 서소문 등지에서 촬영했다던데, 자주 가는 장소는 아닐 거 같다. 영화관 말곤 사람이 붐비는 곳을 즐겨 찾진 않는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도 싫고, 시끄러운 건 싫다. 특별한 아지트가 있겠다. 주로 집 근처에서 논다.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어머니 반응은? 아빠는 군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더 보수적이었다. 아빠가 풀어주는 편이라면 엄마는 잡는 편이었고, 어릴 땐 그만큼 엄마가 무서웠다. 사실 배우가 되겠다고 얘기할 때, 맞을 각오였는데 엄마가 막 가소롭다는 듯이 웃더라. “네가(웃음)? 한번 해봐” 이러면서(웃음).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아마. 잠시 추억이나 만들겠거니 생각하셨던 것 같다. 지금은? 대견스러워하신다. 어린 나이부터 제 갈 길을 갔으니까. 다른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하시고. 최근 <감시자들> 제작발표회 때 함께 출연한 정우성, 설경구와 사이가 좋아 보이더라. 남자들과 쉽게 어울리는 편인가? 사실 여자들한테 좀 약하다. 특히 여자 동생들은 보호해줘야 할 거 같고, 매너 있게 대해야 할 거 같다. 하지만 남자들한텐 막하는 편이다. 뭐, 알아서 잘 하니까(웃음). <오직 그대만>에 함께 출연한 소지섭은 배우 한효주를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타입’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 자신에게 많이 인색한 편이긴 하다. 사실 시각장애인을 연기하는 게 힘들어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즐길 수 없었다는 게 진짜 아쉽다. 자주 보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 많은 사람을 만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하다. 일단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편이기도 하고. 어렸을 땐 사람들에게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웃는 모습으로 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항상 친절했다. 그게 너무 힘들더라. 그리고 꼭 그럴 필요도 없더라. 거짓말하듯 살았다는 말인가? 물론 남을 속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때의 내가 그랬고, 그게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교육방식이 그랬다. 엄마는 항상 사람들한테 잘해주고 웃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주입을 받고 자랐으니까 당연히 그런 성격이 된 거다. 그런 관념에서 어떻게 벗어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도 많이 받고, 차차 자연스럽게 내 스스로를 보호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특별히 공간에 대한 호기심은 없을까? 여행은? 막상 당시엔 몰라도 여행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게 남는 거 같다. 솔직히 여행이 절실한 편은 아니다. 여행이란 새로운 곳에서 에너지를 쏟고 무언가를 담아와야 되는 건데 나는 그냥 집이 좋고, 내게 익숙한 곳에서의 일상이 더 좋더라. 머무르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다. 침대 하나만큼은 꼭 좋아야 한다(웃음). (ELLE KOREA 7월호 No.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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