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갔다. 한 살이 늘었다. 그게 딱히 아쉽진 않다. 올해는 정말이지 꽉 찬 한 해였다는 감상이 남기 때문에. 안팎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나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운 서사의 연속이었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없지 않았으나 그보다 소중하고 보람됐다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더욱 많았다.
시간의 흐름이 아쉬운 건 신체의 노쇠와 함께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만큼 그 시절에만 할 수 있었던 무언가가 점차 기억 너머로 밀려나간다. 그렇게 늙어간다. 얼굴에 점차 세월이 배긴다. 늙어간다는 건 그래서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흐름의 흔적엔 그만큼의 값어치가 서려 있다.표정만으로도삶의서사가 펼쳐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의 현재란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과거의 무엇 이상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 날의 나란 날이 서 있는 사람이었다. 곤두선 채 다가오는 무엇이라도 의심하고, 찔러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럼에도 다가와주는 이가 많았고, 점차 그 찔림에 물러서다 보이지 않게 멀어진 이들도 많았다. 뒤늦게 내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뒤늦게 내가 오만했음을 깨닫는다. 모든 사람을 품으며 살 순 없겠지만 보다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순 있었을 거다. 지난한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이 날 날카롭게 다듬었노라 핑계를 댈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이 뒤늦게 날 되돌아보게 만들고 지금의 나를 다듬게 만들었기에 후회는 없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그 일련의 과정을 무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뒤돌아서 다시 부여잡을 수 없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보기 보다 앞을 보고 이제라도 내가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을 끌어가겠다는 일련의 다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쩔 수 없게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이미 먼 기억이 됐고, 그나마 남은 추억으로 연명하는 친구들과도 좀처럼 쉽게 만나기 어려운 처지로 떨어져 산다. 인간관계가 이렇듯, 우린 나이가 든다는 핑계로 상실의 시대를 합리화시킨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오랜 역사를 찰나의 기억으로 쉽사리 내던진다.
시간의 흐름이란 불가피한 것이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푸념과 한탄으로 소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한때 누군가를 증오했고, 원망했으며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끝없이 절망했으며 탄식했다. 증오와 원망과 절망과 탄식의 끝에 답은 없었다. 되레 그것들이 나를 끝없이 파괴하고 해치고 있음을 알게 됐을 때, 난 비로소 그것들을 나에게서 털어낼 수 있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내 삶을 부정한다는 것이 내게 있어서 어떤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그랬다. 현실을 인정하지 못할 때, 그 현실은 끝없는 비극의 영겁으로 확장된다. 그 안에서 괴물이 자란다. 내가 괴물이 된다.
삶이란 결국 하루하루 단위의 연속이다. 어떤 사람들은 모두 다 먼 미래를 계획하며 현실을 버텨내지만 결국 그들이 바라는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이 될 뿐이다.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바라보는 내일이란 일종의 픽션이다. 당장 오늘에 모든 것을 탕진하지 말되, 적어도 오늘을 가치 있게 소비하는 게 보다 현명한 길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나 현재다. 그 현재가 추억할 수 있는 과거를 지탱해주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한다. 난 현실을 살겠다. 그 현실에서 보다 지혜롭게 늙어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 얼굴에 주름이 하나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고가 메말라가고, 상식을 깨닫지 못하는 파렴치한 삶을 경계하겠다. 진보든, 보수든, 목소리를 앞세우기 보단 상식을 잊지 않으며 부조리를 응시하며 살아가겠다. 타인에 대한 의심보다도 나를 먼저 의심하고 내 스스로를 곧추세운 뒤 세상을 살펴보겠다. 20대의 마지막 해, 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또 다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