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스토리 슈퍼바이저(story supervisor)’로 참여했지만 전작인 <라따뚜이>와 <월-E>에서도 스토리에 관여했다고 들었다.
<니모를 찾아서>에서도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참여했고, <라따뚜이>랑 <월-E>에서는 ‘스토리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스토리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 시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적으로 제대로 구성하기 위해 항상 디렉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스토리를 슈퍼바이징(supervising)하는 것, 즉 말 그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관리해나가는 게 슈퍼바이저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렸다. 그곳에서 방대한 스토리보드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다양한 모델링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데이터를 하나의 결과로 유출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즐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작업이었다.
(웃음) 물론 DVD에 추가된 영상을 보면 실제로 게임도 하고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모습조차도 진지한(serious) 작업의 일환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실성이 담긴 현실적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는 와중에도 쉴새 없이 아이디어를 던지고 끊임없이 캐릭터 디자인이나 스토리에 수정을 가한다. 애니메이터인 동시에 스토리텔러로서 활약한다. 디자인, 스토리, 등 모든 과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픽사의 작업 방식이다.
러셀의 모델이 <업>에 앞서 상영된 단편 <구름조금>의 디렉터인 ‘피터 손’이라고 들었다.
실제 러셀의 모델은 2명이다. 첫 번째는 내 이웃에 살고 있는 소년인데 실제로 보이 스카우트 소속이며 그 소년의 활발한 모습이 러셀의 모티브가 됐다. 또 한 명의 모델은 방금 말했던 ‘피터 손’이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동료라서 러셀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줬다. 실제로 외모도 굉장히 흡사하다. (웃음) 보다시피 러셀에게선 동양인 소년의 느낌이 많이 난다. 아시아적 요소가 투영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좋은 영화로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명의 아시아 인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근래에 픽사에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노골적인 코미디를 자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랩스틱이나 입담을 통해 끊임없이 코미디를 구사하는 드림웍스와 확연한 차별점이 나타난다.
코믹한 요소들을 많이 첨가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디즈니는 개그적인 요소를 남발하면서 사람들을 웃기기만 할 뿐 심정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을 방지하고자 항상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그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그 가운데서 부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발생시키는 스토리를 구상해 나가고자 한다.
픽사는 항상 작품의 중심을 이야기라고 강조해왔다. 그만큼 스토리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당신이 픽사의 중책을 담당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픽사에서 이야기를 담당한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픽사에서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걸 큰 행운이라고 느낀다. 나는 필리핀 출신인데 어렸을 때 글쓰기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저 TV나 영화로 이야기를 보는 게 전부였다. 29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도 직업이 없었고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몇 년 뒤에 픽사에 있게 됐다. 내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라세터’나 ‘피트 닥터’, ‘앤드류 스탠든’ 같은 픽사의 애니메이터 겸 스토리텔러들이 내 작업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당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당신이 직접 그린 캐릭터 ‘Nina’를 봤다. 단지 스토리 슈퍼바이저이기 이전에 캐릭터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돋보였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기 전에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릭터 디자이너로서 작업을 해왔다. 스토리 슈퍼바이저란 단순히 스토리만 다루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제작과정이나 캐릭터 디자인도 관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내가 가진 경력들이 현재 스토리 슈퍼바이저로 일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픽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창작 조직이다. 그만큼 개별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있다 보니까 혼란스런 부분도 있지만 디렉터가 스토리텔러로서 작업을 이끌어 간다는 점은 분명하다. 각자의 의견이 일어나는 걸 막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수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많은 목소리가 일어나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최종적인 결정권이 감독에게 있다는 건 중요하다. 감독의 결정 이후로 모든 언쟁들은 종료가 되고 그 결정에 맞춰서 작업이 진행된다.
<업>은 픽사 최초의 3D애니메이션이다. 3D는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그런 시각적 자극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야기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
일단 절대적인 대원칙은 스토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3D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에 압도돼서 스토리 자체를 간과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픽사에서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3D나 뭐가 됐던 간에 스토리가 제1의 전제조건이란 점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특히 <업>에서는 칼과 러셀을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고 결국 주변의 모든 사람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업>의 스토리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아내와의 사별 후 홀로 남겨진 노인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설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갔다. 홀로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할 것인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이룰 것인지,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노인의 심리로부터 만들어진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근래 픽사의 작품들이 선사하는 스토리는 로맨틱하다.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결이라도 있나? (웃음)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다. (웃음) 다만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필요한 요소를 첨가할 뿐이다. 요리사가 사랑한다는 <라따뚜이>같은 경우나 로봇이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월-E>, 그리고 운명적인 존재와 사별한 노인이 등장하는 <업>처럼, 다양한 옵션들이 존재한다. 그게 픽사만의 특별한 방식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겠다 싶은 옵션들을 삽입하는 형태로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 것뿐이다.
<업>의 초반부 무성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클래식한 무성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픽사의 작품들이 종종 고전영화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적인 요소들을 삽입하는 것 역시 픽사의 특별한 방침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에서 필요로 하는 방식일 때 삽입이 요구된다. <업>의 초반부에서 칼과 엘리 커플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은 칼의 지난 인생들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삽입된 거다. 영화적인 방식이 픽사의 고유한 요소는 아니다. 단지 필요에 따라 삽입될 뿐이다.
픽사의 작업엔 언제부터 참여했나?
2004년이 처음이었다. 그때 시작했던 작품이 <카>였고, <라따뚜이>, <월-E>, 그리고 <업>까지 차례로 참여하게 됐다.
‘라이팅 슈퍼바이저(lighting supervisor)’라면 조명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라이팅 디렉터(director)’는 간단히 말해서 무대장치를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 설치하는 일이다. 영화제작의 마지막 단계에 실시되며 영화의 스토리와 색감 등을 가장 마지막으로 꾸며주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에 라니(Ronnie Del Carmen) 씨와 함께 국내 컨퍼런스에 참여해서 강의도 했다고 하던데.
이번 세미나의 컨셉이 ‘비주얼(visual) 스토리텔링’이었기 때문에 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가 ‘라이팅 디파트먼트(department)’에 있으니까 라이팅을 먼저 강의하고, ‘레이아웃(ray-out)’에 대한 강의를 병행했다. 카메라로 어떻게 프레임을 잡고, 어떻게 찍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 일단 중요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프레임을 바꿔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라이팅과 레이아웃이 상호협력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르고, 장면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카메라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어떻게 프레임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프레임 안에서 어떻게 캐릭터가 움직일 것이지, 이 모든 것들이 스토리텔링과 직접적인 관련을 짓고 있다. 그런 모든 요소를 통해 복선과 암시를 주면서 스토리를 강화시키는 거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예를 든다면?
일단 칼라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업>의 엘리 같은 경우 엘리의 색깔이 있다. 엘리가 나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핑크가 나온다. 처음에 칼과 엘리의 결혼식 장면에서도 핑크가 보인다. 나중에 병원에서도 핑크고, 자세히 보면 원피스도, 헤어 밴드도 핑크색이다. 나중에 엘리가 죽은 후에 칼이 혼자서 쓸쓸하게 돌아갈 때 집 창문에 저녁 노을이 핑크 색으로 비치는데 칼이 문을 닫고 들어갈 때 핑크빛이 사라진다. 엘리가 죽어서 결국 칼의 생활에서 없어졌다는 의미다. 칼의 피부만 봐도 처음에 엘리가 떠나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할 때는 저채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색에 가깝다. 그런데 나중에 모험을 마친 칼의 피부색을 보면 생기가 넘치는 핑크색이다. 그러니까 사실 <업>은 라이팅과 레이아웃으로 스토리를 어떻게 강화시킬 수 있을지 많은 계산이 들어가고 상당한 연구가 이뤄진 작품이다.
CG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컴퓨터에서의 조명은 무엇일까. 사실 실사랑 똑같다. 실사에서 영화 찍을 때 무대 장치에 무대 세트 조명이 없으면 정말 깜깜하지 않나. 그러다가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생기면 거기서부터 점점 화면이 구성된다. 컴퓨터에서도 조명이 없으면 실사처럼 컴컴한 화면이 된다. 예를 들어서 이 카페를 컴퓨터에서 만든다고 생각하면 컵 하나씩 모델링을 다 만든 뒤에 조명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다만 실사와 다른 건 실사에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우리는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를 커트하면 된다. 그래서 천 개, 백 개, 금방 만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테크닉이 다를 뿐 우리가 하는 것은 실제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을 위한 목적이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다만 하이 테크닉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업>을 비롯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기계적 질감의 색채라기 보단 좀 더 회화적인 느낌이 난다.
일단 디렉터가 이번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컨셉이 이거라고 설명하면 프랙티컬(practical)한 작업 이전에 ‘디오라마(diorama)’를 이용해 전체적인 테스트를 해본다.
<업>에서 라이팅 파트에서 고려한 것은 무엇인가?
<업>같은 경우, 피트 닥터가 2006년에 라이팅 분야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자기가 어떤 라이팅 컨셉을 하고 싶은지 말했다. 그 중 하나가 복잡한 장면을 심플리케이션(simplaication)하게 만들어서 캐릭터가 돋보이게 하는 것인데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라이팅으로 보여주는 거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당신 시선에선 내 얼굴이 부각돼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컵이 밝아서 시선을 빼앗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인위적으로 컵을 약간 어둡게 한다. 왜냐면 사람의 눈이라는 건 콘트라스트(contrast), 대비가 강한 곳이나 밝은 부분에 시선이 가기 마련이니까 그런 방식으로 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질감 같은 부분인데 러셀이 매고 다니는 배지 띠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 나중에 칼이 그 빈자리에 반질반질한 질감의 캔 뚜껑을 붙여주는데 그 때 질감의 대비가 심하게 느껴진다. 둔탁한 질감과 반질반질한 질감을 대비시켜서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거다. 장면 하나하나가 실사에 기반을 두고 라이팅이 된 것이 아니라 이 스토리와 이 장면에서 어떻게 보여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철저한 분석과 공부를 하고 라이팅을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작년에 서울에서 픽사 20주년 기념전이 열리기도 했는데 거기서 픽사는 각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모인 장인 집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작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픽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픽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좋은 아이디어도 흥미롭지 않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반면에 괜찮긴 한데 그리 익사이팅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좋은 사람끼리 모이면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할 수 있다. 픽사가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릴렉스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나오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는 공부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놀면서 얘기를 하는 순간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 있음으로써 그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에서 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픽사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미국으로 떠난 건 아닐 것 같은데, 픽사에서 일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웃음) 맞다. 내가 처음으로 픽사의 ‘룩소 주니어(Luxo Jr.)’를 접하게 된 건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처음에 전등이 막 ‘통통통’ 뛰어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단순한 사물에 어떻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지 신기하더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후에 뒤늦게 알았다. 픽사란 회사가 있다는 건 그때 알았다. 나중에 뉴욕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하면서 그런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할까. 그 전엔 솔직히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설치미술이나 인스톨레이션(installation)과 같은 순수 아트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뉴욕의 컴퓨터 아트과에선 분야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더라. 비주얼을 하고 싶으면 비주얼을 하고, 페인팅을 이용한 인스톨레이션이나 영상을 추구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가 가능한 환경에 있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환경에 나도 노출된 거 같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픽사가 훨씬 크고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회사라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 가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픽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픽사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내가 만든 졸업작품이 순수 미술 성향의 실험적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상상 외로 반응이 좋았다. 학생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고 PBS에서 방송도 됐다. 히로시마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인터뷰 기회가 왔다. 처음에 ‘PDI 드림웍스’에서 <슈렉2>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때쯤 되니까 픽사의 문화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고, 점점 픽사에 가고 싶더라. 결국 드림웍스에서 일하다가 2년 후에 픽사로 옮겼다.
픽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서 <업>을 끝낸 다음에 터키 이스탄불에 갔었는데 내 오피스 옆에 있었던 친구가 터키사람이었다. 그렇게 로컬(local)과 같이 생활하면서 좋은 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인터내셔널한 사람들과 만나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재능 있고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있음으로 인해서 무언가 계속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픽사 내엔 ‘PU(Pixar University)’라는 게 있는데 업무 후 오후 시간에 많은 수업을 제공한다. 수업의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굉장히 높다. 한국에서 접하지 못했던 수업들이 많고 그런 것들이 나에겐 배움의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다.
혹시 문화적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나?
나는 한국에서 모든 교육을 받고 간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 의견을 공유하는 부분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 다닐 때 손들어서 질문할 수도 없고, 어떤 한 사람이 얘기할 땐 조용히 듣기만 해야 되는데 미국은 항상 기본적으로 토론이 일반화돼 있다. 지금까지 교육받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그런 문화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된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 클래스, 액팅(acting) 클래스, 보이스(voice) 클래스까지 들었다. (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로 언어를 바꾸면서 내 목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지금은 라이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은 없을지 궁금하다.
나도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전부 다 해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졸업 작품은 ‘미니(mini) 디렉팅’이었지만 내가 다 한 거다.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더라. 지금은 라이팅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라니 님도 강의하는 스토리텔링 클래스를 비롯해 PU에서 많은 걸 배운다. 내가 직접 레이아웃을 하진 않더라도 관심이 많아서 공부하고 그렇게 견문을 넓힌다고 할까. 내가 해야 하는 것보다도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많으니까 그 안에서 내가 찾아서 많이 배우려고 한다.
픽사는 항상 이야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다른 분야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과물이 좋다는 건 그만큼 내부적인 합의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희끼리도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 셋째도 스토리, 라고 말한다. 사실은 모든 파트가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실 라이팅 파트라고 생각하면 세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미학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건 화면의 어떤 부분이 스토리를 중요하게 묘사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에 어떻게 시선을 유도할 수 있는가다. 캐릭터도 그 캐릭터를 하나 개발하면 그게 끝이 아니라 스토리에 맞지 않는 부분은 변형시킬 수 있다.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개발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 아닐까.
나에게도 파이팅한 일이랄까. 정말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도 기쁘고, 실제로 강의장 안에서의 에너지도 굉장히 좋더라. 컨퍼런스에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들어서 놀랐다. 이렇게 호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강의한 내용들은 내가 픽사에 있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많이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 같다. 사람들이 같이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니 님도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픽사는 인터내셔널한 창작집단이다. <업>의 러셀과 같은 동양인 꼬마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할 수 있는 것도 그런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픽사는 미국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인터내셔널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 의견이 반영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두 다 픽사의 좋은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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