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영화다>의 원작이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라고 들었다. 그 시나리오를 선택하기 이전에 본인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는 없었나?
개인적으로 쓰던 시나리오가 몇 개 있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잘 안 풀리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감독님께서 이 시나리오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살펴보고 결국 하게 됐다. 내가 만든 이야기보단 원작이 있는 이야기로 첫 연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고, 더 많이 배운 거 같다. 그래서 나에겐 더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고.
김기덕 감독의 원작 시나리오로부터 가장 크게 각색됐다 할만한 바가 궁금하다.
전체적인 뼈대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원작의 느낌들은 그대로지만 일단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법을 각색함에 있어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화법을 선택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타는 강패와 대등한 관계였던 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비중이 적었다. 원래 7:3(강패:수타)에서 6:4정도였던 걸 반반 정도로 각색했다. 물론 두 남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영화와 시나리오가 같은 이야기란 건 맞지만 원작에선 강패 이야기의 비중이 더 컸다. 그리고 봉 감독에게 코믹한 요소를 많이 가미한 점도 있고.
아무래도 원작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되진 않았나 보다. 영화상에서 캐릭터 무게중심이 수타보단 강패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두 남자의 비중을 대등하게 변화시킨 의도는 뭔가?
김기덕 감독님의 원작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서로 다른 삶을 동경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비중이 비슷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슷해지면 두 남자를 모두 각자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영화와 현실의 비중도 비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과 연이 닿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 학생회위원을 했는데 학교 축제에 저명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특별강의 같은 걸 하는 명사 초청강연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내가 김기덕 감독님께 와서 해주십사 연락 드렸고 그 인연으로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졸업하면서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드렸다. 감독님께 답장이 왔는데 지금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 여기서 연출부로 일하면서 영화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일단 해보라고 하시더라. 경험을 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래서 처음으로 영화를 하게 됐고 그 후로 여기까지 온 거다.
김기덕 감독의 촬영현장에서만 경험을 쌓은 건가?
일단 <사마리아>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마리아>가 끝나고 한번 <신부수업> 연출부로 참여했다가 다시 <빈집>연출부로 참여하고, <활>과 <시간>의 조감독을 맡았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과 일반적인 영화 현장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차이가 많다. 내가 다른 영화현장을 많이 경험해본 건 아니지만 일단 김기덕 감독님의 현장은 굉장히 빠르다. 현장에서 순발력 있는 상황대처를 보이시니까 촬영진행속도가 빠른 것 같다. 날씨나 외부적 환경요인으로 인해서 촬영이 어려운 날이 생겨도 그런 여건에 맞게 현장상황을 즉각 바꿔서 결국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배우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안 하신다. 뭔가 얘길 해보면서 배우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그걸 강요하진 않는다. 나 같은 경우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게 약간 있나 보더라.
<영화는 영화다>는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 속에서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한 감정 같은 게 생기진 않던가.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겐 두 캐릭터의 삶이 먼저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 이후에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물론 아이러니는 많았지. (웃음)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실제로 연기를 했는데 카메라 뒤에선 그렇게 활발하던 스태프들이 카메라만 보면 자꾸 도망가는 거다. 그래서 스태프 연기시키기가 너무 힘들더라. (웃음) 스태프 연기시키는 날엔 촬영도 오래 걸리고.
낙원상가 옆에서 촬영한 씬에서 촬영장의 스태프들과 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강지환 씨의 모습이 대비적이라 재미있었다. 전문연기자와 비 전문연기자들이 카메라를 대하는 방식의 대비가 발견되는 느낌이랄까.
차이가 크다. 사실 영화에서 스태프를 찍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영화에서 좀 더 리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서 찍었는데, 막상 찍어보니까…..안 찍는 게 좋겠더라. (웃음) 물론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사실 갈수록 스태프들의 연기가 늘었다. 스태프들도 모니터하면서 자신들의 연기가 느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면에서 행복한 촬영현장이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적 리얼리티와 현실적 리얼리티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라면 현실적 리얼리티를 고려하면서도 영화적 리얼리티를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영화란 진실을 보여주기 보단 진심을 담아내는 작업에 가깝다.
진짜가 있고, 정말 진짜 같은 게 있다면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가 아니라 오히려 같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고, 진심처럼 느껴지게 잘 전달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진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후자다. 그게 정말 리얼해서가 아니라 리얼한 느낌을 주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때론 그게 약간 슬프기도 하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정직하게 찍으려 했던 부분이나 배우들과 그렇게 작업했던 분위기는 영화에 담긴 거 같아 다행이다.
수타와 강패란 이름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명쾌한 은유지만 반대로 노골적이다. 한편으론 희화화된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고민이 좀 있었겠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 그래서 고민도 좀 했는데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서 그대로 갔다. 제목도 사실 원작 그대로인 만큼 수타와 강패란 이름도 그대로 가보고 싶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게 좀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봉 감독은 상당히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감독이다. 아무래도 감독 캐릭터란 점에서 감독인 당신과 비교하고 싶어진다. 당신과 봉 감독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일까?
차이가 좀 있지. 봉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적 설정을 진짜로 찍는다. 그런데 나라면 봉 감독처럼 그렇게 못한다. 영화는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지 않나. 만약 싸우는 씬을 찍고 난 다음날 싸우기 전 씬을 찍어야 한다면 실제로 싸움을 한다고 했을 때, 배우 얼굴에 상처가 나면 사소하게 나마 맥락적 연결상의 문제도 생기니까.
실제적인 공간의 형태를 과감히 드러내는 느낌이다. 그 공간의 기시감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는 느낌도 얻었다.
실제로 찍을 때와 전체적으로 컷들이 붙었을 때, 공간의 느낌이 달라졌다. 총체적으로 오는 느낌이 찍을 때보다 좀 더 리얼한 느낌을 주더라. 더 자연스러운 느낌도 있고. 인사동도 그렇고, 갯벌도 그렇고, 그 공간의 느낌들이 완성된 상태에서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더라.
인사동이나 낙원상가처럼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인파를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종로는 어차피 골목 앞을 막으면 사람들이 들어올 수가 없으니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인사동은 완전히 열려있으니까 거의 전쟁이었지.
게다가 소지섭에 강지환이라,
그 심각한 엔딩 장면을 찍으면서 다들 집중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다 이러고 있으니, (웃음) 전쟁이었지. 우린 사람이 죽어가는 심각한 장면을 찍고 있는데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이러면서 웃으며 사진 찍고, 우리는 통제하느라 정신 없고. 사실 그걸 찍으면 진짜 리얼한 건데 말 그대로 그건 영화가 아니니까. (웃음)
상황 자체가 현실과 영화가 공존하는 아이러니처럼 들린다.
인사동에서 옆으로 빠지는 골목 안에 폐지 수집하는 곳이 있다. 몇 차례 헌팅을 갔을 땐 조용하다 싶어서 한적한 골목을 헌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촬영날은 폐지 수거하는 날이라 끊임없이 폐지를 실어 나르고 자동차도 오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왔다 갔다 하시고, 개도 있고. (웃음) 그런데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소지섭, 강지환이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런 점에선 무리가 없었다. 한편으론 그런 점이 노인분들의 생활고가 느껴지는 측면이라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영화라는 결과물을 위해서 작업한 것이지만 그 현장 자체가 나에겐 현실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소중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액션도 꽤나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에서 액션연출을 경험해봤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했을 텐데.
마지막 갯벌 장면 같은 경우엔 두 배우가 지칠 때까지 싸우는 느낌을 담고 싶었고, 결국 싸움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건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런 바가 화면에서 드러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걸 담아내기 위해서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지섭 씨는 촬영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도 귀에서 갯벌 흙이 계속 조금씩 묻어나올 정도라니까, 고생 많이 했지.
사실 갯벌은 계획된 로케이션 장소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원래는 그게 뻘에서 하는 액션은 아니었다. 내가 각색하면서 조금 수정된 부분인데 두 배우가 뭔가에 흠뻑 젖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컨셉에서 강패는 블랙이었으면 좋겠고, 수타는 화이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옥상씬을 보면 강패는 블랙을 입고 있고, 수타는 화이트를 입고 있지 않나. 그리고 봉 감독의 영화 안에서도 강패는 계속 정장 안에 검은 셔츠를 입고, 수타는 흰 셔츠를 입고 있고. 나중에 둘 다 뻘이 묻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아졌다는 느낌. 그래서 갯벌을 생각하게 됐다.
그 갯벌씬에서 강패는 결국 수타와의 싸움에서 진다. 결국 주인공이 이긴다. 그건 어쩌면 검은 돌을 지워나가던 강패가 스스로 흰 돌에 둘러싸인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 갯벌씬은 온전히 영화적인 현실에 대한 자조처럼 보인다.
수타가 이겨야만 하는 어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까. 사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의 느낌이랄까. 관객들이 보는 영화는 스크린에 걸린, 완성된 영화다. 스크린에 걸리기 위해 촬영됐지만 극장에 안 걸려서 상영이 안 되는 영화들도 있고, 촬영이 다 끝났지만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래서 극장에 걸리는 건 사실 행복한 경우인데 관객들은 그런 영화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느낌이나 스태프들이 얻는 그 순간의 느낌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선 해피엔딩이 가능하다. 목적했던 결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목적대로, 시나리오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완성되고, 그래야만 한다.
그 라스트 씬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건가?
원래 원작의 엔딩이다. 원작에서 온전히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사실 갯벌씬은 엄밀히 말해서 영화적 영역의 성취인 셈이다.
영화만의 쾌감이지. 영화적인 만족감이고.
그에 반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엔딩은 대비적이다. 영화적 결말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려는 현실적 거부감처럼 느껴진다.
현실이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것이니까. 캐릭터로 얘기한다면 수타는 성장하고 변모한다. 그런데 강패는 변하지 않는 캐릭터다. 변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똑같은 캐릭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옷을 입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슬픈 거 같다. 현실의 사람들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마지막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은 그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마지막 장면에서 스크린이 뒤로 빠지고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프레임이 하나 더 생기지 않나. 그런데 그게 극장에서 상영할 때 많이 잘리더라. 그 극장의 이미지가 객석의 한 세줄 정도는 보이고 더 넓어야 하는데 객석은 안 보이게 잘리는 경우가 있더라.
스크린의 비율 문제 때문에?
맞다. 그래서 혹시 관객들이 그 부분을 놓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것도 영화였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극의 말미에 피칠갑을 한 강패가 수타를 노려보는 장면은 마치 객석을 노려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사실 소지섭 씨가 연기한 강패가 강지환 씨가 연기한 수타에 비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건 종종 영화 속의 악인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강패의 눈빛은 그 영화적 환상에 빠진 관객에 대한 경계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과 악이라는 경계에 대한 사유도 가능할 것 같다.
난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기 보단 모든 사람에겐 두 가지 면이 다 있어서 선한 행동을 하거나 악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패는 악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지막에도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단 그것이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지 않고 더 매력적인 부분에 끌린다. 사실 그것도 좀 슬픈 거다. 재미없는 선보단 재미있는 악에 더 끌리니까. 물론 강패가 악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각자 직업이 다르고, 사회적인 입장이 다른 건 스스로 선택한 어떤 초기의 결정 때문이다. 그 사람 자체가 매번 그런 판단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은 직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갯벌 장면은 정말 처절했다. 얼굴이 갯벌에 반쯤 잠긴 강지환의 얼굴이 열의를 대변하더라. 이런 장면을 주문하는 감독은 얼마나 악랄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웃음)
악랄하겐 안 했다. (웃음) 그냥 두 배우들이 스스로 열심히 했다.
강패와 수타를 바라보며 봉 감독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서 캐릭터로 완성되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과정은 여러모로 즐거운 일일 거다.
굉장히 즐겁겠지.
똑같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본인에게도 비슷한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다. 강한 열의를 갖고 연기에 임하는 배우들을 지켜볼 수 있는 감독의 입장이라면 봉 감독 못지 않게 즐거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안 했는데 배우들은 무지하게 고생했지만 솔직히 난 속으로 즐거웠다. (웃음) 배우들한테는 고생해서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얘기했지만. 영화에 그런 강렬한 느낌들을 주니까 그런 광경을 찍을 수 있어서 즐겁지.
그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봉 감독과 강미나가 주고 받는 대사가 생각난다. 두 배우를 격려하고 돌아온 봉 감독에게 미나가 괜찮겠냐고 묻자 봉 감독은 ‘감독이라고 뭐, 다 아나?’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미나가 그럼 감독님은 뭘 아느냐고 되묻자, ‘내 배우 끝까지 믿어야 된다는 거’라고 답한다. 그 대사가 어쩌면 감독 본인이 하고 싶은 대사였을지 모르겠더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봉 감독이 대신하는 대사가 조금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봉 감독 캐릭터를 위한 대사다. 코믹하긴 하지만 결국 감독이니까 감독다운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배우를 믿고 가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때론 갈등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감독이 배우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결과물의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 배우들과의 소통은 어땠나?
두 배우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각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들이 느껴졌다. 두 배우가 스스로 생각하는 강패, 수타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해온 부분이 있지 않나.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던 캐릭터가 있고. 근데 두 배우가 많이 고민한 부분을 내가 일방적으로 여기선 어떻게 해야 된다고 지도하진 않았다. 일단 배우들이 만들어온 캐릭터를 최대한 담고 싶었고, 그게 전체적으로 큰 톤에서 벗어날 때만 얘길하는 편이었지. 어찌됐든 소지섭의 강패, 강지환의 수타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편했다. 배우들과는.
사실 첫 영화부터 캐스팅이 화려하다. 일단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촬영 내내 흐뭇했지. 어떻게 잡아도 그림이 나오니까 편한 것도 있고. (웃음) 두 배우가 굉장히 길지 않나. 만약 어느 한 쪽의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컸다면 투샷을 잡기 보단 상대적인 표정 위주로 잡아야 되고 이런 걸 신경 썼을 텐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카메라도 편하게 잡았다.
감독으로서 두 배우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두 배우와 작업하게 된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지섭 씨나 지환 씨가 각자의 캐릭터를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만약 컨트롤한다고 생각했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 같다. 그런데 컨트롤한다기 보단 같이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거 같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배우를 처음으로 경험해본 셈이기도 했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는 없나?
아직 정의를 내릴 정도로 경험을 해본 것 같진 않다. 다만 누구나 자신과 결혼할 아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형이 있다. 그런데 결국 만나는 사람에 맞춰서 달라지지 않나. 실제로 만나게 된 사람을 그 이상형으로 맞출 순 없으니까, 서로 같이 변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같이 잘 살아야 된다. 감독과 배우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강패와 수타가 달리기를 하면서 테이크가 반복되는 장면은 마치 강패의 현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영화적 현실을 안착시키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건 봉 감독이 강패를 길들이는 광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를 다스려보고 싶었던 바는 없었나?
의견의 차이가 발생한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크게 마찰하거나 충돌했던 점은 없었다.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냥 배우들이 원하는 걸 선택했다. 대부분 내가 특별한 주문을 안 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동선만 정해주고 배우들이 잡아온 캐릭터로 테이크를 갔다. 물론 만약 내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더 표현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원하는 바를 배우들한테 얘기해서 한번 더 테이크를 갔다. 의견 충돌의 느낌은 없었고 그 테이크 중 좋은 걸 쓰면 됐다. 그래서 오히려 작업이 빨랐던 거 같다.
사실 고창석 씨가 연기한 봉 감독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꽤나 삭막해졌을지 모른다.
봉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두 캐릭터가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설정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캐릭터였다.
남자로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꽤 귀여운 캐릭터였다. (웃음)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관객 분들이 귀엽다고 하더라. 봉 감독님이 인사하면, 귀여워요! 이러니 매번 봉 감독님께서도 당황하셨지. (웃음)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나이에 내가 이런 소릴 듣게 될 줄 몰랐다고 얼굴이 많이 빨개지시더라. (웃음)
말미에 강미나의 말처럼 끝까지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인간미가 느껴진다.
인간적인 매력을 주고 싶었다. 사실 감독님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나도 김기덕 감독님을 많이 봤지만 현장에서 있어 보이게 폼 잡고 있기 보단 대부분 편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작품 자체에만 몰두해서 계신다. 현장에서 본인이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는 것보단 그런 게 오히려 멋있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평소 김기덕 감독의 현장 분위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보편적으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님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지 않나.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해보거나 개인적으로 만나오신 분들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만나보면 재미있고 귀여운 부분도 있다.
귀엽다?
약간 개구장이 같은 부분이 있다. 음, 여하간 그렇다. (웃음)
혹시 김기덕 감독에게 원작 시나리오의 모티브나 소재를 얻게 된 경로에 대해서 한번쯤 물어본 적 없나?
원작은 오랜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시나리오라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돼야만 하는 것 같다. 감독님께서 보시는 배우들에 대한 느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조폭들에 대한 느낌, 그런 부분들에서 아마 시작되지 않았나 싶더라.
사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대중과의 충돌이라 할만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런 일련의 상황을 김기덕 감독의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얻은 몇몇 어려움에 대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은 감독님이 많이 외로워 보였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감독님을 생각하는 오해적 이미지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고, 무엇보다도 감독들이 대체로 좀 외롭지 않나. 현장에서 얘기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일적인 얘기를 해도 그 전체를 보는 사람은 감독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다 이해해 줄만한 사람도 없고. 그런 부분들이 많이 외롭게 보이더라. 다른 감독들도 그렇겠지만 작품을 깊게 들어가다 보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누구나 아는 얘길 하면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듯이. 그런 부분들이 어려운 거 같다. 내가 한번 김기덕 감독님께 유치하게 여쭤본 적이 있다. 감독님, 영화가 더 힘든가요? 현실이 더 힘든가요? 그렇게 여쭤봤더니, 당연히 현실이 더 힘들지,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영화 찍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얘기하시더라. 영화를 찍을 때 제일 행복하고 시간도 잘 간다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시는 거 같다. 나도 이번에 처음 찍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배우들 고생시키고, (웃음) 고생시키면서 나도 고생하고, 그렇게 몸은 힘들어도 정말 행복하더라.
<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 자체가 애증을 동반한 느낌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애증이랄까. 현실을 넘을 수 없는 영화적 한계에 대한 인정 같기도 하고, 현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영화적 성취에 대한 선언 같기도 하다.
영화에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가능하다. 거기엔 어떤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다만 굳이 그 차이에 얽매여서 영화와 현실을 대비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적 리얼리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는 반면, 영화를 보는 현실의 사람들은 영화를 모방하려고 한다. 각자가 지닌 장점들을 따로 봤을 때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말 리얼한 걸 보고 싶다면 현실을 일상적으로 스치듯이 지나치지 말고 차분하고 주의 깊게 뭔가 본인이 원하는 걸 찾아보면 된다. 그럼 좀 더 리얼한 걸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와 현실 사이엔 그런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영화의 우열관계를 나누기 보단 평행우주라는 대등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 같다. 하지만 결말부의 뉘앙스는 아무래도 영화보단 현실에 비중을 준 느낌이다.
영화도 현실을 위해서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패와 수타라는 두 캐릭터가 대립적인 관계로 보이지만 은연 중에 서로에 대한 묘한 애정이 오가는 것 같다. 약간 가볍게 말하자면 싸우면서 친해지는 관계 같기도 하고.
그런 게 느껴졌으면 했다. 사실 더 친하게 보이는 테이크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너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찍으면서도 배우들과 얘길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느낌은 있지만 너무 친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보단 느슨해졌을 것 같다.
둘이 너무 친해지면 그것도 너무 영화적인 거니까. 사람이 또 그렇게 쉽게 친해지지도 않지 않나.
사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강패를 비롯한 조폭들이 현실적인 조폭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나 등장할만한 느낌이랄까.
일단 조폭 영화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폭에 관심이 많진 않았다. 솔직히 강패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조폭들을 만나서 취재하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한국 조폭이라기 보단 한국 영화 안의 조폭이랄까. 기존 영화들에서 묘사된 느낌들만을 통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룸싸롱이나 공사현장처럼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상황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누군가를 죽여야 되는 부분도 실상 영화적으로 가져온 부분들이다. 스타 영화배우와 조폭의 부두목이란 직업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동경한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개인적으론 꼭 깡패일 필요가 있고 스타일 필요가 있는지가 중요하기 보단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동경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일단 영화에서 그렇게 설정을 한 이상 캐릭터 자체의 삶은 리얼하게 보여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개인적 의도에 의해서 소모시키거나 조금 사소하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설정 안에서 최대한 캐릭터의 삶을 살리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현실보단 영화적 참고 사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태양은 가득히>와 <무간도>가 떠올랐다. 두 남자가 각자 살아보지 못한 서로의 삶을 동경하는 느낌이나 정서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부분을 굉장히 중시했고 영화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건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적인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강패가 영화를 촬영하면서 겪는 일은 영화적인 부분들이 많다. 연애만 해도 수타의 연애는 현실적인 연애고, 강패의 연애는 영화적인 연애다. 바닷가에서 키스하거나 그런 전형적인 영화적 느낌들이 강패의 연애에 있다.
아무래도 두 남자가 겹쳐지는 국면의 세기가 상대적으로 그 주변부에 배치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보다 눈에 띄기 때문에 어떤 주변 캐릭터는 간과되게 느껴질 공산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그 연애적 형태의 대비도 본인의 의도에 비해 가볍게 여겨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고.
둘의 이야기에서 중심축을 이뤄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다른 주변부의 비중이 커지면 둘의 에피소드가 전반적으로 산만해질 것 같았다. 둘에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부로 키우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두 남자가 서로를 통해 변화를 느끼는 지점도 있지만 각자 서로 사랑하는 여자를 통한 변화의 느낌은 부수적으로 주고 싶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사실 결말을 배제한다면 강패는 배우로서 더 좋은 미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엔딩은 감독으로서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 셈인데 좀 가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가혹한 거 같다. 현실은 잘 안 바뀌지 않나. 사람도 쉽게 안 바뀌고. 그런데 역으로 난 정말 사람들이 보다 좋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는 결정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희망사항을 영화적인 만족감으로 적용한 채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영화는 그렇게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관객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가능한 변화의 지점들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적인 대리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엔딩에서 드러내는 스크린과 객석의 거리감은 현실과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안전거리처럼 보인다.
안전거리라는 표현을 해서 그런데 영화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결국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감성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얻는 것도 좋겠지만 결국 마지막엔 이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이성적으로 감안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바람이 있었다.
드라마틱하게 흐르던 영화가 가장 노골적인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며 엔딩을 맞이하는 셈인데 한편으론 도발적이면서 그만큼 위험한 시도처럼 보인다. 허무함을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을 것 같단 점에선 위험을 무릅쓴 선택 같기도 하고.
위험하지. 후반 작업 하면서 그런 의견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처음에 이야기가 출발된 지점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그 부분이 표현돼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관객들이 허무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관객을 영화에 계속 참여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만든 사람만의 영화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창작자의 화법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살짝 거리를 두고 빠져 나온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수정을 많이 했다. 화면이 빠지는 타이밍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결국 영화가 하려던 얘길 변질시킬 순 없는 거니까 강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했던 거지. 그런데 결국은 객석이 좀 잘려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안타깝다. (웃음) 그리고 사실 지섭 씨는 이 엔딩 때문에 이 영화를 결정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남는 장면은 어딘가?
개인적으론 뻘 씬도 애착이 가고 다 애착이 가지만 지환 씨와 지섭 씨가 많이 얘기했던 부분이 있다. 지환 씨는 강패를 보는 수타 입장에서 강패가 부하랑 공사장에서 가짜 액션하는 장면을 많이 좋아한다고 했고, 지섭 씨는 수타를 보는 강패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까페에서 은선이랑 둘이 차 마시는 장면이라고 하더라.
그 두 장면은 각자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론 강패의 가짜 액션 장면이 가장 좋았다. 사실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볼 땐 결과를 알고 봐서인지 그 장면에선 꽤나 슬픈 느낌이 나더라.
그 시점에선 유쾌한 느낌을 주지만 그게 결과적으론 좀 슬픈 장면이다.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강패가 느끼는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상대적으로 더해지니까.
수타는 결국 성장했고, 강패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에 웃고 있는 건 수타가 아니라 강패다.
하지만 그게 이겼다는 승리의 느낌이라거나 정말 기분 좋은 만족감에서 나오는 웃음은 아니다. 되려 웃음 자체가 역설적으로 슬픈 느낌을 대변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언젠가 본인의 이야기로 연출을 하게 될 기회가 있을 거다. 본인이 주로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뭔가?
사람에 대한 부분이다. 인생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중요한 거 같고. 아마 내가 글을 쓰게 되면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반영되지 않을까. 그리고 선악에 대한 이야기도 매력이 있는 거 같다.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경계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경계가 그렇지. 어느 상황에서는 그게 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상황에선 그게 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미묘한 경계에선 분명한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선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스릴러를 많이 좋아하기도 했었고. 물론 공포 빼곤 대부분 좋아하지만.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잘 못 본다. (웃음)
첫 영화였던 만큼 지나고 나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많지. (웃음) 지금은 무대인사 다니느라 바쁘지만 무대인사 끝나고 이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사실 빨리 혼자 있고 싶다. 물론 그 전에 무대인사를 열심히 다니고 싶고. 그 이후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내가 찍은 영화에 대해서 내 스스로 다시 한번 공부해봐야 될 거 같다. 어떻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라는 부분, 아쉬운 부분들은 왜 아쉬운지, 그런 부분들을 공부해야 개인적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거 같다.
영화는 개봉했고 첫 번째 작품은 본인의 손을 떠났다. 기분이 어떤가?
홀가분한 느낌도 있고, 일단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 열심히 다니면서 잘 되길 빌어야지. 그리고 빨리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웃음)
(무비스트)
'감독'에 해당되는 글 22건
- 2008.09.20 장훈 감독 인터뷰
- 2008.09.08 류승완 감독 인터뷰 4
어쩌면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 리>)란 영화가 이 사무실의 벽면과도 같은 형태가 아닐까 싶다.
설마 저 트뤼포 같은? (웃음)
당신이 지닌 취향들의 콜라주(collage)같은 영화다.
그렇다! 이건 미술로 따지면 콜라주고, 문학으로 따지면 인덱스(index)지. 내 취향이 많이 들어간 거지.
순제가 어느 정도인가?
순제는 28억 5천, 마케팅비를 포함한 전체제작비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겉보기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진 않은 것 같다. 대작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많이들 그러더라. 그래서 순제를 말하면 다들 놀라지.
30회차라고 들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36회차로 알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 회차가 제일 짧다.
노사단체 협약이 이뤄진 이후에 당신이 처음으로 찍은 영화다.
그런가? 벌써 그렇게 됐구나.
30회차로 타이트하게 찍었다 해서 혹시 그 부분에 대해서 염두한 바가 있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가 보다.
전혀 상관없다. 내가 <아라한 장풍대작전>(이하, <아라한>) 이전까지만 해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24시간 동안 촬영하고 그런 적이 많았다. 그런데 <아라한>때부터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12시간 촬영시간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라한>이후부터는 현장에서 시간을 운용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내 영화 현장은 강도가 세다. 일단 찍어야 될 컷들도 많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철저하게 촬영 스케줄을 짜고 움직였어야 했을 텐데.
태도 자체를 영화의 기본 컨셉에 맞춰보고자 했다. 아예 옛날 방식의 영화 만들기 스타일을 추구했다라고 할까. 제한된 예산환경과 빠듯한 스케줄, 그걸 스스로 절제한 게 좀 있다. 이런 한계를 돌파해나갈 때 나타나는 것이 이 영화엔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영화 만들 때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지.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그런데 그건 이 영화의 방향과 잘 맞지 않다고 느껴졌다. 직선으로 내지르는 현장,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 안에서 모두가 다 흉내 내고 어물쩡거리는 B무비 말고 진짜 B무비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요즘은 워낙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현장 규모가 크고 그렇지 않나. 그런 건 사실 돈으로 이뤄지는 것들이다. 그래서 정말 최소한의 순수한 형태의 것들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시켜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우리 영화 현장이 되게 가난하고 궁색해 보이는 현장이었단 말은 아니고. (웃음) 정신과 태도의 문제겠지. 진짜를 체험하는 것. 그건 사실 관객들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런 한계지점을 돌파해봤을 때 뭔가 얻어지는 게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실제로 얻은 게 많았다. 108회 차 촬영도 해본 내가 이제 30회차 촬영도 해보니까 정말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더라.
<다찌마와 리>는 한국 영화의 전통과 오늘날 관객 사이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뻔뻔한 유머를 즐기는 관객도 있겠지만 개중엔 의도적으로 차용된 한국고전의 장면들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후자보단 전자의 태도로 이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월등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고전영화들의 명맥이 그만큼 현대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여지다.
그건 지금 우리 영화문화의 현실일 수도 있겠지. 분명 아는 만큼 <다찌마와 리>를 더 즐길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극장 안의 같은 프린트를 보는 것뿐이지, 보고 나올 때는 전부 다 다른 영화를 보고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지점에서 갈리는 문제가 생긴다. 난 관객들의 반응을 보자면 이 영화가 희한하게 일종의 게임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야 말로 어쩌면 인터랙티브(interactive) 영화다. 이 쪽에서 뭔가 던져졌을 때, 반대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음 상황이 다르게 읽혀진다. 지금 말한 한국고전들, 그리고 아시아의 유치한 6~70년대의 활극영화들,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서는 007시리즈까지, 이런 것과의 연결고리가 있는 관객일수록 이 영화와 더 잘 맞아떨어지긴 할거다. 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내게도 처음으로 이런 류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 있었을 것 아닌가. 저런 식으로 연기를 하다니, 저런 대사를 쓰다니,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게 여겨지는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고, 그 자체로 낄낄거릴 수 있었다. 그런 정보가 단절됐더라도 즐길 수 있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로 그런 유희를 즐기면서 역으로 과거를 찾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시선은 내겐 부담스럽다. 사실 이 영화가 과거의 영화들에 대한 존경만 담아낸 영화는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역사를 잇는다는 엄청난 사명을 띠고 만든 것도 아니고. (웃음)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오늘날엔 워낙 드물다 보니까 접근이 어렵다. 그래도 최근 영상자료원에서 활발히 프로그래밍 하고, 영화제 회고전를 통해서 소개되기도 하니까 어쩌면 다행이다. 지금보다 이런 상황이 더 나빠지기야 하겠나.
예전 영화들에 대한 존경만이 담겨있는 영화가 아니란 말은 애증처럼 들린다. 결국 <다찌마와 리>엔 자신의 소스가 된 고전에 대한 조롱 섞인 위트가 포함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조롱의 태도는 B급 영화를 즐기는 방식과도 상통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지금 현대 관객들에겐.
사실 그것이 본래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유희였던 것과 달리 오늘날엔 일부의 특별한 취향이 되어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다찌마와 리>도 실상 매니악한 범주의 영화에 더 근접해 보인다.
지금 난 과연 순수한 형태의 매니아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모두가 다 인터넷 뒤로 숨어버린 것 같고. 만약 이 영화가 한 10년 전에 나왔다면 B무비 말고 컬트란 용어를 쉽게 갖다 붙이기 쉬웠을 거다. 근데 컬트는 장르의 개념이 아니라 현상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순수하고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끊임없이 재관람하고 그런 행위 자체가 독특한 하위문화를 형성한 뒤, 그것이 주류문화에까지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들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심지어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A와 B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됐지. 산업구조자체가 A와 B를 용납할 수 있는 산업구조가 아니다. 모두가 그냥 메인 게임을 뛰어야 되고,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시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B무비를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예전에 비디오 시장이 있을 때는 진짜 그런 게 있었지. 하지만 소수의 취향만을 노리고 가는 건 이제 너무나 무모한 시도다. 물론 내가 <다찌마와 리>가 온 국민이 좋아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 명백하다. (웃음) 당연히 취향을 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만 한국인이 더 많이 즐길 수 있는 강점이 확실히 있다고 봤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 영웅, 그리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무의식 중에 지닌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주류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패턴들, 이런 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에 분명 소위 매니아라고 지칭되는 소수집단보단 훨씬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해서 영화를 만들 때마다 어떤 감독과 비교되곤 했다.
매번 그랬지.
종종 그에 대한 반박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상투적인 표현들과 비교가 좀 지겨웠다. 물론 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인 만큼 어떤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다만 영화에 대한 오해가 생길 때, 그런 지겨움이 가중된다. 얘는 그런 쪽이야, 라는 판단으로 접근해서 영화를 완전히 다르게 파악해버린다. 심지어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조차도 그럴 땐 이건 좀 어리석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매 영화마다 반응이 갈리는 것 같더라.
팬이라기 보단 일종의 지지층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그 지지층이란 것도 재미있는 거다. 사람들이 내가 비슷한 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영화 사이의 간극이 크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피도 눈물도 없이>가 비슷한 거 같지만 장르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아라한>과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와 <짝패>, <짝패>와 <다찌마와 리>. 서로 많이 떨어진 영화 아닌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착각한다. 게다가 그 영화마다 지지하는 층이 다르다. 내가 만든 영화 중에 <아라한>을 제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만 제외한 나머지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난 류승완에 대한 팬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관심을 가져주는 건 있겠지. 개별 영화의 지지자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영화에서 장르영화의 형태를 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당신의 영화를 장르영화의 포맷을 규정하고 싶은 욕구들도 때론 강한 탓일 수도 있다.
그게 편하니까 그렇겠지.
아까 언급한 것처럼 어떤 외국 감독들과 종종 비교되는 것도 국내에서 장르영화감독으로서 선례를 보여준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외국에서 비교군이 될만한 대상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에서 장르영화라는 게 어느 정도 정착기에 접어들고 있지 않나? 명백하게 한국형 공포영화의 형식이 존재하고, 한국형 범죄 영화들이나 필름 누아르, 활극 액션영화, 여러 범주로 한국화된 영화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심지어 올 여름에 웨스턴까지 나온 판에 한국에서 장르는 이제 일상적이다. 이전에 멜로드라마는 워낙 강했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오히려 특별한 거 같진 않다. 동세대 감독들이 다들 장르의 자장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만든 6편의 영화들은 액션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지만 각각 장르적 분자들이 다른 영화다. 범죄스릴러나 느와르, 활극, 등 저마다의 추임새는 확실히 구분돼야 마땅하다. 다만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들이 어디선가 봤다 싶은 흡사한 이미지처럼 느껴지는 게 장르적 착시를 부르는 게 아닐까. 사실 그건 독창성의 문제가 아니라 클리셰의 영역이다. 그런 이미지를 희귀하게 인식시키는 희소성이 당신을 특수한 영역으로 구별 짓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도 내 영화에서 액션으로 펼쳐내는 장면이 눈에 띄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 액션을 둘러싼 방식에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짝패>에서 마지막 세트의 미장센 때문에 <킬빌>과의 비교가 굉장히 많았다. 영화의 내용이나 전체적인 형식에 담긴 모든 것들이 굉장히 동떨어져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시감을 갖게 되는 거다. 물론 그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다. 내 의도와 다르지만 그렇게 자꾸 받아들여진다면 나조차도 뭔가 오해 받을 짓을 한 것일 테니까.
<다찌마와 리>의 드라마는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는다. 내러티브가 아니라 씬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난 이 영화의 드라마가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구성과 구조가 다른 지점인데도 그걸 착각한다. 이를테면 <다찌마와 리>엔 어떤 목적을 가진 주인공이 있다. 임무를 수여 받아서 어디로 떠났지만 거기서 기억을 잃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가 다시 기억을 되찾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래서 원래의 임무를 다시 수행하다 보니 앞서 깔아놨던 사건들이 뒤에서 함께 작용하면서 앞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 맞부딪히게 된다. 그러니까 사실 이영화가 내가 만든 영화 중 그런 복선 구조에 가장 충실한 영화다. 좀 덧붙이자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유의점은 말투를 쫓다가 말뜻을 놓치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는 거다. 이 게임에서 지는 거지. 이 영화에서 대사들의 스타일은 쉽게 얘기해서 사투리라고 보면 된다. 이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말투가 그냥 이런 거다. 이 게임의 룰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론 이야기에 집중해야 극장을 나오면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올 수 있는 거다. 거기에 실패하면 간장게장 집에 가서 간장에 밥만 비벼먹고 게의 속살 맛을 놓치고 나오는 거다.
하지만 이야기에만 집중하기엔 그것을 방해하는 유혹이 많다. 장치들이 좀 현란하다고 할까.
과잉된 이미지로 이뤄졌으니까 그런 것에 헷갈리다 보면 길 잃어버리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거지. (웃음) 깔려있는 카드도 봐야 되고, 이 골목의 구조도 봐야 되고, 언뜻언뜻 나타나는 엉뚱한 존재들에게도 신경 써야 하고, 그렇게 노닥거리다 보면 자기가 오던 길을 잃어버리는 거지. 나도 몰랐는데 반응을 보니까 양념 맛이 너무 세서 사람들이 그 맛에 넘어가는 거 같다. 사실 그 모든 상황은 얽히고 얽힌 관계를 읽으면서 진행돼야 하는 건데 사람들은 표면 위로 흘러가는 것들을 쫓아가다가 딴 데로 가버리는 거다. 이 영화가 좀 정신 놓은 영화 같지만 사실 관객들은 빡세게 봐야 하는 영화다. 정신 바짝 차려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인터넷 버전인 <다찌마와 LEE>보단 매뉴얼이 복잡해진 거 같다.
난 이 영화의 오리지널 역할을 하는 인터넷 버전도 있었으니까 관객들이 지금까지 내가 만든 그 어떤 영화들보다 더 준비된 상태에서 극장에 올 거라 생각했다. 이럴 땐 기대치가 너무나 명확한 관객들이 너무 위험하다. 각자 머릿속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들을 보려 오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조금만 달라도 거부감을 느끼게 되니까. 그 영화가 원래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것인데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이 영화가 틀렸다고, 나쁜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다찌마와 LEE>가 <다찌마와 리>의 원류임은 확실하지만 그 원래의 소스만으로 이 영화를 채워내기란 무리이기도 하다. 그 첨가된 새로운 소스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이런 식의 센 유머와 설정만으로 3~40분 이상을 끌고 가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한편의 영화 안에서 장르를 이동시키면서 세 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느껴지게끔 하는 전략을 택한 거다. 사실 만주 장면에서 희한한 음악을 깔거나 썰렁하게 갔으면 그 장면의 대사들이 여전히 웃긴 대사들이 됐을 거다. 그런데 진지한 음악을 깐 이유는 그냥 앞에서 봤던 것과 이건 아예 다른 거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이상적인 관객은 능동적인 관객들이다. 팔짱 끼고 앉아서 어디 한번 웃겨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 영화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거다. 류승완이 무릎팍도사에 나왔는데 쟤 좀 웃길 거 같다더라, 혹은 자기가 영화 좀 봤으니까 류승완 영화도 내가 한번 봐주지, 이러면 100% 실패다. 그냥 이 영화의 텍스처(texture)만을 보고 들어와서 메인 타이틀 시퀀스가 뜨기 전까지 게임 설명 안내를 숙지하고 타이틀이 뜨면 그 타이틀을 좀 즐긴 다음에 본편에 들어와서 좀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면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수수한 미장센들이나 ‘설마’와 같은 말장난들을 하나하나씩 보고 즐길 때, 그리고 그게 뒤에서 하나하나씩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볼 때, 관객들이 이 영화를 이기는 거다.
아이템을 수집하듯 봐야 한다는 말 같다.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
장철의 <독비도>나 <서극의 칼>, 그리고 주성치 영화를 비롯한 몇몇 영화들의 특정 장면이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차용한 장면들도 눈에 띤다. 아무래도 그런 장면들을 선별하고 배열하는 과정도 중요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일단 ‘007’의 패턴 안에서 생각했다. 그건 옛날 한국에서 만들어졌던 일종의 첩보영화들이 기본적으로 007이 되고자 하는 전원일기 팀의 욕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사나 행동들은 기본적으로 예전 한국영화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지만 그런 스파이 영화들을 참조했다. 부분적인 액션 장면들은 당신이 언급한 영화를 비롯한 어떤 다른 영화들의 영향이 있었고. 다만 더 넣고 싶지만 넣을 수 없었다거나 이런 건 특별히 없었다. 사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갔던 거니까.
사실 ‘다찌마와 리’처럼 호환이 수월한 캐릭터도 없다. 이 작품이 그걸 증명하는 셈이고.
난 그래서 이렇게 위험한 캐릭터도 없는 거 같다. 대표적으로 이런 캐릭터 시리즈가 실패한 케이스가 ‘어니스트’ 시리즈다. 뭔가가 더 재미있는 게 나올 거 같았는데 점점 이상해졌으니까.
2000년도에 인터넷 버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당시에 그걸 극장판으로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그 땐 다른 영화들이 더 당겼으니까. 예전에 무비스트에서 했던 장문의 인터뷰에 실린 적도 있지만 사실 <다찌마와 리>는 다른 영화를 준비하는데 중간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바람에 갑자기 시간이 붕 떠서 가게 된 거다. 사실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뭔가를 해야 하니까, 지금 당장 시나리오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작년 추석 연휴 때 이거나 한번 써볼까 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연휴 3일 동안 초고를 다 썼다. 그리고 사무실 나와서 돌려보니까 사람들이 낄낄대고 보길래 이거다 싶었지. 그래서 숟가락 빨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 이걸 하자, 이렇게 된 거였다. 먹고 살려고 찍은 거지. (웃음)
인터넷 버전을 찍게 됐을 때처럼 돌발적인 기획이란 점에서 맥락이 비슷하다.
그렇지. 2000년도에도 사실은 느닷없이 제안 받고 맘대로 알아서 해보라고 했으니까.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만주 씬과 <다찌마와 리>의 만주 씬은 안드로메다급의 간격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비교하고 싶어진다. (웃음)
그러게. 사람들이 다들 그러더라.
<놈놈놈>은 만주에 직접 가서 찍었지만 <다찌마와 리>는,
영종도에서 찍었지. 만주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지나치는 땅에서. (웃음)
솔직히 그냥 만주라고 잡아뗐으면 영종도인지 몰랐을 거다.
우리가 찍은 장소는 사실 지평선이 뻥하고 뚫린 곳이 아니었다. 좀 넓은 공간이긴 했지만 나중에 촬영하고 나서 걸리는 장면들을 CG로 닦아내고 지운 거다. 사실 만들어진 이미지다.
만주에 가지 않고서도 만주를 찍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건가?
갈 돈이 없으니까 못 간 거지. 거기에 무슨 자신감이 있겠어. (웃음) 지금 <놈놈놈>이후에 얘기되고 있는 만주 웨스턴 영화들을 보면 과거 개발되기 전의 한강 둔치를 만주라고 찍어놓은 노골적인 장면들과 비슷한 거다. 그러니까 옛날엔 그런 것이 영화와 관객과의 일종의 규칙이었던 거 같다. 만든 사람들이 그냥 이런 거라 하면 관객은 그냥 알았다고 끄덕이는 암묵적인 동의지. 가짜 외국어의 사용도 사실 그런 거고.
자막처리는 정말 파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설정도 스스로 착상한 건가?
그렇다. 난 요즘 현대미디어에서 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과거와 다른 형태로 변질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래도 되나 싶지만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미 영상매체에서 활자를 하나의 미장센으로 즐기고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단순한 활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 자체의 디자인을 즐기기 시작한 거다.
최근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보여지는 자막이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맞다! 사실 최근 버라이어티 쇼에서 활자와 이펙트 사운드(effect sound)를 걷어내면 되게 썰렁한 장면들이 많지만 활자가 개입함으로써 뭔가가 더 강렬하게 증폭되는 면이 있다. <다찌마와 리>를 만들 때 내부에서 그 자막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었는데 난 자신 있었다. 현대 관객들에게 활자는 그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TV나 UCC에서는 가능한 걸 극장에서 못할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만강, 압록강, 흑롱강 씬에 사용하는 활자의 서체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던가, 다운로드 족들이 사용하는 자막들, 그런 건 남들이 안 하는 것이기도 했고. 물론 내가 <주먹이 운다>를 하면서 이런 걸 할 순 없는 거니까.
사실 압록강, 두만강, 흑룡강 씬이 <다찌마와 리>의 농담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면 만주 씬은 그로부터 극단적으로 떨어진 정반대의 지점이 아닐까 싶다.
만주와 오페라 극장 씬은 좀 정색하고 찍었다. 이 영화에서 내가 무게중심을 둔 고민은 농담과 진담의 수위 조절,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뻥도 한두 번 들어야 재미있지, 시종일관 계속 듣고 있으면 질리지 않나. 어느 순간 정색하면 오히려 집중하게 되고, 그러다 또 풀어지면 그대로 즐기면 되고,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건 스스로에게 질문은 계속 던졌다. 그런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영화 만드는 내내 생각했다.
만주 씬의 스펙터클한 액션 씬은 다소 가볍던 영화에 일순간 비범함을 부여한다.
아무리 가벼운 영화라고 한없이 가벼워지게 하기엔 이 영화를 통해서 움직이는 자본의 크기를 무시할 순 없다. 마음이나 태도는 가볍게 먹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자본을 운영하면서 굴러가는 현장 자체를 놀이터로 만들 수는 없는 거다. 그건 내 일이니까 내 일 자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건 철부지 같은 짓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영화 감독으로서 나의 직업윤리랄까.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아마 그런 지점 같다. 핵심을 가져가면서 사람들이 영화를 체험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이 만드는 사람에게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감정적인 배우의 어떤 연기일 수도 있고, 화면의 스펙터클일 수도 있지만 TV쇼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의 동영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 그러니까 스크린에서만 봐야 할 어떤 것, 그게 중요했다.
<다찌마와 리>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영화들은 일종의 데이터 수집과도 비슷해 보인다.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게 어떤 의미지?
매 영화마다 장르적 노선을 달리하면서 자신의 간접체험을 직접체험으로 바꿔서 수집한다 할까.
학습의 차원에서? 그런 바가 없진 않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스스로에게 쌓이는 것도 많은 것이 사실이고. 전작의 성공이나 실패, 그건 부분적인 것부터 영화 전체를 포함한 경우도 있고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내 다음 작업에 영향을 준다. 성취한 것들은 성취한 것이니까 그걸 다시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내가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혹은 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던 것을 치열하게 복기하고 그 다음작업에서 그것을 넘어서려는 성향이 있다. 지금까지 계속 그런 패턴의 연장이었다. 매번 영화마다 성취한 지점도 있지만 놓친 지점도 있고,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다.
<다찌마와 리>는 어쩌면 당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쉬어가는 페이지나 일종의 중간결산이 아닐까?
전과에 있는 만화 페이지처럼? (웃음)
한편으론 화가가 아니라 목수가 되고자 한다는 출사표처럼 보인다.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나란 사람은 예술가로서보단 기술자로서 영화에 접근할 때 훨씬 더 능동적인 태도가 생기는 거 같더라. 사실 나란 사람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란 생각을 하니까 내 영화에서 숭고한 예술적 가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만들려는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어떤 세계 안에 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고, 그 사람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방식이 어떤 방식일 것인가의 문제다. 이런 고민으로 대본을 쓰고, 배우를 만나고, 영화의 쇼트를 계산해놓고, 그런 자체가 기능적인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그렇게 기능적으로 만들었던 어떤 영화가 아주 좋은 손재주를 보여준다면 그것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찌마와 리>에서 썰매 씬 같은 경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경험치도 없고, 쉽게 제어되는 상황도 아니니까. 임원희 씨 말로는 스노모빌에 끌려 내려간 적도 있다고 하던데.
스노모빌로 끌고 가기도 하고, 보트에 태워서 밀어 넣기도 하고, 사람 따로 모빌 따로 달리기도 하고. 우리도 처음 찍어봤고, 어느 누구도 해본 적이 없어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뭐, 완전 난리통이었다. 사실 국내촬영현장에서 운용되는 장비들 중 한국형으로 개발된 것들이 많다. 야매라고 할 수도 있고. (웃음)
뭔가 능동적인 시도들이 발생한 현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경험적 수치를 얻은 바도 있었을 것 같고.
역설적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규모가 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일단 내가 전체를 장악한 상태에서 세컨 유닛(second unit)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결국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유닛으로 어떻게 현장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습이 된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의 후시 녹음이 독특해 보이지만 지금 헐리웃의 주류영화 대부분인 90%가 후시녹음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절박한 환경을 돌파하면서 학습한 것들이 많다. 영화를 만드는 기능적인 측면이랄까.
어쩌다 보니 정두홍 감독과 함께 한국액션의 프랜차이즈가 됐다. 그 상황이 때론 정두홍 감독과 류승완 감독을 한국액션의 마지노선처럼 보이게 만든다. 뭔가 내부적으로 느끼는 희소성의 위기를 두 사람의 이미지로 극복하려고 한다는 인상도 든다.
난 내가 액션영화 감독이란 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니까 좋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내게 뭔가 막 짊어 지우려고 하는 게 있다. 아니,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싶은 거지. (웃음) 솔직히 나와 정두홍 감독이 함께 작업한 작품은 별로 없다. 난 그게 그냥 붙이기 쉬운 방식이고, 말하기 쉬운 방식이니까 그렇게 끌고 가는 면이 있지 않나 싶다. 유하 감독과 신재명을 붙여서 뭔가 하는 건 이상하니까, 더 따지자면 정두홍은 김영빈 감독과도 묶였었고 장현수 감독과도 묶였었고, 오히려 김성수 감독과 묶였을 때 더 빛났다. 심지어 김지운 감독과 <반칙왕>으로 묶였었다. 그런데 나와 자꾸 묶이는 건 어쨌건 액션이 강하게 등장하는 한 감독의 세편의 영화에서 관련된 무술감독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 이미지의 결정적 요인은 <짝패>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컸겠지. 본질적으로 뭐가 어떤가를 떠나서 그냥 얘네들이 계속 일 저지르고 다니는 거 같으니까. (웃음)
젊은 액션배우를 발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내가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애들 키우는 것도 바빠죽겠는데 내가 무슨 배우까지 키우겠어. (웃음) 더 이상 다른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기도 하고. 다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다. 예를 들어서 <스페어>에 출연한 임준일이라는 친구는 굉장한 액션 배우다. <짝패>에서도 나왔지만 뛰어난 기량도 갖고 있고, 연기도 잘할 수 있는 친구다. 다만 내가 부담되는 건 내 영화 찍기도 바빠죽겠는데 그런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방금 말했던 것처럼 정두홍, 류승완이 액션영화계의 뭐다, 그런 걸 인정하는 순간 그런 의무감이 막 요구된단 말이다.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건 난 엑션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까지 액션 장면이 많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앞으로 액션이 완전히 빠진 영화가 떠오른다면 그걸 만드는 게 내 임무다. 물론 지금까지의 행위를 보자면 난 액션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이런 걸 해줘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무를 짊어질 이유는 없지 않나. (웃음) 물론 좋은 액션배우가 있다면 좋겠지. 지금 정두홍 감독과 주축이 돼서 새로운 액션배우를 뽑은 ‘라이징 액션스타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런 배우들이 존재한다면 언제든 내 영화에 기용해서 더 빛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고, 그런 배우가 내 영화를 빛나게 해준다면 역시 좋은 거니까. 근데 그게 마치 의무사항인 것처럼 오해가 형성되면 부담이 된다.
사실 액션을 비롯한 장르영화 애호가로 많이 알려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예전엔 장르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지금은 장르에 별로 흥미가 없어졌다. 다만 어떤 특정장르들이 몸에 붙는 감은 있지.
<주먹이 운다>의 말미에서 보여준 권투 장면은 고의적으로 시선에 거리를 둠으로써 외부에서 감정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움직임을 통해 내부적인 감정을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로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할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당신의 영화에서 액션이 어떤 이미지적 목적만을 지닌 것은 아닌 것 같다.
피로감이라는 부분은 굉장히 정확한 표현이다. 액션 장면을 구축할 때, 그 영화를 지배해야 될 정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지금 말한 장면에서는 인물의 어떤 피로감이 중요했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분노의 폭발이 중요하다거나 혹은 분노한 자가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서 겪는 애처로움이 중요하거나, 아니면 <다찌마와 리>처럼 통쾌함과 박력이 중요하다던가, 장면들을 구축할 때 매번 그 장면을 지배하는 정서를 생각하게 된다. 전해들은 말인데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 영화관계자가 홍콩에서 견자단을 만났다가 <주먹이 운다> 얘길 했는데 견자단이 권투장면을 그렇게 찍는 건 처음 봤다는 거다. 그건 잘 찍었다, 못 찍었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처음 봤다는 거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장면을 보여주겠다 했다면 교차편집의 패턴으로 진행했다던지, 좀 더 빠르게 편집해서 카메라를 타이트하게 들이밀고, 머리에 물 좀 묻혀서 주먹이 강타할 때 물방울 좀 흩날리고 그런 테크닉들을 많이 구사했겠지. 그런데 전혀 멋있지도 않게 헛방질이나 하고, 그렇게 인물들의 지쳐가는 느낌이 중요했다. 그 영화와 그 장면을 지배하는 정서가 그래야 할 부분이었으니까.
몸과 몸이 부딪힌 후에 발생하는 극도의 피로감이 당신의 영화적 정서와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건 영화마다 다르다. <다찌마와 리>같은 경우, 내가 다찌마와 리가 피로한 모습은 전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웃음) 어떤 세계 속에 어떤 인물들이냐, 어떤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느냐, 그걸 지배하는 정서가 어떠해야 되느냐, 그 영화가 요구하는 게 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끝까지 가는 것에 대한 애호는 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점도 있고. 그러니까 내 필모그래피에서 그런 장면들이 많은 이유가 그런 까닭이겠지. 하지만 ‘핑크팬더’시리즈를 만들면서 그렇게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웃음)
만약 2000년도의 <다찌마와 LEE>를 접하지 못하고 다른 영화를 통해 당신의 팬이 됐다고 말하는 관객이라면 <다찌마와 리>를 통해 당신에게 엄청난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비스트에서 보니까 승완이형은 어쩌고 하면서, 이렇게(엄지손가락을 내리는 시늉으로) 돼 있던데. (웃음) 보는 사람들 생각이니까, 그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순 없지 않나. 만드는 사람과 다른 입장일 순 있겠지.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엔 내가 이젠 너무 나이 들었다. 늙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진심이 전달되는 게 아니란 걸 이젠 알아버린 거다. 오해나 편견에 대해선 내가 만든 영화로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게 가장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그렇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는 이야긴가?
오해 받고 그러면 욱하는 건 있었지. 그래서 당신 잘못 본거야, 이러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다르게 볼 수 있지. 예를 들어서 어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이 한 대사를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거짓말이라 생각하고 난 진실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건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거다.
어떻게 보면 <다찌마와 리>는 겉으로 헐렁해 보이지만 정교한 계산에 따라 조작된 영화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애드립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의 장문의 문어체 대사들이 정해진 합에 맞아떨어져야 의도된 유희가 발생하니까. 결국 그 계산된 재미를 즐기지 못한 관객은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은 이 영화는 온통 진짜와 가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한 대로 정교함의 측면으로 접근하자면 되게 반대의 입장으로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교함을 가장한 헐렁함이 곳곳에 배치돼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좀 허세부린다는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진지한 체하거나 정교한 척하거나 허술한 척하는 영화인 거 같다. 이것이 진짜로 정교하거나 허술한 것이라기 보단 정교한 척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허술한 척하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게 허세인 거다. 호방하다, 잘 생겼다, 온갖 것들이 다 허세니까. 결국 주인공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사람 살려, 라고 외친다. 허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대략 난감으로 끝나는 거지. 이 영화의 재미는 그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과연 자기 속에 있는 진심을 얼마나 밖으로 표출하면서 살아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그러니까 영화는 특히 더 그렇고, 또 영화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말들은 더 그렇고.
요즘은 점점 유희적인 형태의 감각적 자극을 요구하는 관객이 많아지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 규모의 스케일에 열광하는 관객들이나 버라이어티의 자막들이 주는 현란한 효과들이 통용되는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소통하길 바라는 감독의 입장이란 실로 고단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가 점점 정보가 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 끝나자마자, 심지어 영화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컷의 대사를 하고 있는데 문쪽 커튼이 촥 열리면서 직원이 나오고 나가는 문 이쪽이라고 자세를 잡는 순간 불이 탁 켜지면서 관객을 막 내보내지 않나. 사실 지금 극장들이 안 그래도 된다. 예전 단관극장 시절엔 다음상영들이 많이 막힐 수 있고 영사실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랬다지만 지금은 영화와 영화 사이 텀도 기니까 관객들을 내쫓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쫓기듯이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고 즐기는 태도 자체가 거기서 그냥 시간을 때우는 거다. 엔딩 크레딧이 흘러가는 시간이 소중한 건 한편의 영화를 본 뒤 그 영화를 상징했던 음악들을 다시 한번 들으면서 그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한번 정리함으로써 자기 안에 영화가 쌓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나라의 영화제를 다니면서 느낀 건데 대한민국 극장이 세계에서 제일 빨리 극장에서 불을 켜는 것 같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의 문화가 그럴 정도인데 다운받아서 보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 진심을 얘기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 됐다. 하지만 입은 열려있으니 말은 해야 되겠고. (웃음)
그렇다면 대중영화라고 하는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이 다 대중영화인 거지. <우린 액션배우다>도 대중영화고, <놈놈놈>도 대중영화고. 만드는 사람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에. 물론 크기의 차이는 있다.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도 있고.
우리나라 관객들의 성향이 많이 변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미 변한 지는 오래됐다. 난 사실 수년 동안 급격한 패턴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니까 영상매체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뀐 거 같다. 예를 들면 최근 재개봉 된 <영웅본색>을 20대 여성들이 박장대소하면서 본다더라. 성냥개비를 무는 순간 막 박수치고 웃고. 그 사람들은 우리가 본 <영웅본색>과 다른 걸 보는 거지. 몇 사람이 웃는 게 아니라 박장대소를 한다더라. 강호의 도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 거지. (웃음)
사실 <다찌마와 리>가 차용한 영화들도 그 당시엔 비범한 자태를 뽐내던 영화들이다. 그것들이 지금 와서 보니 꽤나 우스운 영화가 된 거랄까. 그런데 당신의 영화도 실상 10년 뒤에 어떤 식으로 비춰지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냥 이런 영화가 있는데 사람들이 괜찮은 거 같다고 보면 성공한 게 아닐까? 사실 요새 남 생각 별로 안 한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제일 중요하지.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엔 내 일이 너무 중요하다. 할 일도 너무 많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엔 행동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다. 절박한 것들도 많고.
막연한 미래를 생각할 만큼 현실에서 여유가 없다는 말인가?
막연한 공상하고 있을 시간에 차기작 대본 한 줄이라도 더 치열하게 쓰는 게 낫다. 그러니까 난 지금 현재의 순간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다음에 만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을 쓰는 게 중요하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도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완성했으니까 이제 다른 살길을 찾아가는 거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구입한 8mm카메라기 결국 오늘날의 계기가 된 셈인데 그 카메라는 아직 갖고 있나?
있다. 집에 있는데 이젠 안 돌아가지.
어쩌면 그 카메라에서부터 류승완이라는 역사가 시작된 거라 봐도 될 것 같다. 어쨌든 당신도 언젠가 하나의 전통으로 남게 될 텐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나?
예전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한다.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에 내가 지금 준비하는 영화 대본 한 줄이라도 열심히 쓰고, 내가 만들 영화를 생각한다. 어차피 사람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은 좀 사치스러운 생각 같다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한 태도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야차>는 어떻게 된 건가? 정보를 검색해보면 간단한 줄거리와 천호진 씨에 대한 캐스팅 정보만이 확인되던데.
수년 째 그렇다. (웃음) 지금으로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9월말이 돼야 모든 것이 결정 난다. 지금의 시장 규모에서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영화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기록적인 어마어마한 예산을 쓸 건 아니지만…… 하여간 지금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건 사실 조심스럽다.
차기작은 <야차>가 아닐 수도 있겠다.
차기작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작년에 <야차>사태를 겪고 나니, (웃음) 되게 조심스럽다.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선에서 모든 것을 공개하고 싶다 이전에 내가 뱉었던 말들이 나한테 돌아오게 되니까 신중해진다. 책임질 수 있는 만큼 발언을 해야겠구나, 정확하게 발언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예전엔 쉽게 얘기했었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다만 뭔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비워낸 것을 서서히 다시 채워가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일단 어떤 구체적인 작품이나 장르가 아니더라도 뭔가 주시하고 있는 것이 있나?
사람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내 취향이 좀 바뀐 거 같다. 그래서 작업 방식이나 접근 방식도 바뀐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세계에서 움직이는 이야기인가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그 관계 안에서 어떤 드라마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인물, 인물과 인물의 관계,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발생된 사건,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그에 관해 몇 가지 메모를 해놓은 것이 있다. 사실 내 조감독을 오랫동안 맡았고 작년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액션 스릴러 부분 대상을 받았던 친구가 이번에 데뷔작을 만드는데 그 대본을 내가 써줬다. 그것이 이제 곧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내가 작가로서 역할을 해주는 것이 지금 나에게 닥친 것 중 제일 시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고만 넘겨놓고선 알아서 쓰라고 했는데, (웃음)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중요할 거 같다.
혹시 석환과 상환이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순 없을까?
배우로서는 이미 은퇴했다. (웃음) 난 배우 못하겠어, 너무 힘들어. (웃음)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