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인간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운명을 점쳤다. 그리고 오늘날의 인류는 매일 같이 뜨고 지며 차오름과 이지러짐을 반복하는 달에 수많은 사연을 담아왔다. 오늘도 달이 차오른다. 그러니 가자. 우주에 매혹 당한 영화 속으로.
<스타워즈>
1977년, 모든 것이 변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으로 서부극 일색의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우주시대를 열었다. 사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 시리즈는 루카스의 취향이 총 집약됐다 말해도 좋을 ‘스페이스 오페라’다. 대학시절부터 우주전쟁영화를 꿈꾸던 루카스가 집필한 대하드라마 초안 중 하나의 에피소드가 영화화된 뒤, 대단한 흥행을 거둠으로써 <스타워즈> 시리즈의 역사는 시작됐다. 광선검을 휘두르는 ‘제다이’들은 사무라이 영화의 영향력을, 우주에서 전투를 벌이는 ‘X-윙’의 곡예는 전쟁영화의 공중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셰익스피어를 연상시키는 비극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관계도 분명 흥미로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디테일한 미니어처를 비롯해서 자동으로 작동되는 모형 로봇을 제작하고 다양한 크리처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 완성된 대부분의 특수효과는 이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동시에 새로운 영화적 미래를 제시한 ‘새로운 희망’ 그 자체였다.
<아폴로13>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디디기 직전까지 전세계의 인류는 흑백TV 앞에 모여들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가 달에 남긴 발자국은 인류에게 새로운 열망을 부여했다. 그리고 다음해, 역사적인 두 번째 발걸음을 꿈꾸며 우주로 날아간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은 우주의 미아가 될 위기에 처했다. 미연방항공우주국 나사의 역사상 최악의 실수로 꼽히는 우주사고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아폴로 13>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나흘 간 무중력과의 사투를 펼치는 우주비행사 3인의 ‘성공적인 실패’를 다룬 SF휴먼드라마다. 자신들이 꿈꾸던 달과의 조우를 앞두고 설레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던 세 우주비행사는 불의의 일격과도 같은 기체 고장으로 인해 원대한 꿈을 뒤로 하고 귀환을 위한 생존의 레이스를 펼친다. 수동으로 기체를 조종하며 대기권 진입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 세 인물이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인물들의 노력과 헌신은 인간의 집념과 의지가 한데 모여 이루는 감동의 화음과도 같다.
<콘택트>
소녀는 어려서부터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자신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존재할 누군가와의 교신을 바라며 단파방송기 앞을 떠날 줄 몰랐던 소녀는 자신이 따르던 홀아버지마저 여읜 뒤에도 단파 통신을 멈추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고 결국 천체물리학자로 성장한다.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집필한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는 과학적 진리가 절대적인 것이라 간주하는 여성 과학자 앨리(조디 포스터)의 신비한 체험을 통해 그 너머의 가치를 되묻는다. 자신이 추구하던 과학적 명제 너머의 무언가를 목격하지만 결국 자신의 체험을 증명해내지 못하는 앨리는 곧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의 비좁은 가능성을 깨닫는다. 이는 보이는 것만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세계의 신비를 증명하는 영화적 설득과도 같다. “단지 이 우주에 인류만 존재한다면 대단한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 <콘택트>는 자신이 머문 이 세계의 신비를 가늠하지도 못한 채 한 세기 안에서 소멸하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영험한 성찰을 부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갑자기 지금 우리가 두 발을 붙이고 사는 지구가 소멸한다면? 더글라스 애덤스의 장편 SF소설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이 뜬금없는 물음이 과감히 실현되는 이상한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허무맹랑한 우주기행기다. 미래 세계를 건축하겠다는 실현성의 야심을 품거나 비범한 예언적 의지로 무장한 대부분의 SF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그저 우주와 외계라는 미지의 세계를 우스꽝스럽고 껄렁한 농담 따먹기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주력한다. 대단한 과학적 이론을 읊어대는 비범한 SF작품들과 달리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허풍선처럼 떠들어대는 이 작품은 설명이 불가능한 상상력을 마음껏 나열하고 확장해나가는 낙관적 태도를 통해 유쾌한 매력을 자랑한다. ‘로키산맥을 칠하는 페인트공과 대서양에 물을 채워 넣은 인부들이 없었으면 지구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랑스러운 상상력으로 도배된 이 작품은 마치 우주로 나가는 산책처럼 가볍고 편안한 웃음의 유영으로 당신을 인도한다.
<더 문>
화석에너지의 고갈로 위기에 직면한 가까운 미래의 인류는 달에서 채취된 청정에너지 ‘헬륨3’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새로운 인류의 희망은 곧 한 남자에게 거대한 고독을 안겼다. 달에서 자원을 채취해 지구로 발송하는 업무를 홀로 해내는 샘 벨(샘 록웰)은 광활한 우주를 메워버리고도 남을 만큼의 고독을 품은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밀어낸다. <더 문>은 드넓은 우주의 한 점과 같은 달에서, 역시 한 점처럼 작은 존재에 불과한 한 남자의 광활한 고독을 담은 모노드라마다. 거대한 우주의 풍광이 목격되는 달 위에 놓인 남자의 모습만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고독이 체감되는 <더 문>은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들어서는 스토리를 통해 가스와 먼지처럼 불분명한 호기심을 단단하게 다진다. 적막한 달 위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을 역설적인 서스펜스로 달구다가 끝내 진한 페이소스로 띄워 보낸다. 데이빗 보위의 아들인 신예 감독 던칸 존스의 <더 문>은 창의력이란 단어의 의미를 대변하는 좋은 예시다.
바야흐로 뱀파이어물의 바로크 시대다. 고전적인 호러 장르의 유물이나 다름없었던 뱀파이어는 지금 과도기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새롭게 줄기를 뻗어나가는 뱀파이어물의 진화가 엿보이는 다섯 편의 계보를 소개한다.
<박쥐성의 무도회>
용감한 뱀파이어 킬러 혹은 실례합니다만, 당신의 이빨이 내 목을 물었어요(The Fearless Vampire Killers Or Pardon Me, But Your Teeth Are In My Neck). 고전적이면서도 음산한 한글 제목과 달리 긴 영문 원제는 모종의 위트를 품고 있다. 거장이라 불리는 로만 폴란스키가 연출과 출연을 겸한 1967년작 <박쥐성의 무도회>는 그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이례적이란 수사로 치장되는 작품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며 과감한 폭력 묘사조차 불사하는 그의 극단적인 연출 방식 안에서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유머를 만날 수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B급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 뱀파이어 영화는 중후한 서스펜스 대신 백치스러운 소동극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이 영화는 비극적인 후일담을 낳았다. 여주인공 역의 샤론 테이트는 이 영화로 만난 로만 폴란스키와 결혼한 뒤 임신 8개월에 이른 당시 살인마 찰스 맨슨이 이끄는 광신도 집단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덕분에 이 영화에 박힌 유머들은 역설적인 비극으로 맺혔다.
<노스페라투>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나우르의 1922년작 <노스페라투>는 흡혈귀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를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독일 표현주의 고딕영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성적인 메타포를 서스펜스와 연결하며 뱀파이어 영화의 섹스심벌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 작품이자 뱀파이어라는 캐릭터의 묘사에 있어서 어떤 원형의 이미지를 제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뱀파이어 영화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을 동명 그대로 리메이크한 1979년작 베르너 헤어조크의 <노스페라투>는 원작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는 동시에 발전적 성과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원작에 비해 보다 간결해진 캐릭터 관계를 통해 서사적인 몰입도를 높인 리메이크작은 시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원작의 분위기를 보다 관념적인 형태의 메시지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중심 캐릭터로 등장하는 세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눈에 띄는 가운데 특히 강인한 이미지를 전하는 이자벨 아자니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드라큐라>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서 영향을 받은 후대의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 가운데 그 원작의 형태에 가장 충실하게 접근한 작품으로 꼽히는 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1992년작 <드라큐라>다. 드라큐라의 고전적인 중후함이 잘 표현된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사악한 악의 상징으로서 드라큐라를 묘사해온 뱀파이어물의 관성에서 벗어나 그 이면에 놓인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며 이를 매혹적인 대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된 의상이 시대극으로서의 사실감을 더하는 가운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트는 장르적인 위력을 더한다. 이는 관능적인 에로티시즘을 통해 강력한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멜로적인 감성을 부각시킨 코폴라의 연출적 야심과 효과적인 시너지를 이룬다. 키아누 리브스, 위노나 라이더, 안소니 홉킨스 등, 화려한 출연진만으로도 호화로운 이 작품에서 드라큐라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의 열연은 단연 돋보인다. 최초로 컴퓨터 편집을 시도한 작품으로서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작품은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앤 라이스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낡은 유물처럼 여겨지던 캐릭터를 회춘시킨, 그러니까 보다 현대적인 배경 안에서 뱀파이어라는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확신하게 만든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꽃미남 스타에서 세계 영화시장을 선도하는 큰 손으로 자란 두 배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함께 출연한 이 작품은 당대 꽃미남 스타였던 두 배우의 외모만으로도 뱀파이어에 대한 판타지를 부추긴다. 영원히 늙지 않는 불멸의 존재로서의 영원성에 대한 환상과 고독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라는 양면적 특성을 부여한 이 영화는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보다 입체적으로 치장하고 있다. 고전적인 캐릭터를 현대적인 배경에 녹여내며 악마적인 공포를 한 꺼풀 벗기고 한층 더욱 신비로운 캐릭터로서의 이미지를 덧씌우는데 성공함으로써 영화적 캐릭터로서 뱀파이어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기도 하다.
<렛 미 인>
자신의 방 안에서 칼을 꺼내든 소년은 허공을 위협한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대상이 없는 윽박 뿐이다. 어느 날처럼 홀로 집 앞의 나무를 대상으로 화를 풀던 소년은 등 뒤에서 기이한 인기척을 느낀다. 소년, 소녀를 만난다. <렛 미 인>의 원제 <Let the right one in>은 뱀파이어 소녀를 초대하기 위한 주문이다. 외로운 소년과 고립된 소녀는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밀회를 시작한다. <렛 미 인>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로맨스이자 절절하고 시린 멜로의 감성을 품은 뱀파이어 호러다. 창백하듯 투명한 스웨덴 설원은 평화와 공포가 함께 머무는 중의적 공간이다. 새하얀 눈 위로 내려앉은 햇살이 사라지면 그 위로 피가 맺힌다. <렛 미 인>은 간혹 무덤덤하게 머리를 드는 긴장감에 심박이 뛰다가도 순수한 동심이 진지하게 반짝이는,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깃든 악의적 관성을 천진난만하게 막아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비범한 재능으로 완성된, 실로 아름답고도 경악할만한 로맨스를 선사한다.
빡빡한 도시의 삶이 버겁다고요? 매일 같이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나요? 일단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하지만 당장 시간도 없고, 막상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영화라도 한 편 보세요. 그 영화가 당신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영화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대사로, 음악으로, 그리고 풍경으로, 관객의 뇌리에 서로 다른 흔적으로 깊게 각인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찰나의 풍경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리고 그 풍경들은 현실을 벗어난,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발 딛지 못했던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 꿈꾸던 당신, 떠나라. 스크린 속 그 풍경으로. 극장에서 만끽했던 환상을 당신의 현실에서 만날 차례다. 머뭇거릴 당신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좌표를 마련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비엔나 잘츠부르크
“도레미파솔라시, 도! 솔! 도!” 7음계를 이용한 ‘도레미송(Do-Re-Mi)’만으로도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을 동명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5년, 전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고전 뮤지컬은 천진난만한 동심과 애틋한 로맨스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발랄한 음표들이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관이 호화롭기 짝이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의상이나 다름없는 그 장관은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잘츠부르크에서 빌려온 풍경들이다. 볼프강 호수의 시원한 전경으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호헨잘츠부르크요새가 올려다 보이는 카피텐 광장과 잘차흐강을 건너는 모차르트 교각,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미라벨 궁전의 정원 등, 잘츠부르크의 고풍스러운 정경 곳곳을 누비며 밝은 음색을 채워 넣는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영화의 흥행 이후로 늘어난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에서 운영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 흔적들을 수집해나간다면 더 좋은 의미를 발견할지도 모를 일. 특히 마리아가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연습하던, 알프스를 병풍처럼 두른 몽크스산에 오른다면 씩씩한 걸음을 옮기며 노래하던 아이들처럼 절로 마음이 순수해질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 캐나다 알버타 로키 산맥
울창한 숲과 험한 산세 아래 양떼를 지키기 위해 야영하던 두 명의 카우보이 잭과 에니스는 어느 날, 감정의 선을 넘는다. 산속이라 시차가 커서 밤이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추운 야영지에서 모닥불로 손을 녹이고 좁은 텐트 안에서 뒤엉키듯 잠을 청하던 두 사내는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애틋한 감정이 줄기처럼 자라남을 직감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금기적인 로맨스의 증인이 되는 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캐나다 알버타의 로키 산맥이다. 사실 동명원작소설의 작가 E. 애니 프루가 쓴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고, 미국 와이오밍의 빅혼 마운틴을 모델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고 밝혔다. 제작사는 빅혼 마운틴 주변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여건상 포기한 뒤, 촬영지 선택에 난항을 겪다 비로소 알버타를 찾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험준하고도 풍요로운 로키 산맥의 풍광은 결말에 다다라 진한 여운을 남길 영화적 감수성을 깊고 너르게 채우는 원천이나 다름없다. 양떼를 몰다 설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턱에서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밤에 찾아온 산의 한기를 몰아내며 모닥불을 피운 채 따뜻한 잔에 손을 비비던 두 남자의 추억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감정적 여운으로 거듭난다. 만약 트래킹과 스키를 즐기는 이라면 그 만년설의 절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가을> 뉴욕 센트럴파크
굳이 뉴요커의 꿈을 꾸지 않았다 해도, 뉴욕의 명소들에 대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들어봤을 게다. 사실 뉴욕을 말한다는 건 식상한 일임에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건 언제나 뉴욕을 그리는 영화들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회자될 수 밖에 없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을 소재지로 둔 너무도 많은 영화 가운데서도 <뉴욕의 가을>은 제목이 직시하는 도시와 계절의 풍경을 풍만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맨하탄과 브룩클린, 퀸즈, 브롱크스, 스테이튼 아일랜드까지, 뉴욕의 전경을 부감숏으로 포착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그 이후로 뉴욕에 배어든 가을의 흔적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뉴욕의 가을>의 두 주인공 윌과 샬롯의 만남이 시작되는 센트럴파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가을의 향연 그 자체다. 세계 최대의 공원으로 꼽히는 뉴욕 맨하탄의 센트럴파크는 전세계 인종의 교차로라 해도 좋을 뉴욕의 중심에 자리한 뉴요커들의 안식처이자 쉼터이다. 삭막하고 번잡한 도시의 체증을 피해 잠시나마 안식을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센트럴파크를 거닐다 보면 운명 같은 연인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그네들 역시 센트럴파크에서 마주한 건 그저 영화 속 우연일까, 운명일까? 적어도 후자의 낭만을 부정할 이유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게 당신의 삶이 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고.
<맘마미아!> 그리스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코펠로스 섬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의 명곡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가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다. 영화 <맘마미아!>가 동명의 원작 뮤지컬보다 특별할 수 있는 건 스크린에 펼쳐진 그리스 제도의 그림 같은 풍경들 덕분이다. 촬영에 앞서 한 달 전부터 제작진은 <맘마미아!>의 무대가 될 공간을 찾기 위해 그리스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스포라데스 제도의 스키아토스 섬과 스코펠로스 섬, 다무하리 섬을 찾아냈으며 대부분의 바닷가 신을 거기서 촬영했다. 특히 스코펠로스 섬은 <맘마미아!>가 선사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경의 핵심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여백처럼 두른 채 붉은 지붕과 하얀 벽으로 이뤄진 집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스코펠로스 타운의 주택가를 비롯해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카스타니 해변에 펼쳐진 백사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봤던 그 모든 풍경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결혼식 신을 위해 100m 높이의 암벽 위에 재건한 예배당도 여전하다. 눈을 정화시키던 스크린 너머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인생의 승자라 믿어도 좋다. <맘마미아!> 속 그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