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엄태웅이 배우로 돌아왔다. 열혈형사로 분한 <특수본>이 바로 그것. 사실 엄태웅은 <1박 2일>로 전국을 돌던 와중에도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단지 그 동안 우리가 배우 엄태웅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배우 엄태웅이 돌아왔다.
“저는 원래 배우였으니까요.” 그랬다. 엄태웅은 원래 배우였다. <1박 2일>이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부활>이나 <마왕>과 같이 어둡고 무거운 톤의 드라마에서 힘있는 연기를 선사하며 ‘엄포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박 2일>의 출연과 함께 그야말로 딴사람이 됐다. 족구 시합 중에 헛발질을 하며 ‘개발’이라 놀림을 받고, 김장 중에 생선 두 마리를 뽀뽀시키며 주변에 화색을 돌게 만들며 엄태웅은 대중 곁에 친숙하게 가 닿았다. 사실 배우에게 예능 출연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캐릭터들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 출연진의 성격이나 취향을 적나라하게 벗겨내는 요즘 예능의 입담에 투신하기란 분명 꺼려지는 일일 게다. 엄태웅 역시 몇 달간 출연 요청을 고사했다. 결국 <1박 2일>은 실보다 득이 많은 선택이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강한 인상을 지닌 배우로 인식되던 엄태웅이 동네 청년과 같은 소탈한 자연인의 인상을 드러낼 때, 배우 엄태웅에 대한 인상도 새롭게 발견된다.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의 가면 아래 드러난 엄태웅의 진짜 표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매주 방송되는 <1박 2일>의 촬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엄태웅은 남은 ‘4박 5일’을 연기로 채워나갔다. 그의 9번째 영화 <특수본>(2011)은 경찰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의 형사들이 경찰 내부 비리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액션물이다. FBI 연수 중인 심리학 박사 김호룡(주원)과 짝패를 이룬 열혈형사 김성범을 연기했다.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었지만 신체의 위협은 느꼈어요.” 너스레를 떨 듯 말하지만 실제로 맨몸으로 뛰고 구르는 스턴트 액션까지 소화해내는 엄태웅은 현장에서 ‘엄액션’으로 통했다. 처음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특수본> 촬영을 병행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태웅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고자 노력했다. “일단 예능은 처음이라서 힘들었죠. 게다가 영화도 어떤 장면이 잘 안되거나 할 때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일이 있으니까 계속 해야 할 것 같고,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사실 엄태웅은 오랜 무명 시기를 견뎌내고 오늘까지 왔다.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1998)에서 단역 출연을 계기로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한 그는 긴 시간 동안 작은 역할에 자신의 꿈을 재워두고 기회가 무르익어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는 첫 번째 기회였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충무로를 주름잡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엄태웅은 묻히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2004)과 <공공의 적 2>(2005)으로 이어진 강렬한 인상으로 스스로의 자질을 인식시켜나갔다. 진정한 기회는 브라운관을 통해서 찾아왔다. 드라마 <쾌걸춘향>의 변학도 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의 인생을 비극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이들을 향한 복수를 감행하는 동안 내적인 갈등을 느끼는 1인 2역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전시한다.
“역할의 비중이 커지고, 개런티도 늘어나면서 부담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건 좋은 일이겠죠.” <부활>이후로 엄태웅의 경력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진정한 주행이 시작됐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그의 캐릭터들은 항상 극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을 점했다. 사실 엄태웅의 연기에는 그 캐릭터의 강도와 무관하게 일관적인 망설임, 즉 반박자 느린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마다 그 캐릭터가 뭔가 과하게 보이지 않도록 변화를 주는 게 좋아요.” 그의 캐릭터들은 한결 같이 어떤 확실성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 그것이 그의 캐릭터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스스로 시원하게 연기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엄태웅 스스로의 조심스러움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은 다가올 경험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와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능 출연이 쉬운 일이 아니었듯, 점차 넓어지는 연기적 보폭이 그의 발전을 대변하는 바로미터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지난해 270만 관객을 동원한 <시라노; 연애 조작단>으로 흥행배우 대열에 올라선 그가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건 때로 지나친 겸손처럼 보인다.
엄태웅은 말한다. “연기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 이상이 아니에요.” 하지만 또 다시 말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제 안의 모습이 하나하나씩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럼 언젠가 저만의 연기 스타일이 보이겠죠.” 엄태웅에게 중요한 건 분명 삶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연기한다. 하지만 연기는 그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발전을 바란다. 무엇보다도 엄태웅은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유독 ‘인간적’이라는 평판을 많이 듣는다. 촬영 현장 곳곳의 풍경을 차곡차곡 쌓아둔 그의 미니홈피 사진첩은 정이 많은 인간 엄태웅을 드러내는 창과 같다. 그는 삶과 직업의 경계를 넘어서 구수한 된장 내음처럼 퍼져가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쉬었다가 오는 듯한 <1박 2일>” 사이사이로 연기적 경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벌써 <특수본>의 차기작인 <네버엔딩 스토리>의 촬영을 마친 그는 벌써 그 이후의 차기작인 <건축학개론>의 촬영에 들어갔다. 구수한 된장처럼 친숙하지만 깊이 있는 매력을 지닌 배우 엄태웅은 그렇게 삶을 담그며 스스로를 숙성시킨다.
출신성분으로 할리우드 배우를 소개하는 건 새삼스런 일이다. 다만 그 출신성분이 유명세를 탔다는 사실에서 다른 의의를 읽어야 한다. 맷 데이먼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출신이란 그의 과거는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경력을 첨언하는 수식어로서의 의미에 불과하다.
“본드는 항상 1960년대의 가치관에 밀접해 있었다. 마이크 마이어가 자신의 스파이물 <오스틴 파워>로 부자가 되는 오늘날 세계에서 그건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맷 데이먼의 코멘트처럼 이제 <007>의 제임스 본드는 낡은 유산이다. 그 빈 자리를 채운 건 다름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 안티히어로 제이슨 본이다. <007>시리즈로 대변되던 기존의 스파이물과 달리 체지방 비율을 줄여버린 <본>시리즈의 담백함은 실로 신선한 것이었다. 심지어 21세기와 함께 마초적 환골탈태를 시도한 <007>시리즈가 <본>시리즈를 벤치마킹했다는 추측엔 부인할만한 여지가 없다.
<본>시리즈는 스파이물의 전통적인 컨벤션을 뒤엎은혁신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건 제이슨 본, 그리고 맷 데이먼이었다. 묵묵한 인상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차분함, 낭비가 없는 동작의 신속 정확함, 단단한 육체에 비견되는 비범한 두뇌, 그리고 묵직한 양심적 고뇌까지, 맷 데이먼은 작은 제스처부터 커다란 동선까지 제이슨 본을 이루는 자질 그 자체였다. 양미간을 찌푸리다 쉴새 없이 내달리는 제이슨 본은 분명 섹시한 물건이었다. 질주와 고뇌의 <본>트릴로지를 완성하던 맷 데이먼은 다른 한 편에서 유쾌한 무용담으로 또 하나의 트릴로지를 키우고 있었다. 가볍고 유쾌한 캐릭터가 즐비한 <오션스>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은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두개의 트릴로지 이후, 맷 데이먼는 완전히 다른 입지를 구축했다.
2007년,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입을 올린 배우 35인으로 꼽힌 맷 데이먼은 같은 해 ‘피플’지가 선정한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Sexist men alive)’로 선정됐다. “나는 매우 낮은 위치에 있었다. 브래드 피트, 조니 뎁,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같은 배우들이 지나쳐 보낸 대본이 남아야 오디션을 볼 수 있을 만큼.” 이제 오래된 문장처럼 낡아버렸지만 맷 데이먼의 말처럼 그의 과거는 분명 그랬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흥미를 갖는 아이였고 그것이 여전히 그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다.” 맷 데이먼의 어머니 칼슨 페이지의 말대로 맷 데이먼은 어려서부터 특별했다. 칼슨 페이지는 8살의 어린 맷 데이먼이 그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저는 제가자라면무엇이 되길 바라는지알아요.” 어머니는 이미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대답은 명확했다. “배우요.” 이 일화만으로도맷 데이먼이 4년간 다니던 하버드 대학을 그만 두고 배우로서의 진로를 결정했다는 사실에 수긍이 갈만하다. <스쿨 타이>(1992)와 같은 청춘물로 경력을 시작한 맷 데이먼은 <제로니모>(1994)에서 큰 배역을 거머쥐며 청운의 꿈을 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는 단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에서 아편에 중독된 군인을 연기하기 위해 100일 동안 40파운드의 체중을 감량해야 했다. 훗날 이에 대해 맷 데이먼은 말했다. “내 심장이 오그라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지혜를 얻었다. “건강을 지불할만한 경력이나 꿈이 아닌 이상그건가치있는 것이 아니다.” <굿 윌 헌팅>(1997)은 거기서 시작됐다.
이상과 다른 현실을 헤매던 맷 데이먼은 비로소”왜 내가 여기 앉아있지?”라는 생각을 품었고, “내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굿 윌 헌팅>이었다. 유년시절부터 절친했던 벤 애플렉과 함께 각본을 써내려 간 <굿 윌 헌팅>은 할리우드의 언저리를 맴돌던 두 배우를 온전히 다른 궤도로 올려 보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역시 하버드 영문과 출신답게 작가적 재능이 있었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는 자신의 대본에 투영된 재능에 미래를 걸 생각이 없었다. “각본을 쓰는 건 말할 수 있는 내 길을 말하고 시스템을 비틀 수 있는 기회였다.” 같은 해 벤 애플렉과 함께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휩쓴 맷 데이먼은 그 기회를 배우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데 소진했다.
<굿 윌 헌팅>의 세트장에서 만난 스티븐 스필버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맷 데이먼을 캐스팅했다. 비로소 오디션에서 벗어나 러브콜을 얻었다. 이윽고 안소니 밍겔라의 <리플리>(1999)에서 살인마 톰 리플리를 연기하며 연기적 보폭을 넓혔다. 문제작 <도그마>(1999)에서 벤 애플렉과 다시 손을 잡은 뒤 구스 반 산트의 <게리>(2002)에선 각본가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마치 어떻게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듯 일했다.” 안소니 밍겔라의 말처럼 맷 데이먼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쉬지 않고 돌파해 나갔다. 정작 맷 데이먼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나는 그저 할 수 있을 만큼 한 것뿐이다.”
<본>시리즈와 <오션스>시리즈가 승승장구하는 가운데서도 맷 데이먼은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이력을 쌓아나가야할지 판단이 명확했다. “마틴 스콜세지가레오나르도와 함께 보스턴으로 가서할 일이 있다고 했을 때,나는 무조건 예스였다.” <디파티드>(2006)를 결정할 당시 맷 데이먼에게 출연료 협상은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도 그에게 흥미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란 점이 주요했다. “빌 모나한의크레딧이 있는각본이라면을 통해 진짜 연기할만한 것이다.” 맷 데이먼은 자신의 가치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잘 아는 배우다. 로버트 드니로가 연출하고 연기까지 한 <굿 셰퍼드>(2006)에서 그와 함께 출연한 맷 데이먼은 한 토크쇼에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출연해 이와 같이 말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후로 나는 분명 더 나은 배우가 됐다고말할 수 있게 됐다.”
근래 공개된 스티븐 소더버그의 블랙 코미디 <인포먼트>(2009)에서맷 데이먼은 14kg가까이체중을 늘렸다. 소더버그의 <인포먼트>가 맷 데이먼에게 ‘건강을 지불할만한 경력과 꿈’으로서 인정받은 셈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인빅터스>(2009)와 폴 그린그래스의 <그린 존>(2010)에 주연배우로 이름을 올린 맷 데이먼은 최근존 쉐인의 서부극 <진정한 용기>(1969)를 리메이크하는 코엔 형제의 신작 출연을 확정지었고,게이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의 실화를 다루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차기작에서 마이클 더글라스와 동성애 연기에 도전할 결심을 굳혔다.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이 무산됐다지만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도 여전히 건재하다. “만약 내영화가 상영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영화는 멈추지 않는다.
“배우들은 안전한 선택을 성공의 수단으로 삼는다. 나는 절대 그와 같은 길로 가길 원치 않는다.”오래 전 자신의 말처럼 맷 데이먼은 결코 평범한 길을 걷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청년기를 거쳐 비로소 모두가 바라는 배우로 성장했다. 동시에 그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세상을 구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 돈 치들 등과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기구를 통해 아프리카의 수질 개선과 식수 공급에 앞장서고 있으며 지난 해엔 오마바를 지지하는 연설을 통해 매케인 진영을 초토화시키며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실천했다.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시도하기 보다 당신 스스로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제 꿈을 실현한 맷 데이먼은 이제 세상을 구한다. 그는 진정 차가운 두뇌와 뜨거운 심장을 지닌 하이퍼 리얼 히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