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 지하철, 졸고 있던 승객 하나가 눈을 뜬다. 늦은 새벽의 지하철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그가 문득 옆 칸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서서히 옆 칸으로 통하는 문을 향하던 그의 발이 무언가를 밟고 세차게 미끄러진다. 그가 밟은 것은 바닥에 흥건한 붉은 피, 당황하는 남자는 지하철 기둥을 붙잡고 가까스로 일어난다. 심히 경악할만한 광경을 앞에 둔 남자가 무언가에 홀린 듯 옆 칸으로 통한 문의 창문을 바라보며 그 쪽으로 서서히 다가선다. 그 창 너머를 바라보는 남자의 경직된 동공이 향한 곳에 놓인 건 누군가의 뼈와 살을 가르는 어느 살인마의 뒷모습이다.
클라이브 바커는 <헬라이저>(1987)나 <캔디맨>(1992)과 같은 작품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잔혹성을 과감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전시하는 감독이나 기획자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단 그 작품들의 원작자로서 더욱 확고한 유명세를 자랑한다. 공포소설의 대가 클라이브 바커의 유명한 공포단편집 '피의 책'에 수록된 동명원작단편을 영화화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Midnight Meat Train>(이하, <트레인>)이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이것과 무관할 리 없다. 도시의 기원에 얽힌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은 실로 순수한 공포심을 자극하면서도 도시의 참혹한 내면을 고찰하고자 하는 정치적 혐의와 맞닿아있다. 도시의 기원이었던 오래된 존재들에게 인육을 바치기 위한 제단으로써 운행되는 새벽의 지하철은 가히 그 공간 자체만으로도 괴기한 초현실의 공포를 소환하는 자질이 된다. 또한 그 비밀스런 제례를 위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희생되는 이들의 사회적 위치를 염두에 둔다면 이는 도시의 이면에 놓인 계층적 갈등과 착취적 질서를 살피는 계기로 해석될만하다.
97분 러닝타임의 기원이 된 40페이지 분량의 단편원작은 모티브의 출발점이라기 보단 구심점으로서 명확하게 영화 상에 자리를 잡고 있다. <트레인>은 원작의 질감을 보존하면서도 형태적인 변주를 통해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재생산한다. 두 인물의 대칭적 구도를 한 점으로 맞닿는 방식으로 전진시켜나가던 원작의 평행적인 캐릭터 배열방식과 달리 <트레인>은 레온(브래들리 쿠퍼)과 마호가니(비니 존스)의 접근성을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이는 방식으로 긴장감의 수축과 이완을 거듭한다. 또한 짧은 단편 분량 속에서 미니멀하게 소개되던 인물의 성향은 약간의 변화를 더하며 세심하게 다듬어졌다. 특히 영화에서 최대한 변주된 건 마호가니인데 그는 원작에서 보이던 최소한의 인간미마저 벗겨진 무신경한 광신적 살인마로서 재창조됐고, 결국 그는 영화상에서 절대적인 공포를 발산하는 주체로서 군림한다.
인물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직접적인 긴장감을 던지던 원작에 비해 진원과 진앙 사이가 멀어진 영화는 그 거리감을 통해 긴장감을 조율한다. 특히 변주된 캐릭터와 함께 뼈대에 살을 붙이듯 서사적 너비를 넓힌 영화는 인물간의 동선에 따라 긴장감도 함께 넓혀나간다. 사진작가로서 도시의 진짜 풍경을 담고자 하는 레온이 우연히 지하철 실종사건의 단서를 얻은 뒤, 사건의 현장을 포착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마호가니에게 접근할 때마다 마호가니의 굳은 얼굴만큼이나 지배적인 공포가 두려움이 역력한 레오의 표정을 통해 감지된다. 특히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의 추격씬은 가려진 시야를 헤매는 레온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그 긴장감의 포석은 거대한 망치로 무자비하게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는 마호가니의 무자비한 행위에 대한 목격에서 비롯된다. 등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마호가니가 목표로 삼은 대상의 등뒤에서 당사자도 모르게 망치를 들고 뚜벅뚜벅 다가서는 광경을 지켜보는 심정은 심장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이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면 연출력의 탁월함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시야적인 맹점을 확보함으로써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순발력이 아니라 차근차근 대상에 접근하는 살인마의 전진을 바라보는 앵글의 무기력한 목격행위는 알면서도 대처할 수 없는 화면 너머의 예견된 공포를 지배적으로 진전시킨다. 물론 그 살인 이후로 벌어지는 마호가니의 인간도축행위와 고기처럼 매달린 인간의 초라한 육신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에 도전하듯 적나라하여 되려 먹먹할 지경이다. 영화는 심리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진원지가 다른 공포의 발전적 양상을 성공적으로 조합해나간다.
영화는 도시의 이중적 내면을 고찰하던 원작의 함의적 공포와 다르게 선을 넘어서버린 어느 인간의 욕망을 그에 결부시키며 파괴적으로 변질된 인간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살인마 마호가니를 추적하던 레온이 그의 무시무시한 인간도살행위를 카메라로 담은 뒤 점차 변해가는 모습은 도시의 풍경이 인간에게 끼치는 거대한 영향력을 직감하게 한다. 결국 사진작가의 순수한 열망은 도시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와중에 예기치 않게 거대한 변질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는 결국 그 남자의 삶을 거대한 파국으로 몰고 간다. <트레인>은 원작만큼이나 과감한 결말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미묘한 변화를 감당하게 만들고, 그와 무관한 이들에겐 이질적인 백색공포를 강권하지만 세계관이 머금은 기운 자체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공포를 선사한다. 결국 파멸적이면서도 묵묵한 엔딩은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보존하면서도 영화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