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사는 사랑을 했다. 그 변호사도 사랑을 했다. 그 검사도 사랑을 했고, 그 형사도 사랑을 했다. 모두 다 사랑하리. 직업불문하고 그와 그녀들은 하나같이 이 죽일 놈의 사랑에 빠지곤 했다. 애정이 넘쳤다. 삼각 관계를 공통분모로 두고 희극이냐, 비극이냐, 결론이 도출됐다. 직업은 그냥 액세서리였다. 남녀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거기에 집안 내력까지 컨설팅 하면 작업 끝.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대한민국 드라마는 언제나 사랑에 목을 맸다. 드라마가 부릅니다. 어화둥둥 내 사랑아.
진짜 의사들이 등장했다. 실체 없이 직함만 건 의사가 아니었다. 수술복을 입고, 메스를 들고, 종양을 적출했다. 그들의 손에 생사가 오갔다. 그들의 흰 가운은 인증용이 아니었다. 레지던트 1년 차 봉달희도, 명인대 부교수 장준혁도, 현장에서 의술을 펼친다. 사람을 살린다.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 거탑>, <뉴하트>. 작년부터 올해 사이, 의사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 세 편이 방영됐다. 저마다 반향을 일으켰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에게 꽂혔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 탐닉했다. 소위 말하는 전문직 드라마가 이런 건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외과수술
<외과의사 봉달희>는 한국판 <그레이 아나토미>라 불렸다. <하얀 거탑>은 의학드라마라기 보단 정치드라마란 평이 우세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받아쓰기란 비아냥을 듣고 시작된 <뉴하트>는 ‘시즌2’가 언급될 정도로 호감을 이끌어냈다. 의학 드라마가 줄줄이 흥행에 성공했다. 장사가 되니 묵힌 아이템도 창고에서 방출됐다. <종합병원2>가 발 빠르게 기획됐다. 무려 14년 전 그 <종합병원>의 후속이란다. ‘시즌2’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시장상황에 힘입은 재출고나 다름없다. 의사는 브라운관의 새로운 양자가 됐다.
드라마 속 의사들처럼 현실의 의사들도 생명을 관장한다. 오장육부를 재생시키고 복원한다. 드라마에서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들은 항상 생존 여부와 직결되는 수술을 받곤 한다. 환자의 여생이 의사의 손이 걸렸다. 수술은 최후의 수단이나 다름없다. 약물치료가 가능한 환자에게 수술을 강행할 이유는 없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사들은 외과의(surgeon)다. 브라운관의 의사들이 외과의로 가득한 건 이 때문이다. 드라마는 수술실에 따라 들어가 수술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의 흥미를 끈다.
의학 드라마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수술이다. 수술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생명과 직결될만한 위급한 상황이 묘사될 때 긴박감이 커진다. 단지 수술장면이 필요하다면 굳이 흉부외과일 필요는 없다. 사실상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 수술빈도가 가장 많은 건 정형외과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정형외과를 비추지 않는다. 정형외과 수술도 뼈와 살이 튄다. 액션이 크다. 그러나 대부분 생명에 지장은 없다. 드라마틱하지 않다. 흉부외과 수술이 드라마에서 팔리는 이유는 여기 있다. 심장이 멈췄어요! 이 정도 멘트는 돼야 값을 쳐준다. 흥분도, 긴장도 최고조로 오른다. 시청률도 오른다. 고로 흉부외과 전문의가 집도한다.
인기를 얻은 세 드라마의 포지셔닝은 외과였다. 그 중 둘은 구체적으로 흉부외과다. 수술실에서 집도가 이뤄지면 화면에 긴장감이 넘쳤다. 인간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혈압이 떨어집니다. 맥박도 약해집니다. 수술실에 긴장감이 돈다. 생사가 경각에 달린다. 의사들도, 시청자들도, 동공이 확대된다. 수술실에도, 안방에도, 긴장감이 돈다. 이만한 클라이맥스가 없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믿을 건 의사 손밖에 없다. 산전수전 겪어본 경력자든, 분위기파악 못하는 풋내기든, 환자를 살리고 싶은 표정에 역력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의사는 인간을 살린다. 피부를 가르고 체내의 환부를 살핀다. 인형의 건전지를 갈아 넣듯 사람을 재생시킨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드라마 속 의사들은 그래서 울고 웃는다. 그들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자기 감정을 표출한다.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고 싶어한다.
수련과 전공
의사가 되려면 총6년간의 학생 신분을 거쳐야 한다. 기초과학부터 모든 과목에 대한 이론과 대략적인 실습을 거친다. 예과 2년과 본과 4년을 지나 졸업시즌이 되면 비로소 국가 의사고시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고시에 합격한 이는 의사자격증을 얻고 비로소 의사로서 개업할 수 있는 일반의 자격을 얻는다. 일반의 자격을 얻은 졸업생들은 대학병원에 지원해 채용되면 5년 간의 임상 수련 과정을 거친다. 모든 과에 대한 짧은 실전을 거치는 인턴 1년과 본격적인 전공 경험을 쌓는 레지던트 4년으로 이뤄진다. 수련의는 학생 신분이 아니다. 의사로서의 경력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수련의 과정이 끝나면 전문의 시험을 치르고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다. 최근엔 의대가 아닌 일반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의사가 될 수 있다. 특별히 요구되는 몇몇 과목을 이수했다면 의료전문대학원에 진학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의료 선진국에서는 예전부터 시행되던 제도였다.
<슬램덩크>의 가장 큰 묘미는 강백호가 리바운드의 제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아마추어가 프로페셔널로 성장하는 과정은 흥미를 돋운다. 분야를 막론한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진리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레지던트 수련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연발하던 레지던트 초년생이 어엿한 의사로 성장할 때 이만한 드라마가 없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어떤 초자들은 때로 기성 의사들에게 반발하곤 한다. 때때로 환자에게 무심해 보이는 선배들에게 순수한 의사 정신을 되묻곤 한다. 시청자의 대부분은 환자다. 환자에게 열성적인 의사의 하극상은 반갑다.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는 냉정하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선 오로지 판단이 중요할 따름이다.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생사와 무관한 환자에겐 당연히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다. 일종의 자기 방어이기도 하다. 그들은 삶을 위한 존재이기도 하나 항상 죽음을 대면하는 존재다. 개개인의 사연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건 스스로 위험해지는 길이다. 드라마에서 환자 개인에게 엄청난 열정을 쏟는 의사나 간호사의 모습도 그들에겐 비현실적이다. 대학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상대하는 환자의 수는 만만찮다. 환자 개개인의 생존여부에 감정을 이입할만한 겨를이 없다. 그 와중에 어느 특정한 환자에게 특별한 애정을 펼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환자의 특별한 사연을 한 회 에피소드에 가득 채워 담은 드라마의 습성은 그들이 사는 세상과 동떨어져 보인다. 드라마가 수술을 급박하게 묘사하는 것과 달리 현실의 수술은 위급한 상황조차도 예측범위에 포함된다. 냉랭한 수술실 공기마냥 현실의 그들은 한없이 침착하다. 어떤 긴박한 상황이라도 호들갑이란 수술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후배는 선배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흉부외과
<외과의사 봉달희>의 봉달희는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다. <뉴하트>의 남혜석도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다.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벌써 드라마에서만 2명이다.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넘어갈 때 비로소 전공을 선택한다. 과마다 인기가 다르다. 지원자로 넘치는 과와 한산한 과가 나뉜다. 선택은 당연히 성적순이다. 인턴 과정을 포함해 학생 시절부터 국가고시까지의 성적이 반영된다. 최근 2009년도 전기 전공의 원서 마감이 이뤄졌다. 결과 전국 63개 대형병원에서 76명의 흉부외과 전공의를 선발하기로 했다. 지원자는 18명이었다. 경쟁이 무의미해졌다. 지원자가 있다는 게 감지덕지하다. 경쟁률이 0.23대 1 수준이다. 흉부외과는 기피 대상 1호다. 현실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뉴하트>에서 레지던트 1년 차 남혜석은 흉부외과에 지원한다. 병원장인 아버지는 그런 딸을 말린다. 병원장 아버지가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을 앞둔 딸의 흉부외과 지원을 만류하는 건 괜한 걱정이 아니다. 실상 드라마도 흉부외과의 열악한 현실을 반영한다. 현재 전공의 모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끄는 과는 정신과, 피부과, 성형외과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술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의 발생이 크다. 그 반대로 흉부외과, 산부인과, 일반외과는 기피대상이다. 일은 힘들고 수익률은 낮다. 흉부외과는 최악이다. 심장 수술엔 고난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수술 시간도 장시간이 소요된다. 10시간은 보통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하다. 그만한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돈벌이가 가장 어려운 전공이다. 수술 빈도가 높을수록 병원은 돈을 번다. 한 번 수술에 긴 시간을 소비하는 심장 수술을 하루에 여러 번 하기란 힘들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 안 되는 사업이다.
의사입장에서도 돈 안 되는 장기다. 흉부외과 의사는 개업의가 되기 힘들다. 개인병원은 심근경색이나 폐암 수술을 할만한 여건을 갖추기 어렵다. 종종 개업하는 흉부외과 의사도 있다. 하지만 흉부외과 의사로서가 아니다. 일반외과에서 다루는 하지정맥류 같은 시술을 전담한다.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이 무기력해진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건 유일하게 수술실이 있는 대학병원에 남는 길이다. 특별한 뜻을 품고 있지 않은 이상 흉부외과에 지원하는 수련의는 찾기 힘들다. 어느 종합병원은 흉부외과 의사가 3명이지만 정작 수련의는 1명뿐이다. 보통 흉부외과에서 심근경색이나 심장 판막술과 같은 심장 수술에 필요한 인원은 최소 12명 가량이다. 레지던트를 포함한 의사 4~5명이 매달려야 한다. 전문의가 시술한다 해도 서포트할 전공의가 없다. 그 공백을 간호사와 응급구조사가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의 잔업마저 전문의들이 떠맡게 된다. 흉부외과는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도 수술의 연장이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한다. 다른 병과와 달리 수술 후까지 환자의 생명이 유지되는가가 중요하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심장이 제 기능을 유지하는지 살펴야 한다. 수술뿐만 아니라 수술 후 경과를 살필 인원이 없다. 수술 이외에도 의사의 몫이 가중된다. 당직근무의 연속이다. 휴식은 고사하고 잠도 부족하다.
괴로운 건 의사뿐만이 아니다. 흉부외과 수술은 팀워크가 중요하다. 사소한 손놀림으로 환자의 심장이 영원히 정지할 수 있다. 손발이 맞는 인력으로 수술팀이 구성된다. 대부분의 수술실 간호사는 로테이션을 통해 모든 병과의 수술을 익힌다. 하지만 흉부외과는 대부분 전담 간호사를 둔다. 특정 인원을 스페셜리스트로 육성한다. 장기간 호흡을 맞춘다. 덕분에 퇴근 후에도 흉부외과 응급 수술이 발생하면 ‘콜’을 받고 달려와야 한다. 사생활을 가질 시간조차 없다. 오버타임 근무는 일상다반사다. 견디기 힘들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간호사들은 당연히 흉부외과에서 근무하길 기피한다. 공공의 적이 따로 없다. 다른 과의 간호사들은 업무가 비면 순환이 자유로운 것과 달리 흉부외과는 고정적인 인원끼리 수술에 매달려야 한다. 전공의의 충원이 없는 이상 잔존 인원끼리 버텨야 한다. 경력에서도 큰 도움을 얻지 못한다. 흉부외과의 고단한 업무를 벗어나려면 흉부외과 수술실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로컬 병원에서는 흉부외과의 특별한 경험보단 보편적인 내과나 외과의 경험을 높게 산다. 사면초가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한다. 의학이 사람을 살리는 인술이라 정의한다면 흉부외과야말로 그에 가장 근접한 의료행위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심장을 다루는 건 비단 흉부외과뿐만이 아니다. 순환기 내과도 심장을 다룬다. 하지만 내과는 수술과 무관하다. 그들은 수술복을 입지도, 메스를 들지도 않는다. 순환기 내과에서 치유되지 못한 환자는 결국 수술하게 될 공산이 크다. 흉부외과는 최후의 보루다.
신념과 현실
<뉴하트>의 흉부외과 전문의 최강국은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의사다. 권력과 재물보다도 의사로서의 신념이 뛰어나다. 그런 그의 신념을 시청자는 우러러본다. 현실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고단하다. 알아주는 이도 드물다. 심장질환 환자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10년 사이 세배가 급증했다. 전체적인 흉부외과 수술량은 두 배나 늘었다. 그 10년 동안 한해 배출되는 흉부외과 의사의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수술은 느는데 의사는 줄고 있다. 기이한 일이다. 아이러니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흉부외과는 늪에 빠졌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흉부외과 전문의 프레스톤 버크는 자부심이 대단한 엘리트다. 미국을 비롯한 의료 선진국은 대한민국과 형편이 다르다. 흉부외과에 지원하는 수련의가 차고 넘친다. 진료수가나 보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부가적인 보험 혜택도 누린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의 생명을 가장 가깝게 좌우하는 병과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수술을 할수록 그만한 대우가 따른다. 생명이 걸린 수술분야는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흉부외과 지원자가 줄을 선다. 미국을 비롯한 의료 선진국은 흉부외과 의사를 최고로 대우한다.
한국에서 흉부외과 지원율이 낮은 이유도 명확하다. 근무 환경에 비해 대우가 열악하다. 수술이 없는 과일수록 인기가 좋다. 외과 분야는 철저한 외면대상이다. 대가 없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은 드물다. 심장판막증 수술에 10시간 매달려봤자 IPL피부시술 1시간만 못하다. 생명에 직결된 수술보다도 미용을 위한 시술이 대우받는다.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수련의가 몰린다.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정기 학회에서 흉부외과의 초라함이 드러난다. 새로 참여한 레지던트가 손에 꼽을 정도다. 박수를 치고 환영하지만 속은 씁쓸하다. 미래가 어둡다. 그들마저도 중도 포기자가 되곤 한다. 미달되는 정원만큼 개인에게 과다한 업무가 부여된다. 몸도 마음도 고달프니 일찍 포기하는 게 낫다. 악순환이 따로 없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정책적 대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전공의 지원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에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내년 상반기부터 난이도가 큰 흉부외과나 외과 수술에 대한 진료수가를 추가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언 발에 오줌을 눴다.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진료수가를 1~2% 올려주는 것으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처우 자체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급성 심근경색증 심장수술엔 총 10명 가량의 인원이 참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만원 남짓으로 진료비를 책정했다.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다. 현장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정부의 무능함이 적나라하다.
흉부외과 수술은 수술 중의 꽃이라 불린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을 만지는 것과 같다. 심장을 만지는 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최고의 요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 그랬고, <뉴하트>의 최강국이 그렇다. 뛰어난 실력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부심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실제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열정으로 넘어가기엔 산세가 험하다.
한 흉부외과 교수는 말했다. “이대로라면 10년 뒤엔 흉부외과 의사를 수입해서 심장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의료 선진국 의사는 비싸서 힘드니 상대적으로 싼 동남아 의사들을 데려오겠죠.” 그럼 10년 뒤 드라마 속 흉부외과 의사도 동남아 출신 배우가 연기할까. 드라마가 비현실인지, 현실이 비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한 시대다. 사람보다도 돈이 우선이다. 무능한 정부는 대책이 없고, 의사들은 열악한 길보단 좀 더 편한 길을 찾았을 뿐이다. 덕분에 10년 뒤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인에게 심장을 맡기게 될지 모를 일이다.
성형시대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대한 특례법’이 발의됐다. 이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일부터 대학정보공시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 연간 등록금 평균은 860만원이 넘는다. 국공립 대학을 제외한 사립대는 대부분 천 만원 대를 넘거나 그에 육박한다. 의사를 한 명 키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목돈 들여 의대를 보내는 건 대부분의 의사가 고소득직이기 때문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본질보다도 목적이 앞선다. 최근 카이스트(KAIST) 졸업생 중 의료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이들이 늘었다. 의사는 여전히 선호되는 직업이다. 이공계의 서러움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들은 의대로 모인다. 의대의 엘리트들이 흉부외과를 지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요한 곳에 사람이 없다. 의지만으로 버티기 힘든 세상이다.
귀가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귓바퀴가 뭉치거나 귓구멍 자체가 막혀버린 소이증 때문이다. 수술을 한다면 정상적인 모양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이상하게 생긴 귀도 3번에 걸친 성형수술이면 정상적인 모양을 찾을 수 있다. 압구정에만 나가도 건물마다 성형외과 병원이 들어서있다. 정작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별로 없다. 성형외과 의사들 대부분은 미용성형에 관심이 많다. 돈벌이가 되는 까닭이다. 압구정이나 강남의 성형외과는 병원이 아니다. 미용실이나 다름없다. 머리를 자르듯 턱을 깎거나 코를 세우는 손님이 가득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부도난 회사의 주식처럼 휴지가 됐다.
의사도 직업이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저마다 직업윤리가 있다. 미용사가 머리를 깎는다. 의사도 턱을 깎는다. 의사는 미용사가 아니다. 물론 예쁜 얼굴로 자신감을 찾았다는 이의 사연은 나름 쓸만하다. 하지만 정작 근원적인 고통을 치유하지 못하는 의학의 용도가 의심스럽다. 식칼로 연필을 깎았다. 정작 무도 자르지 못한다. ‘의술은 인술이다.’ 묵은 말이 됐다. 개념은 변했다. 의술은 산술이고, 조형미술이다. 계산하고 치장하기 위한 기술이 됐다. 선생님은 어디 가고 사장님만 보인다. 환자는 없고 손님이 즐비하다.
의사와 자본
영국 사회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루크 필즈의 19세기 작품 ‘의사’는 병든 아이를 지켜보는 의사의 모습을 사실적인 화폭에 담았다. 그림 속 19세기 의사는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고뇌한다. 오늘날 21세기라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 21세기 대한민국 의사들은 생명보단 자본을 다룬다. 돈 없이 병원 가봤어요? 안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드세요. 아버지가 돈이 없다면 아이는 죽을 운명이다. 의사는 고뇌라도 할까. 유전무병 무전유병. 이래저래 아픈 사람만 서럽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드라마 속 ‘비호감 의사 캐릭터’를 조사했다. 20대의 과반수가 ‘지나치게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의사’를 꼽았다. 젊은 의사들에게 희생과 봉사라는 개념은 낯설다. 조기교육의 효과다. 이미 기성세대는 많은 것을 몸소 실천했다. 의학도 산업으로 변질시켰다. 동네 슈퍼마켓이 사라지고 대형 할인마켓이 들어서듯 흉부외과가 지고 성형외과가 떴다. 헌신적인 의사들은 브라운관을 누빈다. 현실의 의사들은 비현실적이라 비웃는다. 시청자들만 감동한다. 그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적이지 않아서 감동한다.
드라마는 허구다. 흉부외과 의사의 비장한 결의도 결국 허구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흉부외과의 비장함은 현실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의사는 코흘리개들의 의사놀이에서나 찾아야 하나. 요즘 아이들도 그런 촌스런 놀이보단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게임에 익숙할까.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도 죽이는 게 익숙한 시대다. 애나 어른이나 하나처럼 삭막하다. 심장도 돈으로 사면 된다. 가난한 이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거짓말 같은 드라마라도 바라보며 대리 만족하던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여전히 말한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압구정에 즐비한 성형외과 간판이 조소하듯 불을 밝힌다.
(프리미어 58호 'Deep F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