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재계의 큰 손으로 꼽히는 재벌의 뒷거래를 폭로한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그)는 되레 곤경에 처했다. 증거 불충분으로 명예훼손의 역공을 당한 그에게는 이를 맞받아칠만한 여력이 없었다. 정보원의 증발로, 심증은 충분했지만 물증이 없었던 것. 덕분에 재판에서 패소하고 막대한 벌금형 구형으로 전재산을 날리게 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스웨덴의 산업을 일으킨 기업으로 꼽히는 방예르 산업의 전직 회장 헨리크 방예르(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제안을 대신 전하는 변호사로부터였다.
펑크한 헤어스타일과 피어싱이 눈에 띄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는 사실 유능한 정보원이며 천재적인 해킹 실력의 소유자다. 사회부적응자에 가까운 그녀의 외모는 모든 이들의 편견을 부르는 동시에 그녀의 공격적인 성향이 구체화된 결과에 가깝다. 문신과 피어싱으로 무장한 그녀는 한 남자에 관한 정보 수집을 의뢰 받게 되고 그로 인해 그가 곤경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이로 인해서 한 남자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 남자의 이름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바로 리스베트가 조사한 바로 그 남자였다.
고인이 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스릴러 3부작 중 첫 작품을 두 번째로 영화화한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에서 제작된 <밀레니엄 제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원작과 다른 각색이 발견되는 작품이지만 그 결과물에는 차별점이 있다. 각색물로서 두 작품의 차이는 인물 간의 관계를 묘사함에 있어서 그 내면의 감정까지 포용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스웨덴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를 동료라는 이성적 대상의 범위 안에 가두며 원작과 다른 길을 걷는 반면, 핀처는 두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적 화학 작용을 보다 세심하게 다룸으로써 소설에 내재된 멜로적인 여운을 영화로 끌어온다.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만남이 성사되는 과정이나 결말부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원작에 충실한 건 핀처의 결과물이다. 이는 단지 원작의 모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기 보단 그 결정적인 순간을 스크린에 세워 넣을 것인까라는 고민이 원작의 감정까지 영화가 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맞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선택은 3부작으로 진전될 시리즈의 형태에도 미묘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감을 부른다. 특히 원작이나 스웨덴 버전과 달리 결말부의 사건 해결 방식을 보다 독립적으로 각색해낸 측면은 이런 추측을 보다 강하게 대변한다.
스웨덴 버전이 남녀의 관계적 심리를 잔가지라 생각하고 쳐낸 결과물이라면 핀처의 작품은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이루는 관계에 보다 큰 흥미를 느낀 작가의 각색물이라는 차이로 보인다. 그만큼 스웨덴 버전이 사건의 추리와 해결에 공을 들인 작품이라면, 핀처의 작품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의 심리와 현재의 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이 작품을 보다 개인적인 야심이 깃든 작품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물론 핀처의 작품에서도 스웨덴 버전의 인용이라 이해할만한 아이디어가 발견되지만 이는 스웨덴 버전의 인용이라기보단 먼저 선점한 결과에 대한 차별적인 대안이 불필요했던 까닭처럼 보인다.
핀처의 작품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스웨덴 버전의 영화와 원작에 대한 언급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이 작품이 결국 원작과 스웨덴 버전을 섭렵한 관객에게 더 큰 발견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작을 먼저 숙지한 관객이 반대의 경우보다 영화를 보다 즐길 수 있는 확률이 크다. 사실 핀처의 영화는 두 인물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할애하는 분량이 책 한 권을 훌쩍 넘기는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속도감 있는 사건의 진전을 바라는 관객의 입장에서 기다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카엘이 헨리크를 만나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는 광경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는 복잡한 브리핑과 같아서 단숨에 들이키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핀처의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건 스타일의 양식이다. 비주얼리스트로서 핀처의 장기는 이 작품에서도 녹록하잖게 드러난다. 특히 극 초반 영화의 줄기와 상관이 없는 오프닝 시퀀스의 비주얼은 CF감독 출신다운 핀처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는 부록과 같다. 동시에 핀처의 감각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에 비해서 보다 정밀한 장르물의 형식에 가깝게 보인다. 특히 유령과 같은 시선으로 생물처럼 미끄러져나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유려하게 공간을 포착하고 응시하는 방식은 필요에 따라서 극적인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원숙한 연기와 캐릭터 표현력이 두드러지는데 그 중에서도 리스베트를 연기한 루니 마라는 단연 인상적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무난한 인상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펑크한 스타일로 무장한 리스베트를 연기해냈다는 이슈를 넘어서 완벽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승화했다. 단연 올해의 발견이랄까.
좋은 작품은 때로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 뮤지컬에서 영화로 변주된 <오페라의 유령>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와 같은 작품은 너무도 유명하고 활자에서 영상으로 치환되는 유명 소설의 예는 방대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비틀즈(Beatles)의 음악과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나 퀸(Queen)의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은 뮤지컬 ‘We will rock you’처럼 그 영향력은 형태의 판이함조차 무난하게 극복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무대와 스크린, 음악과 연기, 그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반 조건은 컨텐츠의 육체를 입고 변형되는 소스의 기본 자질이다. 특히 오늘처럼 하이브리드와 크로스오버의 유통이 활성화된 시대에서 훌륭한 작품은 장르의 형식을 초월해 다양한 양식으로 거듭 재생산될 가능성이 크다. 스웨디쉬 팝(Swedish Pop)의 전설적인 그룹 ‘아바(ABBA)’의 노래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유명 뮤지컬 ‘맘마미아!’ 역시 훌륭한 컨텐츠의 변형 유통 생산과정을 거친 모범전례라 할만하다.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로 16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공연된 뮤지컬 ‘맘마미아!(Mamma Mia!)’가 이제야 비로소 무대 공연이 아닌 스크린 상영의 단계로 옷을 갈아입었다. 게다가 2004년 국내에서 초연된 이후로 7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전례가 있는 만큼 <맘마미아!>의 영화화 소식은 결코 국내 관객에게도 무심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스의 한 섬에서 오래된 호텔을 경영하는 도나(메릴 스트립)의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아버지로 추측되는 어머니의 옛 연인 세 명에게 결혼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 그들을 초대한다. 결국 중년의 세 남자가 섬을 방문함으로써 그들과 그녀들 사이에 묘한 사건들이 펼쳐진다는 <맘마미아!>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뮤지컬만큼이나 발랄한 넘버들로 채워진 유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리스 섬을 둘러싼 지중해의 푸른 바닷물만큼이나 싱그러운 뮤지컬 넘버들이 유명세만큼이나 연기되고 노래되는 배우들의 목청으로 재탄생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 역시 눈과 귀가 즐거운 호사임에도 틀림없다. 게다가 캐스팅 자체가 이 영화의 야심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미 근래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비롯한 과거 여러 작품에서 발군의 노래 실력을 뽐낸바 있는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줄리 월터스와 같은 배우들이 관록 있는 보컬을 선사하고 소피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이 청량한 화음을 더한다.
연출의 평이함은 이 뮤지컬의 유명세에 따른 기대감을 다소 중화시킨다. 넘치는 야심에 비해 특별함을 과시해야 할 몇몇 장면들이 지극히 안일해 보인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던 현란한 율동을 영화적으로 재연해보고자 한 야심들은 스크린의 평면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 다소 비약적인 상황만을 제시할 뿐 정리되지 못한 산만함을 드러낸다. 평면적인 스크린에 무대의 입체적 양식을 구사하지 못하고 강요하는 꼴이다. 특히 급작스러운 전개와 함께 펼쳐지는 초반부엔 극중 몰입이 쉽지 않은 느낌이다. 특히 배우의 개인적 동선이 군무로 확장될 때 종종 세련된 무대 매너가 연출되지 못하고 스크린을 채운 배우들의 수적 우위만이 확인된다.
그 모든 악재를 무시하고 싶은 건 끝내주는 뮤지컬 넘버들 덕분이다. 걸출한 배우들의 목소리로 레코딩된 사운드 트랙은 오리지널 뮤지컬 넘버와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물건이다. 장면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상쇄되는 건 그 음악들이 발군의 엔터테인먼트적 충족감을 주는 덕분이다. 특히 메릴 스트립은 가히 독보적이다. 물론 때때로 말괄량이처럼 구는 그녀의 모습은 어색함을 유발하지만 그런 극히 일부의 상황을 배제한 대부분의 장면들은 장면의 평이함에 깊은 감흥을 불어넣는다. 특히 샘 카마이클(피어스 브로스넌)을 바라보며 ‘The winner takes it all’을 부르는 후반부는 잊을 수 없는 관록의 깊이를 발산한다.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충만하게 뒤엉키던 초반부의 어지러움은 덕분에 후반부로 접어들며 안정을 찾는다. 훌륭한 배우들과 그들의 목소리로 불려지는 좋은 노래들 덕분에 <맘마미아!>는 뮤지컬의 명성을 따라잡지 못해도 사랑스러운 영화로 거듭난다. 특히 결말부 엔딩 크레딧과 함께 펼쳐지는 특별한(?) 공연은 흥겹다. <맘마미아!>는 지중해의 푸른 바닷물처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맑은 감격을 줄만한 영화다. 그리고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관객을 미소 짓게 한다면 충분한 값어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