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엄태웅이 배우로 돌아왔다. 열혈형사로 분한 <특수본>이 바로 그것. 사실 엄태웅은 <1박 2일>로 전국을 돌던 와중에도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단지 그 동안 우리가 배우 엄태웅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배우 엄태웅이 돌아왔다.
“저는 원래 배우였으니까요.” 그랬다. 엄태웅은 원래 배우였다. <1박 2일>이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부활>이나 <마왕>과 같이 어둡고 무거운 톤의 드라마에서 힘있는 연기를 선사하며 ‘엄포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박 2일>의 출연과 함께 그야말로 딴사람이 됐다. 족구 시합 중에 헛발질을 하며 ‘개발’이라 놀림을 받고, 김장 중에 생선 두 마리를 뽀뽀시키며 주변에 화색을 돌게 만들며 엄태웅은 대중 곁에 친숙하게 가 닿았다. 사실 배우에게 예능 출연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캐릭터들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 출연진의 성격이나 취향을 적나라하게 벗겨내는 요즘 예능의 입담에 투신하기란 분명 꺼려지는 일일 게다. 엄태웅 역시 몇 달간 출연 요청을 고사했다. 결국 <1박 2일>은 실보다 득이 많은 선택이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강한 인상을 지닌 배우로 인식되던 엄태웅이 동네 청년과 같은 소탈한 자연인의 인상을 드러낼 때, 배우 엄태웅에 대한 인상도 새롭게 발견된다. 그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의 가면 아래 드러난 엄태웅의 진짜 표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매주 방송되는 <1박 2일>의 촬영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엄태웅은 남은 ‘4박 5일’을 연기로 채워나갔다. 그의 9번째 영화 <특수본>(2011)은 경찰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의 형사들이 경찰 내부 비리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액션물이다. FBI 연수 중인 심리학 박사 김호룡(주원)과 짝패를 이룬 열혈형사 김성범을 연기했다. “생명의 위협까지는 아니었지만 신체의 위협은 느꼈어요.” 너스레를 떨 듯 말하지만 실제로 맨몸으로 뛰고 구르는 스턴트 액션까지 소화해내는 엄태웅은 현장에서 ‘엄액션’으로 통했다. 처음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적응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특수본> 촬영을 병행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태웅은 이 모든 과정을 즐기고자 노력했다. “일단 예능은 처음이라서 힘들었죠. 게다가 영화도 어떤 장면이 잘 안되거나 할 때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일이 있으니까 계속 해야 할 것 같고,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사실 엄태웅은 오랜 무명 시기를 견뎌내고 오늘까지 왔다. 장진 감독의 <기막힌 사내들>(1998)에서 단역 출연을 계기로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한 그는 긴 시간 동안 작은 역할에 자신의 꿈을 재워두고 기회가 무르익어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2003)는 첫 번째 기회였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충무로를 주름잡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엄태웅은 묻히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2004)과 <공공의 적 2>(2005)으로 이어진 강렬한 인상으로 스스로의 자질을 인식시켜나갔다. 진정한 기회는 브라운관을 통해서 찾아왔다. 드라마 <쾌걸춘향>의 변학도 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작품에서 자신의 인생을 비극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이들을 향한 복수를 감행하는 동안 내적인 갈등을 느끼는 1인 2역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전시한다.
“역할의 비중이 커지고, 개런티도 늘어나면서 부담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건 좋은 일이겠죠.” <부활>이후로 엄태웅의 경력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진정한 주행이 시작됐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그의 캐릭터들은 항상 극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을 점했다. 사실 엄태웅의 연기에는 그 캐릭터의 강도와 무관하게 일관적인 망설임, 즉 반박자 느린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마다 그 캐릭터가 뭔가 과하게 보이지 않도록 변화를 주는 게 좋아요.” 그의 캐릭터들은 한결 같이 어떤 확실성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 그것이 그의 캐릭터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지금까지 스스로 시원하게 연기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엄태웅 스스로의 조심스러움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은 다가올 경험을 통해서 풀어나가야 할 숙제와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능 출연이 쉬운 일이 아니었듯, 점차 넓어지는 연기적 보폭이 그의 발전을 대변하는 바로미터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지난해 270만 관객을 동원한 <시라노; 연애 조작단>으로 흥행배우 대열에 올라선 그가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건 때로 지나친 겸손처럼 보인다.
엄태웅은 말한다. “연기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 이상이 아니에요.” 하지만 또 다시 말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제 안의 모습이 하나하나씩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럼 언젠가 저만의 연기 스타일이 보이겠죠.” 엄태웅에게 중요한 건 분명 삶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연기한다. 하지만 연기는 그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그는 발전을 바란다. 무엇보다도 엄태웅은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유독 ‘인간적’이라는 평판을 많이 듣는다. 촬영 현장 곳곳의 풍경을 차곡차곡 쌓아둔 그의 미니홈피 사진첩은 정이 많은 인간 엄태웅을 드러내는 창과 같다. 그는 삶과 직업의 경계를 넘어서 구수한 된장 내음처럼 퍼져가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쉬었다가 오는 듯한 <1박 2일>” 사이사이로 연기적 경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벌써 <특수본>의 차기작인 <네버엔딩 스토리>의 촬영을 마친 그는 벌써 그 이후의 차기작인 <건축학개론>의 촬영에 들어갔다. 구수한 된장처럼 친숙하지만 깊이 있는 매력을 지닌 배우 엄태웅은 그렇게 삶을 담그며 스스로를 숙성시킨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예 감독과 중견 감독의 작품에 고루 출연하고 있다.
사실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배우를 선택하는 감독은 없을 거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아니면 젊기 때문에 선택의 취향이 나뉘는 건 아닌 거 같고, 순전히 작품에 맞을 거 같은 배우를 선택하겠지. 어쨌든 내 입장에서 보자면 좋은 경험이 된다. 베테랑 감독님들과 작업해보고, 떠오르는 신인 감독님들과도 함께 해보면 배우로서 스스로 그에 맞게끔 처신하는 법을 알게 된다. 김유진 감독님은 배우로서 편한 분이다. 일단 아버지 같은 믿음을 줘서 안정적인 느낌이지. 반대로 신인 감독들은 일단 시나리오 단계부터 아이디어나 감성적인 부분이 톡톡 튄다. 아무래도 나보다 경험이 적은 만큼 내가 조언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양쪽에서 그런 면을 다 배울 수 있다는 게 내겐 플러스가 된다. 어느 한군데 치중하지 않고 폭넓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나도 아직까진 배우는 단계인 만큼 그런 부분들을 다 흡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무형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씨표류기>는 기발하고 실험적인 스타일의 젊은 영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나?
독특하고 디테일하고 세심했다.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감독의 철학도 담겨있더라. 다만 그걸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겁지 않게 다룬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무거운 걸 무겁게 얘기하지 않고, 힘든 걸 힘들게 얘기하지 않고, 유머와 위트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냥 웃기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만화 삼국지’나 ‘만화 천자문’ 같은 느낌? 나이 있는 분들이 어린 애들에게 ‘삼국지’ 읽었냐고 물어보시잖아. 꼭 읽어야 된다 하고. 그렇지만 어린 애들한테 ‘삼국지’가 너무 길고 어렵다. 그런데 그걸 만화로 풀면 그림이 곁들여지니까 이해가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지. 물론 글로 읽는 것보다 깊이는 얕아질 수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 접해보기라도 해야 그걸 생각해볼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잖아. 두 번 보면 전보다 재미는 떨어지겠지만 오히려 작가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더 분석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시나리오만으로 어느 정도 결정을 내린 건가?
물론 감독님은 만나보고 결정해야지. 한번도 못 봤으니까. 다만 이럴 땐 감독님이 양아치만 아니면 된다. (웃음) 그런 사람 있잖아. 글만 잘 쓰는 사람. 그럼 또 난감하거든. 어쨌든 감독님을 만나니 생각이 너무 괜찮더라. 이러면 좋지.
<천하장사 마돈나>는 보고 <김씨표류기>를 결정했겠지.
원래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을 만나보기 전에 미리 봤어야 되는데 그 때 아마 <강철중>촬영이 끝날 즈음이라 영화는 못보고 감독님부터 만났다. 그리고 출연결정을 내린 다음에 영화를 봤는데 역시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 작품이 어떻고, 상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일단 들은 얘기가 있기도 했지만 일단 보내준 시나리오 자체만 봐도 그냥 영화를 안 보고 감독님을 만나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지. 그런데 <마돈나>는 어차피 두 감독이 만들었으니까 사실 누가 만든 건지 잘 모르잖아. 이해영 감독이 만든 건지, 이해준 감독이 만든 건지. (웃음) 사실 난 두 분이 형제인 줄 알았어. 대부분 소문이 형제라고 하기도 하고, <마돈나>자체가 그런 영화니까 둘이 사귀는 거 아닌가라는 소문까지 돌던데. (웃음) 물론 만나기 전엔 진위를 판단하기는 힘들었다. 일단 만나보니 형제도 아니었고 애인도 아니고, 과 동기더라. (웃음) 여하튼 직접 만난 뒤에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 나서 더 확신이 생기더라.
밤섬을 무대로 찍었는데 사실 모든 장면이 밤섬 같진 않더라. 사실은 되게 적은 분량만 밤섬에서 찍었다. 서울시에서 딱 8회 차만 허락해줬다. 우리나라 영화 중 처음이라고 하던데 <괴물>도 협조를 요청했지만 법 때문에 불가했더라. 이번에는 주로 밤섬에 대한 이야기니까 시나리오도 전하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8회 차 이상은 허락이 안됐고 나이트 신조차 허락이 안됐다. 그리고 그 8회 차도 막판에 간신히 허락된 거다. 처음에는 허락이 안 됐거든. 8회 차 빼고 나머지는 충청도 쪽에서 밤섬과 비슷한 곳을 찾아서 부분부분 찍은 뒤에 나머지는 다 CG로 처리했다. 내 분량의 70% 정도에 CG가 들어간다더라.
밤섬이라는 공간의 특이성이 영화의 독특한 양식을 이룬다. 사람이 많은 도심 한 복판에 그런 무인도가 있고 그 안에서 홀로 표류하는 남자라는 설정이 독특하지만 대도시 소시민의 비애가 투영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정서적 동의가 이뤄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 분석이나 사전준비가 필요 없었다. 내가 김씨가 될 수 있고, 길거리를 다니는 누군가가 김씨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사람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구나 한번쯤 그냥 힘들어서 못 살겠다, 짜증나서 못 살겠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잖아. 어쩌면 그런 심정에서 김씨도 죽으려고 했겠지. 그런데 사실 미끄러져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차가 확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웃음) 사실 떨어지려는 데까지만 보여줬지, 떨어지는 건 안 보여주잖아. 어쨌든 우연히 살아난 김씨가 걸치고 있던 양복을 하나씩 벗어버리면서 그 섬에 적응하는 과정은 어쩌면 정재영이 스태프들 앞에서 옷을 하나씩 벗고 그 상황에 적응해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스태프들 앞에서 혼자 벗고 있는 게 어색했을 거 같다.
<실미도>를 빼면 이렇게 빤스만 입고 카메라 앞에 서본 적도 없으니까. 그나마 <실미도>는 남자끼리 다같이 잠깐 벗고 항상 러닝셔츠라도 입고 있잖아. 그리고 <김씨표류기>에서 배우는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느낌이 달라. 처음에는 딱 찍을 때만 벗고 있었다. 웃통 까는 거 자체가 창피하더라고. 하루 이틀 그렇게 했는데 점점 김씨처럼 익숙해지니까 그냥 분장차에서 벗고 나와서 혼자 빤스만 입고 돌아다녔다. (웃음) 정재영도 완전히 김씨가 됐던 거지. 또 그래야 될 거 같았고. 그러니까 감독님도 좋아하더라. 속으로 ‘김씨가 됐구나.’ 그랬을 걸.
무인도에 표류하는 인물이다 보니 독백에 가까운 대사가 많고, 내레이션 분량도 상당하다. 사실 내레이션이라는 게 간단하게 읽어 내려가면 끝나는 작업 같지만 배우에겐 상당히 고민스러운 부분이 된다.
대본 상에서 읽을 땐 재미있고 와 닿는 감정이 좋았는데 막상 ADR(Automatic Dialog Replacement, 후시녹음)을 할 때 내레이션을 하니까 뭔가 자꾸 잘 맞지 않고 어색하더라. 이게 지금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제3자가 나한테 하는 말인지, 아니면 관객들이 나한테 하는 말인지, 말 그대로 그냥 내레이션인지, 그 톤을 잡기가 되게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저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너무 무겁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듯 말듯 하다가도 다 붙여놓고 보면 때론 감정이 너무 많이 개입된 거 같고, 어떨 때는 너무 많이 개입되지 않은 거 같고. 결국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최종적으로 이렇게 됐다. 처음엔 쉽게 생각했는데 촬영할 때보다 더 까다로웠다.
김씨가 밤섬에 갇힌다는 설정은 나름 기발하다지만 반대로 비상식적인 상황이라 납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그 섬에서 빠져 나오지 않겠다는 김씨의 결심이지만 그 결심 이전에 섬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설득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서 물에 막 들어가면서 ‘할 수 있다’고 혼자 중얼거리거나 얕은 데서 막 뛰어들고, 그런 모습이 사실 조금 과잉된 감정이거든. 무슨 죠스라도 나올 것처럼 공포감을 갖는다는 게 어쩌면 일반적인 감정이 아닐 수 있지만 그렇게 조금 과잉으로 해야 될 것 같았다. 김씨가 물에 대한 큰 공포감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 물에 얼씬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테니까. 사실 뗏목을 만들어서 나간다거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느끼기 전에 일단 캐릭터가 물을 통해 원천 봉쇄되는 느낌을 줘야 했다. 그러려면 조금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김씨가 물에 경기를 일으킨다고 느낄 정도의 한방으로 조율해줘야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어진다. 초반에 그 부분을 넘고 나면 이제 김씨가 자연스럽게 이 섬에 있게 되는 거니까, 그 다음부턴 자기가 스스로 나가지 않으려 하니까 문제가 안 되잖아. 그래서 초반이 사실 문제였다. 비현실적인 느낌을 벗어나면서도 어떻게 확실히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게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몰입을 못할지도 모르는 문제고.
현실적인 리얼리티보단 상황을 납득시킨다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렇지. 잘못 하면 관객들도 계속 의문에 쌓일 수 밖에 없으니까. ‘왜 안 나가? 나갈 수 있는데.’ 이래 버리면 틀린 거다. 그래서 그 부분을 신경 많이 썼다.
이해준 감독이 무대인사에서 <김씨표류기>를 보고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만큼 이 영화에서 ‘자장면’은 의미심장한 소품이다. 물론 여기서 ‘자장면’을 먹는다는 건 단순한 식욕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준 감독이 단순하게 얘기했지만 영화가 자장면을 너무 맛있게 보여줘서 자장면이 먹고 싶어지는 건 아닐 거다. 자장면 광고를 보고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문제지. 결국 자장면을 왜 먹고 싶은가라는 거다. 자장면을 먹고 싶게 만들려고 ‘농심’에서 몇 십억 수표 받고 협약 맺어서 두 시간짜리 광고를 찍은 것도 아니잖아. (웃음) 옛날에는 자장면을 귀해서 못 먹었다. 그러니 무조건 자장면을 먹어야지. 졸업식 때나 무슨 특별한 날이면 무조건 자장면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에게 자장면은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해빠진 음식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자장면이나 먹어볼까, 라고 하는 시대가 됐잖아. 그렇게 자장면의 위치가 변하는 동안 우리가 뭔가를 잊고 살지 않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코믹한 상황이 여럿 등장하는데 그게 단순히 기능적인 코미디가 아니더라.
사실 표류 아닌 표류를 하는 김씨의 설정이 황당해서 웃기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보통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걸 보면 그냥 웃자고 만든 거라 느끼진 않겠지. 초심이라던가, 잊고 살았던 작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도 될 수 있고.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자장면을 먹어볼까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단순히 자장면을 먹고 싶다는 결과만 생각하다 보면 사실 본질이 없어지지. 김씨가 자장면 먹는 걸 보고, “‘농심’하고 뭔가 커넥션이 있구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이제 약간 본질을 흐린 거지. (웃음)
사실 상대의 연기에 능청스럽게 반응하는 리액션이 당신의 장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김씨표류기>는 리액션을 받아줄 상대가 없는 영화다. 마치 일인극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 가운데 코믹한 감정을 이끌어내야 하니 다른 방향의 리액션을 모색했을 것 같다. <김씨표류기>는 기존의 <아는 여자>나 <바르게 살자>처럼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를 해서는 안 됐다. 그냥 캐릭터 자체가 쌓여서 나오는 코미디, 캐릭터 자체가 어떤 상황에 처해져서 보이는 코미디가 되니까 그냥 코미디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냥 최대한 절실하게 보이는 상황과 내가 주고 받는 액션과 리액션을 통한 코미디였다. 그러니까 적절한 상황과 맞물린 절실함에 공감하면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것이고, 절실함이 아니라 과잉이라고 생각하면 처음엔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재미있을 수 있지만 결국 계속 보다 보면 지루해지지. 그래서 김씨의 코미디는 처음엔 덜 웃겨도 그 상황을 지속적으로 밀고 갔을 때 캐릭터의 감정이 쌓이면서 점점 재미있어지는 코미디랄까? 어쩌면 코미디라기 보단 그냥 그 상황에서 해야 될 의무였던 거 같다.
‘자장면이 희망이다’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여자 김씨가 배달시켜 준 자장면을 남자 김씨가 돌려보내는 건 결국 자장면을 먹는 것보다도 자장면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떤 결과보다도 과정 자체가 인간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이 감동을 부르는 측면이 있다. 종종 배우라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연기적 성취의 의미가 발견될만한 실험적 작품과 소모적인 연기를 요구하지만 결과적인 흥행성이 보장되는 작품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는 없었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는 거 같다. 사실 지금 세상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어떻게 만드느냐’보단 ‘뭘 만드느냐’가 중시되는 세상이다. 내 입장에서는 7:3정도. 작품이 먼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완전한 10은 아니다. 흥행적인 부담이 전혀 없다면 그것도 완전히 무책임한 거지. 일단 좋은 과정이 있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어야 인지상정인데, 그렇지 못하면 사실 속상하잖아. 하지만 과정이 후지고 목적도 후진데 결과만 좋으면 그게 더 실망스럽다. 그럼 앞으로는 저렇게 만들어야 되나.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흥행만 바라보고 해야 될까. 이렇게 막 해도 되는구나, 싶어지니까.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생긴다.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순수한 열정이 남는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잔머리 대충 굴려서 영화 하나 뚝딱뚝딱 만들어놓고 이렇게 하면 영화가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충 얼마 정도 들여서 어떻게 기획하면 된다고. 요즘 세상에선 그게 더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고 안타깝지. 흥행배우라는 말도 좋지만 그보단 연기를 잘하는 배우, 진심이 있는 배우, 이런 칭찬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김씨표류기>를 선택해서 일단 내 한은 다 풀었다. 과정이 너무 좋았으니까.
편수가 늘어가고 입지가 구축될수록 작품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런 갈등이 치열해질 것 같다. 아무래도 개인의 욕심만을 생각할 입장도 아니고,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것도 고민의 한 축이 되는 게 아닐까 싶고.
항상 그런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내가 연기를 왜 시작했는지, 왜 연극을 좋아하게 됐는지, 이런 생각을 통해 조금씩 해결해보려 한다. 내가 돈 때문에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돈 못 버는 거 뻔히 알고 시작했으니까. 일단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또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 시작했으니까, 대단한 건 못해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적어도 자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웃음) 그런 마음을 매 작품 매 순간마다 다시 되새김질하려고 한다. 망각의 동물이라서 자꾸 까먹거든. 어느 순간부터 옛날의 소박한 욕심은 어디 가고, 점점 더 큰 욕심들이 자리잡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잔머리 굴리는 것보다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배우로서 훨씬 더 오래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분명히 그게 정답이다.
‘욕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라는 대사처럼 어쩌면 욕망이 배우도 똑똑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배우로서 내외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다스려야 할 욕망이 커지는 만큼 그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역량도 함께 생길 수 있는 게 아닐까.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돈 한푼 없는 입장이 되면 작품이고 나발이고, 연기고 나발이고 어디 있어. 그때는 또 생활로 가는 거다. (웃음) 단지 그렇게 타협했다고 해서 이렇게 막 쭉쭉 가보자, 이런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최소한의 방편이 되면 그 다음에 또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거지. 다만 일단 살아야 뭘 하지. 살지도 못하면서 무슨 작품이 어떻고, 좋은 배우고, 그런 건 없다. 일단 김씨처럼 사는 게 제일 중요해. 산 다음에 자장면이지. 지금 죽을 거 같은데 무슨 자장면이야. 처음에 버섯만 먹다가 그 다음에 생선을 먹게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어느 새 새도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물고기 먹을 때를 잊어버린다. 어류보다 조류가 맛있으니까 점점 까먹게 된다. (웃음) 그리고 자장면을 발견한 뒤로 옆에 새가 있어도 자장면에 꽂혀있는 거지. 그리고 (여자 김씨가) 여자라는 걸 알았잖아. 자장면을 먹고 나니까 이젠 여자가 보고 싶은 거지. 남자라면 ‘Who are you?’같은 거 했을까? (웃음) 뭘 보고 싶겠어. 그런데 여자라니까 갑자기 너무 보고 싶은 거다. 이게 인간의 욕망이 진화하는 과정 아닐까. 뭔가 하나가 실현돼야 그 다음에 또 얻고 싶은 게 생기고. 그러다가 그런 욕망들이 한 순간에 다 무너지니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래대로 한강에서 뛰어내리려 했을 때가 생각나지. 그런데 여자 김씨가 뛰어와서 손 한번 잡으니까 희망이 생기고. 어떤 위기가 닥치거나 고민이 생기면 속상하고 그렇지만 결국 이 삶이 반복되는 거 같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너무 속상해할 필요도 없을 거 같고. 그런 교훈은 선배들의 행보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후배들에게 배울 때도 있고. 책에서 읽기도 하고, 나름대로 혼자 생각도 해보고, 여러 방면에서 종합적으로 한해 한해 계속 축적되는 거지.
남자 김씨의 이름은 초반에 단 한번 민증을 통해서 드러나지만 영화 내내 이름 없는 사람처럼 불리지 않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한때 당신에게도 지독한 무명배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누구나 아는 주연급 배우로 이름이 불리고 있다.
사실 지금도 영화를 관심 있게 보는 몇몇 젊은 관객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은 나를 그냥 배역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거다. 물론 관계자 분들은 알겠지. 이름이라는 건 항상 표면으로 드러나거나 불려져야 알게 되는데 내 이름은 크레딧에서나 보이고 홍보할 때나 잠깐씩 집중적으로 보일 뿐인데 일반 대중들이 그런 걸 눈 여겨 보진 않거든. 노출이 별로 안되니까 배역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 어디 나왔던 누구, 뭐 이런 식? 그게 속상하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이름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하지 않는다. 그냥 저절로 작품이 쌓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알아가게 될 거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내가 신선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혹시 스스로 배우는 이래야 한다라는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이게 옳은 길이다, 이게 배우의 길이다, 이런 건 절대 아니다. 모로 가도 다 서울만 가면 돼. 일단 이름을 알리고 배역으로 가도 되고, 그냥 나처럼 소극적인 사람은 이렇게 쭉 가는 거고, 심지어 스포츠 스타가 배우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단지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이 나를 보면서 저렇게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정말 끝까지 해먹을 수 있겠구나, 그럴 수 있잖아. (웃음) 무슨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옷을 입는 취향이나, 차를 타는 취향 같은 거다. 그만큼 다 장단점이 있겠지. 이런 내 모습을 특별한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배우로서 겉멋이 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단지 나는 그냥 이런 게 편할 뿐이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정재영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 같은데. 이제 한 해마다 한 편 이상씩 영화에 출연해오고 있는 만큼 날 몰랐던 분들도 익숙해지는 거겠지. <실미도>때 날 봤던 분이 만약 <김씨표류기>를 보면, “저 사람 <실미도>에 나왔던 사람 아니야?” 이럴 수도 있고. 다만 내가 나온 작품을 다 볼 순 없잖아. 그건 진짜 영화광이고. (웃음) 앞으로도 계속 영화에 불러줘서 연기할 수 있다면 언젠가 ‘저 사람 진짜 오래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생길 거고. 심지어 ‘이젠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하면서 질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기겠지.
배우 이름보다 캐릭터 이름으로 기억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사실 그게 배우에겐 제일 행복한 거지.
<아는 여자>나 <거룩한 계보>의 ‘동치성’이란 캐릭터처럼 정재영을 통해서만 떠오르는 캐릭터도 있다.
그것도 이제 몇 번 했으니까. 그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은 그게 특이해서 기억하겠지만 그 중에서 한 편만 본 사람들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일종의 매니아를 위한 이름 짓기랄까.
현재 영화배우들 가운데 무대 출신 배우도 많고 그들 대부분이 중심 배우군을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류승룡 씨를 만났을 때 정재영, 황정민과 같이 친한 동기들이 연기자로서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기쁘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함께 무대에서 활동했던 전력이 있는 만큼 전우애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무대를 자신의 연기적 뿌리로 두고 있다는 것이 연기자로서 어떤 자산을 남겼다고 생각하나?
지금은 이제 연기적 영역에 있어서 연극과 영화, 방송 사이에 경계가 없어진 것 같다. 80년대처럼 연극연기, 영화연기, 방송연기가 다르지 않고, 이젠 일단 리얼리티가 관건이기 때문에 연극으로 활동했던 배우들의 가능성이 커진 거 같다. 연극에서 잘했던 배우라면 방송이나 영화에 와서 하루 이틀 정도나 헤맬 수 있겠지만 대부분 잘한다. 옛날엔 메커니즘이 많이 달랐는데 이젠 거의 다 똑같아서 새롭게 적응할 필요가 없고. 단순하게 연극에서 출발한 배우가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배우층이 두꺼워진다는 건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그래야 고생하는 후배들도 나 같은 얼굴로도 해나가는 사람을 보고 희망을 갖지. (웃음) 어떻게 보면 시대가 변한 덕이다. 옛날에는 잘 생기면 방송으로 가고 못 생기면 연극으로 갔다. 사실 그런 거야. (웃음) 일단 연기력을 떠나서 얼굴로 밀어붙일 수 있어야 탤런트 시험이라도 보고, 그게 안 되는데 연기를 하고 싶다면 연극으로 가야지.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잘 생겨도 연극을 하고 못 생겨도 방송을 하고, 얼굴에 대한 경계가 점점 더 없어졌잖아. 옛날엔 정말 잘 생겨야 했지만 이젠 리얼리티가 중요한 시대라서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을 해도 되니까 나 같은 배우는 편해졌지.
김씨가 자살을 결심해 한강에 뛰어드는 것이 육체적 자살이라면 밤섬에서 표류를 결심하는 건 사회적 자살에 가깝다. 결국 후자 역시 삶에 대한 포기지만 결국 그게 희망으로 연결된다. 어쩌면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듯 자포자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그걸 희망으로 역전시킨 계기도 있었을 것 같고. 20대 초중반 시절엔 그냥 내가 이렇게 무조건 열심히 하면 잘 되겠지, 무조건 잘만 하면 잘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후반쯤 되니까 조급증이 오더라. 계속 상황에 발전이 없으니까 불안이 생기는데 그걸 나 혼자 계속 짊어지긴 싫잖아. 그러니까 남 탓을 하는 거야. 야, 이거 이러다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거 아냐? 난 정말 가망이 없나?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세상 사람들이 왜 날 알아주지 않는지, 내가 왜 누구보다 떨어지는 건지, 나는 괜찮은데 왜 그러는 건지, 결국 다 운이 없다는 탓으로 돌리게 되는 거야.
그 때가 일종의 고비였을 것 같다. 어떤 극복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운이라는 건 네가 잡으려고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네가 모르고 지나갔다가 돌이켜봤을 때 알고 보니 그게 운이었던 거지.” 그 순간에는 운인지,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역시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 내 실력이 모자랐던 거다. 내 탓인가 보다, 이렇게 마음을 싹 바꿔버리니까 고민이 덜어지더라. 그렇다고 다시 자신만만하게 그냥 열심히 하고 잘 하면 되겠지, 이런 건 아니었다. 원초적으로 돌아갔지. 내 실력을 더 키워야겠다, 더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방향을 잡으니까 극복이 되더라. 돌이켜보면 운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한두 신 자리 촬영하던, 힘들게 연극했던,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었던 그 시절들이 쌓여서 지금 영화를 하는 정재영이 된 거지. 어느 한 순간 때문에, 어느 한 방을 통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그런 과정이 쌓여왔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는 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 것들이 다 운이었다. 거기에 운이 있었더라.
하지만 종종 진짜 한방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젊은 배우 가운데 단 몇 편으로 스타덤에 오르는 친구들도 있다.
어느 한 작품 때문에 대박이 났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말하자면 이준기 씨 같은 경우, <왕의 남자>한편으로 대박이 났으니까 사람들은 그게 운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거기서 만약 못했다고 생각해 봐. 사실 <왕의 남자>를 찍을 땐 몰랐을 거야. 얘기 들어보니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고 뭔가 절실했던 만큼 최선을 다해서 촬영했고 결국 작품이 잘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든 과정이 운이 된 거지. 길거리 가다 캐스팅 됐다고 다 배우 되는 건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잘됐다는 거 하나는 운일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다 실력인 거지.
최근에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연극열전2’같은 경우도 그래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고. 무대에 설 계획은 없나? 영화나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늘어난 만큼 그 인지도가 연극의 인지도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 정확한 계획은 없다. 연극과 영화, 방송에 활동의 구분을 두진 않는다. 다만 연극이나 방송 섭외는 영화보단 훨씬 적고, 들어온 작품이 괜찮아도 스케줄이나 시기가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의도적으로 연극을 무조건 한 편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안 한다. 예를 들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던가, 아니면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의도적인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동정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수 있거든. 연극은 그런 게 아니고 똑같다고 생각하니까.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는 곳이 아니고 영화와 나란히 공존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든지 할 기회가 되면 하는 거지, 일부로 의도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서 되는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섰던 작품이, ‘연극열전’ 첫 번째 당시 공연했던 <택시 드리벌>이었다. 그게 마지막이니까 무대에 선지도 벌써 5년 가까이 됐다. 그런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연극판을 특별히 도와주겠다는 의도로 무슨 선물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아니지. 내가 연극할 때도 그랬지만 연극을 계속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누군가 잘됐으니까 돌아와서 도와준다는 느낌을 주면 개인적으론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하고 싶어진다. 그런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지금 영화 하는 것처럼 연극을 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매년마다 출연작이 한 편 이상은 된다. 그런데 작품마다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연기적인 비난을 얻었던 적도 없었고, 출연작마다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성적도 거뒀다고 할만하다. 사실 낙관적인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좀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 같다. 그게 꾸준한 활동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내가 영화 아니면 할 것도 없고, 써주는 데도 없으니까. 유일하게 가족을 제외한 내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들 수 있는 건 영화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일단 뭔가 해야 되는 입장이란 말이지. 예를 들어서 몇 년 사이 공백이 생기면 안 된다. 적어도 일년에 한 작품은 꼭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 가운데서 일단 선택해야 된다. <김씨표류기>처럼 보자마자 ‘아, 이건 꼭 해야겠다’싶은 작품만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뭔가 필연적인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도 생긴다. 그럴 땐 최소한 내가 이 작품을 했을 때, 전작 가운데 제일 잘했다는 평가를 듣진 못해도 제일 못했다는 평가는 받지 않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배우가 매번 최고의 작품을 할 순 없다. 그런 작품이 맨날 나한테만 들어오나. 절대 아니지. 내가 그럴 만큼 최고의 배우도 아니고.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나한테 들어온 작품 가운데 나름대로 최대한 욕먹지 않을만한 작품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사실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다. 운도 따라줘야 되고, 여건도 맞아야지. 그럼에도 난 해야 되는 거고.
‘진화는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배우에게 있어서 진화는 현명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성취적 욕망이 깊어질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나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알고 싶다. 매 순간마다 너무 궁금하지. 친한 강호 형은 물어봐도 자기만 오래 하려고 안 알려줘. (웃음) 사실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된다는 방법은 없거든. 그런데 나도 궁금한 거야. 좀 쉽게 잡고 싶으니까. 배우로서 어떻게 작품을 선택하고, 어떻게 연기를 하고, 연기 외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되고,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되고, 어느 정도까지 솔직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잖아. 과연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지. 연예오락프로 같은 데는 원체 나가질 않으니까 주변에서 요즘은 나가야 된다고, 그게 대세라고 하는데 이럴 땐 나가야 되는지, 안 나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최소한의 자기 기준이 중요할 거 같다. 배우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소신 정도는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외적인 게 본질을 해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게 본질을 해치는 순간 그땐 잘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본질을 갉아먹게 된다. 흥행이 잘되건, 연기를 잘하건, 일단 어딜 나가건, 안 나가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연기자의 본질을 얼마만큼 끝까지 지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가 생각하는 본질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니면 연기를 그만 둘 때까지, 그렇게 끝까지 지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현명한 배우가 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본인이 각자 선택하는 거다. 단지 자기가 선택한 그 길에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지키고 가느냐가 문제겠지. 그 안에서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수준에서 조금씩 타협해가기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연기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고민해야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건 이제 쉬워, 내지는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식으로 매너리즘에 빠지면 안 된다. 아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 순간에 본질은 흐려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