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앞바다에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온다. 한낮의 망중한을 즐기던 피서객들의 즐거운 비명이 아비규환의 절규로 뒤바뀐다. 2009년, 대한민국 여름 극장가엔 쓰나미처럼 몰려든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해운대>는 국내 최초 재난 블록버스터란 타이틀 아래 천만 관객을 수장시켰다. 그 반대편에선 밑바닥 청춘들의 스키점프 도전기가 한창이었다. 제대로 된 시설 하나 없는 강원도 무주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는 다섯 청년들은 8백만 관객 앞에서 스키점프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해운대>와 <국가대표>를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은 관객은 대략 2천만 명에 다다른다. 지난 해 극장을 찾은 국내 관객은 총 1억 5천 6백만 명을 웃돌았다. 불과 두 작품이 지난 해 국내 관객의 10분의 1이상을 책임진 셈이다. 무엇보다도 두 작품의 공통점은 국내VFX기술, 그 중에서도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란 점에서도 이례적이었다.
<해운대>와 <국가대표>의 흥행 이전에도 한국영화에서의 CG활용 사례는 즐비했다. 전장의 참혹한 현장감을 스크린에 재현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스크린에 판타지의 세계관을 입힌 <중천>과 같은 대작들에서 CG는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한 몫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2007년, 국내영화 사상 유례없는 CG활용도를 보여준 <디 워>는 그 첨예했던 논란과 무관하게 하나의 선례가 됐다. 국내에 상영된 역대 개봉작 가운데 최고의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역시 CG를 적극 활용한 크리처 무비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처럼 오늘날 영화에서 CG는 스크린 너머에 허구의 이미지를 전시하기 위해 장착되는 특별한 비기로서 유용하다.
CG가 스크린에 무엇이든 불러낼 수 있는 마법의 램프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CG는 VFX(Virtual Effect)의 한 분야이며 영화 안에서 VFX기술의 역할이란 카메라에 포착될 수 없는 비현실적 광경을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덕분에 요즘 제작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배우들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 로봇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아예 블루매트로 둘러싸인 주변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믿으며 감정을 조율해야 한다. 영화의 결과적 이미지가 CG의 손에 달린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작 블록버스터에서 더더욱 심화되고 있다.
점차 CG의 활용빈도가 높아지는 국내영화계에서도 VFX슈퍼바이저의 능력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대표>에서 후반 30분을 위해 CG팀과 감독, 촬영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폭발적인 연출로 대미를 장식하면서도 관객에게 리얼하게 접근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 속도감을 살리면서도 악천후 상황에서 점프를 감행하는 드라마틱한 정서를 뒷받침하기 위한 CG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국가대표>의 VFX슈퍼바이저를 담당한 EON디지털필름스의 정성진 실장의 말은 CG가 단순히 영화의 기술적 보강을 위한 장치 수준에 지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오늘날 영화에서 CG는 극적 흐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효과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한 촉매로서 기능한다.
<해운대>는 ILM출신의 VFX슈퍼바이저 한스 울릭을 믿고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백주대낮에 해운대를 덮치는 거대한 쓰나미를 구현해야 할 <해운대>는 한국영화에서 전례 없는 기획이었고 그만큼 도박에 가까웠다. 국내에서 제작비 120억여 원을 들인 대작으로 손꼽히지만 방대한 스케일의 CG컷을 구현할만한 디지털 데이터량을 보장하기엔 터무니없는 예산이었다. 무엇보다도 CG작업 가운데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물을, 그것도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어야 했다. 경험치가 없는 국내업체를 마냥 믿고 맡기기엔 무리수가 컸다. 심지어 제작사가 접촉한 유수의 해외업체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제작단가로 기대치만큼의 영상적 퀄리티를 보장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퍼펙트 스톰>과 <투모로우>의 물 시뮬레이션 작업에 탁월한 결과물을 보여준 한스 울릭은 그 예산으로도 원하는 퀄리티를 보장하겠다고 장담했다. 결국 한스 울릭은 <해운대>에서 물 소스 작업에 집중된 전반적인 VFX슈퍼바이징을 전담했고, 국내 업체 가운데 모팩 스튜디오가 나머지 VFX샷을 만들고 합성하는 파트너로 선정됐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엔 호흡이 잘 맞았는데 뒤로 갈수록 일정 문제가 생겼다. 우리의 경험 부족이 문제가 되기도 했고, 변동성이 강한 우리 현장의 요구에 대해 한스 쪽에선 원칙적인 논리로만 대응하다 보니 감정적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해운대>를 제작한 JK필름의 길영민 이사의 말이다. 외국 슈퍼바이저의 작업 능력과 무관하게 문화나 환경 차이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이 발견됐다.
실제적인 결과물에서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한스 울릭은 ‘레벨 셋 시뮬레이션(Level-set Simulation)’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해운대>에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레벨 셋 시뮬레이션은 물입자의 상호관계를 물리적으로 계산해 연산반응을 만드는 방식으로서 실제 물의 연쇄적 반응까지도 구현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는 작업이라 할리우드에서도 활용빈도가 낮다. 실제로 <해운대>에 적용된 건 ‘서페이스 디포밍(Surface Deforming)’이다. 서페이스 디포밍은 출렁거리는 유사 이미지를 섬세하게 쪼개서 물표면과 비슷하게 그려내는 방식이다. 전자에 비해 유체의 움직임이 완벽하진 않지만 비용 대비 효과 안에서 탁월한 결과물이 출력된다. 미국에서 보내온 파이널 데이터는 기대를 온전히 실망으로 변환시킬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작업을 체크한 제작자와 투자자는 작업 과정 자체에 애초에 무리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개봉을 2개월 앞둔 시점에서 작업의 공정 과정을 완전히 뒤집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애초에 미국의 하청을 위한 파트너로 고용됐던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에게 <해운대> VFX를 지휘하는 전권을 위임했다. 결국 장성호 대표는 미국에서 기본 작업이 된 데이터 소스를 다시 받아서 전부 재작업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질감도 바꾸고, 조명도 바꾸고, 렌더링도 다시 하고, 디테일도 다시 추가했다. 결국 640컷이 넘는 최종합성 작업에 두 달여 동안 매진했다.
장성호 대표는 말한다. “애초에 우리에게 우리 기술 내에서 한번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면 가능한 방식 안에서 지금보다 나은 퀄리티를 얻어낼 수 있었을 거다. 그것도 미국에서 사용한 예산의 절반 이하로도 가능했을 거라 본다. 다행히 결과물을 관객들이 받아들일만한 최소한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위안이 되지만 완성도에 있어서 결코 만족스럽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해운대>를 제작한 JK필름과 윤제균 감독은 심해를 배경으로 한 크리처 무비 <제7광구>를 기획 중이다. 현재 모팩 스튜디오는 JK필름과 함께 <제7광구>의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보단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기술을 적용했을 때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날 수 있다는 발견도 있었다. 국내 CG기술이 떨어지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길영민 이사의 말이다.
과거 <괴물>의 크리처는 미국의 VFX업체 오퍼니지(Orphanage)가 구현한 것이다. 당시 크리처 무비는 한국영화에서 역시나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한국에서 대작으로 꼽히는 100억 규모의 작품들은 투자 자본의 너비만큼이나 손실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선택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괴물>에서 미국의 오퍼니지가 선택된 것도 그런 배경에서 기인한 바다. 하지만 오퍼니지는 본래 ‘하드 서피스(hard surface)’라는 기계적 질감의 CG작업으로 유명했던 업체였다. 오퍼니지는 <괴물>을 통해 크리쳐 작업의 데이터를 획득했고 그 결과적 경험치는 온전히 오퍼니지의 자산이 됐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JK필름은 한스 울릭과 계약을 체결하며 모팩 스튜디오에 기술 이전 조건을 명시했다. 결국 <해운대>의 결과적 데이터는 모팩 스튜디오의 자산이 됐고, 이는 곧 국내VFX기술의 질적 향상을 의미한다. 최근 전세계적인 화제작 <아바타>를 작업한 뉴질랜드의 웨타 디지털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성장했다. 피터 잭슨은 영화시장조차 없는 자국의 VFX업체를 자신의 블록버스터에 참여시키며 세계 최고의 업체로 성장시켰다. 경험만큼 확실한 자산도 없다. 한국이 참고할만한 확실한 선례다.
단순한 신뢰만으로 대자본의 결과물을 맡긴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도전적 시도가 결국 보다 발전적인 여건을 이루기 위한 직접적인 통로가 된다는 건 진리다. 과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참여한 인사이트 비주얼은 현재 강제규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알려진 <마이 웨이>(가제)에 참여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당시엔 CG팀에 대한 강제규 감독의 신뢰가 낮았다. 그러나 그 후로 CG파트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선 보다 적극적으로 CG를 활용하려 한다.” 인사이트 비주얼 손승현 제작이사의 말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배경으로 하는 <마이 웨이>의 관건은 로케이션이다. 현재 중국과 독일, 헝가리, 한국 등지의 로케이션을 계획 중인 제작부는 현지 촬영의 필요성을 논의 중이다. 현지 로케이션의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도 적절한 효과를 얻어낼 대안적 방안을 강구 중이다. 300억 짜리 대작이라지만 전쟁영화의 스케일을 구현하기 위해선 최대한 허리끈을 졸라매야 할 예산이다. 그만큼 CG의 역할이 중요하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덕을 본 ‘매트 페인팅(Matt Painting)’도 적극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지 않고도 현장에 동원된 인원들의 움직임을 데이터로 입력한 뒤 복사해서 편집해 넣는 기술로서 탁월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모던보이>처럼 세트를 짓는 소모적인 비용들을 매트 페인팅 작업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생한 시대상을 구현하고 제작비를 절감한 <모던보이>의 사례도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CG기술의 발전이 보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해운대>나 <국가대표>를 비롯해 최근작인 <전우치>까지, 근래 몇 년 사이 한국영화는 보다 풍부해진 장르적 시도나 소재적 접근을 꾀하는 중이다. CG의 적극적인 활용으로 인해 장르적 도전이 탄력을 얻고 있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유효하다. 2008년 제작된 <태왕사신기>나 지난해 제작된 <아이리스>와 같은 드라마는 대작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르물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결과적으로 CG기술의 발전과 함께 한국영상 콘텐츠의 보폭이 넓어지고 동선이 자유로워졌다. 그만큼 CG의 효율적인 활용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졌다. DTI픽쳐스의 양석일 실장은 말한다. “체질적으로 CG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차가 뒤집히는 카체이싱을 찍을 때, 액션 팀이 직접 연출할 것인지, CG팀이 그려낼 것인지, 그 상황에 어울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제작비 여건 안에서 보다 안정적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비용을 더 들여서 CG를 하자는 게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 CG가 정말 필요한지 선별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을 포장할 것인가보단 무엇을 담아내고 있느냐에 집중해야 하는 셈이다.
<해운대>나 <국가대표>의 흥행은 고무적이다.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작의 성공으로 또 다른 작품이 기획된다면 이에 참여한 업체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선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물론 경계해야 할 사안도 존재한다. “과거에 CG를 전문적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 그때마다 작업 요구량이 확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할리우드 수준에 따라 국내 관객의 눈높이는 높아지는 반면 제작 여건은 여전히 낙후됐다. 결국 그런 악조건 속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외면당하면 시장이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받게 된다.” 단지 기술적 성과만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대변할 순 없다. 열악한 시장의 조건 안에서 쥐어짜듯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국내업체들의 여건은 항상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시장의 기대치에 대한 발목을 잡는 셈이다. 그만큼 업체들의 목을 조이는 열악한 국내 환경의 개선도 급선무다. 할리우드와 비교했을 때, 저예산에 가까운 한국영화 제작비 안에서 VFX업체에게 돌아가는 몫은 언제나 열악하다. 정당한 요구를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과거 <집결호>를 연출한 중국의 펑 샤오강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에 참여한 국내 스태프들과 일하길 원했다. VFX를 담당한 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CG팀을 제외한 VFX팀이 <집결호>에 참여했다. “그 당시 우리가 너무 많은 작업에 매달려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인사이트 비주얼 손승현 제작 이사의 설명이다. 국내 VFX업체들은 대부분 동시다발적인 작업을 진행한다. 3~4편에 가까운 국내 작품의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 예산이 빠듯한 한국영화의 현실에서 최대한 많은 작품의 작업을 진행해야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금이라도 마련되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만큼 업무량은 늘어난다. 할리우드나 해외의 유망한 VFX회사들은 전문화된 인력들의 철저한 분업 시스템을 선호한다. 그에 반해 국내 아티스트들은 멀티 플레이어로서 기능하지 않고선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덕분에 전반적인 작품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얻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화가 악화를 구축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분각을 다투는 작업 안에서 한 사람이 두 공정에 관여한다는 건 분명 비효율적이다.
현재 국내VFX업체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성장의 한계가 분명한 국내 영화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끼리의 과다한 경쟁은 공멸을 자초하는 길이다. 결국 공존을 위한 방안으로 해외 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문화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주최로 한국을 대표하는 VFX업체 7곳이 AFM(American Film Market)에 공동부스를 차리고 한국VFX산업을 홍보하는 자리를 가졌다. “AFM에서 미국 클라이언트나 프로듀서를 만나서 <국가대표>를 보여주면 항상 제작비를 물었다. 그리고 항상 답변에 놀라곤 했다. 할리우드의 기준으로 보자면 <국가대표>가 수 백억을 가지고도 찍을 수 없는 영화다. 한국의 시스템을 놀라워한다.” EON디지털 필름스 정성진 실장의 변이다. 이에 앞서 해외 영화의 후반작업을 수주한 사례도 있었다. DTI픽쳐스, 매크로그래프, 풋티지는 <포비든 킹덤>의 후반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DTI픽쳐스의 양석일 실장은 말한다. “<포비든 킹덤>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경우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캐나다나 유럽 쪽 프로덕션 업체가 그 수주에 참여했고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 경쟁력 차이도 크지 않았다. 무조건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니다. 전략적으로 잘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하루 아침에 할리우드의 대작에 국내업체가 참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국내업체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긴 호흡이 필요하다. 개봉을 앞둔 <워리어스 웨이>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모팩 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도 이와 같이 말한다. “시장에 조금씩 스며들듯이 참여하면서 좋은 평판을 얻어내기 시작하면 기회가 조금씩 열릴 수 있다고 본다. 너무 성급하게 치고 들어갔다가 되레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평판이 떨어지면 오히려 되돌리기가 힘들어진다.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앞선 두 사람의 말처럼 해외시장 개척은 국내VFX산업의 향방을 결정할만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보다 착실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의 협조도 중요하다. 자생적인 발판을 마련하기 이전에 산업적인 구조의 불합리를 개선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지난해 CG산업협의회를 설립한 업계는 이를 통해 정부 측과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현실적인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전했다. 그 결과 국내외 프로젝트에 참여한 업체 가운데 제작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됐고, <국가대표>를 비롯한 몇몇 작품이 혜택을 받았다. AFM의 부스 참여도 이런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협의회가 업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통로이자 보다 현장을 배려하는 정책 반영을 가능케 하는 자문 기구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캐나다와 호주, 영국, 싱가폴 등 해외에서는 벌써 우리보다 먼저 자국의 CG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한국의 VFX업체는 정부 혜택을 받은 적 없다. 다른 국외 업체와 비교했을 때 20미터 뒤에서 뛰기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부의 변화는 고무적이다.” 정성진 실장의 의견이다. 지금까지 한국CG산업은 열악한 토양 속에서도 열정과 노력으로 싹을 틔운 인재들의 피땀을 먹고 자라왔다. 이젠 그 희생으로 일군 토양에 물과 비료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 아무리 보검이라 해도 그냥 식칼 용도로 사용되면 보검으로서 의미가 없다. 사용자가 그 가치를 가장 많이 깨닫고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의미 있게 쓰이는 거다.” 장성호 대표의 말처럼, 국내CG기술의 발전적 성과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고 그 기회는 단지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발전을 이뤄온 개개인의 노력에 대한 산업적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영상산업의 새로운 밑그림을 CG로 그려나가겠다는 야심도 그때부터 선명해질 것이다.
내한행사에서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기분이 좋다기 보단 한숨 놨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왜냐면 아직도 모르겠으니까. 사실 기자시사 전까지 많이 걱정스러웠다. 왜냐면 기존에 내가 보여줬던 연기와 전혀 다른 형태의 연기를 선보이는 거니까.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이 SF블록버스터를 쉽게 경험해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안에선 어떤 것도 처음 해보는 경험이 된다.
만화적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망설임이 있었을 것 같다.
유명한 원작만화 안에서도 가장 만화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를 선택하는 초반에 긴 시간 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실 촬영하는 중간에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데 시에나 밀러도 마찬가지로 그런 딜레마를 토로하더라. 왜냐면 시에나 밀러도 할리웃 블록버스터를 처음 경험하는 거라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건 둘 다 마찬가지였거든. 더군다나 난 더했고. 맨날 블루스크린 앞에서, ‘네 앞에 차가 지나간다!’, ‘저 뒤에 폭탄이 터진다!’ 이런 말에 맞춰서 장면을 상상하며 연기하지만 좀처럼 와 닿지가 않더라. (웃음)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놀랐다. 내가 저런 걸 찍었다니. 일본에서 시에나를 만났을 때 시에나랑 서로 막 이랬다. “영화 봤어? 놀랍지 않아?” (웃음)
스톰 쉐도우는 칼을 들고 싸우는 캐릭터인데, 남자로서 그런 액션 캐릭터에 대한 로망은 없었나?
(단호하게)없었다. (웃음) 그랬다면 이전에 이미 찍었겠지.
일단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아니었을 것 같다.
처음 캐스팅 됐을 땐 뭐야, 하고 집어 던졌다. 사실 <지. 아이. 조>가 뭔지도 모르고, 워낙 만화적이라 와 닿지 않더라. "따라와라! 공격하라!" 이런 1차원적인 대사나 지문들이 도처에 있는데. (웃음) 그래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건 ‘로렌조 D. 보나벤추라’와 ‘스티븐 소머즈’는 웬만한 할리웃 배우들도 간과할 수 없는 조합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전혀 와 닿지 않는 만화 같은 수준의 시나리오지만 이 사람들이 뭉쳤을 땐 뭔가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중요한 배역이란 것만으로도 주변의 권유도 상당했을 것 같다.
미국에 있는 에이전트를 통해서 <지. 아이. 조>에 대한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조금씩 얻었다. “꼭 하는 게 좋다. 너무 좋은 찬스다.” 그 쪽에서 자꾸 이러니까 뭔가 있겠지 싶어지더라. 사실 동양인 배우들이 자국에서 어떤 연기를 했건, 얼마나 유명했건, 항상 할리우드에 가면 웃음을 선사하는 캐릭터가 되거나, 칼만 휘두르는 악역이 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미국의 에이전트에게 자주 피력했다. 그만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 에이전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 아이. 조>를 권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계속 얘기하니까 나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 내 연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길 바란다면 할리우드에 가는 건 궁극적으로 나를 더 크게 알릴 수 있는 기회니까 좋은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서 정말 이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점차 나를 합리화 시키기 시작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
결국 최종적인 고민은 자신을 납득시키는 일이었나 보다.
지금이야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젠 어떤 영화를 좋아한다던가 말할 때 예전의 내 취향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지만 사실 난 4살 때부터 극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했다.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극장에서 나오기 싫다는 이유로 연속으로 두 세편씩 영화를 보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극장을 좋아했나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꿈을 적어도 2시간만큼은 현실화시켜서 볼 수 있는 공간이 극장이었기 때문인 거 같다. 무협액션, SF, 날아다니는 캐릭터, 나도 그런 것들을 통해 꿈을 키웠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어지는 거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기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통해서 나 스스로를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나름대로 합리화시켰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선택함으로써 해야 될 것에 대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까 편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원작에 대한 인지도가 전무한 편이지만 사실 본국에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진짜 신기했던 건 <지. 아이. 조>에 대한 인포메이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만화인가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서 <지. 아이. 조> 팬들의 반응이나 느낌들을 접하고서야 뭔진 몰라도 이게 대단하긴 대단한 거라는 걸 알았다. 미국에 있으면서 '스톰 쉐도우' 피규어(figure) 선물도 많이 받았다. 굉장히 다양한 버전의 만화가 60년대부터 나왔고 내가 맡은 역할이 이미 예전부터 이렇게 많은 피규어로 제작됐다니 유명하긴 유명한 작품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번에 'CGV 골드 클래스'에서 식구들끼리만 볼 수 있게 시사회를 해줬는데 <지. 아이. 조>에 대해서 좀 알고 나서 보니까 되게 신기해 보이더라. '스네이크 아이즈'나 '스톰 쉐도우'는 정말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데 그 안에서 내가 그걸 연기하고 있다니, 약간 그런 거 있지 않나. 우린 아니지만 <지. 아이. 조> 팬들에겐 그 인물들이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인물인 거다. 그런데 출연한 배우 입장에서 그런 유명한 만화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뒤늦게 재미있더라.
동양인 배우가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을 택했는지 궁금하진 않았나?
좀 싸서 그런 게 아닐까? (웃음) 감독이 어떤 역할을 캐스팅할 때 객관적으로 누가 더 좋다, 그렇게 비교하면서 판단하는 건 웃기는 일이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비교하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그 역할에 맞는 배우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라 믿는다.
사실 지금까지 해외로 진출한 국내배우들의 영화는 개봉 전부터 그 측면을 부각시키는 마케팅이 활발했다. <지. 아이. 조>를 보고 나니 지금까지 공개된 국내 배우들의 해외 진출작 가운데 가장 확실한 비중을 보여준 당사자라는 생각이 들던데 오히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진 스스로 최대한 많이 자제한 느낌이 들더라.
내가 매니저를 잘못 뽑았나? (웃음) 원래 그런 건 매니저들이 하는 일이잖아. 우리 매니저가 둔한 가보네. 좀 뻥뻥 터트리지. (웃음) 사실 너무 많이 포장되면 나중에 보고 나서 얼마나 허무해질지 모르니까, 나는 그냥 조용히 가는 게 좋다고 봤다. 욕먹을까 봐 너무 불안하고, 사실상 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나중에 영화 개봉하면 볼 사람은 어차피 보게 될 텐데 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미리 떠들 필요 있나. 나는 사실 (손가락을 작게 벌리면서) '요건'데, 여기선 (손을 넓게 벌리면서) '이렇게' 얘기하니까, 결국 (다시 손가락을 작게 벌리면서) '이걸' 보게 될 텐데, 이게 왜 (다시 손을 넓게 벌리면서) '이렇게' 돼있지? 이럴 수 있잖아. 말로 쉽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진 않은 거다. 차라리 몰랐는데 보니까 괜찮네, 이렇게 되는 게 낫지.
이번 내한 기자회견 때도 그랬지만 당신을 이야기하는 외국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달콤한 인생>을 보고 당신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
물론 업계 사람들이나 되니까 아는 거겠지. 물론 채닝 테이텀 같은 경우는 내가 캐스팅되기 이전에 <달콤한 인생>을 봤다 하더라. 덕분에 그 친구는 날 알고 있었지만 시에나 밀러 같은 경우는 나를 전혀 몰랐다. 촬영 다 끝나고 DVD빌려서 봤다고 했으니까.
10억 정도의 개런티를 받았다고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환산한 금액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은데.
10억이라는 돈은 거기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다. 심지어 미국의 알려진 배우들도 톱스타가 아닌 이상 그 정도 개런티 받기가 힘들다고 들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일본배우들도 마찬가지고. 일단 나는 개런티에 대해선 관여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에이전트가 있었으니 그건 에이전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중요한 건 이게 내 첫 작품인데 개런티 문제로 출연하느냐, 마느냐, 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이게 나한테 어떤 역할을 하는 영화인가가 중요했지. 그런데 이렇게 많이 받기도 힘들다고 하더라. 우리 에이전트가 힘이 되게 세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사실 되게 유명한 에이전트거든. –이병헌이 소속된 미국 에이전트사 ‘엔데버(Endeavor)’는 자국에서도 톱 클래스 에이전트로 꼽힌다.-
사실 ‘스톰 쉐도우’는 최근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단순해 보이는 캐릭터다. 본인의 욕심을 자제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특별한 주문은 없었나?
일단 악당은 악당,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 그걸 딱 구분한 영화인 만큼 캐릭터의 눈빛이나 행동, 말투에서건, 그 구분이 확실히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워낙 정신 없고 복잡한 이미지가 등장하는 영화라 그것마저도 애매모호하고 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캐릭터가 단순한 요소를 맡아주길 원했던 거 같다. 사실 원래 찍을 분량에서는 과연 저 놈이 좋은 놈일까, 나쁜 놈일까, 할만큼 애매모호한 대사나 분량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의도적으로 다 잘라낸 거 같다. 확실한 의중까진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2부, 3부를 의식한 거 같다. 지금은 그냥 나쁜 놈, 이렇게 단순 노선으로 나오지만 사실 원래는 약간 묘한 느낌이 있다고 느껴질 만한 지점들이 좀 있었다.
최근 들어서 계속 악역을 연기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은 <나는 비와 함께 간다>나 전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서 <지. 아이. 조>에서도 악역을 맡았다. 다만 지난 두 전작의 두 악역은 <지. 아이. 조>에 비해 상당히 콤플렉스한 악역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방금 말했지만 사실 '스톰 쉐도우'도 베일에 싸여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화에서도 짧게 나오지만 사실 그보다 더 깊은 얘기가 있었다.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더 말할 순 없지만, (웃음) 원래는 이중적인 느낌이 있었다. 원래 그런 점이 나에겐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편집본을 보고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왜냐면 너무 단순한 악당이 돼버렸으니까. 지금은 뭔가 의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원래 그런 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지. 아이. 조> 팬들에게 '스톰 쉐도우'라는 역할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다른 걸 떠나서 그것 하나만으로 기분 좋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의 캐릭터는 나쁜 직업을 가졌고 잔혹한 장면을 연출하는 역할이긴 하지만 사실 굉장히 강한 아픔과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있으며 프로페셔널이 강한 인물이다. 우연찮게 세 작품에서 악역을 맡았다. 사실 세 작품의 제작 시기나 개봉 시기가 다 달랐지만 <나는 비와 함께 간다>와 <놈놈놈>은 촬영 일정이 일부 겹쳤고, 그 다음에 바로 <지. 아이. 조>에 들어갔다. 만약 세 작품을 다 같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면 모두 다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 이전의 나 같았다면 너무나 신중하게 또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다시 생각해보다가 결국 셋 다 못했을 거다.
그런데 결국 세 작품 모두 하게 됐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결정하기까지 1년 가까이 고민했다. 그 쪽에서도 이제는 대답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재촉이 올 정도로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참 많이 생각했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좋은 배우로 인정받고 좋은 작품을 할 기회도 생기는 만큼 지금 여기서 안주해도 될 것 같고 꾸준히 연기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모험을 해야 되나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분들은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다면 언제 또 할 수 있겠냐며 출연을 거듭 권유했다. 트란 안 홍 같은 훌륭한 감독과 서로의 생각과 정서를 공유한다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생판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그 사람이 과연 나에게서 어떤 느낌을 뽑아내려 하는지, 어떤 면을 이용하기 위해서 나를 선택했을지 점점 궁금해졌다. 결국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결정하고 나니까 <놈놈놈>이나 <지. 아이. 조>를 결정하긴 쉬웠다. 이것도 결정했는데 이것도 한번 해보지, 이런 느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 많이 열렸던 거 같다.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실 한국에서 어느 정도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상황에서 할리우드에 도전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쌓아 올린 걸 다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버리고 간다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걸 알게 된다는 느낌? 이미 내가 이건 알게 됐으니까 다른 걸 배운다고 해서 이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어쨌든 간에 처음 접하고 경험하는 환경이었던 만큼 그 속에서 내 나름대로 발버둥을 쳤던 건 사실이다. 특히 <나는 비와 함께 간다>같은 경우엔 그게 진짜 처음이었으니까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고 그만큼 그 결과에 대해선 정말 뭐라고 얘기할 수도 없을 거 같다.
영어 때문에 처음에 고전했다고 하던데 영화에서는 딱히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
나는 내가 언어적인 재능만큼은 복 받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못 하는 것도 되게 많지만 적어도 그 부분은 잘할 수 있는 거 같다. 재수해서 간 곳도 불문과였고. 물론 공부를 안 해서 불어는 별로 못하지만. (웃음) 어느 나라 말이라도 배울 때마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재능 있다는 말을 듣는다. 예전에 <백야 3.98>을 찍을 때 딱 일주일 동안 러시아 말을 현지 한국사람에게 배웠는데 그 사람이 내 발음이 너무 좋다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발음을 익히고 따라 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주워들은 일본어만으로 일본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다들 발음이 좋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내가 남자답게 자랑해도 되겠구나 싶더라. (웃음)
현지에서 개인마다 보이스(voice) 트레이너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당황했다고 하던데.
처음에 작품을 결정했을 때 영어를 익혀야 된다고 조바심이 났는데 그게 일주일, 이주일 지나니까 무감각해지더라. 어차피 대사도 몇 개 없고 보이스 트레이너도 있다니까 트레이닝 받으면 짧은 시간에 나는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한 사람마다 다 붙는 줄 알았던 트레이너가 한 사람 밖에 없고 그 사람 혼자서 모든 주인공들한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국 매니저한테 어떻게 된 거냐고 난리 치면서 빨리 전화로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파라마운트'가 워낙 큰 회사라서 전달된 결과를 듣게 되기까지의 과정만 몇 일이 걸린다. 결국 몇 일이 지나고 나서야 한 시간씩 두 번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런데 디테일하게 지도해주더라. 나름대로 내 영어 발음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세밀한 지적을 받게 됐다. 짧은 시간이지만 효과적이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대사의 형태가 망가지면 그걸 인지한 관객의 극중 몰입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세밀하게 지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런데도 의외로 뉘앙스는 안 가르쳐준다. 예를 들면, 내가 스네이크 아이즈를 만나서, “헬로우, 브라더.” 하는 장면 있잖아. 그게 “헬로우! 브라더!”(격양되게) 인지, 아니면 “헬로우, 브라더.” (차분하게) 이건지 나는 모르겠더라. 그래서 내가 트레이너에게 물어봤다. “내가 스톰 쉐도우인데 그게 어떤 역인지 알죠? 스네이크아이즈는 어떤 역인지 알죠? 그럼 이건 어떤 식으로 해야 돼요?” 하지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가 감독의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철저한 사람들이다. 내 발음 가운데 장음, 단음을 구별해줄 뿐이다. R발음을 할 때나 L발음을 할 때, A발음과 E발음의 차이점, 그야말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만 지도한다.
영어로 연기를 하는 것과 한국어로 연기를 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갭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익숙한 언어로 연기할 때 감정을 전달하기가 훨씬 용이할 테니까. 그나마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먼저 경험한 덕분에 <지. 아이. 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진 않았다. 두 작품은 너무나 생판 다른 극과 극인 영화였거든. 겉에서 보기부터 안의 내용까지 심하게 다른 영화니까. 물론 그런 건 있었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찍을 땐 적어도 대사 NG는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감독이 여기서 좀 더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면 그 감정에 몰입하고 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대사는 그냥 술술 나오게끔 해놔야 된다는 생각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대사만 외운다고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 대사의 뉘앙스나 발음, 인터네이션(internation, 억양)에 관한 것도 신경 써야 한다. 감독이 어느 부분에 액센트를 줘야 한다고 하거나, 트레이너가 옆에서 ‘지금 여기서 장음을 내야 되는데 왜 단음을 내냐’ 이렇게 얘기하는 걸 듣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감정이 싹 달아난다. 거기까지 신경 써야 된다는 게 참 어렵더라. 사실 ‘에이, 뭐 있겠어. 어차피 인간의 감정이나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얼마나 다르겠어’ 이렇게 좀 얕보면서 쉽게 생각하고 갔는데 오래간만에 코에 땀이 송송 맺혀가며 NG내면서 연기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나?
말은 대본에 써 있는 대로 하면 되지만 표정이나 제스처 같은 느낌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눈썹을 올리면서 얘기하는지, 왜 그 사람들은 저렇게 손을 사용하는지. 쉬운 예로 평상시에 그 사람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아~!’ 이러면 그 사람들이 되게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우린 너무나 무의식적으로 그러지 않나. 그게 이상한가 보더라. 그런 것부터도 많이 다르다. 그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지 그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고 좀 더 작업이 용이해진다.
할리우드의 현장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다.
그런 것도 소소하게 따지면 많았지. 예를 들면 주연이냐, 조연이냐, 에 따라서 분장차도 달라진다. 조연들을 분장해주는 버스에선 세컨(2nd)이나 써드(3rd)가 분장해주고 헤어도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주인공 위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매일 아침 6시에 집합해서 오후 6시까지 촬영이 이뤄지는데 하루 종일 기다리게 만들다가 거의 끝날 시간 다 돼서야 촬영이 없다고 알려줄 때도 종종 있었다. 내 촬영이 없을 거 같으면 조감독이 미리 얘기해줄 수도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것조차 즐기고 싶었다. 그냥 '아, 이런 게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내가 그런 위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촬영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면 그 시간엔 주로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
운동, 나는 배우가 아니라 무술인이었다. (웃음)
스턴트 분량이나 본인의 액션 소화 분량은 어느 정도였나?
기본적인 발차기나 검술 같은 건 내가 다 했다. 대신 점프하고 뛰어내리는 위험한 건 스턴트가 했지. 그리고 계단 뛰어올라가는 단순 노동 신 있잖아. 할리우드에선 배우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런 건 대역이 해주더라.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 어제 내한 기자회견에서는 화기애애하게 보이던데.
그 친구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소박한 사람들이다. 할리웃 스타라고 의식하거나 잘난 체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어떤 것도 불평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편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언어적 차이 때문이라도 처음엔 다소 서먹하지 않았을까.
사실 말이 없는 사람은 친해지기 불편하지 않나. 처음에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나 보더라. 나도 내가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만큼이나 외향적이지 못했거든. 그 사람들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몇 년 만난 사람처럼 대하고 그만큼 빨리 친해진다. 그러다 보니까 트레이닝 받는 한달 동안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격차가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들은 정말 급격히 친해지고, 나는 점점 더 동떨어지고. (웃음) 그리고 초반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이상한 소문까지 났다. 쟤 너무 건방지다, 자기가 동양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무게 잡는다, 정확히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문이 났다고 하더라. 당연히 그런 의도가 아니었지. 사실 워낙 속어도 많이 쓰고 그러니까 내가 대화를 못 따라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괜히 이야기에 끼어들었다가 뉘앙스도 못 알아들어서 괜히 썰렁한 상황을 만드느니 조용히 있자 싶었거든. (웃음) 그냥 말 시키면 대답이나 하는 정도였지.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럴 거 같다. 그 친구들 입장에선 자기들끼리 다들 친구처럼 지내는데 누가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래 보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중에 친해진 다음에 물어봤지. “그런 소문 들었는데 진짜야?” 그랬더니, “누가 그러냐! 말도 안 된다! 너 같이 착한 애가 어디 있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 사실 다들 되게 좋은 친구들이다. 특히 마론 웨이언스하곤 정말 친하게 지냈다.
항상 당당한 모습이라 미국에서도 딱히 주눅들진 않았을 거 같은데.
사실 이번에 LA에 가서 홍보할 때는 일본이나 한국에서와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될 거다. (웃음) 그리고 만약 그 이전에 LA에서 내 모습을 봤으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거다. 쪼그려 앉아있었으니까. (웃음) 어쨌든 내 베이스는 여기고, 일본도 같은 아시아이기 때문에 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친구들이 입을 떡 벌릴 정도로 일본에서 너무나 성대한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는데 덕분에 한국 오면서 너무나 부담이 됐다. 한국에서 내가 뭔가를 좀 더 보여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일부로 도착하자마자 호스트로서 파티를 했다. 그 친구들 입장에선 그럴 거 아닌가. 한국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가보지 못한 나라인데 그 나라 배우가 옆에 하나 있으니까 ‘너네 나라 왔구나’하게 될 테니까 내가 뭔가 이 친구들을 위해서 한번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다들 너무 고맙고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면서 좋아하더라. 나는 내가 호스트로서 긴장해서 술에 취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긴장이 풀리니까 취기가 확 돌더라. 게다가 다음 날 행사 때문에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나서 취기가 가시질 않았고, 덕분에 어제는 취중에 인터뷰를 했지. (웃음)
최근 공교롭게도 해외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계속 캐스팅돼서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한동안 계속됐다. 향수 같은 건 생기지 않던가?
조금 그랬다. 공교롭게도 <놈놈놈>끝나고 나서 둔황하고 홍콩을 계속 왔다 갔다 했는데 그 일정이 끝나자마자 한국에 조금 있다가 바로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 3~4개월 있었나. 그리고 잠깐 한국 들어왔다가 바로 프라하로 갔다. 그렇게 또 한 달 정도 있었고, 거의 1년 이상을 외국에서 보냈다. 미국에서 3~4개월 있을 땐 내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더라. 결국 어머니께서 못 참으시고 동생과 같이 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잠깐 미국에 건너오기도 했다. 그땐 굉장히 반갑더라.
채닝 테이텀은 부인과 함께 입국했더라. 본인도 결혼 생각이 있을 텐데.
부럽지. 그런데 언제까지 결혼해야 한다는 제한시간이 있다면 빨리 해야겠지만 그런 건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바쁜 상황이라고 길가면서 그냥 아무나 골라잡고 '나랑 결혼 하자' 이럴 수는 없잖아. (웃음)
좋은 작품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덕분이겠지만 근래에 휴식 없이 지속적으로 연기를 거듭 해오고 있는 느낌이다. 혹시 개인적으로 스스로 그런 필요성을 느끼는 건 아닌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실 어떨 땐 되게 오래 쉬기도 하고. 사실 <놈놈놈> 이전까지는 작품을 별로 안 하는 배우로 꼽혔다. 어떤 경우는 2년에 영화 한 편할 때도 있었고, 보통 1년에 영화 한편? 그랬는데 <놈놈놈>부터 이상하게 끊임없이 계속 작품을 하게 됐다. 일단 우연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활발하게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게 자기가 몸소 뛰어야 되는 일이니까, 내 몸이 아프고 힘들다고 네가 대신 가서 해라 이럴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누군가 대신 시킬 수 있는 사무직 같은 일이 아니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질을 따지지 않고 막 구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작품이 이렇게 밀려들었을 때는 스케줄만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뒤에 좀 쉬어야겠지.
아무래도 아시아에서는 주목 받는 배우다 보니까 아시아 권역 내에서의 사생활은 제한 범위가 있을 거 같다. 그래서 되레 미국이나 프라하에서 촬영이 이뤄지는 동안만큼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느껴지진 않았나?
사실 옛날엔 그런 생각도 했다. 이젠 우리나라 배우도 이래저래 입지를 다지고,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자신을 세계적으로 선보이는 기회가 생길 수 있게 됐지만 몇 년 전까지는 지금처럼 할리우드에 나가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그 때 만약 누군가가 "할리우드 진출할 수 있으면 할거야?" 라고 물었다면 그때야 워낙 꿈 같은 일이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했을 거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된 지금은 최소한 지구상의 반 정도가 내가 맘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라면 좋을 거 같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일반적인 자연인으로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게 정말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본래의 나를 찾거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평상시에 배우로서 할 수 없는 그런 기회와 장소가 제공된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니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할리우드 영화를 찍게 됐고, 그게 또 어마어마하게 큰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라 영화가 개봉되면 전세계적으로 다 보여지게 될 테니까 나를 알아볼 사람이 생길 거다. 물론 아직까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없지만 적어도 느낌은 달라지지 않을까. 예전에 여행하면서 돌아다닐 대와 다른 느낌이 있을 거란 말이지. 아직까진 그런 걸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친한 배우라 할 수 있는 정우성 씨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꿈이 감독이라고 피력해오기도 했다. <쓰리, 몬스터>의 <컷>에서 영화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혹시나 연출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라도 없나?
막연하게만 있다. 그건 어렸을 때 꿈이었으니까. 지금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다만 부담 없는 단편 정도라면 한번쯤 해보고도 싶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런 장이 주어진다면야 언젠가 해볼 만 하지. 사실 배우생활 초반에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면 즐겁겠다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판타지 장르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가끔 영화를 보면서 ‘와, 저게 내 아이디어였는데’ 싶은 작품들도 있었다. <나비효과>가 그랬고 <버뮤다 삼각지대>라는 영화가 그렇더라. 사실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얼마 전에 TV에서 우연히 조금 보게 돼서 알았다. 그리고 혹시 그 영화 봤나? <더 재킷>?
키이라 나이틀리 나오는?
맞다. 그거. 내가 박찬욱 감독님한테 그 영화 보라고 그랬더니, “재미없잖아” 막 이러면서, “점퍼?” 그러더라. (웃음) 그런데 난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기본적인 바탕이 사실적이지만 일부 컨셉이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좋다. 판타지에 대한 호감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판타지 장르가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영화들엔 판타지적인 성격이 거의 없지만 나는 나름 그런 걸 좋아하거든. 완전 판타지보단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영화. 내 출연작 중에 <번지점프를 하다>도 그런 면이 있어서 좋아한다.
스필버그 감독이 관심을 보였다는 말이 있던데.
일본 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한 얘기가 그거였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줄게” 하더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 마음 속으론 (전화기를 꺼내드는 시늉을 하면서)“그 분 전화번호 어떻게 돼?” (웃음) 이러고 싶었지만 겉으로 쿨한 척, “아, 그랬어?”하고 말았다. (웃음)
아무래도 <지. 아이. 조>를 보고 나서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해외적인 입지를 기대하는 관객이 늘어날 것 같다.
나는 기대를 별로 안 한다. 괜히 큰 배역의 작품만 쫓아다니다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까지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건 한국말로 한국정서를 담아내는 한국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늘 한국영화를 베이스로 삼아서 활동하다가 또 좋은 계기가 생겨서 할리우드에서 또 한번 작품하고 오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니까, 좋은 감독과 작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중에 또 생긴다면 그럴 수 있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여전히 동양인들이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지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다. 할리우드엔 중국 배우도, 일본배우도 있고, 심지어 거기로 아예 본거지를 옮기는 배우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선 난 약간 의심을 품고 있다.
처음엔 막연한 기회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특별한 욕심이 생기진 않던가?
지금까지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왔다. 어찌어찌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준으로 모든 일이 이뤄졌다. 그런 만큼 어쩌면 여기에서 그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한국말로 우리의 정서를 담는 연기다. 물론 정말 좋은 기회가 또 생기면 그때 나가서 또 한편 하고 오면 좋은 거고. 덴젤 워싱턴이 남우주연상을 탄 게 불과 몇 년 전 같은데,-2002년- 그때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같은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흑인이라는 차별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동양인이 거기에 끼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서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연기를 잘했다고 해도 후보로 오르는 건 가까운 시일에 가능한 일이 아닐 거다.
데뷔한지 이제 15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당신이 많은 것을 이루고,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스스로에겐 배우로서 뭔가 더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목표가 없다. 사람들이, “다음 계획이 어떻게 돼요?”, “이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나는 정말 계획을 안 세우니까. 계획 없이 뭔가 갑작스럽게 덜컥 하게 됐을 땐 나 또한 설레고 놀라게 된다. 그런 걸 즐기나 보다. 만약 시나리오를 받게 되면 그걸 깨끗한 마음으로 읽어야 그 시나리오가 의도하는 바나 캐릭터를 100% 건드릴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그 전에 어떤 캐릭터나 장르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게 제대로 읽힐까? 내 생각이 액션에 있는데 멜로가 들어왔다면, “에이, 멜로네.” 이러겠지. (웃음) 그런 것처럼 마음을 비워두는 게 여러 가지로 좋을 거 같다. 그래야 나도 내 팬들과 같이 감동하고, 같이 놀랄 수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감도 있고.
<지. 아이. 조>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될 거라 생각하나?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한참 지나고 나서 보니까 <달콤한 인생>이 세계의 수많은 영화업계 사람들에게 나를 주목하게 만드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만약 <지. 아이. 조>가 성공하고 '스톰 쉐도우'란 역할이 어느 정도만큼이나마 기억된다면 이젠 세계 업계가 아니라 세계 관객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다가간 작품이란 의미가 생기겠지. 물론 그건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이다. 끝나봐야 알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