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인형 놀이를 하듯이 영화를 만들어왔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놀랍도록 비범한 걸작이었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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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지간 이라 말하기보단 이란성 쌍둥이라고 말하는 게 적확하다. <인크레더블>은 이안 감독의 <헐크>로부터 잉태된 작품이 아니다. <헐크>는 이안 감독의 야심으로 인해 원작이 변주된 사례지만 <인크레더블>은 마블 코믹스가 본래 지향했던 코믹스의 원천적인 야심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두 작품은 모태가 같을 뿐, 지향하는 형태가 다르다. 이안 감독의 <헐크>가 변화구였다면 <인크레더블 헐크>(이하, <인크레더블>)는 직구다.

<인크레더블>의 도입부는 자만이라기보단 자신감에 가깝다. 미국 정부 산하의 실험을 돕던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 박사가 실험 중 사고로 감마선에 과잉 노출된 뒤 헐크로 변하게 됐다는 캐릭터의 탄생비화를 개괄적인 방식으로 간략하게 집약하는 <인크레더블>의 오프닝 시퀀스는 <헐크>와 또 다른 개별적 자아를 증명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전자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동시에 어필한다. 또한 이는 <인크레더블>(을 자체 제작한 ‘마블’)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헐크’라는 캐릭터의 유명세에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론 1977년 이래로 여러 번에 걸쳐 TV시리즈로 극화되고 2003년에 이미 한차례 스크린판이 제작된 마당에 이 캐릭터의 전사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제작진의 자기진단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인크레더블>의 오프닝 시퀀스는 도전적이지만 합리적인 방식으로 서사의 너비를 좁히고 묘사의 영역을 넓히는데 기여하며 <인크레더블>의 목표의식에 확고하게 접근한다. 원작의 제목을 고스란히 영화의 타이틀로 오려 붙인 <인크레더블>은 이미지에 충실한 작품이다. 원작에 비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고뇌를 짊어진 영화는 지극히 기본적인 서사의 골격에 근육질 이미지를 키우는데 주력한다. 대부분의 안티히어로 무비의 선례처럼 <인크레더블>에서도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넣을만큼 막강한 적, 어보미네이션이 등장하고 <인크레더블>의 헐크는 그와 격렬하게 싸우는 지점에서 클라이막스를 찍는다.-이 점은 이안 감독의 <헐크>와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게다가 <인크레더블>은 근래 다양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통해 전시된 액션 시퀀스 이미지를 대거 포용한다. 극 초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골목과 옥상에서 펼쳐지는 브루스 배너와 미정부군의 추격씬은 <본 얼티메이텀>의 도심 추격씬을 떠올리게 하고 후반부, 뉴욕 시가지에서 등장한 어보미네이션을 쫓는 카메라 앵글은 캠코더 버전의 <클로버필드>처럼 대상을 과감히 비추지 못하며 어지럽게 흔들린다. 게다가 헐크와 어보미네이션의 도심격투씬은 <아이언맨>처럼 날렵하고 <트랜스포머>만큼 육중하다. 물론 <인크레더블>은 <헐크>와 마찬가지로 CG로 완성한 거대한 녹색괴물의 이미지를 이용해 탱크를 때려부수고 헬기마저도 박살낸다.

감정적 내러티브도 중시된다. 통제불능의 괴물로 변모했지만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고자 사력을 다하는 헐크의 헌신적인 순정. 이는 <킹콩>과 비슷한 감수성을 유발한다. 흉폭한 폭력성을 표출하던 헐크가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 앞에서 온순한 강아지처럼 선량한 눈빛을 내보이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준다. 제어가 불가능해 보이는 광폭한 초인적 자아를 막아서는 강건한 로맨스는 <인크레더블>에 낭만적 감수성을 부여한다. 다만 그 낭만이 영화를 지배하던 <킹콩>에 비해 <인크레더블>의 그것은 장치적 효과로 작동되는 것이다. 그 감수성은 본격적인 액션의 스케일을 광역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는 결국 <인크레더블>이 <킹콩>과 비슷한 방식으로 감정적 내러티브를 형성하지만 그에 비해 구도는 빈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은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캐릭터가 지닌 파괴력 안에 귀속시킨다. 헐크라는 내면적 자아로 인해 고통 받던 브루스 배너에 방점을 찍었던 이안의 <헐크>와 달리 <인크레더블>은 그 자아로 인해 고통 받던 브루스 배너에게 그 흉폭한 내면을 제어할 수 있는 자각적 능력을 끝내 부여한다. 이는 결국 <인크레더블>은 ‘헐크’에 방점을 찍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만큼 극적 스케일과 시퀀스의 스타일이 중시되고 내면적 갈등보단 외면적 격돌이 중시된다. 그 지점에서 <인크레더블>의 호불호는 갈릴 공산이 크다. 어쩌면 <인크레더블>은 이안 감독의 실험소재로 활용됐던 ‘헐크’라는 기자재를 더욱 제 모습에 가깝게 활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언맨>에 이어 자가생산한 원작모델의 영화화 작업을 외주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스크린에 이미지를 재생시킨 마블 코믹스는 <아이언맨>에 이어 자신들의 본질에 가까운 영화적 작업을 또 한번 완성했다. 게다가 극의 말미에 이르면 알겠지만 (현재 수많은 관람자들이 유포하기도 한 것처럼) 최근 화제가 됐던 동류 블록버스터의 인물이 출연한다. 게다가 마블 코믹스에서 마블 엔터테인먼트로 발돋움한 <인크레더블> 제작진의 야심을 선전포고하듯 드러내는 지점이라 더욱 흥미롭다. 힌트를 하자 주자면 마블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크레더블> 이전에 제작한 영화는 당신도 알겠지만 <아이언맨>이다. 아무래도 몇 년 후에 우리는 ‘쉴드’의 정체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유명 안티히어로들의 연합과 격돌까지도.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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