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의 흥행 소식이 반가울 것 같아요. 지난 출연작들은 아쉽게도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겠죠. 혹시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나요?
시선들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전보다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어? 어? 이러는 분이 많이 늘었고, 종종 직접 다가와서 영화 잘 봤다고 얘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러다 보면 정말 많은 분들이 (<강철중>을) 보시긴 보셨구나, 라는 게 아무래도 피부로 느껴져요.
주변의 관심이 늘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면 심리적으로 조심스러워지는 측면도 생길 수 있을 텐데요.
그렇죠. 좀 더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어요. 게다가 다들 좋게 말씀해주시니까요.
연기데뷔작은 TV청소년드라마 <반올림>이었죠. 덕분에 <폭력써클>에서 연기한 한종석은 상당히 의외였던 거 같아요. 엉뚱하고 소심해서 웃음을 주던 소년이 저토록 무시무시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원래 종석이라는 캐릭터로 <폭력써클>오디션을 본 게 아니었어요. 중간에 많이 바꾸게 됐죠. 오디션 보고 나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바꿔가며 리딩해보고 그랬어요. 재구를 하게 된 적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감독님께서 종석이를 리딩해봐라, 하셨고 결국 넌 종석이를 해라, 그렇게 됐죠. 제가 처음으로 하게 된 영화니까 당연히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해야 되는 거란 마음을 갖고 연기했던 거 같아요.
결국 박기형 감독님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종석이라는 인물을 맡기게 됐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혹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언급해주진 않았나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그 캐릭터를 맡기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게, 종석은 많은 친구들과 대결하는 구도에 서 있잖아요. 일단 거기서 짱인데, 짱은 무조건 크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캐릭터 분석표를 봐도 원래 종석은 덩치 크고, 키도 큰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작고 왜소해 보이지만 날렵한 친구가 나쁜 악당 대장을 하면 어떨까,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흔히 말해서 깡다구가 센 친구였죠. (웃음) 눈빛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무시무시했어요.
나쁜 놈이죠. 지옥에 갈 못된 놈. (웃음) 한종석은 있으면 안 되는 애에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첫 영화였고요. 나름대로 개인적인 준비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악역이 나오는 남자영화를 많이 봤어요. 감독님께서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에서 조 페시 연기를 많이 보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하고 봤죠.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나쁜 악당들의 무서움이란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 느낌을 관객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원래 좀 한 주먹하고 놀았던 거 아니냐는. (웃음)
물론 아니고요. (웃음) 저는 원래 운동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 집이 용인에 있는데 도외지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특별히 나쁜 친구라고 할만한 애는 없었어요. 제가 원래 웃기는 얘기해주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 재미있게 해주는 거 좋아해서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았어요.
팬카페도 있더군요. 아무래도 <폭력써클>을 인상적으로 보셨던 분들이 대다수로 보이더군요.
<폭력써클>을 시작으로 많이 늘었죠. 아, 물론 그렇게 많은 분들이 계시는 건 아니고요. (웃음) 그나마 그 전보단 많이 생겼죠. 관심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그 분들이 <강철중>을 봤다면 얼마나 반가워하셨을까 짐작이 갑니다. (웃음) <강철중>까지 포함한 세편의 영화에서 항상 고등학생을 연기했습니다.
1학년 두 번, 3학년 한번, 그랬죠.
19살 말, 고3이었죠. 해가 바뀌면서도 촬영을 했어요. 19살 때부터 찍어서 20살 때 종료됐죠.
졸업 후로도 영화를 통해서 고등학교 생활을 연장한 셈이네요. (웃음) <두사람이다>에서는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결국 폭력적인 상태로 돌변하는 연기를 했어요. <강철중>에서는 말 그대로 불량청소년이었고요. <폭력써클>이 차기작 캐스팅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더군요.
제가 원해서 오디션을 봤고, 제가 정말 필요해서 캐스팅된 거 라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개인적으로 우려가 되는 부분은 있죠. 그런 제 모습을 보신 분들이 강하게 어필된 부분만 인식하실까 봐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우려되시는 부분이 있을텐데요. 마음이 편하시진 않으실 것 같아요.
(웃음) 그나마 이번에 <강철중>에서는 어머니께서 덜 그러시더라고요. <폭력써클>때는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안 좋으신 게 보이는 거에요. (웃음) 시사회가 끝나고 어머니께,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니까 그저, 음, 이러면서 말이 없으시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셨고요. 그나마 어머니께서 이번에 <강철중>은 마지막에 친구들과 만나서 포옹하고 그렇게 풀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좀 더 풀어진 역할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럴게, 그랬죠. (웃음)
연기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운동을 했는데 그만두게 됐어요. 그리고 원래 목표가 운동에 관련된 일을 하는 거였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배우, 탤런트와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 두게 됐는데 그러니까 연기가 되게 하고 싶어졌어요. 막연했던 부분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죠.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받고 기회가 와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반올림>공개 오디션을 볼 때는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전 그냥 시합 나간다고 생각하고 했어요. 어차피 한번 보면 말 사람이지, 이런 마인드로 했었는데 그게 굉장히 득이 됐던 거 같아요. (웃음)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누가 감독님이고, 누가 작가 분인지도 모르고 그냥 했으니까요.
아무래도 관중이 있는 시합에 출전했던 경험이 오디션에도 도움이 된 건 아닐까요? 그리고 연기할 때도 그런 시선들을 극복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근데 전혀 다르더라고요. 처음 <반올림>들어갈 때 제가 3주 동안 한의원을 다녔거든요. 많은 스탭들이 쭉 서 있고 카메라 앞에 처음 서보니까 너무 긴장이 돼서 이 주위(얼굴 볼 부위)에 열이 안 가라앉고 다 빨개진 거에요. 왜 그럴까, 해서 한의원에 갔더니 기가 막혀서 그런데요. 너무 긴장을 해서 순간적으로 탁 막혀버렸다나. 그래서 3주 동안 얼굴에 침 맞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계속 마음으로 떨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다짐했죠. 제가 촬영초반에는 카메라 울렁증이 너무 심하거든요. <폭력써클>하고 <두사람이다>할 때도 그랬고, <강철중>에서도 그랬고, 울렁증이 너무 심해요.
확인해보지 못한 당사자로서는 의외네요. 영화상에서는 그런 흔적을 느낄 수 없었으니까요.
처음 시작할 때가 굉장히 심해요. 그걸 없애려고 혼자 스스로 집중하자, 며 계속 마음 속으로 다짐하죠. 그나마 이제 (벌린 손을 좁혀오면서) 이만큼씩 점차 줄어드는 거 같아요. 초반부 첫 촬영은 너무 떨려요. 죽을 것 같아요. 진짜. (웃음)
작품을 거치면서 극복되는 게 느껴지나요?
크게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조금씩은 나아진다는 느낌이 있죠. 예전 같으면 더 심했을 텐데 이번에는 조금 덜 하다는 게 조금 느껴지거나 기간이 좀 더 줄어드는 건 느껴져요.
강우석 감독님은 어땠나요?
무서웠죠! (웃음)
아무래도 편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겠죠. 그런데 왜 무서웠을까요.
말씀이 없으셨어요. 특히 고등학생 역할로 나오는 저희들에겐 더욱 그랬죠. 말씀은 없으시고 종종 소리도 지르시니까. 근데 최근에 감독님께서 인터뷰 하신 걸 보고 왜 그러셨는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대선배님들과 저희가 같이 하다 보니 저희들 부분에서 연기 집중력이 떨어지면 영화가 우스워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리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로 저희 근처에도 안 오셨고, 당연히 저희는 옆에 오시면 모를까 감독님 옆에 함부로 못 갔죠. (웃음) 근데 진짜로 항상 말하는 거지만 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속으로 따뜻한 가부장적 아버지 같은? (웃음)
강우석 감독님께서 특별히 디렉션은 주시던가요?
일단 준비기간이 길었어요. 첫 오디션 보고 나서 이게 픽스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사실 시나리오 전체를 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쪽대본을 보고 리딩하고, 촬영해보고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가 감독님께서 이런 부분을 수정해봐라, 라고 조감독님께 말씀하시면 조감독님께서 저한테 이런 부분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염두에 두고 있어, 라고 전달해주시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픽스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도 항상 연습을 많이 했어요. 카메라로 계속 찍고. 결국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전까지 연습했던 건 다 비워라. 네가 맡은 태준 캐릭터만 생각하고, 백지상태가 된 채 와서 내 디렉션에 대해서 반응해야 한다. 결국 현장에서 디렉션을 많이 받았죠.
경험이 많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자극이 될만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제가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이죠. 언제 그런 대선배님들하고, 강우석 감독님하고 해볼 수가 있을지 알겠어요. 만약 제가 오디션에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캐스팅됐으면 진짜 눈에 불 켜고 봤을지도 몰라요. 진짜 어떻게 하나 보자, 라면서 진짜 이렇게(눈을 부릅뜬 채) 봤을 거 같아요. (웃음)
<강철중>의 안태준은 처음엔 리더가 아니었지만 차츰 리더격으로 성장하는 캐릭터에요. 혹시 본인은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맡는 편인가요?
저는 주로 이끄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저희 집 가는 거죠. 저희 집으로 가서 짐 풀어놓고, 볼 차러 가자, 이러는 편이죠. 라면을 끓여먹어도 저희 집에서 끓여먹으니까요. 매맞을 때 빼고는 친구들 앞에 나가는 걸 좋아했어요. (웃음)
책상 밀고 앞으로 나가는 거 아니면 말이죠. (웃음) 친한 친구들 성향이 활동적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본인도 실제로 보니 꽤 호탕한 성격인 거 같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저희는 남자학교라서 학교가 엄격한 편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규율에 대한 스트레스도 많고, 머리도 못 기르고, 명찰조차 삐뚤어지면 안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로지 친구들하고 노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죠.
<두사람이다>에서 최상경 역이 생각나네요. 그 친구도 사실 본래 쾌활한 성격이었으니까요.
그런 거 같아요. (웃음)
그런데 <두사람이다>는 우정출연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친분이 있었나요?
오기환 감독님하고 친분이 좀 있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몇 번 뵙게 됐는데 그러다가 감독님과 가까워 졌죠. 그러다가, 너 이거 한번 하자, 그렇게 된 거에요.
나름대로 역할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이던데요.
펜싱 4개월 정도 배웠어요. 원래 윤진서 씨 전에 (캐스팅됐던) 이수경 씨와 같이 연습하고 있었고 그 뒤로 윤진서 씨와도 연습했죠. 개인적으로 펜싱은 전혀 몰랐는데 취미삼을만큼 특기가 생긴거죠. 한국체대에서 배우고, 서울체고에서도 배웠어요.
원래 운동을 했으니까 운동신경은 좋을 것 같아요.
운동을 해서 좋은 부분이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일단 재미있었죠.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직접 해본다는 게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에서 상대방과 대결하는 장면이 꼭 등장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과거 운동 경험의 덕을 봤을 것 같은데요.
도움은 되죠. 신체를 빨리 릴렉스 시킬 수 있다고 할까요. 그런데 앵글에 담아야 되는 거라서 더 힘든 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발차기를 해도 카메라에 보이게 차야 되는 거라서요. 제 몸에 익었던 자세를 고쳐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건 고치기가 힘들어요. 정두홍 무술감독님께서도, 운동하면 이런 경우엔 고집이 생겨서 오히려 더 안 좋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힘든 게 있죠.
몸에 이미 밴 습관을 고치는 건 힘드니까요. 게다가 상대배우들은 사실 그런 경험이 부재한 사람도 많아서 되려 조심스러워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강철중>에서 교문에서 시비 붙은 상대랑 싸우러 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촬영 중에 서로 합이 안 맞아서 저한테 그 분이 입 주변을 잘못 맞았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입 주위가 같은 장면인데도 조금 달라요. 그 뒤로 나머지는 며칠 뒤에 다시 찍었거든요.
입이 부었나 보군요.
예. 그래서 이게 나만 잘해도 안되고 이분만 잘해도 안된다는 걸 알았죠. 서로 합이 맞아야 되는 거에요. 간단하게 생각할 건 절대 아니더라고요. 몸만 쓰는 게 아니라 서로의 호흡이란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있나요?
저는 액션도 좋고, 코미디도 좋지만 휴머니즘을 전달하는 영화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거, 그런 게 전 되게 좋아요.
감성적인 면이 있나보네요. 혹시 눈물이 많은 편인가요?
조금……눈물 안 날 것처럼 생겼는데 눈물 좀 흘려요. (웃음)
<강철중> 이전까진 대부분 단선적으로 연기했어요. 그런데 <강철중>에서는 나름대로 감정적 변화를 보이는 역할을 연기하게 됐군요. 감정을 연기한다는 게 어땠나요?
제가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웃는 연기를 할 때는 진짜 즐거워서 하잖아요. 화난 건 진짜 화나서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슬퍼서 울 때는 이 상황이 슬퍼서 울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다른 생각을 끌어와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게 합당한 건지,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나 고민이 많았었어요. 이 감정을 그 감정으로 해도 되는 걸까 말이죠. 연예TV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떤 연기자는 인터뷰 중에 그런 상황에서 다른 생각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저런 것에 동의를 못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 생각이 맞을 거라고 봐요. 극에서 슬퍼야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런 연기를 끌어내야 하는 상황이 닥쳐올지도 몰라요. 아직까진 이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감독님께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 거기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하죠. 종종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어차피 비슷한 거 같아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라 해도 감독님이 필요해서 하라고 하시는 것일 테니까, 거기서 최대한으로 그 생각에 맞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동년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경쟁의식이 생기진 않던가요.
마음 속으로 선의의 경쟁의식은 있죠. 그래서 더 시너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내가 좀 더 파이팅 해야지, 이런 건 아니었고요. (웃음)
또래배우들과 함께 있으면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편한 점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어려웠죠. (웃음) 선배님들이 많다 보니까. 그나마 예전보단 요즘에 선배님들 뵙기가 조금 더 편해진 거 같아요. 영화촬영기간 동안에는 강철중, 이원술로 상대하다 보니 제가 감히 어떻게 할 엄두도 안 났는데 이젠 촬영 끝나고 나서 설경구 선배님, 정재영 선배님, 강신일 선배님, 이렇게 무대 인사도 같이 다니고 하다 보니까 전보다는 마음이 더 편해진 거 같아요. 대화도 더 많이 했고요.
<폭력써클>에서 연기했던 한종석 캐릭터는 몰입도가 상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역할에 몰입하고 나면 빠져 나오는 것도 중요하죠.
연제욱: 그게 좀 오래 걸렸던 거 같아요. 맞죠? 형? (옆에 있는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매니저: 한 6개월 정도를 종석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종석이로 살았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주위에 사람들이 잘 몰입하라고, 종석아, 종석아, 불렀으니까요. 준비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을 종석이로 살았다고 할 수도 있어요.
기간이 좀 걸렸어요. 강하게 사로잡힌 게 있었어요.
매니저: 그래서 이제 그걸 무화 시켜주기 위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다른 역을 찾아보고 그랬죠. 아시다시피 역할이 너무 셌잖아요.
연제욱: 영화외적으로 설정을 했던 부분도 있거든요. 종석이는 원래 가난한 집에 살았고 아버지는 포악하고, 따뜻한 어머니가 없는 그런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고 설정을 했죠. 어릴 때부터 극단적인 루저였을 거란 생각으로 완전 몰두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에 짓눌리는 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런 경험을 겪은 만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걱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금도 많이 서툴지만, 그땐 너무 많이 서툴러서 몰입하고 빠져 나오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탓도 있죠. 경험이 없다 보니까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배웠으니까 만약에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땐 좀 더 쉬워지겠죠.
그런 면에서는 <강철중>이 나름 좋은 간접경험이 됐을 것 같네요. 설경구 씨나 정재영 씨처럼 연기 몰입도가 높은 배우들의 실전을 옆에서 지켜봤으니까요. 두 분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도 많았는데 어땠나요?
어휴~~~(감탄하듯), 연기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더 끌어올려져요. 연기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감정이 끌어올려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말로 설명하기가 좀 힘들긴 한데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 제 능력이상으로 끌어올려지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원래 예상했던 게 80~100이라면 120까지 나오더라는 말이죠?
예. 워낙 몰입도가 높으셔서 저까지 더 몰입해서 같이 끌어올려주시는 거 같아요.
까마득한 선배라서 일단 긴장도 많이 됐을 텐데요.
정말 많이 떨렸어요. 태준하고 철중하고 처음 만나는 씬이 설경구 선배님하고 처음 촬영하는 날이었거든요. 제가 선배님하고 한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떨리던지 진짜, 아~~, 게다가 선배님 눈이 너무 무서워서요. (웃음) 그래서 진짜 많이 떨렸던 거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진짜 현장에선 너무 어려웠어요.
그 동안 영화 속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 얽힌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런 연기를 하다 보면 실제 현실상의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친구들과 있는 걸 되게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니까요. 다같이 노는 게 너무 좋고 일단 편하잖아요. 서로 특별한 말하지 않아도 그냥 같이 있다는 게 너무 좋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좀 외로워요. 대부분 다 군대를 갔거든요.
친구들도 <강철중>을 봤겠군요.
다 봤대요. 휴가 나온 친구들도, 공익근무하는 친구들도 봤다고들 하고, 친구들은 다 봤어요.
친구들은 다 군대에 가게 되는 상황에서 본인도 그에 대한 고민이 생기진 않던가요?
아직은 막연한 거 같아요.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분명 가야 되는 거고 친구들도 대부분 가 있지만 전 아직까진 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어요.
처음에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크게 동요는 안했…...아니, 모르죠. 얘네들이 저한테 표현을 안 해서 나만 모를지도 모르니까요. (웃음) 어쨌든 운동 그만두고 나서 연기트레이닝 받고 <반올림>에 출연하게 됐을 때 애들이 되게 놀랬었죠. 놀라는 그 와중에 그러더라고요. 넌 개그맨 될 줄 알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고. (웃음) 친구들 반응이 이랬는데, 결국 개그맨 얘기는 이제 안 꺼내더라고요.
개그맨 운운하는 거 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머감각이 있는 편이었나 보죠?
아, 제가 학창시절에 한참 배꼽 좀 빼줬죠. (웃음) 한번은 어머니께서 학교 체육대회에 오셨다가 제가 누군지 몰라보셨대요. 그래서 담임선생님한테 제욱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저기 앞에 나가있는 애가 제욱이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학교 다닐 때 수업 중에 친구들이 지루해할 때가 있잖아요. 그럼 친구들이 저한테 싸인을 보내요. 그럼 제가 선생님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는 거에요. 이 선생님께서는 뭘 좋아하시지, 생각해서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다 보면 선생님께서 더 신이 나셔서 이야길 하시는 거죠. 한번은 친구가 핸드폰을 뺏겼을 때, 그 친구 아버지인 척 해서 핸드폰 돌려받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때부터 이미 싹이 노랬군요. (웃음) 그런데 어머니께서 아들을 몰라보셨다고 했는데 집안에서는 그런 모습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었나 보죠?
그래도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집안의 웃음 코드가 저로 바뀌었죠. 예전에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특유의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 같고, 중학생 때도 운동까지 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오면 11시가 넘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자고 아침7시에 일어나 학교 가야 되니까 어머니께 제 모습을 보여드리기가 쉽지 않기도 했죠. 시합을 보러 오시면 맞고 때리고 그러니까 마음 아파하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저를 보시고 뒤집어지신 거죠. (웃음) 그 때 제가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시트콤에 나왔던 노란 이소룡 옷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운동장 가운데서 입고 애들을 웃기고 있었으니까요. (웃음)
어머니께 재미있는 아들이 됐군요. (웃음) 아무래도 연기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나타난 변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기자가 된 이후로 스스로에게 감지되는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원래 워낙 활발했지만 좀 더 활발해진 면이 있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폭이 더 넓어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한가지만 가지고 얘기했다면 이젠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책을 많이 보게 됐고 영화도 많이 보게 됐고요.
예전엔 운동 때문에 바빠서 못했던 일도 많이 하게 됐을 테고요.
영화는 원래 좋아했지만 책도 많이 보게 됐고 그러려고 노력하게 됐죠.
연기에 대한 막연한 꿈을 현실에서 이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막연했던 생각을 확실히 구체화시키는 데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죠. 그런 지점이 있었을까요?
아직 확신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더 해야겠다는 투지가 생길 수 있었던 계기는 있었죠. <반올림>때 제가 원래 뚱뚱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쯤에 제 수영장 씬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반올림>감독님께서 그 장면에 나오려면 넌 살을 빼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때 제가 좀 더 내 모습이 화면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참 하던 차였거든요. 그런 찰나에 감독님께서 살 빼면 너 하고 싶은 거 한번 시켜준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그럼 저 몸 만들 테니까 수영장 씬 넣어주세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너 할 수 있냐, 그래서, 할 수 있다, 그랬죠. 결국 살을 뺐고 수영장 씬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일단 외양적으로 변화가 생겼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걸 하면 이렇게 한번 해주실 수 있겠느냐, 라는 저의 제안을 통해 얻어지는 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노력하면 되는 게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었죠.
노력하는 만큼 보답 받는 즐거움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연기자로서 뭔가 얻어가는 것들이 생길 거에요. 적게는 사람을 얻었다던가, 크게는 정말 자신의 내면적인 성숙을 깨닫게 될 수도 있겠죠.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직 출연작 수가 많진 않지만 되려 이럴 때 각각의 작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느 순간마다 그렇게 무언가 배우고 있다는 소중함이 있어요. 촬영 중간에도 배워지는 게 있고,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동안에도 아!(뭔가 떠올리는 표정으로) 이렇게 되는 순간이 있죠. 제 영화를 직접 보게 될 때는 특히 더 그렇죠. 매 순간순간마다 생각해야 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알고 싶어지는 것도 많아지고, 그 안에서 아, 그렇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도 생기죠.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됐으니까 다음에는 저렇게 해봐야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니까요.
처음 자신의 얼굴이 TV에서 나오는 걸 보는 순간 기분이 어떻던가요?
(웃음) 제가 직접 첫 회 녹화를 했었어요. 근데 보시면 아실 텐데 말도 못해요. 어휴~~! 그때 앞머리도 일자로 잘랐다가 갑자기 촬영이 금방 진행돼서 그것도 웃기고 또 어찌나 뚱뚱한지, 게다가 얼굴은 빨갛고 막 그러는데, 어이구~.(웃음)
스크린은 TV와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죽을 거 같아요. (고개를 도리질 치면서) 부끄럽죠. 전 정말 숨을 안 쉬는 거 같아요.
긴장이 돼서겠죠?
예. 그래서 숨을 죽이는 게 아니라 숨을 안 쉬고 보는 거 같아요. 특히나 그렇게 사이즈가 큰 화면에서 제 얼굴이 나오는 걸 지켜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죠. (웃음)
자신이 찍힌 영상을 보게 되면 실제로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한종석 같은 경우에서는 정말 내가 이렇게 나쁜 놈이 아닐까, 생각해보긴 했어요. (웃음) 제가 생각해도 한종석은 나쁜 놈이라고 생각되니까요. 그리고 <강철중>에서 학교교문 앞에 찾아온 다른 학교 애가 죽은 친구를 조롱하고 빈정거릴 때도 내가 이렇게 했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저는 제가 거기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 못 했었거든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온 거 같아요. 아무래도 자기 얼굴로 표정을 짓거나 대사를 할 때 모니터로 보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생각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요. 물론 세세한 부분들까지 다 머릿속에서 계산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스크린에서 볼 때는 간혹 그렇게 보여지는 게 있었어요.
학업도 병행해야 할텐데 힘들진 않나요?
지금 휴학했어요. 올 해 다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시나 시험을 좀 보려고요.
학교를 옮길 생각인가요?
그냥 1학년으로 들어가서 입학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다니던 학교가 있는데 굳이 학교를 옮기려는 이유가 뭘까요?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게 잘 안 맞더라고요. 제가 공연예술학과다 보니까 뮤지컬을 위주로 하고, 정극 연기수업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밖에 없었어요. 좀 배우고 싶었던 건 그쪽이었거든요. 그리고 무대연기 경험도 할 수 있었으면 했죠. 연기 외적으로 영화적인 것들을 학문으로 공부할 수도 있을 테고요. 물론 그게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알아요. 하지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이론에 대한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휴학하게 된 건 연기적 병행 때문이라기 보단 그런 학업에 대한 고민 때문인가요?
<폭력써클>촬영 중에 입학하게 됐고, 그 와중에 한 학기가 시작해서 초반에 잘 못 다니게 됐었죠.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게 있었어요. 연기이론 같은 걸 배우고 싶었는데 노래하고 춤추고 이러니까 난 이걸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닌데 싶었던 거죠. 공연예술학과라서 뮤지컬 위주로 많이 배우더라고요.
그럼 아무래도 연극영화과를 지망하고 있겠군요.
다음 달부터 고민을 좀 많이 해야 될 거 같아요.
세 편의 영화에서 맞거나 때리는 장면이 나와요. 그게 다 합을 짜서 이뤄지는 연기적 순간이지만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만만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좀 엉뚱한 질문이지만 때릴 때가 편하던가요, 맞을 때가 편하던가요?
둘 다 똑 같은 점은 하나 있어요. 한번에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 (웃음) 때릴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고, 맞을 때도 한번에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연기라지만 미안할 수 있고, 반대로 화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적으로 유발되는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순간이 있을 거에요.
<폭력써클>때 군인하고 싸우는 장면에서 뺨을 맞잖아요. 거기서 한 여덟 대인가를 살살 맞다가 여섯, 일곱 대를 또 세게 맞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짜 너무 아픈 거에요. 그리고 종석이가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 맞고 반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세대 맞고 나니까 그 다음부턴 이제, 때릴 텐데, 라는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쌓이더라고요. 그래도 전 그냥 연기하던 거랑 똑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형들이, 너 진짜 화났지? 그래서 아니라고 했죠. (웃음)
맞는 순간보다도 그걸 예감하고 기다리는 순간이 두렵게 되니까요.
맞아요. 맞기 전 찰나가 있잖아요. <강철중>에서 설경구 선배님이 부디 센 놈이 경찰 되라, 그러면서 뒤통수 때리는 장면에서도 ‘부디’ 할 때부터, 이제 맞을 텐데, 하면서 긴장했어요. (웃음) 오로지 그저 한번에 오케이가 좋아요. (웃음)
또래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친해진 사람도 있겠어요.
<반올림>때 (정)기범이랑은 1년을 함께 촬영해서 너무 친해졌고요. <폭력써클>때 (김)혜성이랑 동갑이라 친해졌죠. <반올림>친구들이나 <폭력서클>때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라서 공감대 형성도 쉽겠죠. 게다가 서로간에 격려나 의지도 될 테고요.
<강철중>시사회 때 혜성이가 와서 가운데서 손 흔들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다음 관에 가보니까 <폭력써클>때 친한 형들 다 오셨고요. 형들이 ‘연제욱 파이팅!’ 하는 거에요. 상영관 나가면서 강우석 감독님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뭐? 연제욱 파이팅?’ 이러시는데 어찌나 진땀 나던지. (웃음)
지금까지 고등학생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 고등학교 졸업식을 생각해 볼만한 타이밍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웃음)
지금 생각으로는 성인 연기라고 하면 벽이 있는 거 같아요. 지금까지 고등학생 연기만 했는데 성인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어떡해야 하나 싶어지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를 바 없다고 생각도 하죠. 분명히 그에 대한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집중력인 거 같아요.
막연한 두려움이 있나요?
항상 부담감과 두려움은 있죠. 지금까진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으니까 그만큼 당연히 잘해야 된다고 생각도 들고요.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다음 번에 어? 이렇게 만들면 싫잖아요. 더 잘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그래서 더 드는 거 같아요.
안태준 역할을 위해서 특별한 준비가 있었나요?
살을 좀 뺐어요. 워낙 리딩이나 준비연습을 많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집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는 대본을 많이 읽어봤던 거 같아요. 많이 읽고, 적어보고, 내 스스로 정리해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아무래도 혼자서는 연습보단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분석도 좀 하고, 아니, 분석이라고 하기엔 웃기고 그냥, 얘는 이럴 거야, 이런 식의 추측이었죠. 다만 <폭력써클>의 한종석하고, <강철중>의 태준이가 모두 강한 면이 있어서 똑같아 보일 까봐 걱정했었죠.
과거에 비해 연기를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전보단 생각하거나 준비하는 부분이 많아진 거 같아요. 종석이 때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센 영화를 많이 봤거든요. 거기서 느껴지는 걸 관객들에게 그대로 느껴지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표정 같은 걸 생각하고, 내가 이걸 어떻게 할까, 를 생각했죠. <폭력서클>당시엔 현장에서 박기형 감독님도 많이 잡아주시긴 했죠.
한종석 같은 경우는 조 페시 연기를 많이 참고했듯이 안태준을 위해 참고한 모델은 없나요?
아니요. 안태준은 없었어요. 특별히 감독님께서 말씀이 있으셨다면 봤겠지만 특별히 말씀도 없으셨고요. 그냥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전 누구를 참고하는 건 좋지만 그게 항상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 안 해요. 비슷한 캐릭터나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을 파악하고 그걸 관객분들에게 느끼게 해드려야지, 그걸 벤치마킹 한다거나 이런 건 그저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예. 맞아요.
연기를 시작한 이후로 영화를 보는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모르고 볼 때는, 말 그대로 ‘영화’를 봤죠. 근데 이젠 진짜 재미있게 봤다면 두세 번은 봐야 돼요. 영화를 보면서 그 안에서 뭔가 끄집어내려는 것도 있어요.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겠구나,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본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있나요?
<살인의 추억>같은 경우는 영화감상부에서 활동할 때, 영화관에서 봤어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마치 뭐에 맞은 거 같았어요. 인간극장 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잖아요. 그리고 어느 날 친구가 <공공의 적> 봤냐고, 그러는 거에요. 그게 뭐야? 그랬더니, 쓰러질 거라고 그래서 보곤 쓰러졌죠. (웃음) <주먹이 운다>같은 경우는 스무 번도 넘게 봤어요. 두 인물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느낌이 좋아서요.
단순히 대비를 위한 캐릭터 구도라기 보단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안고 가는 인물이니까요.
극 중 태식이나 상환의 상황에 감정 이입되면서 많이 울었어요. <반올림>할 때 용인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봤는데 상영관에 세 명 있더라고요. 지금은 그 극장이 없어졌어요. 하여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배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김윤석 선배님이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 아빠로 나왔을 때, 진짜, ‘우와~!’ 했죠. <타짜>의 아귀도 대단했지만 전 동구 아빠가 참 무서웠거든요. 정말 감탄하면서 봤죠. 예전엔 <파이란>보면서 최민식 선배님도 그저, ‘와~!’. 제가 평소에 대단한 걸 보면 ‘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웃음)
김윤석 씨나 최민식 씨 같은 배우는 연극무대를 기반으로 연기적 내공을 쌓은 분들이에요. 그런 점도 본인에겐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아직 무대를 접해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그게 정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고 싶어요. 연극을 보러 가면 무대가 바뀌고 그런 순간조차도 엄청난 집중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시간을 위해 투자되는 연습, 그런 것들에 의해서 무대가 철저히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그건 정말 연기적인 부분만큼이나 집중력을 기르는데도 충분히 많은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엄청 어려울 거라고 생각도 되고요.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 당시 쓰러지며 봤던 <공공의 적>시리즈에 본인이 출연했군요.
그렇죠! 제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웃음) 오디션 보면서 이미 하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만약 다른 친구나 심지어 선배님이 됐더라도 너무 아쉬워서 쌍심지 켜고 봤을 거에요. 물론 같이 오디션 봤던 다른 분들도 그랬겠죠. 쟤가 어떻게 했을까, 라면서.
앞으로 또 본인이 인상적으로 봤던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하게 될 기회가 생길 거에요. 혹시 다음 작품에서 해보고 싶은 역할을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이제 강한 캐릭터 말고, 좀 선하게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봤으면 좋겠어요. 절 보셨던 분들이, 얘가 이런 면이 있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이죠. 반대로 저를 못 보셨던 분들이, 이런 애구나, 했다가 제 전작들을 찾아보시고, 이런 애였어?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일단 강한 면이 덜한, 부드럽거나 코믹한 연기를 하고 싶죠. 물론 지금은 일단 불꽃처럼 열심히, 화이팅 해야죠. (웃음)
나름대로 한종석이란 캐릭터가 이젠 극복의 대상이 된 셈이군요. 어쨌든 그 캐릭터가 연제욱이란 배우의 데뷔전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란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그걸 좀 풀어야죠. (웃음)
확실한 건 부모님 입장에서는 선한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웃음) 나름대로 지금까지는 좋은 평가를 얻었어요. 그만큼 아직 드러낸 것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에 따라 기대감도 커질 테고 그러다 보면 성장통을 겪기도 하겠죠. 한번쯤은 스스로 고비를 느끼는 시점이 올 수도 있을 거에요.
다들 어느 순간 그런 때가 온다고, 막연하게 힘들고 다 없을 때가 온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때는 그 때 나름대로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노력해야죠.
불꽃처럼 열심히?
파이팅 해야죠.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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