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K> 시즌5의 실패 앞에서 혹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기라고 떠들었다. <K팝 스타 3>는 이를 비웃듯이 흥하고 있다.
요즘 <K팝 스타 3>는 지난 두 시즌과 또 다른 궤도에 올라선 것만 같다. 게다가 그 이전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강자로 꼽혔던 <슈퍼 스타 K> 시즌5의 몰락 이후에 거둔 성공이기에 더욱 그 성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같다. 잘 알다시피 <K팝 스타 3>의 변화란 양현석, 박진영과 함께 심사위원석에 앉게 된 유희열의 등장이다. 사실 기우가 없지 않았다. 지난 두 번의 시즌 동안 심사위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이가 바로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던 보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희열은 <K팝 스타>에 완벽하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장본인이 됐다.
사실 유희열의 가세로 인한 가장 큰 수혜주는 심사위원 박진영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2도에서 6도 사이를 오가는 화음 지적과 ‘공기 반 소리 반’이란 명언까지 남기며 온갖 비아냥을 들어왔던 박진영은 유희열의 등장으로 인해서 오히려 어떤 전문성을 인정받게 된 것만 같다. 지난 시즌까지 심사위원을 맡았던 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음악적인 전문가로서의 심사 견해를 표현한 건 박진영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진영이 비아냥을 듣게 되는 건 그가 음악 전문가의 입장에서 심사하기 때문이 아니다. 박진영 혼자서 전문가로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던 양현석과 보아는 음악적인 전문가라기 보단 자신이 몸담은 제작사의 대표자로서 위치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본적으로 옥석을 가리는 눈이 존재할지 몰라도 음악적인 견해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귀를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덕분에 심사위원석에 앉은 그 누구도 박진영이 구사하는 단어나 화법에 대해서 놀릴 수는 있어도 그 견해에 대해서 명확하게 지지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인상은 아니었다. 마치 심사위원석의 외딴 섬 같았다.
유희열은 작곡과 제작 능력을 지닌 전문 뮤지션이다. 그만큼 음악적인 전문성에 신뢰가 간다. 가끔씩 박진영이 외계어처럼 화음과 발성에 관한 지적을 하거나 칭찬을 할 때, 유희열은 그 반대편에서 적당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그 의견에 동참하기도 한다. 보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때론 냉철하고 과감하다. 어떤 식으로든 박진영이라는 심사위원으로서의 면모보다도 음악가로서의 역할을 납득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전반적으로 심사위원석에서 긴장된 분위기가 누그러진 반면 웃음의 빈도가 늘었고 활력이 더해진 것도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는 유희열 특유의짖굿은 입담 덕분때문이다. 게다가 때때로 진행자 역할을 해낸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K팝 스타 3>는 유희열의 영입을 통해서 덕분에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의, 포괄적으론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전문성을 보다 확실하게 구축하는 동시에 예능으로서의 재미까지 확보했다. 유희열이 세 심사위원의 균형에 있어서 무게 중심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덕분이다. 보아가 없어서가 아니다. 유희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K팝 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전에 음악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시청자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물론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다.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이니 노래로서 설명하는 거다. <슈퍼스타 K> 시즌5가 간과한 것이 여기에 있다. <슈퍼스타 K> 시즌5는 가수를 뽑는다고 했지만 예선을 진행하는 동안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었다. 예선을 보는 내내 끝까지 편집만 했다. 노래는 뭉텅뭉텅 잘리고, 오디션 참여자들의 사연 팔기에 연연하고,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만 배가시키는데 눈이 멀었다. 노래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날이 갈수록 엄격하기만 했다. 이유를 알 길이 없는 셈이다. 그만큼 경연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경연 참여자의 매력은 사연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대가 제대로 보일 때부터 자라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어한다. 누가 몇 점을 받았는가에 대한 흥미는 그 다음이다. 게다가 이상한 건 심사위원들 또한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특히 생방송에 들어간 이후부턴 평점 자체가 들쑥날쑥했다. 오디션 참가자들도 심사위원들도 하나 같이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흥미가 없으니 긴장도 되지 않는다. 볼 맛이 안 난다. 2%도 미치지 못한 결승전 시청률은 결과적으로 그리 됐다는 수치상의 결과를 벗어나서 그 과정을 보건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엄하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기를 진단하는 글들이 쏟아졌지만 그건 그저 <슈퍼스타 K>만의 자만에서 비롯된 실패였다.
<K팝 스타 3>는 <슈퍼스타 K> 시즌5가 간과한 것들에 제대로 집중하는 인상이다. 기본에 철저하다. <K팝 스타 3>를 보면서 단 한번도 노래에 지나친 편집을 가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경연에 참여한 이의 실력을 시청자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시청자 역시 오디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가 팬이 되는 건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덕분에 볼 맛도, 들을 맛도 난다. 누가 어떤 목소리를 지녔는지,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겠다. 그만큼 심사위원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프로그램 내내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K팝 스타 3>를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반대로 <슈퍼스타 K> 시즌5가 팬을 만들기는커녕 죄다 밀어낸 건 바로 이런 과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가 어린 참가자들을 경쟁으로 밀어 넣는다는 점에서 가혹한 면이 있다. 그만큼 땀과 눈물을 딛고 그 무대에 선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 무대에서 찬사를 받든, 지적을 받든, 그 무대에 서있는 순간만큼은 그 무대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존중이란 간단하다. 경쟁을 통한 당락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바로 무대이고 노래다. 노래하는 이에겐 최상의 무대를, 지켜보는 이에겐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된다. <K팝 스타 3>가 그렇다. 그래서 흥행하는 것이다.
생방송 무대에 진출한 톱 10 가운데 두 팀의 탈락자가 가려진 지난 3월 9일 방송은 시청률 10.5%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지금까지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해나가고 있다고 평할만하다. 게다가 앞으로의 생방송 무대를 채울 8명의 경쟁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 인상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언제나처럼 기대 반 응원 반으로 지켜보겠다. 그러니까 권진아 파이팅.(…응?)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키우고 무대에서 이를 입증한 이만이 명성을 얻고 성공이란 단어를 거머쥔다. 80년대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페임>은 성공을 꿈꾸는 청춘남녀의 스토리를 담보로 춤과 음악적 묘미를 발산하는 뮤지컬 영화다. 무엇보다도 80년대의 <페임>과 2009년의 <페임>은 대중문화의 시대적 변화를 통해 큰 차별점을 둔다.
알란 파커의 80년대 원작에서 들려진 타이틀 넘버 ‘페임(fame)’을 변주한 동명타이틀곡만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페임>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대중문화적 패러다임을 적극 반영한 작품이다. 엠비언트 뮤직이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힙합 등 현대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비롯해 현대무용까지 포괄한 대중문화의 변이를 대거 활용한 <페임>은 80년대 원작과 전혀 다른 포장지를 활용함으로써 리메이크물로서의 차별화를 이룬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페임>은 뉴욕의 유명 예술고 입학 오디션에 무수한 경쟁률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기까지의 진급과정을 서사적 줄기로 밀어간다. 오디션과 매학년 시기, 그리고 졸업까지, 이 모든 과정을 서사적 챕터로 구분한 <페임>은 학생들의 성장과 관계적 진전을 주요한 사건으로 다룬다. 그만큼 청춘의 감수성을 밑천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인물 관계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묘미가 마련된다.
다양한 학생들의 단계적 성장을 지켜보는 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 너무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까닭에 집중력 있는 성장담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건 <페임>이 성장드라마로서 약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분절된 챕터로 구성된 입학과 진급, 졸업까지의 과정이 드라마의 진전을 방해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서사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건 일면 아쉬운 측면이다. 그럼에도 <페임>은 분명 뮤지컬 영화로서 즐길만한 순간들이 자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빠른 컷으로 시선을 잡아 끄는 초반부 오디션 장면부터 즉흥적인 연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식당 시퀀스, 그 밖에도 무도회를 비롯한 다양한 가무의 향연이 곳곳에 배치되어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든다. 특히 피날레를 장식하는 졸업공연은 분명한 볼거리다.
혈기왕성한 도전과 낭만이 깃든 예술고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생기발랄한 청춘의 일상을 그려나가며 에너지를 확보한다. 무엇보다도 <페임>의 덕목은 성취만큼이나 좌절의 과정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단지 성장하는 학생의 사연에 집중하기보다도 어린 학생들의 재능을 다스리고 바른 길로 이끄는 교사들의 진실된 표정과 솔직한 조언을 인상적으로 묘사한다. 프로 댄서가 되길 원하는 제자의 실력이 부족함을 냉정하게 조언함과 동시에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주는 교사의 얼굴은 경쟁의 본질이란 단지 누군가를 이겨내는 것이 아닌 자신에 대한 끝없는 극복임을 일깨운다. 단지 타인보다 위에 서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바로 경쟁의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도 <페임>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공유할 수 없는 엄격한 교육문화와 자발적이고 여유로운 경쟁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타인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결국 그 체제에서의 낙오는 좌절보단 새로운 도전을 낳는다. 줄세우기를 통해 성공하는 자와 낙오하는 자 사이에 선명한 금을 그어버리는 사회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는 낭만이 실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