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되는 건 비단 소설, 공연, 음악뿐만이 아니다. 작년에 개봉된 <히트맨>을 비롯해 너무도 유명한 <툼 레이더>나 <레지던트 이블>과 같은 사례처럼 오늘날 롤플레잉 게임(RPG)도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출처가 되고 있다. 특히 자극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이미지에 몰두하고 있는 오락영화의 경향 속에서 어떤 게임들은 충분한 매력을 구가할만하다. 동명의 게임을 모티브로 한 <맥스 페인>도 마찬가지다.
슈팅이 주가 되는 롤 플레잉 ‘맥스 페인’처럼 영화 <맥스 페인>은 총격이 난무하는 액션씬의 스케일을 전시한다. 권총과 리볼버, 샷건과 기관총까지 다양한 총이 등장하는 <맥스 페인>은 분명 여지없는 액션 영화(처럼 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일단 캐릭터의 사연이다. <맥스 페인>은 액션 시퀀스를 지니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리 호쾌한 액션 영화는 아니다. 되려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암울하고 침침하여 시종일관 무겁고 어둡다. 미해결 사건 부서(cold case unit)에 소속된 주인공 맥스 페인(마크 윌버그)의 타이틀을 제목으로 내건 영화는 미궁에 빠진 그의 사연을 추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이 영화는 게임의 이미지를 그저 모티브로 소환했을 뿐, 게임과의 완전한 연관성을 염두에 둔 것 같진 않다. 다만 종종 액션 시퀀스에서 활용되는 블릿타임이나 슬로우 모션은 게임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매트릭스>에서 선사한 충격 이후로 이제 그것이 탁월한 성과를 이루지 않곤 맥 빠질 거란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암담한 건 단지 이 영화의 분위기가 아니다. 이 영화 자체가 실로 암담하다. 슈팅에 기반을 둔 롤플레잉 게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만큼 액션 시퀀스에서 낭비되는 탄환 수는 상당하지만 그것이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건 허세가 지나친 탓이다. 지나치게 낭비되는 스타일 앞에서 반응 속도가 느슨해진다.
의외지만 <맥스 페인>이 주력하는 건 이미지가 아닌 스토리다. 단지 게임은 모티브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포스트 9.11의 그림자도 노골적으로 아른거린다. 뉴욕의 톤 다운(tone down)된 색채도 세기말적이다. 묵은 냄새가 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맥스 페인>은 기존에 이미 써먹을 대로 써먹어서 너덜너덜해진 것들을 콜라주 하듯 스크린에 갖다 붙인다. 그 와중에 뉴욕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만들고 싶어하고 그 세계의 음모론을 파괴하는 고독한 안티히어로의 그림자를 그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맥스 페인이 바라보는 환각의 도시에서 활공하던 발키리의 무의미한 이미지처럼 <맥스 페인>은 허무맹랑하다. 액션은 기이한 슬로 모션의 강박에서 허우적거리고, 진지하게 흐르는 스토리는 지쳐 쓰러진다. 한가지 확실하게 증명되는 건 포스트 9.11의 영향력이 이 단순 명확한 게임마저도 지독한 허세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대단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좋은 영향력이 아니란 점에서 실로 유감이다.
<007 카지노 로얄>은 새로운 징조였다. 젠틀한 매너로 본드걸의 마음을 사로잡는 훈남 스파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22번째 ‘007’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이하, <007 퀀텀>)는 전작의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받은 새로운 작전명이다. 전작의 아크로바틱한 오프닝만큼이나 육중한 카체이싱으로 포문을 여는 <007 퀀텀>은 근육질로 대변되는 터프한 마초적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았음을 무심하듯 시크하게 증명한다.
<007 퀀텀>은 정체불명 글로벌 조직의 배후를 추적하고 그들의 음모를 소탕하는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의 활약을 그린다. 동시에 전작 <007 카지노 로얄>의 결말부에서 목숨을 잃은 연인 베스퍼(에바 그린)의 복수를 노리는 제임스 본드의 사적 심리를 끌어내기도 한다. 제임스 본드의 호화로운 스타일은 유지되지만 그는 더 이상 여인에게 추파를 던지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지나간 연인에 대한 깊은 향수가 제임스 본드를 지배한다. 말없이 묵묵한 인상에서 단호한 의지가 보인다.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정형화된 대중성은 그렇게 변주된다.
‘007’이란 프랜차이즈는 일종의 수단에 불과하다. <007 카지노 로얄>은 냉전이라는 패러다임으로 고착화된 브랜드를 갱생시키기 위한 일종의 시도였다. 선악의 개념으로 대비되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경계가 이데올로기의 몰락과 함께 죽은 언어로 퇴색하고 제3세계의 약진으로 재편된 세계 질서 속에서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것 같았던 시리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옷을 갈아입는데 성공했다. <007 퀀텀>은 시도를 통해 고무된 새로운 선언과도 같다. 제임스 본드는 이익에 따라 손을 잡거나 등을 돌리는 전세계적 질서 사이에서 더욱 돈독해지고 치밀해지는 음모의 배후를 추적한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서 첩보원의 존재는 시대착오적인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정보의 소유가 거대한 이익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아날로그적 접근은 더욱 절실해진다. 제임스 본드의 육체가 더욱 부각되는 건 그만큼 더욱 복잡하게 움직이는 정보의 뒤를 쫓아야 하는 현대 첩보전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첨단기기를 총동원해 세계를 감시하는 디지털 첩보전의 공백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제임스 본드는 당연히 강인한 육체의 소유자여야만 한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적격이다. 그의 제임스 본드는 새로운 세대를 영접하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의 적자나 다름없다.
육해공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다채로운 액션씬은 <007 퀀텀>을 스파이물보다 액션물의 기준에서 바라보고 싶게 만든다. <본 얼티메이텀>을 비롯한 ‘본’ 시리즈의 영향력인지 정교하면서도 묵직한 육박전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심지어 제임스 본드는 제이슨 본처럼 장소를 불문하고 시종일관 달리고 또 달린다.-실제로 <본 얼티메이텀>의 액션감독을 맡았던 댄 브레들리가 <007 퀀텀>의 액션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도망자 제이슨 본이 아닌 추격자 제임스 본드는 고뇌의 무게보단 저돌적인 과감함을 선택한다. 무엇보다도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기존의 제임스 본드들과 궤를 달리하면서도 그 클래식한 느낌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캐릭터의 형상은 겹쳐지지만 태도적 차이는 궁극적으로 독립적인 이미지를 보존한다. 뉴타입으로 개조된 제임스 본드는 또 한차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시대는 변했고, 제임스 본드도 변했다. 하지만 '007'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드, 제임스 본드의 성공적인 귀환이다. 잭 화이트의 기타 훅(hook)과 알리샤 키스의 소울풀한 창법으로 새롭게 변주된 오프닝 넘버는 신세기 제임스 본드의 본격적인 재출범을 알리는 강렬한 신호탄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