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1.21 <글러브>진루타는 있으나 홈런이 없다.
  2. 2011.01.11 <글러브> 단평 2
  3. 2010.07.17 <이끼> 변주가 아닌 변질
  4. 2008.05.30 유선 인터뷰

한때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꼽혔던 김상남(정재영)은 이제 구단 내에서도 손사래를 치는 사고뭉치 퇴물투수에 불과하다. 음주에 폭행시비까지 휘말린 그는 선수생명에 제동이 걸린 위기에 몰린 가운데, 학창시절 절친이자 매니저인 철수(조진웅)에게 떠밀려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충주 성심학교의 야구부 감독직을 맡게 된다. 야생마처럼 길들이기 어려운 퇴물 투수가 소리가 없는 세상 속에서 배트를 휘두르고 글러브를 쥔 소년들과 함께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 나선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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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단평

cinemania 2011. 1. 11. 09:25

140분이 넘는 러닝타임은 과하다. 오글거리는 대사나 간지러운 표정 연기도 숱하게 나온다. <글러브>는 꽤나 올드한 영화다. 단도직입적으로 촌스럽다. 역설적이지만 그게 눈길을 끈다. 장애를 극복하는 스포츠영화라는, 이미 닳고 닳은 영화적 양상을 직구로 관통한다. 정재영은 때때로 과한 감정에 홀로 도취되는 이 영화의 감정에 진심의 무게를 얹어 내며 구원투수 노릇을 한다. 야구 영화치고 경기 장면이 재미없다는 건 맥 빠진 중심타선을 보는 느낌이지만 홈런은 아니더라도 진루타는 쳐내는 드라마가 대타 노릇을 해낸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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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고수하며 싸움에 승리한 남자에게 남은 건 영광이라 부르기조차 넌더리나는 상처 뿐이었다. 가정은 무너졌고, 직장은 사라졌다. 만신창이처럼 너덜해진 삶 속에서 무기력을 체감한 남자는 덧없는 교훈 하나를 짊어진 채 관계를 단절시키듯 살아왔던 아버지의 시신이 놓인 지방의 마을로 떠난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굴 속으로들어가듯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키기 위해 서울을 떠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환대 속에서 싸늘한 기운을 느낀 남자는더러운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 마음에 지펴오르는 의심을 좇아 그 실체의 조각들을 수집하고 점차 완성돼 나가는 거대한 비밀과 마주서다 이에 맞서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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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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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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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져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웃음)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닌데.

원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사실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끌어 가는 힘있는 스릴러물은 좋아한다. <검은집>은 그런 점에서 맘에 들었고.

개인적으로 유선 씨는 액션 배우라고 생각한다. (웃음) 몇몇 드라마를 통해 종종 보여준 모습을 사례로 들자면. 이번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단순 주먹다짐에서 살벌한 칼부림으로. (웃음) 몸을 뒹구는 격투씬을 비롯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육체적인 면보단 정신적인 면에서 많이 힘들었다. 만약 내가 귀신이라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다. 내 캐릭터가 관객을 서늘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그 몫을 할 수 있을 지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으로 그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아 정신적 부담이 컸다. 사실 육체적으로 부딪치는 건 견디면 되니까, 그건 큰 고통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정민 씨는 힘들어 보이더라. 코도 진짜 물린 걸로 알고 있다. 꽤 아파 보이기도 하고. (웃음)
괴성을 그냥~~, 끝나고서도 계~속~ 지르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웃음) 진짜 이빨 자국 제대로 남았더라. 아팠을 거야. (웃음)

설마 개인적인 감정을 그런 식으로?(웃음)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웃음)

신이화라는 역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떻던가? 아무래도 만만해 보이는 역은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그 동안 나 스스로 강하고 흡입력 있는 걸 원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격정적인 뭔가를 밖으로 분출하고 싶은 욕망들이 내면에 많이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캐릭터가 쉽게 찾아지는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선에서 한정된 탓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 신이화는 너무나 단비 같았다. 내가 그 동안 갈구했던 캐릭터라서 너무나 반갑고 흥분되는 기회였지.

<검은집> 이전에 이미 2번의 공포 영화 경험이 있지만 어떤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검은집>은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다.
사실 이거 스포일러 감인데. (웃음) <검은집>이 장르적으로 관객에게 책임져야 될 몫, 즉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주며 공포로 몰아넣어야 하는 몫의 상당부분을 내가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진행과정과 스토리가 갖는 힘도 있지만 내 연기가 그런 어필을 할 수 있어야만 장르 자체가 살 수 있다고 판단되더라. 역할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던 것도 그래서였고. 작품에 내가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잘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건 늘 생각했던 문제지만 평소 이상의 부담이 지워진 듯한, 영화의 장르적 책임감을 내가 상당 부분 짊어져야 된다는 부담이 굉장히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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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만나보니 연기를 통한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여자로서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했다. 여자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다소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보여줬으니 그에 비해 가늘고 섬세한, 좀 더 디테일한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편안하거나 일상적으로 풀어진 역할도 해보고 싶고. 근데 항상 난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에 많이 끌리더라. 예를 들면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고 몇 날, 며칠 동안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렌 적도 있다. 최근 <블랙북>의 여배우도 시작부터 끝까지 날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캐릭터였다. 마치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인물의 모습 아닐까 싶을 만큼. 늘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많이 끌리는 것 같다. 내 취향 탓인가? (웃음)

<검은집>의 신이화도 그런 측면의 선택일 법한데, 하지만 개인적인 갈등이 없었을까?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각인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그런 우려를 많이 해주시지만 오히려 막상 난 전혀 고민이 안된다. 만약 나란 배우의 가능성을 어느 한 캐릭터의 이미지로 몰아서 한계를 짓는다면, 오히려 난 그들의 안목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만큼 갖고 있는지는 물론 나도 모른다. ‘저 배우는 너무 강한 역할만 해서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어느 한 켠에 있겠지만, 어딘가엔 내가 표현한 것을 보고 되려 그 외의 다른 건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지닌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작업 기회가 왔을 때, 기존 이상의 이미지들을 내가 창조하고 만들어가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배우를 한 번 연기한 이미지로 한정 짓는다면, 배우가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두려움이 클까. 당연히 모두가 그렇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자신감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의 경험과 드라마와 영화로의 경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나?
난 어려운 숙제를 만날 때 의욕과 활기가 더욱 충전되는 스타일이다.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 ‘이걸 풀 수 있을까, 어떻게 풀지?’ 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직접 풀어보고 싶은 거지! (웃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전에 무조건 일단 달려들어서 풀어보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있는 거 같다. <검은집>의 신이화 역은 누가 봐도, 어떻게 표현하면 된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서는 인물이 아닌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속에서 우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식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잘못 표현하면 엽기적이고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좀 있었다.

싸이코패스(psychopath)란 소재가 낯설다는 점도 하나의 어려움이 아니었을까.
일단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인터뷰나 연구 논문 같은 것들.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등을 알게 됐고, 그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계기나 과정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됐다. 그런 고민을 신이화에게 대입해서 어떤 성장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랐을까를 추측했다. 예를 들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은 장애를 지닌 것이고,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대인관계에 위축되고 소외감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이란 걸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걸 직접 구하지 않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강한 생존 본능이 생겼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인물에 대한 비하인드(behind)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기 전에 예습부터 하느라 애 먹었겠다. (웃음)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설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 어떻게 보면 원작 속에 이미 존재했던 인물과 달리 <검은집>의 신이화는 한편으로 재창조된 인물이나 다름없다. 외형적인 느낌부터 시작해서 원작의 사치코로부터 내가 참고하거나 가져올 게 별로 없었을 정도로 다른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괴기스러움을 풍기는 인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묻혀 살아가던 사람의 정체기 드러나는 순간의 섬뜩함을 노린 영화니까. 나는 시나리오만을 토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그 인물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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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할 지 모르지만 혹시 주변에 그런 인물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없나? (웃음)
글쎄. 만난 적 없길 바라고, 앞으로도 만나고 싶지 않은데. (웃음) 처음 준비할 때는 자료를 보면서 정말 이렇게 무서운 사람들이 있을까 싶더라.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알고 보니 무서운 자들이었단 사례들을 자꾸 접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벽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들의 성장 과정이 남다르다는 것,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거나 가정에서 사랑 자체를 경험해보지 못했단 사실을 발견했다.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거지. 마치 신이화처럼.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서 우리가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고, 일단 내가 살아가기에 급급한 상황에 집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의 사실을 떠나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들을 암적인 존재나 다른 인격체로 치부하며 무조건 선을 긋고 격리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와 각자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서 오히려 누구나 이기적인 모습을 할 때가 많지 않나.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죄의식을 못 느낀다는 측면에서 싸이코패스적 성향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우리 모두에 대한 고민이지 불과,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강신일 씨와는 예전에 연극 <날 보러 와요>로 친분이 있던 사이기도 했고.
사실 그분의 경력과 신뢰받는 위치가 내겐 부담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 연극할 때부터 정말 너무 편안했다. 때론 후배로서 연기할 때, 자칫 선배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야?’ 싶은. (웃음) 그렇게 위축되거나 눈치 보일 수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사람 자체가 너무 포근하고 인자하시다. 한 6년 전쯤, 연극에 발 내디딘 지 얼마 안되던 신인 시절에도 선배님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편안했던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인상으론 덩치가 크진 않은데 후덕한 느낌을 주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분의 손까지 잘랐으니. (웃음)
이런! (웃음) 종종 선배니까 후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껴서 직접적으로 지적할 수도 있는데 강신일 선배님은 끝까지 그냥 지켜보신다. 그러다가 내가 도움을 얻고자 할 때나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땐, 굉장히 조용하고 진지하게 한두 마디 던져주신다. 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즉 표현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내가 방법을 발견하고 찾을 수 있게끔 조언을 해주신다. 좀 더 멀찍하게 방향을 잡아주는 거다. 그게 나한텐 지혜롭게 다가오는 충고가 된다.

황정민 씨는 어땠나? 극 중에선 칼부림하는 사이였는데. (웃음)
정민 오빠는 굉장히 창의력이 있는 배우다. 내가 내 틀 안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꾸 넘나들어야 되겠다는, 내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상의 뭔가를 자꾸 연구하고 끄집어내려고 해야겠단 생각을 갖게 만든 사람이다. 그만큼 자기 연기와 캐릭터를 놓고 고민할 때 항상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지를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법한 연기 스타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좀 더 다른 선택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더라. 그래서 기존 영화 속 캐릭터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황정민스러운 선택과 노력들이 캐릭터를 조금 남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지.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주로 누가 맡았나? 의외로 강신일 씨가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아! (웃음) 강신일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말씀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애써서 유머를 하다가 반응이 썰렁하면 혼자 자책한다. (웃음) “또 재미없는 거지. 아, 또 내가 괜한 말 한 거지.” 이런 식으로.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웃음짓게 된다. 그런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한테 편안함을 준다.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 선배가 아닌 그냥 편안한, 존재 자체가 훈훈해서 너무 좋은. 반면, 정민 오빠가 주로 코믹한 상황이나 웃음을 많이 유발시켰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빠만의 유쾌함이 있다. 늘 진지하기만 한 사람이 아닌,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다. 덕분에 현장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많이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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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하고 어두운 세트 촬영이 많았다. 특히 지하실 같은. 그런 공간에서의 촬영으로 다소 지치진 않았나?
세트가 일단 지하로 설정돼서 천장도 거의 다 덮어버렸고, 결국 공간 자체가 많이 폐쇄적이라 답답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그래서 계단 내려가는 것까지 하면 내 기억에 한 이 주 정도의 시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다. 정말 정민 오빠 말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난 내 집이었으니까 내 집처럼 누비는 자연스러운 설정을 위해 맨발로 다녀야 했다. 그런데 지하가 과거 목욕탕이라 바닥에 깨진 타일도 있고 종종 치우지 못한 유리조각 같은 게 많았다. 테이핑을 발바닥에 해주긴 했는데 그게 자꾸 떨어져서 나중엔 그냥 맨발로 누볐다. 아무래도 공간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많았다.

단순하게 나이만을 따진다면 데뷔시기가 다소 늦은 편이다. 물론 나이가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데뷔가 늦어서 필모그래피가 많이 쌓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 경력이 나만의 진지한 선택과 의미 있는 작업들로 좀 더 쌓여있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하지만 일찍 데뷔했다 해도 지금 나이에 만난 작품들처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롤(role)을, 과연 그때도 만날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든다. 어떻게 보면 30대 이후가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안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깊이가 마련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무게가 좀 더 실리는 듯한. 그래서 내가 일찍 데뷔하지 못해서 놓친 작품들보다 지금부터 앞으로 만날 작품들이 더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실속은 차린 것 같다. 항상 주연급의 비중은 아니었는데도 나름대로 캐릭터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건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맡았기 때문이 아닐까.
전면 주연이란 타이틀도 장단점이 있을 거다. 드라마든 영화든 타이틀 롤이 되는 배우는 필두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전반적인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그만큼 그 배우가 뭔가 전폭적으로 보여줘야 되는 책임과 부담감을 짊어지는 셈이지. 결국 잘 되면 그 배우 덕분이지만, 안 되도 그 배우 탓일 수 있다. 누릴 수 있는 혜택만큼 짊어져야 되는 부담도 많을 거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난 실속 있는 거지. (웃음) 롤의 비중과 무관하게 난 작품에서 충분히 내 역량만 발휘하고 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 롤이 그런 면에선 더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나도 전면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게 없으면 솔직히 사람이 아니지. (웃음) <검은집>도 정민 오빠 얼굴이 포스터를 다 차지하고 있잖아! (웃음) 물론 영화상으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있어서 뒤에 숨겨져 있어야 되는 탓도 있지만. 사실 <황진이>의 송혜교 씨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쯤 갖고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도 굉장히 크겠지만 배우가 원 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부각을 혼자 다 받고 누렸으니까. 물론 그 배우가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질 필요는 없지만 영화의 핵이었던 만큼 책임감과 부담은 여전히 계속되겠지. 얻는 게 있으면 잃어버리는 게 있는 거니까. 일단은 내 역할 안에서 편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한 적은 없다. <4인용 식탁>이나 <가발>이나, 그런 면에서 <검은집>의 흥행을 내심 기대될 법하다. 공포영화치곤 상당히 많은 개봉관을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매번 열정적으로 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스스로 많은 기대감이 든다. 사실 <가발>같은 경우도 많이 고생했다. 내가 말 못하는 설정이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했고, 감독님과 많이 상의하면서 나름대로 정성껏 찍었다. 하지만 관객들한테 외면당한 결과로 인해 당시엔 상실감이 컸다. 영화가 안된 이유가 왠지 내가 강하게 어필을 못한 부분 탓이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가발>의 ‘지현’은 엔딩의 감정을 책임지는 인물이라 마지막의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해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게 관객에게 다가가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고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가발>은 내가 열정적으로 깊이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같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주는 간 아니라는 어려운 과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번 <검은집>도 힘들게 고민하며 정성껏 찍었기 때문에 역시 기대감이 생기고,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 몇 배 많은 기대감과 관객에게 좀 더 인정받고, 평가 받고 싶은 욕심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걸 좀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웃음) 결국 내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건 그만큼 내가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거라 생각한다. 결과와 상관없이 내겐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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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역할을 해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맞다. 아이가 있었던 것도 처음이고.

그래서인지 처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섭섭하지 않을까 싶더라.
너무 언발란스해서? (웃음) 근데 너무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보기 전엔 캐스팅에 갭이 큰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그게 부조화스럽다는 거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셨다고 하더라.

나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웃음)
만약 두 사람이 부부로서 생활하는 모습이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보여졌다면 관객에게 어색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집>은 부부가 맞물린 일반적인 생활보단 각자 다른 공간에서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서 두 사람은 다른 개체로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로맨스의 혜택을 누려본 적은 없어 보인다. 여자배우로서 찐한 사랑연기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을 텐데.
정말 징글징글할 만큼 처절한 사랑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드라마에서 많이 봄직한 삼각 관계, 사랑의 줄다리기 뭐 이런 거라도? (웃음) 농담이고, 징글징글하게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 이야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긴 이제 눈에 힘 그만 줄 때도 됐다.
맞아! 이제 눈에 힘 빼야 돼! (웃음)

그래서인지 독신녀나 프리랜서 같은 이미지가 어울려보인다. 실제로 그런 역할도 많이 했고. 그런데 배우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나?
난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겠다며 한 우물만 판 케이스라, 다른 데로 눈 돌려본 적 없다. 내 친구가 한번은 나한테 “너 이거 안 하면 뭐 할래?" 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웃음) 사실 다른 재주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도 없고, 자랑은 아니지만 심지어 특별한 취미도 없다. 연기 외에 크게 즐거운 건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연기를 특출 나게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웃음) 연기 말곤 재미있는 게 없다.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활발하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는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다. 일없을 때는 주로 집에 있거나 작품을 끝낸 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게 전부다. 그래서 다른 직업이나 내가 잘 할 법한 뭔가를 생각해보면 문득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도 내가 MC를 몇 번 했었잖나. 중고등학교 때 방송반 이었다. 그냥 서클 활동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했던 훈련들이 결국 내가 MC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만약 다른 분야를 한다면 그 정도? MC나 아나운서? 그 이외의 것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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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일단은 카메라밖에 대안이 없다. (웃음)
다들 “결국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거네!” 라고 이야기 하더라. (웃음)

그럼 그런 계기는 어디서 시작된 건가?
일단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토요일마다 학예회 시간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 자아를 깨닫게 됐다. (웃음) 내가 애들을 꾸려서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콩트를 만들거나,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해서 발표하거나, 가수 모창을 한다거나 그런 걸 좋아했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할 때 아이들이 웃고, 박수쳐 주고 환호하는 것들에 나름 희열을 많이 느꼈던 거 같다.

기획이나 연출자로써의 싹도 보이는데?
물론 역할을 분배하고 기획하는 건 필두에 나서기 위해서지! (웃음)

결국 주인공까지 다 해먹는 것이 목적? (웃음)
사실 기획이나 연출에 대한 꿈도 있다. 그런데 그건 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위치에 선 뒤에 확장하고 싶은 꿈이다.

혹시 연기자가 됐단 사실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음...앞에서 말한 것처럼 별다른 취미생활이나 연기 이외의 것을 통한 만족감이 없다 보니 연기를 못 하게 되면 실제는 너무 괴로운 거다. (웃음) 삶이 너무 단조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내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지. 물론 올 해는 쉬더라도 조금 여유로울 수 있을 듯 하지만 신인 시절은 달랐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쉼이 길어진 적이 있었다. 자의가 아니라 특별한 기회나 프로포즈가 없어서였지. “배우가 되겠다는 내 선택만큼은 흔들림이 없고,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내 길이 맞는 건가?” 쉬는 동안 그 고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을 수 없으니까. 배우가 남들에겐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인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프리랜서가 맞긴 맞다. (웃음)
그렇지. (웃음) 한번은 쉬는 동안, 할 일 없으니 운동하러 갔다가 옷 갈아입으려고 라커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설움이 막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더라. 결국 라커에 머리를 박고 숨죽여서 얼마를 울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찡하다.

듣는 나도 찡하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문소리 씨가 토크쇼에서 “난 항상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몰라. 아무도 날 더 이상 안 찾아줄지도 몰라.”란 생각으로 항상 작품을 선택했다고. 대본을 수두룩하게 받아보는 몇몇 배우들을 빼면 모든 배우들에게 마찬가지로 그런 원초적인 불안함이 항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직업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는 이상, 날 신뢰하고 믿어주는 누군가에게 선택 받는 기회를 얻어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초조함과 불안함이랄까.

그런 점에서 <검은집> 캐스팅은 꽤나 반가운 기회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집>은 더욱 열정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결과가 기대되고 잘 됐으면 하는 염원도 더 많이 갖게 되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작품을 마치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 다르지만 강한 캐릭터일수록 그로부터 빠져 나오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신이화도 만만찮은 캐릭터였는데 어떤가?
만약 영화 속 상황 안에서 정서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심리적인 고민이 많은 캐릭터였다면, 끝낸 뒤 그런 감정과 정서가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 계속 슬픔에 젖거나 우울하고 다운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이화 같은 경우는 사실 정서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면에 뭔가를 많이 갖고 있던 인물들보단 오히려 빠져 나오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만 내가 이 인물을 짊어지고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이 이젠 없어져버린 셈이다. 촬영 종료와 더불어 내 역할이 없어진 그 상황으로 인해 ‘이젠 내가 할 게 없다’는 허탈함과 공허함이 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누군가? 연기가 인상적이라던가, 꼭 롤모델이나 이런 게 아니라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매번 작품마다 빛이 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기한테 맞는 옷이 있는 거니까. 어떤 작품에선 정말 기막힐 정도로 배우의 열정에 감탄하지만, 다른 작품을 보면 아까 그 배우의 색깔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배우 한 사람보단 그 배우의 가장 빛났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그런데 요즘, 유독 멋있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공리’다. 최근 <황후화>를 보면서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강한 카리스마가 영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으로 머금은 비장한 슬픔과 상처 같은 것들도 느껴진다. 무게감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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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강한 캐릭터에 끌리나 보다.
그런가 봐!! (웃음) 이야기하다 보니 또 그렇네!! (웃음)

그냥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 같은 거 있을까? 굳이 배우로서가 아니라도.
개인적인 욕심은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화목하고 예쁜 가정을 꾸미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배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자부심이 느끼고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자랄 수 있는, 엄마의 일을 인정하고 신뢰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그런 것들을 예쁜 그림처럼 그려본다. 물론 내가 배우로서 풀어야 될 숙제들을 좀 더 풀어낸 다음, 가장 좋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보고 싶다.

지금까지 액션 연기도 종종 했다. 어떻게 보면 <검은집>도 나름 액션아닌가. (웃음) 전문적인 액션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해보고 싶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웃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액션영화에 대한 흥미나 호감이 남달랐다. <다이하드>나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시리즈 같은 영화들에 열광하면서 자랐고, 성장기 때부터 여전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웃음) 그걸 꿈꾸고 동시에 뭔가 실현해 보고 싶기도 했다. <킬 빌>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그럼 해외로 나가야 할지도...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킬 빌> 같은 거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음..어쩌면 류승완 감독 정도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역시나 로망마저도 선이 굵은 거 같다. (웃음)
난 왜 이렇게 굵은 거야! (웃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경험했는데, 각각 쫑날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영화가 더 애틋하게 남는 거 같다. 드라마는 캐스팅 후, 첫 촬영까지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촬영 동안 그 캐릭터가 되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는 사전에 이미 캐릭터에 대한 입력을 끝내고 철저히 준비한 후, 첫 촬영부터 이미 그 캐릭터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드라마보다 준비 과정이 밀도 있고, 촬영 과정 중의 순간적인 고민들이 세심하게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끝난 후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 심하다. 여운도, 애착도 더 길게 간다. 영화 작업이 그래서 배우들한테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같고.

사실 배우에게 유리한 건 영화보다 드라마일 것 같은데? 드라마는 자신의 연기가 부족했던 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돌이킬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하는 까닭일지도 모르지만.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모니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지 체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몰입과 확신으로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캐릭터와 이미 일체가 되어있다. 그런 후엔 이동하면서 대본을 훑어보고도 감정을 쭉 뽑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런 게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영화는 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한다. 근데 드라마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웃음) 어떨 땐 대본을 받고 빠른 시간 내에 외운 후 그냥 연기하게 되는데, 순간 내가 그 인물의 감정을 쭉 외운 대사만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때의 짜릿함이 있기도 하다. 드라마만이 지닌.

어떻게 보면 드라마는 매일같이 학교에 등하교 하는 기분일 것 같고, 영화는 단체로 합숙수련회 다녀오는 기분이 아닐까 싶다. (웃음)
멀리 수련회 다녀오는. (웃음)

이번에 드라마 <엔젤>에 출연한다고 들었다.
미국에 가서 한 달 정도 로케를 하고 왔다. 비운의 죽음을 맞는 캐릭터인데, 일단 서울에서 야외 촬영 하루 분량 정도가 남았다. 난 특별 출연 개념이라 방송 땐 초반 분량 3회 정도만 나오고 빠진다. 그런데 역할이 나름 의미 있는 역이다. 초반에 장진영 씨가 맡은 캐릭터가 로비스트가 되는 계기와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이니까. 초반 도입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캐릭터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다. 특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좋은 취지의 작품에서 짧게나마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차인표 선배님도 <하얀 거탑>에서 짧게 출연했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짧지만 드라마에 중요한 인상을 남기는 역할이라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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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기작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사실 내가 안 해본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한번쯤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블랙북>이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의 여자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었던 거 같다. 사실 요즘 영화를 보면 여배우가 남자배우의 부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많이 본듯한 캐릭터에 적당한 롤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힘이 될만한 선 굵은 캐릭터랄까? 영향력 있고 흡입력 있는, 물론 그게 선이 강하고 안 강하고를 떠나서. 또 말하다 보니까 그 쪽인가? (웃음) 어쨌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만약 공포영화 제의가 또 들어온다면?
공포영화 또 들어오면 화날 것 같은데! ‘이것 보세요!’ 막 이럴지도.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가 좋다면 또 할 것 같은데.
그러겠지. 내 팔자가. (웃음) 이번엔 또 어떤 롤일까? (웃음)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당시가 연기 초년 시절이었다면 지금은 이런 저런 경험들을 한 다음이고, 인생을 조금 더 산 후니까. 지금 무대에 서면 느낌이 틀릴 것 같다. 어쩌면 마치 처음 서는 것처럼 설레고 떨릴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확실한 건 좋은 시기에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다. 일단 급한 욕망부터 좀 먼저 끄고, 영화 작품에 좀 더 몰두해보고 싶다.

취미가 없다고 했지만,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 것 같다. 그게 취미 아닐까?
전문 분야니까! 공부 차원에서 봐야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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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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