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신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때때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외모는 유효한 재능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유효한 수단이다. 다만 선천적 한계가 그 가능성을 좌우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후천적 선택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과거의 여성보다 현대의 여성이 보다 큰 미적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것도 그 가능성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접근 가능성에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외모란 물려받지 못하면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와 성형이 지배하는 현대의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외모란 특수한 재능의 영역에서 점차 필수적 덕목의 수준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가학원>은 그런 세태를 반영하는 영화다. 최고의 쇼호스트였던 효정(유진)이 미스코리아 출신의 후배에게 밀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자신의 위치에 위기감을 느끼다 외모적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과정은 특수한 직장의 분위기를 담보로 연출된 보편적 이미지에 가깝다. 동시에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요가학원에 참여하게 되는 효정을 비롯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외모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요가학원>의 설정에 일면 그럴 듯한 구석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관계의 설득력에 있다.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여성들의 관계는 권력적 욕망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으며 질환적 수준의 광기를 표출한다는 점에서도 시대적 증후를 표면적으로 노출한다. 요가학원이라는 집단의 형태 자체가 시대적 광기를 표출하는 공포의 근본 지점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그녀들의 선택은 부질 없는 집착을 넘어서 필연적 본능에 가까운 절박에 가까운 요구량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증후를 장르적 공포로 치환한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쓸만하다. 하지만 <요가학원>은 명확하게 그 아이디어 이상의 결과물에 도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화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로 같은 공간과 우아함과 불길함을 동반한 미장센이 시각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본질적 의도는 철저하게 망각된다. 지극히 예상범위를 맴도는 자극적 영상이 권태롭게 전시되고, 평면적인 사연을 담아내기 위한 캐릭터들이 덧없이 나열되다 차례로 퇴장한다. 그 가운데서 무기력하게 낭독되는 일차원적인 메시지가 설득력을 얻지 못한 채 귓가를 맴돈다.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로 건축되지 못한 사연들은 손쉽게 와해되며 확실한 방점을 찍지 못하고 뜸만 들이는 장르적 분위기는 결말에 다다라 차갑게 식어버린다. 어느 지점에서도 방점을 찍지 못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력도, 흥미를 유발할 만한 장르적 성취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보상받을 길이 막막한 배우들의 육체적 노고만이 안쓰럽게 눈에 밟힌다.
<소년 탐정 김전일>에서 모티브라도 얻었는지 몰라도 학원 추리물을 표방한 <4교시 추리영역>이 적어도 ‘추리’라는 장르적 밸류에 어울릴만한 기본급 수준이라도 갖췄다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좀처럼 염치없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중고등학생 주머니 좀 털어보겠다는 심산으로 만든 영화 같은데 요즘 애들 수준을 무시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재미라도 즐기겠다는 확고한 본전 의식이라도 없다면 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걸 막을 재간이 없을 게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최악의 수사를 동원하게 될 테니 여기서 그만. 다만 유승호 소속사는 이걸 알아야 한다. 일찍부터 스타덤에 오른 어린 배우로 장사를 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주연작이란 타이틀에 혹해서 시나리오 꼴도 확인하지 않고 설익은 배우를 막 굴리다간 결국 낭패를 보게 될 거다. 예언하자면 <4교시 추리영역>은 분명 올해 최악의 개봉작 후보 0순위를 차지할 거다. 유승호에게 벌써부터 안습의 이력이 하나 지워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