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파리>는 파리라는 도시로부터 배어나는 낭만적 기운을 로맨틱한 에피소드와 연결한 기획적 옴니버스다. 파리를 배경으로 18편의 옴니버스를 직조한 20명의 감독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을 통해 파리라는 도시의 환상성을 부추긴다. 사실상 <사랑해, 파리>는 파리라는 도시의 고유적 낭만성을 증명하기 이전에 긴 세월 동안 환상성을 구축한 도시가 로맨스라는 감정을 얼마나 탁월하게 보좌할 수 있는가를 증명한 작품이나 다름없다. <사랑해, 파리>에 이어 새로운 낭만도시 프로젝트의 제작에 착수한 엠마뉘엘 벤비히가 <뉴욕, 아이러브유>로 뉴욕을 새로운 로맨틱 시티로 낙점한 것도 그 도시를 동경하는 이들의 환상을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다.
18편의 에피소드마다 명확한 구획을 나눈 <사랑해, 파리>와 달리 <뉴욕, 아이러브유>는 각 단편의 시작과 끝을 이어 붙이며 마침표의 영역을 지워버렸다. 주가 되는 단편 사이마다 다리 역할을 하는 짧은 전환점(transition)을 삽입하고 이를 통해 사연을 쉼 없이 이어나간다. 그만큼 매 순간의 감정을 음미할 여유가 줄어든 반면, 다음 작품에 몰입할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산만한 인상을 줄 확률도 적지 않다. 매 단편마다 적확한 마침표를 찍어내듯 경계를 둔 <사랑해, 파리>보단 보다 불친절한 형태로 완성된 <뉴욕, 아이러브유>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번잡함을 영화적 구성 그 자체로 승화해버린 것마냥 번잡한 영화인 셈이다.
그럼에도 <뉴욕, 아이러브유>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부르는 동경심의 너비만큼이나 풍요로운 로맨스의 만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 이와이 슌지를 필두로 11명의 감독이 만들어낸 로맨틱한 상상을, 그것도 다채로운 배우들의 얼굴을 빌려 뉴욕의 사랑담을 그려내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일면 의미 있는 일이다. 작품마다의 편차를 떠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모티브로 삼은 러브스토리의 향연을 지켜본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감흥이 배어난다. 특히 감각적인 영상미와 함께 황홀한 충격을 선사하는 세자르 카푸르와 고전적 무게감 속에서도 섬세한 감정적 울림을 전달하는 이와이 슌지의 단편은 <뉴욕, 아이러브유>안에서 단연 빼어난 감상을 부여한다. 그 밖에도 장난끼 넘치는 반전을 품은 브렛 라트너와 이반 아탈의 작품, 그리고 수다스럽지만 귀여운 노부부의 애틋한 감정을 깊게 전달하는 조슈아 마스턴의 영화 또한 꽤나 인상적이다. 감독으로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의 깔끔한 연출력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관심사가 될만한 지점이다.
번잡한 뉴욕의 교차로를 건너듯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단편적 상상력을 따라잡는 건 그만큼의 집중력을 요하기에 피곤한 감상을 부여할지 모른다. 동시에 옴니버스의 특성상 작품마다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도 일종의 맹점이 될만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뉴욕, 아이러브유>는 그 다채로운 감각과 다양한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먹음직스러운 만찬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다. 어느 도시에서나 만남과 이별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랑해, 파리>와 <뉴욕, 아이러브유>는 특별한 도시의 로맨스라기 보단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둔 특별한 로맨스적 일화의 총망라에 가깝다. 떨리는 찰나의 이끌림도, 담담한 영원의 엇갈림도, 낮과 밤을 아우르며 도시를 떠돌다 그 거리에 낭만을 켜켜이 채워나간다. 낭만을 먹고 자란 도시는 전인류적 동경을 끌어안고 그 환상을 품에 안은 채 또 다른 낭만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뉴욕, 아이러브유>는 도시를 위한 낭만의 헌사라기 보단 유려한 도시를 풍경으로 낭만을 증명하는 작업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새로운 낭만은 또 다른 도시로 전파된다. 아마도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을 꿈꾸는 도시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