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8.23 <푸른 소금> 단평 2
  2. 2008.05.31 류승범 인터뷰
  3. 2008.05.31 한예슬 인터뷰

<푸른 소금> 단평

cinemania 2011. 8. 23. 19:21

콘트라스트를 극명하게 높인 뮤비 질감의 영상. <푸른 소금>의 이미지는 모 카메라 광고만큼이나 쨍하다. 그만큼 단편적인 감상이 강렬해지는데 이는 유연하게 이어지기 보단 조각나듯 나열된 시퀀스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다. 마치 두 편의 다른 영화를 찍고 나서 어영부영 자르고 붙여서 한 편의 영화라고 우기는 것만 같다. 특별하다 말할 수 없으나 중심인물의 관계적 긴장과 이완의 흐름이 흥미를 당기는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허나 감정의 전환이 성급하다 못해서 따로 노는 것마냥 신과 신 사이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적절하지 못한 문어체 대사들이 어색함을 남발하는 사이, 배우들도 어찌할 수 없는 캐릭터의 무능력이 영화를 루즈하게 깎아먹는다. 무엇보다도 낭비에 가까운 시퀀스들이 너무 잦게 눈에 띈다. 좀처럼 현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감정선이 깨알 같은 PPL적 이미지 속을 공허하게 유영하는 것만 같은긴 종합 CF 필름 같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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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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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듸오 데이즈>의 로이드는 기존의 류승범을 기대했다면 배신감 느낄 정도로 단순한 캐릭터다. <라듸오 데이즈>를 선택한 건 배우로서 터닝포인트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라듸오 데이즈>를 해보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배우 류승범이 보여주는 것, 사실 그게 처음에 <라듸오 데이즈>를 선택했던 의도는 였던 것 같다. 연기를 위한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리고 영화도 독하지 않아서, 관객들에게 감정을 호소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착한 영화.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제각각 자기 일을 하고, 난 옆에서 도와주고, 그런 느낌들이 난 좋았나 보다. 그 전의 영화들은 캐릭터 중심적인 것들이 많았고, 확 지르거나 튀는 그런 영화들이었는데 이 시나리오상에서는 편안한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냥 가벼운 산책하는 느낌, 그래서 좋겠다 했지. 근데 자칫 심심한 것 같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조금 된다.

처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류승범이란 캐릭터를 도전적으로 내밀었고 그 이후의 캐릭터들도 그 연장선상처럼 보이는 면이 많았다. 그런데 <라듸오 데이즈>는 류승범이란 배우의 연기가 보이더라.
사실 이게 관객들한테 어떻게 보여질지 궁금하다. 사실 배우는 연기를 하지만 연기가 걸리면 안 되는 직업이다. 물론 어떤 것이 더 맞는 건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전작품에서의 그런 모습들이 내가 원래 내 안에 담고 있었던 것인지, 혹은 내 안에 있었던 것들이 거기 담긴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각자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듸오 데이즈>에서 난 연기를 했다는 것보다도 내 안에 무수히 많은 감정들의 일부분까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 그리고 그게 본래 내 안의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작품들을 통해서 내 안의 것이 될 수 있는 거다.

아무래도 그 동안 맡은 캐릭터들이 대중들에게 이것이 류승범이다라고 말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것이 본인에겐 어떤 괴리감이었나?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맘이 편해졌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나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끔 내가 날 숨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숨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맞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그냥 이런 게 아닐까 싶더라. 내 안의 일부가 어떤 사람에게 드러났을 때, 감추고 싶다거나 아니면 한발 물러서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 이런 갈등들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 생각하기보단 내가 배우로서 임했을 뿐이었던 영화의 이미지가 내가 되어버린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갈등들이 내 안에 있었는데 이젠 그냥 편안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어쨌던 내가 선택했고, 내가 행했고, 내가 연기하고, 내가 표현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비춰지는 그런 모든 것들이 나인데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거듭 말하자면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 그게 다라면 나라는 배우는 생명력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미래가 없어지는 거고. 그게 다라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는 것. 그게 참 중요한 거 같다. 무채색, 무색인 게 좋다. 너무 한쪽으로 강해진다는 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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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라듸오 데이즈>는 그 다양성을 고려한 선택인가.
솔직히 항상 캐릭터 중심의 영화만 할 수는 없다. 막연히 그런 생각들이 있었다. 편안하고 따뜻한 영화, 착한 영화, 캐릭터를 항상 중심에 둔 영화가 아니라 어우러질 수 있는 영화를 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라듸오 데이즈>가 된 거지. 앞으로의 계산이 딱 맞아떨어졌다기 보단 그냥 그랬던 거 같다. 사실 좀 독하게 말씀 드리면 잘되던 못되던,(웃음)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게까지 마음을 비웠다. 내가 저평가를 받거나 말거나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해? 그런 느낌.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냥 그런 게 내 인생에 뭐가 중요하겠어,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끔 너무 지독하게 살아온 거 같아서. 물론 지금도 열심히 하지. 열심히 하는데, 가끔 그게 작품 한편이 내 인생의 한편을 좌지우지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살아온 건 아닌가 싶었다. 영화랑 내가 친구가 될 순 없을까. 그렇기 위해선 내가 한발 물러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라듸오 데이즈>이전까진 밑천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면 <라듸오 데이즈>는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이었던 거 같다.
정확하게 얘기한 것 같다. 배우가 항상 외면적인 표현을 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가끔 확 다 비워야 담을 수 있잖아. 진짜 그런 생각까지 했다.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전부이거나 마지막이 아니고, 배우인생을 길게 보자면 나도 내 스스로의 어떤 준비과정이 필요하고 내가 어떤 도약의 시점에서 실패를 맛보더라도, 혹은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한발을 어딘가에 디뎌야 되고. 어딘가에 새롭게 발을 딛는 그런 과정이었던 거 같다.

<라듸오 데이즈>는 아마추어가 프로가 되는 내용이다. 7년 동안 배우라는 길을 걸어오면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에서 어느 지점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나?
프로데뷔전을 이미 오래 전에 치렀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는 오래전에 허물어진 것 같다. 하지만 프로 중에서도 일등들이 있다. 프로 안에서도 아마추어다운 프로들이 있고, 프로다운 프로가 있고, 여러 유형들이 있다. 난 그 안에서 계속 돌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내가 찾는 거 보단, 내가 날 느끼기 보단, 사람들이 느끼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를 평가하는, 나를 보는 사람들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내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내가 보기에도 나 자신이 프로다울 때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 나라는 사람의 생각보다는 제3자가 보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난 프로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아마추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이거 진짜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걸 되게 저평가할 때도 있고, 아마추어의 음악이라고 할 때도 있고. 어떻게 보면 개개인의 입맛,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도 그 기준에 따라 구분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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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의 기준도 있을 텐데.
다른 논리로 정리를 해보자면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프로가 되야 하는 거다. 그건 이미 그 그라운드에 있는 것 자체가 프로인 거지. 내가 선택한 프로, 내가 헤드기어를 쓰고 아마추어 경기를 하느냐, 아니면 그걸 벗고 프로경기를 하느냐는 내 선택일 수 있다. 내가 어떤 경기를 뛰느냐, 이미 그건 내가 선택하면서 당연히 주어진 임무랄까. 그러니까 이미 그 배우가 상업영화를 한다면 자체가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사람이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인데 어떤 배우는 홍보할 때 방송을 열심히 한다. 어떤 배우는 그와 달리 현장에서만 열심히 한다. 그걸 가지고 어떤 배우가 더 프로페셔널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게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니까. 어떤 것을 취하건 이미 그 사람들은 다 프로다. 내가 당신에게 되려 질문을 한다면 기자회견에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그 중에 어떤 기자가 질문을 좀 이상하게 했다. 그런데 내가 그 기자를 아마추어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게 이미 거기 앉아있는 자체가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미 초대를 받았을 거고, 그 사람이 기자로서 초청된 거 아닌가. 다만 그 사람이 말을 잘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에 비평하고, 뭔가 정확하게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런 사람들만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 영화를 보고 그 기자회견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 프로지. 개개인마다 느끼는 감성이 틀리고 영화를 보는 시선이 틀릴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누는 것이 맞지 않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링에 올라온 이상은 일단 프로다?
중요한 건 내가 승리를 하느냐, 패배를 하느냐, 이런 큰 문제들과 나와의 갈등을 비롯한 다른 문제들이겠지.

그 승리와 패배라는 게 단순히 말하자면 흥행과 비흥행일 수 있고, 배우 자체로 보자면 연기에 대한 평가일 수 있다. 당신은 그런 과정을 어느 정도 겪었고, 지금쯤이라면 과거 전적에 대한 정리가 한차례 정도 필요했을 거 같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임무들을 충실히 하는 것이 다라는. 그 이외의 것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더라. 사실 흥행이란 건 배우가 선택할 문제는 아니지. 물론 내가 했던 작품들이 내 스스로 흥행작이라고 생각하고 했을 텐데 그 중에서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리고 내가 내 캐릭터를 다 사랑했음에도 어떤 캐릭터는 호평을 받고, 어떤 캐릭터는 평가 저하를 받고. 그런 것들을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임무에서 벗어나는 일들, 배우라는 지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들, 그런 전제들을 보고 그것을 그냥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거지. 이건 또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이렇게. 그리고 그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무서워하지 말아야죠. 나 스스로 당당하고, 나 스스로 내게 지지 않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된다.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저런 사람들과 내가 같이 사는 거니까. 나와 다른 사람들과 사는 거니까, 그냥 그걸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 같다. 자꾸 얘기가 링 경기처럼 흘러가는데,(웃음) 링 위에서 경기를 할 때 누구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한대 맞고 질 경우가 있잖아. 정말 복병의 순간으로 다운되는 경우가 있는 거지. 하지만 그래도 훈련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다. 작업을 하는 당시나 준비하고 만드는 공정의 과정에서. 훈련은 모든 배우의 임무이자 내가 해야 될 몫이다. 그리곤 링 위에 올라가서 경기 땡 하는 순간에 마음 비우고, 내가 쌓아온 만큼 경기를 멋있게 펼치는 거다. 자꾸 그런 얘기가 되지만,(웃음) K-1도 누가 이길 것 같은 경기는 재미없다. 하지만 그냥 질 거 알면서도 남자답게 파이팅 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좋다. 그 순간에 내가 질 수도 있지만 내 기량을 맘껏 뽐내는 게 보는 사람도 좋잖아. 그러니까 어떤 결과에 대한 건 운명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맡기고, 내가 참 바라는 것, 참된 나를 보여주는 것이 이제 중요한 과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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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이란 비유가 류승범이란 배우에겐 어울려 보인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한 데뷔전처럼 보였고, 그 동안 마치 치열하게 영화와 싸워오며 여기까지 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랑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영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이제 좀 편한 친구가 된 거 같다. <라듸오 데이즈>를 선택했던 것도, 이제 좀 편해지자, 이만큼 왔는데,(웃음) 이런 심리가 있었지. 솔직히 내가 널 이겨먹어야 되고, 네가 날 이겨먹어야 되고 그럴 필요 있냐. 그냥 우리 그냥 동지인 거 같다. 다른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도 그랬다. 굳이 내가 주인공이어야 돼? 우린 동지야. 같이 가자. 같이 버무려 보자. 내가 안보여도 돼. 당신이 더 보였으면 좋겠어. 우린 동지니까. 아군. 이렇게 우린 현장에선 같이 전쟁터에 나간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선 되게 마음이 편했지. 그리고 이건 <라듸오 데이즈>가 주는 혜택인 거 같다. 다른 영화들은 또 치열하게 해야 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내가 나를 괴롭혀야지만 되는 것들, 그건 그런 작품들은 캐릭터가 매달려야 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끝까지 가야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또 그 영화에 맞게 그런 투쟁을 해야 되는 거다. 내가 만약 <라듸오데이즈>에 <사생결단>같은, 아니면 <주먹이 운다>같은 영화를 했던 방식을 그대로 갖고 오면 이 영화에 틀린 걸 준비한 거다. 배우는 가공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진짜 인생, 진짜 삶이라고 자신을 숨기고 그것을 믿으며 사는 존재다. 근데 그 세상이 어디냐에 따라 다른 거 같다. 여기가 서울이냐, 미국이냐, 우주냐, 혹은 여기가 경성이냐, 30년대냐, 누구와 함께 하느냐,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들이 다르잖아. 그러니까 그 위치에 맞게 그걸 믿고 따라서 사는 거지.

전작들에서는 마치 다른 캐릭터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경쟁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라듸오 데이즈>에서는 마치 다른 배우들에게 기대는 것처럼 보였고 그게 편해 보였다.
기대고 흡수해버리지. 예전엔 누가 실수했다던지 그러면 너 왜 그래?(격양된 말투로), 그랬다면 이젠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기대고, 어깨도 빌려주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연기를 안 한 영화일 수도 있다. 한 게 없잖아. 맨날 사장 말대로 커피만 마시거나 웃고 앉아있고, 뭐 한 게 없다.(웃음) 방송국에서 배우들은 연기하는데 박수치고, 웃긴 모습보고, 지쳐있으면 같이 술이나 한잔하고, 정말 그렇게 생활했다. 현장에서.

그 동안은 자신을 돋보이는 연기를 했다면 이번엔 남을 돋보이기 위해서 연기를 한 셈이다.
그러니까! 참 희한하다! <만남의 광장>같은 경우도 남을 돋보여야 되는 역할인데 어떻게 의도하지 않게 내가 튀었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할 때 되게 조심스러운 거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감히 실례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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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에 했던 인터뷰들을 보니 심경의 변화가 느껴졌다. 많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 뭔가를 많이 버렸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냥 내 스스로가 편해진 거 같다. 예민함이 조금 무던해진 거 같고. 근데 그게 배우로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어서 갈등이 있긴 하다. 사람들은 행복한 환경에서 행복을 누릴 줄을 모르는 거 같더라. 나도 그렇고. 그러니까 거기서 그냥 그걸 즐기면 되는데, 즐기면서 또 불안해하고 많은 생각들을 하고, 이런다. 나 역시도 지금 그런 거 같은데, 편안하면 좋은 거다, 사실! 그런데 편안하면 편안하다고 이게 신경 쓰인다. 난 배우니까 예민하고 이래야 되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래도 예전보다 시간이 지났고,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그러니까 스스로가 안정되고 그렇게 날 찾아가는 거 같다. 진짜 나를. 그리고 내가 나를 이제 사랑하는 거 같다. 아끼고 싶다. 내가 나를. 나에 대해서, 나를 좀 아끼고 싶다. 사실 예전엔 배우 류승범을 많이 생각했다면 이젠 인간 류승범을 아끼고 싶고. 예를 들어 그냥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냥 난 이런 사람이라고 진솔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끈들을 몇 개 놨다. 최근에 읽은 ‘내려놓음’같은 책처럼. 내려놓으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잡고 있었더라. 그래서 놓아보니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영화가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해도 열심히 살면 되고, 다시 좋은 작품 하면 되고. 최선을 다했는데 안절부절못하는 것보단, 편안하게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운명이니까. 내가 갖고 있는 욕심들이나 그런 것들을 다 비우고, 내가 살고 있는, 처한 환경을 넓히려고 생각하지 않고 좁히니까 행복하더라. 줄이니까 행복해지더라. 넓히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힘들고, 안정이 없지만 조금만 줄이면 가벼워지니까 좋다. 다이어트도 뚱뚱했을 때보다 가벼워지고 그래서 좋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줄인다는 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줄이니까 생활하는 게 편하더라. 마음에 안정이 오니까.

자신을 치장했던 것들이 무겁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하게 됐나 보다.
내가 나한테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나한테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고. 알고 보니까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더라. 아무것도 아닌데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고, 뭐 하는 척 하고,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누군가에게 귀감을 주는 배우일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건 이제 인간 류승범이기 전에 배우 류승범. 물론 이런 게 날 비하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날 채우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내가 진짜 뭐 있는 사람처럼 만들고 싶다는 거지. 하다못해 영어도 잘하고 싶고, 춤도 잘 추고 싶고, 몸도 유연해지고 싶고. 배우로서의 자질들이 리모컨 누르면 탁 나올 수 있는. 근데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제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준비하고 싶고,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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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당시 동영상 인터뷰하는 걸 찾아봤는데 이때는 류승범이란 배우가 어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는 스무 살이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류승범이란 배우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내가 나이 먹는 건 모르더라.(웃음) 맨날 다른 사람 나이 먹는 것만 알고, 나한테는 네가 벌써?, 막 이런다. 아직도 스물 하나, 둘 인줄 알고.(웃음) 물론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가고 있고, 영화 외에 내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마음에 들어오거나 느껴지는 감정들이 많다. 그렇다고 내가 철이 들었나 봐, 이건 아니고. 난 진지해졌어, 이것도 아니고. 그냥 내 나이에 맞게, 지금에 처한 상황에 맞게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는 참 왜 그렇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가 보다.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의 나는 세상과 싸우려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끝나지도 않고, 세상을 막 집어먹으려 그랬지. 돈도 벌고 싶고, 욕심도 많고, 이것도 해야 됐고, 저것도 해야 됐고. 그런 면에서는 나이 먹는 게 참 좋은 거 같다. 더 먹고 싶기도 하지만 억지로 더 먹을 순 없고,(웃음)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게 참 좋다. 그리고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두고 싶다. 예전에는 나이 먹은 형들이, 난 지금이 좋다, 서른이 되니까 너무 좋아, 결혼하니까 너무 좋아, 애 낳으니까 너무 좋아, 이런 이야기하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해서 뭔가 응수하지 않으면 열정이 사라질 텐데, 저렇게 그냥 정체되는 것 아닐까, 이런 간단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반응하고, 그렇게 더 많이 알아가고, 더 많이 느껴지고, 그러니까 더 많이 표현할 수 있고, 더 많이 담을 수 있고, 이렇게 흘러가는 게 참 좋더라.

과거를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요즘 나도 이십 대 친구들 보면 예전에 형도 나를 저렇게 봤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게 있다. 하다못해 어릴 땐 튀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래서 요즘 어린 친구들을 보면 나도 놀래는데 형은 날보고 어땠을까 한다.(웃음) 자신들의 철학이 어쩌고 하면, 그래, 나도 한땐 그랬다, 하고.(웃음) 하다못해 이젠 추우면 멋 부리기보다 옷을 따뜻하게 입으려고 한다. 옛날엔 어른들이 멋 내다가 얼어 죽어, 그러면 아니에요, 하고 넘겼는데 이젠 내가, 너 추워 옷 좀 입어, 이렇게 된다.(웃음) 그렇게 패션을 좋아했던 놈이 무던해지더라. 옷은 그냥 사람이 입으려고 만들어지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삶에 여유가 생긴 덕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 아닌가.
사실 나같이 환경적으로 어렵게 살았던 사람이 아직도 어려우면 그만큼 여유가 있을까라는 질문도 받는다. 생각해보면 맞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규모를 줄이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지, 어려운 사람한테 더 줄이라고 하면 그게 사실 행복할 수 없지. 그런데 어렵게 사는 환경에서 더 어려움을 보고, 어려움을 돕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럴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걸 못했지. 그리고 사실 대부분 그걸 잘 못하잖아. 그래서 지금은 그런 예전보단 안정됐고,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져서 나름대로 그런 여유가 생긴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더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안쓰러울 때가 많지. 어려운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여유를 논할 수 있겠나. 삼시세끼 밥 먹는 게 최우선이지. 내가 여유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겐 모순이고, 날 같잖게 볼 수 있잖아. 그러니까 여유로움도 조심스러워야 할 것 같다. 내가 여유로우면 나 혼자 여유로운 게 아니라는 거지. 진짜 그 사람들과 여유를 같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내가 나 혼자 좋자고 규모를 나눠서 그걸 저금하는 게 아니고 줄여서 남한테 베푸는 거다. 내가 10억짜리 집에서 살다가 5억짜리 집으로 옮겨서 5억짜리 차 사면 똑 같은 거잖아.(웃음) 그게 아니라 5억짜리 줄였으면 5억은 더 좋은데, 진짜 필요로 하는데 나눠서 같이 살면 그래야 진짜 행복해지는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구체적인 계기는 없었나?
최일동 목사님이라고 청량리에서 거지들이나 행인들한테 밥 퍼주시는 분이 있다. 예전에 그분을 만나서 얘길 했는데 그분이 처음 청량리에서 거지들한테 밥을 줄 때, 그냥 딱 한끼 줄 것밖에 없었단다. 근데 그게 지금 20년 가까이 지켜져 올 수 있었던 건 청량리에서 야채 팔던 할머니들이 야채 팔다 남은 거라도 먹이라고 주고, 생선 팔다 남은 것도 주고, 그랬던 덕분이다. 부자들이 도운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한 사람들 도운 거다. 그걸 들으면서 세상은 아직도 참 따뜻하구나, 난 못난 놈이다, 난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구나. 그 때 그런 걸 느꼈다. 난 진짜 뭐하고 사나. 난 거의 다 손에 움켜쥔 채, 앞만 보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데 가려고만 했지. 내가 진짜 어려웠을 때, 내가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았을 때를 잊어버리려고만 했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리려고 했다. 지금도 힘들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참 못난 놈이구나. 그러고 내가 신앙인이라 할 수 있고, 종교를 가졌다고 얘기할 수 있나. 내가 남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부끄럽더라. 사실 아직도 잘 지키진 못한다. 노력하려고 하는데 지금도 말뿐인 내 자신이 역겹고, 그리고 또 이렇게 각성하면서 한번 더 노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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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게 일종의 자기 다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봉사해야지, 봉사해야지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 게, 우린 얘기하면 지켜야 되니까.(웃음) 그래서 일부로라도 얘기한다. 얘기해놨으니까 안 하면 이거 왜 말해놓고 안 해? 이렇게 되니까. 그런 말 없애려고 더 하게 되겠지.

당신은 본인의 형인 류승완 감독 작품에서 주동적인 인물로 존재할 때면 항상 상환이란 이름을 썼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면 항상 석환이란 이름을 쓰더라. 마치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형제라는 끈이 강하게 느꼈다.
그걸 내가 형한테 한번 물어봤었다. 왜 상환이란 이름을 쓰고, 석환이란 이름을 쓰냐고. 근데 감독들마다 페르소나가 있잖아. 우리형뿐만 아니라 감독들에게 쓰여지는 이름들. 장진 감독님도 동치성이란 이름을 쓰는 것처럼. 그냥 우리들끼리 얘기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그걸 좋아한다고 한다.(웃음)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뭔가 있나 그러는데,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그 이름이 처음에 좋았고, 그 이름으로 시작했던 느낌이 있으니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석환, 상환이라는 인물로 시작했고 자신의 단편영화를 처음 탄생했을 때 애착 같은 거, 내가 보기에 우리 형은 그런 거에 가까운 거 같다. 그리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도 상환이었고, <주먹이 운다>에서도 상환이었는데, 그 인물들이 갖고 있는 상환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거 같다. 약간의 루저고 뭔가 좀 모자란듯한, 그런 이미지가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석환이라는 이미지도 있는 거 같고. 근데 그것을 연계해서 보면 석환은 좀 더 맏형 같고 책임감 있는 이미지인 거 같고, 상환은 좀 철부지 동생이면서 좀 루저같은 느낌이다. 감독이 갖고 있는 어떤 이름, 마치 우리가 친구 이름만 딱 떠올려도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상환, 석환에 담긴 류승완 감독님의 그 느낌을 해치고 싶지 않다. <주먹이 운다>때도 내가 상환이란 이름이 싫어서 다른 이름을 하자고 했다가 그게 어느 순간 느껴지더라. 아, 상환이라는 이미지가 우리 형은 친구 같을 수도 있겠구나. 자기에게 둘도 없는 친구.

그런데 아무래도 형과 동생의 관계에 있다 보면 조심스럽기도 할 것 같다. 형제끼리 다 해먹는다는 눈총을 살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류승완 감독이 배우 류승범에게 시나리오를 넘길 때는 되려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도 시나리오에 배우 류승범을 출연시키기 전까지 확실한 검증이 있었을 것이고, 당신에게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출연을 승낙한다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항상 류승완이란 사람이 내 인생에 영향을 많이 줬다. 하지만 이젠 한 일을 하는 동지다. 그만큼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일 적으로 뒤쳐지면 힘들어진다. 나도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계속 살아 움직여야 감독도 쓸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서로 더 열심히 하는 거 같다. 서로의 임무를. 왜냐면 만약 류승완 감독이 류승범이란 배우를 자신의 작품에서 기용하고 싶어도 상업영화 시장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류승범이 평가 저하되는 배우였을 때 못쓰는 거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같이 일할 수 있을만한 동지가 되어있어야 된다는 자세. 나 스스로 준비돼있어야 한다. 그건 꼭 류승완 감독님한테 뿐만 아니라 어떤 감독님한테도 우린 승인 받아야 하니까, 항상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결국 똑같다. 영화적으로 같은 동지고, 예전에는 내가 표현이 어떤지 몰랐었으니까 이제 형한테 의지하고, 더 많이 기대고, 배우고 이랬지만 다른 감독님들과 작업하면서 다른 작품들도 하고, 나도 배우로서 성장통을 겪게 되고, 성장을 스스로 시작하게 되고, 그러면서 뭔가 배우게 되고. 형제 이전에 배우와 감독으로서 인정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자 세 아이의 아빠라는 한 남자로서 내가 모르는 인생을 인정하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가는 것도 있다. 이런 힘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힘들다. 아까 말했듯이 프로 데뷔전을 치른 이후부터는 이젠 더 이상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같이 일한다는 건 힘들잖아. 순수예술이 아닌 이상, 상업예술이니까. 그래서 서로가 그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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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각자 자신의 영역을 잘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겠다.
그런 균형들이 골고루 이뤄져야 류승완, 류승범을 떠나서 서로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하기호 감독님은 <라듸오 데이즈>로 만났지만 나중에 다른 작품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내 번째 첫 주연작인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님도 그게 입봉작이었는데 몇 년 뒤에 <그해 여름>했고, 우리 임순례 감독님도 지금 흥행하고 계시고. 이렇게 같이 조금씩 성장해가고, 아픔도 겪게 되고, 또 다시 일어나고 다들 그러니까, 어떤 배우나 어떤 감독이 잘 되면 매일같이 행복할 때가 있다. 예전에 <사생결단>찍을 때 (황)정민이 형하고 그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6년 만에 영화에서 만나는 구나. 너무 기쁘지 않냐고. 정민이 형이 잘 되는 게 내일 같고 내가 잘돼서 정민이 형이 너무 기뻐하고 그러는 게 너무 좋다. 근데 만약 어디 하나가 잘못 돼서 그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솔직히 마음 아프고, 괜히 만나면서도 미안해지고, 이럴 때가 생긴다. 어렸을 때 친구들 만날 때도 난 그래도 이렇게 내생활 잘 꾸리고 있는데 아직도 어려운 친구들은 잘 만나주지 않고 그렇잖아요.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겠고. 어떻게 보면 나도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서 살고 있고, 그건 류승완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그렇게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된다라는 게, 감정만 내세워서 될 일은 아닌 거 같다. 각자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되지. 물론 여러 가지로 일을 잘하고 프로 중에서 일등이라고 해도 얘가 기초적인 인간적 덕목이 깨져버리면 또 그것도 안 된다. 서로서로 비슷한 성장들을 유지해야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는 거 같다.

정말 의지할 수 있는 짝패가 되야 한다는 건가.
그렇지. 그렇다고 그걸 너무 자격처럼 보자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나보다 덕목이 좋아서 그 친구에게 그런 걸 배우려고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이 힘의 균형인 거 같다. 똑같이 나도 연봉 1억, 너도 연봉 1억, 너도 성격 이 정도고, 나도 성격 이정도. 이건 너무 달콤한 만남이고, 너무 나 편한 만남이다. 이 사람은 내가 갖지 못한 이런 것도 갖고 있으니까 이런 걸 서로 채워줄 수 있으면 힘의 균형이 딱 맞겠다는, 사람 관계 안에서는 그런 것들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최근에 ‘시네마테크와 친구들’에서 <아이다호>를 추천했던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을 원래 좋아하나?
아니. 구스 반 산트 감독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앞에 2라는 숫자가 올해로 마지막인 스물 아홉 살에, 삼공(30)이 되기 전에 청춘영화를 하고 싶었다. 도심 한가운데 서있는 청춘의 그런 모습을 담은 영화를 꼭 하고 싶다. 물론 서른이 됐다고 청춘 영화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 그리고 사람들도 봤을 때, 서른 하나, 서른 둘이 청춘영화를 하는 것보단 아직 스물아홉 살의 배우가 하는 게 실제 그 간극을 줄이는 셈이다. 그래야 좀 더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런 청춘 영화 중에 <아이다호>를 참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 때 봤는데 잘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막연하게 보면 청춘영화라는 느낌이 나에게 있다. 그리고 어쨌거나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인 리버 피닉스를 탄생시킨 영화고.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갖고 있는 그런 느낌과 생각들을 통해 청춘 영화를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도 그런 청춘의 감성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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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런 느낌이라면 공격적인 느낌보단 방어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청춘 영화가 나올 것 같다.
그러고 싶다. 그래서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되는 게, 여기서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조금 더 흘러가면 청춘의 치기 같은 게 안 나올 것 같고. 예전엔 무조건 공격만 했다면 이젠 방어도 하면서 공격도 한다는 그런 막연한 느낌이 나한테 있다. 예전에는 도시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게 여기 있는 도시를 다 집어먹고 싶어하는 드글드글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서있고 싶다. 막막한 청춘으로 외롭게 홀로 서있는, 네온사인들이 깜빡깜빡 거리는 그런 느낌. 화려한 도심을 걷고 그 안에서 웃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마치 나 혼자 도시에서 떨어져 나온듯한 느낌. 그런 느낌이 든다.

데뷔 당시 ‘나이 서른 되기 전에 집세 걱정안하고 차도 살 정도의 돈을 벌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결국 모든 걸 이뤘는데 왜 다시 반대로 그것을 놓으려 하는가?
가져보니까 살면서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욕심 낸 것이 많더라. 물론 지금도 월세 걱정하시고 내 집장만하고 싶어하시고, 그런 분들 충분히 난 이해한다. 왜냐면 그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들이니까. 의식주, 먹고, 자고, 기본적인 안정을 취하고 싶어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꾸준한 안정을 위해 나도 사람인지라 찾고 있다. 다만 50평짜리, 100평짜리, 200평짜리 집에서 살 필요가 없다라는 걸 느낀 거지. 지금 집이 어떤 집이든 안정적인 집, 그리고 월세나 그런 것에 각박하지 않은 집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차? 나도 벤츠타봤다. 벤츠타보니까 뭐가 좋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벤츠타면 사고 나도 안 죽나?(웃음) 비행기 타고 가다가도 죽는데. 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난 차가 필요해지면 다시 살 거다. 하지만 이제 이동수단으로서 차라는 것에 대한 본질을 알게 됐다. 어딜 가야 될 때 우리에게 대중교통은 솔직히 불편한 게 있으니까. 다만 필요하니까 타는 거지, 벤츠를 타야 되고, 명차를 타야 되고 이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차 매니아라면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몇 번이나 탄다고 차 보안해야 되고. 넓은 평수에서 살면 방은 다 비어있고, 불필요한 거 사서 채워야 하고. 나한테 필요한 거, 내가 필요한 걸 하나씩 하나씩 넓혀나가는 재미가 있어야지. 그 동안 그냥 사놓고 재어놓기만 하고 그런 거 이제 재미없는 거 같다.

그 동안의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라고 한다면 뭔가 완성하고 싶은 드라마가 있을 거다. 지금 시점에서 류승범이라는 드라마를 어떻게 완성하고 싶은가?
앞으로? 난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는 당신을 포함해서 오늘 만난 사람들을 내년에 만나거나, 내후년에 만났을 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배우로서 성장은 어떻게 될지 솔직히 불확실한 거 같다. 그런데 이제 또 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또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근데 사실 항상 좋은 위치에서 있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하지만 나를 보면 그냥 기분 좋은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솔직한 성격이다, 쟤 뭔가 쿨해, 이런 게 아니라 진솔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진솔하다는 느낌을 요즘 참 좋아한다. 착한 느낌, 날 봤을 때 뭔가 착해지는 것 같고, 얘기하고 싶어지고. 내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있잖아. 류승범한테는 왠지 내 얘기해도 될 것 같다는. 예전엔 술 먹고 거하게 놀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옆에 있으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느낌이고 싶다. 나이 서른을 준비하면서 서른 살이 되고, 서른 두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점점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점점 편해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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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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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한예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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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미니홈피에 ‘Falling slowly’ 가사를 포스팅 해놓았던데.
좋았다. 최근에 봤는데 좀 꽂혀서, 내가 원래 아이리쉬 음악 밴드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미니홈피를 자세히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음악을 듣다 보니까.
자세히 보게 됐구나!

<원스>OST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까지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웃음)
그렇구나. 나랑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만 일렉트로니카 계열은 말고, 조금 더 약간 기타음이 들어간 음악이 좋다.

쟁글거리는 기타팝 부류의?
맞다. 그런데 음악 취향이 아주 좋으시네. (웃음)

사실 옛날엔 약간 과격한 음악을 좋아했었다.
나도, 얼터너티브(alternative) 락 같은.

나도 한때 그런지(grunge) 풍의 음악 많이 들었다. 너바나(Nirvana)는 지금도 좋아하고.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시애틀 그런지(Seattle Grunge)!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좀 서정적인 쪽으로 가는 거 같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게 막 느껴지는데. (웃음)
조금 더 가면 완전 올드팝으로 빠질 지도 모른다.

아, 누가 보면 음악 매거진인 줄 알겠네. (웃음) 그런데 본인의 히트곡도 있지 않나. ‘그댄 달라요’같은. 난 사실 그 노래를 군대에서 줄기차게 들었다.
진짜? (웃음)

고참들이 너무 좋아해서 말이지. (웃음) 그런데 음악 매거진 인터뷰도 아니고, 이젠 음악 얘긴 그만. (웃음) 미니홈피를 보고 얼마 전, 청룡영화제 사건에 관련된 스타일리스트 분의 글을 보게 됐고, 본인의 코멘트도 읽게 됐다. 사실 말로만 들었었는데.
아, 그 해프닝에 대해서?

그에 대해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많더라. 어떻게 보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덕분에 그런 후일담 같은 사연까지 노출된 것인데 사실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게 흔히 말하는 공인으로서 꺼려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배우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과 간접적으로 만난다 해도 결국 직접적인 대상은 나인 셈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삶과 사생활의 선을 긋는다는 건 진짜 힘든 일이다.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배우들은 다 짐을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런 대중들의 관심이 자신의 커리어와 이어지는 것이니까.사적인 대중들의 관심도 없다면 그건 무관심일 테고, 그렇다면 커리어를 지켜나갈 수 없는 거다. 물론 너무 관심을 갖고 사랑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선을 조금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연히 짊어가야 할 짐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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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야심만만에 출연했는지 인터넷에 기사가 도배됐더라. 내용으로 봐선 상당히 솔직하게 대답을 한 것 같던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나 보다.
물론 그런 면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는 건 안다. 배우로서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도 바람직하거나 똑똑한 대처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상이 대중들에게 있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토픽(topic)이라면 굳이 드러내도 상관없겠다고 느껴졌다. 물론 내가 사생활을 드러낸다고 해서 남자친구와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몇 년을 사귀었는지, 그런 아주 사적인 내용들을 얘기한 것까진 아니니까, 그냥 내 일상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개인의 세계관 같은?
맞다. 대중들한테 예전에 있었던 해프닝 정도를 얘기하는 것까지 크게 숨겨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너무 숨기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런 솔직함이 어떻게 보면 한예슬의 숨겨진 매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은 그런 단면이 잘 드러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환상의 커플>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캐릭터라는 정체성과 환상을 동시에 만들어 준 작품인 것 같다.
배우들이 좋은 역할을 많이 맡고 싶어하는 건 대중들이 그만큼 공감해주기 때문이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는 그런 색깔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정말 둘도 없는 애정이 가는 역할이었지. 나도 그 순간만은 나상실로 살면서 행복했던 거 같다.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났다는 건 좋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축복이지. (웃음)

사실 나상실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타이밍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용의주도 미스신>은 나상실의 연장선상처럼 보인다. 이미지 굳히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상실처럼 <용의주도 미스신>의 신미수도 겉으론 못마땅한 구석이 많아 보일 수 있다. 좀 도도하고, 용의주도하다는 면이 어떻게 보면 꼴불견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불쾌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상실이 갖고 있었던 어떤 순수함처럼 신미수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다. 나름대로 신미수로 하여금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상처가 있고, 내면에 여린 마음도 있고,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귀엽고, 상큼하고, 그런데 한편으론 덤벙거리기도 하는 부족한 여자다. 사실 <용의주도 미스신>의 영화적 포인트는 신미수가 많은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이다. 그게 재미있는 건 이 여자가 용의주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너무 완벽하게 용의주도하면 뻔하지 않나. 이 여자는 용의주도하려고 무진장 노력하지만 다 어설픈 거다. 그리고 이제 관객들이 봤을 때 그런 신미수의 어리버리함으로 빚어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지.

결국 나상실처럼 신미수도 양면성이 있는 캐릭터다. 어쩌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계속 연기하게 된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뭔가 약간 특별한 색깔이 있는 역할을.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을 보면 굉장히 다 정상적이지 않은 거 같더라. (웃음) 알다시피 정상적인 멜로라던가, 그런 역할을 한번도 해본 적 없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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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작부터가 정상은 아니었다. (웃음)
<논스톱4>에서부터 그랬지. 한 색깔로 꾸준히 지속되는 역할보단 복합적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사람들이 나상실에 열광했던 건 뒷면이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도도하고 새침하지만 뒤로는 소심하고 때론 천박스럽기도 하다. (웃음) 자장면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로 어필되는 거 같기도 하다. 화려한 스타와 평범한 일반인의 입체감을 동시에 형성한다고 할까.
맞다. 나 정말 평범하다. (웃음) 실제 생활도 정말 평범하고.

그런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건 직업상 요하기 때문에, 당신도 만약에 배우 생활을 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거다. 사람은 직업에 따라서 풍기는 아우라가 틀려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선생님은 선생님 같고,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생겼고, 음악가는 음악가처럼 아티스틱(artistic)하게 생겼고. 이렇게 직업에 따라서 풍겨지는 이미지가 틀려지는 거 같다. 당신도 계속 일하다 보면 더욱 기자스러워지는 면이 있을 거다. 배우도 신인 때는 배우로서 2% 부족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 배우다운 아우라가 나올 때가 있겠지. 나도 그렇게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점점 배우 같은 이미지가 조금씩 소화되는 거 같다. 하지만 내가 학교 생활하던 학생이었다면 지금 같은 이런 느낌은 안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외모가 어디 가겠나? (웃음)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혹시 한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는 없었나?
난 나만의 성격이 있다. 나만의 색,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얘길 할 때도 그래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신인이었었을 때는 너무 솔직하고 당당한 것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쟤는 뭘 믿고 당당할까, 건방지다, 아니면 도전적이라서 기분 나쁘다. 이렇게 오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에는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까 이젠 사람들이 그걸 다르게 해석한다. 쟤는 프로 정신이 있는 것 같다, 당당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그런 식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렇게 위치에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천차만별인 거 같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런 점들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받은 교육 방식은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합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할 땐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거 해!’ 이런다고 하는 게 아니다.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들어야 하고,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 거지. 그런데 신인 때는 내가 꼭 ‘왜 이걸 해야 해요?’ 이렇게 캐묻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던 거 같다.

체계에 대한 하위적 일방성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한 게 사실이다.
한국은 항상 어른들 말씀하실 때는 대답 짧게 하거나 자제하고, 그저 조용조용히 있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미국은 항상 주위에 반대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가 열려있다. 그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있고,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있고, 선배와 후배의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좀 낯선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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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동안에는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무른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자신의 개인 생활을 하고 배우로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아지트처럼 보인다.
맞다. 한국에 있다 보면 배우들이 자유자재로 활동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집에서 잘 나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외국으로 더더욱 나가려는 이유는 배우라면 자꾸 감성 훈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서,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행복해하는 것, 내가 슬퍼하는 것, 내가 외로워하는 것, 이런 걸 충분히 만끽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자꾸 배워나가야 된다. 왜냐면 나중에 배우로서 성숙한 역할을 표현해야 할 때, 인생을 모른다면 그걸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단세포적으로 아주 일차원적인 역할이나 어린 아이들이 하는, 아이돌 역할만 할 수 없잖아. 그렇지 않기 위해선 자꾸자꾸 커져야 한다. 그런 인생 공부를 하기 위해선 내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영역을 갖고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물론 그게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직접 느끼는 걸 더 좋아한다.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생각보다 감성적인 성향이 짙어 보인다.
감성적인 면도 강하고, 또 직업상 감성적인 면도 훈련해줘야 되는 것이고.

상당히 말을 조리 있게 한다. 평소에 대화를 즐기는 편인가?
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하진 않는데, 다만 내 생각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건 좋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많이 느낄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건 아니니까. 더욱이 지금처럼 한국에 와서 지내는 경우엔 더더욱.
외로움 잘 탔지. 예전에 20대 초반 때, 한국에 와서 혼자 활동하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어리니까 굉장히 외로웠는데 그게 하나의 훈련이 된 거 같다. 지금은 그런 외로움을 어떤 일을 하거나 작품을 완성하고, 그에 대한 성취감으로 충족시킨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역할을 맡고 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친구 삼아 사는 거 같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은 많이 만난 것 같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번에 스타일리스트와 관련된 일도 결국 사람간의 문제였다. 어쨌든 관계를 돈독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결과가 된 셈인데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강한 것 같다. 자기 컨트롤에 능하다고 할까.
그것도 항상 잘했던 건 아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진 거지. 처음부터 자기 컨트롤 잘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거다. 얼마만큼 훈련하고, 얼마만큼 자제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틀려진다. 난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훈련을 성공적으로 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 생활 속에서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 그 반대로 자기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건,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많아질 텐데 그것들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컨트롤할 수 있는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행운이 오거나 큰 일들이 주어진다 해도 모두 흩어져버리고 오히려 내가 그것들에게 삼켜지는 꼴이 될 테니까. 때론 갑자기 큰 관심을 얻었다가 그걸 힘들어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성공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계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절차를 성공적으로 밟았다고 생각된다. 자기 어떤 컨트롤이지. 참아야 될 건 참아야 되고, 인내해야 될 건 인내해야 되고, 넘겨야 할 건 넘겨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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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같은 경우도 배우로서 하나의 사생활인데, 그것이 종종 인내해야 할 것처럼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본인도 TV에서 그에 대한 질문도 받기도 했다.
연애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겠지. 때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건데, 단지 함부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위치가 있고,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사실 진실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힘든 일이다. 난 연애를 대충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지, 난 배우니까 아직 연애하면 안돼, 이런 건 아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왜 못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하면서 연애를 같이 감행할 경우엔 그에 대한 어떤 충분한 가치가 있어야 된다. 쓸 때없이 그냥 연애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

사실 연애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거지! 특히 배우의 감수성에 있어서 사랑은 더더욱 중요한 거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출연작 중 가장 많은 남자를 만난 케이스고, 앞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그렇겠지. 그런데 난 신미수란 여성을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신미수는 굉장히 사랑 받고 싶어하는 여성이지만 그 사랑을 찾지 못하는 거다. 사람이 정말 먹고 싶은 건 없어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된다. 이 여자도 외롭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지만 사랑을 만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자기의 사랑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거다. 내가 이 남자를 왜 만나야 되지? 그렇게 사랑이 없으면서도 사랑해야 되는 이유를 찾는 거지. 그래, 얘는 재력이 있잖아, 모든 사람들이 재력을 좋아하고 또 존경해주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랑 연애를 해도 정당성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법고시 고시생이랑 연애할 때도, 장래성이 있는 예비 검사니까 날 지켜줄 수 있을 거야, 그런 조건도 사랑을 합리화시키는 거지.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면 신미수가 처음부터 갈등할 이유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성을 만날 때 조건을 따진다는 게 굳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고, 이 남자를 사랑해야 될 어떤 정당성을,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 중,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태를 풍자한 캐릭터 같다. 요즘 애정이나 사랑을 조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감정을 이성으로 해결하려 든다.
특히 한국 사회는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다. 외국 같은 경우는 개인과 개인의 결혼이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집안과 집안의 결혼이라 해야 맞는 거 같다. 한국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오누이, 며느리, 친정 아버지, 친정 어머니, 이렇게 챙겨야 할 가족 시스템(system)이 워낙 많기 때문에 개개인이 결혼해서 행복하자고 해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면 모든 가족이 다 융화가 되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조건을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왜냐면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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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맞아, 그런 거. 혼수 문제 때문에 얽히고 설키다 보면 또 서로에게 자꾸 섭섭한 게 생긴다. 아무리 우리 엄마가 그랬다고 해도 우리 엄마한테 너 이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감정상하다 보면 그렇게 되겠지.

<환상의 커플> 이후로 공백이 있었다. 사실 배우로서 상종가인 시기에 기회가 상당했을 텐데, 오히려 몸을 추슬렀다는 게 다소 의외였다.
난 오만 방자하기 싫었다. <환상의 커플>로 사랑을 받게 돼서 캐스팅 섭외가 많아졌고 자칫하면 그릇된 초이스(choice)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발자국 물러서서 지금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에서 나한테 가장 걸맞은 역할을 하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환상의 커플>로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대중들에게. 그리고 거품에 쉽게 휩싸이지 않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었다.

결국 자기 보호를 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관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그런 이미지로 각인될 위험도 크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는 건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지금 한 색깔을 고집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훌륭한 배우들이 많다.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도 있고, 미쉘 파이퍼도 그렇고. 훌륭한 배우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배우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 같다. 또한 역할의 변신에 따라서 몰입도가 각각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만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 단지 나만의 카리스마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 어떤 일정한 캐릭터에 갇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들이 날 볼 땐 한예슬의 색깔을 보겠지만 그것도 다른 인터프릿(interpret),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색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난 대중들이 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에 묶여서 배우 생활을 하는데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 난 배우로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면서 대중들과 어떤 영감이 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싶다?
교감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 난 다음 작품에서 다른 역할을 했을 때, 굳이 변신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 역할로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전에 일단 난 배우이기 때문에 그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름의 태풍>같은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극적인 캐릭터도 언젠가 다시 도전해야 할 산이 아닐까.
좋다. 어떤 하이라이트나 악센트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원스>같은 영화라면. 정말 물 흐르듯이, 그런 잔잔한 역할도 너무 좋다. 어떤 역할에 대한 복합적인 느낌보다는 그 영화 자체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도 좋다.

단순히 어떤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두드러져 보이기 위한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좋다는 말인가?
그 영화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잖아. 왜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았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 버리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그런 것들이 너무 좋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는 영화마다 너무 매력이 많다. 그렇지 않나? 물론 드라마도 좋지만 드라마는 아무래도 영화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영화라는 장르는 나로 하여금 다른 세계에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배우 활동을 함에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다양한 삶을 인생에서 여러 번 사는 것도 바쁜 거지.

마치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랄까.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난 솔직히 처음엔 연기가 싫었다. 내가 왜 연기를 해야 되는지 몰랐는데, 그냥 끌리는 거 있잖아.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수 없게 끌리는, 그래서 난 처음에 연기할 땐 정말 울면서 연기했다. (웃음) 정말 싫은데, 그걸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안가는 거다. 그래서 엄마한테 매일 전화해서, 엄마, 나 미국 갈 거야, 미국 갈 거야. 그랬었다.

뭐가 그렇게 싫던가?
모르겠다. (웃음) 그게 왜, 신 내리면 무당이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잖아. 그런 걸 운명이라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일단 한 작품이 끝났고 지금은 한창 영화 홍보에 바쁘지만 솔직히 6개월 정도 쉬면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다음 작품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푹 빠져버린 거 같다.
헤어날 수 없는 거 같다. (웃음) 내가 정말 너무 연예인 생활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이미 정신적으로 헤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일과 사랑에도 중독되기 쉽다던데, 그렇게 일에 중독됐나 보다.
그런 가봐. 어떡해~. (웃음) 내가 예전에 인터뷰 할 땐, 항상 내 개인적인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춰서 행복한 여자로 살 수 있도록 정말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며 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이 얼마나 좋으면 내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이게 더 좋은 거다. 그건 위험한 거지, 솔직히. 그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선을 넘는 순간인데, 그만큼 일이 좋아진다는 건 정말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선에 가까이 가고 있구나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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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연기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삶과 일반적인 삶에서 줄 수 없는, 그런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너무 좋은 거 같다. 더 이상 그것만큼 내게 삶의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도 없는 거 같다. 너무 따분해지는 거 있잖아. 일상 생활이. 항상 다른 역할로 살다가 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매일 하는 식사와 그냥 주위 사람들과의 뻔한 대화와 일반 사람들과의 생활이 내게 더 이상 새롭지가 않은 거지.

그건 좀 위험한 것 같다.
예술가들 중 보통 왜 저렇게 살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분들이 많잖아. 이해가 갈 거 같더라. 왜 저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인지. 예를 들어 그림 그리시는 화가 분들 중 아예 사회와 교리를 끊고 정말 그림만 그리시는 분들 있잖아. 왜 저렇게 살까 하면 그분은 그 세상에서 하는 일이 즐거운 거겠지.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나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선을......(웃음)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용의주도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데, 용의주도의 의미를 사전으로 해석했더라. 용의주도란 매사에 신중하게 꼼꼼히 따져서 일을 그르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뜻으로 해석한다면 용의주도하다는 건 필요한 거 같다. 그릇됨이 없이, 그르침이 없이. 하지만 일반 생활에서 해석되는 용의주도함이란 어떻게 보면 잔머리 굴리고, 어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뭐든지 한다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그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항상 진실되지 않은 행동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득이라고 생각될지언정, 그것도 진실이 아니라 가상으로 만들어낸 어떤 거품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진실로 이뤄낸 모든 일들은 그 일들이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진실되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현실에서 용의주도한 삶이란 거짓 같은 인생에 가깝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은 용의주도한 편인가?
난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용의주도했다면 <환상의 커플> 끝나고 내게 들어왔던 CF에 모두 계약하고, (웃음) 그 다음에 섭외됐던 대작들을 모두 섭렵하고, 쉬지 않고 활동했을 거다. 나는 차근차근 수위를 높여가고 싶다.

배우가 된 뒤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 저희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반대하셨다. 굉장히 보수적이시다. 사실은 내가 데뷔를 더 일찍 할 수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먼저 손을 뻗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일찍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했다. 그래도 일단 일을 시작하게 돼서 이젠 인정해주신다. 어머니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날 도와주시는 편이시다. 저희 어머니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고 꿈을 펼치라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이시다. 아마도 내가 그만 둔다고 그러면 어머니께서, ‘너 미쳤니? 왜 그 재능을 썩혀?’ (웃음) 그러면서 날 오히려 더 밀어 넣으실 거다.

<환상의 커플>로 많은 관심을 얻은 후, 그런 관심으로부터 다시 멀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난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다. 밟아도 밟아도 뿌리 뻗는 잡초처럼. (웃음) 난 내가 잠시 얼굴을 안 비춘다고 대중들한테 잊혀지는 그런 배우였다면 이렇게 연기를 꾸준히 할 수 있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자신감 있기 때문에, 그리고 대중들한테 보여줄 게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고, 대중들이 내 모습을 보길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잡초치곤 너무 예쁜 거 같은데. (웃음)
밟아도 밟아도 라는 말이 너무 웃기지 않아? (웃음)

미니홈피에서 인상적인 글을 하나 읽었다. 난 우주인이며 이중인격자다. 하지만 난 나를 사랑해주는 지구인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계속 이 별에 눌러 살아야지. 물론 거기서 지구인은 팬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지. 그건 내가 신인 때, 미니홈피 막 시작하고 썼던 글이다. 이제 삭제할 때도 됐는데, 그냥 그때 그렇게 내가 적어놓은 글을 보면 그 생각들이 너무 귀엽다. 나의 세계관을 풍자해서 적은 글이라고 보면 된다. 나의 세계관은 비록 다른 사람과 틀리지만 나의 이런 점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맙다는 걸 재미있게 풀어 쓴 거다.

지워버리긴 아까운 거 같다.
그럴까?

그리고 역시나 우주인 치곤 너무 예쁘다. (웃음) 그리고 오랫동안 눌러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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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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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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