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메운 빌딩숲으로 형성된 스카이 라인을 부감으로 비추던 카메라는 서서히 미끄러져 강을 건너고 그 위로 달리는 기차에 다가선다. 그리고 그 기차 속에서 잠에 들었던 듯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한 남자가 갑작스럽게 놀라며 깨어난다. 그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그의 일행인 듯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여자의 정체를 묻는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헬기를 조종하는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할)라고 신분을 밝힌 남자는 자신이 거기에 왜 있는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인은 누구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곧 끔찍한 찰나를 경험한 뒤, 또 한번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끌려오듯 정신을 차린 남자는 반복되는 8분 간의 동일한 경험을 거듭 체험하며, 그리고 그것이 가상적 체험을 넘어서 실물적인 경험으로서 자신에게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며 자신의 존재와 상황의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소스 코드>라는 제목은 원래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프로그래밍 정보가 저장된 파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의 메인보드에 대비시킨 듯한 상상력을 통해 구상된 작품처럼 보인다. <소스 코드>는 인간의 두뇌 속에 보관된 8분 간의 기억적 정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백업된 8분 간의 기억 속으로 침투하여 그 기억에 담긴 정보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셈이다. 여기서 8분은 보관될 수 있는 기억의 한계량이며 이를 재생하는 방식에 대해 영화는 고난도의 양자역학의 원리를 통해서라고 설명한다. 중요한 건 이런 논리가 어느 정도의 설득력으로 관객을 현혹시키느냐의 문제다. 어떤 식으로든 고난도 과학 원리를 빌려서 거짓말 같은 상황의 재현이 가능하고, 그것이 과학의 힘을 빌린 사실적인 상황임을 설득한다면 영화의 원리에서 발생하는 오류의 편차는 중요하지 않다. 죽은 이의 두뇌에 보관된 기억 속에 삽입되어 8분간 재현되는 그 과거 속에서 모든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객이 믿게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소스 코드>는 성공사례에 가깝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을 넘나드는 인물의 존재론에 관한 고찰과 리얼리티와 버추얼 사이를 오가는 인물의 선택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소스 코드>는 <인셉션>이나 <매트릭스>와 같은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소스 코드>는 전자들처럼 시공간에 관한 특별한 발상을 설득력 있게 포장해낸다. 평행우주론에 입각한 시간여행 이론에 가까운 <소스 코드>의 시공간 개념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잠재된 무의식의 양태를 하나의 의식적 세계로 확장해서 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확신이 불가능하나 흥미로운 결과인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의심되는 오류는 있다. 사실 타인이 경험했던 1인칭 시점의 과거로 잠입해서 그 기억을 토대로 둔 시점을 대신 시뮬레이션하고, 그 기억이 펼쳐진 모든 환경들을 롤플레잉으로 운용한다는 영화적 설정에는 분명 의심할 만한 오류가 잠재돼 있는 것이다. 경험자의 경험이 미치지 못한 시공간의 영역까지 대체자가 대신 경험할 수 있다는 설정이란 그렇다. 하지만 <소스 코드>는 이런 설정의 무리수에 대한 고민을 지워버릴 만한 매력적인 자질이 농후하다.
시간여행과 평행우주라는 초자연적 과학원리에 대한 이론적 체험은 재난과 로맨스, 미스터리라는 다양한 장르적 묘미와 확대된다. 반복되는 시공간의 이동 속에서 한 꺼풀씩 벗겨지는 미스터리의 묘미는 시공간의 한계를 되레 탁월한 스토리텔링의 무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소스 코드>의 시간여행 원리는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복사하는 복제의 특성에 가깝지만 이를 자가적으로 진화시키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시에 던칸 존스의 전작인 <더 문>과의 연관성도 발견된다. 자아를 잃어버린 복제 자아가 진짜 자아의 꿈을 대신 실현해내듯 복원이 불가능한 현실을 벗어나 가상의 리얼리티 속에서 삶을 회복시키는 인물의 태도, 이는 현실보다 나은 이상적인 가상을 추구한다는 리얼리즘의 역설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인셉션>의 결론, 즉 팽이가 멈추었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분분한 의견에 대한 진보적인 의견처럼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자질의 성과는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자 <더 문>을 통해서 발견된 던칸 존스는 ‘시공간의 새로운 지배자’로 거듭나며 재능을 확신시킨다. 또한 그가 <소스 코드>의 메가폰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이크 질렌할은 매력적인 배우로서의 성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또한 어느 영화보다도 매력적인 웃음을 선보이는 미셸 모나한과 특유의 연기력으로 극의 감정선을 고취시키는 베라 파미가도 탁월한 연기를 선보인다.
어느 기차 속에서 잠을 자듯 창에 기대어 있던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난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여자는 일행인 듯 친근하게 그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남자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헬기를 조종하는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할)라고 신분을 밝힌 남자는 자신이 거기에 왜 있는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인은 누구인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러나 곧 끔찍한 찰나를 경험한 남자는 반복되는 8분 간의 동일한 경험을 거듭하며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며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프로그래밍 정보가 저장된 파일을 의미하는 <소스 코드>는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의 메인보드에 대비시킨 듯한 작품이다. <소스 코드>는 인간의 두뇌 속에 보관된, 다시 말하자면 백업된 8분 간의 기억 속으로 침투하여 그 기억에 담긴 정보를 탐색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8분은 보관될 수 있는 기억의 한계량이며 이를 재생하는 방식에 대해 영화는 고난도의 양자역학의 원리를 통해서라고 설명한다. 어쨌든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과학의 힘을 통해서 죽은 이의 두뇌에 보관된 기억 속에 삽입되어 8분간 재현되는 그 과거 속에서 모든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
<소스 코드>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가상의 경계 속을 넘나드는 인물의 존재론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인셉션>이나 <매트릭스>와 같은 작품을 연상시킨다. 중요한 건 <소스 코드>가 전자들처럼 시공간에 관한 특별한 발상을 설득력 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평행우주론에 입각한 시간여행 이론에 가까운 <소스 코드>의 시공간 개념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잠재된 무의식의 양태를 하나의 의식적 세계로 확장해서 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이론적이나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사실 타인이 경험했던 1인칭 시점의 과거로 잠입해서 그 기억을 토대로 둔 시점을 대신 시뮬레이션하고, 그 기억이 펼쳐진 모든 환경들을 롤플레잉으로 운용한다는 영화적 설정에는 분명 의심할 만한 오류가 잠재돼 있다. 이를테면 경험자의 경험이 미치지 못한 시공간의 영역까지 대체자가 대신 경험할 수 있다는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소스 코드>는 이런 설정의 무리수에 대한 고민을 지워버릴 만한 매력적인 자질이 농후한 작품이다.
이런 영화적 설정은 시간여행과 평행우주라는 초자연적 과학원리에 대한 이론적 체험과 함께 재난과 로맨스, 미스터리라는 다양한 장르적 묘미를 전달한다. 반복되는 시공간의 이동 속에서 한 꺼풀씩 벗겨지는 미스터리의 묘미는 시공간의 한계를 되레 탁월한 스토리텔링의 재료로 구축되고 있다는 매력으로 승화됐다. <소스 코드>의 시간여행 원리는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복사하는 복제의 특성에 가깝지만 이를 자가적으로 진화시키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던칸 존스의 전작인 <더 문>과의 연관성도 발견된다. 자아를 잃어버린 복제 자아가 진짜 자아의 꿈을 대신 실현해내듯 복원이 불가능한 현실을 벗어나 가상의 리얼리티 속에서 삶을 회복시키는 인물의 태도, 이는 현실보다 나은 이상적인 가상을 추구한다는 리얼리즘의 역설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마치 <인셉션>의 팽이가 멈추었는가, 를 두고 벌어지는 분분한 의견에 대한 진보적인 결론처럼도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자질의 성과는 바로 ‘시공간의 새로운 지배자’, 던칸 존스라는 이름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