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신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때때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외모는 유효한 재능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유효한 수단이다. 다만 선천적 한계가 그 가능성을 좌우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후천적 선택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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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접사를 통해 누군가의 생채기를 세심하게 더듬어 가는 시선의 끝엔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죽음이 존재한다. <우리집에 왜왔니>(이하, <우리집>)는 비극적이라 단정짓기 쉬운 결과를 통해 시작되는 영화다. 물론 영화엔 어떤 비극적 암시가 없다. 그 비극은 단순히 상황 그 자체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 실상 영화적 태도와 무관하다. 온전히 영화의 태도를 빌려서 말하자면 이건 비극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 특별한 사연일 뿐이다. 그 죽음은 누군가의 기억을 다시 온전히 되돌리는 계기가 된다. 병희(박희순)는 다시 한번 기억을 따라간다. 그 기억엔 이수강(강혜정)이 있다. 만남부터 이별까지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여자가 있다. 이야기도 거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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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지 인터뷰

interview 2008. 5.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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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그 당시엔 모델들이 찍은 카다로그 같은 걸 보고 배우 섭외가 들어오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른 모델 출신 배우들처럼? 예를 들면 이나영 씨라든지.
이나영 언니는 나보다 몇 년 앞에 시작했고, 난 거의 마지막에. 배두나 언니, 공효진 언니나 다들 그런 식으로 먼저 배우로 진출했다. 나도 결국 막차를 탔고.

그럼 첫 영화가 된 <눈물>이 그렇게 찍게 된 건가?
그렇지. 그런 식으로 오디션 보러오라는 접촉이 왔다. 그리고 오디션 봤다가 출연하게 됐지.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한마디로 배우경력이 7년차란 뜻인데 이런 말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진 않나?
아직까진 배우로서의 연륜이 쌓인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항상 신인 같기만 하고, 뭐 그렇지. 정말 많이 알려져서 유명세를 치르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출연 작품수가 꽤 많다. 영화도 10편 가까이 찍었고, 드라마도 세 편 정도. 그런데 그 중, 임상수 감독 영화는 2편이다. 임상수 감독님과의 특별한 친분이 생기진 않았나?
직품할 때마다 배우와 감독이란 사무적인 관계로 만났을 뿐, 그 이외에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고 지낸 적은 없어. 아무래도 <눈물> 당시엔 내가 너무 어릴 때라 그다지 긴밀하게 친해지지 못한 탓도 있고.

첫 영화인 <눈물>에 노출씬이 있었어. 어린 나이에 엄청난 부담 아니었을까?
그땐 사실 너무 어렸을 때라 노출씬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 했었다. 노출해야 된단 이야길 들었을 땐 갑작스러워서 눈물이 막 나더라. 막 울다보니 촬영이 지연될 정도였지.

<눈물>을 찍기 전에 특별히 연기를 준비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연기를 했다.
처음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지, 아마? 그냥 그 땐 연기도 몰랐고. 사실 내가 배우나 연기자가 되겠단 생각을 전혀 못했을 때 갑자기 그런 기회가 왔었고. 우선 그 당시엔 한번 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무턱대고 했지. 어떤 사람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겠어. 결국 지금은 운명처럼 받아들인 셈이지만, 그 당시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따라갔고, 또 한편으론 하고 싶단 의욕을 많이 비췄기 때문에 많이 배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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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눈물>은 조은지 본인에겐 연기자라는 터닝 포인트라고 봐도 좋다는 이야기인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조은지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아닐까?
같은 생각이다. 사실 처음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너무 하고 싶어서 덤볐지만, 그 이후엔 연기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왜냐면 30대 중년이 느낄법한 뼈아픈 심리를 내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분에서 부담감이 컸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촬영 내내 오케이 사인이 나도 굉장히 신경 쓰였고. 마치 뒤가 구린 양? (웃음) 그래서 정말 ‘내가 잘 해서 오케이 사인을 받은 건가, 아니면 그냥 포기하신 건가.’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그리고 내가 스스로 항상 소옥의 심리를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도 좀 쉽지가 않았지.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그런 감정을 놓을 수가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생활이. 그래도 노력했던 부분들을 어느 정도 많이 봐주시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사실 내가 그 전에 해왔던 역할들이 조금 도발적이고, 캐릭터 있는 연기를 했기 때문에 더 눈에 띠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파리의 연인>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띠더라.
그래서 스스로에게 조금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단 생각을 하게 되니 많이 부담스러웠지. 하지만 오히려 이전에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의 연기가 사실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뭔가가 묻어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내 노력이 묻어난다는.

유부녀 역할은 두 번째다. 02년도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이하 <철없는>)에 이어서. 정말 그 땐 철없는 아내였는데, 이번엔 나름대로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
그런데 내가 솔직히 <철없는> 이야기만 나오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왜냐면 사실 너무 좋은 영화였는데 내가 망친 것 같아서. 훌륭한 감독님의 좋은 연출과 좋은 시나리오, 그리고 좋은 연기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역량을 못 쫓아갔다. 그런 반면에 난 너무 큰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고. 물론 <철없는>을 의식하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한 건 아니지. 솔직히 <철없는> 땐 중년의 원숙함이 드러나야 할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보여줘야 했는데 그게 사실 안 됐거든. 난 다시 찍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후회가 남을 만큼 너무 좋은 작품이다.

후회가 깊게 남았나보다.
우선 죄송할 따름이지. 분명 더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후회도 남고. 솔직히 그 당시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라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였을 것 같긴 했는데 난 시나리오 보면서 너무 재밌더라.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빨리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의욕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던 거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때보다 지금 배우로서의 욕심이 더 생긴 탓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묘한 제목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솔직히 난 너무 의아했다. 내가 소옥 역을 봤을 때,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나의 연기와 성향 자체가 틀렸던 역할이었기 때문에 우선 첫 번째로 탐이 났고, 두 번짼 훌륭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화로 보인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훌륭한 시나리오였고 그래서 너무 재미있겠단 확신이 생겼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무겁지 않게 잘 풀어갔단 생각이 들어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단 시나리오보기 전에 제목만을 본다면 꺼림칙하진 않았을까? 불륜의 뉘앙스가.
일단 그 당시에 그냥 제목만 보고 정말 세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밖에는, 글쎄. 사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불륜이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니까. 물론 그런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냥 영화로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난 그 캐릭터에 대해 욕심이 났었고, 내용 자체에서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겠단 생각만으로 봤기 때문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선배 연기자 두 분과 함께 출연했다.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일단 알다시피 두 분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내가 나이가 많게 나오는 역할이었잖아. 연기를 하는 상황에서 날 그냥 아줌마로 봐주셨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많이 맞추려 했고 우선적으로 선배님들이 내 눈높이에 많이 맞춰주셨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연배가 많은 선배님들과의 연기 경험이 많거든. 의외로.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같은 경우는 인물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씬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고 덕분에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고.

많이 친해졌을 법한데.
지금은 말장난을 칠 정도로 친밀해졌다.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라 많이 배려해주시더라. 사실 촬영 당시엔 서로 예민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냥 일상적 대화만 했고, 깊게 나눌 수 있는 대화는 영화 끝나고 나서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크랭크업한 뒤에 부산 국제 영화제 같은데서 만나서.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와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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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연히 미니 홈피를 가봤는데.
다들 가 보셨나? 어째 다들 그러던데.

모 포털 사이트에 대놓고 떠 있다. 인터뷰 준비하는 입장에서 안 가보고 배길 수 있나. (웃음) 조은지 미니홈피 이렇게 당당히 떠있는데. (웃음) 그런데 영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찍는 동안, 두 선배님들은 영화를 통해 영화를 떠난다. 본인은 방에서만 찍어서 서운하지 않았을까?
사실 내 촬영분량이 없는데 촬영장에 놀러갔었다. 두 번 정도? 하지만 서운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부러운 기분이나마 들지 않았을까?
아유~! 이거 뭐 부럽다고 대답해야 되는 건가? (웃음) 그건 아닌데. 아무 감정 없었어요.

협조를 안 해주시네. (웃음) 그럼 화제를 전환해서, 제작비가 많이 부족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들었다. 김태식 감독님은 집까지 저당 잡혔다고 간담회 때 밝히던데. (웃음) 어쨌든 그 결실이 드디어 빛을 본다. 외국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름대로 뿌듯하겠다. 개봉한다니.
지금 이 영화 찍은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건데, 사실 처음엔 이런 영화는 개봉을 해야 되는 영화니까 개봉을 할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가물가물해지니..다들 열심히 찍었는데 잊힐 것 같다 생각하니 사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정말 열심히 찍었기 때문에 이걸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되게 서운하고 그랬었거든. 근데 해외에서 너무 좋게 봐주니까 그런 계기로 인해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다행이지.

나름대로 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참 좋은 일이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도 한편으론 씁쓸하지만.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영화인 김태식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편인가. 지도를 많이 해주시는 편?
우선, 박광정 선배님의 연기에 대해서 감독님 자신이 너무 만족하고 계셨지만 난 바꿔야 되고 버려야 될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계속 주의주시고 조언해 주셨다. 그게 많이 힘이 됐지. 그리고 감독님이 굉장히 재미있는 편인데 어느 부분에선 심오하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그 중간이랄까. 그런 분이라 특별히 뭔가 어렵지는 않았다. 워낙 상황에 잘 맞춰주셔서. 그리고 덕분에 마음이 잘 맞아서 영화가 잘 된 거 같아. 내 생각엔.

좀 섬세한 사람인 것 같던데. 그런데 의외로 위트도 많은 편 인가 보다.
아, 맞다. 되게 섬세하다. 그래서 가벼운 농담은 전혀 못하신다. 주로 이야기를 듣고 한 박자 뒤에 웃게 되는 그런 농담.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아~!’하면서 머릴 탁 치게 되는.

하이 레벨 개그를 즐기시는구나.
맞아. 하이레벨, 혹은 블랙코미디? (웃음)

한영애 씨의 ‘누구 없소’를 부르던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노래 좋아하나?
나 노래방 되게 좋아한다.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이글스(Eagles)의 데스페라도(desperado).

의외로 감성적인 느낌인데? 좀 시원시원한 노래 불러제낄 거 같은데.
배우는 누구나 다 감성적이다. (웃음)

사실 조은지는 <파리의 연인>이나 <달콤, 살벌한 연인>의 왈가닥 이미지에 가까운 사람 같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데. 그냥 매일 밝은 사람은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되게 평범해. 웃길 때 웃고, 안 웃길 때 안 웃고. 하긴 이건 다 그렇겠다. (웃음) 그냥 스트레스 받을 땐 짜증내고. 그런데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렇다. ‘저 사람 정말 특이해.’ 이럴만한 배우는 만나본 기억이 없거든. ‘저래야 배우 되는구나.’라고 생각될 만한 특별한 면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더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캐릭터가 강해보이는 외모다.
맞다. 외모!

그래서 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일에 있어서 어지간하면 웃어야 되고 그래야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눈물>을 찍을 당시, 굉장히 화기애애했다. 그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또래이고, 감독님도 많이 장난치면서 우리한테 많이 맞춰주고. 근데 현장의 분위기와 무관하게 촬영 때는 ‘아, 이세계가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삭막해진다. 그때 당시엔 내가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았다. 사실 살짝 고민했던 게 내가 이 직업이 맞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다. 웃지 않아도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난 웃지 않으면 화난 것 같고 그 자리가 불편해 보인다는 오해를 산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맥을 끊어버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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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데! 나도 사실 아무렇지 않은데 왜 안 좋은 일 있냐고 물어서 곤란할 때 많다! (웃음)
반가운데! (웃음) 어쨌든 그래서 그 후론 많이 웃고 그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그래서 처음엔 힘들었는데, 확실히 웃는 게 좋긴 좋은 것 같다. 즐겁지 않아도 웃으며 일하면 정말 이게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주문에 걸린 것처럼 정말 사람이 즐거워진다.

아줌마처럼 뽀글거리는 파마도 했다. 아줌마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음. 우선은 목소리. 뉘앙스나 목소리 톤 자체, 그리고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행동 있잖아. 제스처 같은 경우에 신경을 썼지. 그리고 내가 결혼은 안했지만 연애는 했다. 그래서 똑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날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걸 눈치 채게 되고, 또 그걸 모른 척 하고, 내지는 용서하고, 그런 심정을 많이 인정하고 끌어갔다.

사실 소옥이라는 여자가 남편의 바람을 알면서도 많이 묻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나?
어떤 부분에서?

일단 영화에서 직접 어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가 보인다.
아, 그 전에 잘 넘겨줬다. 그런데 또 이번에 그런 상황이 터졌구나하는?

소옥이 태한에게 한탄하는 씬에서 많이 보이더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옥이란 여자가 미련해보이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남으면 어쩔 수 없겠단 동정도 생기더라. 본인은 그 입장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한데.
일단 정신 차려야지! (웃음) 그런데 이건 사람이라면 다 똑같은 거 같다. 사랑을 하게 되고 정말 이 사람 없인 못 살겠다는 기분, 정말 콩깍지가 씌워지는. 물론 냉정해서 감정을 잘 수습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 사람한테 목매는 사람도 있다. 소유욕 같은 게 강한 사람들 있거든. 그게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래도 난 이 사람을 가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거지. 그리고 소옥이 그 후자 쪽이었던 거고. 뭔가 나한테 실수를 했어. 그럼 ‘다신 너 안 봐.’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돌아서도 이 사람은 사랑하니깐 다시 돌아보는 거지. 그리고 어느 정도 동정도 있었던 거 같다. 중식에 대한.

중식 같은 경우는 ‘불륜은 없고 사랑만 있다’는 캐릭터다. 여자로서 그런 남자를 동정할 수 있단 말인가?
아으~! 솔직히 이해 안 되지! (웃음) 근데 사람들은 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연애라고 하듯, 자기가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이상 그걸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런데 난 연기로써 그 상황에 놓여 있었고 그런 부분을 이해해야 했던 거지.

사실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태한은 소옥을 통해 중식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소옥도 예상에 없던 한 번의 외도를 통해 남편의 외도에 역으로 복수를 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럴 수도 있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그 상황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게 되다보니. 왜 그 중간에 있잖아. ‘손님 와이프 바람났어요?’ 하고 소옥이 낄낄대다가, 태한이 ‘네.’ 라고 했을 때 엄습하는 침묵의 동질감처럼. 물론 감정에 의해 순간 이끌릴 수 있겠지만 은밀한 복수감도 있었던 거 같다. ‘너만 딴 여자랑 자냐? 나도 딴 남자랑 잔다’는. 태한 역시도 소옥이 중식의 아내란 걸 알고 왔지만 ‘내 아내와 잔 그 놈의 부인과 자면 복수하는 나도 거다’란 생각 같은 거 없이 동침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이 컸던 거 같아요.

뜬금없지만 나중에 진짜 아줌마가 되면 어떻게 살 거 같나?
나는 뭐, 그냥 잘? (웃음) 그냥 아줌마 되면 잘 살려고 노력해야지.

그럼 어떤 아줌마가 되고 싶어요?
네에~?? (웃음) 그냥 여유롭게 사는 아줌마 정도?

생각해보면 <철없는>도 단순히 인간관계만을 보면 삼각관계였다. 그런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도 결과적으론 삼각관계다. 본질은 달라도 외면적인 규격이 비슷하니 비틀어서 비교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철없는>은 레즈비언, 즉 동성간의 사랑이 소재였기 때문에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막판에 그래서 그렇지, 그 이외엔 그런 인상이 없잖아. 사실 하룻밤의 불타는 사랑정도에 그칠 뿐이지 소옥과 태한이 끝까지 연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태한과 소옥이 잠을 잤다는 사실도 의아하고.

명확하지가 않지.
맞다. 그런 게 명확하지도 않으니 한편으론 관계를 놓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일본과 미국에서 리메이크 된다고 하던데, 민망한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 역할을 누가 해줬으면 좋겠단 배우 있나?
아하하!! 아~, 창피해. (웃음) 누가 했으면 좋을까? 근데 아무래도 적당히 젊은 여자가 했으면 하지. 난 개인적으론 여자 배우 중에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메릴 스트립은 나이가 좀. (웃음) 케이트 윈슬렛? 푸근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정말 아줌마스런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비디오 상으로만 봐도.

얼마 전 <리틀 칠드런>이 기억난다. 꽤 어울리겠는데?
그렇지! 그분한테는 죄송하지만! (웃음)

7년이면 나름대로 오래 활동한 셈이다. 그 동안에 애착이 간다거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 있을까?
사실 모든 캐릭터가 다 애착이 가지만 그중에 나와 가장 비슷했다고 생각되는 게 있긴 하다. 내가 일본 영화를 한 번 찍었었다. <호텔 비너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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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씨와 함께 나왔던?
맞다. 그 영화에서 내 역할이 극중에선 나름 밝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면이 두드러진다. 그런 부분에서 솔직히 이 친구가 되게 와 닿는 것까진 아니었는데 그냥 좋더라. 사실 그 때는 그 모습이 내 상황이었던 것만 같았다. 배우로서 길을 헤매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애착이 많이 갔다. 그리고 아까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의 소옥 연기도 깊게 애착이 간다.

지금 캐스팅 돼서 준비 중인 영화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핸드볼 영화고 여자이야기다. 임순례 감독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예전에 <아프리카>로 여자이야길 한적 있다.
그게 내 두 번째 작품이었지. <아프리카>가.

그런데 뭔가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첫 영화였던 <눈물>과 이제 개봉할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저예산의 독립영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면, 두 번째 작품인 <아프리카>와 차기작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여자이야기라는 것.
그러네!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맞네! (웃음) 우연이지. 뭐, 좋은 작품들이고.

김정은 씨와는 두 번째로 만난다. <파리의 연인>이후로.
감회가 새롭지. 사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되게 빨리 진행되니까 서로 이야기를 할 자리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엔 핸드볼 연습 끝나고 나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면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서 우선은 좋다. 그리고 정은언니를 내가 어렸을 때 봐선지 항상 날 어리게만 본다. ‘네가 몇 살이라고? 말도 안 돼!’ 이러면서. (웃음)

처음 시작은 소녀였는데.
소녀? 양아치였지. 솔직히. (웃음)

너무 솔직한데. 나이는 소녀니까 그냥 소녀로 하자. (웃음) 어쨌든 이제 아줌마까지 왔다.
그럼 내년엔 할머니까지 가려나? (웃음)

본인은 자신이 어디정도까지 온 거 같나? 인생에서, 배우에서, 여자에서.
인생에서는 4분의 1정도 왔나? 그리고 여자로선..뭐라고 할까, 숙녀? (웃음) 그리고 배우는 한참 멀었지.

뭔가 하고 싶은 연기나 역할, 뭐 그런 거 없나?
사실 난 5년 전부터 똑같았다. 중성적인 이미지, 힐러리 스웽크처럼!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보여줬던 그거. 사실 5년 전부터 인터뷰를 통해서 어필했는데 아무도 안 불러준다! 그런데 주변에서 종종 넌 눈이 커서 무서운 역에 어울리니 공포물이나 해라! 그러더라. (웃음)

혹시 좋아하는 배우 있나? 구차하게 롤 모델까진 아니라도.
내가 친분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난 솔직히 이야기하면 강혜정과 공효진. 물론 그 사람이 출연한 모든 작품들이 깊게 와 닿은 건 아니지만 그녀들의 최근 작품이나 대표작이 될 만한 작품을 보곤 욕했다. ‘미친년이야, 너는.’ 이러면서. (웃음) 정말 대단한 거 같다. 물론 더 훌륭한 연기 보여주는 분들이 많지. 그런데 지금 내 나이 또래에 저만큼의 성향이 있고 그걸 저만큼 뽑아낼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난 되게 존경..같은 나이에 이런 말하려니 자존심 상하네. (웃음) 어쨌든 그러니까 대단하잖아! 솔직히 강혜정이 찍었던 작품은 세 번부터 여섯 번까지 다 봤거든. 한밤중에. 특히 강혜정의 <연애의 목적>이나 <올드보이>는 한 여섯 번 봤다. 그래도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

연기자로서 배울 점이 많다는?
그니까 용기 있는 사람! 솔직히 강혜정이란 친구는 정말 배우라는 게 딱 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 용기 있는 배우다. 난 항상 강혜정을 보면 항상 배워야 될 것 같고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떤 연기자들 같은 경우엔 항상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작품에 모든 걸 다 뽑아내지 않고 다음 작품을 위해 적당히 아껴두는, 머리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들도 많지만 강혜정이란 배우는 한 작품에 혼신을 다하는 것 같다. 막말로 혼신을 다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그런데 강혜정은 그런다. 그래서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

상당한 호감인가보다. 강혜정 씨의 연기가.
난 진실된 게 좋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관객의 눈에 띠는 연기를 고민하기보단 남들 눈에 띠지 않아도 뒤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연기를 주시하고 본다. 그리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참 대단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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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나이인데 좀 평범하면서도 예쁘게 보이는 여자 캐릭터를 한번쯤 해보고 싶진 않을까?
아니, 내가 민망할 것 같아. (웃음) 사실 난 나와 친한 사람, 그러니까 내 지인들한텐 상당히 애교를 떤다. 귀여움을 피우는 거지. 그리고 그것도 사실 여성스러운 매력이잖아. 그런데 그런 것까진 할 수 있어도 굉장한 비련의 여주인공 내지는 굉장히 예쁘고 섹시한 캐릭터는 솔직히 좀 아니다. 솔직히 그건 아니지. (웃음) 그런데 <미녀는 괴로워>에서 김아중은 참 대단하더라. 본인 자체가 너무 예쁜데 그런 역할을 그렇게 멋지게 소화해냈다는 게 참 대단하더라.

그런데 본인도 감초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
한약이다. 난, 몸에 좋은. (웃음)

그리고 아직 자신은 배우로서 연륜이 쌓이지 않았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연륜이 쌓이면 하고 싶은 역할이나, 혹은 배우로서 욕심을 부리고 싶은 꿈이 있나?
아까도 말했듯 <소년은 울지 않는다> 같은 중성적 이미지가 될 수 있겠지. 물론 어떤 배우들이 됐건 역할의 비중 같은 부분에선 어느 정도의 욕심이 다 있기 마련이지. 내가 좀 더 잘 할 수 있고, 좀 더 많이 보여서 또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그런 욕심은 많은데 솔직히 아직까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되게 어린 배우들이 많이 데뷔한다.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보면 내 나이를 봤을 때, 난 중간에 딱 걸쳐있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아직도 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연기라는 것 사실 잘 모른다. 그래. 감초. 좋지.

나름대로 맛을 내려면 감초가 필요하니까.
그럼. 영화가 맛을 내려면 나같은 감초가 필요하지!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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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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