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패를 읽을 수 있다면 게임은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도박이란 게 그렇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자가 돈의 주인이 된다. <작전>은 그래프의 변화를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작전’을 펼친다. 주가의 흐름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주가의 흐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대사를 빌리자면 대한민국 경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덕분에 주식에 관련된 전문용어가 난무하고 이에 관한 언어들이 삽시간에 흘러간다. 다양한 정보가 현란한 영상과 함께 스크린 속을 활보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딱히 인지하거나 숙지할 필요는 없다. <작전>은 주식에 대한 복잡한 이해를 바라는 영화가 아니다. 주식은 <작전>이란 영화를 설계하기 위한 일종의 매물과 같다.
<작전>에서 주식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한 도표와 같다. 부자들이 어장에서 먹음직한 미끼를 던지면 빈자들이 달려들고 그 사이 부자들은 그물을 던져 모조리 낚는다. 정보의 접근성은 자본의 유무에 따라 구별된다. 유산 계급의 속성이 근본을 구별한다. 속칭 데이 트레이너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강현수(박용하)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작전을 펼치는 황종구(박희순)의 차이도 거기서 비롯된다. 강현수는 재능을 통해 운을 확보하지만 황종구는 자본을 통해 계획을 실행한다. 증권 브로커 조민형(김무열)과 황종구의 작전을 가로채는 것도 재능을 통한 운이다. 이를 통해 재능밖에 없는 이는 밑천을 지닌 자의 수하로 포섭된다. 마치 그것은 프로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가 프로의 세계에 입성한다는 의미와 같다.
강현수는 <타짜>의 고니를 닮았다. 혈기 좋게 고를 외치다가 개털이 된 고니처럼 강현수 역시 찌질한 인생 갈아타기 위한 정답으로 주식을 믿었다가 바닥을 친다. 하지만 자신을 망가뜨린 그 곳에서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처럼 망가진 삶을 같은 방식으로 복구해나간다. 주식시장과 도박판엔 눈먼 돈이 난무한다. <작전>은 <타짜>의 변형이다. 인텔리한 주식 용어와 이론들이 어지럽게 출력되지만 실상 그건 중요치 않다. 실제적인 증권시장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치밀함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이며 그것을 가능케 할 요구도 불필요하다. 그저 꼴만 갖추면 된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기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들의 심중이다. <작전>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교훈하는데 모든 것을 펀딩한다. 강자와 약자는 자본의 여부로 나뉘고, 그들은 곧 선과 악으로 대비된다. 비윤리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강자들은 악으로 묘사된다. 예외는 있다. 작전에 참여한 자산 관리자(PB) 유서연(김민정)은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그래서 악보단 선에 근접한 지점에 선다. 그것이 본인의 입장에서 유리한 고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대적인 캐릭터 비중이 낮다. 강현수와 황종구 일당의 대비가 <작전>의 본질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우열관계에 대한 반발과 성토가 <작전>의 핵심이다. 장르적인 연출을 시도하고 이미지가 빠르게 전환된다. 동떨어진 세계를 남몰래 염탐하는 듯한 흥분도 발생한다. 전문용어들이 난무하지만 모든 걸 이해하고 넘어갈 의무는 없다. 그건 그저 피상적인 세계관에 불과하다. <작전>은 리얼리티를 구사하는 허구일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실존에 근접해있는지를 따져 묻는 건 불필요한 작업이다. 흡사 그것은 희화화된 조폭들을 위시한 조폭코미디의 전략과 유사해 보인다. 사실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보단 영화적으로 연출된 설정을 앞세워 교훈을 전파한다. 문제는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다.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교훈적 태도로 설명하던 영화가 결말부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바탕으로 성공한 캐릭터의 BMW를 등장시킬 때, 기존의 설교는 허세가 된다. 에그타르트와 초코파이를 대비시키는 이미지만 그럴싸할 뿐,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에 대한 의식은 개선시킬 수 없다. 맛있고 비싼 음식을 마음껏 즐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할 수 밖에. 결국 남는 건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뿐, 긴 설교는 한탕주의를 가리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을까.
<작전>은 주식은어다. 이 은어를 직접 사주하는 자를 알았다면 귀담아둬라. 적어도 주식에 관한 큰 손으로 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증권시장의 고급정보에 근접해있으며 투자자본이 넉넉하다. 운에 맡기는 개미가 아니라 계획대로 움직이는 프로다. 자본을 투하해 거품을 풀고 그 거품에 휩쓸린 눈먼 돈을 낚아채고 떠난다. 등 떠밀린 아마추어들은 기도나 하다 땅을 칠 따름이다. <작전>은 <타짜>의 유사품이다. 손모가지를 잘라도 도박판으로 돌아와 자멸하는 타짜처럼 주식에 운명을 건 투자자들이 설계한 큰판을 그린다. 이를 자본주의적 욕망이라 규정한다. 영화에서 난사되는 주식전문용어 사이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이 덕분이다. 주식에 대한 이해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다. 주식은 그저 자본주의적 교훈을 매도하기 위한 설계도구일 뿐이다. 직설적인 설교 속에서 빠르게 회전되는 이미지와 대사들이 현란하게 어울린다. 스토리는 명확하다.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완성하기 위해 내달린다. 하지만 어딘가 얄팍하다. 자본주의적 실리에 대항하는 윤리적 심판을 그리는 양 하더니만 결말은 배신이야, 배신. 부정한 자를 꾸짖는 척 가진 자를 위한다. 이율배반이다. 눈먼 돈은 남보다 내가 갖는 게 낫다는 대사는 풍자가 아니라 진심이었나. 연극배우의 고단한 보람을 예상케 하더니 번쩍이는 BMW로 기를 죽인다. 모로 가도 성공한 놈이 난 놈일 뿐, 교훈 따윈 그저 한탕주의를 가리고 싶은 허세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