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호랑이가 다시 신들린 음주 랩핑을 시작한다. 타이거 JK가 돌아왔다. 드렁큰 타이거가 나가신다. 그러니 손 머리 위로. 소리 질러!
마치 피사체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플래시가 번쩍일 때마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살아 숨쉬는 기분이었다. 타이거 JK의 에너지가 스튜디오를 기분 좋게 점령했다. 4년 만에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건, ‘드렁큰 타이거 with 윤미래 & 비지(BIZZY)’의 이름으로 낸 앨범 <살자(The Cure)>로 돌아온 타이거 JK와 비지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개인적으로 모아온 드렁큰 타이거의 모든 앨범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신기하다는 듯이 앨범을 집어들고 살피던 타이거 JK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말했다. “내 인생이 여기 있네.” 잠시 상념에 젖었다가 입을 뗐다. “솔직히 지난 앨범을 꺼내서 듣는 일은 드물지만 가끔 내가 그 랩을 하던 그 시절이 궁금해서 꺼내볼 때가 있다. 그 시절에 얼마나 랩을 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트랙을 노래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타이거 JK에게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은 목으로 써내려 간 일기장과 같다. 직접적인 기록 혹은 간접적인 기억의 매개체로서 그 모든 앨범에 지난 세월이 깃들어있다.
그러니까 1999년이었다. 뉴 밀레니엄이 온다고, 1년만 지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마냥 떠들썩했던 그 해에 드렁큰 타이거가 나타났다.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 같이 하나되는 우릴 봤지. 너를 원해. 이말 전해. 나를 너무도 원하는 너만의 눈빛이 내 눈에 정말 너무 훤해”라며 씨부렁거리는데 기똥차게 라임이 꿰이고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플로우가 쌈박했다. 노래 제목부터 패기 넘치게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라고 하는데 정말 힙합이 이런 것이라면 한번 제대로 들어보자 하여 음반을 구입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당시만 해도 힙합이라고 하면 언더그라운드에서나 유행한다던 마니아 장르 같은 것이라 아는 애들은 너무 잘 알았고, 모르는 애들은 너무 몰랐던, 그야말로 호랑이가 랩하던 시절이었다. 힙합이란 단어가 그리 생소한 시절도 아니었는데 드렁큰 타이거는 어딘가 낯설었다.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 같이.’ 정통 힙합을 표방한 드렁큰 타이거의 1집 앨범은 대중적으로 실패했지만 힙합의 역사에서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음반으로서 회자될만한 것이었다. 훗날 힙합신의 역사 안에서 회자될 ‘위대한 탄생’이었다. 2009년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 아래 나온 앨범만 8장이다. 강산도 변했지만 드렁큰 타이거도 변했다. ‘하나하면 너와 나’라고 했을 때 ‘너’였을 것 같았던 DJ 샤인이 5집 앨범을 끝으로 탈퇴하고 타이거 JK 혼자 남아 음주 랩핑을 이어갔다. 그 사이 혈기 왕성한 도전자들 사이에서 힙합신에 군림하는 챔피언이 됐다. 다이나믹 듀오, 리쌍, 에픽 하이, 슈프림 팀 등 날고 긴다는 랩퍼들이 한데 모인 더 무브먼트 크루의 첨탑에 서서 힙합신을 아울렀다. 그 과정엔 순탄치 않은 삶이 깃들어있었다.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은 그 삶에 대한 녹록하지 않은 기록이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척수염을 앓고 두 발로 설 수 없다는 진단까지 받으며 만신창이가 되는 와중에도 삶은 전진했다. 랩퍼이자 뮤지션인 윤미래와 결혼했고, 아들 조단이 태어났다. 삶은 피고 지고 다시 폈다. 2013년, 여전히 자동차는 날아다니지 않지만 힙합이란 단어는 가끔 그것이 그것이었는지 깜빡할 정도로 흔한 것이 됐다. 룰라가 힙합이었던 시대의 무지와는 또 다르게 질적으로 평준화된, 영혼이 증발된 힙합들이 저마다 왕이 나셨다며 전도 활동에 한창이던 시대에 드렁큰 타이거가 돌아왔다. 4년 만의 부활이었다. 지난 2009년에 발매된 드렁큰 타이거의 8집 정규앨범 <Feel gHood Muzik> 이후로 파도를 타듯 오르내리는 타이거 JK의 플로우에 취했던 것이. 하지만 드렁큰 타이거라는 활자가 선명한 신보 <살자(The Cure)>는 드렁큰 타이거만의 것이 아니다. ‘드렁큰 타이거 with 윤미래 & 비지(BIZZY)’의 첫 앨범이다. <1945 해방>이라는 타이틀로 홀로서기에 나섰던 타이거 JK에겐 아내이자 든든한 아군인 윤미래가 곁에 있었고, 척수염의 고통을 비롯해서 믿을만한 지인이 아니고서야 말할 수 없는 사연들로 주변의 관계가 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가운데서도 DJ 샤인의 빈 자리를 든든하게 백업해준 랩퍼 비지가 마지막 잎새처럼 관계의 가지를 지켰다.
호랑이는 원래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새끼를 기를 때만큼은 모여 산다.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만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힙합계의 실력자다. 그들 사이에 자리한 비지는 분명 잘 알려지지 않은 랩퍼다. 타이거 JK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비지를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고 싶었다.’ 마치 호랑이가 자기 새끼를 키우듯이. “사실 자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냥 네가 가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진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로 해선 알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의 길을 찾은 거 같다. 대단히 실력 있는 친구다.” 그리고 올해 초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함께 했던 프로젝트 유닛 MFBTY를 통해서 비지의 진가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 이 세 사람이 주도한 기획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멤버 개개인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일렉트로니카 베이스의 팝적인 센스가 돋보이는 넘버들이 탄생했다. “함께 하다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스타일이 나왔다. 저마다의 솔로 앨범에 넣기엔 어울리지 않은 넘버들이었지만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나왔다. 재미있었다.” 딱히 활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특별한 활동을 펼치지 않았지만 비주얼 아티스트 룸펜스의 비현실적인 비주얼 작업을 통해 완성된 뮤직비디오가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 ‘미뎀 페스티벌 2013’에 초청됐고, 무대에 올라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빌보드 공식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에도 MFBTY가 점령했다. 아프리카부터 싱가포르까지 지구 반바퀴를 도는 팬덤이 형성됐다.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삼위일체로 지구를 흔들었다. 사실 비지, 타이거 JK, 윤미래가 함께 한 신보 <살자(The Cure)>는 계획에 없던 경로였다. 갑작스럽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과업이었다. <살자>라는 타이틀은 타이거 JK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염원이다. 갑작스레 쓰러진 아버지에게 내려진 암 선고를 희망적인 음악으로 이겨내고 싶다는 열망. LP를 연상시키는 크기의 페이퍼 패키지 한가운데에 적힌 ‘살자’는 타이거 JK의 아버지 서병후가 직접 썼다. 삶에 대한 의지와 염원이 담긴 타이틀처럼 <살자>엔 새롭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는 넘버들로 시작된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의 회복을 기원하는 ‘살다(The Cure)’를 비롯해서 평생의 반려자가 된 아내 윤미래와의 결혼을 통해서 깨닫게 된 아름다운 인생에 관한 송가 ‘Beautiful Life’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진심을 담은 ‘첫눈에 설레였던 꼬마아이(Time Travel)’까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 JK가 아닌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아들인 타이거 JK가 저마다의 트랙 속에서 살고 있다.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 아래 이례적일 정도로 삶의 온기를 담아내고 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지 않고 싶었다. 왜냐면 현실적이라면 아버지가 아플 테니까. 꿈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허망함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했다. 멋부리지 않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라이브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자)’ 이런 가사가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보고 싶었다.” 타이거 JK는 <살자>를 통해서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인생을 노래한다.
“리허설할 때와 공연할 때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다. 콘서트에서 리허설할 때 사람들은 가끔 취한 줄 알더라. 미친 놈처럼 놀고 있으니까. 공연이 끝나고 들어가야 되는데 좀 더 하자 그러고. 어제도 공연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정말 행복해서 이 일을 하는 거라고.” 타이거 JK는 무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무대를 향한 팬들의 함성과 환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본다. 그 가운데서 자신이 살아갈 무대에서의 삶의 방향 또한 고민하고 가늠한다.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힙합에는 나이 제한이 있다고 본다. 빠져줘야 하는 나이가 있다. 그 빈자리에 젊은 보이스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길이 열리는 거 같다. 힙합을 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도 싶다는 말이다. 지금 미래를 점칠 순 없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란 게 두 개 정도는 남아있는 느낌이고, 그 방향으로 끌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타이거 JK는 올해 드렁큰 타이거로서 낸 마지막 정규앨범 타이틀을 상호명으로 옮긴 ‘필굿뮤직(Feel Ghood Music)’이란 회사를 차리고 독립했다. 혹자는 타이거 JK가 혼자 다 해먹겠다고 회사를 차렸다고 말하지만 의정부의 집에 있는 지하실에 묵음실을 꾸리고 리허설 녹음을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특유의 낙관으로 미래를 내다 본다. 여전히 척수염으로 약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한다. “언젠가 치료제가 나오겠죠.” 타이거 JK는 낙관적인 특유의 성격으로 주변의 비극마저 유쾌하게 왜곡시켜버린다. 세상에 유쾌한 에너지를 전파한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무색하게 두 발로 세상을 걷고 있는 타이거 JK는 말한다. “기적을 믿고 싶다. 그렇게 살 거다.” 지금 못다한 이야기도 언젠가 웃으면서 털어낼 수 있는 그날까지, 가라. 타이거 JK.
(ELLE KOREA 10월호 NO.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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