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하고 우울한 팀 버튼의 페르소나 즈음으로 여겨졌던 조니 뎁은 해적선에 오른 후, 롤러코스터적 캐릭터로 거듭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니 뎁은 괴팍하고 수상한 낭만주의자다.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가 심상찮아 보인 것도 팔 할은 조니 뎁 덕분이다. 전설적인 갱스터는 로맨티스트로 환생한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나이 조니 뎁의 육체를 빌어서.
1987년, 약관의 절반을 넘어온 조니 뎁은 폭스TV에서 방영된 <21점프스트리트>를 통해 아이돌 스타로 떠오르며 대중들의 시선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조니 뎁은 이른 나이에 성공을 맛본 아이돌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훗날 조니 뎁은 이 당시에 대해 이와 같이 회상했다. “억지로 ‘상품’역할을 강요 받아야 했던 그 당시는 정말 끔찍했다. 내가 그것을 조종할 길이 없었다. 그건 내가 바라던 조건이 전혀 아니었고,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조니 뎁에서 산업적인 드라마 현장은 이상한 나라였다. 배우로서의 비전에 투항하기엔 조니 뎁의 영혼을 채울 고삐가 없었다.
”단지 그 누군가의 결정이 아니라 나를 위한 권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면 할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작업이든 비참한 실패든.”조니 뎁은 스스로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라는 것을 증명하듯 닦이지 않은 길로 뛰어들었다. 브라운관의 아이돌을 버리고 조니 뎁이 선택한 첫 번째 스크린작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팀 버튼의 <가위손>이었다. “설명한지 10분만에 수락했다.”조니 뎁의 말처럼 <가위손>은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운명적 만남이나 다름없었다. 제작자 스콧 루딘은 “기본적으로 조니 뎁은 팀 버튼의 모든 영화에서 그를 연기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니 뎁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조니 뎁에 따르면,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십대 당시 팀 버튼의 무능을 전달하려 했고, <에드 우드>의 에드 우드와 벨라 루고시와 유사한 팀 버튼과 빈센트 프라이스의 관계를 반영하려 했다.”그 후로 7편의 작품을 함께 한 팀 버튼과 조니 뎁은 감독과 배우의 영역을 벗어나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동료로서 거듭났다.
단순히 팀 버튼의 기괴하고 영특한 페르소나 즈음으로 자리를 굳히던 조니 뎁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2003년에 찾아왔다. 디즈니 테마 파크에서 모티브를 얻은 해적물이자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제작자로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가 참여한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 역으로 캐스팅된 것. 1억 4천만 불짜리 대작에 조니 뎁이 캐스팅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공공연히 우려를 표하던 투자자들은 ‘키스 리처드’에 영감을 얻은 조니 뎁이 가냘프게 흐느적거리며 성정체성마저 모호해 보이는 잭 스패로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조니 뎁은 할리우드의 실권자나 다름없는 제리 브룩하이머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캐리비안의 해적>은 6억 5천만불이라는 거대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시리즈물로 기획됐다. 후에 제리 브룩하이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처음 묘사한 캐릭터가 성공하는 것을 한번 보여줘야 그들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됐다.”연출을 맡은 고어 버빈스키 역시 마찬가지다. “잭 스패로우가 조니와 실제로 밀접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가장 쉬운 것이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찍을 당시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결정지은 조니 뎁은 말했다. “뮤지컬에서 심각한 킬러에 관해서 연기할 기회가 얼마나 많겠나?”잭 스패로우를 통해 얻은 대단한 성공 이후로도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선택했던 조니 뎁이었다. “사실상 <캐리비안의 해적>을 했던 것이나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했던 것이나 멋진 종류의 작품을 한다는 건 마찬가지다.”잭 스패로우를 통해 큰 흥행을 얻었지만 정작 조니 뎁은 변한 것이 없었다. “작업을 선택하고 접근하는 과정에 대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가 했던 것처럼 정확히 같은 것을 거듭 해오고 있다. 나는 단지 내 할 일을 한다.”조니 뎁은 그 해 생애 첫 골든글러브 트로피를 거머쥔다. “나는 단지 누군가가 잘못 포함시킨 것이라 생각했다.”골든글러브 7번, 아카데미 3번, 지금까지 조니 뎁이 자신의 이름이 노미네이트에 오르고 내려간 것을 지켜본 건만 9번이다. 그 이전에 조니 뎁은 자신이 수상과 결코 무관한, 아니, 무관할 배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내 머리나 마음 속의 어둡고 깊은 곳에서조차 결코 갈망하지 못했던 종류의 사건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 년 사이 제리 브룩하이머의 해적선과 팀 버튼의 몽상을 오가며 비현실적 세계의 아우라를 구축하던 조니 뎁은 <스위니 토드>이후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 두 발을 디디고 전설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퍼블릭 에너미>에서 전설적인 은행 강도 존 딜린저로 출연한 조니 뎁이 실화적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궁금증을 자아낼만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는 위험 속에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조니 뎁의 생각에 존 딜린저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기보단 누군가 하지 못하는 것을 특별히 해내는 사람에 불과했다. 동시에 존 딜린저는 갱스터라기 보단 락스타와 같이 대중들의 환호를 얻었다. “존 딜린저가 공공의 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은행들이 공공이 적이었지. 그는 그저 대중적이었다.”
“존 딜린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을 알아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조니 뎁은 존 딜린저에 관한 책이나 그가 등장하는 영상을 모두 찾아봤다. 그리고 점차 그가 일반적인 악당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됐다.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존의 권력에 당당히 맞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대중들의 환호를 받는 갱스터의 모습에서 자신이 동경했던 락스타의 아우라가 감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점차 자신과의 유사한 지점들에 대해서 발견해내기 시작했다.“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내 고향과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얘기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우리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 모든 것들이 통해 존 딜린저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야구, 영화, 좋은 옷, 빠른 차, 위스키…그리고 당신. 그 밖에 또 무얼 알고 싶소?(I like baseball, movies, good clothes, fast cars.. and you. What else you need to know?)”빌리 프리셰의 마음을 사로잡은 존 딜린저의 대사는 지나치지 않게 로맨틱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남성적인 힘과 여성에 대한 배려를 담은 존 딜린저의 대사가 조니 뎁의 입술을 통해 내뱉어질 때 그것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 된다. “내 몸은 일기장이다. 뱃사람들이 그러하듯, 모든 문신은 당신 스스로 흔적을 남기고 싶을 만큼 인생에서 특별한 시간을 어디서나 남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조니 뎁의 왼팔 이두근엔 ‘위노 포에버(WINO FOREVER)’라는, 옛 연인 위노나 라이더와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마치 한 여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거는 존 딜린저처럼 조니 뎁도 자신의 지난 사랑을 몸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니 뎁의 몸엔 현재 그의 딸과 아들과 어머니를 비롯해 13개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조니 뎁은 말했다. “나는 여전히 수많은 실패를 소유하고 있다.”여전히 조니 뎁은 말한다. “나에게 너무나 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 조니 뎁은 할리우드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테리 길리엄의 연출작이자 히스 레저의 유작이기도 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과 팀 버튼과 또 한번 손을 맞잡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차례대로 개봉을 기다리는 가운데, <캐리비안의 해적>의 새로운 시리즈와 <씬 시티>의 차기작에 그의 이름이 예정돼 있다. “할리우드나 산업적 정의에 따른 영화들은 내게 훌륭한 결과물이 되는데 실패했다.”조니 뎁은 가장 비할리우드적인 방식으로 할리우드에서 각광받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건 어쩌면 그의 재능을 알아주는 이들을 잘 만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실패란 딱히 두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가야 할 길이 있을 뿐이다. 죽음을 앞두고 연인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말의 낭만처럼, Bye bye my blackbird. 물론 조니 뎁의 마지막 인사에 취하기엔 아직 시간이 이르다. 조니 뎁의 전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2005년에 제작된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쉐인 액커는 이를 통해 팀 버튼과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고 자신의 세계관을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다. 서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자체가 생략됐으며 캐릭터의 대사조차 동원되지 않는 탓에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관이지만 폐허와 같은 이미지 위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의 탁월한 액션신이 담긴 11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에 대사를 입히고 세계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암시를 동원한 8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다.
인간의 이기를 위해 창조된 기계문명으로 인해 인류는 멸망을 자초한다. <9: 나인>(이하, <9>)은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와 같은, 기계문명에 의해 공격받는 인류의 비관적 묵시록을 스팀펑크(steampunk) 이미지에 담아낸 애니메이션이다. 인간이 사라진 세계에 남은 건 인간을 말살한 기계들과 피부대신 천을 두르고 살아 움직이는 정체불명의 인형들이다. 멸종된 인간이 남긴 문명의 잔해 위에서 인간을 말살한 인공지능 기계로봇에 맞서 생존적 저항을 펼치는 새로운 존재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활약을 묘사한다.
등에 적힌 숫자로 이름을 대신하는 9개의 인형 캐릭터는 제각각의 뚜렷한 개성을 통해 상대로부터 차별화된다. 인간만큼이나 부조리한 반면, 현명하고 헌신적이기도 하다. 저마다 이성과 감정의 양면성을 갖추며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폐허가 된 인간의 세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분명 처참한 풍경이지만 이는 딱히 불행을 인식시키지 않는다. 이는 그 폐허 위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들이 인간들의 비극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실상 인간이 사라진 영토를 차지한 존재들은 인간의 비극을 감지할 수 없는 로봇과 인형에 불과하다. <9>은 마치 인류가 사라진 묵시록의 대지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창세기처럼 보인다. 폭력적 진화 속에서 멸망을 자초한 인류는 자신들이 건축한 세계로부터 퇴장 당하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멸망 당한 인류가 만들어낸 인공적 존재들이다.
<9>은 비범한 서사보다도 가벼운 묘사를 통해 매력을 어필하는 작품이다. 세계관의 기원과 캐릭터의 근원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고 암시조차 소극적이다. 하지만 문명에 대한 비관적 뉘앙스로 그려진 세계관은 스타일리쉬한 액션 이미지를 치장하는 거대한 소품에 가깝다. 인류는 그저 사라져버린 종에 불과하며 이는 <9>에서 딱히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폐허가 된 문명 위에서 인류가 남긴 폭력적 문명에 대항하며 생존을 위한 대결을 펼쳐나가는 새로운 종의 투쟁 그 자체의 이미지가 중요하게 포착된다.
물론 <9>에선 인류의 문명에 대한 비관과 조롱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9>에서 그 세계관에 대한 비범한 해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기란 어렵다. 이는 <9>이 그 세계관을 병풍처럼 두르고 방치하는 덕분이다. 암울한 세계관을 인테리어처럼 두른 채 창조적인 캐릭터들이 이루는 동선을 따라 구사되는 스타일리쉬한 액션은 고차원적인 해석의 의욕을 차단하는 동시에 일차원적인 시각적 묘미를 부여한다. 인류의 흔적을 지워버린 묵시록적 세계관을 스팀펑크의 이미지로 디자인하고 테크놀로지 기계 문명과 아날로그적인 캐릭터들의 대결 구조를 통해 화려한 볼거리를 확보해나간다. 비관적인 세계관은 낡은 천을 두른 인형 캐릭터들의 창작적 개성을 통해 암울함을 잊은 채 서스펜스를 구사하기 위한 응용적 배치로서 소모될 뿐이다.
스타일리쉬한 액션 이미지를 구현하는 <9>에서 세계관에 대한 비범한 해석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는 건 <9>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순수하게 만끽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여건에 가깝다. 창의적인 이미지가 구현하는 시각적 묘미를 부담 없이 즐기면 그만이다. 거창한 이미지를 통해 비범한 의미를 치장하지 않고 빠르고 신속하게 제 위치를 선점해나간다. 그런 면에서 <9>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의 오락적 너비를 확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라 말해도 좋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