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을 견딘 예술품은 보존적 가치를 발생시키고 개인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예술품에 물질적 단위의 가격을 매기게 된 건 그 소유욕 때문이다. 희귀성이 인정될수록 책정되는 화폐 단위가 올라간다. 본질적인 아름다움보다도 금전적인 저울질을 통한 소유욕이 예술을 장악한다. 예술이 금전적 가치로 규정될 때 예술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굴절된 욕망이 파생된다. 진품을 베낀 위작들이 눈먼 소유욕을 등에 업고 시장에 유통되고 진가를 해독할 수 있는 감정가의 판단이 예술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변수는 그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의 속내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붓도, 예술적 가치를 판명하는 혀도, 예술적 가치를 구입하는 돈도,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사람이 변수가 된다.
<인사동 스캔들>은 예술을 거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붓을, 혀를, 돈을 재능처럼 부리는 자들이 각축전을 펼치는 판이다. 그 재능은 누군가를 찌르는 칼이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된다. 이는 도박처럼 위험하다. 그 재능을 걸고 ‘몰빵’하면 그 판 안에서 영생을 누리기도 하지만 무덤처럼 갇히기도 하는 탓이다. 그 성패는 자신의 재능이 상대를 압도할만한 그릇이 되는가에 달려있다. 자신이 들고 있는 패를 어떻게 던질 수 있는가의 배짱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패를 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사동 스캔들>은 붓과, 혀와, 돈을 자신의 패로 들거나 감춘 이들이 벌이는 판세의 경과를 지켜보는 영화다.
미술품 경매 현장에서 위작 논란에 빠진 작품을 감정하는 이강준(김래원)은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미술복원가다. 좋은 실력과 두둑한 배짱을 지니고 있지만 과거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이후로 복원가로 활동하지 않은 그는 도벽으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신세다. 미술계의 큰 손인 중개업자 배태진(엄정화)은 이강준의 특별한 처지를 이용해 안견의 ‘벽안도’복원작업에 끌어들이려 한다. 이강준은 ‘벽안도’에 흥미를 보이고 제안을 수락하지만 그에겐 다른 구상이 있다. <인사동 스캔들>은 ‘벽안도’복원이라는 사건의 기능적 관찰보다도 그 사안을 둘러싼 인물들의 각축전에 주력하는 영화다. ‘벽안도’복원에 착수하는 배태진과 이강준의 심리적 대립구도가 영화의 밑그림이 된다면 그 주변부에 산재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채색을 돕는 다양한 염료와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대사와 이미지에 담긴 대용량의 정보들이 출력된다. ‘매치컷(match cut)’을 비롯한 다양한 장면전환 방식을 활용하며 극의 속도감을 높이고 사연의 줄기를 이루는 사건에 관련된 정보들을 끊임없이 출력하며 정보적 포만감을 발생시킨다. 복원과 복제가 의미를 달리하는 것처럼 합법적인 미술경매와 암거래 경매장이 교차하는 대비적 풍경은 <인사동 스캔들>의 장기에 가깝다. 미술품을 둘러싼 담합과 밀거래 등, 예술품이 유통되는 암투적 과정을 묘사하는 <인사동 스캔들>은 일련의 과정에 대한 사실성을 따지기 힘들 정도로 생소한 덕분에 특별한 풍경으로서 값어치가 있다. 특히 오래된 종이에 먹일 풀을 구하는 ‘세초’작업, ‘원접’과 ‘배접’을 나누는 ‘상박’, 선명한 색감을 재현하기 위한 ‘회음수’등, 동양미술을 복원하는 과정은 <타짜>의 ‘밑장빼기’만큼 이색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사실 <인사동 스캔들>은 <타짜>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다. 도박과 미술이란 소재는 세계관 자체만으로도 너비가 벌어지는 느낌이지만 복원가를 ‘떼쟁이’로, 중개업자를 ‘장물쟁이’로 지칭하는 은어가 소통되는 미술계의 뒷면은 도박판만큼이나 거칠고 험한 세계처럼 연출되며 이런 노선이 <타짜>의 기시감을 부른다. 타짜의 손기술은 복제가와 복원가의 그림 재현 솜씨와 대응한다. 복제와 암시장거래가 만연하는 미술품 거래장면은 치열한 기싸움과 암수가 오가는 도박판과 유사한 단상을 부른다. 현란한 전환 기술이 적극 활용되는 이미지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입체적 구조를 이루는 이야기 형태도 낯이 익다. 캐릭터의 물량 공세가 대단하지만 인물관계의 기본적인 골격만으로 놓고 보자면 비슷한 선이 발견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타짜>가 활용하기 좋은 규격을 선점한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조건은 <인사동 스캔들>에 위작의 감정가를 매기고 싶게 만든다.
<인사동 스캔들>은 여러모로 공을 많이 들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욕적이다.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영화를 풍요롭게 장식하나 종종 자신의 그릇을 지키기 위해 과한 경쟁을 벌이는 캐릭터들이 발견되고, 현란하게 펼쳐지는 이미지와 대량적으로 생산되는 정보는 포만감을 넘어 폭식에 가까운 부담을 안긴다. 빠르게 돌아가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건 이해력에 가깝다. 이야기의 총합을 이루는 태도는 물리적인 기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끝내 결과를 이루는 모든 과정이 계산적인 계획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때때로 예언을 가장한 우연을 방치하고 묵인한다. 모든 것이 계획적인 필연 같지만 그것을 보좌하는 우연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방대한 대사량과 이미지로 이뤄진 스토리를 다 따라잡는다 해도 의식 속에 침전된 의문을 느낀다면 이런 까닭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에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결말부에 다다라 얻어질 정서적 감흥이 기본적인 기대치의 수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느낌이다. 이는 캐릭터의 대립항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강준과 배태진의 대립구도는 기세로서 동등하다. 배우가 고민할만한 캐릭터의 디테일은 충분히 완성된 느낌이다. 그러나 기능적인 역할을 묘사하는 데서 균등한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역할의 보조자, 즉 감독의 배려가 부족하다 탓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강준이 기능적인 능력을 전시해나가는 동안, 배태진을 수식할만한 역할의 기능성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캐릭터의 외모와 대사를 통해 예측되는 잠재력만 발견될 뿐이다. 말미에 다다라서 두 인물은 단순한 선악으로 구분된다. 선의를 바탕으로 복수에 성공하는 자와 악의를 품고 몰락하는 자로 나뉜다. 캐릭터에 접근하는 설정 자체가 상대적인 편애를 발생시키기 좋은 조건이다. 캐릭터의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 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건 선의의 승리라기 보단 불합리한 성취를 요구하는 굴절된 욕망의 파괴가 아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그릇된 욕망을 대변하는 배태진의 배경은 어딘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는 결국 결말부에서 목적을 이룬 인물로부터 전해질 공감대가 깊게 자리잡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인사동 스캔들>은 분명 어떤 성과를 드러내는 영화다. <타짜>와 골격이 유사하지만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의 물량공세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를 벤치마킹한 느낌이고 문화적 국수주의를 어필하는 말미 즈음엔 <식객>보다 세련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종종 우연까지 계산된 계획처럼 모든 과정을 합리화한다는 게 걸리지만 스토리 자체의 전후관계는 맥락 자체로선 앞뒤가 맞는 형태라 말할 수 있다. 분명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눈에 띄는 영화다. 하지만 역시나 과욕이 문제다. 다양한 색을 입혔지만 저마다 색이 번지는 느낌이다. “서양화는 베끼는 게 어렵고, 동양화는 살리는 게 어렵다.”는 대사처럼, ‘자질은 살리는 게 어렵고, 과욕은 죽이는 게 어렵다’.
<영화는 영화다>의 원작이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라고 들었다. 그 시나리오를 선택하기 이전에 본인이 구상했던 시나리오는 없었나? 개인적으로 쓰던 시나리오가 몇 개 있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잘 안 풀리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감독님께서 이 시나리오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살펴보고 결국 하게 됐다. 내가 만든 이야기보단 원작이 있는 이야기로 첫 연출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됐고, 더 많이 배운 거 같다. 그래서 나에겐 더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고.
김기덕 감독의 원작 시나리오로부터 가장 크게 각색됐다 할만한 바가 궁금하다. 전체적인 뼈대는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그래서 원작의 느낌들은 그대로지만 일단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법을 각색함에 있어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화법을 선택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타는 강패와 대등한 관계였던 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비중이 적었다. 원래 7:3(강패:수타)에서 6:4정도였던 걸 반반 정도로 각색했다. 물론 두 남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영화와 시나리오가 같은 이야기란 건 맞지만 원작에선 강패 이야기의 비중이 더 컸다. 그리고 봉 감독에게 코믹한 요소를 많이 가미한 점도 있고.
아무래도 원작의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되진 않았나 보다. 영화상에서 캐릭터 무게중심이 수타보단 강패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느낌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두 남자의 비중을 대등하게 변화시킨 의도는 뭔가? 김기덕 감독님의 원작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도 서로 다른 삶을 동경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처음부터 비중이 비슷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슷해지면 두 남자를 모두 각자 돋보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영화와 현실의 비중도 비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기덕 감독과 연이 닿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대학교 때 학생회위원을 했는데 학교 축제에 저명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특별강의 같은 걸 하는 명사 초청강연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내가 김기덕 감독님께 와서 해주십사 연락 드렸고 그 인연으로 가끔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졸업하면서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드렸다. 감독님께 답장이 왔는데 지금 들어가는 영화가 있으니 여기서 연출부로 일하면서 영화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일단 해보라고 하시더라. 경험을 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래서 처음으로 영화를 하게 됐고 그 후로 여기까지 온 거다.
김기덕 감독의 촬영현장에서만 경험을 쌓은 건가? 일단 <사마리아>연출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마리아>가 끝나고 한번 <신부수업> 연출부로 참여했다가 다시 <빈집>연출부로 참여하고, <활>과 <시간>의 조감독을 맡았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과 일반적인 영화 현장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차이가 많다. 내가 다른 영화현장을 많이 경험해본 건 아니지만 일단 김기덕 감독님의 현장은 굉장히 빠르다. 현장에서 순발력 있는 상황대처를 보이시니까 촬영진행속도가 빠른 것 같다. 날씨나 외부적 환경요인으로 인해서 촬영이 어려운 날이 생겨도 그런 여건에 맞게 현장상황을 즉각 바꿔서 결국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담아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는 배우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안 하신다. 뭔가 얘길 해보면서 배우들이 못하겠다고 하면 그걸 강요하진 않는다. 나 같은 경우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게 약간 있나 보더라.
<영화는 영화다>는 한 편의 영화가 완성돼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감독의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 속에서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한 감정 같은 게 생기진 않던가.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겐 두 캐릭터의 삶이 먼저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 이후에 영화와 현실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물론 아이러니는 많았지. (웃음)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실제로 연기를 했는데 카메라 뒤에선 그렇게 활발하던 스태프들이 카메라만 보면 자꾸 도망가는 거다. 그래서 스태프 연기시키기가 너무 힘들더라. (웃음) 스태프 연기시키는 날엔 촬영도 오래 걸리고.
낙원상가 옆에서 촬영한 씬에서 촬영장의 스태프들과 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강지환 씨의 모습이 대비적이라 재미있었다. 전문연기자와 비 전문연기자들이 카메라를 대하는 방식의 대비가 발견되는 느낌이랄까. 차이가 크다. 사실 영화에서 스태프를 찍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영화에서 좀 더 리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서 찍었는데, 막상 찍어보니까…..안 찍는 게 좋겠더라. (웃음) 물론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고 사실 갈수록 스태프들의 연기가 늘었다. 스태프들도 모니터하면서 자신들의 연기가 느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좋아했다. 그런 면에서 행복한 촬영현장이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적 리얼리티와 현실적 리얼리티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감독이라면 현실적 리얼리티를 고려하면서도 영화적 리얼리티를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영화란 진실을 보여주기 보단 진심을 담아내는 작업에 가깝다. 진짜가 있고, 정말 진짜 같은 게 있다면 사람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가 아니라 오히려 같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심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고, 진심처럼 느껴지게 잘 전달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진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후자다. 그게 정말 리얼해서가 아니라 리얼한 느낌을 주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때론 그게 약간 슬프기도 하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정직하게 찍으려 했던 부분이나 배우들과 그렇게 작업했던 분위기는 영화에 담긴 거 같아 다행이다.
수타와 강패란 이름은 상당히 직설적이다. 명쾌한 은유지만 반대로 노골적이다. 한편으론 희화화된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고민이 좀 있었겠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 그래서 고민도 좀 했는데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서 그대로 갔다. 제목도 사실 원작 그대로인 만큼 수타와 강패란 이름도 그대로 가보고 싶은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게 좀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봉 감독은 상당히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감독이다. 아무래도 감독 캐릭터란 점에서 감독인 당신과 비교하고 싶어진다. 당신과 봉 감독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일까? 차이가 좀 있지. 봉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적 설정을 진짜로 찍는다. 그런데 나라면 봉 감독처럼 그렇게 못한다. 영화는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지 않나. 만약 싸우는 씬을 찍고 난 다음날 싸우기 전 씬을 찍어야 한다면 실제로 싸움을 한다고 했을 때, 배우 얼굴에 상처가 나면 사소하게 나마 맥락적 연결상의 문제도 생기니까.
실제적인 공간의 형태를 과감히 드러내는 느낌이다. 그 공간의 기시감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는 느낌도 얻었다. 실제로 찍을 때와 전체적으로 컷들이 붙었을 때, 공간의 느낌이 달라졌다. 총체적으로 오는 느낌이 찍을 때보다 좀 더 리얼한 느낌을 주더라. 더 자연스러운 느낌도 있고. 인사동도 그렇고, 갯벌도 그렇고, 그 공간의 느낌들이 완성된 상태에서 보니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더라.
인사동이나 낙원상가처럼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인파를 통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종로는 어차피 골목 앞을 막으면 사람들이 들어올 수가 없으니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인사동은 완전히 열려있으니까 거의 전쟁이었지.
게다가 소지섭에 강지환이라, 그 심각한 엔딩 장면을 찍으면서 다들 집중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다 이러고 있으니, (웃음) 전쟁이었지. 우린 사람이 죽어가는 심각한 장면을 찍고 있는데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소지섭이다, 강지환이다, 이러면서 웃으며 사진 찍고, 우리는 통제하느라 정신 없고. 사실 그걸 찍으면 진짜 리얼한 건데 말 그대로 그건 영화가 아니니까. (웃음)
상황 자체가 현실과 영화가 공존하는 아이러니처럼 들린다. 인사동에서 옆으로 빠지는 골목 안에 폐지 수집하는 곳이 있다. 몇 차례 헌팅을 갔을 땐 조용하다 싶어서 한적한 골목을 헌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촬영날은 폐지 수거하는 날이라 끊임없이 폐지를 실어 나르고 자동차도 오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왔다 갔다 하시고, 개도 있고. (웃음) 그런데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소지섭, 강지환이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런 점에선 무리가 없었다. 한편으론 그런 점이 노인분들의 생활고가 느껴지는 측면이라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영화라는 결과물을 위해서 작업한 것이지만 그 현장 자체가 나에겐 현실이었고, 그런 부분들이 소중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액션도 꽤나 중요한 관건이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현장에서 액션연출을 경험해봤을 리는 없을 것 같고, 그에 대한 노하우가 전무했을 텐데. 마지막 갯벌 장면 같은 경우엔 두 배우가 지칠 때까지 싸우는 느낌을 담고 싶었고, 결국 싸움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이건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런 바가 화면에서 드러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그걸 담아내기 위해서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지섭 씨는 촬영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도 귀에서 갯벌 흙이 계속 조금씩 묻어나올 정도라니까, 고생 많이 했지.
사실 갯벌은 계획된 로케이션 장소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원래는 그게 뻘에서 하는 액션은 아니었다. 내가 각색하면서 조금 수정된 부분인데 두 배우가 뭔가에 흠뻑 젖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컨셉에서 강패는 블랙이었으면 좋겠고, 수타는 화이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옥상씬을 보면 강패는 블랙을 입고 있고, 수타는 화이트를 입고 있지 않나. 그리고 봉 감독의 영화 안에서도 강패는 계속 정장 안에 검은 셔츠를 입고, 수타는 흰 셔츠를 입고 있고. 나중에 둘 다 뻘이 묻어서 같은 색깔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아졌다는 느낌. 그래서 갯벌을 생각하게 됐다.
그 갯벌씬에서 강패는 결국 수타와의 싸움에서 진다. 결국 주인공이 이긴다. 그건 어쩌면 검은 돌을 지워나가던 강패가 스스로 흰 돌에 둘러싸인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그 갯벌씬은 온전히 영화적인 현실에 대한 자조처럼 보인다. 수타가 이겨야만 하는 어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까. 사실 영화 한편이 만들어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의 느낌이랄까. 관객들이 보는 영화는 스크린에 걸린, 완성된 영화다. 스크린에 걸리기 위해 촬영됐지만 극장에 안 걸려서 상영이 안 되는 영화들도 있고, 촬영이 다 끝났지만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래서 극장에 걸리는 건 사실 행복한 경우인데 관객들은 그런 영화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기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느낌이나 스태프들이 얻는 그 순간의 느낌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선 해피엔딩이 가능하다. 목적했던 결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목적대로, 시나리오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완성되고, 그래야만 한다.
그 라스트 씬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건가? 원래 원작의 엔딩이다. 원작에서 온전히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고.
사실 갯벌씬은 엄밀히 말해서 영화적 영역의 성취인 셈이다. 영화만의 쾌감이지. 영화적인 만족감이고.
그에 반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엔딩은 대비적이다. 영화적 결말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려는 현실적 거부감처럼 느껴진다. 현실이란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것이니까. 캐릭터로 얘기한다면 수타는 성장하고 변모한다. 그런데 강패는 변하지 않는 캐릭터다. 변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똑같은 캐릭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옷을 입는 것이기도 하고. 그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 굉장히 슬픈 거 같다. 현실의 사람들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마지막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은 그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마지막 장면에서 스크린이 뒤로 빠지고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프레임이 하나 더 생기지 않나. 그런데 그게 극장에서 상영할 때 많이 잘리더라. 그 극장의 이미지가 객석의 한 세줄 정도는 보이고 더 넓어야 하는데 객석은 안 보이게 잘리는 경우가 있더라.
스크린의 비율 문제 때문에? 맞다. 그래서 혹시 관객들이 그 부분을 놓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것도 영화였다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극의 말미에 피칠갑을 한 강패가 수타를 노려보는 장면은 마치 객석을 노려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사실 소지섭 씨가 연기한 강패가 강지환 씨가 연기한 수타에 비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건 종종 영화 속의 악인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강패의 눈빛은 그 영화적 환상에 빠진 관객에 대한 경계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과 악이라는 경계에 대한 사유도 가능할 것 같다. 난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기 보단 모든 사람에겐 두 가지 면이 다 있어서 선한 행동을 하거나 악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강패는 악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지막에도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단 그것이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지 않고 더 매력적인 부분에 끌린다. 사실 그것도 좀 슬픈 거다. 재미없는 선보단 재미있는 악에 더 끌리니까. 물론 강패가 악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각자 직업이 다르고, 사회적인 입장이 다른 건 스스로 선택한 어떤 초기의 결정 때문이다. 그 사람 자체가 매번 그런 판단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 사람들이 안 좋은 일은 직업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갯벌 장면은 정말 처절했다. 얼굴이 갯벌에 반쯤 잠긴 강지환의 얼굴이 열의를 대변하더라. 이런 장면을 주문하는 감독은 얼마나 악랄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웃음) 악랄하겐 안 했다. (웃음) 그냥 두 배우들이 스스로 열심히 했다.
강패와 수타를 바라보며 봉 감독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서 캐릭터로 완성되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과정은 여러모로 즐거운 일일 거다. 굉장히 즐겁겠지.
똑같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본인에게도 비슷한 즐거움이 있었을 것 같다. 강한 열의를 갖고 연기에 임하는 배우들을 지켜볼 수 있는 감독의 입장이라면 봉 감독 못지 않게 즐거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안 했는데 배우들은 무지하게 고생했지만 솔직히 난 속으로 즐거웠다. (웃음) 배우들한테는 고생해서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얘기했지만. 영화에 그런 강렬한 느낌들을 주니까 그런 광경을 찍을 수 있어서 즐겁지.
그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봉 감독과 강미나가 주고 받는 대사가 생각난다. 두 배우를 격려하고 돌아온 봉 감독에게 미나가 괜찮겠냐고 묻자 봉 감독은 ‘감독이라고 뭐, 다 아나?’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미나가 그럼 감독님은 뭘 아느냐고 되묻자, ‘내 배우 끝까지 믿어야 된다는 거’라고 답한다. 그 대사가 어쩌면 감독 본인이 하고 싶은 대사였을지 모르겠더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봉 감독이 대신하는 대사가 조금 있다. 물론 그 이전에 봉 감독 캐릭터를 위한 대사다. 코믹하긴 하지만 결국 감독이니까 감독다운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다.
감독으로서 배우를 믿고 가야 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때론 갈등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감독이 배우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결과물의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 배우들과의 소통은 어땠나? 두 배우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하고 싶다고 했을 때부터 각자 캐릭터에 대한 애정들이 느껴졌다. 두 배우가 스스로 생각하는 강패, 수타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고민해온 부분이 있지 않나.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했던 캐릭터가 있고. 근데 두 배우가 많이 고민한 부분을 내가 일방적으로 여기선 어떻게 해야 된다고 지도하진 않았다. 일단 배우들이 만들어온 캐릭터를 최대한 담고 싶었고, 그게 전체적으로 큰 톤에서 벗어날 때만 얘길하는 편이었지. 어찌됐든 소지섭의 강패, 강지환의 수타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편했다. 배우들과는.
사실 첫 영화부터 캐스팅이 화려하다. 일단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촬영 내내 흐뭇했지. 어떻게 잡아도 그림이 나오니까 편한 것도 있고. (웃음) 두 배우가 굉장히 길지 않나. 만약 어느 한 쪽의 다리가 짧거나 머리가 컸다면 투샷을 잡기 보단 상대적인 표정 위주로 잡아야 되고 이런 걸 신경 썼을 텐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카메라도 편하게 잡았다.
감독으로서 두 배우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두 배우와 작업하게 된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지섭 씨나 지환 씨가 각자의 캐릭터를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만약 컨트롤한다고 생각했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 같다. 그런데 컨트롤한다기 보단 같이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하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거 같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배우를 처음으로 경험해본 셈이기도 했다. 감독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는 없나? 아직 정의를 내릴 정도로 경험을 해본 것 같진 않다. 다만 누구나 자신과 결혼할 아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상형이 있다. 그런데 결국 만나는 사람에 맞춰서 달라지지 않나. 실제로 만나게 된 사람을 그 이상형으로 맞출 순 없으니까, 서로 같이 변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같이 잘 살아야 된다. 감독과 배우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강패와 수타가 달리기를 하면서 테이크가 반복되는 장면은 마치 강패의 현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영화적 현실을 안착시키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건 봉 감독이 강패를 길들이는 광경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배우를 다스려보고 싶었던 바는 없었나? 의견의 차이가 발생한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크게 마찰하거나 충돌했던 점은 없었다. 의견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냥 배우들이 원하는 걸 선택했다. 대부분 내가 특별한 주문을 안 한 상태에서 기본적인 동선만 정해주고 배우들이 잡아온 캐릭터로 테이크를 갔다. 물론 만약 내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더 표현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원하는 바를 배우들한테 얘기해서 한번 더 테이크를 갔다. 의견 충돌의 느낌은 없었고 그 테이크 중 좋은 걸 쓰면 됐다. 그래서 오히려 작업이 빨랐던 거 같다.
사실 고창석 씨가 연기한 봉 감독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꽤나 삭막해졌을지 모른다. 봉 감독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두 캐릭터가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설정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캐릭터였다.
남자로서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꽤 귀여운 캐릭터였다. (웃음)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관객 분들이 귀엽다고 하더라. 봉 감독님이 인사하면, 귀여워요! 이러니 매번 봉 감독님께서도 당황하셨지. (웃음)
여성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나이에 내가 이런 소릴 듣게 될 줄 몰랐다고 얼굴이 많이 빨개지시더라. (웃음)
말미에 강미나의 말처럼 끝까지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인간미가 느껴진다. 인간적인 매력을 주고 싶었다. 사실 감독님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나도 김기덕 감독님을 많이 봤지만 현장에서 있어 보이게 폼 잡고 있기 보단 대부분 편하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작품 자체에만 몰두해서 계신다. 현장에서 본인이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는 것보단 그런 게 오히려 멋있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평소 김기덕 감독의 현장 분위기는 어떨지 궁금하다. 보편적으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김기덕 감독님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지 않나.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해보거나 개인적으로 만나오신 분들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만나보면 재미있고 귀여운 부분도 있다.
귀엽다? 약간 개구장이 같은 부분이 있다. 음, 여하간 그렇다. (웃음)
혹시 김기덕 감독에게 원작 시나리오의 모티브나 소재를 얻게 된 경로에 대해서 한번쯤 물어본 적 없나? 원작은 오랜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시나리오라고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돼야만 하는 것 같다. 감독님께서 보시는 배우들에 대한 느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조폭들에 대한 느낌, 그런 부분들에서 아마 시작되지 않았나 싶더라.
사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대중과의 충돌이라 할만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런 일련의 상황을 김기덕 감독의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얻은 몇몇 어려움에 대한 감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은 감독님이 많이 외로워 보였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감독님을 생각하는 오해적 이미지들 때문에 더 그런 것 같고, 무엇보다도 감독들이 대체로 좀 외롭지 않나. 현장에서 얘기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일적인 얘기를 해도 그 전체를 보는 사람은 감독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다 이해해 줄만한 사람도 없고. 그런 부분들이 많이 외롭게 보이더라. 다른 감독들도 그렇겠지만 작품을 깊게 들어가다 보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누구나 아는 얘길 하면 공감을 많이 할 수 있듯이. 그런 부분들이 어려운 거 같다. 내가 한번 김기덕 감독님께 유치하게 여쭤본 적이 있다. 감독님, 영화가 더 힘든가요? 현실이 더 힘든가요? 그렇게 여쭤봤더니, 당연히 현실이 더 힘들지,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영화 찍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얘기하시더라. 영화를 찍을 때 제일 행복하고 시간도 잘 간다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시는 거 같다. 나도 이번에 처음 찍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배우들 고생시키고, (웃음) 고생시키면서 나도 고생하고, 그렇게 몸은 힘들어도 정말 행복하더라.
<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 자체가 애증을 동반한 느낌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애증이랄까. 현실을 넘을 수 없는 영화적 한계에 대한 인정 같기도 하고, 현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영화적 성취에 대한 선언 같기도 하다. 영화에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가능하다. 거기엔 어떤 차이가 있는 거 같다. 다만 굳이 그 차이에 얽매여서 영화와 현실을 대비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적 리얼리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는 반면, 영화를 보는 현실의 사람들은 영화를 모방하려고 한다. 각자가 지닌 장점들을 따로 봤을 때 오히려 그게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말 리얼한 걸 보고 싶다면 현실을 일상적으로 스치듯이 지나치지 말고 차분하고 주의 깊게 뭔가 본인이 원하는 걸 찾아보면 된다. 그럼 좀 더 리얼한 걸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영화와 현실 사이엔 그런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영화의 우열관계를 나누기 보단 평행우주라는 대등한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 같다. 하지만 결말부의 뉘앙스는 아무래도 영화보단 현실에 비중을 준 느낌이다. 영화도 현실을 위해서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은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패와 수타라는 두 캐릭터가 대립적인 관계로 보이지만 은연 중에 서로에 대한 묘한 애정이 오가는 것 같다. 약간 가볍게 말하자면 싸우면서 친해지는 관계 같기도 하고. 그런 게 느껴졌으면 했다. 사실 더 친하게 보이는 테이크들이 더 있었다. 그런데 너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찍으면서도 배우들과 얘길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느낌은 있지만 너무 친하게 보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두 사람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보단 느슨해졌을 것 같다. 둘이 너무 친해지면 그것도 너무 영화적인 거니까. 사람이 또 그렇게 쉽게 친해지지도 않지 않나.
사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강패를 비롯한 조폭들이 현실적인 조폭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나 등장할만한 느낌이랄까. 일단 조폭 영화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폭에 관심이 많진 않았다. 솔직히 강패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조폭들을 만나서 취재하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한국 조폭이라기 보단 한국 영화 안의 조폭이랄까. 기존 영화들에서 묘사된 느낌들만을 통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다. 룸싸롱이나 공사현장처럼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상황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누군가를 죽여야 되는 부분도 실상 영화적으로 가져온 부분들이다. 스타 영화배우와 조폭의 부두목이란 직업을 지닌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동경한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개인적으론 꼭 깡패일 필요가 있고 스타일 필요가 있는지가 중요하기 보단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동경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물론 일단 영화에서 그렇게 설정을 한 이상 캐릭터 자체의 삶은 리얼하게 보여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개인적 의도에 의해서 소모시키거나 조금 사소하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설정 안에서 최대한 캐릭터의 삶을 살리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현실보단 영화적 참고 사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태양은 가득히>와 <무간도>가 떠올랐다. 두 남자가 각자 살아보지 못한 서로의 삶을 동경하는 느낌이나 정서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부분을 굉장히 중시했고 영화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건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적인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차용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강패가 영화를 촬영하면서 겪는 일은 영화적인 부분들이 많다. 연애만 해도 수타의 연애는 현실적인 연애고, 강패의 연애는 영화적인 연애다. 바닷가에서 키스하거나 그런 전형적인 영화적 느낌들이 강패의 연애에 있다.
아무래도 두 남자가 겹쳐지는 국면의 세기가 상대적으로 그 주변부에 배치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보다 눈에 띄기 때문에 어떤 주변 캐릭터는 간과되게 느껴질 공산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했던 그 연애적 형태의 대비도 본인의 의도에 비해 가볍게 여겨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고. 둘의 이야기에서 중심축을 이뤄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다른 주변부의 비중이 커지면 둘의 에피소드가 전반적으로 산만해질 것 같았다. 둘에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일부로 키우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두 남자가 서로를 통해 변화를 느끼는 지점도 있지만 각자 서로 사랑하는 여자를 통한 변화의 느낌은 부수적으로 주고 싶어서 그렇게 설정했다.
사실 결말을 배제한다면 강패는 배우로서 더 좋은 미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엔딩은 감독으로서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 셈인데 좀 가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가혹한 거 같다. 현실은 잘 안 바뀌지 않나. 사람도 쉽게 안 바뀌고. 그런데 역으로 난 정말 사람들이 보다 좋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는 결정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희망사항을 영화적인 만족감으로 적용한 채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영화는 그렇게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관객들은 자신의 현실에서 가능한 변화의 지점들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적인 대리만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엔딩에서 드러내는 스크린과 객석의 거리감은 현실과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안전거리처럼 보인다. 안전거리라는 표현을 해서 그런데 영화 자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을 결국 한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감성적으로 즐거운 느낌을 얻는 것도 좋겠지만 결국 마지막엔 이것도 영화라는 느낌을 이성적으로 감안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바람이 있었다.
드라마틱하게 흐르던 영화가 가장 노골적인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며 엔딩을 맞이하는 셈인데 한편으론 도발적이면서 그만큼 위험한 시도처럼 보인다. 허무함을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을 것 같단 점에선 위험을 무릅쓴 선택 같기도 하고. 위험하지. 후반 작업 하면서 그런 의견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처음에 이야기가 출발된 지점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그 부분이 표현돼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관객들이 허무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관객을 영화에 계속 참여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만든 사람만의 영화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창작자의 화법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살짝 거리를 두고 빠져 나온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수정을 많이 했다. 화면이 빠지는 타이밍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결국 영화가 하려던 얘길 변질시킬 순 없는 거니까 강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했던 거지. 그런데 결국은 객석이 좀 잘려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안타깝다. (웃음) 그리고 사실 지섭 씨는 이 엔딩 때문에 이 영화를 결정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남는 장면은 어딘가? 개인적으론 뻘 씬도 애착이 가고 다 애착이 가지만 지환 씨와 지섭 씨가 많이 얘기했던 부분이 있다. 지환 씨는 강패를 보는 수타 입장에서 강패가 부하랑 공사장에서 가짜 액션하는 장면을 많이 좋아한다고 했고, 지섭 씨는 수타를 보는 강패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까페에서 은선이랑 둘이 차 마시는 장면이라고 하더라.
그 두 장면은 각자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나도 개인적으론 강패의 가짜 액션 장면이 가장 좋았다. 사실 영화를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볼 땐 결과를 알고 봐서인지 그 장면에선 꽤나 슬픈 느낌이 나더라. 그 시점에선 유쾌한 느낌을 주지만 그게 결과적으론 좀 슬픈 장면이다.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강패가 느끼는 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상대적으로 더해지니까.
수타는 결국 성장했고, 강패는 모든 것을 잃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에 웃고 있는 건 수타가 아니라 강패다. 하지만 그게 이겼다는 승리의 느낌이라거나 정말 기분 좋은 만족감에서 나오는 웃음은 아니다. 되려 웃음 자체가 역설적으로 슬픈 느낌을 대변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언젠가 본인의 이야기로 연출을 하게 될 기회가 있을 거다. 본인이 주로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뭔가? 사람에 대한 부분이다. 인생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누구나 다 하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람이 중요한 거 같고. 아마 내가 글을 쓰게 되면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반영되지 않을까. 그리고 선악에 대한 이야기도 매력이 있는 거 같다.
확실히 구분할 수 없는 경계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경계가 그렇지. 어느 상황에서는 그게 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느 상황에선 그게 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미묘한 경계에선 분명한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 선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스릴러를 많이 좋아하기도 했었고. 물론 공포 빼곤 대부분 좋아하지만.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잘 못 본다. (웃음)
첫 영화였던 만큼 지나고 나서 느끼는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많지. (웃음) 지금은 무대인사 다니느라 바쁘지만 무대인사 끝나고 이제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사실 빨리 혼자 있고 싶다. 물론 그 전에 무대인사를 열심히 다니고 싶고. 그 이후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내가 찍은 영화에 대해서 내 스스로 다시 한번 공부해봐야 될 거 같다. 어떻게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라는 부분, 아쉬운 부분들은 왜 아쉬운지, 그런 부분들을 공부해야 개인적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거 같다.
영화는 개봉했고 첫 번째 작품은 본인의 손을 떠났다. 기분이 어떤가? 홀가분한 느낌도 있고, 일단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 열심히 다니면서 잘 되길 빌어야지. 그리고 빨리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웃음)
강패(소지섭)와 수타(강지환)라는 이름은 깡패와 스타에 대한 노골적인 직유지만 동시에 현실과 영화에 대한 은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는 그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작품이다. 영화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리얼리티를 구사하려 하지만 카메라의 슛이 들어가고, 슬레이트를 내려치는 순간 현실의 탈을 쓴 프레임의 파편으로 변질된다. <영화는 영화다>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영화적 한계에 대한 인정, 혹은 현실이 이룰 수 없는 영화적 선언처럼 보인다.
강패는 공갈과 납치,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깡패다. 그는 종종 홀로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 그가 보는 영화 속에는 칼부림하는 깡패들의 액션이 멋있기만 하고, 심지어 칼에 맞아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마저도 어딘가 숭고하다. 어느 날, 강패가 관리하는 단란주점에 신작 영화를 찍는 감독과 배우들이 찾아온다. 그 중 유명 영화배우인 수타의 팬이라는 강패는 우여곡절 끝에 수타에게 싸인을 받지만 수타는 강패에게 쓰레기처럼 산다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곧 수타는 강패를 통해 자신의 연기적 허세와 다른 진짜 기세를 느끼게 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인연이 얽혀 들어가는 그 지점에서 영화는 고조된다.
영화 속에서 깡패를 연기하는 수타는 강패를 한낱 쓰레기 취급하지만 현실에서 진짜 깡패인 강패는 수타에게 흉내조차 잘 못내는 주제에 주인공 행세하는 건 운이 좋은 것일 뿐이라며 받아친다. 서로의 반대편에서 상대에게 조소를 보내는 두 남자는 아이러니하게 점차 상대의 영역을 동경한다. 수타와 강패의 동선이 교차를 거듭할수록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종종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수타에게 강패의 언어는 실제로 도달하고 싶은 실존의 대화고, 강패에게 수타의 언어는 언젠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대사다. 강패가 현실에서 내뱉은 문장을 대사처럼 따라 하는 수타와 수타가 읊은 대사를 현실의 대화에 삽입하는 강패는 서로를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불분명한 진창으로 끌어들인다. 강패와 수타의 비극은 각각 그 경계를 넘으려는 찰나에서 발생한다.
‘진짜 싸우는 거라면 하겠다’는 강패와 ‘영화란 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수타는 엄연히 다른 세계의 구성원이지만 두 사람은 거울의 구도로 서로를 비추는 닮음의 형태와 같다. 가짜와 진짜로서 영화와 현실에서 빛과 어둠처럼 존재하던 두 사람의 육체가 하나의 영역에서 뒤엉킬 때 <영화는 영화다>는 강렬하게 진동한다. 상대방에게 품은 애증을 격발하듯 상대에게 내뻗는 주먹과 발길질은 반대편의 영역을 향해 옮겨진 한발처럼 서로를 잡아당긴다. 반복되는 테이크 안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강패는 현실을 지워나가기 시작하고, 강패를 비아냥거리던 수타는 현실적 주먹에 얻어맞으며 영화적 한계를 체감한다. 점차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서로를 마주보고 빙글빙글 돌던 두 남자가 자리를 맞바꾸듯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고 서로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철없던 어른아이의 거친 성장기이자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덧없는 호접몽이다. 영화 속 가상에 도취돼 세상을 만만히 내려보던 수타는 현실의 주먹에 얻어맞은 뒤에야 자신의 현실을 둘러보기 시작하고 카메라 앞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강패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더욱 절감한다. 결국 영화와 현실은 서로를 침범하지만 그 경계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종래에 뻘밭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두 남자의 얼굴은 진흙이 잔뜩 묻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하는 건 수타나 강패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국 그건 결국 영화고, 주인공은 끝내 일어선다. 현실에 짓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영화라면 영화의 망상을 경계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결말에 다다라 피칠갑을 하고 수타를 바라보는 강패의 날카로운 눈은 궁극적으로 어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마치 객석을 응시하듯 교묘하다. 만약 어떤 관객이라도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강패로부터 매력을 느낀다면 결국 엔딩이 밀어내는 객석과 스크린의 거리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영화는 영화다>는 결국 자신의 영화적 육체를 통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마주본 관객을 도발한다. 네 눈이 카메라야, 잘 찍어. 극 말미에 강패가 수타를 향해 던지는 이 ‘대사’는 수타를 매개로 영화 그 자체에 던지는 선언이다. 현실과 영화는 대립적이면서도 상호적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는 결코 일치할 수 없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대한 애증 어린 시선을 도발적으로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