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수의 ‘오후의 뮤직’을 진행하는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는 청취율 1위를 달리는 인기 DJ다. 한때 가수로서 흥망을 맛보기도 했지만 라디오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좋은 집만큼이나 남 부러울 것 없는 명예도 얻었고 바람기를 발휘할(?) 기회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과의 전화연결을 통해 고민을 상담해주곤 한다. 물론 진심을 다하는 척할 뿐, 뒤에서는 대화내용으로 농담을 일삼는다.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청취율을 상승시키는 황정남(박보영)의 아빠 찾기 사연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모의 애인을 집에서 기다리던 남현수 앞에 황정남이 나타난다.
소재만을 살펴보자면 <과속스캔들>은 어떤 오해나 편견을 발생시키기 좋을 만한 여지가 가득하다. 오래 전 혼전 관계로 잉태된 2세가 찾아온다거나,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그리고 화합, 아동 캐릭터를 이용한 웃음과 감동 등등, 영화가 끌어 모은 소재들은 예상 범위가 인지되기 좋은 수준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고 동시에 어떤 착취에 대한 오해를 형성시킬만한 여지도 농후하다. 영화 역시 그 예상범위를 특별히 벗어날만한 파격을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과속스캔들>은 충분히 즐길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로 완성됐다. 뻔한 듯한 게 아니라 뻔한데도 즐길만한 구석이 충분하다.
중학교 시절 옆집 누나와 맺었던 첫경험(!)이 22살 먹은 딸로 인해 되살아난다는 설정이나 그 딸이 역시나 6세 손자까지 달고 온 미혼모라는 설정은 겉보기만으로도 상당한 무리수다. 무리수를 헤쳐나가는 돌파력은 캐릭터에서 발생한다. 고정적인 이미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명배우나 신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좋은 신인배우나 존재 자체가 귀여움으로 인식되는 아역배우나 각자의 장점을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다. 캐릭터의 앙상블은 헐겁거나 과하다 싶을 만한 허구적 설정과 맥락을 제자리에 안착시킨다. 그리고 드라마가 전개된다. 결과적으로 <과속스캔들>은 기막힌 사연에서 시작되는 가족드라마이자 어느 남자와 소녀의 성장드라마다.
전복적인 상황과 캐릭터를 앞세운 유머를 통해 재치를 발휘하며 시작되는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통속적인 슬픔을 자아내고 이내 극복을 통한 대통합 감동모드로 돌입한다. 전반부의 위트가 오밀조밀한 재미를 부여하는 것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매력은 후반부까지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며 제 능력을 다한다. 지구력 약한 드라마를 순발력 있는 유머로 극복한다. 이는 <과속스캔들>의 오락적 성과를 인정하게 만들 정도의 자질이 있다. 특히 남현수의 6살 손자 황기동을 연기하는 아역 왕석현의 능수능란한 표정연기가 이에 대단한 공헌을 보인다.
한편, 외부적으로 큰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음에도 <미녀는 괴로워>가 연상된다. 시사성을 지닌 소재가 보편적인 감정을 야기시키는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대의 속성이 캐릭터 스스로 한계를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무대에 선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공통적으로 노래를 잘 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음악감상의 즐거움은 서브적인 묘미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