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이 조심스럽게 카톡을 보냈다. ‘페북으로 쌍용차 후원 릴레이를
하는데 다음 타자로 널 지목해서 태그해도 되겠니?’ 그러라고 했다.
1만원을 쌍용차 후원 계좌에 입금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후 관심 있는 지인 두 사람 이상을 추천하면 된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대략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서야 기억이 났다. 기억난
김에 입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1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을
입금하고, 다음 타자는 지목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가 10명의 후원을 대신했다고 생각하련다. 괜히 누군가를 추천해서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고, 이미 다른 방식으로 후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만약 당신이 쌍용차 해고자들에 대한 후원에 관심이 있다면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추천하지 않았지만 이 글이 누군가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의 창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 분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내가 혹은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공감하고 기꺼이 저 투쟁을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농협 3510598588683 김정우] 계좌에 1만원을 후원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면 된다. 응원의 메시지가 주는 힘도 대단할 것이다.
우리에겐 지금 거대한 정치적 패악을 뒤바꿀 동력도 필요하겠지만 당장 벼랑으로 내몰린 일상을 구제할 수 있는 온기
또한 절실하다. 그러니 그 온기를 전하고 누군가에게 폼 나게 자랑하시라. 이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전파하고 그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간지 나게.
거침 없이 말했다. 언뜻 가볍게 들렸다. 하나 곱씹을수록 명확했다. 주지훈은 똑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종영된 미니시리즈 <밀회>는 <도쿄타워>를 원안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사실 2009년에 안판석 PD가 <도쿄타워> 원안으로 기획했던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던 것으로 안다.
잘 알겠지만 그때 내가 사고를 쳐서 다 무산됐다. 이제 당당해졌다는
건 아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까 숨겨서 뭐하겠나 싶은 거지. 법적으로
죗값을 치렀지만 여전히 책임감을 느낀다. 괜히 나 때문에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될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내 일을 하려고 한다.
연기로 용서를 빌겠다는 말인가?
배우가 하는 일이란 연기로서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다.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줄 수도 있고 때론 상처를 치유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내가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내 연기가 그런 불편함조차 잊을 수 있도록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지난 과오도 조금이나마
희석될 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숨기려고 하기 보단 잘못을 인정하고 맞을 건 맞더라도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긍정적이다.
죽을 순 없으니까, 계속 살아가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좋은 친구들>의 이도윤 감독님도 그러더라.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어쩌면 그런 일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가 만난 거라고.” 내 잘못을 반석으로 삼아서 그 위에 쌓인 교훈들을 활용하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친구의 권유로 하게 된 일이라고 들었다. 원망스럽진 않나?
사실 그 친구를 이제 더 이상 보진 않는다. 원망해서가 아니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내가 책임지는 게 맞다. 다만 다시 그 친구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겠더라. 아무래도 그 일로 손해를 입은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서로에게도 좋을 일은 아닐 거 같고.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진 않나?
원래부터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동네 술집이나
편의점 앞에서도 잘 앉아있는 편이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땐 살도 많이 찌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있어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문 거 같다. 옷도
막 입고 다니니까. 실제로 보면 내가 너무 까맣다더라(웃음).
주당이라던데.
먹으면 많이 먹는 편이다. 요즘은 운동 때문에 한 달 가까이 못 먹었는데
앞으로도 두 달 정도는 못할 거 같다. 그런데 조만간 개봉을 앞둔
<좋은 친구들> 제작보고회도 있고, 시사회도
있을 거라 뒤풀이가 좀 걱정이다. 다들 ‘네가 견딜 수 있을
거 같아?’라고 저주를 퍼붓는데, 절대 안 먹을 거다(웃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라도?
지금 준비하는 차기작 때문에 몸을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론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힘들다. 어릴 때 술만 먹지 말고 운동 좀 해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웃음).
개봉을 앞둔 영화 <좋은 친구들>은 흔히 말하는 ‘남자영화’다. 이렇게 단순히
‘남자영화’라고 할만한 작품엔 처음 출연하는 거 같은데.
<좋은 친구들>은
내게 잘 맞는 옷이었다. 그만큼 진짜 내 모습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친한 친구들하곤 서로에게 욕도 많이 한다. 낄낄거리면서 헛소리도
많이 하고. 원래 남자들이 좀 그런 거 있잖아. 서로 까면서
친해지는 거. 그리고 쉬는 동안엔 술을 좋아하다 보니 살도 많이 찌는 편이라서 실제로 한 10kg 정도 체중을 늘렸다. 일상적인 내 모습을 담고 싶었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감독님과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대부분의 신이 두 테이크 안에서 오케이 됐다. 그래서
우리끼리 너무 잘 맞아서 너무 잘 찍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최근에
ADR(후시 녹음)을 하면서 편집된 영상을 보면서 둘 다 대가리 박고 반성했다(웃음). ‘너무 우리끼리 으쌰으쌰 했나?’ 싶더라. 아까 말했듯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한 달간 술을 안마셨는데
그날 딱 한번 마셨다.
뭐가 아쉬웠나.
화면으로 보니까 희한할 정도로 멀끔해 보이더라. 그게 좀 아쉬웠다. 물론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병신
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웃음).
사실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 너무 과묵할까
봐 걱정했다.
그런 얘긴 많이 듣는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 이미지보다
더 차갑게 대한다. 처음 만났는데 말을 툭툭 던지거나 인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 있잖아. 서로 그래도 상관없다면 페어 플레이니까 괜찮다. 하지만 내가 하면
괜찮은데 네가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저 혼자 잘나면 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보통 초보 배우 시절엔 본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언제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까?
<마왕> 촬영
중에 어떤 신을 앞두고 많은 연습을 했다. 그래서 굉장히 자신 있었지.
그런데 상대 연기를 하는 선배님 앞에서 준비한 걸 하나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리액션을
맞추다가 그대로 끝나버렸지. 그런데 모니터를 보니까 내가 준비했던 것보다 그게 훨씬 좋아 보였다. 한 수 배웠지.
자신의 단점을 쉽게 인정하는 편인가?
스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면 발전할 수 없다. 인정해야 고칠 수
있지. 그러니 남 탓하면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야 잘나오고,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잘 안 나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일단 나부터 잘하는 사람이 돼야지.
스스로에게 엄격한 면이 있는 거 같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줘야 노력이란 걸 하게 된다고 믿는다. 아니면 나태해지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부럽다. 물론 그런 사람은
드물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대본만 열심히 보면서 농담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준비하는 만큼 잘해내는
선배가 있고, 항상 술 먹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잘해내는 선배가 있다. 스타일이 다른 거지. 하지만 결국 정진하면 정점을 찍는 거다. 하지만 그 선배를 보고 현장에선 저렇게 다 놓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다. 그 선배는 이미 기본이 돼있으니까 그게 되는 거다. 무대에서 10년씩 해왔던 사람들이니까. 날 것이 좋다고 하는데 잘 알겠지만
함부로 날 거 먹으면 장염 걸린다(웃음).
선배들이 꼭 연기적인 교훈만 주는 존재는
아닐 거다.
옛날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자기한테 들어온 작품들만 고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잘 나가는 좋은 배우들도 직접 작품을 찾아 다닌다는 얘길 듣고 멍해졌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내게 너무나 큰 사람들이었으니까. 요즘은 “이 작품 재미있는데 나 주면 안돼?” 이런 얘기 잘 한다. 예전엔 그런 부탁을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 같아서 쉽게 못했는데 지금은 편해졌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넉살이 생겼다고 할까?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웃음).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지도 모르지.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늘어가고 그만큼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한번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자주 찾던 동네 술집으로 친해진 동료 배우를 불렀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한 아저씨가
오시더니 반갑다고 툭 치면서 ‘오, 누구 씨!’ 이러는 거다. 그런 상황을 목격하니까 이해가 되더라. 그 친구는 항상 룸이 있는 곳에서만 술을 마셨는데 내가 항상 그럴 필요 없다고 잔소리를 했거든. 나는 한번도 그런 일을 당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남자 나이 서른
셋이면 애도 아니고 그날 따라 기분이라도 안 좋아서 욱해버리면 술 기운에 싸움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다
안 좋은 기사라도 나면 큰일이고. 여배우들은 오죽할까 싶더라. 직접
겪어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
특별히 친한 배우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류)덕환이, (김)재욱이 정도? 군대에서
만난 (이)준기도 친해졌다.
사람들이 되게 안 어울린다고 하는데 내가 봐도 그렇다. 사실 스타일이 정반대라 서로 흉보면서
토할 때까지 술 마신다(웃음).
남들이 보면 싸우는 줄 알겠다.
사실 이번에 촬영하면서 (이)광수랑
친해졌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오해할 소지가 많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광수가 NG를 내면 내가 ‘역시 예능하는 새끼는
안돼’라고 놀린다. 그러면 광수가 욕으로 응수한다. 사실 광수는 예의 바른 동생이다. 그 정도로 우리가 친해졌다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이 항상 우리 관계를 잘 알만큼 곁에 있는 건 아니니까 멀리서 볼 땐 주지훈이 이광수를 엄청 무시한다고
오해할 수 있겠더라.
그런 걸로 기사라도 나면 피곤한 일이고
사실 기자들이 모르고 쓰는 거라면 괜찮다. 그런데 대부분 알면서 일부로
쓰는 거잖아. 사실 배우를 공인이라고 하는데 공인은 사전적인 의미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다. 내가 공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서
책임의식을 지닐 필요는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건 공인으로서의 책임은 아니다. 배우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 권리는 아니다. 공무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이니까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배우는 자기 능력으로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물론 배우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할 순 있다. 하지만
사사건건 기사화하면서 그걸 알 권리라고 포장하는 건 어이없지. 그런 의미에선 기자들이야말로 공인이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생각하면 굉장한 책임감을 느껴야지.
최근에 가인과의 연애도 폭로되듯이 밝혀졌는데.
특별히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니다. 숨어 다니는 편도 아니고. 하지만 먼저 나서서 밝힐 이유도 없는 거지. 어쨌든 누군가 미행하듯이
따라다니면서 감시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20대
후반과 30대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군대도 다녀왔고.
군대 다녀오니까 현장 인원의 절반 이상이 나를 형이나 오빠라고 부른다(웃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요즘은 20대 초반 같은 기분을 느낀다. 보통 스무살 중반 정도가 돼야 성인이라는 게 느껴지잖아. 아무래도 20대 초반엔 대부분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을 계속 만나고, 돈도
없으니까 하는 짓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는 기간이 필요한 거지.
입대 전에도 <돈주앙>이라는 뮤지컬로 공연한바 있는데 군대에서도 뮤지컬
공연을 했다고 들었다. 특별히 뮤지컬에도 흥미가 있었던 건가?
단순히 소리 내서 발성하고 발음하는 연습이 지겨웠다. 그때 뮤지컬
제의가 들어왔는데 문득 뮤지컬 발성이 기교를 부리지 않고 깨끗한 발성을 해야 하는 거라 기본 발성과 동일하다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원래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지겹지 않게 발성 연습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뮤지컬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뮤지컬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밴드 활동도 하더라. 자작곡도 있던데.
흥얼흥얼하면서 녹음했다가 세션 멤버들한테 들려주면
그들이 악기로 연주해서 곡이 하나 나온다. 물론 어디 가서 음악적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 창피한 수준이지. 하지만 이렇게 편하게 해선 안될 이유도 없다. 물론 이렇게 편하게
연기하는 건 안 된다. 연기는 내가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
서촌의 집과 사무실과 가게들이 오픈하우스
서촌이라는 이름을 걸고 문을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서 올해 또 한번,
벌써 두 번째 손님맞이였다.
지난 2013년에 시작된 오픈하우스 서촌은 지난해에 참여했던 프로그래머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통해서 지난 5월 17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 동안 두 번째 손님맞이를 마쳤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오픈하우스 서촌에서도 건축가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서촌에 터를 잡은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집이나 사무실을 공개하는 오픈하우스와 오픈스튜디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또한 서촌 일대에 자리한 레코딩 스튜디오와 레스토랑, 갤러리, 아트북 서점 등이 오픈스튜디오와 오픈마켓, 오픈키친 등의 테마를
내걸고 제각각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했다. 한편 오래된 한옥들이 늘어선 서촌의 좁은 골목을 함께 걸으며
그 골목에 깃든 정취를 즐기는 재미와 오랜 역사 속에서 뿌리내린 의미들을 설명하는 답사 프로그램이 서촌의 곳곳에서 진행됐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열의도 대단하다. 마냥 편히 즐기는 축제 현장이라기
보단 강의를 찾아온 학생들 같다고 여겨질 만큼 눈 여겨 보고, 귀담아 듣고, 때론 받아 적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대단히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서촌을 찾았던 이들 가운데선 이런 행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이들도 많았을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픈하우스 서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홍보
방식이 동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홍보 자체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직접적인 홍보 수단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로 국한된다. 프로그램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참가 신청을 원하는 이들은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야 한다. 참가비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된다. 다만 사적인 공간이나 특정한 동선에 따르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인 만큼 참가 인원이 20명 안팎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적극적인 홍보 자체에
대한 큰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적극적인 홍보 자체도 불가능한 면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온전히 한 사람이 주관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건축전문 저널리스트 임진영이 서촌에서 살기 시작한 건 6년 전이었다. 유달리 건축가 사무소가 많은 동네였고, 건축전문기자인 만큼 친분이
있던 건축가들과의 교류가 잦아졌다. 서촌엔 건축가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나 창작자, 콘텐츠 기획자들이 존재했다. 그들을 통해서 크고 작은 네트워크와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선 소소한 이벤트가 마련되곤 했다. 이를 목격한 임진영은 이 소소한 커뮤니티들을 하나로
묶을 플랫폼이 존재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서촌에 사는 건축가 황두진을 비롯한 주변의 지인들과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점차 계획이 구체화됐다.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콘텐츠 창작자들의 교류를
통해서 형성되는 크고 작은 이벤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각자의 집과 스튜디오를 오픈해보자. 그래서
태어난 것이 ‘오픈하우스 서촌’이다.
오픈하우스 서촌의 모티프가 된 건 올해 가을 개최를 목표로 준비 중인 ‘오픈하우스
서울’이다. ‘오픈하우스 뉴욕’이나 ‘오픈하우스 런던’처럼, 서울에 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어쩌면 알기 힘들었던 서울의 건축물들이나 건축가와 창작자들의 스튜디오를 일시적으로
개방해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건축적인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취지의 일환에서 기획되는 건축 전문 축제다.
그만큼 행사를 주관하는 기획자가 중심이 되는, 중추신경계의 역할이 중요한 축제다. 하지만 오픈하우스 서촌에선 자율신경계의 역할이 보다 두드러져 보인다. 오픈하우스
서울의 주인공이 서울의 ‘건축’이라면 오픈하우스 서촌의 주인공은
서촌의 ‘사람들’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사적인 공간이나 상업적인 공간을 개방하고 비상업적인 이벤트의 장으로 돌려서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오픈하우스 서촌과 오픈하우스
서울의 프로그램 기획 방식은 유사하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들이 한 방향의 목표를 향해서 약진하듯 진행돼야
할 오픈하우스 서울과 달리 오픈하우스 서촌은 모든 프로그램들이 제각각 각개전투하듯 진행되는 행사다. 모든
프로그램이 서촌이라는 공통 분모를 플랫폼 위에 놓여있을 뿐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야심이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 야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픈하우스 서촌은 서촌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의 행사가 아니다. 그저
서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크고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을 오랫동안 목격해온
한 사람이 이에 관심을 가질만한 이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뿐이다. 다만 서촌에서 공존하는
느슨한 커뮤니티들에게 어울릴만한 느슨한 플랫폼을 마련하고 평소 서로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식했던 커뮤니티간의 교류를 도모하자는 성격의 행사이니만큼
게으른(?) 홍보 방식도 나름대로 어울린다. 물론 오픈하우스
서촌이 외부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그들만의 축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서촌에 대한 흥미가 있었던 이들에게
단순히 서촌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서촌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안겨준다는데 보다 뚜렷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의 터가 되는 서촌엔 전통적인 기반과 새로운 흐름이 공존한다. 덕분에 오픈하우스 서촌에 참여하는
이들이 20대부터 60대까지 고른 연령 분포도를 보인다는
것도 신선한 일이다.
오픈하우스 서촌은 지역 기반의 축제가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되레 지역 주민을 소외시키는 행사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거창하고 화려한
축제로 지역을 포장하는 것보다도 그 지역을 구성하는 일원들의 즐거움을 도모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픈하우스 서촌은 오픈하우스 이태원이 될 수도 있고, 오픈하우스
가로수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플랫폼을 확립할 수 있는 자발적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오픈하우스 서촌은 임진영이란 기획자를 통해서 시작됐고, 올해까진
포스터 제작을 비롯한 공적인 비용을 모두 그녀 개인이 충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많은 비용이 드는
건 아니지만 부담되는 바가 없진 않다. 그래서 후원이나 모금을 고민하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비영리 축제로서의
취지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럽다. 어쨌든 임진영 씨는 올해까진 괜찮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대답은 마치 내년에도 오픈하우스 서촌이 계속될
것이라는 선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