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린 커먼 그라운드를 찾았다.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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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린 커먼 그라운드를 찾았다.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커먼 그라운드’ 가봤어?”라는 질문을 받았다. 커먼 그라운드라는 곳이 뜨는 공간이란 말이었다. 들어보니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만든 공간이라 했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영국 런던의 컨테이너 쇼핑몰 ‘박스파크’나 뉴질랜드의 ‘리스타트’ 등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건물의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서울 논현동의 ‘플래툰 쿤스트할레’나 한남동 블루스퀘어의 전시관 ‘네모’ 등, 국내에서도 처음이 아니다. 다만 커먼 그라운드는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건물 가운데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건축물이라고 했다. 본래 택시회사 부지였던 공터를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이하: 코오롱)에서 매입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올렸다고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선 커먼 그라운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고속 촬영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영상을 보니 직접 두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커먼 그라운드가 들어선 곳은 광진구 자양동, 더 직접적으론 건대 부근이라고 했다. 7호선 건대 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니 파란 컨테이너들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항구에 적재된 컨테이너들을 보는 기분이라 그 너머에 파란 바다가 펼쳐질 것도 같았다. 어쨌든 양쪽으로 나뉘어 길게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이어져 쌓인 두 동의 컨테이너 박스엔 다양한 매장들이 들어서있다. 공식적인 보도자료에 따르면 56개의 패션 브랜드와 16개의 F&B, 1개의 문화공간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두 동의 패션 브랜드는 각각 남성용, 여성용으로 나뉘어 있다. 층마다 동마다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악세서리 매장을 비롯한 여성 브랜드가 집결된 한 동은 길게 이어지는 컨테이너 구조에 따라 동선이 이어지는 탓에 약간 통로가 비좁은 동대문 패션몰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반면 남성용 브랜드가 모인 다른 한 동은 상대적으로 여러 개의 컨테이너가 뻥 뚫려서 이어진 구조 덕분에 동선에 여유가 있는 아울렛 매장처럼 느껴졌다.
흥미로운 건 코오롱에서 운영하는 이 공간에서 코오롱 산하의 패션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등 소위 동대문 상권을 통해서 패션계로 진입하는 혈기왕성한 젊은 브랜드들로 포진돼 있었다.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안팎을 채우는 것도 젊은 피였다. 커먼 그라운드를 누비는 이들 대부분은 10대 혹은 20대쯤으로 보이는 남녀였다. 둘이서 혹은 삼삼오오끼리. 커플 혹은 친구들끼리.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에게 대뜸 커먼 그라운드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쿨하잖아요.” 커먼 그라운드는 젊은 공간이었다. 세워진 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어린 것과 젊은 건 다른 이야기다. 육체보다도 정신의 문제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서가 아니라 컨테이너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이 공간에 모여드는 이들의 정신적 나이를 규정하게 만든다.
광장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자전거 묘기를 하는 이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규칙성 없이 광장 위로 산재해 움직이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고, 원형의 벽이 형성됐다. 광장 안에 작은 광장이 생겼다. 커먼 그라운드를 주목하게 만든 건 분명 공터를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 자체겠지만 커먼 그라운드에 온다면 광장을 통하게 될 것이고, 광장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광장 한가운데 서면 좌우로 광장을 감싸듯 이어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이들과 눈이 마주치기 십상이다. 덕분에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클러버들 사이에 둘러싸인 클럽의 댄스 플로어에 선 기분이 들었다. 광장엔 푸드 트럭 세 대가 컨테이너 하나를 가운데에 끼고 어깨를 기댄 것마냥 서있다. 트럭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음식을 판매한다. 음료나 맥주도 주문할 수 있다. 다들 그 주변에 앉거나 서거나 하며 음식을 기다린다 대부분 맥주 한 병씩을 제 앞에 두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다들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든다. 불편하다기 보단 즐길 만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쿨하다.
어쩌다 문득 커먼 그라운드 옆으로 동네 주민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구부정하게 무심히 걸어가는 풍경을 보았다. 왁자지껄한 젊음 옆에서도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커먼 그라운드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하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는 아닐 거다. 물론 세상의 모든 재미를 쫓을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놀이터를 찾으면 된다.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오며 깨달았다. 커먼 그라운드는 내게 어울리는 놀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서른 살 중반의 나이가 됐기 때문인지, 쿨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었다. 물론 그 활기가 싫진 않았다. 그저 내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쿨하게.
(ELLE KOREA JUNE 2015 NO.272 'ELLE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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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없다. 남자가 없다. 만날 사람이 없다. 소개팅에 나오는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은데, 정작 내 여자는, 내 남자는 없다. 소개팅만 계속된다.
“좋은 여자 없냐?” 남자1호가 물었다. “좋은 남자 없어?” 여자1호도 물었다. 일단 남자랑 여자는 있구나. 그래서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주기로 했다. 그런데 남자1호가 여자1호의 사진이 보고 싶다고 했다. 여자1호에게 사진을 하나 달라고 했다. 여자1호는 살짝 볼멘소리를 했지만 사진을 주겠다고 했다. 전제가 있었다. “그럼 나도 볼래.” 남자1호에게도 사진을 달라고 했다. 군말 없이 사진을 보냈다. 중간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봤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위 사진은 실물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띄워줘야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였으나 내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너를 보며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다. 뭐,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위조 수준은 아니니까. 어쨌든 두 사람은 심판의 날, 아니 날짜를 정했다고 했다.
그런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남자1호에게 연락이 왔다. 괜찮았냐고 물었다. “아니, 뭐, 나쁘진 않았어.” 그러니까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음…그런데’라고 운을 떼더니 2% 부족한 느낌을 나열했다. 굳이. 여자1호에게 끌리지 못한 이유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지만 남자1호에겐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그리고 ‘내 스타일이 아님’을 스스로 다짐하는 이유가 덕지덕지 붙어있을 뿐이었다. 여자1호에게 문자가 왔다. 여자1호에게선 긍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졌다. 적극적인 표현이 동원되진 않았지만 무스크향과 같은 여운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명확한 기대감을 분사했다. “혹시 나에 대해서 별 말 안 해?” 나는 여자1호에게 약을 줬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남자1호는 당연히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안부도 묻지 않았다. 여자1호도 당연히 안부를 묻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론 소개팅 한번 한 게 대단한 인연이라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어떤 가능성이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나치게 낭비가 없는, 효율적이지만 삭막한 엔딩이랄까. 소개팅의 애프터는 남자가 잡는 것이 무언의 룰이다. 연락이 없는 남자를 기다린다는 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불이 켜진 상영관의 텅 빈 풍경을 목격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소개팅에서 여자가 차일 일은 물리적으로 희박하다. 어떠한 기미도 없는 남자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듯 먼저 연락하는 여자가 아닌 이상에야 그렇다.
여자2호는 난감했다. 어제 소개팅을 했던 남자에게 카톡이 왔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여자2호는 일전에도 이런 문자를 받아본 적이 있었다. 통신사 상담원에게 요금 관련 문의를 하고 통화를 마치면 이런 문자가 왔다. 그 문자에 답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카톡엔 답을 하고 싶었다. 그 남자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 “네. 오늘 하루 행복할게요!” 당연히 이상하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침인데 벌써 하루가 끝난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말투로 시련을 주는 남자의 카톡 앞에서 여자2호는 무기력해졌다. 일부로 이러는 걸까. 설마 어장관리인가.
나는 그 사연을 듣고 의아했다. 정말 어장관리일까? 놀아본, 지금도 노는 남자2호는 말했다. “쑥맥이네. 요즘 같은 세상에 관심도 없는데 다음날 연락하는 애가 누가 있어. 그리고 선수라면 그렇게 어설프게 안 던지지. 최소한의 대화는 형성시켜야 할 거 아냐. 호감은 보이고 싶은데 요령이 없네. 뭘 몰라.” 그렇다. 그는 그저 답답한 남자였을 뿐이다. 필연적으로 호감지수가 하락한다. 그리고 여자2호의 의심도 정당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의 의지 없는 호의에 닳고 닳아서 생긴, 일리 있는 의심이었기 때문이다. 여자3호는 요즘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들은 희한할 정도로 의지가 없다고 했다.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고, 대화도 잘 되는데 관계에 진전이 없는 거야. 계속 같은 자리를 뱅 도는 느낌? 문자를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할 땐 사귀는 것 같은데 막상 만날 의지도 안 느껴지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맞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남자도. “1등은 아니어도 3등 안에 드는 여자는 갖고 싶진 않지만 잃고 싶지도 않거든. 어차피 소개팅은 계속 잡혀 있고, 잡힐 거고, 그러니까 1등짜리 여자를 만날 수도 있잖아. 하지만 3등짜리 여자를 놓치고 싶지도 않지. 그 이상의 여자를 만날 거라 확신할 수 없으니까.” 남자2호의 말이다.
하지만 어장관리가 남자만의 특권은 아니다. 남자3호는 말한다. “대답만 잘하는 느낌이랄까. A를 물어보면 정확히 A만 답하는 거지. 내가 다시 B를 물어보지 않는 이상 진전이 안돼. 그런데 막상 만나자면 또 만나고. 그러면 또 어쩌자는 건가 싶지.”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남자의 물음표에 응답하지만 스스로 물음표를 제시하진 않는다. 문자를 주고 받는 동안에도, 만나서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남자가 궁금해하는 사연은 들려주되,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애프터 신청의 칼자루는 남자가 쥐고 있지만 애프터 신청이 넘어오는 순간 그 칼자루의 칼을 뽑는 건 여자 몫이다. 여자가 칼을 쥐게 된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도 잡고 싶진 않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다. 마찬가지다. 소개팅 기회는 널려 있고, 언젠가 엑스칼리버를 뽑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최소한 쓸만한 칼이다 싶은 건 일단 뽑고 본다. 손에 쥐고 버리더라도. 칼자루만 쥔 남자가 발을 동동 굴리건 말건. “어차피 선택은 남자가 하잖아. 그러니까 사실상 남자한테 선택을 많이 받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도도해질 수밖에 없지. 남자가 지 잘난 거 알듯이 여자도 지 잘난 거 아는 거지. 그렇게 잘난 값을 하는 거야. 남자는 계속 그녀의 주가를 올려주는 거고.” 여자4호의 말이다.
주마다 평균적으로 1회 이상의 소개팅을 한다는 남자4호에게 소개팅은 습관이다. 그는 소개팅이 있는 날에도 술약속을 마다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소개팅 결과를 물어보면 항상 무덤덤하게 말한다. “잘 안됐어.”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별의 효율성은 높은데 만남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니, 소개팅의 목적이 완벽하게 어긋난다. 물론 타석수와 타율은 비례하지 않다. 두 타석에서 안타 하나를 친 타자가 10타석에서 안타 네 개를 친 타자보다 타율이 높은 것처럼. 하지만 어쨌든 타석수가 많으니 안타를 칠 수 있는 절대적 기회가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100타석에 섰는데 안타 하나를 못 칠까. 한 방이면 된다. 하지만 그 한 방이 없다.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공이 적지 않은데 내가 기다리는 공이 오지 않아서 방망이를 좀처럼 휘두르지 않는다. 성격이 좋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얼굴도 예쁘고, 교양도 있고, 스펙도 좋았으면 좋겠다. 좋으면 더 좋은 게 아니라 다 좋아야 좋다.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이 더 크게 보인다.
“남자한테 청담동에 있는 바에 가자고 하는 여자들의 심리가 뭔지 알아? 자기를 위해 얼마나 쓸 수 있는지 보려고 데려가는 거야. 칵테일 한 잔 마시면 4만원 정도는 그냥 깨지니까.” “소개팅할 때 차는 일부로 안 가져가. 만약 데려다 주기 싫은 여자를 만나게 됐을 때 주차장 입구에서 ‘잘 가요’하고 헤어질 수 없잖아. 그래서 그냥 택시 태워서 보내는 거지.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자는 같이 택시 타고 가서 데려다 주면 되잖아.”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가 집에 데려다 주는 것도 신경 쓰이지. 혼자 사는 집의 위치를 공개하고 싶지도 않고. 여러 모로 부담스러워.” 남자가 하는 말도, 여자가 하는 말도 저마다의 합리가 있고, 저마다의 이기심이 있다. 다만 인내심은 드물다. 남자든, 여자든, 나름의 기대를 안고 소개팅에 나오지만 생각보다 절박하지 않다. 여자도, 남자도 없어서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단 한번의 만남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려 한다. 마치 로또 같다. 다음 주가 되면 새로운 로또를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에도, 다음 주에도 당첨확률은 한결 같이 희박하다. 가능성이 희박한 로또 당첨번호를 기다리듯 주말이 되면 소개팅 장소로 나간다. 마치 죽지 않기 위해서 절정이 없는 이야기를 매일 밤 이어나가는 셰헤라자데의 천일야화처럼 절정도 결말도 없는 일일야화가 덧대어지고 덧대어진다. 일회적인 인연만 덧대어지고, 덧대어진다. 그래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솔로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솔로다. 그리고 항상 여자도, 남자도 없다. 소개팅만 넘친다. 어렵다. 어려워.
(ELLE KOREA JUNE 2015 NO.272 'ELL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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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가 쓰는 법
WRITE TO LIVE
김이나는 작사가다. 김이나에게 작사는 하고 싶은 일의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사를 쓴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살 수 있다.
지금 작사 의뢰가 들어온 곡이 있나요?
오늘 당장 써야 하는 거 하나랑, 일주일 안에 써야 하는 거 하나 정도?
오늘 당장 끝내야 할 곡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나요.
집에 가면 시작해야죠.
가사를 쓰는데 뜸들이는 편은 아닌가 봐요.
그래야 잘 나와요. 초기에 그렇게 쓴 가사들이 잘 나와서 이렇게 해야 잘 풀린다는 걸 알았죠.
오늘 당장 써야 할 곡이 하나 있다는 말이 담담해서 되레 치열하게 들리네요.
그렇죠. 말은 이렇게 해도 치열하죠. 마감시간을 지켜서 원서를 넣어야 발표를 기다릴 자격도 생기니까. 치열함이 익숙해진 거죠.
<김이나의 작사법>은 가사를 제외하고 문장을 활용한 첫 결과물입니다.
원래 가수들의 복화술사였던 사람이 직접 말하는 입장이 되니 문체를 잡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확신을 주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하는 것 같다’란 식으로 쓰다 보니 초등학생 일기 같았거든요. 비유 없이 뭔가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가사와 다른 영역이라는 걸 알았죠.
<김이나의 작사법>이란 제목으로부터 필연적 오해가 생기는 것도 같습니다.
사실 ‘작사’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느냐를 두고도 논의가 많았어요. 중요한 건 이게 ‘김이나의 작사법’이지, ‘작사의 정석’은 아니란 거였죠. 작사가 예술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작사가에겐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작사가를 시인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꼭 그렇진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책도 팔릴 거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다른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로부터 자신들의 일과 닮았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정말 기뻤죠.
10년 전부터 작사가로서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다니, 야심가처럼 느껴지더군요.
어릴 때부터 망상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음악을 듣다가 ‘내가 작곡가라면 얼마나 멋질까? 상을 받으면 수상 소감을 뭐라고 하지?’ 이런 식으로(웃음). 작사가가 된 뒤에도 비슷한 망상이 있었죠. ‘10년은 하겠지? 그럼 그 때 책을 내야겠다.’
작사를 한지 10년이 넘었고, 작사에 관한 책도 냈습니다. 망상이 현실이 된 셈이죠.
실패와 패배의 데이터도 굉장히 많을 거예요. 다만 그런 데이터를 남겨놓는 편이 아니에요. 재미로 점을 봐도 나쁜 얘기는 기억하질 못해요. 보통은 나쁜 얘기만 기억하게 된다는데, 저한테는 좋은 습관인 셈이죠.
때론 불편한 말도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개인적인 관점을 통한 발견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전달되는 평가일 땐 조금 달라요. 누군가 저에 대해 내린 평가라면 오히려 좋은 내용은 쳐내고 듣는 편이거든요.
’레프트윙’이나 ‘라이트윙’과 같은 축구 포지션으로 음반 제작 형태를 비유했더군요. 축구를 좋아하나요?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오프사이드의 개념을 알게 된 수준이에요. 사실 남편이 축구를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왜 골을 못 넣어?”라고 물어보면 “저 사람은 골 넣는 포지션이 아니니까”라면서 설명해준 덕분에 포지션도 대충 알게 됐고요.
사실 그 비유 때문에 ‘작사가’를 제외한 ‘김이나’라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궁금해졌거든요.
별 거 없어요. 그냥 게임 정도? 뭔가에 꽂히면 미친 듯이 파는 편인데 게임은 중독자 수준이 됐어요(웃음). 옛날엔 <스타크래프트>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꽂혔죠. 요새도 기본적으로 모바일 게임만 네 개를 돌려요. 피규어 모으는 것도 좋아하고, 덕후 기질이 다분하죠(웃음).
언제부터 게임을 즐겼나요.
8비트 컴퓨터 시절부터 했어요. 어머니께서 컴퓨터를 사주셔서 컴퓨터 학원에 다녔는데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것만 배웠죠. 회오리 모양의 그래픽을 만든다던가, 일기를 써서 저장한다던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재미있는 건 게임밖에 없었죠.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힘들다고 하죠. 음악이 지겹게 느껴질 때는 없나요?
항상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항상 그 구조나 뒷배경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베이스만 따라 들어보거나 연주 파트별로 나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전히 들을수록 설레요.
책을 읽고 나니 작사란 창작이라기 보단 그 가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을 위한 컨설팅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가사는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이야기에요. 작사가 혼자만의 세계관으로 작사를 커버하기엔 한계가 있죠. 물론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작사가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결국 가사에 담긴 진심보다 ‘가사에 담긴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는가’가 중요한 거죠.
가사가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닐 때도 있고요.
일반적인 발라드나 음절 수가 많은 미디어 템포의 곡들 같은 경우는 이야기의 작법처럼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빅뱅의 ‘베베’나 엑소의 ‘으르렁’ 혹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에선 서사보단 이미지나 리듬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사가 보다 중요하죠. 가사 자체가 캐릭터가 되는 셈이죠.
한때 남편인 조영철 프로듀서가 작사가 아내를 밀어준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더군요.
분명한 건 제가 이미 작사가로 활동할 때 남편은 음반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단 거예요. 저와 결혼한 후에 이 업계로 넘어왔죠. 물론 제 작사가 경력에 남편의 기여가 없었다고 단언할 순 없어요. 유리한 바도 있겠죠. 한편으론 가사를 제일 많이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제작자이기도 하고요.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음악 프로듀서가 되려 한다는 걸 알았습니까?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프로듀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저와 같이 작업한 첫 작품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Love’였는데 그때만 해도 기획력이 있다고만 생각했지, 계속 할 줄은 몰랐죠. 본인도 자기가 이렇게 잘될 줄 몰랐대요(웃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사가로 나설 땐 불안하지 않았나요?
지금도 불안하죠. 그래도 저는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어요. 제가 회사를 그만 뒀던 시점이 아마 50곡 정도를 작사했을 즈음이었을 거예요. 곤두박질치진 않겠다 싶을 정도? 그리고 이젠 작사가로서의 감을 잃게 된다 해도 이 업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음반 비즈니스 종사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요?
초등학생 시절에 ‘입영열차 안에서’를 부르는 김민우와 ‘추억 속의 그대’를 부르는 황치윤이 멋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할 땐 멋있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추억 속의 그대’의 작곡가가 윤상인 걸 알고 윤상 노래를 찾아 듣다가 전율을 느꼈어요. 그때 알았죠. 내가 멋있다고 느낀 게 음악 자체였구나.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매력을 만들어낸 이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죠. 그걸 들여다 보고 싶었죠. ‘그 안에서 뭘 하길래 이런 게 나왔을까.’
결국 작사가가 돼서 윤상의 곡을 작업했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습니다.
윤상 작곡가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이 업계에서 너만큼 ‘빠심’이 대단한 사람은 못 봤다. 그래서 넌 잘 될 거야”라고. 너무 힘이 되는 말이었어요. 사실 가요에 대한 빠심이 창피하게 여겨져서 감춰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거든요. 뭔가에 씌워서 날뛰는 느낌이니까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그게 제 능력이란 걸 알았어요. 훈련이나 연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를 다잡는 계기가 됐죠.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한다’는 문장은 작사가라는 직업에 대한 정의라기보단 김이나의 생존방식에 대한 정의에 가깝겠죠.
스스로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작사가에겐 독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이게 내 안의 무언가로부터 길어 올린 완전한 창작이라기 보단 가수의 모형을 계속 복원하는 느낌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지도, 지치지도 않아요.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거품이 가라앉을 즈음엔 보다 분명해지겠죠.
거품이라면 유명세를 의미하는 걸까요?
맞아요. 다만 나쁜 의미로 발음한 게 아니에요. 맥주는 거품이 있을 때 마셔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작사가로서 성공했다는 모양새를 얻게 됐으니 지금이 하이라이트라는 말이죠. 그리고 조금씩 거품이 꺼지면 제 생존방식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작사가 저작권료 1위’란 식의 홍보문구가 부각되기도 했는데, 부담스럽지 않나요?
띠지에 얼굴을 넣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어요. 사실 ‘인상 좋게 생겼네’ 정도의 호감만 얻어도 판매엔 유리하겠죠. 그런데 유명인사들의 추천글과 저작권료 1위라는 홍보문구들이 합쳐지면서 제 스스로가 저열한 상품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가수들을 더 이해하게 됐어요. 나보다 어린 애들이 끊임없이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만큼 스태프들도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는 걸 알았고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책에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는데,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글이 낯설더라고요. 너무 진지하게 읽혀서 저 자신을 포장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를 중화시킬 수 있는 만화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개인적으론 이말년 작가의 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병맛’나는 느낌이 좋거든요. 그런데 편집자가 직접 그리면 좋겠다는 거예요. 처음엔 반대했죠. 지금은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아요. 완전히 병맛 나잖아요(웃음).
병맛 코드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저한테 병신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개인적으로 완벽하게 멋있게 보이는 건 솔직하지 못해서 그런 것처럼 느껴져요. 지나치게 완벽해서 되레 매력이 없는 느낌? 그래서 병맛 코드의 솔직함이 세련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코드를 활용하는 작가들도 대부분 똑똑하잖아요. 대단한 능력이죠.
처음 김형석 작곡가를 만난 자리에서 작곡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보다 뻔뻔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대단한 천재들에겐 드라마틱한 기회가 찾아오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모양 빠지는 순간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솔직히 작곡가를 동경한 건 아니에요. 그저 음반 비즈니스에 입문하고 싶었죠. 그런데 눈 앞에 있는 작곡가한테 ‘음반 비즈니스로 입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물어볼 순 없잖아요. 그 사람의 분야를 통해서 어필해야 하는 거죠. 저한테 작사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제가 작사가라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김형석 작곡가가 작사를 권하지 않았다면 삶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다른 방식으로라도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어디선가 A&R로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고. 다만 프로듀서는 아닐 거 같아요.
본래 작사가를 꿈꾸지 않았음에도 작사가가 됐듯이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혹시 지금 작사 외에 관심 있는 일은 없을까요?
인터뷰어? 책을 쓰는 중간에 잠시 기자를 인터뷰해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질문을 하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의 입장이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작사나 열심히 해야죠. 요새는 원고 기고 요청도 들어와요. 다 할 순 없지만 가능한 건 해보고 있어요.
(ELLE KOREA JUNE 2015 NO.272 'ELLE intervie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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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천희가 책을 썼다. 일명 <가구 만드는 남자>. 이천희는 가구를 만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하이브로우(HIBROW)’라는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천희는 생각보다 재주가 많고, 낙도 많은 남자였다.
<가구 만드는 남자>라는 책을 썼다. 서문을 보니 집필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더라.
캠핑 지침서를 내보자는 출판사도 있었지만 내가 할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 출판사 ‘달’에선 캠핑도 좋아하고, 목공예도 하고, 그런 취미에 접근하고 즐기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일기처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보통은 3~4개월이면 책 한 권 쓴다던데 나는 오래 걸리더라.
“만드는 과정보다 생각하는 과정이 즐겁다”는 문장이 흥미롭더라.
한번은 원하는 걸 만들고 나서 집에 갖다 놓으려는데 못 들겠더라. 너무 무거웠던 거지(웃음). 집에 가져갔는데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디자인만 생각하고 공간에서의 실용성을 놓친 거다. 나무엔 수축, 팽창하는 성질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가구가 터지고 쫙쫙 갈라지기도 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 목공예 학원에 다녔으면 공방장한테 배웠을 텐데 시간도 안되니까 그냥 무작정 만들기만 바빴거든. 원래 장인들은 겨울엔 틈이 생기고 여름엔 맞물리도록 계산해서 만든다는데 나는 그 정도 수준은 안돼서 최대한 변형이 없는 자작나무 합판 같은 걸 쓴다.
시행착오가 많았나 보다.
처음 만든 가구는 정말 못 봐준다. 책을 보면 내가 처음 만든 하얀색 가구들이 나오는데 일반 합판으로 각재를 대고 만든 거라 나중에 벌어지고 난리가 났다(웃음).
직접 뭔가를 만드는 이유는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거나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서다.
스무 살 때 처음 내 공간이 생겼다. 천장이 기울어진 다락방이라서 방에 놓을 수 있는 가구가 드물었다. 그래서 이 공간에 최적화된 가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다 보니까 공구가 필요해서 하나씩 구입하고, 사용법도 익히게 됐다. 만드는 것 자체도 즐겁다.
손재주가 좋은 조부와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다던데.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직접 집도 짓고, 외양간도 고치셨다. 커다란 나무 궤짝으로 된 연장통엔 오만가지 공구들이 다 있었다. 어릴 땐 어느 집에나 그런 연장통이 있는 줄 알았지(웃음). 나중에 서울로 올라오셨을 땐 시멘트로 계단도 만드셨다. 남자는 당연히 그런 걸 만드는 거라 생각했다. 어렵게 보이지도 않았고. 그리고 비닐하우스 형태인 이 공방의 외관은 아버지께서 다 만드신 거다.
캠핑이나 서핑이 유행하기 전부터 시작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걸 찾아 즐기는 타입일까?
축구나 농구를 하며 어울리기보단 혼자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타입이다. 4년 정도 캠핑을 하니까 캠핑 붐이 일고 일찌감치 시작한 내가 신기한 사람이 돼있더라. 서핑도 남들이 하지 않을 때 시작했는데 이제 서핑 붐이 일었고, 처음 가구를 만든다고 했을 때는 사람들이 ‘왜?’ 그랬는데 DIY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한테 그런 걸 보는 눈이 있는 건가.
호기심이 많은 편일까?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 1989년식 골프 2세대를 탔는데 주차장에서 내부가 궁금해서 부품을 다 뜯어봤다. 뜯는데 이틀 걸렸는데 조립하는 데엔 일주일이 걸리더라(웃음).
구조적인 관심이 큰 편인 거 같다.
예전에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했을 때 내 IQ가 148이라고 했다가 지탄을 받았다. 너는 그럴 리 없다고(웃음). 언어 능력은 낮았지만 공간지각이나 도형추리 능력은 높게 평가됐다. 평소에 길도 잘 찾는 편이다.
목공예는 좋은 취미이지만 위험한 취미이기도 하다.
목수들은 한번씩은 크게 다친다더라. 사실 손가락 걸고 할 일은 아니니까 가끔씩 ‘이러다가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이브로우’라는 브랜드를 내걸게 된 계기는?
‘하이브로우’라는 이름으로 공방을 운영하면서 이미 브랜딩이 시작됐더라. 만들면 사겠다는 사람도 생겨서 작년 5월에 ‘진짜 제대로 한번 팔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나 동생은 사업에 대해 전혀 몰랐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처음엔 핸드메이드 가구만 만들려 했는데 쓰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대량생산이 불가능해서 유통이 어렵더라. 저마다 사이즈가 다르니까 매번 디자인을 변경하면서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냥 기성품을 만들어서 진열해 놓고 팔아야 하는 건가 고민 중이다. 그리고 브랜드가 더 커져야 가능한 것들이 있다. 유통해 보니까 가격도 적합하지 않은 걸 알았다. 그냥 팔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유통 마진이나 위탁 판매의 개념도 고민해야 한다. 공장에 넣을 건 넣고, 직접 만들 건 만들고, 그렇게 정리하고 있다. 게다가 대단한 브랜드도 아니고, 취미 삼아 시작한 거라 홍보는 생각도 안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연예인으로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텐데.
사실 지난 1년 동안 단순히 홍보를 위해 동료 연예인에게 하이브로를 준 적은 없었다. 한번은 공유가 잡지에서 하이브로의 보드를 든 사진이 나와서 그걸 SNS에 올렸는데 ‘공유 보드’가 돼버렸다(웃음). 사실 우리 보드를 협찬해간 잡지사의 모델이 공유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고 잡지를 보고서야 알게 돼서 공유랑 친하니까 찍어서 올린 건데. 좀 놀라긴 했다.
연예인이 이런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얼굴마담이나 월급사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설마 본인이 직접 만들겠어? 척만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1년이 지나니까 믿더라. 연예인이라서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하이브로우의 제품을 쓰다가 망가지면 이천희한테 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웃음). 그래서 처음엔 동생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취미로 목공예를 하다 보니 사업까지 연결됐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거다(웃음).
직원까지 생겼으니까 책임감도 생겼을 거 같다.
지난 1년간 동생이랑 직원들과 같이 하다 보니까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더라. 누구보다 홍보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원이니까. 이젠 어디 가서 하이브로 좀 소개해달라는 말도 잘한다. 사업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딸의 침대를 만들면서 키즈 라인까지 생각했다던데.
유아용 가구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장롱 문을 뾰족하게 만들었더니 문이 열려 있으면 에가 머리를 찧더라. 아이들 가구가 왜 둥근지 그때 알았다. 1~2년 쓰니까 사이즈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고, 어렵더라.
동생과 함께 일하면 부딪힐 때도 있지 않나?
다른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치고 박고 싸운다는데 우린 우애가 좋았다. 사춘기 시절 이후론 서로에게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동생이 목공예 공방에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잘 만들었다. 나랑 완전 격이 달랐다. 동생은 제작 공정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하나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리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쉽게 만드는 편이라 스타일이 정반대다.
어떻게 같이 일을 하게 됐나.
2008년에 이태원에서 ‘천희 공작소’를 운영할 때 내가 없어도 공방에서 작업을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생이 보인 거다. 원래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당시 건축 경기도 안 좋아서 내가 꼬셨다(웃음). 그리고 이름을 고민하다가 이천희, 이세희니까 ‘희 브라더스’라는 의미에서 ‘하이브로우’라고 지었다.
아무래도 동생의 꼼꼼함 덕분에 본인이 욕을 덜 먹을 것 같다(웃음).
아무래도(웃음). 취미로 만들 당시 나는 대충 만들어서 본드로 칠하고 튀어나오면 깎아버리고, 사이즈가 작아져도 그러려니 했는데 동생은 건축을 했던 탓인지 1mm의 오차도 크게 생각했고, 컴퓨터 도면작업까지 했다. 어쨌든 지금은 사업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디자인만 좋다고 제품을 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좋아했다. 배우들은 작품이 없을 때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친구 만나고, 술 마시고, 아니면 여행이라도 가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 그리고 필요한 게 없는지 물어보고 만들어오면 너무 좋아했다. 원래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없었는데 나랑 살면서 많이 늘었다. 가끔씩 내가 너무 목수처럼 보이면 지적해준다. ‘오빠는 본업이 배우야. 관리 안해? 선크림은 발라야지!’ 그때마다 정신이 드는 느낌이지(웃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삶의 태도도 달라졌을 것 같다.
책임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결혼 전엔 일이 없으면 안하고, 돈이 없으면 안 먹고, 편하게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유지해야 할 선이 생긴 거다. 그 전엔 더 좋아지건, 더 나빠지건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다달이 정확히 필요한 몫이 있으니까.
반려동물용 가구에도 관심이 있다던데 원래 동물을 키웠나.
안 키웠다.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늘 집에 개는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키우시는 거였지. 이젠 개를 키우면서 그 책임을 지고 있다. 산책도 시키고, 밥도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그 역시 가족이 생기면서 이어진 변화 아닐까?
고양이는 정말 무서워했다. 요물이라 생각했고. 어느 날 아내가 주먹만한 새끼를 주워왔다. 비를 맞고 있어서 데려왔다는데 한 달만 키우자고 하더라. 그때가 11월이라 추워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러자고 했는데 보니까 너무 귀엽더라. 맨날 데리고 놀다 보니 정도 붙고. 아내가 겨울만 보내고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고 했는데 못 주겠더라(웃음).
최근에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출연했고, 영화 <돌연변이>의 촬영도 마쳤다. 배우로서 다시 활발해진 거 같다.
하이브로를 준비하면서 소속사에 잠시 쉬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동생 혼자 준비하는 건 마음에 걸리더라. 그런데 이젠 다들 알아서 하니까 내 일을 해도 될 거 같다. 사실 하이브로우는 동생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시작은 같이 했지만 동생이 생각하는 대로 키워나가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쨌든 나무는 나무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서 용도는 달라지겠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자아에 대한 성찰 같기도 했다. 단순히 취미를 자랑하려고 쓴 책은 아닐 텐데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나.
예전엔 인터뷰에서 작품 얘기만 했지, 정작 내 얘기는 못했다. 그래서 내 얘기도 해보고 싶었다. 책을 쓰면서 내 인생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이기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내 선택의 중심엔 내가 있는 거다. 관객들보다도 나를 위해 연기하는 것처럼 책도 나를 위해서 썼다. 그리고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을 알게 됐다. 어쨌든 이천희가 삶을 즐기며 산다는 걸 긍정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ELLE DECOR NO.17 2015 SPRING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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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자를 원한다. 여자도 남자를 원한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깨는 상대는 원하지 않는다. 존중 받길 원한다.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난 깨는 여자, 깨는 남자.
WHAT MEN WANT
솔직히 남자가 여자한테 매너라는 걸 기대하진 않지. 남자가 바라는 게 얼마나 있나? 그런데 정말 항상 일관되게 별로다 싶은 지점은 있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왜 여자들은 항상 늦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집에 시계가 없나? 아니면 시계 보는 법을 안 배웠나? 10분 정도, 그래, 괜찮아. 20분? 그래, 뭐 괜찮아. 30분? 좀 열 받지. 그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를 처음 만날 때 좀 늦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아니, 늦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남자보다 일찍 오면 조금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래. 그래서 처음 여자를 만날 땐 이미 어련히 알아서 늦겠지 생각하고 있어.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10명 중에 7명은 그러니까. 이해가 된다기 보단 면역이 된 거지.
사실 밥값 내고, 차값 내고, 술값 내고, 영화비 내고, 아깝진 않아. 다만 성의의 문제지. 가격이 아니라 횟수의 문제라고. 최소한 초면에 여자한테 밥값 내라고 할 남자가 어디 있어. 그리고 처음 만났는데 밥 먹고 나서 헤어져? 그거 뭐냐. 요즘 유행한다는 소셜 다이닝이야? 아무튼 커피라도 한 잔 하지. 대부분 그때 좀 깨지. 전혀 계산할 생각이 없다라는 게 딱 보이거든. 지갑에 손도 안대. 지문 인식 지갑이라 손 대면 결제되나? 아무튼 내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은데 얘는 이미 얻어먹을 준비가 돼 있는 거야. 나도 사람인데, 최소한 물질적으로 착취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별로잖아. 내 카드랑 만나려고 나왔어? 그냥 두 가지 생각이 들지. 얘는 정말 개념이 없거나 나한테 마음이 없거나.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일 수가 없지. 아무리 예뻐도 매너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내가 그나마 주선자 얼굴 봐서 예의를 차리는 거지.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너와 나의 연결고리 때문이라고. 돈이 아까운 게 아니야. 까놓고 커피값 정말 비싸다고 해도 2만원 안팎이지. 성의가 없잖아.
그리고 그런 거 있잖아. 왜 말을 애매모호하게 하는 거야. ‘어디 갈까?’ 물어보면 다 괜찮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재. 그런데 막상 어디 가자고 말하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유는 항상 있어. 그럼 차라리 자기가 정하던가. 아니면 신돈을 만나던가. 관심법이라도 써야 되는 건가? 최소한 자기가 싫어하는 거라도 말해주던가. 아니면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까 군소리를 하질 말던가. 뭔가 항상 불명확해. 사귀다가도 뭔가 어긋나서 화를 내서 이것 때문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래. 아니, 무슨 인터스텔라야. 웜홀이라도 넘어가야 이유가 있을 거 같다니까. 섭섭한 게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던가. 왜 꼭 쌓아뒀다가 옛날 일까지 다 끌어내서 화를 내고 그래. 그리고 가끔씩 그런 애들 있지. 전 여자친구는 어땠어? 대체 왜 물어봐? 말해주면 빡칠 거면서. 쿨한 척해봤자 결국 다른 식으로 화낸다고. 그리고 자기는 솔직하게 다 말한대. 전 남자친구가 어쩌고 저쩌고. 내가 그 얘기를 왜 듣니. 나한테 소개팅해줄려고? 아니면 셋이서?
아, 그리고 진짜 제일 심한 비매너. 왜 사진이랑 얼굴이 그렇게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야지. 얼굴이 두 개야? 교체형인가? 그럼 그 얼굴을 달고 나왔어야지 왜 잘못 달고 나왔어. 그래서 가끔씩 자기 얼굴 제대로 달고 나온 여자가 나오면 정말 매너모드지. 커피값? 에이, 됐어. 내가 내면 되지. 이미 완벽한 매너모드인데.
WHAT WOMEN WANT
처음 만났는데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어보는 것까진 괜찮아. 그러면 좀 무난한 곳을 가던가. 전에 처음 만난 남자애가 나를 데리고 불족발을 먹으러 가는데, 정말 열불이 났지. 내가 불알친구야?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어디 가자고 꼬치꼬치 말하면 좀 그렇잖아. 너무 까다로운 사람 같고. 그럼 좀 알아서 무난한 곳으로 가주면 안돼? 아무데나 가자고 했더니 불족발이 뭐니? 불족발이. 이 남자랑 만나면 안 봐도 훤하다. 속 터지겠지.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신경 안 썼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애들 있지. 그러니까 옷을 잘 입고, 못 입고, 그런 센스를 말하는 게 아냐. 자기 방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약속장소까지 굴러서 나온 것 같은 애들이 있다니까. 여기가 카페냐, 네 방이냐 싶을 정도로. 그럼 다시 굴려서 집에 보내고 싶지. 나름 소개팅이라고 신경 쓰고 나왔는데 왜 이런 꼴을 보고 있어야 되나 싶고. 성의가 없어. 성의가. 아,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어. 이해해. 하지만 내가 계속 이해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한번 이해해줬으면 됐지.
어쨌든 밥값은 관례적으로 남자가 내잖아. 그러니까 커피든, 맥주든, 이 다음에 가는 곳에선 내가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가끔씩 ‘다음 차례는 그쪽이 사세요’ 이런 애들 있어. 어린 시절에 TV 보다가 ‘이것만 보고 공부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너 공부 안 하니!’ 이러면 공부할 마음이 싹 사라지잖아. 정말 다음 차례가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사줄 마음이 사라지지. 친해진 것도 아니고 처음 만나서 그러면 깨지. ‘나한테 밥 사준 게 그렇게 아까웠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밥 먹듯이 전 여자친구 이야기하는 애들 있잖아. ‘전 여자친구는 안 그랬는데’ 이런 애들. 진짜 생각보다 많아. 무슨 알람처럼 뱉는다니까. 그럼 걔한테 다시 가서 잘 하던가. 그나마 그건 양반이다. 난데없이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욕하는 애들 있거든. ‘전 여자친구는 정말 멍청했어’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그러면 내가 ‘아, 그 여자는 정말 멍청했구나’ 할까? 얘는 나중에 나도 이렇게 말하겠구나 생각하지. 그리고 왜 꼭 내 얘긴 안 듣고 지 얘기만 해? 모든 이야기가 다 자기중심적이야. 이게 무슨 그래비티야? 내 앞에서 자기 인생을 구구절절 말하는데 입으로 ‘자소서’ 써? 내가 면접관이야? 재미라도 있던가. 그나마 위트 있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서 듣고 있다가 나도 관심 있는 소재를 말하길래 한 마디 했어. 그럼 좀 들어야지. ‘아, 그래요’하고 다시 또 지 얘기만 해. 전생에 묵언수행하다 죽었나 봐. 그냥 내 귀만 놔둬도 될걸? 자웅동체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좋으면 여자는 왜 만나니? 아, 여자 귀를 좋아하나?
사실 남자가 여자보단 돈에 민감하겠지. 책임감도 들고. 하지만 ‘오늘 영화 보러 갈까?’하면 영화 얘기를 해야지. ‘어? 그래? 그럼 밥도 먹고…’ 얘 뭐니? 누가 너 혼자 내래?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값, 밥값, 커피값, 이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런 게 보인다니까. 그리고 영화를 선택할 때도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하면 그러려니 해. 그런데 네가 보고 싶은 영화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훨씬 대단하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가 훨씬 우월한 선택을 한다고 설득하는 애들 있잖아. 좀 재수없지. 아, 물론 재수없는 것 중에 최고는 말 놓는 애들 있잖아. ‘어? 내가 오빠네?’ 이러면서. 이게 쿨한 줄 아나 봐? 거기다가 가끔씩 능글능글하게 어영부영 손 잡거나 어깨에 손 올리는 애들도 있어. 팔이 불편하면 깁스를 하던가.
그리고 포르노 보고 성교육 잘못한 남자애들 많잖아. 섹스도 사실 둘이서 함께 교감하려고 하는 건데, 나한테 무슨 서비스 받으러 왔어? 욕구는 넘치는데 무드는 없고. ‘입으로 해줘’ 이런 말하는 애들 정말 입으로 해주고 싶지. 욕을. 얘는 정말 어떻게든 나랑 한번 해볼라고 만난 건가 싶을 정도로, 옷도 벗고, 체면도 다 벗는 애들 있잖아. 완전 깨지. 침대에서 내려오면 나랑 헤어질 거야? 남자는 그게 결승선인 줄 아는데 여자는 거기가 출발점이라고. 몰라도 그렇게 모를까.
(ELLE KOREA MAY 2015 NO.271 'ELLE 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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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니콜라스 홀트의 영화에서 니콜라스 홀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듯이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거울엔 자신의 얼굴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니콜라스 홀트는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다. 배우로서 재능도 있지만 그의 유머 감각을 보면 <어바웃 어 보이> 시절의 소년이라곤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라면 언제라도 연약한 인상의 휴 그랜트처럼 돌변한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연출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말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 4>)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샤를리즈 테론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니콜라스 홀트는 중심이 잘 잡힌 배우다. 그의 전작들을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니 그 재능에 탄복하게 되더라. 직접 스턴트를 감행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체계적이고 안전한 연기를 추구하고 확실히 몰입한다. 정말 보여줄 게 많은 친구 같다. 앞으로 분명 영화계에 큰 기여를 할만한 재목이다.” 그렇다. 지금 니콜라스 홀트를 말할 때, 굳이 <어바웃 어 보이>의 귀여운 소년까지 기억을 더듬는 이는 드물다. 과거형보다 현재진행형의 시제가 어울리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고, 키만 큰 게 아니었다.
<매드맥스 4>는 무법천지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매드맥스> 시리즈의 속편이다.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심지어 그의 데뷔작이었던, 무려 1980년에 처음으로 제작된 <매드맥스> 말이다. <매드맥스 4>는 1985년에 발표된 세 번째 속편 이후로 무려 30년 만에 발표되는 네 번째 속편이기도 하다. 1989년생인 니콜라스 홀트에게 있어선 생소한 과거형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매드맥스 4>는 그에겐 지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장에서 내가 연기할 눅스라는 캐릭터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세심한 디자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우!’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외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세계관과 이 캐릭터는 굉장히 색다르군.’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에 욕심이 난다.”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의 잘난 외모를 망가뜨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걸 즐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웜 바디스>에선 기꺼이 좀비 분장을 했고, 두 편의 <엑스맨> 신작에선 새파란 털복숭이 돌연변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부연설명을 듣지 못했던 관객이라면 ‘저 캐릭터가 니콜라스 홀트라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매드맥스 4>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특이하게 개조된 범퍼카를 운전하면서 “오늘 일진 끝내주는데!”라고 외치는, 해골 바가지 같은 얼굴로 하얗게 떡칠한 상체까지 훤히 내놓은 ‘워보이’가 니콜라스 홀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건, 뒤늦게 알게 됐건 두 눈이 휘둥그래질 거다. 이는 그의 정교한 특수분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 분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탁월한 노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처음 읽은 대본은 대본이라 할 수 없었다. 마치 두꺼운 코믹스북처럼 대사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이미지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대사도 낯설었다. 줄넘기를 하면서 대사를 읊으면서 그 리듬감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사실 <매드맥스 4>는 그 세계관의 외형만큼이나 거칠고 험하게 다뤄진 작품이다. 요즘의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블루 스크린에서의 안전한 액션신이 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 “진짜 자동차가 있는데 왜 CG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묻는 감독의 발언만으로도 확실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정말 위험한 신들을 위한 스턴트팀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배우들 역시 아찔한 순간을 종종 맞이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홀트가 이런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즐긴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세상에 한 대씩밖에 없는 차들이 폭주하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촬영을 하는데 8기통 혹은 12기통 엔진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덕분에 감독님의 ‘액션’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아서 가끔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행인 건 결국 괜찮았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정말 끝내주는 세상을 창조했다.”
사실 니콜라스 홀트는 좀처럼 평범한 역할에 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특이한 역할에만 주목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단순히 변신이나 도전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와 캐릭터의 공통점이 적을수록 연기하긴 더 쉬운 것 같다. 영국식 발음으로 연기할 때가 미국식 발음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되레 어렵다. 미국인 행세를 하면 어디선가 스위치가 작동해서 나 자신과 손쉽게 멀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매드맥스 4>에서의 특수분장도 그런 것이었다. 거울 너머에 있는, 삭발한 머리에서 이어지는 흉터와 상처로 점철된 얼굴을 보고 앉아 있으면 ‘그래. 확실히 나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괴상한 분장으로 점철된 그의 얼굴을 보고 헌신이나 희생이란 단어를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에게 특수분장은 날개와 같은 것이었다.
<싱글맨>에 캐스팅됐을 당시 니콜라스 홀트는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묻자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캐릭터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잠재적으로 동성애자처럼 보일 수 있는 역할이란 이유로 거절한다면 그게 멍청한 거지.” 그가 자신이 분할 캐릭터를 향해 던지는 물음표란 ‘니콜라스 홀트로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기 보단 ‘니콜라스 홀트가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중요한 건 결국 현재다. 자신의 현재 시제에 놓인 영화에 충실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 니콜라스 홀트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
(ELLE KOREA MAY 2015 NO.271 'ELL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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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GET ME WRONG
홍종현은 진지하다
살짝 날이 선듯한 뾰족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조목조목 말했다. 조금 진지했지만 무겁진 않았다. 유쾌한 여운이 남았다.
피곤해 보인다.
스튜디오로 오는 길에 졸았더니(웃음).
스케줄이 많나 보다.
작품이나 방송 촬영이 있는 건 아닌데 항상 스케줄이 있더라.
이전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유독 ‘생각보다 진지하다’는 말이 많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인터뷰에선 고민해서 말하다 보니 더 그렇게 보이는 거 같고.
원래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한데, 그런 선입견을 경험하는 기분이 궁금하다.
특별히 좋고, 싫은 건 없다. 그냥 ‘내가 방송에서 그렇게 보이나?’라는 생각 정도? 아무래도 방송에서도 이렇게 조용하게 말할 순 없으니까(웃음). 나름 밝게 보이려 노력하는 부분은 있다.
<스타일 로그>에선 의외로 무뚝뚝해 보일 때가 있더라.
그때 민호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친하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나나는 처음 만났기 때문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도 점점 친해지면서 후반부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던 거 같다.
낯을 가리는 편인가.
낯가림이 심해서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일 경우엔 더 심하다.
<위험한
상견례 2>에서 도둑 가문의 아들로 나온다. 혹시 남의
것을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나?
아주 어렸을 땐 있었다. 장난감이나 축구화 같은 거. 물론 남의 것을 빼앗고 싶다기 보단 그냥 순수하게 갖고 싶다는 생각.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순간이동?
이유는?
영화 <점퍼>의 주인공이 순간이동으로 스핑크스 위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하는데 부럽더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몇 초 만에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살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여행만한 경험도 없는 거 같다. 그래서 순간이동이란 능력을 갖고 싶다.
여행 좋아하나?
늘 가고 싶지
가장 인상적인 해외여행지는?
사실 해외를 나간 경험은 별로 없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단 말인가.
아무래도 중학교 시절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으니까.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워본 적도 있는데 대부분 나 때문에 취소하게 되더라. 갑자기 촬영이 잡힐 때가 있어서. 게다가 어릴 땐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웃음).
그래도 친구들이 잘 이해해주는 편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친구들이니까.
최근에 한 브랜드 행사에서 풋살경기를 선보였다.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 한다던데.
예전엔 주기적으로 자주 뛰었다. 최근엔 친구들이 팀까지 만들어서 일요일 아침마다 공을 차는데 나는 일요일 아침엔 <인기가요> 생방송 준비를 해야 해서 못한지 한참 됐다.
생방송 진행은 긴장되지 않나?
예전에 <와이드 연예 뉴스>라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꽤 오래 진행했지만 오랜만에 해보니 긴장되더라. 그만큼 저절로 집중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게 되니까 끝나도 후회는 안 생긴다. 생방송만의 매력이 있는 거 같다.
아직 배우로서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이 없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그만큼 클 때다.
당연히 욕심이 생긴다. 배우로서 대표작을 갖는다는 건 많은 분들께 사랑 받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니까.
솔직히 <위험한 상견례 2>가 대표작이 될만한 작품일지 모르겠다. 다만 배우로서 디딤판이 될만한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 영화가 너에게 대박은 아닐 거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네가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줄게”라고.
코미디물은 처음 아닌가.
시트콤 정도는 했는데 코미디물은 처음이지. 그래서 걱정도 많았지만 기대도 있었다. 예전부터 코미디물은 한번 해보고 싶었으니까.
도둑 집안의 가풍에 반항하는 아들을 연기했는데 본인은 실제로 어떤 아들이었을까.
나름 착한 아들이었다. 특별히 반항을 하거나 크게 말썽을 부린 기억은 없으니까. 부모님께서도 크게 혼내신 적이 없었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 워낙 혼내시는 편이 아니라서 작은 말썽을 부렸을 땐 내가 되레 더 반성했던 거 같다. 그런 면에선 다른 친구들보단 성숙한 편이었던 거 같다(웃음).
그렇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면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는 건 고역 아니었을까?
처음엔 고사하려고 했다. 내 성격은 이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을 거 같고, 프로그램도 재미없어질 거 같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출연하게 됐다.
할만했나?
힘들었다(웃음). 그래도 억지로 밝은 척, 친한 척하지 않고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점차적으로 친밀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모두에게 다 좋아 보일 순 없는 거니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해볼만한 일이었던 거 같나?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는 거 같다. 그래도 얻은 게 더 크다.
무엇을 잃었다고 생각하나.
오해를 산 부분이 생긴 거 같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걸 보고 어떤 분들은 상대 파트너인 유라에 비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 같더라. 말도 별로 없고, 가만히 있고. 사실 할말이 많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도 말하기 보단 들어주는 편이다. 게다가 유라는 밝고 발랄한 편이고,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나는 거기 최대한 맞춰주려는 입장이었다. 그걸 오해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긴 거 같지만 나라는 사람을 많은 분들에게 알려준 건 확실히 얻은 부분이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나?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가볍게 생각하면 결혼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거 같다. 약간의 책임감은 생기겠지만 재미있을 것도 같고. 지금 내 나이에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연애하듯이 결혼생활을 할 거 같다. 남편, 아내, 이런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친구처럼.
사실 결혼보단 연애가 더 현실적인 때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일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기 보단 알 정도로는 표현하는 거 같다. 나는 관심이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타입이라 내가 표현하는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표현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거 같고(웃음).
<위험한 상견례 2>는 양가의 부모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당사자들이 밀어붙이는 이야기다. 본인도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밀어붙일 수 있을 거 같나.
그럴 거 같다. 아무래도 부모님을 생각해보니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란 걸 잘 알아서인 거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설득시킬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하니까.
원하는 걸 관철시키고자 노력하는 편일까?
어릴 때부터 남들이 다 쓸데 없는 짓이라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편이었다. 고집이 셌지. 물론 너무 터무니 없는 걸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건 또 아니니까.
모델 활동을 하다 자연스럽게 배우로 넘어왔는데 원래 모델이 되고 싶었나?
어릴 땐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중학교 때 외모와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모델이란 직업이 멋있어 보였다. 그땐 키가 작았는데 중3때 키가 확 커져서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 하고 싶은 건 빨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찾아갔다.
무작정 찾아간 건가? 나름 자신감이 있었나 보다.
사실 찾아가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모델에 관한 정보가 담긴 책자를 많이 봤는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걸 보시더니 모델을 하고 싶으면 빨리 하라고 하셨다. 뭘 그리 오래 고민하냐고. 그래서 ‘알겠어요’라고 바로 찾아갔다. 정말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가능했지. 그래도 정말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찾아간 걸 보니까.
하고 싶다고 다 받아주는 건 아닐 텐데, 나름 끼가 있었나 보다.
잘 모르겠지만 수업 한번 받아보고 이야기하자더니 두 달 뒤에 수업이 끝나니까 정말 해보자고 하더라. 그때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단 이야기도 했고, 같이 준비하게 됐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 중에서 대학로 연극을 연출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덕분에 연극을 보게 됐다. 처음 연극을 보는데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고 빠져들었다. 연기하는 기분은 어떨까 정말 많이 궁금하더라. 그래서 애초에 모델과 배우 둘 다 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갔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했는데 만인의 주목을 받는 건 괜찮았나?
처음 촬영하고, 처음 컬렉션 런웨이에 서고, 그때마다 너무 긴장했다. 그래서 너무 어색했던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흥분되고 즐겁더라. 기분 좋은 긴장감이랄까? 그래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무대에서 수많은 시선을 즐길 수 있는 편이었을지도. 모델로서 런웨이를 하고 주목을 받는 것도 있지마 배우 역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는 편이다. 연기할 때 그런 게 의식되진 않던가?
많이 의식됐죠.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 다 신경 쓰일 정도였는데 그런 걸 하나하나 이겨내는 과정이 있었고, 지금은 많이 편해졌죠.
연기 데뷔작은 <쌍화점>인가.
<쌍화점>에 처음 캐스팅됐는데 김종관 감독님이 연출한 단편영화 <헤이, 톰>을 먼저 찍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기억은?
긴장돼서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움직이지? 어떤 표정을 짓지? 화면엔 어떻게 나올까? 지금 표정은 괜찮나? 얼어 보이진 않을까? 계속 이런 생각만 났다.
화면 너머의 자신을 보는 건 익숙한가?
아직도 좀 낯설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같이 보면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도 잘 나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지만 기대도 되고.
모델과 배우 중에 더 하고 싶었던 일은?
둘 다 하고 싶었다. 다만 어린 나이에 모델 활동을 먼저 하고 20대 중반부터 배우 활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연기를 빨리 시작하게 됐다.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모델로서 괜찮은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쳐서 조금 아쉽더라.
자신의 생각보다 빨랐던 만큼 예기치 못한 부담감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부담감이 생겼다. 그나마 처음엔 큰 역할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을 덜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거 같다. 아마 좀 더 중요하고 큰 역할이었다면 힘들었을 거다.
드라마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방송 관계자들도 상당히 주목했던 작품으로 알고 있다. 본인을 비롯해서 김우빈, 이수혁, 성준, 김영광과 같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 했고.
맞다. 그 작품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꽤 많다. 지금도 인터뷰할 때마다 한번씩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해보면 감독님 입장에선 모험이었을 거다. 경험이 거의 없는 모델 친구들을 데리고 작품을 끌어갔다니 정말 대단한 결단이었지. 촬영 내내 재미있었다. 그 멤버가 다시 모여서 촬영할 기회를 얻기도 힘들겠지.
그 당시만 해도 그 작품이 이렇게 회자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텐데.
소재가 특이하니까 마니아층은 생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 방영이 끝나고 더 많은 인기를 끈 거 같다. 방송사에서 DVD를 출시했는데 그때까지 발매했던 DVD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가 이뤄졌다고 하더라.
때론 기대 밖의 결과로 돌아오는 경험이 있다. <위험한 상견례 2>도 그런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일단 코미디라는 장르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작품이자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니까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작품이 끝나면 ‘아, 진짜 추웠다’란 식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 아마 <위험한 상견례 2>는 ‘정말 많이 웃었다’란 식으로 기억날 거 같다.
누구 덕분에 많이 웃었을까?
신정근 선배님이나 전수경 선배님, 김응수 선배님께서 워낙 잘 하셔서 같이 촬영하면 항상 많이 웃었다. 그 탓에 NG도 많이 나서 죄송했지만 웃긴 걸 어떡해(웃음).
오랫동안 배우로 살아온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진 않았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저렇게 오랫동안 연기를 해온 것도 대단한데 항상 내 생각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시니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세 분 다 항상 잘 대해주셨다. 나도 나중에 어린 후배가 생기면 따뜻하게 잘 대해줘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신 거 같다.
혹시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은 없나?
최근엔 코미디를 해봐서인지 몰라도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더라. 좀 더 나이가 들면 남성적인 장르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해보지 못한 캐릭터가 많아서 한번씩은 다 해보고 싶다. 지금까진 나름 잘해온 거 같은데 올해엔 어떤 작품이 됐든 정말 뿌듯하게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ELLE KOREA MAY 2015 NO.271 'ELL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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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NS BETTER THAN YOURS
힙합을 몰라도 아는 그 이름 타이거 JK와 윤미래 그리고 실력파 래퍼 비지(Bizzy)가 모였다. 이름하여 MFBTY. 당장 입에 붙지 않아도 괜찮다. 조만간 누구보다도 열광하게 될 테니까.
MFBTY는 ‘내 팬들이 너희 팬들보다 낫다’는 의미인 ‘My Fans (are) Better Than Yours’의 약자, 그러니까 ‘스웩(Swag)’ 그 자체다. 이 생소한 이름에 담긴 자신감이 허세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힙합은 몰라도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알 거다. 그리고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에 꾸준히 참여해온 실력파 래퍼 비지(BIZZY)까지, 이 세 사람이 뭉친 프로젝트 유닛이 MFBTY다. 이미 2013년 초에 MFBTY라는 이름으로 싱글앨범을 발매했고 같은 해 말에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정규 앨범 <살자(The Cure)>가 발매된 바 있다. 리허설은 끝났다. 이제 진짜 무대에 오를 시간이다. MFBTY의 <Wondaland(원다랜드)>는 타이거 JK이자 윤미래이자 비지이면서도, 타이거 JK도 윤미래도 비지도 아니다. “R&B나 소울, 힙합에 빠져 있던 세 사람이 함께 작업하니까 대단한 힙합 프로젝트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 음반 판매처의 예약 판매에 게시된 걸 보니 장르가 힙합으로 돼있어서 댄스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타이거 JK의 말이다. 그러니까 힙합계의 <어벤져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타이거 JK와 윤미래가 모인, 게다가 실력파 래퍼인 비지까지 가세한 이 앨범이 힙합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타이거 JK가 다시 말했다. “각자 하기 힘들었던 음악을 이렇게 모여서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록부터 팝, 댄스, 어쿠스틱까지 다 있다. 대중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 누구의 팬보다도 나은 그들의 팬들이라면 당연히 열광할 준비가 돼 있겠지만.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MFBTY의 앨범에 대한 힌트는 그 앨범의 지주인 세 사람 외에도 피처링 참여로 이름을 올린 수많은 뮤지션들의 이름에 있다. 전인권,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비스트의 용준형, 도끼(Dok2), 윈디시티의 김반장, 유희열 그리고 이현준과 이윤정의 EE 등 나이와 장르를 초월한 다채로운 음악적 대가들이 MFBTY의 앨범에 기꺼이 참여했다. 언어 그대로 기꺼이. “이메일로 조심스럽게 참여를 요청했는데 예상치 못한 게스트들이 우리가 사는 의정부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우리끼린 ‘어렵겠지?’ 하면서도 던져본 셈이었는데 다들 직접 찾아온 거다. 정말 기대하지 못했던 터라 너무 고마웠다.” 유희열은 한밤 중에 의정부까지 달려와 밤을 지새우며 피아노 곡 작업을 선사했다. 타이거 JK 앞에 5년 만에 나타난 김반장이 자신의 밴드와 함께 연주해준 곡에 전인권의 목소리가 입혀졌다. 랩몬스터는 피처링뿐만 아니라 MFBTY의 곡을 모니터링해줬고, 뮤직비디오 현장까지 찾아와 카메오 출연을 자청했다. 게다가 누군가 새하얀 벤츠를 그들의 작업실 앞에 세우더니 도끼와 더 콰이엇이 내렸다고. “그 외에도 참여 의사를 밝혀주신 분들이 많았지만 시간상 불가능해져서 어렵게 고사할 수밖에 없는 분들도 있었다. 정말 신비한 일이었다.”
타이거 JK와 윤미래는 국내 음악계에서 대체불가능한 래퍼이자 뮤지션이다. 그들이 함께 제대로 놀아보겠다는데 최소한 음악 좀 가지고 논다는 이라면 그 판에 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타이거 JK, 윤미래 그리고 비지 이 세 사람의 음악적 열정과 호기심이 그 판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욱 주요했다. “우리도 각자 음악을 오래 하다 보니까 자기들만의 틀이 생겼다. 그런 틀에서 벗어난 음악을 해보려고 했지만 오래 음악을 하다 보면 계산하지 않아도 관성이란 게 생긴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셋이 뭉치니까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볼 수 있겠더라. 그래서 셋이 뭉치니 새로운 곡이 늘어났고, 각자의 솔로로 할 수 없는 음악들을 MFBTY로 해보기로 했다.” 물론 세 사람의 여정이 마냥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마음은 서로 잘 맞지만 각자 캐릭터가 다르고 서로의 색깔이 뚜렷하다 보니 서로 융화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본래 싱글 앨범 발매 계획은 정규 앨범으로 확대됐다. 서로 좋아하는 취향을 하나의 틀로 규격화해서 반죽하기 보단 나열해서 수집하기로 했다. 그 결과 16곡이 전혀 다른 MFBTY의 <Wondaland>가 탄생했다.
앨범의 타이틀인 <Wondaland>는 그들이 추구하는 ‘원더랜드(Wonderland)’ 그러니까 그들이 꿈꾸는 멋진 이상향의 ‘얼터에고’라 해도 좋을 신세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타이거 JK와 윤미래, 비지가 자신들을 둘러싼 음악적 자의식을 버리고 나아간 새로운 음악적 영토인 셈이다.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이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서 자신들이 꿈꾸던 순수한 음악적 사랑이 깃든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한 음악적 활동에 대한 열망에서 잉태된 산물이다. 무엇보다도 MFBTY의 음악에서 키가 되는 건 윤미래다. “(윤)미래의 훅이나 코러스로부터 탄생한 곡이 많다.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줄거리를 쓰고, 비지와 같이 살을 붙이는데 코러스 라인이나 멜로디에서 영감을 얻게 되니까.” 한편 비지는 타이거 JK와 윤미래에 비해 알려지진 않았지만 드렁큰 타이거의 5집 앨범부터 참여해온 실력파 래퍼다. 즉 MFBTY의 히든 카드인 셈. “비지가 아니라 해도 친한 동생은 많다.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음악을 함께 한다면 그건 오해”라는 타이거 JK의 말은 그의 존재감에 기대감을 입힌다. 그리고 타이거 JK, 설명이 필요한가?
지난 2013년 세 사람은 이미 한 차례 정규앨범을 발매한 적 있다. 세 사람 각자의 이름이 들어간 그 앨범의 타이틀은 <살자>였다. 1년 전 세상을 등진 타이거 JK의 아버지 고 서병후의 투병을 정신적으로 응원하고자 만든 앨범이었다. 1년여 전 인터뷰에서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선 기사상에서 숨겨주길 바랬던 타이거 JK는 이제 허심탄회해하게 고백했다. “사실 아버지께선 알고 계셨다. 오히려 우리에게 숨기고 계셨지. 그래서 나랑 미래, 비지, 매니저들까지 모두를 위한 조언이 담긴 노트를 남기고 가셨다. 우리에게 사랑에 관한 곡을 많이 쓰라고 부탁하고 가셨다.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라 말 그대로 큰 사랑 말이다.” 그래서 지난 해 12월에 타이거 JK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남긴 1억 원의 재산을 아버지의 명의로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에게 기부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남자들은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남자가 된다더라.” 타이거 JK 또한 아버지다. 자신의 아들인 서조단은 MFBTY의 새 앨범 중 ‘방귀 댄스’라는 음악에 작곡과 노래로 참여했다. 그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기 보단 고통을 통해서 재능을 갈고 닦길 고대한다.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듯 쉽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타이거 JK는 <엘르>와 함께 한 2013년 10월호 화보 덕분에 미국에서 영화 캐스팅 제안이 왔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화보가 잘 나온 덕분에 포트폴리오처럼 전해진 거 같더라. 지금은 내가 뛰어들 자리가 아닌 거 같아 일단 고사했다.” 그리고 이미 3년 전 타이거 JK가 출연했던 영화 <세계일주>가 드디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들의 모험담을 그린 이 영화에서 타이거 JK는 길거리의 방랑 악사로 등장하며 아이들을 위기로부터 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아동학대방지 홍보대사를 했던 시절이었고, 그런 좋은 취지와 부합하는 영화라고 하니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타만 들고 앉아있으면 되는 카메오라더니 점점 분량이 늘어났다.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감독님께서 계속 부르시더라. 좋은 경험이었다. 언젠가 영화에 또 도전해보고 싶다.” 언젠가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MFBTY의 활동이 보다 중요하다. “진짜 이번엔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다. 방송도 많이 하고, 뮤직비디오도 다섯 개 이상 찍을 거다. 그래서 우리가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MFBTY라는 생소한 이름 아래 모인 타이거 JK, 윤미래 그리고 비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음악적 열망으로 자신들이 서있어야 할 무대, 진정한 원더랜드를 염원한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그 어떤 팬들보다도 나은 그들의 팬들 역시 손을 머리 위로. 기다림은 끝났다.
(ELLE KOREA APRIL 2015 NO.270)
웹툰 계의 ‘암모나이트’ 혹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강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작가다. 한결 같은 이야기를, 한결 같은 믿음으로 쓰고 그린다. 재미있는 작품에 대한 순정으로.
<무빙> 연재 전에 SNS를 통해서 대단한 각오를 남겼다.
늘 그렇다. 각오는 항상 대단해(웃음)!
자신감일까, 긴장감일까?
긴장감이지. 사실 다른 작가들은 전혀 무섭지 않은데 독자들은 늘 무서워. 혹자는 창작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난 아니야. 독자랑 싸우는 거지. 독자를 재미있게 만들어서 굴복시켜야 돼. 독자가 재미없게 느끼면 지는 거야. 그러니 늘 긴장되지.
팩션물이었던 <26년>을 제외한 전작들은 ‘순정만화’와 ‘미스터리심리썰렁물’로 구분했다. 그런데 <무빙>은 ‘액션만화’라고 했더라.
후회하고 있다(웃음). 전반부는 순정물처럼 보이지만 후반은 아니거든. 그런데 미스터리물도 아니고, 대신 후반부에 액션이 조금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별거 안 해. 아니, 못해(웃음). 그러다가 막판에 빵 터트리고 끝날 거야. 전체 분량의 3/4정도까지 진행돼도 액션이 안 나와. 아마 욕 좀 먹겠지(웃음).
기다린 만큼 제대로 된 액션이 안 나오면 악플 좀 달리겠는데.
‘답답이’ 같았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쾌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정말 답답하고 짜증이 나야겠지. 우린 지금 그 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거야.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뚱뚱한 봉석이를 보면서. 그래도 액션이라고 붙인 건 조금 후회된다(웃음).
그런데 왜 제목은 <무빙>일까?
만약 제목이 <액션>이었다면 비행 능력이 대단하고 큰 일을 해내는 히어로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씩 움직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 캐릭터도, 이야기도. 사실 제목을 붙일 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편이야(웃음). 어쨌든 하늘을 나는 히어로물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의 현실에서 그럴듯한 히어로물을 해보고 싶었지.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는 미국에선 그럴 듯해 보여도 한국에선 능력이 과해 보이잖아. 그리고 시간능력자들이 등장했던 <타이밍>과 어감도 비슷해서 좋고.
그렇다면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사실 우리나라만큼 히어로를 이야기하기 좋은 환경도 없다. 지금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분단국가에 초능력자가 있다고 하면 남한이든, 북한이든 얼마나 많은 관심이 생기겠어.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는데 실제로 초능력 부대를 만들려고 했던 미국 특수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야. 그런데 우리나라 안기부에서도 첩보전에 활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탐사전문기자인 주진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
정재승 박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던데.
뇌과학자니까 초능력에 대해 물어봤지. 재승이 형이 카이스트에 있을 때 이상한 사람들의 문의가 많이 왔대. 실제로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실험도 해봤는데 결론은 초능력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왜 초능력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능력이었을까?
하늘을 나는 게 매력적이니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사람도 많잖아.
최근작으로 올수록 비현실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순정만화’인 <당신의 모든 순간>이나 <마녀>조차 좀비나 오컬트라는 장르적 세계관에 담아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뻥을 치고 싶어진다. 만화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말이야. 현실적인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귀신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도 뻥 치기 좋아서다. 무슨 말을 해도 구라니까 창작할만한 여지가 많거든. 초능력도 마찬가지다. 마블의 초능력자들도 말이 안되잖아. 거미인간이라니, 완전 ‘개뻥’이지(웃음). 하지만 이야기가 그럴듯하니 재미있잖아. 나도 그런 만화를 해보고 싶었다. 허황된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게 작가의 몫이라 생각하니까.
<26년> 이전엔 작품마다의 연재 간격이 2개월 수준이었는데 <26년>부터 반 년으로 벌어졌고, 이젠 1년에 한 작품 수준이다. 작년엔 아예 연재가 없었고.
이야기를 쓰는데 들어가는 공이 점점 커지는 탓이다. 사실 <26년> 이전 작품들을 연재할 때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그만큼 공을 들였을 거다. 하지만 그땐 연재를 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니까 차기 연재를 빠르게 가져가야 했다. 지금은 그때보단 여유가 생겨서 작품을 다듬을 시간이 생겼지. 그런데 1년 넘게 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란?
집요한 거 봐라. 훌륭한 기자일세(웃음).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
사전 작업 기간이 늘어났다는 건 작품에 대한 욕심도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독자들이 남기는 댓글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지루해졌다는 댓글이 몇 백 개 달리면 뒤에 있는 클라이맥스를 앞으로 끌어오고 싶어진다. 실제로 그런 짓을 하다 구조가 어그러져서 작품을 말아먹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니까 연재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그래야 나를 믿고 이야기를 밀고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만화가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니까 이야기까지 밀리면 안 된다. 이야기가 내 무기라 생각하니 그에 들이는 공이 커지는 거다. 대사 하나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을 때 연재에 들어간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콤플렉스였다. 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릴까. 처음 일상툰 형식의 <일쌍다반사>를 연재할 땐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막대한 분량의 장편 서사 만화를 소화하면서 손이 느리고, 마음 먹은 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답답하더라. 그런데 그림과 만화는 다른 영역이란 걸 알게 됐다. 일러스트로 봤을 때 내 그림이 약한 건 사실인데 나는 만화는 잘 그린다. 내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콤플렉스가 없어졌다.
이야기가 자신의 무기라고 했는데 보다 정확하게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품게 만드는 덕분에 캐릭터의 행위가 독자들의 지지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작품이 지루해지는 거다. 캐릭터 소개가 굉장히 길잖아. <무빙>도 6화까지 왔는데 아직 캐릭터 소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진행된 사건이랄 게 거의 없잖아. 하지만 이 과정이 내 작품의 궁극적인 재미를 보장한다. 이야기의 성패는 독자들이 주인공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에 달려있다. 독자들이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활자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캐릭터라고 소개하는 것보단 우유부단해 보이는 사연과 소극적으로 보이는 사연을 하나씩 보여주는 게 맞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공감대를 열어주거든. 캐릭터를 최대한 설명하고 이해시킨 뒤엔 이야기에 힘이 붙는다. 결국 이야기가 완결됐을 때를 보고 가야 된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이야기를 준비해서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두 커플 이상의 중심인물이 등장해서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가 굴러간다.
<프렌즈>란 시트콤을 좋아하는데 거기 여섯 인물이 등장하잖아. 40분 남짓한 시트콤에서 두 커플씩 엮어서 세 가지 사건을 진행한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내 작품에 다양한 커플이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전략이다. 미비한 존재들이 협력해서 거대한 선을 이루는 이야기가 좋다.
전작들과 달리 <무빙>은 봉석이와 희수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는 인상이다.
후반부에 봉석이네 부모님과 희수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거다. 그러니까 결국 세 커플의 이야기가 되겠지. 전후반을 책임지는 캐릭터를 나눈 건 처음이라 지루한 감도 있는 거 같다.
죽음을 주요한 감정적 매개로 활용하는 작품이 많다. 죽음에 예민한 사람이 아닐까 궁금했다.
김중혁 소설가도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 조금 없어 보이는 대답인데, 이야기를 쓰다가 꽉 막힐 땐 의미 있는 인물 하나를 죽이면 뚫린다(웃음). 주변 인물들이 그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하면서 이야기가 살아나거든.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거 같다. 아버지께서 목사님이셔서 가끔씩 돌아가신 신도의 장례식장을 따라가는 일이 종종 생겼거든. 그땐 사람들이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 알았지. 긴긴밤을 보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걸. 죽음만큼 극단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것도 없지만 사람은 결국 자기 삶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고립의 정서가 느껴진다. 물리적인 고립이든, 정서적인 고립이든 결국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데 그 외로움에 귀 기울여 주거나 손을 내미는 이들의 존재의 등장을 통해 짠하게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자아내는 방식이 일관되게 이어진다.
내 만화엔 유난히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잖아. 일찍이 가난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지. 그래서 좀 외롭기도 했고.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진 신나게 놀았던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리를 두게 됐다. 희한하게 애들이 고2때부터 돈을 가지고 놀더라. 친구 집에서 모이거나 농구를 하는 게 아니라 커피숍이나 피자집, 콜라텍에서. 그런데 나는 용돈도 없고, 버스 회수권만 들고 다녔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거든. 그러니까 불편해지더라.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잖아. 그러니까 점점 내가 애들을 밀어내더라. 친구끼리 어떠냐고 할 수도 있고, 그 마음도 알지만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상황의 외로움을 알 수 없다. 나를 배려하는 걸 알면서도 그렇더라. 게다가 그땐 예민한 사춘기 시절이기도 했고. 그래도 학교에선 애들이랑 잘 어울렸다. 그리고 방과 후엔 혼자 도서관에 갔지.
놀 수 없으니 공부를 한 건가?
중2때부터 도서관에서 책 읽는 재미를 알았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다. 그리고 야한 이야기를 좋아했다(웃음). <여명의 눈동자>를 김성종 작가의 원작으로 읽어보면 엄청 야하다. 여옥이가 장난 아냐(웃음)! 그리고 추리소설 중엔 여자가 벌거벗고 죽은 채로 시작되는 게 많다. 대중적인 추리소설이나 통속소설을 좋아했는데 야한 재미로 무협소설을 보다가 김용의 <영웅문>을 읽고 감명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역사소설로 넘어가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고 감탄했다. 그렇게 도서관 책장 하나를 다 읽었다고 뿌듯해했으니까 얼마나 공부를 안 했겠어?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때 내가 엄청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을 거다(웃음).
그래도 작가로 살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의 복선 같은 시절이라 해도 좋겠다.
그런데 다독가라는 사람을 만나면 이런 말하기 부끄러워진다. 흔히 말하는 명작은 본 게 없으니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처럼, 제목만 들어도 멋있는 책 있잖아. 이상하게 한두 권짜리 책엔 흥미가 안 생겼다. 적어도 세 권 이상은 돼야 읽었지. 아무튼 참 외로운 시절이었는데 그런 환경에서 바르게 엇나갔던 거 같다.
항상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다. 인간의 선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다. 악당조차도 길가의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면 달려가서 잡아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안 본다. 결국 내가 믿는 사람들과만 교류하다 보니 내 세계에 갇힌 셈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운 좋게도 착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아온 덕분일지 모르고.
그런 믿음이 휴머니즘의 감동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으로 표백된 세계관을 보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잘 알겠지만 내 작품에서 악당은 둘 밖에 없었다. <26년>의 그 인간하고 <이웃사람>의 살인마. <26년>이야 원래 나쁜 놈을 반영한 거니까 그렇다 치면 <이웃사람>의 살인마가 내가 만든 유일한 악당인 셈이다. 사실 <이웃사람>의 시나리오엔 살인마의 외로움에 관한 2화 분량의 서사가 있었다. 그런데 연재 직전까지 의심이 거둘 수 없었다. 살인마에게도 사연을 부여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 걷어냈다. 정당성을 쥐어주면 안되겠더라. 그래서 알았다. 어떤 인물에 대해 이해하도록 만들면 그 사람을 결코 악당으로 여길 수 없다는 걸. 그러니 한 명씩 다 사연을 입혀주는 내 만화의 캐릭터들은 결코 악당이 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한때 고민하긴 했다. 내가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괜찮겠더라. 세상에 널린 게 만화인데 이런 만화가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리고 나는 착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일단 내가 재미를 느끼기 힘들 거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외피를 씌우는 데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다. 뻥을 치고 싶은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할까?
나는 지금 매너리즘과 스타일의 경계에 서있다고 본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재미있으면 그건 작가의 스타일이다. 재미가 없으면 매너리즘이고. 착한 사람들이 누군가를 돕는 이야기를 열한 편이나 했지만 앞으로도 같은 이야기를 할 거다. 그러니 ‘강풀은 이제 뻔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재미있는 작품을 해야지. 그러니 매번 긴장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독자들이 무섭다. 독자들이 재미없다는데 이걸 내 스타일이라 우길 수는 없잖아. 우기면 비참재지는 일이고. 인터뷰도 그래서 잘 안하고 연재 후기도 안 남긴다. 작품을 독자에게 내보낼 때 이미 승부는 끝난 거다. 그러니 작가가 뒤늦게 자신의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일이 짚어주는 건 변명일 뿐이지.
사실 웹툰에 후기라는 포맷을 정착시키는데 일조한 장본인인데.
<순정만화>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사실 작화 과정을 공개하거나 연재를 끝낸 소감을 남기는 것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면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만큼 치열하게 연재하고, 끝나면 독자의 반응에 승복해야 한다. 본편보다 후기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면 이미 변명의 여지가 없이 실패한 작품이라는 거지.
가끔씩 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솔직히 나도 이젠 <순정만화> 같은 건 오글거려서 못 본다. 그런데 가끔은 그렇게 해야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은 대사나 내레이션을 길게 썼다가 너무 설명하는 것 같아서 빼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낀다. 그렇게 해야 어린 애들은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좀 설명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은 확실히 초기작들에 비해 내레이션은 정말 많이 줄어든 거다.
심리를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인과를 펼쳐 보이는 내레이션은 다르다. 전자는 독자를 위한 가이드 라인이 될 수 있는데 후자는 독자의 상상을 제한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가끔 상상을 제한해버린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상당히 많이 개입해버리는 편이긴 하지. 아무래도 그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점점 작품보다 상품을 만들고 싶어진다. 말장난 같지만 걸작보단 명작을 만들고 싶다. 생각을 곱씹으면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작품도 좋지만 많은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도 약간 헷갈린다. 내가 좀 더 덜어낼 수 있는 부분인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더 들어갈 때가 있으니까. <무빙>에서도 달리기 장면은 사실 한두 컷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걸 열 컷 넘게 그렸다. 굳이 그렇게 개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그 상황을 다 알아먹게 만들고 싶은 거다. 얘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걸. 결국 그 고생이 내 고생으로 연결되지만(웃음).
국문학과 출신인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을까?
없다. 소설가가 되기엔 문체가 떨어지고, 화가가 되기엔 그림체가 떨어지니까. 그런데 만화가 나를 구원했다. 두 능력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거기에 만화가 있는 거다. 그리고 만화라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나한테 맞는 거 같다.
0.5와 0.5였는데 둘을 더해서 1이 된 셈이랄까.
0.5을 0.7로 올려주면 안되나? 1이 아니라 1.4가 됐다고 하자(웃음).
작품 속 공간의 모티프가 되는 실제 공간을 치열하게 찾고 취재하는 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 공간에 가봐야 이야기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내가 천재적인 이야기꾼이라 가만히 앉아서도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 그래서 실제 공간을 많이 찾는다. 그러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무빙>의 배경이 되는 선사 고등학교엔 지금까지 스무 번 이상 갔다. 6화에 등장하는 달리기 장면 때문에 운동장에서 실제로 뛰어보기도 했다. 집착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선 가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공간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거짓말처럼 이야기가 풀릴 때가 많다.
인지도가 생겨서 취재 요청은 수월해지진 않았나?
아무튼 인지도라는 게 참 좋더라. 초창기만 해도 말도 못하게 퇴짜를 맞았는데 이젠 많이 수월해졌다. 내 만화를 보는 독자 연령층이 높다더라. 30대가 많대. 웹툰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부터 웹툰을 봤던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거다. 취재가 수월해진 건 인지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 만화의 독자들도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됐기 때문인 거 같다.
아직 연재 초기인데 6화 마감 때 29시간 동안 철야를 했다고 들었다. 연재를 하다가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맨날, 회당 30번씩(웃음). 너무 힘들 땐 ‘다음’이 폭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웃음). 살짝 사고가 나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2~3주 안에 회복될 정도로 팔만 살짝(웃음).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 연재 전부터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해야 되는지 안다는 거지. 매일 같이 18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살아야 된다는 거.
그만큼 연재를 완료했을 때의 쾌감도 상당하겠다.
<26년> 끝냈을 땐 진짜 울었다. 마지막으로 원고 송고를 위해 엔터키를 누르니까 눈물이 펑펑 나더라. 그땐 너무 힘들었거든.
최근 드라마 제안을 받았다던데.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깠어.
어떤 작품에 대한 제안이었나.
다 들어왔다. <미생>이 잘 돼서 그런 것 같다. 착각하는 거지. 그건 <미생>이니까 잘된 거거든. 가끔씩 콘텐츠 업자들의 얄팍함이 얄미울 때가 있다. 여러 번 영화화 과정을 지켜보니까 촉이 생겼거든. 이 사람들이 정말 작품을 만들려고 제안한 건지, 그저 판권을 확보하려고 이러는 건지, 다 보인다. 투자를 받으려고 판권만 확보하려는 회사도 많거든. 그래서 90% 이상 신뢰가 생기질 않으면 아예 계약하지 않는 게 내 신조다. 그래서 안 했지.
<조명가게> 시나리오는 탈고된 거 같던데.
그렇다는데 아직 못 봤다. 변영주 감독 말로는 원작에서 많이 바뀌었대. 맘대로 하라고 했지.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감독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대신 받는 경우도 적지 않은 거 같더라.
진짜! 대체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웃음). 항상 원작자로서의 소감을 물어보는데 아무래도 대답하기가 좀 그래. 말을 잘못하면 감독이 상처받을 거 아냐. 사실 모든 만족감을 충족해주는 작품은 드물었지만 원작자로선 항상 선물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영화 현장에 가면 감동적이다. 나는 어시스턴트 서너 명과 작업하지만 영화 현장엔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잖아. 그런 광경이 멋있어. 게다가 원작자는 제작과정 처음부터 알게 되니까 그 과정의 고생을 아는 입장에선 냉정한 평가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항상 피해서 대답한다. 주관적으로 좋았습니다(웃음).
요즘 윤태호 작가는 단행본의 레이아웃에 맞춰 컷을 구성한 뒤 웹툰 형태로 떼어서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린다더라. 그래서 웹툰으로도, 단행본으로도 가독성이 좋다. 그런데 강풀 작가의 작품은 웹에서 볼 때보다 단행본의 가독성은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태호 형의 작업 방식이 효율적이지. 컷으로 나눠서 재배치하는 거니까. 나는 출판 만화를 배운 게 아니라서 그런 기술이 없다. 그래서 책으로 볼 땐 가독성이 떨어지지. 그런데 나는 모니터나 액정으로 처음 보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다. 웹툰에서 자생한 탓인지 몰라도. 그래서 무조건 웹상에서 잘 보이도록 배경을 꽉 채운다.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그리는 거다. 성의 없는 그림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 못 그린 그림과 성의 없는 그림은 다르거든. 10년 넘게 작가 생활을 하니 보니 그런 것도 보인다.
포털사이트 중심이었던 웹툰의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있다.
웹툰은 지금이 최고 절정기이고 여기서 더 커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웹툰을 보는 독자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시장이 너무 커진 감이 있다. 거품이 많이 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지만 언젠가 이 거품이 빠질 거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길을 잃을까 걱정된다. 예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장이 팽창했다가 훅 꺼진 것처럼.
웹툰을 다른 컨텐츠로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도 이를 부채질하는 거 같다. 판권 계약만하고 영화화가 안 되는 웹툰도 많고
후배들이 영화 계약만 하면 다 영화가 되는 줄 아는데 내가 맨날 얘기한다. 웃기고 있네(웃음). 내가 여러 번 경험했잖아. 이름 있는 작가나 포털에서 상위권 작품이면 무조건 계약해서 판권을 확보하려 들지. 그러니까 신중하게 계약해야 된다.
강동구청에서 운영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주도했던데, 과정이 궁금하다.
강동구청에 강풀 만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엔 거절했다. 민망하잖아(웃음). 그런데 문득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난 거야. 그래서 강풀 만화거리 만드는 거 수락할 테니 구청장님과 한 시간 독대권을 달라고 했지. 그 전에 강동구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구청장님을 만나서 설명했고, 그 아래 실무자들과 한 스무 번 정도 회의를 했지. 그래서 결국 진행이 결정됐고 구청에서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게 됐지. 그런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구민들 입장에선 세금을 왜 이렇게 쓰냐고 구청에 항의할 수 있잖아. 그래서 구청에 조건을 걸었지. 급식소 설치물과 1년치 사료를 내가 대겠다고.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을 텐데.
영화 <26년>이 흥행해서 개런티가 들어왔는데 절반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고 절반은 고양이 급식소 사업에 썼다. 급식소 50개를 설치하고 1년치 사료를 샀지. 왠지 <26년>으로 번 돈은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 그리고 구청에서도 민원이 들어오면 기부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니 당당할 수 있잖아. 사실 구청에선 주민 중 절반만 반대해도 사업을 시행하는 게 힘들거든. 그러니 구청에서도 대단한 용기를 냈다고 생각해. 사료를 아예 구청에 보내주면 동회의가 있을 때 동장님들한테 배급하고, 알아서 배식하게 되는 거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원이지.
그 뒤로 1년이 지나지 않았나?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사실 이 아이디어는 캣맘들이 편하게 사료를 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사업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야. 1년간 잘 운영되면서 사료 회사에 기부 제안을 했어. 대신 내가 1년마다 홍보 만화를 그려주는 대가로. 사실 길고양이 급식소가 나한테는 상당한 모험이었어. 고양이들이 1년간 안락하게 잘 먹다가 갑자기 폐지되면 죄책감에 시달릴 거 같았거든. 재작년엔 만화 외에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게 그거였는데 정말 다행이지. 처음에는 하루에 10번씩 전화가 왔대. 고양이 잡아가라고. 그런데 요즘은 민원이 없대. 애들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안 찢는 거야. 덕분에 고양이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의식이 바뀐 것 같아. 다행이지.
연재가 끝나면 뭘 할 건가?
애 낳고 나서 연재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집에 가고 싶어져서. 6화까진 그 일념으로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업데이트를 했다. 집에 빨리 가려고(웃음). 가족들과 여행가고 싶다.
(ELLE KOREA APRIL 2015 NO.270 'ELLE interview')
영화 저널리스트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썼습니다. mingun@nate.com by 민용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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