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919

time loop 2008. 9. 20. 03:51

1.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Paul Bourget)

명심하자. 그리고 명심해라.

2.     전도연 씨 인터뷰를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다. 기대가 됐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보니 기대만큼 좋았다. 시간이 짧았다. 게다가 혼자 하는 것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아쉽다. 질문을 던졌을 때 답변에서 돌아오는 리액션의 느낌이 좋았다. 이런 배우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아쉽다. 정말 언젠가 넉넉한 여유를 갖고 긴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상대다. 물론 그건 전도연 씨가 원해야겠지만. <멋진 하루>는 좋았다. 원래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 호감을 갖고 있는 편이기도 했거니와 <멋진 하루>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아주 특별한 손님>과 마찬가지로 아이라 다즈코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어느 하루 동안의 묘한 에피소드다. 한가지 특별했던 건 그동안의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주던 느낌과 다른 능동성이 있다. 사실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에는 식물적인 인물이 수동적인 상황에 이끌려가곤 한다. 하지만 <멋진 하루>는 좀 다르다. 적극적이다. 그건 아무래도 두 배우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하정우와 전도연이 주고받는 액션과 리액션의 연기가 꽤나 흥미진진하다. 재미있는 건 전도연의 리액션이다. 전도연이 이런 리액션을 보여준 적이 있었나? 흥미롭다. 그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밀양>이후로 전도연에겐 미묘한 변화가 있다. 확실한 건 필모그래피를 헤쳐나간 세월의 흔적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여배우라는 찬사를 아끼고 싶지 않다.

3.     날씨가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다. 절기가 빨라서 추석이 이르긴 했지만 9월 중순이 넘은 시점에서 햇볕은 쨍쨍이다. 게다가 한여름에도 그리 신경 쓰지 않던 모기들이 극성을 부린다. 사실 세상이 온전치 않은 탓이다. 날씨에게 무슨 원망을 하겠나. 다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날씨가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을 뿐이다. 덕분에 이 세상이 피해를 보고 있다.

4.     바딤 페렐만의 <모래와 안개의 집>은 정말 흥미롭고 좋은 영화다. <인 블룸>도 그에 못지 않다. 이 영화는 동양적인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데 시간의 영역에 대한 신비로운 고찰이자 처연한 비극이다.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이나 우리에게도 상흔을 남긴 조승희 총기 난사사건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더 규모를 키우자면 포스트 9.11의 잔상이 어린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구체적인 예시문은 불필요하다. 이 영화는 그저 죽음이 직면하는 찰나로부터 얻어지는 순간의 영원성을 신비롭게 풀어내는 이야기다. '만약'이라는 유령 같은 단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 집중력은 필요하다. 게다가 아주 일말의 독해력도 갖췄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인 블룸>이 어렵거나 난해한 영화는 아니다. 말미에는 상당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건 반전이 되고 싶어 안달난 천박한 깜짝쇼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아하면서도 아련한 여운의 충격을 남긴다. 슬프고도 고요하다. 삶이란 그리도 간절한 것이기에 죽음은 서글픈 것이다. 문득 서정주의 시가 떠올랐다. 한 송이 국화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5.     일이 또 밀렸다. 계속 쳇바퀴 돌 듯 일을 쌓아놓고 가다 보니 자꾸 밀어내기가 된다. 비우고 채우는 시기기 일정치 않다. 자꾸 겹치다 보니 속도도 더디고 생산성도 떨어진다. 그나마 의욕은 올랐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시달리고 슬럼프가 찾아온 느낌이었는데 그 지경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리뷰를 5개 써야 하고, 인터뷰를 어지간하면 주말 안에 정리해야 신상에 편하다. 다음 주는 일정이 장난이 아니다. 기이한 건 난 항상 잠은 모자란데 작업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6.     네오이마주 세미나가 걱정이다. 솔직히 그냥 빠져야 할까 고민 중이다. 다음 달엔 발제인데 사실 쉽지 않다. 더 큰 민폐 끼치기 전에 손 떼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사실 지금 이 시점에서 내게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10월엔 부산영화제도 있고, 11월 초에 지인으로부터 모 대학에 간단한 레크레이션을 부탁 받았다. 파워포인트도 못 다루는데 큰일이다. 이래저래 준비할 것이 많다. 미치겠다. 정리도 못하면서 자꾸 어지럽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책상 정리를 못하면 공부를 못하는 내 습성이 현재 내 처지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7.     선배 후배라는 말이 어색하다. 난 대학생활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이 바닥에서 통용되는 이 언어에 익숙지도 않다. 그렇다고 어떤 정치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듯 편의를 위한 지칭어 혹은 약속된 고유명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 그것을 정치적 형태의 우열관계로 적용하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그 단어를 활용하지 않는다. 하긴 그러니 나에게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겠지. 다만 내가 그것에 민감하지 않았고, 그것에 강요 받지 않았던 탓에 그 단어 자체가 어색해진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의 편의를 뒤늦게 알고 있다. 내가 이 용어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된 건 새로 들어온 1살 많은 후배가 생긴 덕분이다. 정리가 필요했다. 홀로 계획하던 동선에 고려해야 할 동행자가 생겼다. 그러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과감한 표현을 빌리자면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일단 번거로우니까. , 딱히 그 친구가 싫다거나 불편한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귀찮은 일이다. 어떤 감정이 실린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뭔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생겼다는 거다.

8.     때로 어떤 이들의 무신경한 무례함에 치가 떨린다. 배려라는 걸 모르나? 답답하다. 그게 쿨한 거야? 넌 무례한 거라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뱉으려다 말았다. 두렵기 보단 역시나 귀찮아서. 말 섞기도 싫다. 고등학교 시절 성격이라면 아마 상대방이 욱할 정도로 폐부를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늙었나 보다. 귀찮다. 그런 거.

9.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묵혀두다 보니 다 썩어 문드러졌나 보다. 아니, 이미 많이 했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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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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