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922

time loop 2008. 9. 22. 22:57

1.     주말에 너무 일하기 싫었다. 하루 종일 방에 쳐 박혀서 10분 정도 진득하게 앉아있다가도 침대로 날아가 뒹굴곤 했다. 결국 지금 꼴이 이렇다. 계획했던 일들을 끝내긴커녕 묵은 내가 날 정도로 여전히 쌓여있다. 그나마 인터뷰를 끝낸 건 천만다행이다. 주말에 못 끝냈으면 이번 주의 참혹한 일정의 바다에 떠내려가 난파했을지도 모른다. 남은 일거리를 오늘 안에 다 끝내고 싶긴 한데 쉽지 않다. 게다가 잠이 쏟아질 거 같다. 어젠 2시간 가량 밖에 못 잤고, 오늘 그 상태로 <모던보이>까지 봤다. 다행히 영화를 볼 때 잠이 오거나 이런 비극은 없었다. 덕분에 지금은 미칠 것 같다. 머리는 피곤한데 눈은 뜨고 있다. 거의 정신과 육체가 따로 노는 기분. 낮에도 한잔 마셨는데 지금 또 커피를 복용 중, 그것도 큰 컵에 한 가득. 그래 봤자 약발이 먹힐 리가 없을 것 같다. 젠장, 왜 난 낮에 그렇게 빈둥거렸을까, 후회해봐도 소용없다.

2.     부산영화제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기자 직함 달고 2번째 참가하는 셈이다. 작년엔 술에 쩔었던 기억밖에 안 난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후회막급이었다. 올해는 좀 그럴 듯한 걸 해보고 싶다. 물론 우리 사정에 영화주간지처럼 영화제 완전 정복 기사를 써보겠다는 야심은 불가능하다. 그냥 부산에 머물면서 내가 보고 들었던 풍경들을 사진과 함께 기행문 형식으로 써내려 가보고 싶다. 아는 게 없어서 심오할 것까진 없고, 그냥 가볍고 팬시한 걸 해보고 싶다. 되려나? 과연?

3.     종종 칭찬을 듣게 된다. 내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글을 잘 쓴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아주 간혹있다. 좀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럴 때마다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좀 어이없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물론 거기에 민감해지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다. 다만 때론 아주 가끔씩 얻게 되는 듣기 좋은 말만큼이나 듣기 싫은 피드백도 종종 얻었으면 좋겠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허접한 구석이 한두 군데겠어. 글 써서 먹고 사는 입장에서 이런 소릴 한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자격박탈 요인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다.

4.     여자친구가 들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론 내가 연애에 투자한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만약 여자친구와 밥을 먹을 시간에 못 봤던 영화나 책을 챙겨본다면? 여자친구와 차를 마실 시간에 한편이라도 글을 썼다면? 이상, 뻘 소리였다. 아마 그래도 난 빈둥거리고 하루를 보내다 밤이 돼서야 신세한탄하며 뒤늦게 커서를 바라보며 이 밤의 끝을 잡고 있을 것이다. 역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5.     올해 졸업을 앞둔 절친한 친구 녀석이 갑자기 회한이 가득한 문장을 미니홈피 방명록에 남겼다. 물론 비밀로. 졸업이 다가오니 살길이 막막해짐을 느낀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짙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나라고 뭐, 부귀영화 누리는 것도 아니라 동병상련쯤으로 해두고 싶다. 때론 나의 10년 뒤가 어떨지 궁금해진다. 물론 생각해보진 않는다. 눈뜨고 망상에 빠져서 칼로리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난 사람의 처지란 어떻게 되도 알 수 없는 거라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음 달에 당장 나에게 엄청난 재난이 닥쳐서 을지로 3가 지하철 역에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이 될지 누가 알겠나. 물론 그런 최악의 상황으로 급하게 내몰리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다만 그런 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난 고등학교 시절,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급기야 전기도, 수도도, 가스도 끊겨서 어머니와 함께 커다란 물통을 들고 공중 수돗물을 받아왔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때 우리 집은 38평짜리 아파트였다. 살만했다. 때로 어떤 일은 순식간에 닥쳐온다.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3이 되기 직전에 그런 일을 겪었고, 그 뒤로 한동안 쉽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누가 그랬다던데 종종 난 내 경험에 비춰서 그 말에 수긍할 때가 있다. 물론 다시 그런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다. 다행히도 지금은 하루3끼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살고 있다. 다행이지 않은가. 내가 얻은 교훈은 이거다. 만약 내가 풍족한 삶을 살았다면 난 노가다도 해보지 못했고, 음식점 서빙도 못해봤을 것이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 경험들이 나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인생에서 값진 경험이란 특별한 일을 할 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 것이다. 세상에 대한 경험치를 습득한다는 것이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공부고 지혜라고 난 믿는다.

6.     미니홈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난 미니홈피를 꽤 오래 유지하고 있다. 내가 처음 미니홈피를 만들었던 것이 2003년이니까 거의 초창기 유저였던 셈이다. 그만큼 일촌도 많지만 지금은 그리 교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냥 마치 전화도 하지 않으면서 저장해놓은 핸드폰 번호처럼 진열돼 있을 뿐이다. 물론 종종 친한 친구 녀석들의 근황을 미니홈피에서 확인하곤 한다. 친구 녀석들과의 교류가 뜸해지고 있다. 애석한 일이다. 아버지는 왜 친구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이 해소된다는 느낌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아서는 안될 일이지 싶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한데. 제 살길 막막하면 주변 돌아보기도 찾아가기도 민망해지는 거다. 그게 참 서글픈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왜 미니홈피 따위를 유지하고 있냐고 하면 일단 사진첩 대용으로, 그리고 그 미니홈피를 통해서 여전히 연결고리의 끈이 미약하게 나마 이어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쯤 되면 아날로그적 기능성을 염두에 둔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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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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