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 인터뷰

interview 2013. 4. 3. 00:10

Let her be healed

한혜진은 힐링의 홍일점이다. <힐링캠프><26>으로 치유의 아이콘이 됐다. 최근 그녀는 몇 가지 상실을 경험했다. 그녀에겐 스스로를 치유할 시간이 남았다. 물론 눈물이 필요한 시간은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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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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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쑤시개 꼬나 물고 바바리 코트 휘날리며 쌍권총 손에 들고 폭풍 킬샷 날리던 주윤발의 <영웅본색>은 홍콩 느와르의 전설이다. 하얀 비둘기 날리며 홍콩 느와르의 간지를 창출해낸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홍콩이라는 지정학적 입지를 특유의 장르적 분위기로 승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시대를 선도하는 작품이었다기 보단 그 시대적 공기와 함께 호흡함으로써 얻어진 훈장과 같은 장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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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 단평

cinemania 2010. 9. 9. 16:31

이쑤시개를 꼬나 문 주윤발의 쌍권총을 추억하든, 비둘기 날리며 홍콩 느와르의 간지를 창출해낸 오우삼을 추억하든, <무적자>안에서 변주된 <영웅본색>의 흔적이란 조금 낯선 것이다. 송해성 감독은 원작의 결점이 드라마적 정서에 놓여있다고 진단했으며 내러티브를 보완하며 이런 결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무적자>는 적절한 인과관계로 이뤄진 스토리텔링의 영화로서 부족함이 없다. 동시에 관계 설정의 변주나 부산의 풍광을 배경으로 둔 느와르적 연출도 인정할만하다. 다만 울림이 약하다. 형제애와 의리를 내세운 원작의 인물들이 품은 정서들을 고스란히 끌어 안은 채 이를 거듭 설득시키고자 노력한다. 의도는 관철됐으나 성공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다단한 플롯을 지니고 있지만 진전이 더디고 끝에 가 닿는 폭발력이 약하다. 개인차가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다. 다만 그들이 입은 혈기왕성한 간지를 보필해줄 관록의 빈자리가 뚜렷하다고 할까. 박하게 평가될 영화는 아니지만 딱히 인상적이라 말하기 어려운 범작이랄까. 그 와중에도 국내에서 보기 드문 기관총질은 조금 흥미로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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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음절의 경쾌한 제목처럼 홍상수의 <하하하>는 경쾌한 영화다. 언제나 그렇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잰 체하는 예술인과 지식인들의 속물적 근성을 벗겨내는 ‘생활의 발견’을 그려내는 홍상수의 ‘극장전’은 <하하하>에서도 거듭된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평론가, 감독, 작가들은 평론이나 연출, 창작을 한다고 할뿐, 그에 어울리는 행위를 보여준 적이 없다. 언제나 술을 마시고, 여자를 탐하며, 제 삶을 변명하거나 위장하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일탈적 행위가 하나 같이 인간적이란 변명으로 통용될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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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노출뿐이라 생각한다면 빈곤한 상상력을 탓할 필요가 있다. 직관적인 이미지는 자극의 잠재적 성과를 되레 반감시킨다. 선명한 이미지의 관찰보다도 불투명한 실루엣이 발생시키는 상상력이 감상적 욕구를 자극하곤 한다. 이미지가 발생시키는 자극의 충만보다도 잠재적인 욕구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매혹적이다. 여인의 나신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관능적인 티저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는 <오감도>는 분명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에로티시즘의 상상을 예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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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단평

cinemania 2009. 7. 7. 12:00

에로스에 대한 다섯 개의 시선. 과감하고도 감각적인 누드 이미지를 내건 티저포스터는 <오감도>가 구사할 에로티시즘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모종의 기대감과 동떨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오감도>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옴니버스이자 기획에 따른 기대감을 배반하는 결과물이다. 창의적인 해석력도, 과감한 묘사력도 선보이지 못한다. 도전적이라기 보단 과욕에 가깝고, 창의적이라기 보단 자만에 가깝다. 에피소드를 통과할수록 티끌과 같은 권태가 쌓여나간다. 또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축적된 권태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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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산호초 섬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평생을 휴양처럼 살고 싶어라. 전직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천수(김강우)의 꿈은 팔라우섬으로 가는 직행 티켓을 끊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건 돈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짧은 시일 안에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은 도박판이다. 도박판에서 인생 한방을 노리는 천수의 꿈은 야무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패 한번 잘못 봤다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들어선다. 팔라우섬은 커녕 장기를 팔게 생겼다. 그런 천수 앞에 강사장(조재현)이 나타나 ‘마린보이’가 될 것을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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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령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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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07년) 인터뷰 많이 했더라.
<궁녀>때문에 많이 했지. <가면>도 잘 되야 할 텐데. (웃음)

<가면>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범인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더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이해서’는 마치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예감을 주더니 그냥 척일 뿐이더라. 하지만 그것이 맥거핀처럼 반전을 돕는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시는 분들이 몇몇 있을 것 같다. 물론 뒤로 갈수록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아니라는 걸 알겠지만 초반에는 나도 무척 범인처럼 의심스러워 보이잖아.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를 통해서 약간 반전을 꾀하는 측면도 있지.

얼마 전에 <세븐 데이즈>를 본 사람이라면 김미숙 씨의 역할 때문에 그런 추측을 할 가능성도 있을 거라고 본다.
아, <세븐 데이즈>에 김미숙 선배가 나오나? 그랬구나. 그 분은 영화도 잘 찍으시네. 부러워라. (웃음)

본인도 두 편이나 찍었으면서.(웃음) 어쨌든 덕분에 올해의 재발견이란 말을 많이 듣게 됐다. 일단은 기분 좋은 말처럼 들리는데.
어떤 분은 기분 나쁜 말 아니냐고 묻던데?

마찬가지다. 왠지 본인에겐 억울한 수식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좋은 건데 어떻게 보면, 뭐야~, 이제 데뷔 20년인데.(웃음) 어찌됐건 나쁜 얘기는 아니니까 좋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동안 세상이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싶은 야속함은 없던가? (웃음)
내가 그 동안 TV활동을 주로 하다 보니까, 영화 찍은 게 신기했나 보지. (웃음)

92년도 <숲속의 방>출연 이후로 <가면>은 15년 만의 출연작이다.
91년도에 <용의 발톱>(<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나?>)하고 나서 연달아서 바로 92년도에 <숲 속의 방>을 했으니, 15년 만이지.

그런데 <가면>의 개봉이 밀리면서 그 이후에 찍었던 <궁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양윤호 감독님이 15년 만에 저를 영화계로 끌어준 은인인데, 개봉이 늦어지는 바람에 어떻게 그렇게 됐지.

영화로 연기에 입문한 배우가 15년 만의 영화 출연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니깐! 내가 뭐 밉보였나 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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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에 본인이 영화를 외면한 건 아닌가?
사실 전혀 섭외가 없었던 건 아니다. <용의 발톱>을 찍고 나서 영화제 세 곳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약간 기고만장했던 거지. 그래서 들어오는 역할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차츰차츰 영화를 안 하고, TV활동을 시작하니까 이제 영화는 안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 분들이 많아진 거 같다. 이번에 내가 영화를 다시 하니까, 영화도 하는구나, 하는 거지 그 전에 내가 영화하고 싶다고 얘기하면, 어? 영화도 하고 싶다고요? 영화를 할 마음이 있으세요?, 이렇게 물어보더라. 그때마다 너무나 영화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지. 물론 구체적으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한 건, 불과 한 2년, 3년 전? 그때부터 다시 기획사하고도 의논하고. 물론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고 얘기한 건 불과 얼마 안됐지만 그 전에 나도 시나리오 몇 번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무산되기도 하고, 왜 영화계가 그런 일이 많잖아. 그래서 오케이 다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무산된 것도 있고, 내가 거절한 것도 있고, 까인 것도 있고. (웃음)

첫 작품이었던 <용의 발톱>으로 호평을 받았던 게 독이 된 부분도 있었나 보다.
그때는 멋모르고 연기를 시작해서 너무 철이 없었다. 내가 원래 영화를 하고 싶어서 따로 준비하다가 촬영을 들어가게 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작품이 너무 좋다 보니까 나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고 그런 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지. 아주 옛날 얘기긴 하지만 그 땐 그랬던 거 같아. 지금은 오히려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한 편으론 간절히 바라고 있고. (웃음)

두 편의 영화 뒤로 처음 했던 드라마가 <해뜰날>인가?
그 전에 <고래사냥>이라는 미니시리즈를 했었다. 최진실 씨 동생인 최진영 씨하고 나하고, 또 한 분이 있었는데……오래돼서 생각이 잘 안 나네.(웃음) 그렇게 세 사람이 TV용<고래사냥>을 했었다. 그래서 난 첫 드라마부터 벙어리 역할을 했고.(웃음) 내가 맡은 춘자가 벙어리였다가 나중에 말이 트이는 역이라서 그때 청각장애자 분들과 미팅하고 설정잡고, 그렇게 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해뜰날>을 했지.

<해뜰날>에서 이병헌 씨도 출연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그 친구의 드라마 데뷔작이 <해뜰날>이었을 거다. 그 이후로 일일 드라마 주인공을 했었는데, 처음인데도 잘 했었고.

그런데 한국 여배우들은 남자 배우들에 비해 연기자로서 여건이 불리한 것 같다. 남자 배우들은 30대가 되도 캐릭터가 풍성한데 여배우들은 한정되는 느낌이니까. 특히나 결혼을 하게 되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다. 그런데 그건 여자는 결혼을 하고 나면 출산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결혼 자체가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진 않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출산은 어떤 변화가 있다. 그런 변화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배우로서 긴장을 푼다고 할까? 또 다른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에너지가 분산되는 게 있는 거지. 그에 반해 남자들은 자기 직업이고 천직이니까 계속 꾸준히 연기할 수 있잖아. 물론 요즘은 출산했다고 해서 아줌마 같다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 물론 하나일 때, 둘일 때 또 틀리긴 해.(웃음) 가끔씩 케이블TV에서 하는 타이라의 슈퍼모델 뽑기(‘도전! 슈퍼모델’)인가? 그걸 보는데 거긴 배우가 아니라 모델을 뽑는 거니까 외모가 굉장히 중요하겠지. 그런데 출전하는 친구들이 애 엄마도 많더라. 우리 같은 배우는 애를 낳고 늙어가도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모델은 그런 면에 있어서 약간 불리하겠다 생각했는데 거기 나오는 외국여자들은 애가 하나 정도 있는데도 여전히 아름답고, 몸매도 좋고. 시대가 좋아서 그런지,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런지,(웃음)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더라.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이요원같은 친구는 애도 있는데 권상우랑 드라마도 하잖아. 부러워라.(웃음)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만 양산되는 까닭에 캐릭터적인 기회가 드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도 있지. 그런데 영화계에서는 그런 이야길 하고 싶어도 쓸만한 배우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에 반해 배우는 우리가 할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가 깨주겠지. 내가 깰까?(웃음)

이미 증명하는 중이라고 생각된다.(웃음) 그런데 그 동안 드라마에서 왕비로 살다가 <궁녀>때문에 신분 하락을 경험해야 했는데.(웃음)
묘했다. 누가 문 열어주면 들어갔는데, 이젠 내가 열어줘야 했으니까.(웃음)

사극이라 비슷하게 보이지만 <궁녀>는 기존에 했던 사극 드라마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실 나한테는 여러 가지 부담감이 있었다. TV드라마를 통해 사극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영화였고, 스릴러 장르인데다가, 그리고 궁녀 얘기가 주된 얘기였으니까. 감찰 상궁을 맡았으니까 고민이 많았죠. 기존에 왕비 했던 건 이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웃음)

아무래도 기존에 했던 사극들과 캐릭터적 접근 자체가 달랐을 것 같다.
어차피 그녀도 궁녀를 거쳐서 감찰 상궁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겪고 그 자리에 올랐을 테니까 그 애들을 마음속으로 충분히 이해해도 감찰해야 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양면성을 이해하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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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후배들과 함께 했다는 점도 차이를 느끼게 된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TV사극에서는 좀 연륜이 있는 선배 배우 분들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내가 드라마에서 사극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거다. 미니시리즈 같은 건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지만 사극 같은 데에는 대선배님께서 많이 계시잖아. 선배님들 밑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거든.(웃음) 사실 그래서 <궁녀>는 대부분 어린 친구들하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진짜 부담스럽더라.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도 앞서고. 하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충분히 상의하고, 논의하고, 호흡 맞춰볼 수 있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벽 같은 걸 충분히 허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거쳐서 작업을 시작하니까, 그런 면 때문에 다들(배우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가 싶더라. 사실 드라마 같은 경우는 대본 연습 때 얼굴 한 번 보고 촬영 끝날 때까지 못 보는 배우들도 있고, 가끔 부딪히는 배우들도 촬영장에서 잠깐 잠깐, 뭐 그런 식이니까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지. 그렇지만 영화는 가족 같아서 좋았다.

젊은 배우들의 기에 밀리지 않기 위한 노력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극 안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 풍기는 포스가 다들 강한 편이었으니까. 물론 그 중에서 감찰 상궁이 압권이었지만.(웃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에는 절제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관객들이 커다란 스크린을 집중력 있게 보고 있는 만큼 너무 과장되면 오버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점에 신경을 많이 썼지. 내 편견일지 모르지만 TV드라마는 약간 그런 경향이 있거든. 특히 사극에서는 조금 오버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감찰 상궁은 알듯 모를듯한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감찰 상궁이 모든 상황을 알고 저러는 건지, 몰라서 캐묻는 건지 관객들이 헷갈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재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지. 그래서 일부로 목소리 톤을 좀 낮게 깔기도 했다. TV상에서 왕비로서 권력 암투에 휘말리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땐 겉으로 표현하는 게 대수라 에너지가 있어야 하지. 뭐라고!(격양된 목소리로), 막 이렇게 소리도 지르니까.

강한 눈빛에 비해 말투는 절제된 것 같다. 게다가 사극인데 현대적인 말투를 구사하더라.
그런 부분에 신경 많이 썼지. 사극 말투를 버리려고 했는데 사실 어려웠다.(웃음)

어쨌든 15년 만에 영화 촬영 현장에 서니 어땠나?
봐서 알겠지만 <궁녀>보다 <가면>은 씬이 많지가 않다. 4회 차나 5회 차 정도밖에 촬영 분량이 없었거든. 그래서 감독님이 내 입장을 많이 배려해주셔서 내 촬영 분을 하루에 몰아서 찍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는다는 걸 충분히 아셨기 때문에 현장에서 쑥스럽고 어색해하지 않게 배려해주신 거지. 덕분에 편하게 찍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극 중에서 내가 조울증 환자 연기를 해야 하니까 조울증 환자 한번 만나서 관찰해보라는 주문도 하셨다. 그래서 진짜로 정신과 병동에 찾아가서 조울증 환자를 만나서 얘기도 나눠보고 그랬다.

사실 그 동안 캐릭터 자체로 한정되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랬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해서란 역할이 새로웠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더 집중을 요하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으니까 매력 있지.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씬은 얼마 없었지만 이해서가 충분히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촬영 중엔 감독님한테 맨날 협박했었지. 내 씬 얼마 안되니까 손대거나 자르면 그 때는 두고 보자고~. 편집할 때 찾아가서 보겠다고~. 그런데 내가 하도 그래서 그랬는지 진짜 안 자르셨더라.(웃음)

전문 장르에 출연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이해서가 직접적인 사건을 만드는 대상은 아니라도 심리적인 의혹을 형성한다는 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사실 내가 이런 연기를 그전에 즐겨봤다던가, 관심 있었다던가, 그렇진 않았다. 난 로맨틱 코미디나 해피엔딩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영화를 통해 처음 했는데 이런 작업들이 재미있더라. 그리고 나한테도 잘 맞는 거 같아.(웃음) 내가 전혀 그런 걸 몰랐지만 막상 해보니까 그런 패턴의 연기라던가, 영화가 내 감성하고 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웃음)

비중은 적지만 상당히 집중력이 요구되는 캐릭터라 피곤했을 것 같다.
좀 그랬지. 역할 자체가 환자였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돼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도 많이 했다. 사실 우울증 환자가 다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더라. 사실 좋았다가 나빴다가 이래서 그걸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전체적인 느낌이 너무 튀는 거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그냥 우울모드로 가자고 해서 그냥 그렇게 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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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감찰 상궁이 활동적이었던 반면 <가면>의 이해서는 독립적이었다.
이해서는 느낌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어떻게 보면 신비스럽지. 감독님은 초반에 이해서가 범인 같으면 성공이라고 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범인 같을까 고민했지. 물론 이제 연출적으로도 그런 느낌을 많이 살려서 찍었었고. 만약 내가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 그런 신비감도 많이 떨어졌겠지. 그래서 촬영 장소도 주로 집이었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찍었다.(웃음)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하, <완벽한 이웃>)의 정미희처럼 가벼운 역할도 생각보다 참 어울리는 것 같더라.
왜 어울리냐 하면, 내가 원래 그래! 나도 조울증인가 봐.(웃음) 난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땐 굉장히 유쾌하게 분위기를 리드하기도 하지만, 낯을 너무 가려서 불편한 자리에선 한 마디도 안 할 때도 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그런 양면성이 있는 거 같더라.

그 동안 쌓여왔던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전환시켜 줄 수 있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새로운 면을 봐서 좋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그래도 김성령이란 배우는 뭔가 우아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망가진 것 같다며 실망스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꼭 어떤 캐릭터의 작품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떤 작품이 들어왔을 때,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이 맞으면 하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못하는 것일 뿐이지.

시트콤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종종 했다.
우울한 연기를 하면 아무래도 일상적인 생활이 많이 우울하다. 그런데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 엄마가 우울해 있으면 마음에 걸리지. 그런데 시트콤을 하면 평상시에도 기분이 업될 테니까 일단 나한테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트콤을 하고 싶다고 했던 거다. 그런데 <완벽한 이웃>이 시트콤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발랄한 연기를) 했잖아. 그런데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 그것도 연기니까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거다. 사실 시트콤은 그냥 신경 안 쓰고 하는 건 줄 알았거든. 그냥 재미있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더니 그것도 그게 다가 아니더라. 그래서 이것도 어렵다는 걸 알았지. 시트콤을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다.(웃음)

사실 05년 말에 했던 연극 ‘아트’때도 비슷한 캐릭터였다.
‘아트’때문에 내가 <완벽한 이웃>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왜냐면 <완벽한 이웃>감독님이 ‘아트’ 연극을 보러 오셨다가 거기서 망가지는 연기를 보고 내가 저런 역할을 해도 괜찮겠다는 걸 머릿속에 담아두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감독님이 <완벽한 이웃>시나리오를 낼 때, 정미희는 아예 나한테 맞춰놓고 만들었단다.(웃음) 그래서 전체 캐스팅 1순위, 첫 번째였다. 그건 아예 내가 할 역할이니까 예약해놓고 그걸 준비하고 있으라고, 그래서 그걸 하게 된 거지.

연극이 기회가 된 셈인데 만약 그 전에 그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만약 그런 역할이 들어왔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거다. 사실 ‘아트’할 때도 내 역할이 그 역할이 아니었다. 처음에 나한테 그 희곡이 들어왔을 때, 난 피부과 의사 역할이었다. 늘 TV에서 하던 돈 많은 피부과 의사 역할이었는데, 내가 연극에서조차 이런 역할을 해야 하나 싶더라. 그래서 연출자하고 제작자하고 얘기했지. (조)혜련이가 문방구 주인이었고 내가 피부과 의사였는데, 우리 한번 바꿔보자, 그랬더니 혜련이도 흔쾌히 좋다고, 자기도 늘 웃기기만 했는데 연극에서는 뭔가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 그래서 역할을 싹 다 바꾼 거다. 대본연습 하던 와중에. 그랬더니 오히려 반응이 더 좋았다. 혜련이도 더 좋아했었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캐릭터를 역전시키는 재미가 컸나 보다.
상당히. 연극에서는 충분히 그런 게 가능하니까. 사실 연극도 지금 굉장히 하고 싶은데......

이번에 조재현 씨가 기획한 ‘연극열전2’에 출연 제의도 승낙했었다고 하던데.
내가 하도 대학로를 잘 나가니까 이제는 대학로 사람들이 내가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걸 안다. 내가 가끔 대학로 나가서 만나는 분들한테 연극하고 싶다고 말하면 ‘성령씨, 연극 할 수 있어요?’ 막 이러는 거다. 그리고 난 ‘그럼요. 저 연극 할 수 있어요’ 이러고. 그런 얘기가 들려 들려 조재현 선배한테까지 들어가서, ‘너 연극하고 싶으면 이번에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데 같이 참여할래?’ 그래서 ‘당연히 참여하죠!’ 그래서 참여하겠다고 약속을 한 거다. 그렇게 약속했는데 내가 지금 드라마 찍고 있고, 이런 것 때문에 작품이 결정나진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제작발표회도 참석하고 그렇게 했지만 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저 팀에 끼어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연극을 하는 게 중요하지, 굳이 지금 당장 저기에 끼는 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그런 생각도 들고. 왜냐면 이미 작품이 정해져 있고, 날짜가 정해져 있는 상황인데 연극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쨌든 고려해서 할 거다. 꼭 하긴 할 거다.

기대가 된다.
그럼 보러 오세요.(웃음)

2007년은 정말 바빠 보였다.
진짜 바빴다. <완벽한 이웃>이 2월 달에 방송 편성 예정이었다. 그런데 알겠지만 방송 편성이 계속 바뀐다. 2월 달에 들어간다는 작품이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에서 아침드라마(<걱정하지 마!>) 섭외가 들어왔고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완벽한 이웃>이 들어간다는 거다. 게다가 그 때 난 이미 <궁녀>를 찍고 있었고. <궁녀>와 미니시리즈와 일일 아침 드라마를 함께 준비했으니 삼사 개월 정도는 잠도 안 잤다고 보면 된다.

그 정도면 연기가 헷갈릴 정도 아닌가? 만약 하루에 세 촬영이 모두 들어가면 하루에 삼 인분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셈인데.(웃음)
나도 이건 큰일났다 싶었다. 그렇지만 나도 경험해보니까 알게 됐지만 사람이 닥치면 한다.(웃음) 그리고 다행인 건 캐릭터가 확실히 구분되는 덕분에 안 헷갈릴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좋았다. 너무 비슷한 역할이면 좀 그랬겠지만 확연하게 틀렸기 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때는 15년 만에 영화도 하고 미니시리즈에서 내가 좋아하는 역할이 들어왔고, 아침 드라마는 막 시작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집에서 뭐 먹냐고, 어떻게 저렇게 건강할 수가 있냐고 그러더라. 어떤 선배님도 ’너 뭐 먹니? 아직도 안 쓰러졌니?’(웃음) 이럴 정도로 난 정말 기운이 났고 더 재미있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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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했던 걸 한번에 이룬다는 것이 좋았나 보다.
물론 이제 그런 게 바람직하진 않다. 사람이 마음은 있어도 체력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으니까. 내가 삼사 개월은 버텼지만 이게 육 개월이 넘어갔다면 뭔가 문제가 있었을 거다. 그렇게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다만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힘이 났나 보다.

사실 종종 작품에서 캐릭터를 위해 배우가 소비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배역을 채우는 게 중요할 뿐, 캐릭터를 염두에 둔 캐스팅은 아닌 경우가 있다. 그런데 확실히 캐릭터의 특성을 염두에 둔 이해서같은 역할은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배우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실 최근 촬영이 들어간 <일지매>란 드라마에서 내가 이준기 엄마다.(웃음) 처음엔 내가 어떻게 이준기 엄마야. 좀 너무한데, 그랬다가 충분히 이해하겠더라. 일지매가 그렇게 되기까지 과거로부터 단이라는 역할이 이야기 속 시발점의 중심에 딱 서있다. 초반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지. 그런 역할은 상관이 없다. 그리고 지금 찍는 <대왕 세종>에서도 김상경 씨와 박상민 씨가 내 아들로 나오는 윤영준 씨랑 비슷한 또래로 나오니까, 어떻게 보면, 어머, 김상경이 내 아들? 박상민이 내 아들? 이렇게 된다.(웃음) 물론 사극이니까 그런 게 가능하겠지. <주몽>에서 오연수 씨가 송일국 씨의 어머니를 해서 룰이 약간 깨지기도 했고. 그런데 촬영장에서 커다란 세 남자들이 나 앞에 딱 서는데, 내가 엄마라니 숨이 탁 막히면서 부담스럽지.(웃음) 이런 건 한 5년 뒤에나 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아까 말한 것처럼 여러 작품을 하느라 그렇게 바빴는데 또 여러 편의 드라마를 동시에 하게 됐다.
9월 달까진 조금 정신 없이 바빴고, 10월, 11월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 12월부터는 <대왕 세종> 찍고 있고, <일지매>도 들어가고.

<뉴하트>에도 출연한다는 기사가 있던데.
<뉴하트>는 잘못된 거다. 그걸 다들 정정을 안 하네.

어쩐지 드라마 홈페이지를 가도 출연 정보를 찾아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이상했다.
물론 초반에 우리한테 제의가 있었지만 이미 드라마 두 편을 계약한 상태에서 도저히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거기에 출연한다는 기사가 이미 방송에 나갔더라. 그 뒤로 출연하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지. <뉴하트>가 반응이 좋은 건지, 어딜 가나 사람들한테 그 말을 들어서 그때마다, <뉴하트>는 아니거든요. 저 지금 다른 거 하고 있거든요.(웃음) 이렇게 맨날 얘기해야 한다. 지금 이응경 씨가 촬영하고 있는데 왜 그걸 정정하는 않는 거야. 다들 너무 게으른 거 아닌가?

나도 속았다.(웃음) 그런데 두 편의 드라마가 또 모두 사극이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 사극을 그냥 피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워낙 사극 제작이 많으니까. 그런데 사실 <일지매>는 퓨전 사극이고, <대왕 세종>은 대하드라마다. 그리고 남자들 이야기가 많다 보니까 출연은 하지만 그렇게 씬이 많지는 않다.

어쨌든 사극에 많이 출연했던 만큼 일단 사극에 출연하게 되면 부담은 덜하겠다.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지금은 사극 현장에 가면 낯설지가 않다. 옛날에 왕비였나 봐.(웃음) 어떤 작품은 시작부터 부담을 갖게 되는데 사극은 기본적으로 내가 편하다. 사극의 어떤 감성들이 나하고 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게 발판이 돼서 난 반드시 영화계에서 다시 일어서야 된다.(웃음)

시나리오도 많이 들어오지 않나?
전혀…….<궁녀>인터뷰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김성령 씨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시겠다, 이러는데 도대체 그 시나리오가 다 어디에 있을까?(웃음) 시나리오는 안 들어오던데, 왜 그럴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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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 있을 거다.
그럴까? 주변에 소문 좀 내 줘.(웃음) 심지어 내가 <대왕 세종>을 안 하려고 했었다. 영화가 들어올 것이다. 내가 시간을 빼놔야 된다. 이렇게 나 혼자 김칫국 마시면서.(웃음) <일지매>는 어차피 하기로 한 거니까 그냥 하고, 대신 드라마 두 편하면 또 영화 하기 힘드니까 시간을 빼놓으려 그랬는데 전혀 들어올 기미가 없어서 그냥 <대왕 세종>을 해야겠더라.(웃음)

그런데 이렇게 연기와 가정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자제분도 둘이나 되는데.
사실 아직은 어려서, 이번에 큰애가 초등학교 들어간다. 유치원생들은 그다지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없다. 유치원만 보내면 되니까. 이제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애들이 학교 다니면 엄마 역할도 크니까. 그래도 친정 어머니께서 집에서 도와주시고, 남편도 내가 일하는 걸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것에 있어서 그다지 부담되는 건 없다. 그리고 애들도 너무 예쁘게 잘 자라줘서.

집안에서 상당히 배려를 해주나 보다.
그런 거 없으면 자기 일하기 정말 쉽지가 않지. 여자는 어디든 그럴 거다. 요즘은 남자들도 같이 살림한다고 하지만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 난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큰 행운이지.

여전히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많이 기억되는 거 같다. 88년도에 있었던 일인데. 물론 어린 친구들은 많이 모르겠지만.
30대 초반 분들까지는 다 알겠지.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도에 미스코리아가 돼서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한 게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래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그 당시에 비해서 지금은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너무 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이지. 그때만 해도 미스코리아 대회가 나라 행사처럼 온 가족이 다 보던 행사였으니까. 사실 어제가 미스코리아 송년회 행사의 날이었는데 이젠 나보고 회장을 맡으라는 거다. 회장할 때도 됐다고 그래서 그냥 됐거든, 아니라고 그랬지.(웃음) 근데 어제 보니까 올해 미스코리아 애들도 다 왔더라. 그런데 나도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더라.

그 당시엔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방송계로 많이 진출하기도 했다. 그런 게 용이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사실 본인이 연기자가 된 것도 그런 케이스라고 본다.
정말 아주 어렸을 때, 굳이 따져서 얘길 하자면 그런 기억은 난다. 어렸을 때 토요명화가 보통 밤 열 시 열한 시에 했는데 엄마가 일찍 자라고 그러면 이불 속에서 자는 척하고 몰래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 당시에 외국 영화를 많이 했는데 뭘 안다고 앤소니 퀸 같은 외국영화배우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내 소극적인 성격상, 단 한번도 내가 연기를 한다거나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생각도 안 했지. 물론 미스코리아 역시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의 뜻인지, 미스코리아를 통해서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더라. MC든, 연기든, 미스코리아가 되면 그때 당시엔 자연스럽게 주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 미스코리아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가 없었겠지. 내 의지가 없었으니까.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런 걸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하다가 그만 둘 것이다, 더군다나 결혼을 하면 안 할 것이다, 그랬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신기하다고 그러더라.(웃음) 내가 그다지 끼는 없지만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성실하다.(웃음) 성실한 거 하나로 밀고 나가는 거 같다.

그런데 그런 소극적인 성격에 어떻게 미스코리아 대회를 나가게 된 건가? 그것도 지금보다도 보수적이었던 그 시절에.
사실 우리 어머니께서 생활력이 좀 강하시다. 그런데 내가 맨날 멍청하게 있으니까,(웃음) 어떻게 하면 뭔가 만들 수 있을까, 했던 거지. 그런데 내가 리포터 같은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아나운서 시험을 보자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 친구분 중에 그 당시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들이 의상 협찬을 많이 해 입었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 생각에 그 분을 찾아가면 어떤 연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분의 샵에 찾아 갔지. 그런데 그 분이 나를 보자마자, 너는 미스코리아야, 그 말씀을 첫 마디에 하시더라. 내가 명동까지 나가서 미용실을 다닐 형편은 아니었는데, 나 따라와, 하더니 셰리 미용실을 딱 데려간 거다. 그래서 셰리에 갔더니 원장님이 수영복을 입혀보고 오늘부터 훈련 들어가자고 하더라.(웃음) 그때 내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게 4월 28일인가가 미스 서울 예선이었는데 내가 4월 1일 날인가, 2일 날 거기 갔으니까 남들 몇 달 전부터 준비하는 대회를 20일 준비하고 나간 거다. 내가 만약 긴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으면 고민하다가 안 나갔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 정신 없이 막 하다 보니까 나가게 된 거지. 그 때 기도도 했었다. 하느님, 이게 내 길이 아니면 지금 당장 내가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그런데 그 당시에 셰리 미용실에서 출전했던 모든 후보들이 다 떨어지고 나만 붙은 거다. 그렇게 나만 단독 후보로 나갔는데 진이 된 거지. 셰리에서 첫 번째로 진이 나온 거에요. 그 전엔 다 마샬 미용실이었거든.(웃음) 그 다음부터 셰리가 줄곧 1위를 했다. 나 다음엔 오현경 씨가 됐고, 아무튼 내가 스타트였다.(웃음)

영화에서 보면 갑작스럽게 주인공의 인생이 확 달라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마치 그런 것 같다.
그 때 당시엔 여러 가지로 큰 축복을 많이 받았던 거지.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한 순간에 너무 큰 것들이 다가오니까 자만했던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내가 그러잖아. 누구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데 나는 위에서부터 내려간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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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했고, 그 뒤로 첫 데뷔작을 통해 신인상까지 휩쓸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일들이 쉽게 주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지.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 근데 이제 나이도 들고, 때로는 어떤 위기감들도 느꼈었고, 내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보니까 너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시점이 있었다. 그 시점에서 내가 뭔가 정신을 차리게 됐지. 그래서 이젠 나름대로, 많이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도 하고, 조금씩 트레이닝도 받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있다.

혹시 연기자가 아닌 가정 주부로서의 평범한 삶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나?
사실 나는 그렇게 살려고 부산으로 시집을 간 거다. 결혼하고 그냥 살림하는 것도 괜찮다고, 그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스운 거다. 내가 한참 잘 나가서 내 의지대로 일을 그만 뒀으면 미련이 없을 텐데, 대체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나를 외면하는 분위기로 가더라. 미스코리아 후광이 없어지고,(웃음) 물론 이제 나도 노력을 안 한 부분도 있지만. 그랬을 때 뭔가 이렇게 마음속으로 솟는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 이렇게 살아야 되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더 화가 나더라. 그래서 정말 이를 악물고 했던 작품이 <왕과 비>였다.

폐비 윤씨 역할을 했던?
맞다. 내가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또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그런 역할이 들어왔다.(웃음) 정말 폐비 윤씨는 무조건 열심히 했던 연기였다. 정말 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내가 지금도 그때만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그게 나한테 전환점이 됐다.

최근에 <왕과 나>에서도 폐비 윤씨가 나온다.
구혜선 씨가 하는?

본인이 했던 연기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는 것도 묘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게다가 구혜선 씨의 폐비 윤씨 캐릭터는 본인이 연기한 것과 다르게 묘사되기도 하고.
일단 연출자의 의도와 맞아야 되는 거지. 배우가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란 게 있으니까. 내가 나 혼자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나도 나름대로 그 당시에 나이 많이 드신 선배님들께서 그 전에도 폐비 윤씨의 역할은 누군가가 많이 했었지만 그 중에 네가 제일 잘 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구혜선 씨가 그렇게 하니까 새롭지. 본인 이미지에 맞게 캐릭터를 새롭게 만든 거 같다. 만약 구혜선 씨가 그 선한 얼굴로 괜히 기존의 폐비 윤씨의 이미지를 살려내려고 눈 독하게 뜨고, 말 독하게 한다면 어울렸을까? 서로 마이너스지. 감독님이 정확하게 구혜선이라는 배우한테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주신 거지. 난 그런 시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출자들은 모험하지 않고 쉽게 가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런 새로운 의도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좋은 연출자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하지만 좋은 연출자도 본인과 안 맞으면 안 된다. 좋은 배우도 자기하고 잘 맞는 연출자, 자기하고 잘 맞는 역할과 작품, 이렇게 잘 맞아 떨어졌을 때 좋은 거 같다.

경영대학원 마케팅과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1년 됐다. 이제 3학기 들어간다.

또 무슨 욕심이 생긴 건가?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그러니까. 배우는 거에 대한 욕심이 정말 계속 생긴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젊었을 때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생각해서 너무 나태했었고, 이젠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급해져서.(웃음) 난 지금도 배우고 싶은 게 많다. 승마도 배우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마케팅도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너무 즐겁게 배우고 있다.

친분 있는 배우 분들 중에서 드라마에서만 뵐 수 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런 분들 중에서도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지 않나?
당연하지. 다 하고 싶어하신다. 배우라면 난 꼭 TV만 한다, 난 꼭 영화만 한다, 이런 건 없는 거 같다. 어느 배우나 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연극도 하고 싶고, 내가 빛이 날 수 있는 자리는 어디든 다 하고 싶지. 그런데 이제 본인한테 얼마나 잘 맞는지, 내가 얼마나 잘 살수 있는지, 그런 상황적인 면들을 고려하니까 딱 아귀가 안 맞아서 그런 거지. 영화 제의도 많이 받는 연기자도 있지만 상황이 늘 맞지가 않은 경우도 있고.

어쨌든 한해 동안 참 많은 시도를 했다. 드라마를 통해 이미지 변신도 했고,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그리고 제각각 좋은 평가까지 얻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사람은 늘 감사해야 하지만 그 감사함이 어떤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내년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지. 그리고 영화는 또 왜 안 들어올까? <궁녀>가 반응 좋았다는데 왜 안 들어오는 거지?(웃음) 이런 마음도 있고. 물론 나는 천천히, 어차피 오래 할 거니까 급하게 생각 안 한다. 이러면서 집에 가서는 또 고민한다.(웃음)

지금까지 오래 기다린 만큼 좋은 일 많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또 좋은 소식 있을 거다.
봄이 되면 좋은 소식이 오려나.(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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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김강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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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잘 빠지는 편 아닌가?
놀면 금방 찐다.

예민한 성격처럼 보인다.
맞다. 예민해서 일을 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살이 금방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출연작들이 개봉됐다. 올해 초중반엔 조급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생각은 안 가졌다. 만약 내가 생각하기에 작품의 질이 떨어지거나 메리트가 없어서 개봉이 연기됐다면 불안했었을 텐데, 그런 건 없었기 때문에.

올해 개봉한 작품들은 사실 하나같이 개봉이 미뤄진 작품들이었다.
작년에 찍었거나 찍기 시작했던 영화가 다 올해 개봉을 했는데, 글쎄, 뭐 그건 내가 의도했던 것도 아니니까. (웃음) 작년부터 올해까지 영화 시장이 힘들었던 것도 있고, 그래서 개봉이 미뤄진 탓이 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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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같은 경우는 원작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있었을 거라 짐작되고, <타짜>의 흥행을 지켜본 입장에서도 어떤 예감이 있었을 법하다. 나름대로 기대될만한 작품의 개봉이 미뤄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아무래도 인지도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우리가 어떤 노력을 더한다고 해도 한편으론 부담이 있더라. 원작이 워낙 많이 팔렸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일간지에 연재까지 됐던 만화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한편으론 부담감이 생기지. 기존에 작품을 좋아했던 팬이 많은데 우리가 그에 대한 기대치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 그리고 우리가 <식객>을 찍기엔 다소 적게 느껴지는 예산을 가지고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여지는 면들이 좀 미흡하지 않을까라는 나름대로의 고민들은 있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이 됐다. 더욱 기쁜 일이 된 셈이다.
흥행하면 당연히 배우들은 기분 좋다.

앞서 올해 개봉한 두 편의 영화들이 나름의 보답을 해준 것 같다. <경의선>으로 토리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식객>은 흥행배우의 타이틀을 줬으니까.
찍을 때 마음고생을 했던 작품들이 보답해준 것 같다. 물론 흥행이나 수상 같은 건 내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어쩌면 적은 예산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할 수 있었던 영화나 저 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고.

예전에 인터뷰했던 기사에서 언제쯤 기회가 오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봤다. 올해 그 기회가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식객>에 캐스팅될 때도 난 아무것도 없었다. 메인으로 주인공을 맡았던 것도 전작인 <경의선>밖에 없었고, <가면>도 <식객>촬영 중에 캐스팅됐으니까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써줬다는 자체부터 운이 좋았던 거다. 그게 나한테 기회였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래도 지금까지 뭔가를 해왔기 때문에 내가 노력해서 잡은 기회일 수도 있겠지. 그냥 해나가는 과정 안에서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글쎄, 잘 모르겠다. 이게 그 기회인지. 물론 나를 더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기회인 건 맞는 것 같다.

데뷔작이었던 <해안선>을 비롯해서 차기작이었던 <실미도>까지 초기 출연작 두 편이 군대와 관련된 영화였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 신인배우로서 영화를 고를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두 작품이 공개 오디션이란 기회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신인 배우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영화이기에 나한테는 그나마 기회가 있는 거였다. 처음 두 작품 이후로 하게 된 드라마 <나는 달린다>도 그런 식이었다. 보통 드라마는 신인들의 공개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달린다>는 신인이건 기존 배우건 망라하고 그냥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실력으로 캐스팅하는 특별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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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되는 신분이고, 동시에 자신의 결정권이 없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원숙하게 자리잡지 못한 청년의 과도기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의선>이전까지는 위태로운 청년의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아마도 초반에 출연했던 작품들의 영향력이 아닐까 싶더라.
우연히 하게 된 <나는 달린다>의 이미지가 굉장히 독특했던 것도 있었다. 치기 어리지만 자기 의지대로 가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한. 그 이후로 <태풍 태양>도 그랬고, 그런 이미지들이 쌓여오게 되더라.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서른이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느낌이다. 물론 동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캐릭터를 통해 드러낸 이미지의 응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이를 먹어도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특히 남자배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한데, 소년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야 나이를 먹었어도 예전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모든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감정 표현을 가장 잘 한다. 그런데 교육 과정과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감정을 하나씩 없애버리게 되고 점점 나이 들면서 감정은 단순해져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느낌만큼은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캐릭터들이 청년기의 불안함이었다면 <가면>의 조경윤이 지닌 불안함은 어른의 것이었던 것 같다. 이전의 캐릭터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불안을 충돌로서 극복했지만 조경윤은 도피하려고 했으니까. 그 불안으로부터 달아나서 안주해버리려는 태도는 어른의 습성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조경윤은 지금까지의 캐릭터 중 어른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더라.
내 생각에도 <가면>이라는 영화가 나한테 주는 의미는 나에게 소년과 청년의 중간 사이에서 성년으로 뛰어넘는 과정이다 싶었다. 또한 그 역할을 하게 된 것 같았고. <식객>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까지 내 이미지에 풋풋한 모습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면>을 통해 그에 반(反)하는 이미지를 가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나 역시도 그걸 어느 정도 염두에 뒀으니까.

그 동안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표정을 토대로 연기한다는 느낌이었다면 <가면>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면>이 스릴러 장르라서 힘들었다. 일단 그렇게 느꼈다면 내겐 성공인 것 같다. 왜냐면 캐릭터 자체가 어떤 과거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지니고 있는 어떤 생각을 눈을 통해서 얘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면>이전의 영화들은 다른 상대 배역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것이었다면, 조경윤은 내 스스로의 눈으로 모든 걸 말해야 되는 캐릭터라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읽히게끔 만들어야 했다. 동시에 오히려 그걸 어느 정도 숨기기도 해야 했고. 그런 것들이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가면>의 엔딩은 출연작 중 <실미도>와 함께 가장 극단적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왜냐면 조경윤이란 캐릭터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운명에 이끌려서 그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 상황으로 다시 가서 자기 의지로 풀어버리니까. 어떻게 보면 <태풍태양>과도 비슷하게 뛰어들지만 그건 결국 도피였다. 결국 모기라는 아이는 결말을 짓지 못한 거다. 그게 바로 청춘, 청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수 있고, 내 스스로에게도. 하지만 <가면>은 다른 이상향을 찾아서 결말을 지어버린다. 이젠 자기 의지대로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는 거지. 그냥 내 개인적으로도. 물론 그것도 운명일 수 있지만 마지막에 악셀을 당기는 건 자기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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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만으로 보면 언해피엔딩이지만 인물들의 뉘앙스는 해피엔딩처럼 보였다.
둘은 행복한 거지.

어쩌면 지금까지 출연작 중 가장 절절하면서도 유일한 로맨스 영화 아니었을까?
맞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특별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는 점이다. 둘은 그렇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세상으로 떠나는 거지. 둘만 있으면 그게 남자건 여자건 뭐가 중요하겠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는데.

하지만 그게 너무 특별한 사랑이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이야기를 접했을 때도 본인에게도 어떤 당혹감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올해로 서른이니까 아직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쌓인 고정관념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금 충격 받긴 했다. 배우는 ‘내가 만일’이라는 개념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절대로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있으니까 고민하게 됐고, 그 지점에 대해서 감독님과도 제일 많이 얘기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뭐였나?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이건 새로운 소재이고 내가 연기할 새로운 꺼리가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본인을 납득시키는 과정도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더라. 남자, 여자라는 성별을 떠나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인생 단 한번의 대상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매몰차게 버리고 갔더라도 나이를 먹고 다시 우연히 만났을 때, 상황이 바뀐 것에도 불구하고 다시 끌리는 거지. 그래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운명에 따라가게 됐지만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도 결국 자기도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걸 감추려고 더 남성적인 직업인 형사를 택하게 됐고, 마초적으로 살아갔던 게 결국은 이중적인 모습인 거다. 그리고 그게 비로소 조경윤의 가면이라는 거지.

그런 과정이 본인에게 극복이었나, 포용이었나?
도전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 중에서 하나를 꺼내 부풀려놓은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가면>은 나한테, 어떤 남자도 대부분 지니지 못한 요소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도전의 대상이고, 처음에는 두려웠었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그런데 그만큼 성취감도 있었다. <식객>같은 경우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이미지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였을 뿐이지만 <가면>은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가는 거니까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 이걸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이런 두려움이 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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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이중성에 염두를 뒀을 것 같다. 이전까지의 캐릭터들은 직설적으로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에 비해 조경윤은 자신을 감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게 어른들인 거 같다. 연령이 낮은 친구들, 어린 친구들은 자신을 솔직 담백하게 드러낸다. 흔히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들만 봐도 너무 이중적이지 않나. 그건 정치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생활을 겪은 모든 성인들이 결국은 그렇게 이중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자기의 약점들을 감추려고 들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겉모습으로 드러내는 거지. 그래서 센 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약한 것처럼. 조경윤도 마찬가지다. 그도 성인인 거지. 그렇지만 본연의 순수함이 남아있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의선>의 만수는 청년에서 성인으로 가는 길목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왜냐면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기까지만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뿐이지, 그걸 생계수단으로 이용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자꾸 부딪히게 되는데 만수는 악몽을 꾸면서까지 생계 수단에 담근 발을 빼지 못한다. 결국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 그리고 난 <식객>의 성찬도 초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동안 완벽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라고 가정하고 싶다. 결국은 자기의 목표를 이룬 거고, 새롭게 꿈을 실현한 거니까. 그러나 그전의 모기는 그렇지 못했다.

조경윤은 다른 의미에서도 이중적이다. 평소엔 껄렁껄렁하게 곧잘 장난도 치다가 내면적인 혼란 속에서 진지함도 엿보이고.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모두 다 그런 면들이 있지 않나? 양아치 같은 모습도, (웃음) 진짜 한없이 진지해질 때도.

아웃사이더의 느낌이 드는 캐릭터가 많았다. 그게 어쩌면 본인의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게 내 성향인 거 같다. 주류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그런 성향. 솔직히 잘 하고 싶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이 보여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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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밖으로 드러내는 걸 많이 꺼려하나 보다.
난 남들이 내 사생활을 알거나 나에 대해서 알려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가족들한테도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얘기하지 않는다. 한 2~30년쯤 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모르거나 관심 없어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캐릭터로서 남는 거다. 물론 내가 만약 그때까지 스무 편의 영화를 했다면 스무 편의 영화를 다 본 관객은 별로 없겠지. 많아야 세네 편일 텐데, 그 영화 속의 이미지가 각자에게 남는 이미지였으면 됐다. <식객>의 성찬이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준다면 그건 배우로서 정말 해피한 삶이 될 거다.

베드씬 같은 경우도 처음이었다. 긴장되지 않던가?
긴장되지. 사람이 가장 민망한 게 자기 알몸을 보여주는 순간인데. 배우들이 연기의 일부분이라고 얘기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많이 수긍하게 됐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 베드씬이 들어간다면 그건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가면>에서 베드씬은 초반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이건 당연히 가야 하는 씬이니까 긴장은 됐지만 수긍하게 됐지.

기자시사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가면>을 검색해보면 그 베드씬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더라.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면>은 참 홍보하기 애매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 분들한테도 숨겨야 할 부분이 많고, 일반 관객에게도 공개를 감춰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건 그냥 반사적으로 다른 걸 찾게 된 상황에서 베드씬이라는 게 튀어나온 거 같다.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진 않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나름대로 본인과 잘 어울렸던 건 기존에 자신의 이미지를 특별하게 각인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게 좋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만약에 내가 대중들에게 많은 노출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고정적인 이미지가 생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배우가 관객들에게 캐릭터에 대한 이입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이 영화를 보러 온다면 날 보러 오는 관객은 소수다. 결국은 영화 속의 캐릭터를 보러 오는 건데, 내 대중적인 이미지로 인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면 그건 분명 그 배우의 책임이라고 본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면을 많이 드러내긴 싫다. 어떻게 보면 저만의 전략이지.

그런 면에 있어서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에 속한 김태희 같은 배우가 반대의 케이스로 느껴진다. CF를 통해 쌓아온 스타 이미지가 작품 내의 캐릭터적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몰입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는 거다. 그건 본인도 굉장히 속상할 거다.

사실 <가면>은 불쾌한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건 영화의 적나라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혐오감을 드러내는 시선을 배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을 인식하는 관객의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탓일 수도 있다.
어떤 사실이 분명히 있는데 모두가 그것을 소외시하고, 꺼내지 마, 덮어, 들추지 마, 하는 것이 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백년 전이나 이백년 전에 존재했던 사실이다. 예전에 발견된 오래된 화첩에도 동성애가 묘사된 그림이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신문에서 봤다. 하지만 유교 문화에서는 더더욱 터부시됐겠지. 외국은 그런 성향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이런 문제는 우리보다 어린 세대들이 봤을 땐, 별거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걸 받아들일까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이게 뭐가 세?'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더 무서운 것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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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은 현재 우리 사회가 소수의 취향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씹히기 좋은 가십거리가 분명히 된다. 게다가 성경의 기독교 사상에도 그에 대해서 죄를 치러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고, 더군다나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했던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겠지. 물론 그에 대해서는 나도 확실히 말하긴 힘들다. 외국은 지금 동성결혼을 허용하느냐, 마느냐까지 발전이 됐지만 나도 역시 대한민국 남자고, 30년이란 세월을 그 틀에서 살다 보니까 그걸 깨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데뷔 초기에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보면 자신만만한 포부가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그만큼 긴장이 돼서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니었나 싶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자신감밖에 없었던 거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거라도 없으면 나의 장점이 뭐라고 말할 게 아무 것도 없는 거다. 그러면 주문처럼 외우는 거지. 촬영이 들어가면 나는 최고다라는 주문을 외우는 거다. 그 기사를 보면서도 자신감을 되찾는 거지. 지금도 그 때 마음 그대로 똑같다. 지금 내가 연기가 나아져봤자 얼마나 나아졌겠어. 그냥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다시 도전하게 되는 거지. 그래, 할 수 있어, 이렇게. 나한테 모두 다 없는 면들이거나 있는 면들일 수도 있다. 다만 자신감이 없다면 내가 몰랐던 그런 면들을 꺼내놓지 못한다. 일종의 주문이지. 나에 대한 주문.

결국은 그것들이 자신을 위한 기록이 되는 셈이다. 마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기장 같은.
난 인터뷰는 최대한 솔직하게 하려 한다. 가끔 어떤 분들은 자신을 꾸민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사실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냥 인터뷰는 그 당시 자신의 생각이 잘 묻어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내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
그냥 대처하는 법이 늘었을 뿐이지, 항상 두렵다. 작품 할 때마다 항상 무섭고, 항상 대본이 옆에 없으면 잠을 못 잔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가야 하는 편이다. 항상 갖춰져 있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되고, 긴장해야 되고. 그래서 작품 하면 살이 쭉쭉 빠지게 된다. 그래서 살이 안 찌냐는 질문도 받게 되는 거겠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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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올해 초에 촬영 현장에서 봤을 때보다 지금은 살이 쪘다.
그때는 의도적으로 음식도 안 먹었었고, 더 예민해져 있었고. <식객>끝나고 7kg 정도를 뺐으니까.

그런 예민한 성격은 <경의선>의 만수를 많이 닮았다.
거기에 내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초 단위로 살아가면서 굉장히 괴로워하는, 그런 면이 있었지.

연출을 배우기 위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고 들었는데 결국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배우라는 삶을 굳히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4년 동안 정신 없이 연극을 하고 나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거밖에 없더라. 결국 이제 사회에 슬슬 나가야 되는데,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었던 거지. (웃음)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어쩌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 내 용돈은 내가 벌어야 될 나이가 돼버렸는데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고, 남자라면 이해되지 않을까.

용접공이나 요리사, 지하철 기관사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묘사되지 않는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인물을 종종 연기했다. 그런 분야의 연기를 위해서는 나름대로 그 직업에 대한 탐구도 선행됐어야 했을 텐데.
탐구보단 먼저 중요한 게 이해더라. 그래서 나는 어느 한 곳에 안 꽂히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어떤 걸 너무 좋아하지도 않고, 너무 싫어하지도 않고. 솔직히 난 특별한 취미도 없다. 예전엔 난 왜 그럴까 그랬는데, 이젠 오히려 그게 좋더라. 어디든 쉽게 동화할 수 있다.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도 않고, 누가 좋지도 않고, 누가 싫지도 않고. 배우는 어떤 편에 들어야 되는지, 또 어떤 직업군을 갖게 될 지 모르는 거 아닌가.

<세잎클로버>나 <야수와 미녀>같은 작품을 선택했던 건 상업적인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고 종종 피력했던 걸 봤다. 아무래도 한때 배우로서 지명도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올해는 그와 반대로 흥행 배우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어떤가?
물론 그것도 나한테 중요한 과정이었고, 그 덕분에 여러 가지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다 내 작품이니까. 모두 그 당시 내 모습이다. 다만 조급할수록 그런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는 걸 느꼈지. 그때는 그게 나한테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선택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마음가짐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

사실 초반에 출연했던 작품들이 대중에게 나름대로 어필됐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출연작이 흥행에 실패하고 캐릭터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을 것 같다.
색깔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나한테 어떤 옷이 맞는 건지, 나도 나에 대해서 몰랐으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배우를 그만 두기 전까진 계속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다. 지금에 와서 그것들이 안 맞는 옷을 입었던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또 한번 그런 과정들이 다시 반복될 것 같다. 지금 작품이 흥행됐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옷이라고 인식하는 숫자가 많은 것뿐이지, 또 다시 계속 순환될 것 같다. 그리고 난 또 계속 찾아나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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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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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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