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질렌할은 멋진 미소를 지닌 배우다. 슬픈 눈을 가진 배우다. 그리고 지금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안목을 지닌 배우다. 그는 단 한번도 안주하지 않았다. 그 경험이 비로소 그를 눈뜨게 만들었다.
“젊은 배우들은 자기 그릇에 맞는 작품을 만나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연인이라거나 순진한 역할을 벗어나 ‘바로 그 배우’가 되는 때 말이다.” <러브 & 드럭스>(2010)의 감독 에드워드 즈윅의 말처럼 어쩌면 지금 제이크 질렌할도 ‘바로 그 배우’가 되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 사이 질렌할이 출연한 작품들을 꾸준히 따라온 관객 중엔 그에게서 특별한 인상을 얻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작인 범죄액션물 <엔드 오브 왓치>(2012)를 비롯해서 SF액션물 <소스 코드>(2011), 멜로물 <러브 & 드럭스>와 판타지 어드벤처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2010), 스릴러 <브라더스>(2009)까지, 최근 그가 선택한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다. 배우에게 있어서 연기적인 경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는 작품을 통해서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다양한 영화적 장르에 머무르며 다채로운 연기적 시공간을 경험해온 셈이다.
물론 그 모든 작품이 엄지손가락을 올릴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인기 고전 어드벤처 게임을 영화화한 디즈니 픽쳐스의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질렌할의 경력 중 가장 이색적인 시공간을 제공했고,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으며 오점에 가까운 경력까지 안겼다. 두뇌마저 근육질이 된 것마냥 지능이 모자랐던 이 작품의 계약서에 질렌할이 도장을 찍은 것을 두고 세간에선 일찍이 그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코스튬을 입을 적임자로 거론됐던 과거를 언급했다. 영웅적인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는 것에 매력을 느꼈으리라 지레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질렌할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원했던 것이 히어로 코스튬이었다면 반대로 헐벗어야 하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을 리가. “개인적으론 촬영 자체가 꽤나 즐거웠다. 몸값만 흥정하는 배우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겁게 촬영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우 사이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그가 상당히 약아빠진 방식으로 경력을 관리하는 배우는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은 이안의 손으로 연출되기까지 7년 동안 표류했다. 시나리오를 받았던 숱한 배우들은 하나 같인 손사래를 쳤다. 이유는 분명했다. 남성간의 동성애 연기를 펼친다는 건 누구에게나 큰 부담이었으니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히스 레저는 결국 자신에게 전달된 이 시나리오를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 그는 훗날 말했다. “우린 에이전시나 매니저의 승낙이 필요한 수준의 배우들이 아니었고 출연을 결정하는 건 순전히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솔직히 이 배역을 맡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말해준 이가 없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란 레저 자신과 상대역을 맡은 질렌할을 말한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결과란 그들을 둘러싼 사소한 소문 따위와 대단한 명성이었다.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는 의심의 꼬리표 따윈 대수가 아니었다. 자신의 경력에 밀도를 채워줄 작품을 만날 기회가 초짜 배우에게 잦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양성애자라고 말하는 건 배우로서는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배역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 그러니 나를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었다면 혹한 재난 영화 <투모로우>(2004)가 질렌할의 대표작으로서 좀 더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질렌할은 꽤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지닌 소년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성장드라마 <옥토버 스카이>(1999)에서 열연을 펼치기도 했지만 일찍이 그가 눈길을 끌었던 건 컬트적인 창작력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도니 다코>(2001)였다. 음침하고 기괴한 전개의 끝에서 놀라운 결말을 선사하는 이 작품에서 질렌할은 정신분열적인 성향의 롤타이틀을 연기하며 뛰어난 가능성을 드러냈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질렌할이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은 <굿 걸>(2002)에서의 제니퍼 애니스톤의 대사를 빌려서 설명할만한 것들이었다. “네 입술은 여자처럼 뿌루퉁하고 눈은 항상 슬퍼 보여.” 그 슬픈 눈엔 불안과 열망이 깃들어있다. 이는 질렌할이란 배우의 평형을 유지하는 저울의 양쪽 추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유부녀와 철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굿 걸>(2002)의 홀든을 비롯해서 갑작스럽게 자라난 비밀스러운 사랑을 애틋하게 간직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잭, 아프가니스탄 참전 중에 사망했다고 전해진 형의 형수를 사랑하게 돼버린 죄책감과 절실함 사이를 방황하는 <브라더스>의 토미, 불치병에 걸린 연인과의 사랑 앞에서 번뇌하는 <러브 & 드럭스>의 제이미가 겪는 러브스토리엔 불안과 열망이 깃들어있다. 탄광촌의 편견을 이겨내고 우주를 꿈꾼 <옥토버 스카이>의 호머나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약혼녀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는 <문라이트 마일>(2002)의 조, 희대의 살인마를 추적하는 <조디악>(2007)의 암호광 로버트, 남아공 테러의 용의자와 관련된 음모 앞에서 고뇌하는 <렌디션>(2007)의 CIA요원 더글라스의 고민이나 갈등에도 불안과 열망이 깃들어있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와 애수가 깃든 눈동자는 정서적인 보색을 이룬다. 이는 결국 영화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건축한다.
질렌할의 최근작인 <소스 코드>와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장르도, 시제도, 무드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지만 저예산 제작과 질렌할의 출연이란 특징을 공유한다. 열차 폭탄테러범을 찾아내고자 8분간의 기억에 담긴 과거로 돌아가 거듭 죽음을 체험해야 하는 <소스 코드>의 콜터와 살벌하고 끔찍한 범죄의 온상인 LA의 경찰인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은 그 다른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로 인한 생을 꿈꾼다. 불안 속에서도 자신의 열망을 거듭 확인한다. 질렌할은 두 작품의 감정선을 완성하는 화룡점정과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두 작품은 배우로서 작품을 보는 질렌할의 눈썰미를 확신하게 만든다. 창의적인 SF적 발상을 멜로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착상한 <소스 코드>나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응용해서 현장감을 주입하며 이야기의 흥미를 끌어내는 <엔드 오브 왓치>는 새로운 전형이면서도 탁월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작품은 저예산의 자본으로도 장르에 어울리는 스케일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가격 대비 효과도 뛰어난 작품이다. 질렌할의 탁월한 눈썰미가 이를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질이 이를 소화해낸 것이다. “내가 어떤 배우인지, 원하는 게 뭔지, 지금처럼 확실히 깨달은 적이 없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남다른 경력을 쌓아나가던 질렌할은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찾았다. 배우로서 진정한 눈을 뜬 것이다.
지난 해 혜성처럼 등장한 캐리 멀리건은 일찍부터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한때 조바심을 냈던 것도 그만큼 열정이 뜨거웠던 탓이다. 그리고 이제 때가 왔다. 꽃이 피어 오르듯, 재능이 만개한다.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화두는 2009년 작인 <아바타>와 <허트 로커>가 벌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배우 관련 부문만큼은 두 영화의 세력 다툼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만년 여우주연상 수상 후보인 메릴 스트립과 헬렌 미렌을 제치고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한 산드라 블록은 수많은 말을 몰고 다녔다. 그리고 시상식 이전부터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던 배우가 있었다. “캐리 멀리건, 스타가 탄생했다.” 첫 주연작 <언 애듀케이션>(2009)으로 생애 첫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얻어낸 캐리 멀리건은 <타임>매거진의 헤드라인처럼 놀라운 발견이었다.
1985년생, 그러니까 이제 20대 중반을 통과한 멀리건의 이력이 시작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만과 편견>(2005)에서 키티 베넷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할 당시만 해도 멀리건은 딱히 대중의 눈길을 끄는 존재는 아니었다. <언 애듀케이션>을 연출한 론 쉐르픽의 말처럼, “그와 같은 속도로 대단히 유명해질 수 있다는 건 특이한 일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쉐르픽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인정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난 멀리건은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매니저로 근무한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세 살의 멀리건은 독일의 뒤셀도르프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도버해협을 건넌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뒤셀도르프는 전세계의 사람이 모여 드는 국제적인 공업도시였다. 그녀가 네 살에 입학한 뒤셀도르프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Dusseldorf E.V.)는 서로 다른 50개국에서 모인 천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곳은 그녀가 배우로서의 오늘에 다다르는 시작점이었다. 2년 뒤, 멀리건은 교내 연극무대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그녀의 오빠 오웬이 출연한 <왕과 나>에 참여하길 원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어렸던 그녀에게 허락된 건 코러스 석뿐이었고 어린 그녀는 화를 삼킨 채 그 자리에서 무대를 지켜봤다. 그녀는 훗날 고백했다. “그게 내가 연기를 원하게 된 전부였다.”
여섯 살짜리 꼬마의 다짐이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필요했다. 후에 다시 가족과 함께 런던의 하이드 파크로 돌아온 멀리건은 자녀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하길 원했던 부모의 뜻에 따라 영국의 명문 가톨릭 여자사립학교인 올딩엄 스쿨(Woldingham School)에 입학한다. 호텔 매니저로서, 대학 강사로서, 바쁜 일상을 보낸 탓에 멀리건의 일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부모에게 기숙사 제도를 지닌 이 학교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비비안 리나 모린 오하라와 같은 여배우를 배출하기도 한 이 학교에는 훌륭한 드라마 부서가 있었고 멀리건은 이를 통해 배우로서의 자양분을 마음껏 쌓아나갔다. 다른 수업을 무시하듯 오로지 연기에 몰두해 나간 그녀는 <크루서블>이나 <스위트 채러티> 등과 같은 고전 연극 무대에서도 점차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멀리건을 지도한 주디스 브라운(Judith Brown)은 그녀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그녀는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을 뿐만 아니라 옳은 기질과 성공을 향한 투지도 지니고 있었다.”
멀리건의 부모는 그녀가 명문대에 진학해서 학구적인 직업을 얻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연기자로서의 미래를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성공이 멀지 않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연기 전공을 꿈꾸던 그녀는 부모 몰래 선술집에서 돈을 벌며 연기 전공이 가능한 대학에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세 번의 불합격 통보였다. 그리고 더욱 암담한 것은 그런 그녀의 비밀을 어머니가 알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간절한 희망이 묘비에 새겨진 유언처럼 허망해지듯 그녀에게는 절망스러운 사건이었다.
올딩햄 재학시절, 멀리건은 로버트 알트만이 연출한 <고스포드 파크>(2001)의 각본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줄리안 펠로위스와 점심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여교장이었던 다이애나 버논의 친구였던 그는 멀리건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가 쏟아내는 대단한 연기적 열의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식사 후, 버논을 통해 냉담한 충고를 전했다. 내용인즉, 은행원과 결혼이나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멀리건과 펠로위즈와의 만남은 악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멀리건은 버논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버논은 다시 한번 펠로위즈에게 그녀의 진심을 전달했다. 결국 펠로위즈의 가족식사에 초대받은 멀리건은 자신의 열정을 다시 한번 토로했다. 이는 헛되지 않았다. 펠로위즈의 부인인 레이디 엠마는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오만과 편견>의 제작 소식을 듣게 된 그녀는 제작진에게 멀리건을 소개했다. 조 라이트는 멀리건에 대한 첫인상을 이처럼 말한다. “그녀가 왔고, 훌륭한 캐스팅 멤버였기에 우리는 그녀에게 자리를 내줬다.” 멀리건의 오랜 집념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출연을 확정 지은 멀리건은 로얄 코트 극단에 입단하며 무대 데뷔를 이루고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며 연기에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마련해 나갔다. 같은 해, BBC에서 TV시리즈로 제작한 찰스 디킨스 원작의 <황폐한 집>에 캐스팅될 때까지도 무대에서 거듭 연기를 이어나갔다.
“19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진짜 적절한 관계를 얻지 못했다. 루저 중의 하나였다고 할까.”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는 그녀가 이 캐스팅을 통해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이해해줄 ‘관계’의 성립에 고무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재능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와중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작은 역할을 거듭하던 그녀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더 그레이티스트>(2009)의 출연을 통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다고 기억될만한 기회를 얻게 된다. <언 애듀케이션>의 출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제작자와 세 번에 걸친 만남의 시작이 바로 그 선댄스영화제였던 것이다. 결과는 이미 모두가 아는 바대로 성공적이었다. ‘오드리 햅번’에 비유된 그녀의 주가는 올라갈 차례만 남겨두고 있었다. 같은 해 제작됐던 <브라더스>와 <퍼블릭 에너미>에서 작은 역할로 모습을 드러냈던 그녀는 ‘브리티쉬 인베이전’이라 불릴만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거치며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와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는 멀리건의 새로운 입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특히 데뷔작 <오만과 편견>에서 주연을 맡았던 키이라 나이틀리와 또 한번 함께 출연한 <네버 렛 미 고>는 불과 5년 사이, 멀리건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증명하는 대조군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그녀가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놀라운 직업을 얻었고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이는 매우 멋진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즉시 그 느낌에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그녀에게 연기란 인생을 걸고 추구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녀는 새롭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재능이 만개할 그 순간을 인내했다. 바로 지금, 그녀가 꽃을 피우고 있다. 재능이 여전히 만개하는 중이다.
<브라더스>(2009)에서 두아이의 엄마로 등장하는 나탈리 포트만은 그녀의 과거를 되새기게 만든다. 포트만은 데뷔작 <레옹>(1994)을 통해 불과 13세의 나이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뒤, 다양한 가능성을 수집하며 ‘원 히트 원더’의 아역배우로 잊혀지지 않았다. <스타워즈> 프리퀄 트릴로지를 비롯해서 <콜드 마운틴>(2003)이나 <클로저>(2004) 등의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 가운데 하버드대까지 진학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심지어 지난해 개봉된 옴니버스 <뉴욕, 아이 러브 유>(2009)에서는 직접 메가폰을 잡으며 연출 경력마저 더했다. 셀레브리티의 허상에 도취되지 않고 단단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진보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파격적인 언변을 서슴지 않으며 세간을 놀라게 한다. 흔들리지 않는 커리어 여왕의 자신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녀의 욕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제는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똑똑하면서도, 운동까지 잘하는 형 샘(토비 맥과이어)은 어려서부터 집 안팎으로 자자한 칭찬을 받아왔다. 하지만 동생 타미(제이크 질렌홀)은 어려서부터 소문난 사고뭉치였다. 아버지는 이런 동생이 못미더웠고, 타미 역시 그런 아버지의 시선이 못마땅했기에 더욱 엇나가곤 했다. 성인이 되서도 형제의 삶은 엇갈렸다.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하고,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영웅 대접을 받는 샘의 현재와 달리 타미는 변변한 직업 없이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는 신세다.
하지만 형제의 우애는 어긋나지 않았다. 샘은 언제나 넓은 마음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타미 역시 그런 형에게 기대며 형제애를 지켜왔다. 타미가 가석방되는 날, 샘은 마중을 나가고 오랜만에 형제는 상봉한다. 하지만 형제는 다시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 샘은 곧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떠날 예정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였다. 샘의 송별과 타미의 환영을 위해 단란하게 식탁에 모였다. 하지만 식탁 위로 불화의 공기가 새어나온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못마땅한 핀잔을 던지고 동생은 이에 울분을 표한다.
<브라더스>는 제목 그대로 어떤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폭넓은 시야를 품고 있다. <브라더스>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자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든든한 가장이자 아들이며 모범적인 시민이었던 샘은 아프가니스탄 파병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끔찍한 경험을 겪어 나간다. 그 사이 샘이 비운 집안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들고 샘의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는 깊은 상실 속에서 형의 공백을 채우듯 자신의 집안에 헌신을 다하는 타미와 은연 중에 모종의 감정을 공유한다. 하지만 서로의 현실적 관계를 직시한 두 사람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내면의 갈등 속에서도 본능적인 이끌림을 무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과 가족은 또 한번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짐 세리단은 일찍이 <나의 왼발>과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통해 갈등과 위기에 놓인 가족들의 치유와 구성원의 성장을 그려냈다. <나의 왼발>이 정통적인 가족애에 관한 드라마라면 실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개인과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사회적 부조리에 맞서는 가족주의적 연대를 그린다. <브라더스>는 가족이라는 형태에 대한 물음과 함께 체제적 폭력에 노출된 가족의 갈등이 결과적으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를 드러내는 처방과 같다. 상반된 성격을 지닌 형제의 대비적인 삶은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의 평가로 이어지지만 동생을 아끼는 형과 형을 믿는 동생은 타인의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애를 흔드는 건 바로 전쟁이다.
<브라더스>는 가족주의로 미장된 반전주의 드라마에 가깝다. 형제의 깊은 우애를 흔드는 건 그들을 둘러싼 현실이 아닌, 그 현실 밖에 놓인 전쟁이다. 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파국적인 현실 한가운데 내던져지는 동안,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통보된 비극적 슬픔을 돈독한 연대로서 극복해낸다. 전장과 가정을 오가는 카메라는 두 환경의 대비를 통해 예고된 갈등에 예열을 가하는 동시에 고발적인 시선을 관객에게 주입해 나간다. 건강한 남자가 지독한 폭력의 중심에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살피고, 결국 그 파괴된 본성이 가정에 이입되며 벌어지는 일련의 파국을 통해 가정의 근간을 흔드는 체제의 부조리를 묘사한다. 전쟁의 폐해가 평온한 가정을 뒤흔드는 과정을 살핀다. 이는 현재 전세계의 전장 위로 두 발을 딛게 된 미군 청년들의 현실을 되새기게 만드는 현실적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체제의 야심이 가정이라는 작은 집단에까지 깊은 상흔을 남김을 보여줌으로서 개인과 사회라는 관계의 함수 안에 매몰된 개인들의 의식적 각성을 유도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을 경험한 사내의 파괴는 곧 가족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사회적 피해로 발전한다. 하지만 <브라더스>는 결국 그것을 치유하는 것 역시 가족이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정의 외벽에 놓인 부조리가 가족을 위협할 때, 그것을 이겨내는 건 결국 가족의 몫이다. 이는 가족의 의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닌, 그 부조리의 악순환을 고발하는 역설과도 같다. 짐 셰리단은 누가 가족의 요람을 흔드는가, 라는 질문 앞에 <브라더스>를 통해 진중하게 답변하고 있다. <브라더스>는 갈등의 양상을 첨예하게 연출하며 깊은 서스펜스를 이끌어내고 이를 연민의 페이소스로 승화시킨 뒤 묵직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미묘하게 흔들리다 이내 진동하던 관계는 결국 가족의, 형제의 이름으로 표하는 연민과 애정을 통해 잠잠해진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높은 기여도를 자랑하는 대목이다. 특히 토비 맥과이어는 <브라더스>를 통해 전례 없는 깊이와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