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작가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안다. 나는 그를 격하게 아낀다. 그의 작품을 아낀다. 그가 이 세상에 빛과 소금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장담하고 확신한다. 그가 트위터에서 올린 글은 실망스러웠다. 본질적으로 그가 구사한 언어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언어에는 정확히 구사돼야 할 자리가 있고, 상황이 있다. 그게 아니었다.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실수라는 말로 그런 상황을 온전히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실수는 최규석 작가가 앞으로도 쭉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사과를 했건, 그 사과가 명문이건 간에 그렇다.
최규석 작가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 왜냐면 나는 그 사과를 받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규석 작가가 왜 나한테 사과를 하냐. 그는 내게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너는 왜 화를 내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내가 그를 아꼈기 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그를 아끼라고 하였더냐, 라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이 나로 하여금 그를 아끼게 만들었다고 답하련다. 그렇다. 나는 그의 작품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는 실수를 그가 스스로 저질렀다는 게 화가 났다. 그의 실수 혹은 오류를 빌미로 그를 땅에 묻고 이 세상으로부터 꺼지게끔 하려는 게 아니다. 그의 사과는 적절했고,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용서할 자격이 없다. 그가 구사한 언어의 피해자는 K 대학교에 다닌다는 32마리의 싸가지 없는 어린 수컷놈들이 싸질러 놓은 거지 발싸개 같은 음담패셜의 대상인 여자들일 것이다. 직접적인 대상이 누구였건 간에 그런 패악질을 잔뜩 퍼질러놓은 단톡방을 두고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내포한 두둔을 한 건 정말 어리석은 패착이었다. 그건 오만이었다. 내가 뱉은 말은 공정하고 확고하다는 자아의 믿음에서 비롯된 오만한 발언이었다. 폭투에 가까운 실언이었다. 다행인 건 스스로가 그걸 빨리 깨달았고, 빨리 사과했으며 빨리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과를 높이 산다. 그러니 나는 당분간 그의 사과 이후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최규석의 작품들은 그가 결코 어리석고 패악적인 인물이 아닐 것임을 여전히 믿게 만든다. 최소한 나에겐 그 정도 믿음이 있고, 여전히 그의 작품을 지지하며 앞으로도 그의 작품이 계속되길 염원할 것이다. 고로 그의 사과에 열광하는 무리들의 멱살을 잡고 밀어내고 싶다. 지금은 최규석작가의 사과에 열광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나가는 것을 뒤따라가주는 것이 예의다. 그럼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버리려는 무리들로부터 그를 지키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끝까지 걸어나갈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부디 이번 일이 최규석 작가의 경력을 보다 단단하게 매만질 수 있는 경험이 되길 기원한다. 나는 그의 잘못을 잊지 않고 그의 작품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그것이 진짜 그를 지지하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사실 애기 가지려고 쉬고 있었다. 그래서 살도 쪘고, 여러모로 홍보하기 적절한 시기는 아닌데 홍보하러 다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웃음)
아무래도 <날아라 펭귄>이 인권위 영화인 덕분에 인터뷰 중에 영화 외적인 질문이 많았을 것 같다.
내가 사교육 열풍에 관련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혜안이나 결론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사견에 불과하지 않나. 내게 어떤 집행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담이야 나눌 수 있지만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대답하기 버겁다. 엄마로서 어떻게 자식을 교육할 거냐, 물으시는데 사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지금 낳아본 적도 없고, 일단 그냥 엄마나 됐으면 좋겠는데. (웃음) 계속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 나도 내가 아직 어떤 엄마가 될진 모르겠다. 대충 넘기듯 대답하고 있긴 한데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인 거 같다. 워낙 큰 문제이기도 하고, 내가 아직 현실로서 맞닥뜨린 부분도 아니니까.
어쩌면 <날아라 펭귄>을 통해 간접경험을 얻었다고 봐도 되겠다.
그렇지. 처음 들어본 단어가 많았다. ‘선행학습’.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선행학습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는 엄마들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태글리쉬’ 이런 용어도 처음 들어봤고. 정말 아빠 말대로 민족의 혼이 담긴 우리나라 운동을 왜 영어로 가르치니? (웃음)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물론 <날아라 펭귄>이 굉장히 새로운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고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라서 많이 공감하면서 찍을 수 있었다.
아이를 낳는 건 최근에 와서 결심한 문제인가?
그 전엔 일을 하면서 출산까지 겹치는 것이 버거울 거 같아서 피했는데 요즘엔 낳아봐야겠다 싶어지더라. 그래서 남편한테 “낳을까요?” 물으니까, “예. 낳읍시다.” 해서 결정했다. (웃음)
아무래도 예정에 없던 작품을 한 셈인데.
계획했던 작품은 아니었지. 드라마 하는 와중에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캐스팅도 안되고, 제작비도 없는 상황이라 같이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게 됐다. 주말 드라마는 일주일에 5일 정도 촬영하고 이틀 정도 쉬니까 그때마다 가서 촬영했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었나?
있었지만, 사실 드라마에서 내 분량이 조금 적어서. (웃음) 무엇보다 마음의 부담이 없었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었다. 그냥 연기하기 전에 약간의 긴장감이나 의심들이 조금 있었지만 내게 압박을 줄 만큼은 아니었지. 오히려 현장이 즐거워서 가고 싶고, 가면 편안했다. 촬영 준비할 때 옆방에서 쪽잠을 자더라도 재미있고 그랬다.
<날아라 펭귄>은 사실 옴니버스적 형태에 가까운 영화다. 결국 주부이자 직장인으로서 가정과 회사를 배경으로 한 두 가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셈인데 그 두 환경은 본인에게 생소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회식 문화를 겪어본 적이 없다. 영화 현장에도 어른들이 있지만 직장의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아니니까,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할 순 없었다. 게다가 영화 하는 여자들은 담배도 많이 피니까 회의할 때 보면 위 아래 막론하고 다 꺼내 물잖아. 부장님 있다고 담배 못 피우고 이런 거 없지. 그래서 그런 모습이 생소하긴 했다. 그래도 배우들이 전부 돈도 받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모여서 그랬는지 찍을 때마다 분위기가 좋았다.
에피소드가 변하면서 주연에서 조연으로 비중이 이동된다.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 와중에서도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엔 감독님께서 조금 걱정하셨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유명한 사람이 조연 캐릭터로 나오니까 관객 입장에선 뭔가 해주길 바랄 수도 있고, 앞선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연결돼야 할 텐데 완전히 분리된 환경에서 캐릭터를 어떻게 연결시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시는 것 같더라. 그런데 좋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 같다. “요즘 애들은 진짜 용감하다.”, “과장님, 한잔 하세요.” 이런 대사들이 원래 대본에 있었던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커트하면서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게 나오더라. 물 흐르듯이 분위기가 흘러가서 재미있었다. 게다가 누구 하나가 애드립을 쳐도 거슬리지 않았다. 자기 캐릭터에 맞게 적재적소에서 소박한 애드립을 치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균형을 깨뜨린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고맙더라.
아무래도 그런 애드립을 잘 받아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을 것 같다.
누구라도 이 작품에 좋은 걸 해야겠다 싶었을 거다. 그러니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상황을 연출하려 했을 테고. 사실 개인적인 분량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으로 나오는 애드립은 다 알거든. 전체 흐름을 깨니까. 다들 진짜 직장 동료들처럼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매번 상을 잘 차려주는데 궁합이 잘 맞아야지. (웃음) 우리가 개런티는 못 받아도 밥상은 잘 받는다면서 항상 즐겁게 촬영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어깃장 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최근에 홍상수 감독님의 <하하하>에도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고 들었는데.
전부 감사패만 받았다. 물론 통영에서 촬영할 때 숙박이나 숙식은 제공해줬지. 그거 말고는 받은 건 없었다. 돈이 너무 없으셔서 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웃음)
작품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은데.
홍상수 감독님에겐 영화를 만드는 자신만의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 작품에 대한 신뢰도 신뢰지만 그런 독창적인 시스템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작품 자체가 <하하하>잖아. 한 여름의 흥겨움 같은 거랄까. 그런 기분으로 한 달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물론 슛 들어가니 술도 세게 먹어야 했고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사실 홍상수 감독님 영화가 겉보기엔 가볍게 찍은 것 같지만 상당히 계산적이고 집요하게 촬영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아침마다 대본을 주신다. 물론 그게 미루고 미루다가 방송 전날 주는 드라마 쪽대본 같은 건 아니고. 이건 매일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거니까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아침마다 쓰시는 건데 매일 하나씩 받을 때마다 너무 놀랍다. 앞뒤의 엮임, 짜임, 구성, 뒤깎기, 이런 것들이 너무 절묘하다. 그래서 지금 대사 하나를 다르게 하고 싶다가도 다음에 이게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연결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감독님이 써준 대사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오고 그 상황 속 행동들에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다. 카펫 짜는 거 보면 그냥 착착착 짜는 거 같지만 정교한 그림이 나오잖아. 그런 느낌이다. 마치 슥슥 찍는 거 같은데 그 안에 짜여짐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하지.
예전에 김태우 씨와 유준상 씨를 인터뷰했는데 비슷한 말을 하더라. 아침마다 대본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설렌다. 뭐가 나올까, 이러다가 딱 나오면 제일 먼저 받아가지고 정말 푹 빠질 정도로 반해서 그걸 싹 빨아들이고 싶어진다. 그날 그날 재미가 있다.
마치 재미있는 연재소설 다음 편을 기다리는 기분일 거 같다. <날아라 펭귄>도 이야기가 재미있더라. 인권위에서 만든 영화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봐도 재미있어 할까 걱정되더라. 너무 여러 인물이 나오고 클라이막스가 확실한 것도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시사 반응이 좋은 거 같다. VIP시사 때는 아무래도 다 영화에 애정을 갖고 오신 분들이 오시니까 호의적일 수 있지만 뒤풀이에서 새벽 2시 반까지 얘기가 끊이지 않는 거다. 집안 얘기는 하지 않던 사람들도 자기 자식 얘기, 부모 얘기, 요즘 교육문제 얘기, 이런 이야기로 자리가 파할 줄 모르더라. 사실 뒤풀이 분위기를 보면 그 영화를 점칠 수 있는데 분위기가 참 좋더라. 그래서 약간 헷갈린다. 이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나, 이 분위기로 보면 되게 재미있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하나 이상씩 공감할만한 지점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에 임 감독님한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여자들이 전부 다 드세냐고 했다던데. (웃음) 남자들이 다 안쓰러울 정도로.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감독님은 지금까지 영화에서 항상 남자 편이었잖아요.” 막 이랬다. (웃음) 옛날에는 남자다움이 한 가지 모습이었다면 요즘 남자들은 돈만 벌어와선 안되고 다양한 걸 요구 받고 그만큼 다양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남자들도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 교육이나 이런 측면에 대해서는 대부분 엄마들의 파워가 센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엄마들이 문제야.” 라는 대사를 할 때 재미있었다.
자기가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우리는 누구나 인권문제에 있어서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내가 나도 모르게 어떤 사람의 인권을 침해한 적 있고, 내가 침해당하고도 모를 수 있는 거다. 사실 조금만 신경 쓰고 배려하면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부분인데 그걸 못하다 보니까 집단적으로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악착같이 그려지지만 사실 아이만큼이나 엄마의 삶도 고단하다.
엄마도 자기의 다른 모든 것들을 접고 아이에게 올인하는 거니까. 그래서 부부의 인권도 이야기를 만들어서 넣어야 된다는 말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자기랑 방에 들어가서 자자 그러는데 와이프는 계속 애만 잡고 늘어지고, 둘째를 낳자는데 둘째 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하냐면서 아내가 남편과 잠자리를 거부한다던가, 이런 부부의 인권문제도 넣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러자니 얘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줄였지.
요즘처럼 육아가 힘든 일이 된 시절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애를 낳기로 결심한 마당에 두렵진 않나? 정말 어려운 일 같다.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낳아보는 거지, 그런 생각 다하면 못 낳을 거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결혼으로 환경이 좀 변하더라도 서로 잘 맞춰서 배려하면 기존의 자신을 많이 바꾸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는 건 기존의 나를 엄청나게 바꿔야 되는 일이다.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환경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변화 없인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을 것 같다.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고,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친구분이나 지인들 가운데 엄마가 된 사람도 많을 텐데.
많지. 친구들, 선배들.
그런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종종 괴리되는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나?
엄마들끼린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서 밤이 새도록 얘기한다. 정보를 주고 받고, 받아 적고, 그리고 또 한참 또 얘기하고, 자기 자식 한탄하다가, 공교육 환경 욕하기도 하고. 난 그런 대화에 끼지 못하고 그냥 옆에서 맥주나 마시거나 안주나 만들어주고 그랬지. 그런데 나 역시도 많이 들어왔던 부분이라 그런 걸 무시할 순 없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일이겠지만 자식을 어떻게 기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나마 해본 적은 없나?
자세히는 안 해봤다. 그냥 음악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아니면 너무 경쟁관계에 매달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 만약 아빠 닮으면 음악 좋아하고 엄마 닮으면 책 좋아하겠지. 우리 둘 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1등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니까 아이도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 이 정도만.
막상 아이를 기르다 보면 욕심이 커질 수도 있을 텐데.
막상 닥쳐보면 모르는 거니까. (웃음)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 많은 상의를 한 건가?
이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낳는 게 잘하는 짓이냐, 이런 얘기부터 시작해서 몇 명을 낳을 것인지도 생각했다. 유명한 사람의 아이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부담주진 않을까 싶어서 아이한테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불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
아이를 낳고 배우로서의 활동에 제한이 생길 수도 있다.
이미 워낙 제한이 많았기 때문에. (웃음) 애 낳기 전에 이미 애 엄마 역할도 많이 했고, 여러 가지를 했기 때문에 하기 나름이지, 뭐.
멜로영화 주인공으로서 기회도 확연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사실 나한테 로맨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되는 정통 멜로도 별로 없었잖아. 그런데 이젠 좀 해보고 싶더라. 예전엔 욕심도 없었다. 그런 작품보단 다른 작품이 좋았고. 그런데 이제는 사랑을 알 거 같기도 하고, 물론 완전히 아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하던 20대 초반의 설레고 앞뒤 모르는 사랑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 같다. 이젠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가슴 아파하는 그런 표현들을 할 수 있겠다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으로 1년은 쉬려고 하니까 모르겠네. (웃음)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30대 중반이 되니까 멜로가 생각이 난다.
성숙한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을 꿈꾸나 보다.
사랑에도 깊이가 있겠지. 사랑은 늘 철없는 거고, 늘 이기적인 거라지만 이렇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사랑?
결혼은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줬다고 생각하나?
글쎄, 사실 결혼하고도 계속 일을 했고, 내가 살던 환경에서 계속 살게 됐으니까 그렇게 큰 변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도 결혼 안 한다 그래서 최대한 변화 없게 했나? (웃음) 물론 이런 생각은 든다. 결혼하고 나서 아직까진 웃는 시간이 더 많았고, 다른 사람들도 내가 더 부드러워진 거 같다고 얘기하는 거 보면 결혼하길 잘됐네 싶어진다. 그리고 노인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노인문제?
시어머니를 모시는데 시어머니 연배가 80세가 넘으셔서 나한테는 할머니나 다름없다. 그런데 노인문제는 정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거 같더라.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인데 너무 개인적으로만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더라. 육아나 교육도 그렇듯이 노인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사안들마저 개인들에게 떠맡겨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이런 생각도 해봤는데, 나라에서 시립, 공립유치원 많이 만들잖아. 유치원을 만들 때 법적으로 노인시설도 같이 만들게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허가를 안 내주는 거지. 아침에 애들이 유치원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버스 타고 갔다가 오후에 같이 오는 거다. 프로그램 따로 하더라도 밥은 같이 먹고. 그럼 애들이 뭘 먹는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볼 수 있고, 애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충분히 볼 수도 있을 테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그 영화 뭐였더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 애니메이션?
<벼랑 위의 포뇨>?
거기 보면 양로원이랑 유치원이 같이 있는 시설이 나온다. 그걸 보고 ‘내가 생각하던 게 저건데! 저런 게 정말 만화에 나오다니 일본은 저런가?’ 생각했다.
교육학과를 전공했다.
맞다. 그런데 교육학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웃음) 내 손으로 레포트를 써본 적도 별로 없고.
교육학 전공자가 연기를 하게 된 경위가 궁금한데.
다들 의아해한다. ‘사카모토 준지’라고, <KT>라는 영화를 만든 일본 감독을 만난 적 있는데 그 분도 교육학과 출신이라더라. 그 분도 교육학과 출신을 영화계에서 만나기가 어렵다면서 놀라던 게 기억난다. (웃음) 사범대 나온 사람만의 특징이 있는데 처음부터 교사가 되려고 마음먹고 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제도에 순응을 잘한다. 도덕, 법률, 규범을 어기는 사람도 별로 없고 성향적으로 착하다. 그래서 MT같은 데 가서도 놀아도 밀가루에 찹쌀떡 넣어서 빼먹고, 2인 3각 게임 경기하고, 이러고 논다. 덕분에 문과대나 다른 과 사람들이 보면 우릴 애 취급하면서 되게 비웃고. (웃음) 분위기가 좀 다르긴 하지. 그런데 나는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이며 국악반이며 하는 게 많았다. 다른 공부들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까 대학생활에서 그런 게 주가 됐고, 교육학이 부가 됐지.
만약 전공대로 직업을 선택했다면 <날아라 펭귄>에 나오는 회식 문화를 경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을 텐데.
학교 회식도 만만치 않다더라. 거기도 나이별로 쫙 이렇게, (웃음)
<태왕사신기>로 드라마 데뷔를 했는데 당시 연기적 논란이 많았다. 사실 지금까지 작품 활동하면서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당황스럽지 않았나?
그때는 뭐, 경황이 없었지. 현장 자체도 경황이 없었고. 매일 대본도 바뀌고,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고, 그래도 온에어(on air)는 100% 이뤄져야 하니까 촬영은 해야 됐고, 그렇게 쉼 없이 넘어갔다. 후반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까지 같이 작업하느라 바빴지. 사실 <태왕사신기>현장은 보통의 드라마 현장이나 영화 현장과도 달리 좀 특별했다. 박상원 선생님 말에 따르자면 제3의 현장이랄까. “네가 지금 드라마를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 말 듣고 나니까 ‘난 드라마를 해보려고 한 건데 억울하네’ 생각되더라. (웃음)
<내 인생의 황금기>를 통해 다시 한번 브라운관 연기에 도전했다. 끝까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적응할 때까지 해볼 거다. (웃음) 아직 내가 좋아하는 작품, 나랑 잘 맞는 작품을 못 만났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내 인생의 황금기>때 감독님이 나한테 그러시더라. 남들 드라마 30년 하면서 겪을만한 안 좋을 일들을 어떻게 드라마 두 편에서 다 겪어보냐고. 이럴 정도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거니까 이렇게 겪다 보면 나중에 좋은 날 오겠지. 아마 또 하게 될 거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작품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사실 정보를 많이 안 주거든. 늘 바뀔 수 있는, 제대로 되지 않은 정보만 주고. 그래서 내가 미리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을 수 있는, 마음 붙이려고 뒤늦게 노력하지 않고 시작부터 애정을 듬뿍 갖고 시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드라마 현장에서 얻은 신선한 자극은 없었나.
있었지. 신선한 자극이라기 보단 약이 되는 부분이랄까.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면서 도와주시기도 했고, 가르쳐주시기도 했고. 덕분에 선생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6개월 동안 일주일에 5일씩 어떤 작품에 출근하듯이 레이스 하나를 끝냈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나한테는 큰 경험이었다.
연기 잘한다는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왔는데, 항상 상대배우의 연기를 눙치듯 연기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느 영화 메이킹에서 보니까, ‘모건 프리만’이 그랬던가? 연기의 본질은 리액션이라고. 내 연기는 상대 배우에 따라서 편차가 큰 거 같다. 이건 상대방 탓은 아니고, 내가 상대방을 많이 탄다고 해야 될까? 만약 10번 슛을 들어간다고 하면 그때마다 상대방의 연기가 변하지 않아도 내 리액션은 계속 변할 거다. 감독님들도 나한테 그런 얘기 정말 많이 한다. 내 샷이 아니어도 변할 때가 있다고.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내 분량을 따먹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한다. 맥을 놔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게 내 단점이다.
그만큼 상대의 기운에 따라 어떤 능동성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되는 면도 있지 않을까.
그 기운에 굉장히 좌지우지되는 거 같다. 조금 덜 그래도 될 거 같은데, 그걸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거기까진 기술이 없나 보다.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
사실 남들보단 당사자니까 민감하게 느껴지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연기파 배우라고 인정받지 않나. (웃음)
누가 그러더라. 연기파 배우 그게 얼마나 웃긴 말이냐고. 요리파 주방장? 이런 말과 똑같다고. (웃음) 주방장은 당연히 요리를 해야 되는 거고, 배우는 당연히 연기를 해야 되는 거잖아. 연기파 배우란 말이 그만큼 웃긴 말이라고 누가 써놓은 글을 보면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그만큼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10년 정도 매년마다 한 작품 이상씩은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애를 낳고 나면 지금보단 자중하게 될 공산이 크겠다.
쉬면서 한번 앞으로의 10년도 한번 생각해봐야지. 대학졸업하고 스물여섯에 시작해서 한 10년 했으니까 서른 여섯부터는 다시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걸 계속 할건지 말 건지도 생각해보고, (웃음) 계속하면 어떻게 할건지 고민해보고.
지난 시절을 자주 돌이켜보나?
많이 돌이켜보진 않는데 그런다 해도 정말 좋은 기회가 많았으니까 아쉬움이 남거나 그렇진 않을 거 같다. 별다른 욕심은 없다.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좋은 작품 한편 하면 그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하고, 후반 작업하고, 홍보하고, 개봉하는 몇 달 동안 계속 그 작품의 영향을 받는다. 작품 자체나 그 작품을 함께 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나중에 또 어디서 상영이 돼서 누군가 그 영화를 보면 피드백도 많이 오게 된다. 아무리 큰 상을 받아도 순간이다. 즐거운 것도 순간이다. 그런데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 작품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게 진짜 소중한 거 같다.
연기자로서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뒤늦게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 대한 변화를 느낄 때가 있나?
옛날엔 이렇게 생각했다. 프리(프로덕션) 때 준비하고, 슛 가면 연기하고, 홍보 끝나면 쉬어야 된다고. 그런데 그게 아닌 거 같다. 난 촬영할 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하니까 그때 제대로 노는 거고, 촬영하지 않을 때 일해야 되는 거 같더라. 준비하는 일. 좋은 작품을 만나기까지 준비를 게을리 하면 안되겠단 생각이 이제서야 좀 든다. 그 전에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나 모르겠다. 무조건 쉬어야 되고, 심지어 제발 날 그냥 방치해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긴 작품을 하면서 나를 너무 괴롭혔으니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촬영할 때가 진짜 재미있게 노는 순간이란 걸 알았고, 더 재미있게 놀 순 없겠더라. 그러니까 이젠 그 사이에 열심히 준비하고, 준비가 됐을 때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제 당분간은 아이 생각만 해야 할 텐데, 아이는 딸이 좋겠나, 아들이 좋겠나? (웃음)
나는 아무나 괜찮은데 시어머니께서 아들을 바라시니까 삼신 할머니께서 참조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영화에서 주로 면 티셔츠 한 장만 입고 등장하는데 생각보다 몸이 탄탄해 보이더군요. 사색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특별히 운동을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나름대로 꾸준한 자기관리를 하는 거 같습니다. 혹시 나중에 케이블에서 보실 기회가 있으면 <얼굴없는 미녀>다시 한번 보세요. 제 몸이 ‘괘안습니다’. (웃음) 기대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겠지만 평상시에 유산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웃음)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하면서 술 많이 먹고 그래서 좀 망가졌죠. 사실 <얼굴없는 미녀>때는 감독님께서 일부로 몸을 만들라고 주문도 하셨고, 그래서 그때는 정말 좋았었죠. 사실 지금 몸이 좋아 보인다는 것도 원체 저에게 기대를 안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몸 좋으신 분들이 들으면 웃기고 있네, 그럴 걸요. (웃음)
사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는 마치 배우들에게 기본적인 설정만 알려주고 알아서 풀어낸 상황을 그냥 카메라에 담아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배우들을 방목시켜놓고 그냥 카메라로 따라잡은 느낌이죠. 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치밀하게 영화를 찍는다고 하시더군요.
예. 절대 아니에요. 예를 들면 처음엔 저도 원체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상황만 약간 주어지고 애드립의 느낌으로 연기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랬어요.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다 찍으시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완벽하게 만드시는 분이시죠.
자신이 원하는 컷을 얻기 위해선 몇 번이고 집요하게 반복해서 테이크를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지독하신 분입니다. (웃음) 예를 들면 다른 영화 같은 경우 뒤에서 누가 쳐다봐서 거슬렸다 싶으면 바로 ‘커트’, 그런데 그냥 ‘오케이, 괜찮아, 여기서 잘라 쓰면 되니까’, 보통 이렇게 되는데 홍 감독님 영화에선 2분, 3분, 5분 롱테이크 가는 도중에 마지막이라도 누가 지나가면서 어색하게 쳐다 봤다, 그러면 ‘다시’. 용납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홍 감독님 영화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어요. 홍감독님 영화에 원체 원신 원컷이 많고 만약 영화에서 리얼리티가 느껴지지 않으면 영화를 보다가 빠져나올 수 밖에 없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감독님도 완벽을 기하기 위해 굉장히 치열하고 꼼꼼한 방식을 고수하시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렇게 독하게 하실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 한 세 번째 작업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방식에 익숙해졌겠지만 아무래도 처음엔 어느 정도 적응이라고 할만한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렇죠.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두렵기도 하죠. 배우가 아닌 누구라도 궁금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배우입장이라면 더욱이나 그렇겠죠. 근데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그 방식이. (웃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받아본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당일 분량의 대본을 전달되는 감독의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작품의 결과에 대한 잠재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전부터 제가 워낙 홍상수 감독님 팬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런 확신이나 믿음은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사실 그런 방식에 대한 믿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보다 오히려 새로운 기대가 있었어요. 그 방식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냥 다른 것인 셈이죠. 다른 영화나 다른 감독님과의 방식과는 다른 거에요. 그렇다고 그게 꼭 옳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건 그냥 그 감독, 혹은 그 사람만이 지닌 성격인 거죠. 물론 그게 또 모든 방식에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건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전반적으로 크게 볼 땐 그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만 그 감독님의 믿음과 별개로 특별히 보자면 그건 그냥 그 감독님의 방식이었던 셈이고, 저는 그 사람하고 하기로 했으니 그 방식에 따라야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그 방식의 첫 번째 지지자는 배우가 되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가운데 가장 호화로운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그냥 출연하는 배우들만 봐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더군요. (웃음) 더욱 놀라운 건 그 모든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점이죠. 그럼에도 그런 보기 드문 상황이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라서 자연스럽게 수긍되는 느낌도 있더군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노 개런티라는 게 그만 이슈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홍상수 감독님이니까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웃음)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이 매번 노 개런티로 배우들을 출연시킨 건 아니거든요. 일단 감독님께서 이번 제작 여건에 대한 상황을 얘기해 주셨고, 안 주는 게 아니고 못 줄 상황에 놓였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고요. 물론 그런 이해만으로 다 출연할 순 없는 거잖아요. 만약 모든 감독님께서 저한테 오셔서 좋은 작품이니까 이해해달라고 해도 다 이해할 순 없는 거잖아요. 저는 그 이전부터 홍 감독님을 존경하는 팬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홍 감독님과 두 번 작품을 하면서 얻어진 믿음이 플러스됐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겠죠.
단지 인정적인 문제에서 노 개런티를 선택했다기 보단 분명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배우에게 주는 어떤 보상이 있기 때문이 가능했다는 이야기겠죠.
어쨌든 전 그런 이해와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합쳐졌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제가 ‘넌 왜 그냥 하기로 했니’ 이렇게 물어보진 못해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결정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말하지 않아도 대충 다 아시지 않을까. (웃음) 그냥 저랑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드는데 그건 제 예상이니까 제가 대신 답변할 순 없는 거고요. 다만 저는 이제 노 개런티 얘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앞으론 노 개런티라고 해서 안 한다 그러면 그 감독님들은 ‘내 작품이 싫은가?’ 그럴 거 같아. (웃음) 그리고 어느 개인적인 작품을 한 배우가 아니라 어느 한 작품을 한 배우의 입장에서 노 개런티란 부분이 너무 이슈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거 같아요. 어쨌든 좋은 사람들의 뜻이 맞아서 찍은 좋은 영화가 영화로서 이야기되는 게 아니라 그런 이슈를 통해서 이야기될 거 같아서요. 그걸 숨기려는 건 아니고 이젠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까요. 그냥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있어요. 사실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물론 전체적으론 대단한 일이긴 하죠. 돈을 줘도 그 배우들이 이렇게 다 모일 수도 없잖아요, 사실.
구경남은 겉으로 봤을 땐 소심하고 마음이 약해 보이지만 때때로 다혈질이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내곤 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혼자 꿍꿍이 짓 다하고, 일 있다 그래 놓고 방에 가서 퍼 자고. (웃음)
사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속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배경 안에 놓여있다 보니 캐릭터 자체가 마치 배우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혹시 연기하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너무나 자신 스스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닌가라고 느껴본 적은 없습니까?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출연작에서 제가 연기하는 모습 속에 제 안에 있는 것들이 조금씩 나오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렇다곤 말씀 드릴 수 없어요. 사실 홍 감독님의 영화에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굉장히 리얼하게 연기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측면도 있겠죠. 물론 배우들의 힘도 있겠지만 감독님께서 그렇게 잘 만들어내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감히 더 나아가보자면 홍 감독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그래, 그래, 하고 끄덕일 수 있을만한 공감대를 끌어내시는 것이기도 하겠죠. 저는 항상 주어지는 대로 하는 것뿐인데 그게 유독 홍 감독님 영화에서 많이 보이고, 저뿐만 아닌 다른 배우들도 그렇잖아요. 그건 홍 감독님에게 김상경이면 김상경, 김태우면 김태우, 그들 안에 있는 걸 끌어내는 힘이 있으심과 동시에 그걸 배우의 이미지와 잘 조화시켜서 마치 그 사람이 원래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공형진 씨는 원래 코믹한 연기를 잘 하는데 이번에 보면 다르잖아요. 영화 속 캐릭터를 보고 ‘저게 진짜 공형진 아니야?’. ‘저게 진짜 정유미 아니야?’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사실 감독님의 힘이 큰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더 많이 죽여서 연기한 거에요. 저는 원래 구경남보다 더 찌질해요. (웃음)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의 구경남은 마치 빨랫줄과 같은 인물입니다. 나머지 인물이 빨래처럼 걸렸다 걷혀도 구경남은 항상 거기 있으니까요. 전체적인 맥락을 관통하는 인물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장악하는 캐릭터는 아닌 셈이죠. 사실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배제되지 않는 인물이지만 감정의 중심을 장악하는 캐릭터가 아니란 점에서 마치 영화의 배경과 같은 인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볼 때 구경남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건 나중에 고순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뿐이에요. 그 외에는 정말 말 그대로 구경하는 남자에요. 구경남이란 이름 자체가 개인 욕망인 셈이죠. 물론 어쩌면 다른 배우가 구경남을 연기했다면 빨랫줄 같지만 부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더 잘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 면에서 저는 그럴 능력이 안 됐던 것 같고요.
어떤 인물의 감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식어로서의 연기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관철시키기보다도 상대의 감정을 중시하는 인물로 등장했던 것 같거든요. 배려가 많거나 소심한 느낌이죠. 심지어 <키친>이나 <내 청춘에게 고함>에서는 아내의 불륜에 충격을 먹으면서도 쉽게 화내지 못하는 캐릭터이기도 하죠. 곧잘 사과를 하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에서도 혼자 속으론 별 생각을 다하면서 쉽게 번번히 사과하잖아요. (웃음)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제가 감정을 드러내기 보단 받는 스타일의 배우라서 그럴지도 모르죠. 사실 그건 작품에 따라서 틀린 거죠. 예를 들면 <해변의 여인>같은 경우는 괴상한 짓을 하는 작은 역할이었고 오히려 거기서 도와주는 것처럼 연기했는데 운이 좋아서 영평상 남우조연상까지 받았죠. 물론 어떤 상을 받았느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 안에서 자기역할을 충실한 배우가 좋은 배우가 아닐까 싶어요. 역할의 위치나 비중에 대한 욕심이나 부담은 없어요. 아무래도 조화를 중시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작품에 녹아 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해요. 다만 다음에 다른 캐릭터를 할 기회가 되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야겠죠.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마치 저 인물이 홍상수 감독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은연 중에 자의식을 때때로 속물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곤 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그렇게 읽혀도 좋을 만큼 절묘한 대사들이 많았어요. 특히 제주도에서 학생의 질의에 대한 답변하는 구경남은 마치 홍상수 감독님의 대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죠. 아까 말했던 2백만도 진짜 홍상수 감독님 속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모든 생각이 홍상수 감독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얻는 착각일 지도 모르겠죠. (웃음)
이번에 인터뷰할 때 그런 질문들을 너무 많이 하시는 거에요.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 있을 거 같은 거에요. 일단 구경남이 예술영화감독이고, 질문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은 거죠.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영화를 찍는 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지금 찍고 나서 하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고 나니,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거죠. 하지만 지금 돌아가서 다시 찍는다 해도 그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 같아요. 역할을 하면서 ‘이건 홍상수 감독님하고 다르나? 이건 맞지 않나?’ 이런 건 제 입장에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로 전혀 의식도 못했고요.
홍상수 감독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작업을 했던 배우로서 이런 생각이 어떻게 들릴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감독님은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아는 홍 감독님은 죽었다 깨어나도 2백만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웃음) 다만 그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면 홍상수 감독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다들 감독님 머리에서 나온 캐릭터잖아요. 저 뿐만 아니라 공형진 씨 역할이나, 유준상 씨 역할 안에도 감독님이 녹아있을 수 있겠죠. 글을 쓴 사람이 자신의 캐릭터에 녹아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겠죠. 그러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홍 감독님은 구경남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구경남은 감독님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죠. 감독님을 닮았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지금 제가 돌이켜 생각해본 답이에요. 어쩌면 그 전부터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그랬던 거 같아요. 감독님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거 같기도 하고.
KBS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해서 연기자로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건 영화 쪽이었죠. 필모그래피만 보자면 마치 방송 매체보단 영화를 선호하는 배우라는 인식을 줄 정도로 꾸준히 영화로 활동해왔습니다.
저는 원래 연극과 출신이에요. 사실 제 얼굴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다는 건 생각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어요. (웃음) 일단 배우로서 솔직히 영화가 매력 있긴 하죠. 다만 편견은 없어요. 의도해서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그냥 공교롭게도 영화 쪽에 좋은 작품이 들어오다 보니까 최근 9년 정도 계속 맞물려서 영화만 찍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뿐이죠. 기회가 되면 드라마뿐만 아니라 연극도 다시 하고 싶고요. 작년엔 SBS에서 했던 4부작 드라마 <도쿄, 여우비>에도 출연했고, 졸업하고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하기도 했잖아요. 물론 이런 건 있을 수 있어요.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될 때 영화 쪽으로 약간 기울 순 있겠죠. 왜냐면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영화는 배우로서 준비할 시간도 많고 환경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다만 그렇게 구분 지어서 생각했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사실 드라마보다 영화나 연극이 좀 더 배우에겐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할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준비과정이 어느 정도 안배된다는 점에서 말이죠. 모든 배우가 사실 좀 그렇지 않을까요. 기자님이 기사를 쓰셔도 시간이 있고 정보를 알고 쓰는 게 아무래도 편한 것처럼요. 물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본적으로 해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작년 말에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했습니다. 오랜만에 서는 무대였는데 긴장되진 않던가요?
무대에 너무 오랜만에 서서 약간 긴장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그런 건 없더라고요.
졸업 이후로 첫 연극이었는데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나름대로 오랜만에 귀향한 기분도 들지 않았을까 싶고요.
좋았어요.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기엔 프로로서 보여준 게 없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처음 했다고 봐도 되겠죠. 물론 학교 때 쉬지 않고 연극을 했지만 그건 학교 때 했던 거니까 프로로서 처음 했다고 볼 수 있는 거에요.
러시아 출신 연출가인 ‘유리 부투소프’의 작품이었고 ‘트레플레프’를 연기했던 것으로 아는데 원래 희곡의 형태에서 변주를 가미한 파격적인 공연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3막에서 원작과 달리 ‘트레플레프’의 내면을 과격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삽입됐다고도 하더군요. 오랜만에 선 무대에서 어떤 에너지를 얻진 않았을지 궁금하군요.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었어요. 일단 배우로서 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죠. 그리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무대를 해야 배우로서 재충전할 수 있게 되고 재충전을 떠나서 많은 걸 정비하게 된다고 했는데 그런 말씀들이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욱이나 ‘유리 부투소프’라는 좋은 연출가를 만나서 너무 많은 걸 배웠어요. 제가 원래 사실주의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원래 형태를 완전히 태워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형식이 놀라웠죠. 예를 들면 우리가 국한해서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작품이나 인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형태로 보여주는 거에요. 이렇게 연극이란 매체를 통해서 배운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얻은 것도 많고 오랜만에 그런 훈련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도 있었고, 내가 너무 게을렀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도 하게 됐고요. 여러 방면에서 좋은 기회였죠.
홍상수 감독님이 아침마다 당일 촬영분량의 대본을 집필하는 건 자신의 갱신된 생각을 최종적으로 갈무리하는 하나의 의식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형태적으론 마치 드라마 쪽대본과 비슷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스토리가 밀려가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버겁게 마감되는 경우에서 드라마 쪽대본이 난무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요. 드라마 쪽대본과 홍상수 감독님의 대본은 형태가 비슷할 뿐 전혀 다른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죠. 그만큼 배우에게 전해지는 안정감이나 신선함도 다를 것 같고요.
전혀 다르죠. 드라마에서 쪽대본은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전해지거든요. 좀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전쟁이 터지지 않는 이상, 3일 뒤 방송이 나가야 되는 상황을 전제로 완성되는 거죠. 일단 지금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거나 토론할 시간도 없이 그저 대본의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서 얘기하고 넘기고 넘겨야 하는 상황에서 쪽대본이 나오는 거에요. 내가 지금 너무 과장되고 격하게 얘기했나요? (웃음) 쉬운 얘기로 드라마 작가는 인물의 다음 스토리를 전하는 거지만 홍 감독님의 대본은 계속 쌓여가는 인물의 상태를 통해 관찰된 결과를 가져가셨다가 되돌려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에 대한 토론을 충분히 하고 내가 불편한 점을 얘기하면 그걸 반영해서 짧든 길든 리허설도 충분히 하고 상황이 완성됐을 때 촬영에 들어가죠. 만약 그게 오늘 완성될 수 없다면 내일 다시 찍어도 되는 거고요.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웃음)
구경남이 양치질을 할 때 ‘이번에는 꼭 2백만이 볼 영화를 만들고 말 거다’라는 독백이 내레이션 됩니다. 구경남의 속내가 드러나는 장면이라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기도 하죠. 사실 김태우 씨는 상업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폭넓게 활동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의 흥행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배우처럼 인식되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데 혹시 구경남처럼 ‘이번엔 2백만이 볼 영화에 출연하고 말 거다’라는 생각이 들 때는 없었나요? (웃음)
저는요, 없었던 게 아니라 그런 영화에 출연을 해왔어요. 지금 말씀하신 흥행영화라는 건 장르영화에 해당될 텐데, <키친>도 그렇고, <기담>도 그렇고, <리턴>도 그렇고, 심지어 <얼굴 없는 미녀>도 그렇고, 다 흥행성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다만 그런 영화들이 이제 흥행되지 않다 보니까 자꾸 홍 감독님 영화나, <사과>라던지, <내 청춘에게 고함>이나, <버스 정류장>같은 영화가 부각되고 저는 약간 예술적인, 마치 영화제 가는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됐지만 저는 지금까지 계속 흥행할만한 장르영화를 쭉 골라오면서 하고 있거든요. 물론 제가 출연한 전체적인 작품 가운데 후자 쪽의 편수가 좀 많이 눈에 띄고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꼭 의도적인 행보는 아니었거든요.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관객이 덜 들다 보니까 그런 이미지로 보이는 것 같아요.
몇 년 사이에 출연했던 <기담>이나 <리턴>과 같은 영화는 확실히 흥행이 요구되는 영화였던 거 같습니다. 어떤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흥행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고요. 그럴 땐 흥행 자체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작가주의 영화나 예술 영화도 관객이 많이 든다면 좋겠지만 어쨌든 그런 영화 같은 경우엔 제가 관객이 들 거다라고 생각해서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번엔 장르영화니까 좀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 드는 게 제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도 하죠. 다만 그걸 기준으로 고르는 건 아니에요. 제 기준으론 좋은 시나리오라서 택한 거니까요. 질문하신 대로 그런 욕망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전 그렇게 해왔지만 그게 잘 안된 거에요. 말 그대로 그런 욕망은 있고요. 다만 그건 욕망으로 되는 부분이 아니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2백만이 넘겠죠. (웃음)
간지러운 표현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해맑게 웃는 편입니다.
영혼이 맑아서. (웃음)
영화에서도 그렇게 웃다가 돌연 정색하는 표정이 재미있더군요. 마치 인물의 양면성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랄까요.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데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 같습니다. 안팎의 온도차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래서 때때로 소심하거나 나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캐릭터의 욕망을 숨기기 좋은 표정을 대변한 적도 있었죠. <얼굴없는 미녀>에서도 자신의 욕망을 안으로 숨긴 채 은밀하게 진전시키려는 인물이었고, 사실 유일하게 악역이라 할만한 <리턴>에서도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캐릭터였으니까요. 어쩌면 감독들이 김태우라는 배우에게 있어서 끌어내고자 하는 모습이 종종 그런 이중성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음, 글쎄요. 제가 그런 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결국 이미지가 배우의 캐릭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처럼 포괄적으로 그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감독님들이 캐스팅을 결정할 순 있겠죠. 다른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반대로 제 부족일 수도 있어요. 제가 그걸 좀 다른 시각이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란 사람의 어떤 한계 때문에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이 안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그 두 가지가 함께 작용했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일관적인 이미지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약간 자신의 속내를 좀처럼 내밀지 못하는 소심한 이미지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마치 그게 김태우 씨의 성격과 연관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저는 매번 다른 역할, 다른 배역, 다른 나이, 다른 직업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건데, 그게 또 제 안에서 나오니까 비슷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성격이 꼭 <버스, 정류장>이나 <사과>에서 나오는 인물 같진 않거든요. 구경남도 그렇고. 사실 저한테는 아까 말씀 드린 그런 영화에서의 이미지가 없거든요. 좀 과장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건 사실 제 반대적인 부분인 거죠.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좋지만 매번 비슷비슷하다는 건 반대로 제게 뭔가 잘못된 문제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사실 캐릭터가 항상 동일해 보이는 건 아니에요. 파격적인 변화를 연기하는 배우도 있지만 디테일한 차이를 통해 꾸준한 성격을 드러내는 배우의 연기가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죠. 그리고 그게 캐릭터와 어긋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그게 장점인지, 단점인지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제 생각엔 영화마다 그 캐릭터처럼 보이는지가 중요하니까요. ‘왜 구경남을 저렇게 연기하지’라고 하시면 정확히 문제가 되고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되지만 그 인물로 느낀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죠. 다만 ‘구경남이 김태우랑 좀 비슷하지 않아?’ 이러는 건 제 능력 밖의 일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로 다음에 깡패를 한번 연기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제가 만약 다음에 코미디를 몇 편하면 예전엔 먹물이미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코믹하고 가벼운 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그게 누군가를 의식해서 코미디를 한 건 아닐 거란 말이에요. 어느 날 자연스럽게 악역을 한다 해도 그걸 잘 해내는 게 중요한 거지, 어떤 이미지를 의식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캐릭터에 충실한 게 장기적인 면에서 중요한 거죠. 평생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당장 조급할 이유도 없고요. 이 작품에서 이 인물이 되는 게 저한테 중요할 뿐이지, 어떤 이미지에 국한된다거나 변화가 없다라는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만약 저에게 변화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제가 일부로 피하는 게 아니니까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잘 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싶고, 제 나름대로는 항상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말씀 드리고 싶어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많이 곱씹으며 후회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쉽게 털어내는 편인가요?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이긴 해요. 예전에 어떤 선배가 배역에서 빨리 빠져 나오는 것도 배우로서 굉장히 큰 덕목중의 하나이고 장점이다 그러더라고요. 저는 촬영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첫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고민을 좀 하느라 그 전까지 너무 힘들어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촬영하면서부터는 편해지고 촬영 끝나면 굉장히 빨리 잊는 편이죠. 대체적으로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건 사실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도 있죠. 빨리 잊어야지 한다고 빨리 잊는 건 아니거든요.
“정말 몰라서 들어가고 그게 발견이어야 합니다.” 이런 구경남의 대사처럼 이번 영화는 배우에겐 몰라서 들어가는 과정이었고 그게 발견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너무나 일상적이라 오히려 생소한 발견을 주는 경우도 많죠. 그 발견은 일차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몫이자 관객의 몫이 됩니다. 배우에게도 어떤 발견의 몫이 있을까요?
역시나 다른 배우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없어요. 만약 시나리오가 있는 작품을 했다면 지금 같은 질문에서 답변할 수 있는 말이 많았을 거에요. 제가 이런 캐릭터를 했지만 막상 찍으면서 이런 발견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이번엔 더욱이나 트리트먼트도 없던 작품이라 오늘 찍을 내용도 모르고 하면서 한편의 영화를 쌓은 셈이거든요. 그래서 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로 저는 이번 작품에서 캐릭터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돌아본 적도 없고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할까요?
맞는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희가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옆자릴 가리키면서) 어쩌면 이렇게 앉아있었을지, (빨대를 잡으면서) 제가 콜라를 이렇게 마실지, (손을 입에 가져다 대는 행동을 따라 하면서) 지금 기자님이 이렇게 하실지, 순간순간 모르면서 쌓여가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쨌든 한 시간 정도 인터뷰가 지나서 그걸 영화처럼 보면 저희가 어떤 인물이 돼있는 거 아닐까요. 저한테 기자님이 어떤 인물이 되고, 결국 지금 상황은 영화가 돼있는 거죠. 이번엔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처럼 하는 건데 그게 두 시간 전에 알게 됐던 거죠. 그걸 통해서 연기하고, 그게 하루씩 쌓여서 영화가 되고. 그게 두려울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게 그렇잖아요. (사진 기자를 가리키면서) 지금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이런 상황들은 그냥 날것으로 오는 것처럼, 이렇게 만나고 쌓여서 어떤 인물이 저한테 그 인물로 구축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루마다 주어진 상태에서 그날의 구경남을 쌓고 그 다음날엔 그 전날에 쌓였던 구경남과 합쳐져서 또 하루가 연장되고, 그런 식으로 구축된 인물이었거든요. 결국 발견이라는 건 우리가 어떤 인물을 지난 다음에 오는 건데 이번엔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죠. 감독님 안에서는 어떤 인물이 그런 식으로 발견돼서 새롭게 쌓아주실 수 있는 거고, 관객은 그 새롭게 쌓여가는 형태를 쭉 볼 수 있지만 막상 그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상황에만 충실하게 되거든요. 내 스스로에게 쌓이는 발견의 개념이 아닌 거죠.
어떤 전체적인 캐릭터를 예상하고 들어간 뒤의 변수를 발견하고 수집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에서 매번 존재하고 빠져 나오는 일회적 작업의 연속이었기 때문일까요?
지금 저와 이렇게 앉아있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을 쌓고 계시는 거겠죠. 그런데 사실 항상 생각하는 대로 뭔가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쩌면 누군가와 싸울 수도 있고, 어떤 분과 웃으면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렇게 그냥 살면서 쌓이는 거잖아요. 인생에 있어서 발견이란 건 어느 일정한 시간을 돌았을 때 본인에게 구축된 것을 알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번에 구경남은 그런 식의 접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하루하루마다 구경남으로 쌓여가는 것에 불과했죠. 그래서 제가 지금 돌아봤을 때 구경남이 어떤 인물인 거 같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저한테 중요한 의미가 아닌 거에요. 관객들은 구경남을 보면서 어떤 걸 생각하고 그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겠지만 저는 그냥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걸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으니까요.
어떤 전체를 염두에 두거나 그 이후를 생각하기 보단 그 현재에 집중하는 과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 전체적인 과정을 연기한 본인에겐 그 서사가 어떤 발견으로 점증되는 과정이 아니었다는 말씀이군요.
예. 그러니까 ‘구경남은 어떤 인물이지?’라고 돌아본다거나,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아, 구경남은 저런 인물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저에겐 별로 의미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제가 어떤 시나리오를 받고 싸웠으면 나중에 혼자 이번엔 이런 걸 표현하려고 했지만 하다 보니까 이런 새로운 게 나왔고, 이런 건 좀 덜어야 했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모르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캐릭터나 영화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돌아본다거나 어떤 인물인지 신경 쓰는데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트리트먼트도 없었고, 이야기의 결말도 어찌될지 모른다면 일단 궁금증은 상당했겠습니다. 오늘 찍을 내용도 전혀 몰랐고, 결말은 커녕 과정도 몰랐으니까요. (웃음) 이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아니라 ‘알지도 못하면서’였어요. (웃음) 그래서 너무 궁금했고 대본을 받으면 기쁘더라고요. 덕분에 매일 아침 대본을 받았을 때 연재소설 보는 것처럼 낄낄대고 그랬죠. 사실 감독님만 다 알고 가는 이야기니까요. 다만 구체적인 상황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거죠.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알고 캐스팅을 미리 하셨겠어요.
줄기는 이미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운데 디테일한 가지와 잎을 붙여나가는 셈이군요.
예. 제가 볼 땐 이미 당신의 머릿속엔 다 있는 거죠. 대충 어떻게 만나고, 어떤 일이긴 한데 그에 대한 정확한 대사와 관계를 그 날 아침의 느낌으로 정하시는 거죠.
홍상수 감독과 함께 하는 세 번째 영화였는데 지난 두 번째와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없었습니까?
가장 큰 건 같은 감독님의 영화지만 내용도 모르고 했다는 게 틀린 점이죠. 아무래도 기존에 했던 영화들 가운데 <생활의 발견>정도가 두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정도의 제한된 인물과 제한된 장소의 기본 구조와 달리 이번엔 다른 부분이 많죠. 장소도 와일드하게 펼쳐져 있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내용들이 많잖아요. 영화제 쪽 내용이나 후배들 내용이나,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건의 양상도 다르고. 그런 이유로 굉장히 많은 배우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도 지금까지와 많이 다른 점이었죠. 예전에도 보통 스태프가 많지 않았지만 총 12명의 스태프와 함께 하기도 했고요. 고사 때는 배우 매니저가 스태프보다도 한 3배는 많았던 거 같아요. 스태프라고 해 봤자 감독님 포함 13명이었으니까. (웃음)
제천과 제주도에서 촬영이 이뤄졌으니 마치 단란하게 MT가는 기분이었겠습니다. (웃음)
매 저녁마다 너무 이상한 거에요. 밥을 먹는데 (둘러보면서) “우리 팀 이게 다네?” 이러고. (웃음) 게다가 배우들이 내려오면 손님 접대하듯이 인사하고, 자기 분량 다 찍고 가기 전에 수고했다고 쫑파티하고, 다음 팀 오면 또 그렇게 하고, 그것도 사실 즐겁고 재미있었죠.
마치 안주인 노릇을 한 셈이네요. (웃음)
예. (웃음) 완전히 안주인처럼 ‘오셨어요, 가세요, 수고했어요, 아, 또 오셨어요’. (웃음) 예를 들면 (엄)지원이 같은 경우는 순서대로 찍다보니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곤 했거든요. 그러면, ‘또 왔니, 한번 더 해보자’ 이렇게. (웃음)
예전에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칸 영화제에 가신 적이 있죠. 이번에도 칸 영화제에 가실 예정이고요.
지난 번엔 경쟁작으로 갔지만, 이번엔 감독주간으로 간다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죠.
마치 구경남처럼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녀와도 좋겠습니다.
구경남처럼 그러면 삶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그렇게 좀 스펙터클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심심해. (웃음) 가면 뭐 뻔하죠. 스크리닝하고, 기자시사하고, 감독님이랑 같이 술 마시다 이제 돌아가야 되겠다, 그렇게 돌아오겠죠.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통해 감독 역할만 두 번 했습니다. 한번은 감독 친구였고요. 혹시 감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나요?
에이, 한마디로만 대답드릴께요. 감독 아무나 하나요. (웃음)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제 각각의 방식의 차이로 소통된다. 긴 연애는 실연이 되었고 갑작스러운 로맨스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현정(문소리)은 실연의 상처에서 달아나듯 상훈(김태우)의 마음으로 도피했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었다고 판단하지만 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눈 가리고 아웅’임을 드러낸다. 현정은 상훈과의 결혼생활에 헌신적이지만 첫 만남 당시의 애틋함은 지속적 일상에서 샘솟는 권태로 희석되고 점차 피해의식마저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민석(이선균)은 봉인된 과거의 그리움을 불쑥 해방시킨다. 풍화되지 못하고 시간에 덮여있던 과거의 연애담은 결혼생활의 권태를 더욱 지겹게 각성시킨다.
현정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이루고자 했던 건 실연의 상처에서 기인한 도피욕구이자 충만했던 애정의 결핍이 이간질한 충동의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 순간적인 욕구로 메운 욕망의 유효기간이 길리 없다. 정리되지 못하고 위장된 본심은 짧은 세월의 풍화작용만으로도 일시적인 행복의 얕은 밑천이 닳아 없어질 때쯤 다시 본 모습을 드러낸다. 현정은 결국 타성적인 감정에 이끌린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능동적인 태도를 구사하고자 한다. 이별은 민석의 통고에 의한 것이었고 결혼도 상훈의 구애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제 스스로 이별을 고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결심을 도모하는 것도 그녀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적 변화를 주도하고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는 현정의 일련의 과정에서 그녀가 단순히 어느 한 개인으로서가 아닌 여성이라는 전체적 집단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음이 시사된다.
현정은 민석과 상훈에게 각각 사과한다. 그 사과의 어휘는 동일하지만 의미는 반대로 향한다. 민석에게 보내는 사과는 자신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단절을 표방하며 그와 반대로 상훈에게는 스스로 종결하려 했던 상대와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일말의 의지를 전한다. 이는 원래 자신이 먼저 들어야 했던 사과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거나 미처 하지 못한 뒤늦은 대답과도 같다. 갑작스러운 이별통고를 전한 민석의 사과에 뒤늦게 응답함으로써 그 시절에 얻은 상처로부터 완벽히 탈피하고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거듭남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단순히 비윤리적 죄책감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적 미련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로 표방된다. 결국 상훈에게 일련의 사실을 고백하며 남기는 사과는 도피했던 감정이 재정립되어 새롭게 거듭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현정과 상훈, 민석의 삼각구도를 기본골자로 하는 <사과>는 한편으로 현정의 가족을 응시하기도 한다. 명예퇴직으로 돈벌이가 없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도맡고 있다. 현정의 어머니는 현정이 회사를 그만 두고 상훈을 따라 구미로 내려가겠다고 할 때, 후에 서울로 올라와 출산하고 회사를 다니다 상훈과 이혼하겠다고 선언할 때, 현정에게 집안사정을 언급하면서 눈물로 호소하듯 현정에게 반대한다. 이는 1세대 가정이 겪는 내부적 진통이 2세대로 옮겨가는 구도로 묘사되는데 실직된 아버지와 회사를 그만두고 실직의 형태로 묘사되는 상훈이 유사하고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어머니는 역시 현정과 유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승적 굴레에서 탈피를 꿈꾸는 현정을 막고 돌려세우는 건 어머니인데 이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의식을 뛰어넘어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성원으로써의 의도로 여겨진다. 결국 그녀가 아버지의 안경을 찾으며 어머니에 대한 책망과 함께 눈물 리는 건 그런 아이러니한 모순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적 방편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단순히 타인의 삶에서 소비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삶을 소비하는 주체적 대상으로써의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각성과도 같다. 결혼이라는 행위가 여성으로써 의무적인 통과의례가 아닌 삶의 수단이 되는 행위이자 중요한 방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는 결국 여자의 삶이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는다. 단순히 여권의 신장이라는 안티테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통해 깨우쳐야 할 권리적 분위기의 확장을 말이다.
사과란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고백하는 행위다. 그것은 흔히 상대방과의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대로 관계의 결말을 위해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 관계를 종착시키기 위한 선고는 관계 지속에 일정한 간격을 형성시켜 이를 통해 서로의 관계를 벌려나가 종래엔 끊고자 함이다. 사과는 그렇게 관계의 변화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제각각 사용된다. <사과>는 사과라는 행위를 통해 변모하는 어느 여성의 심리적 양상을 살피고 그와 함께 변해가는 인식의 상태를 관찰한다. 그 짧은 사과 한마디에 달라진 여인의 삶은 결국 여성의 주체적 삶과 연계된 고민을 제기한다. 남성이 차지한 권위적인 성 역할의 궤도를 배회하던 여성이 주체적으로 그 궤도에 진입하는 변화된 상을 묘사하는 동시에 스스로 고민할만한 과제를 부여한다. 확장된 삶의 기회를 통해 얻어내야 할 것과 간과해선 안 되는 것에 대해 사유한다. 결국 현정의 품 안에서 잠드는 상훈처럼 단절보다는 회유와 용서로서 관계의 회복을 도모하고 지속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능동적인 변화에서 가능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의무가 아닌 권리임을 깨닫는 것. 그 주체로써의 의식의 성장을 말이다. <사과>는 어느 여성의 주체적인 성장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