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을 봤다. 잘 알려진 대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을 스크린에 옮겼다. 아무래도 원작을 직접 본
관객은 드물 거 같은데 원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영화 입장에선 유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완성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경유착과 밀실정치의 행태에 관한
르포르타주를 기반에 둔 원작 웹툰의 극사실적인 묘사는 영화 안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폭로극으로서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실적인 이미지로 적극
활용된 것 같다. 다만 원작의 극사실적 묘사는 그 자체를 본다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현실정치를 폭로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영화에선 그런 사실적인 묘사가 극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장치에 가깝다. 원작에서 중요한
게 밀도였다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부피와 중량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원작에 비해 극적이고,
현실적인 타협을 최대한 수용했다. 이를 테면 결국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최대한
영리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달까.
뿌리 깊은 정경유착과 밀실정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 대한 무기력한 수긍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선 <부당거래>의 묘사가, 폭력적인 하드보일드한 세계관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을 전복시킬 야심가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선
<신세계>의 정서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결말은 <베테랑>과 같은 싸가지 없는 권력
때려잡기 류의 쾌감에 가깝다. 그만큼 새롭고 참신한 작품은 아니지만 자기가 그린 세계관의 입구와 출구를 명확히
세우고 닫는 작품이란 점에서 평가될만한 가치가 있다. ‘물리고 뜯길수록 더 큰 괴물이 되는’
이들을 상대로 물리고 뜯기다 결국 더 큰 괴물이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내부자들’의 악전고투를 그리는 과정의 기승전결이 단단하게 세워지고, 권력의 위엄 아래 잠재된 추잡한
민낯과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기생하는 폭력의 본체 그리고 그 패악한 세계의 본질을 음흉하게 드러내는 대사들의 찰진 은유로서 폭로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그림자를 스펙터클하게 드러내는 묘사와 함께 이상적인 낭만이 가미된 결말의 쾌감은 상호보완적이다.
다만 이야기의 리듬이 잘 정리된 인상은 아니다. 덕분에 몇 차례 높은 파도를 타듯
기승전결의 흐름을 견뎌야 되는 느낌이라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다. 개인적인 집중력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안일 수도 있겠지만 연출과 묘사의 세기에 집중한 인상이라 상대적으로 그런 감상적 흐름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이병헌의 연기는 그야말로 점입가경.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양아치 건달 역을 맡았는데 숱한 조폭영화 상의 유사한 역할들과 비교해도 이만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살기와 백치미를 양쪽 주머니에 차고 필요할 때마다 마음껏 꺼내 쓰는 느낌. 흥행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와 닿을 정도랄까.
물론 조승우와 백윤식도 확실히 배우 본연의 신뢰감을 수성한다.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세계를 흔드는 밑바닥의 실체를 목도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건
결국 배우들의 그런 대단한 연기 덕분이다.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훌륭하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말 그대로 하늘을
걸었던 남자 펠리페 페팃에 관한 영화다. 그는 1974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즉 쌍둥이 빌딩이라 불리던 그 고층건물 두 동의 110층 옥상에 나란히 와이어를
매달아 그 위를 걸었다. 이는 2008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에서 영상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두 영화를 나란히
감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맨 온 와이어>는 <하늘을 걷는 남자>가 얼마나 사실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영화화된 작품인가를 증명하는 기록적 그림자에 가깝다. 고로 두 작품을 교차해 볼 수 있다면
상당히 입체적인 감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맨 온 와이어>는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 대단한 경험을
기록한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는 육체적 증거가 될 것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맨 온 와이어>가 기록하지 못한 감각을
객석에 전이시키는 영혼적 증거가 될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다른 것을 느낄 것이고 궁극적으론 깊고
너른 감흥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영화화 계획이 발표됐을 때, 3D 입체 영상의 장인인 로버트 저메키스가 이 영화에 혹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10층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설치한 와이어 위에 선 남자의 주변부를 채우는
뉴욕시의 풍경만큼이나 광대한 원근감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는 단순히 3D 입체 영상을 위시한
볼거리에 국한된 영화가 아니다. 객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안전한 경계를 무마시켜 버리는
체험으로 수렴시키기 위한 마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이길 넘어 기록을 읽던 관객을
기록의 현장으로 세워버리고자 하는 체험으로서의 영화에 가깝다. 와이어에 선 필리페 페팃이 줄에 서는 그 순간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심정에 포개질 순 없겠지만 그 줄에 선듯한 기분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광대한 숏 앞에서 경건한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각적 스릴을 넘어선 육감적인 떨림.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어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겪는가. 무엇을 체험하는가.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영화의 영혼을 느낀다.
<하늘을 걷는 남자>에선 그런 영혼이 느껴진다. 뉴욕에서 필리페 페팃의 곡예를 본 사람들이 느꼈을 기적적인 감동. 영혼을 지닌 영화는 그런
감동을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나는 남자>는 단순히 볼거리로서의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히 뉴욕 세계무역센터 꼭대기를 와이어로
건너는 남자의 이미지만으로 언급될 만한 작품도 아니다. 어떤 영화는 남다른 모험담을 묘사하며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논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모험 아래 놓인 모두를 모험하지 않는 인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결국 필리페 페팃의 도전기를
다루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가 본받을만한 어떤 경지처럼 떠받들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가 행한 그 모험이 대다수의
사람에 게 어떤 감동과 흥분을 줬는지 표정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란 것이 줄 수 있는 감동에
대해서 역설한다. 우린 대부분 영화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그래서 우린 영화를 본다. 다행히도 영화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겐 저마다를 위한 영화가 필요할 뿐이다. 고로 영화는
존재한다. 고로 우린 영화를 본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바로 그런 영화의 존재를 되묻고, 되짚게 만드는 영화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게 만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필리페 페팃은 자신의 행위가 쿠데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조력자가
되길 자처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기꺼이 그 흥분에 동참한다. 그 시대는 워터게이트로 닉슨의 광기가 절정에서
내려오는 시대였고, 히피들의 전성기가 지났지만 반체제적인 자유와 평화의 여운이 마지막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대였다.
어떤 의미로든 무언가 한 시대가 지나가는 징후가 나타나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끝에서
뉴욕 한복판에 110층 높이의 세계무역센터가 건설됐다. 하나도 아닌
둘 씩이나. 사람들은 땅으로 내려온 필리페 페팃에게 말한다. "다들 저 타워가 마음에 든대. 네가 저 타워에 숨을 불어넣었어." 나는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났다.
펠리페 페팃은 완공 직전의 세계무역센터에서 하늘을 걸었고, 이는 결국 이 빌딩을
물리적 랜드마크 이상의 영혼적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이 됐다. 그리고 다시 그 형체를 스크린에 소환할
수 있는 사연이 됐다. 지금은 사라진 그 두 빌딩이 나란히 선 풍경을 스크린에서 목도하는 건 결국 사라진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결국 불리어지지 않더라고 이름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일 것이다. 완전히 다른 영화지만 마찬가지로 세계무역센터를 마주한 채 엔딩크레딧을 올리는 스필버그의
<뮌헨>과 유사한 여운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를 통해 가능한 마법이란 이런 것이기도 하다. 사라진 시대의 공기 속에서 호흡하고 잊혀진
것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 놓는 소환술.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그럴 수 있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바로 그런 영화다. 하늘을 걷는 남자와 함께 그 시대를 걷고 호흡할 수 있는,
마술적 체험의 영화. 마음이 벅차 올랐다.
<검은 사제들>을 보고 나서 설레발을 주체할 수가 없어졌다. 지쟈스 크라이스트. 어쨌든 본격 설레발 시작.
<검은 사제들>은 전율이란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체험시킨다. 사실 한국에서 이렇게 우아하고 강렬한 게다가 한국적인 엑소시즘 영화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사제들>은 국내 장르물의 새로운 한 뼘을 정복한, 오롯이 홀로 선 수작이다. 무엇보다도 엑소시즘을 기반에 둔 오컬트 호러를 국내산 로컬 엑소시즘으로 건져낸 느낌인데 결과적으로 월척이다. 웹툰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장르적 느낌을 실사로서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최후반부에 판을 살짝 키운다는 느낌은 있지만 딱히 거부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수입산 장르 코스프레물이 아니라 국내산 배양에 성공한 느낌.
무엇보다도 장르물에 성장드라마의 서브 플롯을 잘 녹였고, 캐릭터물로서도 상당한 매력이 있다. 전반적인 연출 리듬도 상당히 좋다. 특히 본격적인 엑소시즘 초반 신은 정말 매혹적이었달까. 빠르게 컷을 편집해 이어붙이면서도 슬로 템포로 카메라 앵글을 틀면서 줌인아웃을 거듭하는데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차분하고 세련된 리듬감으로 평온한 몰입감을 보장하는 느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신만 떼서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음. 각본과 연출이 모두 괜찮은 인상인데 이 모든 것이 장재현이라는 신예 감독의 물건이라니, 이게 온전히 그의 역량을 뿌리 삼아 나온 결과물이라면 정말 그 이후를 닥치고 기대하겠다.
캐릭터 연출과 연기가 상당히 좋다. <검은 사제들>을 집에 빗대면 김윤석은 기본적인 골조의 틀을 잡아주고 강동원은 그 구조 안에 탁월한 풍경을 마련해주는 인상. 그리고 영신 역의 박소담은 그 풍경 안에 자리한 강렬한 소품. 사실상 캐릭터의 세기만으로 배우의 역량이 과대평가될 수 있는 배역인데 그 한계를 뚫고 스크린에 이름 석자를 박는 느낌. 그야말로 발견. 단언컨대 그녀는 새로운 바람이 될 것이다.
이미 알았지만 <검은 사제들>을 보고 백퍼 확신. 강동원은 그냥 그 자체로 장르다. 비현실, 초현실, 초자연은 다 강동원이란 이름 석자 앞에서 긍휼해진다. 강동원이란 필터를 거치면 판타지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걸러짐. 지쟈스 크라이스트 강동원느님. 앞으로 강동원의 모에가 되겠다.
이미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꼽히는 케이트 윈슬렛은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진화를 거듭하는 배우다. 그녀는 여전히 배우로서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줄 작품을 찾고 있다.
“나는 열셋 혹은
열네 살 때부터 항상 실제보다 나이를 더 먹은 것처럼 느꼈다.” 영국 출신으로 11세 무렵부터 연기를 배운 케이트 윈슬렛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그녀의
연기 데뷔는 13세가 된 1991년 영국의 TV시리즈물을 통해서 이뤄졌다. 스크린 데뷔작도 10대가 지나기 전인 17세에 찾아왔다. 지금은 할리우드의 대가가 됐지만 한때 B급 장르물의 대가로서 악명이
자자했던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1994)이
바로 그것이었다. 끔찍한 실화를 밑그림으로 삼고 있지만 광기적인 판타지로 채색된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두 소녀의 기괴한 우정이 끝내 한 소녀의 어머니를 살해하기까지의 내용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친구의 엄마를 살해하는데 조력하는
폴린 역으로 등장하는 윈슬렛은 나이에 비해 조숙한 외모만큼이나 섬뜩한 연기력으로 눈길을 끌었고,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삼촌까지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배우로서의 삶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겐 확실히 타고난 유전자가 있었던 것 같다.
윈슬렛은 제인 오스틴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에서 연기한 마리안 대시우드 역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러니까 10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케이트
윈슬렛은 배우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에 근접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윈슬렛에게 있어서
그건 이른 경험이라기 보단 시작에 가까웠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이후로 윈슬렛은 시대극의 경력을 이어나갔고,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냈다. 19세기 영국에서 대담한 주제를 소설로 담아냈던 토마스 하디가 남긴 마지막 소설을
영화화한 <쥬드>는 종교적인 관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19세기 영국을 배경에 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다. 자신의
사촌을 사랑하게 된 여인 수를 연기한 윈슬렛은 애절한 사랑을 가로막는 시대적 한계를 절감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여인의 가련하고도 강인한 표정을
완벽하게 체화해냈다. 한편 같은 해에 공개된 <햄릿>(1996)에서는 그 유명한 오필리어를 연기한다. 아버지를 잃고
미쳐버린 뒤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오필리어의 광기에 압도적인 페이소스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타이타닉>(1997)에서도 비극과 대면하는 여인의 세계관은 거듭 이어졌다. 필연적인
비극을 향해 항해하는 배 위에서 자신이 꿈꾸는 삶과 사랑을 선택하는 열정적인 여인 로즈를 연기했다. 윈슬렛은
그렇게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여인으로서의 운명을 연기하는데 능했다. 혹은 능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윈슬렛이 연기한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시대적 편견이나 관습을 견뎌내야 하거나 평범한 삶에 깃든 내밀한
욕망을 향해 손을 뻗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케이트 윈슬렛은 고요하면서도 강인하고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혁명
이후로 도래한 삼엄한 공포정치 속에서 금기시된 음란소설에 탐닉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여인 마들렌으로 분한 <퀼스>(2000)와 무료한 삶에 찾아온 예기치 못한 불륜에 빠져드는 여성 사라를 연기한 <리틀 칠드런>(2006),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독일의 첩자로 내몰리게 된 여인 한나를 연기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그리고 안온하게 위장된 권태로운 삶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살아가는 여인 에이프릴로 등장한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까지, 이 모든 작품에서 윈슬렛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인 각기 다른 여인을 연기하면서도 결국 ‘나’라는 존재 혹은 ‘나’라는 여성에 대한 자문을 거듭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 혹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대적 금기의 담을 넘거나 위장된 삶 너머로 시선을 돌린다. 이는
근작인 <레이버 데이>(2013)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공황장애로 인해 세상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키며 유일한 가족인 어린 아들에게 기대며 살아가는데 우연히 맞닥뜨린
탈옥수로 인해 기이한 방식으로 삶을 회복해 나간다. 불안하고 예민한 심리에 묶여 깊게 침전해있던 여성으로서의
욕망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라 그녀에게 현실적인 의지를 부여한다. 금새 꺼져버릴지라도 가장 밝게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 타오르는 성냥과도 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의 가련한 슬픔과 강인한 의지가 동시에 전해진다. 윈슬렛은
바로 그런 배우였다.
<어 리틀 카오스>(2015)를
통해 오랜만에 시대극으로 돌아온
그녀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 디자인을 맡기 위해 경쟁하는 정원사 사빈 역을 맡았다. “사빈느와 나 사이엔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녀는 일생 동안
큰 슬픔과 어려움을 여러 번 이겨냈고, 내 삶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녀가 그 모든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실에 있어 존경심이 든다. 그녀는 슬픔을 질질
끌고 가지 않았으며, 세상이 그녀를 불쌍히 여길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매우 긍정적이고 흥이 많다. 시대극에서 이러한 캐릭터를 많이 만날 순 없지.” 사빈은 윈슬렛이 연기했던 시대극 속의 여자들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했다. 한편 <타이타닉> 이후로
대작 출연을 고사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상업영화 출연 경력이 드물었던 그녀는 최근 SF시리즈물인 <다이버전트>(2014)와 <인서전트>(2015)에 연이어 출연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그녀 스스로 새로운 경력의 필요성을 느낀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독립영화를 하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작품 이후에 항상 얼마나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려한다. 내게 도전이 될 수 있는지, 영감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보다 내 직업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인지 말이다.” 그녀에게 상업적인 할리우드 대작이 도전이 되고, 영감을
줄만한 때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상당히 운이 좋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비범한 것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자극을 주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윈슬렛은
실패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경력을 좀처럼 쌓지 않았다. 이미 이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녀의 전성기는 아직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그녀는 길을 찾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로서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도전과 영감의 길 위에서,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이름으로.
이준에게 있어서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는
이제 철 지난 풍문 같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무용도 하고, 아이돌도
됐던 이준은 이제 연기만 한다. 드디어 배우가 됐다.
<밀회>를 낳은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의 <풍문으로 들었소>(이하: <풍문>)는 주연과 조연을 막론한, 배우들을 위한 발견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준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절대권력을 주무르고, 집안에서도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한정호의 슬하에서 희대의 반역을 선도하는 아들 한인상을 연기한 그는 ‘아이돌 출신 배우’에서 ‘배우’로, 자신의 수식어를 더욱 간결하게 매만지는데 성공한 인상이다. 사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수식어는 낙인과 같다. 팬덤을 등에 업고 손쉽게 기회를 얻어냈다는 혐의와 연기력에
대한 의심이 뒤엉킨 편견이 형성된다. 결국 배우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편견의 중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준은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무중력 상태로 띄워 올렸다. 중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졌다. 스스로에게조차 발견이나 다름없는 성과였다. “처음엔
의아했다. 한인상은 순수하고, 모범적이면서도 억압된 캐릭터인데
나는 자유분방하고 ‘날티’가 나 보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나를 발전시켜보자고, 성공하면 나로선 굉장한
이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그만큼 배우로서의 욕심도 자라났다. “항상 욕심은 많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풍문>에서보단 더 잘하고 싶다.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진 몰라도 최소한 퇴보하는 모습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 많이 경험하고, 더욱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준은 오래 전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길 희망했다. “연극영화과를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진학상담 선생님의 면박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당장 진학이 가능한 건 무용과 정도뿐이었다. 그래서 무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춤을 추면서 어울렸기 때문에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서울예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서울예고에 연극영화과는 없었다. 그래서
계속 무용을 했다. 그리고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로 진학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학교를 휴학했다.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나 싶어졌다. 내가
원래 하나에 깊게 빠지는 편인데 무용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4년이 지났더라.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게 그때 기억났다. 그래서 당장 휴학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해가 안가는 짓이다(웃음). 담보 하나 없이 중단한 거니까.” 그렇게 이준은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틈틈이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낙방을 거듭했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비를 만났고, 비와 함께 할리우드로 갔다. <닌자 어쌔신>에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 연기 데뷔작을 찍게 될 것이라곤 이준
스스로도 예감하지 못했다.
“급하게 과외를 받았다. 연기
선생님과 영어 선생님을 붙여서 개인 교습을 받았는데 내가 영어는 못했지만 발음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주입식 교육을 시키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웃음).” 쉽게
말하면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준이 6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한 비결이 단순히 좋은 영어 발음일 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할리우드가 그렇게 만만한 곳일 리도
없다. <풍문>을 보다 입체적인 드라마로 만들어준
건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조연배우들이었다. 그들은 이준의 연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 연기를 배우지 않은 애처럼 연기하는 구나. 그런데 그
안에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게 네 장점일 거야.” 스스로
‘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준에겐 기본적인 끼,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는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용할 때에도
무용엔 답이 없다고 느꼈다. 연기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아직까지
연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관객에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배우라고 할까?” 사실 이준은 일찌감치 연기를 공감대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연기의
‘연’ 자도 모르지만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던 이준은 ‘따라하기’를 통해 자신만의 연기적 훈련을 매진했다. 대단한 건 아니다. 인터넷으로 대본을 찾아서 나름대로 실감나게 따라
읽는 것 그리고 배우의 감정을 의심하는 것. “지금 기분이 괜찮은데 어떻게 기분 나쁘게 화를 낼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혼자서 막 화를 내기도 하고, 좀
이상하지만(웃음).” 뛰어난 기교를 익힐 수 있는 훈련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배우가 구사하는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공감대 정도는 일찍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준은 최소한 배우는 자세가 된 배우였다.
“작품을 끝내면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이 보다 오랫동안
남는다. 결국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실 어렸을 땐 생각이 없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다시 단순해질 수 있을 것도 같다. 자동차에서도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더라(웃음).” 해석하자면 배우로서
보다 욕심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그럴만하다. 사실 이준이
처음 배우로서 주목을 받은 건 영화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갑동이>를 통해 배우로서의 궤도를 찾았다. 그리고 <풍문>은 이준이라는 배우가 지닌 가능성의 뒷면을 드러낸
작품이다. 과장된 세기로 치장한 캐릭터가 아닌 일상적인 평범함도 어울리는 배우라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그건 그 누구도 아닌 이준이 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계산하지 않고, 매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계산하게 되면 피곤해질 거다. 사실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라서(웃음). 그리고 본래 나는 뭔가를 할 때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지금 당장 모든 에너지를 쏟는 편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작품을 할 때도 매 신마다 가진 에너지를 다 투자한다. 그러려고 한다. 그래야만 뭔가를 해낸 거 같다.” 피해가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피해가지 않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어쩌면 그렇게 에둘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른 길을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풍문> 현장에서
이준은 안판석 감독에게서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어서 그랬다기 보단 현장 분위기가 항상 긴장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긴장하지 않으면 연기도 이상해진다. 항상
정신 차리고 긴장의 끈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긴장을 요구하는 건 단순히 배우로서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이 직업이 항상 잘될지 알 수 없으니까 살아남기 위해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남의 탓을 하기보단 스스로의 실패를 인정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거 같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거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니까 그에
따른 책임도 내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걸 잘 아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이준은 그렇게 배우로서 방금
막 첫 장을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타이밍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직하고 명확하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맞고'와 '틀리다'보단 '지금'과 '그때'가 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두 개의 지금 혹은 두 개의 그때. 결국 지금이라서 맞고,
그때라서 틀린 것. 이것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옳고 그른
것으로 판명해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언제나 지금은 맞지만 언젠가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마술적 흐름에 관한, 굉장히 사소한
발견의 깊이.
완전히 분절된 데칼코마니 형태의 출발점에서 제각각 시작되는 두 개의 이야기. 홍상수
감독 특유의 대구 구조를 개별화시킨 두 영화는 하나의 시작을 품었으나 두 개의 우주로 분리된다. 아마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전형으로 구별될만한 작품일지도. 개인적으론 <옥희의 영화> 이후로 또 한번의 전환점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시점으로 분리시킨 두 가지 삶의 체험. 정말 놀라운 영화적
경험. 사소한 일상의 톤으로 길어 올린 마술적 리얼리즘. 나는
이 영화에 어떤 찬사도 아끼고 싶지 않다. 놀랍다는 말도 부족하다.
정재영은 두 사람 몫을 하며 영화의 너비를 확장하고, 김민희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의 경계를 만든다. 두 개의 정재영과 하나의 김민희가 이 영화의 대구를 완성한다. 두 방향으로서 완전한 하나의 영화.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영화라는
체험이 삶을 어떻게 예언하는가, 삶을 어떻게 반추하는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두 가지 질문에 합당한 답을 모두 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현재는 언제나 옳게 합리화되고, 과거는 언젠가 틀려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인간이다. 부끄럽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게 당연하다.
<탐정: 더 비기닝>은 버디무비로서의 장점이 강한 작품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케미가 나쁘지 않다. 덕분에 웃음을 유발할만한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발휘된다. 능력 없는 민폐 남편이자 구박덩어리로 전락한 권상우의 찌질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성동일 역시 사회와 가정에서의 이중적인 위세를 지닌 인물이란 점에서 코믹한 극적 장치가 된다. 물론 이게 남성편향적으로 설계된 코미디란 점은 좀 지적하고 싶어지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란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탐정>이라는 제목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형편 없는 만듦새를 전시한다. 전설적인 강력계 베테랑 형사와 아마추어 추리광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골자는 흥미롭지만 베테랑 형사는 그 경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능하고,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민폐 덩어리다. 추리를 한다기 보단 완성된 시나리오를 토대로 추리를 끼워맞춘다는 인상이랄까. 추리물이란 장르 안에서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기이할 정도의 자신감이 묘할 정도.
의외로 이 영화에서 재미있게 여겨지는 건 사건현장이 아니라 각자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부부끼리의 사연이다. 밥벌이에 무능하든, 유능하든 아내보다 약한 남편들의 고충을 나누는 광경이나 밥벌이 제쳐두고 탐정질에 환장한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 연기를 하는 서영희의 연기는 <탐정>에서 쓸만한 서브 플롯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최소한 납득이 가는 추리물로서의 구색을 맞췄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관람을 권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어설픈 슬랩스틱 따위로 범벅된 쌍팔년도 명절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의 특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코미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은 평가해주고 싶다. 그런 면에선 팝콘무비로서 가볍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객들에겐 미덕이 없는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못하겠단 거지.
영화가 흥행한다면 누가 봐도 속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결말이다. 이미 제목부터 '더 비기닝'이란 부제를 품고 있으니 당연히 결말에 대한 야심이 팽배한 것 같은데, 과연 어떨지. 전통적인 관점에서 추석에 먹힐 영화처럼 보이긴 한다만.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카메라 앞에 선 이민기와 여진구는 유쾌하게
웃고, 떠들고, 소리쳤다.
열두 살이란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마치 함께 하니 무서울 것이 없는 친구 같았다.
이민기와 여진구를 만난 건 지난 8월의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과의 만남은 이미 반년전의 일이란 말이다. 그 당시
두 사람은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촬영을 막
마친 뒤였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서
조우한 스물다섯 청춘의 혈기왕성한 탈출극이다. 사실 띠 동갑인 이민기와 여진구는 카메라 앞에서 슛이
들어가는 순간 둘도 없는 동갑내기 친구가 됐다. 이제 막 30대의
문지방을 넘어선 배우와 20대의 문턱에 다다른 배우의 만남이란 생각은 손쉽게 지워졌다. 마치 2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처럼 유쾌하고 개구진 활기를
스튜디오에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의 목소리는 각기 진중했다. 각자의 시절에 어울리는 무게의 고민이 발음되어 귓바퀴로 감겨 들어왔다. 물론
우울하진 않았다. 해가 막 저물 즈음 시작된 촬영과 인터뷰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문장을 써내려 가는 지금은 12월의 겨울이다. 이제야 비로소 이민기와 여진구가 함께 달궜던 지난 여름의 기억을 전한다.
이민기,
Never Stop
30대의
문턱은 확실히 지났다.
<내 심장을 쏴라>까진
나의 20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로 20대를 마무리해서 좋았다. 내가 연기한 승민이와 같은 스물다섯 살에
원작을 읽었는데 그 시절에 좋은 메시지를 준 책이다. 그래서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참여할 수 있길 바랬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영화를 만난 걸 고맙게 생각한다.
<몬스터>와 <황제를 위하여>로
연이어 극악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전까지의 이미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인상이었는데 그런 과정을 관통하고
나서 얻은 것이 있을까?
내게 있어서도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내게 그런 표정이 있는지,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해봐서 알았던 거지. 써보지 않으면
모를 감정이니까. 연기가 아니면 일상에서 써볼 일도 없는 감정이고. 흥행의
성패를 떠나 배우로서 확실히 영향을 받게 된 영화들이다. 그 직후에 승민이를 만나서 더욱 애잔한 마음으로
빠져들었다.
승민이가 극악한 캐릭터들의 탈출구가 된
걸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내게 주는 감동이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흔들리는 부분에 대한 고민과의 접점이 많았다.
고민이라면?
배우란 직업이 내가 사는 삶의 일부여야 할 거 같은데 반대로 배우라는 일에서 벗어나면 내 삶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내 인생이 넓어졌으면 좋겠는데 직업을 벗어나면 내 인생이 작게 느껴지는 거지. <내 심장을 쏴라>에서 ‘내 시간 속에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것. 그게 나한텐 삶이고 사는
거다. 난 죽고 싶지 않다’라는 대사가 내겐 와 닿는 거다.
승민처럼 나름의 결핍을 느끼는 건가?
연기를 하지 않는 순간의 나 자체가 결핍이다. 연기를 할 땐 좋다. 내가 할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작품을 떠나면 뭘 위해 사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다음 작품을 위해서? 그런 면에서 승민이가
와 닿았다.
그런 생각은 얼마나 지속됐나.
길진 않았다. 예전엔 작품을 해내기 바빴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충족되지 않음을 느꼈다. 20대 중반쯤에 이명세
감독님께서 이런 얘길 해주셨다. “쉬는 것도 잘 배워야 된다.” 쉬면서
충전 잘하라는 의미쯤으로 여겼는데 언젠가부터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해법도 알게 됐나?
20대 초반에 지닌 에너지와 지금의 에너지는 다르다. 에너지 넘치는 20대엔 다양한 것에 빠져들었다면 이젠 내 길을 알고자
하는 게 명확해졌다. 아무래도 20대 시절보단 에너지가 약해졌으니
내 시간을 잘 써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실제보다 어린 나이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어땠나?
회춘하는 기분(웃음)? 사람이
확실히 감정의 지배를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런 정신 상태가 되니까 신체적인 느낌도 어려지는 거 같더라.
나이보다 젊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건
아직 괜찮은 일일 거 같다
결국 자기 무기가 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의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마흔이 됐는데 스물다섯 같은 느낌이 나면 안되잖아. 반대로 스물다섯에 마흔 같은 느낌이 나도 이상하고.
상대배우가 남자일 때와 여자일 때의 차이가
있을까?
<황제를 위하여>에서 (박)성웅이 형이랑 할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남자끼리의 소통이 편한
지점이 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사고의 패턴이 비슷하니까. 그런데
막상 남자배우랑 하다 보면 여배우가 그립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웃음).
띠동갑인 후배와 호흡을 맞추며 느낀 건?
내가 봤을 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세상의 위치로
보면 어른이니까 가끔 어른이라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진구가 종종 ‘나중에
어른이 되면’이라고 할 때마다 깨달았다. ‘아직 나 어른
아니지.’ 그러면서 ‘그때 내가 그랬지’란 식으로 떠오르는 과거들이 생겼고, 어느 순간 그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기억나더라.
승민과 수명은 대비적인 캐릭터이지만 결국
서로를 위한 성장판 노릇을 한다.
<내 심장을 쏴라>는
궁극적으로 진구가 연기한 수명이의 성장드라마다. 수명이를 성장시키는 건 승민이다. 관객은 수명이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될 거다. 승민이의 액션에
수명과 관객들이 리액션하는 셈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명이가 액션을 하고, 승민이가 리액션을 하는 구도로 변한다. 수명이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장한 수명이가 승민이도 성장시킨다. 나는 승민이와 수명이가
기본적으로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승민, 수명,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히는 이름이지만 ‘ㅅㅁ’이라는 자음의 공통점도 있다. 다만 승민이는 자기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외향적인 편이고, 수명이는 솔직하게 다 드러나는데 자기 안으로 숨으려 한다. 그렇게 다른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을 오래 전에 봤다고 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일까?
‘많이’라는 기준은 모호하고
좋아한다고 얘기할 순 있겠다. <내 심장을 쏴라> 촬영하면서도
다섯 권은 읽었으니까.
많이 읽었네.
전주에서 할 일이 워낙 없더라(웃음).
진구랑 한잔 할 것도 아니고. 다만 책을 일처럼 읽진 않는다.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인데 지치게 해버리면 책이 싫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책을 읽기 피곤하면 덮고 영화를 본다. 영화는 틀어놓고 보면
되니까. 하지만 영화만 보면 살짝 게을러진 기분이 든다. 그럴
땐 책을 본다.
끊임없이 책이나 영화를 봐야 하나.
불안한 거지. 주어진 시간 안에 가능한 만큼 쌓아야 하니까. 사실 봤다고 해서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다.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 노력과 시간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 안에 축적될 거다. 영화를 세 편 봤으면 여섯 시간을 쓴 건데 그 여섯 시간은 최소한 내게
남아있을 거다. 다만 일과 무관한 취미가 있으면 좋겠다. 온전히
날 위한 것이랄까. 그게 옛날엔 음악이었는데 앨범을 내고 일이 되니까 어쩔 수 없더라(웃음).
여행은?
20대 초중반엔 혼자 여행하는 게 좋았다. 타던 오토바이도 팔아서 여행 가고 그랬으니까. 낯선 곳에서 얻는
새로운 경험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반복되니까 단기간의 여행으로 느낄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해지더라. 더 새로운 걸 느끼려면 오래 머물러야 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니 점점 외부의 자극보다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 하지만 내게 집중하다
보면 결국 외롭다.
그래서 영화와 책으로 여행을 하는 건가.
빨리 여행을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할지도.
연애를 해야겠다.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
언제 갑자기 파파라치컷에 찍히는 거 아닌가.
그러면 이제 막 시작했나 보다 생각하면 된다(웃음).
이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엔 한 해가 다
지나갔을 거다.
인터뷰는 기록이란 점에서 좋다. 옛날에 했던 인터뷰를 보면 옛날에
이런 생각을 했구나 깨닫게 된다. 변화가 느껴진다. 평소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래서 좋다.
여진구,
Keep Going
<화이>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좋은 평가도 많이 얻었다. 칭찬 듣는 기분은?
감사하면서도 부끄럽다. 혼자 잘해서 그리 된 게 아니니까 옆에서 도움
주신 분들이 생각난다.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거다. 부담되진 않나?
부담보단 약간의 책임감을 느낄 때는 있다. 전보단 나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책임감. 그래서 다시 칭찬을 받게 되면 그만큼의 책임감을 더 느낄 거라 생각한다. 만약 냉철한 비판을 받게 된다면 그 역시 가슴 속에 깊게 담아두고 생각하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심장을 쏴라>의 원작은 봤나?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소설을 읽었다.
정유정 작가가 현장을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이야기한 건 없었을까?
수명이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다고 했더니 작가님께서 “그냥 수명이란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겐
뭔가 숙제 같은 말이었다. 똑똑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감사했다. 많은 설명을 듣는 것보다 하나의 포인트를 짚어주시니까
그걸 두고 많이 생각하게 됐고, 그로부터 다양하게 유추할 수 있는 수명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맡은 수명은 무려 스물다섯 살이다.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게 두려워서 내면으로 기어들어가는 인물인데 연기하면서 우울하진 않았을까?
사실 나와는 다른 캐릭터라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래서 촬영장 안에선
조금 우울할 때가 있었지만 촬영장을 벗어나면 크게 느낄만한 변화는 없었다. 나는 오히려 이민기 선배님이
연기한 승민 쪽에 가까운 성격이기도 하고. 나는 원래 밝은 편이다.
사실 좀 과묵해 보인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낯은 조금 가리지만 친해지면 서슴없이 밝아진다.
이민기 씨와는 띠동갑이라던데, 캐릭터상으론 동갑이다.
아무래도 내가 후배이니까 먼저 가서 인사를 드려야 되는데 낯을 너무 가리는 편이라 걱정했다. 동갑내기로 나오니까 친해져야 할 거 같은데 가능할까 싶었다. 역시나
나는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형이 먼저 다가와서 편하게 하라고, 마음 놓고 반말하라고 말해주셨다. “너랑 있어서 내가 많이 젊어진 것 같아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같이 있다 보면 형이 나를 동생으로 봐주는 게 아니라 친구로 받아주는 거 같아서 고마웠다.
그런 어른들과 어울리다가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친구들과 지내는 건 그냥 재미있다. 같이 장난치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아! 이해할 수 없는 게 딱 하나 있었다. 한창 아웃도어 브랜드 패딩이 유행한 적 있지 않았나. 그게 왜 학교에서
유행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추워서 입는 건 이해한다. 촬영
현장에서도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패딩을 입고 있고. 하지만 그 등산용 패딩이 유행감은 아니었던
거 같다(웃음).
만약 영화에서처럼 어딘가에 갇힌다면 적극적으로
싸울 것 같나.
승민처럼 옆에서 봐도 답이 없다 싶을 정도로 맞서진 못했을 거 같다.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면서 붙지 않았을까.
스무 살이 넘으면?
운전면허증은 따고 싶다. 상황이 된다면 간단하게 여행도 가고 싶다. 친구들과 함께 배낭여행 정도. 되도록이면 많은 걸 경험해보려 한다. 간접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
수명이란 인물에게서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없었나.
항상 왜 숨으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방면에서 자신을 숨겨야 했을까 싶더라.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얘기했다. 다른 부분은 어느 정도씩은 이해가 되는데 그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 자기 주장이 확실한 편인가.
옳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친구들하곤 뭐하고 놀까?
평범하다. 운동하거나 게임하거나.
운동도 좋아할 것 같다.
여럿이서 같이 하는 건 좋아하니까.
잘하는 편인가.
남들보다 월등한 건 아닌데,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팀을
짤 때 두세 번째로 선택 받는 정도?
액션 연기에 관심은 없나?
가끔 히어로물 보면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쉽게 상상은 안된다. CG가
많이 들어가니까 없는 것도 있다고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데 저 배우들은 어떻게 저리 잘할까 감탄한다.
<내
심장을 쏴라>에선 주로 맞는 쪽인데.
맞는 것도 재미있다. 몸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내년이면 고3이다. 대학 진학은?
하고 싶다. 대학생활을 통해 얻는 감정도 있을 거 같고.
가고 싶은 학과는?
뚜렷하게 정하진 않았다. 연기에 도움이 되는 학과를 가고 싶지만 좀
더 여러 가지 길을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주변에선 당연히 연기학과에 진학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아무래도 그렇다.
연기 외에 관심 있는 분야는 없나.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 촬영할 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악기 하나
배워두면 혼자서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어릴 땐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많지 않나. 연기도 그 중 하나였다. 부모님께선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해보라고 하시는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다. 아무래도 어릴 때니까 지금처럼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보단 영화나 TV에
나가보고 싶단 생각이 컸을 거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
가끔 한다. 물론 배우로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배우가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볍게 생각해본 정도?
진로에 대해 부모님과 특별히 상의해본 적은?
일단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진로가 뚜렷하게 정해진 부분이 있다 보니 심각하게 얘기할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그냥 배우로서 뭔가를 더 해봐야 할지, 자기 계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불안할 때는 없나.
그에 대해선 확실한 대답을 얻었다. 내가 매진하는 만큼 이 일이 나를
배신하진 않을 거 같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 역시 이 일에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을 것 같고. 지금처럼 열심히 연기하고, 연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면 계속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궁금한 건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나.
되도록이면 많은 이야길 들어보고 판단한다.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을 더해서 내 역할에 어울리는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어필할 수 있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많다. 아직 해보지 못한 역할이 워낙 많으니까. 지금 나이에 어울리는 하이틴 멜로를 찍어보고 싶고, 운동선수 역할도
해보고 싶다. 악역도 해보고 싶고.
클라라라는 이름이 익숙해진 건 불과 1년 남짓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클라라라는 발음하는 것 너머의 클라라는 아직 낯선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클라라가 대답했다.
본명이 이성민인가?
사실 클라라가 본명에 가깝다. 내가 태어난 스위스에서부터 썼던 이름이고, 가족들도 클라라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성민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보다 클라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게 심적으로도 편할 거 같다.
맞다. 그냥 나 자신으로 활동하고 싶어서 선택한 이름이 클라라였다. 사실 8년간의 무명 시절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억누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표출해보자는 의미에서 2012년부터 이성민 대신 클라라로 활동했다. 그런데 클라라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클라라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일단 이성민이란 이름 자체를 아무도 못 외우더라. 얼굴과 매칭도 안 된다고(웃음). 오디션에서 감독님들로부터 이름 바꾸란 말도 많이 들었다.
아이돌 이름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래서 이성민으로 활동했다.
<워킹걸>의 크레딧엔 어떤 이름이 올라갔나?
클라라. 이성민은 이제 없다(웃음).
<워킹걸>에서 섹스용품점 사장을 연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어울린다.
어떤 면에서?
섹스어필한 이미지 자체만으로.
감사합니다(웃음). 일단 여자로서 칭찬으로 들린다. 그런 매력이 있는 건 장점이니까. 캐릭터와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배우 입장에서도 좋고. 물론 연기력도 좋단 이야길 듣게 되면 더 좋겠지.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선 부담스럽진 않나?
어차피 선입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서운함을 느낄 때도 있을 텐데.
괜찮다. 그런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절반이라면 반대로 생각하는 분들도 그만큼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소위 말하는 ‘멘탈갑’이다.
완전 갑이지(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보다 정확하겐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형성된 계기가 있을까?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일본에서 큰 지진이 났을 때 도쿄 호텔에 있었다. 혼자 여행을 갔는데 호텔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그 뒤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행복하게 살 시간도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모든 게 소중해지더라. 그 이후론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편인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싫다. 얼굴 찡그리고, 기운 없어지고, 신경질 내고, 결국 자기 손해잖아.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나부터 편해지고 남에게도 나쁜 인상을 보일 필요가 없어진다.
작년에 했던 프로야구 시구가 경력의 발판이 됐다.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까?
시구를 하면 보통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뜬다. 그래서 나를 알릴 순 있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공도 잘 던지고, 내가 돋보일 수 있는 의상도 준비해야겠다고. 관중석에선 내가 손가락보다 작게 보일 텐데 어떻게 입어야 눈에 띌까 고민했다. 게다가 옷에 따라 던지는 폼도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하지만 레깅스 덕분에 나름 잘 던진 시구가 묻혔다.
조금 서운하긴 했다(웃음). 사실 경기 3일 전에 갑자기 대타로 섭외된 거라 준비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연습하면 될지 물어보니까 다들 한 시간 전에 경기장에 가면 선수가 가르쳐줄 거라고만 하더라. 평생 공을 던져본 적 없는데 한 시간만 배워서 어떻게 해. 수소문 끝에 선수 한 명을 섭외해서 배웠는데 지금까지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가?
운동은 좋아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좋다.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그런 게 재미있다.
승부욕은?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보단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한가지 일을 두고도 다방면으로 생각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인데 튀려고 애쓴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을 거 같다.
그 시구 이후로 1년 정도는 그랬다. 하지만 그 뒤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해주는 팬이 생겼다.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니까 진심이 통한 거 같다.
연예인이란 직업은 적성에 맞나?
예전엔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렇다. 요즘은 일이 많고 피곤함에도 재미있게 느끼는 걸 보면 확실히 적성에 맞다.
배우가 되려고 생각한 계기는?
우리 엄마. 미국에 있는 동안 한인 축제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SM과 JYP 관계자에게 명함을 받았다. 이를 엄마에게 말하니까 이 참에 한국에 가서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원래부터 내가 배우로 활동하길 바랐다. 어릴 때부터 끼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조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때 엄마를 따라 다시 한국에 왔다.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고.
스위스에서 태어났다고.
맞다. 두세 살 무렵 한국에 왔다. 당시 아빠는 ‘코리아나’ 활동으로 바빴고 엄마는 아빠 내조로 바빴다. 그래서 부모님과 산 기억은 별로 없다. 친가, 외가를 전전하면서 자랐으니까.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과 처음으로 같이 살았는데 6학년 때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무래도 그 덕분에 자립심이 생겼나 보다.
TV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안 좋아진다면서 우는 모습을 봤다.
그냥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인 거 같다. 사춘기 시절의 서운함, 외로움, 허전함이 떠오른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 손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동딸이라 혼자 자란 탓인지 애도 많이 낳고 싶다.
<패션왕 코리아 2>에 최범석 디자이너와 함께 조를 이뤄서 출연했는데.
1등한 것 좀 써달라. 소문이 너무 안 났다(웃음).
시작부터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정말 우승했다.
그 동안 워스트 패션으로 많이 선정됐다. 그런데 <패션왕 코리아>에서 우승한 거니 패션킹이 된 거 아닌가. 그 자체가 뿌듯하다.
미국에서 패션학과에 입학했는데 졸업은 못했더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선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공부는 언제든 하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지만 연예계에서의 기회는 늙으면 없어진다고, 한창 예쁠 나이에 데뷔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인생에서 큰 문을 열어준 셈이다.
무명 생활을 하면서 후회되지 않던가.
후회됐지. 졸업하고 와도 스물세 살이었으니까 늦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런데 처음엔 운이 좋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 시계 브랜드의 얼짱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해서 CF모델로 활동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작품도 하고 계속 바빴다. 그래서 후회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데뷔한지 5년이 지나갈 때도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만큼 쌓아온 것마저 잊혀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다가 8년이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10년 채우자고 마음 먹은 뒤 이름도 클라라로 바꿨다.
올해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고 했는데, 꿈을 이뤘다.
말은 계속 내뱉어야 하나 보더라. 스스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고 싶다고 일부로 소문을 내고 다녔다. 불러달라고(웃음). 아무래도 <워킹걸>이 있으니까 가능했겠지. 사실 2013년에 <라이크 어 버진>이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레드카펫을 구경했는데 ‘내년엔 꼭 서야지’라고 다짐했다. 정말 꿈이 이뤄지니 너무 좋았지.
배우로서 배우들을 구경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닐까?
눈치를 안 보는 편이다. 눈치 보면 하고 싶은 걸 많이 못하게 되고 그럼 인생이 재미없어진다. 하고 싶은 건 해야 된다.
그래도 용기가 필요한 일 같다.
어떤 면에선 슬픈 일이지. 그런데 직접 보니까 오기가 생기더라. 더욱 레드카펫에 서고 싶다는 생각?
혹시 조언은 잘 듣는 편인가?
좋아한다.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길 건 새기고, 거를 건 거르고, 이건 다 내 몫이다. 악플도 다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욕만 빼고(웃음). 하지만 욕도 나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노출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다. 배우로서 제대로 증명한 것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증명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질 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킹걸>이 중요해 보인다. 일단 난희라는 캐릭터는 겉으론 프로이지만 허당에 가까운 쑥맥녀다.
섹스용품점 사장 역할을 선뜻 선택한 게 의아하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난희는 내면을 보면 매력 있는 캐릭터다. 겉으론 과감해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사랑도 못해봤고, 가족에 대한 아픔을 지닌 여자다.
섹스용품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었을 텐데.
그냥 구경 정도? 익숙해지고 잘 어우러질 정도로(웃음)?
어떻게 어우러진 건지 궁금하다(웃음).
영화를 보면 안다(웃음).
항상 웃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 그런 괴리를 느낄 때는 없나?
당연히 있다. 로봇이 된 기분이나 기계처럼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그래야 나도 대중들에게서 행복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 ‘Fear’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그전에 ‘하우스룰즈’와 ‘Invitation’이란 노래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는데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팬미팅을 준비하면서 분위기를 업 시켜줄 DJ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하우스룰즈의 서로 씨가 왔더라. 팬미팅이 끝나고 인사하면서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하시라고 했더니 곧 하우스룰즈의 신곡이 나오니까 피처링을 해달라는 거다.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는데 좋다더라. 그래서 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런데 음악프로그램에서 출연 섭외가 왔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무대에 서니까 떨린다기 보단 너무 즐거웠다. 시구할 때도 그랬다. 나는 즉각적인 호응에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 것 같다. 이번에 발표한 ‘Fear’는 미국에서부터 알고 지낸 뮤지션의 제안으로 하게 됐는데 힙합이라 좀 고민했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게 좋아서 결정했다. 그런데 중국 뮤직비디오 차트에서 12위를 했다고 해서 좀 놀랐다.
중국에 알려질 계기가 있었을까?
중국에서 <응급남녀>의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 최근에 중국에 다녀왔는데 다들 내 이름도 알더라. 너무 신기했다. (송)지효 언니와 최진혁 씨가 팬미팅을 다녀왔단 이야긴 들었지만 나는 모를 거라 생각했으니까. 기회가 되면 중국 활동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새로운 계획은?
1월 중엔 홍콩에서 영화를 찍는다. 단편인데 홍콩필름페스티벌 초청작이다. 처음으로 영어 연기를 한다. 1월 중엔 미국에서도 미팅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액션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
일찍이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일본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해외 활동 기회가 심심찮게 찾아온다.
여러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 아빠가 유럽에서 활동했던 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놀라운 경험을 하나씩 하게 되면서 꿈도 갖게 되고 더욱 열심히 살게 된다. 목표가 점점 커진다.
어떤 결과에 대해 기대하게 되는 건가?
항상 결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결과에 연연하면 선뜻 나설 수 없으니까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 뭐든 시도할만하다. 나라는 콘텐츠를 쌓는 거다.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지 않으면 대중들은 모르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스스로 내 모습을 찾아가는데 흥미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