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밑으로 가라앉아가는 배의 선단에 서서 유유히 뭍으로 착륙하는 잭 스패로우(조니 뎁)의 인상적인 등장은 새로운 해양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성공적인 안착을 알리는 시작점이었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이하, <낯선 조류>)는 이 프랜차이즈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속편이자 새로운 시리즈의 출발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난 세 편의 시리즈를 이끌었던 고어 버빈스키 대신 새로운 시리즈의 키를 잡은 선장으로 탑승한 롭 마샬과 지난 세 편의 헤로인이었던 키이라 나이틀리 대신 새롭게 이 시리즈에 올라선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런 야심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물론 이 시리즈의 엔진이나 다름없는 잭 스패로우의 존재감은 대단하며 그의 숙명적인 라이벌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역시 시리즈를 밀고 나가는 돛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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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하나와 몸통 밖에 남지 않은 여자 마네킹,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장난감 물고기, 그리고 그들에게 (진짜 당신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을 거는 카멜레온 한 마리. 그는 연기자다. 그는 자신이 선 땅이 자신의 무대라 여기며 자신을 최고의 연기자라 자부한다. 그러나 곧 자신이 두 발로 딛고 선 그 땅이 안주할 수 없는 무대임을 깨닫게 된다. 사막을 관통하는 아스팔트 한 가운데에 내동댕이쳐진 그는 비로소 자신을 위해 마련된 그 에덴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어항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떨어진 모하비 사막이 생전 처음 만난 생지옥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뜨거운 사막 위에서 거듭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뒤늦게 해답을 얻는다. “누군들 될 수 있는, 나는 랭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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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지를 연결하는 고속열차 유로스타에 앉아 베니스로 향하며 추리소설을 읽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남자 앞에 묘령의 여인이 나타난다. 그 남자에게 심상찮은 눈길을 던지던 여인은 남자의 맞은 편 빈 자리에 앉아 말을 건네고 남자는 점차 정체불명의 매력적인 여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여인은 치명적인 가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 가시는 그 남자를 향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여자의 가시에 한 번 찔리고도 자신의 감정을 두려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여자에게 빠져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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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의 수학자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란 필명을 앞세워 1965년에 발표한 동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통해 진전되는 서사와 비상식적인 묘사가 동원된 이 작품은 비논리적인 기괴한 설정들이 도처에 난무함에도 직관적인 상상력과 천진난만한 감성을 동반하며 그 세계관에 대한 호기심을 당긴다. 동명의 제목 그대로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창조한 그 기이한 세계관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하지만 팀 버튼 루이스 캐럴이 손으로 써내려 간 세계를 영상으로 치환하려는 노력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팀 버튼이 참고한 건 비단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뿐만이 아니다. 또 한번 앨리스를 통해 특별한 모험담을 그려낸 루이스 캐롤의거울 나라의 앨리스 역시 팀 버튼의 세계로 편입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루이스 캐롤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온전히 팀 버튼의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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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우울한 팀 버튼의 페르소나 즈음으로 여겨졌던 조니 뎁은 해적선에 오른 후, 롤러코스터적 캐릭터로 거듭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니 뎁은 괴팍하고 수상한 낭만주의자다.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가 심상찮아 보인 것도 팔 할은 조니 뎁 덕분이다. 전설적인 갱스터는 로맨티스트로 환생한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나이 조니 뎁의 육체를 빌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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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귀몰한 전법으로 은행을 털고 유유히 FBI를 따돌리던 갱단의 리더 존 딜린저(조니 뎁)가 검거됐다. 존 딜린저를 구치소로 이송하는 차량 주변에 수많은 군중이 몰려 환호를 지른다. 존 딜린저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군중의 환호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열광에 가까운 것이다. 존 딜린저가 수감될 예정인 미네소타 구치소에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도 뜨겁다. 은행 하나를 터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나요? 1 40초 정도면 가능하지. 기자가 던진 가벼운 질문이 농담으로 튕겨져 돌아온다. 악명 높은 범죄자를 목전에 둔 긴장감 따위란 없다. 마치 유명인을 눈 앞에서 두고 본다는 들뜬 기분이 현장을 장악한다. 그 사이에서 여유로운 미소로 현장을 장악한 존 딜린저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그 표정 너머의 시대를 관찰하기 보단 그 표정을 통해 시대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발견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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