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어머니에게도 소녀시대가 있었고, 철없는 시절에 함께 하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친구들과의 추억도 있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어린 나이에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거듭 겪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어떤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절에서만 가능했던 무엇들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다는 상실을 체감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써니>는 우리의 지난 날, 80년대를 지나쳐 보낸 어떤 어른들을 위한 송가다. <써니>는 주부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삶에 치이고 부대끼며 살아가던 여인 임나미(유호정)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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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정장

도화지 2009. 9. 30. 00:16

검은 정장을 내걸었다. 내일 입을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면 좋겠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의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잠이 드신 채로 깨어나지 못했다고 들었다. 정확한 사인은 모르지만 지병이 없으셨다니 급사하신 셈이다. 다른 친구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먹먹함이 전해졌다.

 

언젠가 검은 색 정장은 한 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식이야 발가벗고 가지만 않는다면 상관없겠지만 장례식은 좀처럼 그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축하하는 자리에선 엄격한 격식을 버려도 된다지만 위로하는 자리에선 적절한 격식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것을 깨닫는다는 건 어느 새 내가 그걸 알아야 할 나이가 됐음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죽음을 위로해야 할 나이가 됐다. 작년엔 알고 지내던 친구 하나가 객사했다. 죽음은 멀지 않다. 아니, 어쩌면 언제나 멀지 않았을 거다. 다만 그것이 예감할 수 없는 순간에 불쑥 고개를 내밀기 때문에 순간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위로하거나 위로 받을 나이가 된 것뿐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예견할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견뎌내는 과정이 아닐까. 그만큼 그 상실을 위로하는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복장이 프리한 직업을 선택한 덕분에 일 년에 몇 번 입을 일도 없는 검은 정장이 필요하다 느낀 것도 그런 의무감 때문이다. 물론 중요한 건 진심이다. 하지만 때때론 그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 진심의 무게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다. 내일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한 예의가 필요한 날이다. 마음을 단단하게 여미고 한 움큼 쥔 위로를 전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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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광주에 다녀왔다. 휴가라고 해봐야 어디 놀러 가는 취미도 없고, 차라리 오랜만에 친구들이 있는 광주나 다녀오자 싶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 옛날보단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줄었다. 내 무심함의 탓이기도 했고, 말 그대로 세월 탓이기도 했다. 연락을 자주 못하는 만큼 멀어진 친구들도 생겼고,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탓에 책임질 일이 많아진 친구들은 쉽게 짬을 내지 못하고 제 생활에 얽매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많은 친구를 만났고, 하나같이 반갑거나 놀라웠다. 결혼을 앞둔 녀석도 있고, 곧 아버지가 될 친구도 있었다. 종종 연락해와서 어느 정도 근황을 아는 녀석도 있었던 반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많이 컸다. 비로소 실감했다. 내가 참 많이 컸다. 우린 늙어가고 있구나. 비로소 체감했다. 어른이 된 친구들은 제 각각의 방식으로 제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듯 불안해 보이는 녀석도 있었지만 적당한 확신을 손에 쥐고 앞으로 전진해가는 녀석도 있었다. 3 4, 엄밀히 말하면 3 3일이나 다름없는 일정 가운데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묵혀뒀던 옛 추억들이 세월을 먼지처럼 털고 언어로 재현되고 그때마다 우린 낄낄거리며 또 다른 기억을 파고 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즐거웠다. 오랜만에 내려간 광주는 많이 변했고, 친구들도 많이 변했지만 추억은 여전했다. 그것만으로도 즐겁더라. 다시 올라오기 싫을 만큼 행복했다. 그 기분에 취해서 담배를 다시 물게 됐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언젠가 폐암에 걸려 죽더라도 이 날만큼은 유쾌하게 기억하련다. 추억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이 자란다. 친구란 그런 것 같다. 3년 만에 만나도 웃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만나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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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갇힌 호준(김재록)은 자신이 박대하던 계상(강지환)으로부터 구출된다. 아는 게 많은 호준은 여호와의 증인을 전도하는 계상을 박대하지만 정작 계상으로 인해 구원받는다. <방문자>는 결코 맞물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어떤 관계로 거듭나는 과정을 묘사하는 버디무비이며 코미디다.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될 때, 우스꽝스러운 사연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인물은 변화한다. 사람을 둘러싼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 사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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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경, 마감을 핑계로 컴퓨터 앞에 붙어서 산만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즈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영화를 봤다고 했다. <왓치맨>을 봤다는데 재미없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질식할 것 같아 내게 구원을 요청했다. 난 물론 흥미롭게 봤다. 재미있었다. 녀석은 좋아했다. 원래 이 친구랑은 말이 잘 통했다. 항상 영화를 같이 보고 나면 긴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쩌면 지금 내 삶에 끼친 영향력의 7할 정도는 이 친구 몫일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음악을 들었고, 영화를 봤다. 이야기를 했고, 글쓰기에 대한 고무를 가능케 했다. 때때로 이 녀석이 날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며 비아냥거렸다. 반쯤은 농담이고 반쯤은 진담이다. 내가 지금 날 새는 것도 어쩌면 이 녀석 탓이라니까. 하지만 나쁜 의미는 없다.반쯤의 진담보단 농담 쪽으로 좀 더 저울추가 기운다. 여러모로 힘이 되는 녀석이었다. 내 지루한 이야기를 꽤나 재미있게 들어주는 상대라면 내게 있어선 정말 괜찮은 녀석인 거다.

 

간만에 수화기를 경계로 대화를 나눴다. 광주에 있는 녀석을 만나기란 어렵다. 하긴 내가 절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의 9할 정도는 광주에 있다. 이 녀석도 그 중 하나고.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화를 했고, 자연스레 시간이 흘렀다. 대화를 통해 시간을 이겨야 할 사람이 있는 반면, 대화와 함께 시간을 흘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후자가 편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후자의 입장에 있는 상대들과 멀어지고 있다. 사람을 잃는 느낌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중 대부분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지 않다.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인연은 쉽게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옛 친구들과 여전히 연대할 수 있는 것도 그 추억덕분이다. 그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일 테고. 그저 짧은 통화만으로도 멀어졌던 수많은 기억들이 다시 눈 앞으로 돌아온다는 거. 그거 대단히 즐거운 일이거든.

 

사람이 그립다. 옛 이야기가 하고 싶다. 나이 먹어간다는 건 이런 건가. 문득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된 친구의 전화만으로도 감상에 젖고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씁쓸해진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안다. 그저 한번쯤 다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그 추억 위로 덮인 먼지들을 훅 불어내고 온전한 형체를 멀리서나마 한번쯤 되돌아보고 싶을 뿐이다. 다시 허물어질 언어라 할지라도 잔상은 거기서부터 다시 지속될 것이다. 그 당시보다 많은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그 시절보다 긴 추억을 만들어낸다는 게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지 않나.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쉽게 만들 수 없는 시절로 들어선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모르지. 어쩌면 내가 지금 마감을 앞두고 이 문장들 사이로 도피한 것일지도. 어쨌든 다시 마감이나. 일단 지금은 외로움 타령보다도 먹고 살 궁리를 할 시간. 아, 이렇게 적고 나니 진짜 없어 보이네. 나도 그럼 허세라도, 뉴욕 헤럴드 트리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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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일본 망가의 거장으로 꼽히는 우라사와 나오키는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이상적인 작가군에 속한다. 그리고 영국특수부대 'SAS' 출신의 박학다식한 보험조사원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한 ‘마스터 키튼’은 우라사와 나오키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명료하면서도 깊이를 잴 수 없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구축하고 탁월한 장면묘사와 컷의 전환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또한 그 와중에 공포와 유머가 함께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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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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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좋아하나?
심하게 좋아했다, 예전엔 더욱.

지금은 예전보단 덜 좋아하나 보다.
비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 오늘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겠네.

벌써 서른이 넘었다. 시작부터 나이 이야기하면 실례일까.
아니, 전혀. (웃음)

서른이 넘어서니 어떤가? 벌써 이렇게 됐구나란 감상에 젖을 법도 한데.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지. 일단 난 지금이 좋다. 왜냐면 내 십대와 이십대는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방황하는 시기였으니까. 너무나도 갈팡질팡,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몰라서 너무나 힘든 시기였지. 사실 내 사춘기가 굉장히 길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까지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정말 사람에 대해서도 몰랐고, 뭐가 진실인지도, 뭐가 선이고 악인지, 정말 혼돈스러웠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뭔가 잡혀가는 거 같아. 이제 내 인생을 이런 방향으로 살아가겠구나, 나의 토대는 이거고 목표는 이거다, 이런 것들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 난 지금 내 나이가 좋아. 살 것 같다고 할까. 조금씩.

작년이라면 혹시 <여름이 가기 전에> 덕분에?
그건 아니다.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가 더 힘들었으니까.

의외네. 난 그 작품이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울증에 걸리면 하고 싶어도 말이 잘 안 나온다. 난 말하고 싶은데 소리가 안 나오는 거지. <여름이 가기 전에>할 때 내가 너무 다운됐었다. 마음이 행복하지 못해서. 대사를 해야 하는데 이게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지.

6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 이후, 김보경의 6년은 길어 보인다. 김보경이란 배우의 6년은, 마치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보는 것 같다.
지금도 돌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내 성격 탓인 거 같아. 그렇게 똑똑하지 못하거든. 다 아는 답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난 답을 알면서도 결단을 쉽게 못 낸다. 마음이 여려서, 그런 덕분에 많이 돌게 됐고. 20대까진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젠 김보경이라는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좀 더 똑똑하게 결단도 내리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도 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나 스스로도.

사실은 데뷔도 빠른 편은 아니었다. <친구> 당시가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까.
사실 데뷔는 그 전에 했었지, 95년도에 CF로 데뷔를 했고, 98년도에 영화를 했었으니까. 간간이 단역으로 TV드라마에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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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된 건 <친구>가 처음 아닌가?
제대로 연기한 건 이번에 <기담>이 처음이다. (웃음)

어쨌든 <친구>로 얼굴을 많이 알렸지만 그 후로 많이 돌아온 건 <친구>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에 <친구>로 얼굴을 알린 후, 출연했던 작품들은 김보경이란 배우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에겐 의미 있는 작품들일지 모르지만.
영화가 흥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만약 잘 됐다면 다르게 말했을 수도 있을 거다. 난 영화가 잘되고 안 되는 건 정말 운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친구>란 영화가 잘됐지만 그 영화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그 시대에 맞는 운 때가 있어서 흥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정말 아닌 영화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 영화들이 그만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모두 운명 같다. (웃음)

<기담>을 봤나?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가 진행되지 않은 7월 16일에 진행됐다.)
다는 못 봤다.

독특한 소재 때문인지 몰라도 굉장히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렇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법도 한데.
<여름이 가기 전에>란 작품을 하고 <잘 지내나요, 청춘>이란 단막극을 했었다. 그 때, 너무 초연하게 연기한 덕에 연기가 다시 너무 좋아졌었다. 물론 내가 거기서 연기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작품을 좋아했었지. 단막극이지만 그 작품을 찍는 과정이 너무 행복했었고.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는 시기였고. 그 때, 나도 좀 대중적인 작품 해서 대중들과 같이 살아가는 연기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웃음) 근데 그때 <기담>이란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다. 근데 공포영화란 장르가 대중적인 묘미가 있잖아. 그게 그 당시 내 생각하고 맞았다. 일단은 대중적이란 점이 맞았지. 그리고 내가 공포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

아, 그런가?
그렇다. 난 공포영화를 세 분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좀비 영화, 하나는 스릴러, 또 하나는 종교다. 그런데 거기서 막 피나거나 자르는 이런 건 무섭진 않고 속만 안 좋아서 싫더라.

나도 그런 건 요즘 정서만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피하고 싶어지더라.
내가 95년도에 <트레인스포팅>이란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은 충격이었다. ‘정말 저게 영화지!’ 이럴 정도로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28일 후>란 작품을 봤는데 난 같은 감독 작품인지 몰랐다. 감독 보고 영화 보는 편은 아니라서. (웃음) 그런데 <28일 후>도 충격이었다.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그 영화가 좋았다. <셔터>도 되게 무서웠다. 정말 있을 법한 일이잖아. 사랑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고, 난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 당시에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셔터>보고 내가 ‘잘 해~! 아니면 나도 돌아올꺼야’ 했었다. (웃음) 어쨌든 <기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그 두 영화를 보면서 받았던 그런 느낌들이, 물론 똑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있었다. 단순히 이 영화가 여름방학 노려서 한철땡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이걸 해도 난 부끄럽지 않겠다는, 내가 제작을 했다 해도 돈 벌기 위해서 단순히 했다는 소리는 안 듣겠다 싶어서 난 <기담>이 좋았던 거지. 그리고 사랑이라는 그 감정 때문에 모든 공포가 일어난 거다. 사실 시나리오엔 음향 효과가 없잖아. 난 시나리오 보면서 무섭다기 보단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안 무서울까 봐 걱정했지. 그래도 공포영화인데, 너무 슬프고 아리고, 아프기만 할까 봐. 근데 어떻게 될진 모르지. (웃음) 그래도 무서울 것 같다. 예고편 보니까.

전형적인 공포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들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고, 진구 말에 의하면 공포영화를 가장한 뭔가가 있다고 하던데.
맞다. 진구씨가 <기담>은 차가운 공포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공포 영화라 했는데 난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더욱 궁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웃음)

뚜껑을 열어보면 알겠지. (웃음) 난 개인적으로 김보경이란 배우가 <친구> 이후로 이름을 남긴 건, 단지 <여름이 가기 전에> 뿐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본인에게 그 작품은 좋은 기억이 아닌가 보다.
난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결과보단 과정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고 난 후나 엄청나게 유명해진 후보단 그렇게 된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마다 틀리지만 난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고. 영화가 흥행하고, 그로 인해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그 전에 영화가 잘 나오는 것도 물론 중요하고. 근데 만약 그 과정이 너무 정떨어진다면 영화가 잘 나와도 사랑할 수 없다. 근데 <여름이 가기 전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나도 영화는 잘 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나 자신과의 괴로운 싸움을 했던 작품이라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굉장히 의외다.
그래도 부산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나한테 의미가 있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의 기억이 아파서 안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매니저들이 꼬시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영화인으로서 내가 안 갈 이유도 없어서 결국 갔다. 그러다가 영화제에서 <여름이 가기 전에>를 보게 된 제작사 대표님이 우연히 내가 걸어오는 걸 보곤 <기담>의 인영 역에 가깝겠다고 생각해서 제의하셨다고 하더라. 자신이 그려놓은 인영의 이미지랑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가 배우로서 다시 멍석을 까는 지점이었다면, <하얀 거탑>은 굳히기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혹시 <하얀 거탑>도 안 좋은 추억이 있을까. (웃음)
아니다. 너무 마음이 편안하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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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그 이전에 맡았던 역할들과 달랐다.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전까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강희재는 장준혁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좀 더 너그러워졌다고 할까.
난 사실 (배우로서) 별로 보여드린 게 없어서 그냥 내 안에 갖고 있던 캐릭터 중 하나를 강희재란 캐릭터와 이렇게 조합해서 연기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색다른 건 없었다. 다만 이런 걸 느꼈지. <하얀 거탑>할 때, 처음엔 여자 주인공이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되게 좋아했었다. (웃음) 나를 뭘 보고 주연을 맡기나 했었지. 그런데 대본이 6회까지 나왔는데 나는 별로 안 나오는 거다. 어쩌다 한두 씬 나오고, 별로 중요한 씬도 아니고, 맨날 술만 따르고. (웃음) (김)명민 오빠를 비롯해서 주위 사람들도 드라마에서 별로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시더라. 그래도 난 이런 배우들과 감독님하고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본 원작 드라마 보라고 해서 DVD까지 봤는데, 케이코도 별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딘가 강한 이미지가 남더라. 그래서 나도 강하게 하고 싶지만 강하게 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고,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 스타일도 그렇게 선 굵은 게 아니었지. 그래서 누르는 걸 좀 배웠던 거 같아. 전체적인 드라마 흐름을 위해 내가 있는 거니까 내가 튀면 안 된다, 난 자꾸 이렇게 묻혀가야 돼, 묻혀가면서 그냥 드라마와 전체적으로 같이 가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연기했다.

비중은 작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지를 은연중에 각인시킨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얀 거탑>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지닌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 다들 병원이라는 집합의 동선을 지니지만 희재의 바(bar)는 유일한 개인적 공간이다.
그래서 심심했다. (웃음) 난 드라마하면 연기자들하고 좀 친해질 줄 알았는데 나한텐 맨날 장준혁만 오니까. (웃음) 그나마 이정길 선배님과 친해졌다. 어쨌든 배우들하고는 볼일이 없어서 아쉬웠지. 어느 날 TV를 통해서 직접 봤더니 너무 답답해 보이는 거다. 자꾸 밖에 좀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끝끝내 밖에 나가진 못했지. (웃음)

하긴 계속 갇혀서 촬영하니까.
맞아. 그리고 비중이 작았지만 너무 잘 하고 싶었다. TV는 오랜만이고 제대로 된 드라마도 처음으로 하는 거니까. 내 나름대로 바뀔 수 있는 상황까지 계산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펼쳐 보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한 것과 또 다른 상황으로 바뀔 때가 많았지. 그래서 또 다른 여유, 연기에 있어서 여백을 남겨둬야 된다는 걸 배웠다.

영화와 다른 드라마만의 매력을 느꼈나?
사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하얀 거탑> 끝나고 <기담>을 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도 찍은 후 1년 뒤에 개봉을 했으니까. 내가 너무 작품을 띄엄띄엄 했었고, 그래서 처음 같은 느낌이었지. 영화찍은 지도 오래됐었고, 공백이 기니까 그런 걸 모르겠더라. (웃음) 물론 큰 차이점을 느낀 건 영화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이랑 배우랑 이야길 많이 나누고, 이 인물에 대해서 디테일한 오고감이 있는데 드라마는 그냥 그런 회의 없이 한다는 거.

원래 캐릭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한 편인가 보다.
난 대본 받으면 내 인물의 보이지 않는 과거와 보이지 않는 미래 같은, 그 인물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걸 좋아한다. 연극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런데 TV는 그런 시간이 안 되니까. 감독하고 그만큼의 친밀하지가 못하더라. <기담>같은 경우도 리딩을 한 달 넘게 했으니까, 충분히 인영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이런 게 충분히 얘기가 된 후에 영화는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서로 더 알고 들어가는 거랄까. 근데 TV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는 게 틀린 점이지.

순발력의 연기를 더 요구하는 상황도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름이 가기 전에>도 가벼운 생활적인 연기였는데, 그땐 확실하게 그게 그렇게 안 다가왔었다. 감독님이 직접 뭘 요구하지도, 어떤 연기 톤을 요구하시는 건지도, 뭘 하는 줄도 잘 몰랐다. 왜냐면 여태까지 했던 연기랑은 약간 틀린 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다르단 사실에 대해서 내가 인식을 잘 못했던 거 같다. 그냥 소연이란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를 하긴 했는데 뭔가를 했다는 느낌은 들지만 뭔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을 하면서 확실하게 연기의 구분을 알게 된 거 같다. 그리고 안판석 감독님이 굉장히 세련된 분위기란 것도 알겠고. 이분이 추구하시는 연기 톤은 관객들에게 앞으로 더욱 환영 받고 사랑 받을만한 것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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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 수만 치면 영화를 꽤 많이 한 편이다.
수만 그렇지. (웃음)

그럼에도 아직 관객들에게 존재감을 인식시키지 못했는데, <하얀 거탑>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마련해준 작품인 것 같다. 나름대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다는 욕심도 있었을 법한데.
처음부터 역할의 분량이 작은 덕분에 큰 부담을 안 가지게 됐고, 오히려 여기서 잘 해서 ‘넓혀가자, 내 씬을 늘리자’ 생각했었다. 드라마는 그게 가능하니까. 이게 목표였지. 오히려 씬 많이 줬는데 못하는 것보다 적게 줬는데 잘해서 내 걸 늘려가는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 말곤 이걸로 인해서 내가 엄청나게 사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 사랑 받는 드라마가 될 줄도 몰랐겠지.
당연히 몰랐다. 지난 6년 동안 힘들어 봤기 때문에, 별로 인기란 것에 민감할 수도 없었지. 사랑해주는 건 고맙지만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내가 연기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지금 사랑해주셨다가 언제 외면할지 모르는 거니까. 인생의 굴곡이 있듯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거기에 휘둘릴 나이도 아닌 것 같고. 별로 그런 건 신경을 못 쓴 거 같다. 그렇지만 사랑 받으면 너무나 고맙지.

<기담>이란 작품은 어디에 매력을 느꼈나?
<친구>에 출연한 후, 그 캐릭터가 워낙 강했나 보더라. 그래서 나를 어딘가에 써먹어야 되는데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그 당시에 고민했나 보더라. (웃음) 너무 캐릭터가 강해서. 그런 이야기 듣고 난 웃긴다고 생각했다. 난 강한 연기 한번 했을 뿐인데, 왜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서 다 파악한 것처럼 저럴까. 저게 내 모습의 다는 아닌데 싶었으니까.

어쩌면 공백으로 인해 그런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한편으로 도움이 된 셈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하얀 거탑>의 날 보고 <친구>의 진숙인지 모르고 본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더라. <기담>의 인영이란 역할은 굉장히 부드럽고, 온화하다. 정말 사랑 받는 아내이고. 이런 캐릭터는 내가 처음이라 너무 하고 싶었고,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또 인영이랑 제가 꿈꾸는 사랑이 비슷했다. 마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란 영화 알까?

물론이다. 꽤 오래된 영화인데.
내 이상적인 사랑은 딱 그거거든. 그런데 그런 사랑은 없단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정신차리라고, 그런 사랑은 없다고 얘기하지. (웃음) 물론 나도 만나진 못했지만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런 사랑이 <기담>에선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너무나도 잔인하고 슬프게 그 시나리오에 있었다. 그런 사랑을 인영이 하고 있었다. 대리만족이라 해야 할까. 난 현실에서 하기 힘든 사랑을 처음으로 알았다. 처음으로! (웃음) 연기자가 이래서 좋다는 걸 난 처음 알았다. 그 전엔 다른 연기자들이 연기 왜 하냐는 질문받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하잖아요’, 이런 대답이 난 재미없었거든. 그런데 내가 이번에 <기담>을 끝내고 나니 그걸 느꼈다. 내가 진짜 꿈꾸던 사랑이 아름답게 표현된 건 아니지만 아주 지독하고 잔인하게 느끼면서 했다. 그런 대리만족이 느껴지더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두 사람 때문에 너무 아팠고 너무 부러웠지.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어. 너무 부러워서. (웃음)

이야기만 들으면 공포가 아니라 멜로같다.
맞다! 멜로! 그런데 그 멜로가 너무나도 잔혹하게 써진 거지. (웃음) 그런데 영화가 내 말처럼 잘 나왔어야 되는데! (웃음)

누군가의 아내 역할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이의 사랑을 내치거나 그런 쪽이었는데.
그래서 좋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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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한을 풀어버리는 기분이었을 것 같은데.
난 전혀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있더라.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너무 사랑 받으면서 촬영해서, 촬영 기간도 난 너무 행복했었다. 촬영이 끝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촬영이 끝나가서 조마조마했다. 크랭크업되기 전에도 ‘감독님, 이제 어떡해요, 내일이면 끝인데~’ 막 이랬다. (웃음) 다들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촬영이 크랭크업 예정보다 지연됐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겠다. (웃음)
내가 여태껏 연기 했던 것보다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드디어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작업을 처음으로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기담>은 영화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그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전에는 이걸 어떻게 할까, 걱정 먼저 한 다음에 빠져들었는데, <기담>은 그냥 먼저 빠져들게 된 거다. 그래서 촬영 중에 고민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오로지 내 감정에 맡겼지. <기담>연기들은. 물론 너무 다양한 감정이 교차돼서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그냥 인간 김보경이 살아갈 인생 속에서도 어떤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했다. 단도직입적이기도 했고. 그런데 <기담>은 가녀리지만 입체적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 같다. 신비로운 느낌도 있고.
일단은 좀 헷갈렸지. 왜냐면 말한 것처럼 이 인물이 신비롭다는 느낌을 깔고 갔어야 했으니까. 부담도 됐었다. 어떤 식으로 신비감을 줘야 할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환상이란 설정을 처음부터 까는 인물이라면 연기라도 날리면서 효과의 도움을 받기라도 할 텐데.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내가 내 감정에 맡기고 갈 수 밖에 없었을 거 같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내 감정과 감성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내 느낌을 잡는 게 어렵기도 했다.

김태우 씨와 부부 연기를 해서 호흡을 많이 맞췄을 텐데, 어땠나?
처음에 만났을 땐, 막연히 사람 좋게 생겼네. 바른 생활을 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딩을 하면서, 똑똑한 배우구나. 부럽다고 생각했고 촬영이 들어갔을 때, 진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제 촬영 끝나고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태우란 배우가 있어서 우리가 영화를 좀 편안하게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행복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편안하게 연기한 거 같다. 물론 선배 띄워주기나 같이 한 배우의 의리상 좋은 말 하는 건 아니고! (웃음) 김태우 씨가 배우들과 깊이 있고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많이 도와줬다는 걸 느꼈다. 나도 나중에 선배가 되고 후배가 생기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난 그만큼 친절하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호흡을 맞춘 남자배우는 다 안정감 있는 캐릭터다. 김명민 씨, 이현우 씨, 김태우 씨. 다들 그런 느낌이다.
사실 이현우씨는 본인 스스로가 그런다. 자신은 가수라고. 겸손한 편이지. 지금도 우린 패밀리다. (웃음)

그 친분 덕분에 라디오 방송도 하게 된 건가 보다.
라디오 개편할 때 온(on)하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PD가 제안해서 한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했었다. 현우 오빠 같은 경우는 인생에 있어서 참 똑똑한 거 같다. 여유롭게 즐길 줄 아는, 잘못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걸 아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영화 하나 망하면 죽을 거 같고, 망했다고 하고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화가 흥행이 되고 망하든 그 과정이 행복했고 소중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진짜로 인생에 있어서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연기자로서는 모르겠다. 난 진짜로 연기가 하고 싶어서 정석으로 해온 사람이고, 이현우씨는 가수하다가 기회가 되니까 연기를 한 거라서 솔직히 연기자로서 뭐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이라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김명민 씨가 뒤늦게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것 같다.
김명민 씨는 사랑과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김명민 씨 부인이 내 친한 언니라서. 그리고 한 동네에 살았었고, 같은 소속사에 있었고,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힘들어하신 것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고, 연기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었다. 참을 만큼 참으신 분이다. 연기자로서 난 좋아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음) 정말 그만큼 사랑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공교롭지만 <리턴>이 <기담>과 한주 차이로 개봉하는데, 어쩌면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진짜! (웃음) 둘 다 잘 되면 좋지. 그런데 솔직히 <기담>이 조금만 더 잘 되면 좋겠네. (웃음) 지금 잘 되셨으니까, 이제 나도 솔직히~~. (웃음)

어쨌든 이제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됐다. 이상형은 없나?
난 이상형이 없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난 그냥 모르겠다. 그냥 운명적인 만남? (웃음)

지금으로서는 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만약 결혼과 영화 중 하나를 택한다면?
영화지! 그럼. 결혼은 아직 아예 생각도 없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많다던데. (웃음)
그래도 아직은, 나중에.

어쨌든 공백기가 있었고, 이야기만 들어도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원래 생각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내가 한없이 긍정적이면서 한없이 부정적인 거 같다. 엄청 울고, 엄청 웃고, 딱 극과 극이다. 솔직히 그 몇 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웃음) 분명히 돌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난 이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 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못 찾겠더라. 그러다가 장기기증 신청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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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내가 지금의 상태론 한 여섯 명까진 살릴 수 있더라. 그 때, 내 삶에 있어서 희망을 얻었다.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이유를 알겠더라. 삶에 있어서. 그래서 지금보다 더 운동해야 되고 술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걸 줘야 되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감정이 저 끝까지 가게 되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이제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무서워질 것도 없어지고, 기가 막힐 때도 있으니까. 정말 하느님, 정말 저 여기서 더 내려가는 건 진짜 저보고 죽으라는 거죠. 웃으면서 이랬던 적도 한번 있었다. 되게 심각하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자꾸 부정적으로 바뀌고 고민하면 해결되는 것도 없고, 내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기 때문에 그럴 바엔 바보같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꾸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 같더라. 한번은 내가 기적을 봤다. 기독교 집안이라 매일 기도하는데 난 나이 들면서 안 했었거든. 그런데 한번은 아침부터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기도를 했다. 최소한 이 기도가 끝나고 나면 그냥 행복하게 해달라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정말 넓은 마음 갖게 해달라고, 이 기도 끝나면 그렇게 되게 해주셔야 한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한 거 같다. 정말 내 마음이 부자가 되게,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꼭 그렇게 해주셔야 된다고. 그리고 기도가 끝나자마자 내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졌다. 난 그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항상 좋은 책 읽고, 좋은 말씀 듣고, 좋은 글귀 보고, 좋은 생각하고, 이러면 살아갈만하다. 자꾸 남들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면 자신한테 좋을 게 없더라.

혹시 본인에게 귀감이 되는 배우가 있나?
난 배종옥 씨 되게 좋아한다. 연기도 너무 좋고. 전도연 씨도 좋고. 난 계속 꾸준히 연기하시는 분들이 좋다. 정말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하고 연기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 그런 분들이 정말 연기자지. 그래서 그 분들 보면 되게 기분 좋다. 정말 배우 같다.

대학교 시절에 연극도 했다고 들었는데,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런 생각도 있다. 사실은 올해에 새로 소속사와 계약하면서 연극도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드라마랑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바빠졌다. 아무래도 일단은 먼저 들어오는 게 있을 때 하려고 해야 하니까. (웃음) 어쨌든 좀 더 역량을 쌓아서 연극을 할 거다. 모노드라마 같은 거. 꿈이에요. 꿈.

청바지 사업도 한다던데?
작년 말부터 조금씩 생각하다가 올 초부터 준비했다. 사실 연기라는 걸 내 직업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직업은 내게 밥도 먹여줘야 되고, 옷도 사 입게 해줘야 되고, 용돈도 줘야 되고, 어떤 지위도 줘야 되고, 항상 일을 해야지 직업이잖아. 안 하면 백수지. 근데 난 연기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6년간 그 생각만큼 못 받쳐줬기 때문에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더라. 그 시간 동안에 연기는 나한테 직업이 아니고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선물처럼 온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지, 이걸 통해서 뭘 얻고 뭘 얻겠단 건 욕심인 것 같더라. 무엇보다 못 얻었을 때, 그 아픔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직업으로서 뭔가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거다.

만약 연기를 안 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아니. 난 연기를 하고 있었을 거 같아! (웃음) 다른 걸 하면서도 연기는 했을 것 같아.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의 스물아홉은 어땠나?
지옥이었다. 너무 지옥이었어. 너무나도. 연기의 기회적인 면에서도 힘들었고, 사랑에도 굉장히 초짜였기 때문에. 좀 늦었었거든. (웃음)

사춘기였으니까. (웃음)
그래서 사랑 때문에도 너무 힘들었고, 지옥이었다. 사실 돌아보고 싶지 않아! (웃음)

지금은 스스로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음, 아마도 봄?

30대의 봄이라. (웃음)
난 봄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건 써주세요. 김보경은 봄이다! 여름은 아직, 사춘기 이제 막 지났는데. (웃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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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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