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처음이다. 아이스 쇼는 열렸지만 정식으로 그랑프리 대회가 개최된 건 처음이었다. 오래 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고양시 경기장이 선택된 배경부터 빙상 연맹에 관련된 잡음, 게다가 최근 SBS의 스트리밍 중계권 독점까지 여러 가지로 잡음이 많았다.

 

김연아가 울었다. 1위를 했는데도 울었다. 럿츠 점프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름 만족스런 연기를 펼쳤다는 아사다 마오를 제치고 1위를 했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울었다. 사실 긴장감이 역력했다. 뭔가 쫓기는 표정이었다. 그랑프리 1차 대회처럼 표정이 유연하지 못했다. 끝나고 나서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본국에서 경기를 펼친다는 것이 되려 부담이 된 건 아닐까.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 다들 김연아에게 관심이 많다. 피겨의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김연아를 본다. 국내에서 열리는 그랑프리 파이널이 뭔지 몰라도 대충 김연아가 경기한다니 관심이 많다. 관심의 대부분은 이렇다. 김연아가 우승할까? 플립 점프가 어쩌고, 럿츠 점프가 어쩌고, , 몰라. 1위 하는지 궁금할 뿐이야. 대부분이 이렇다.

 

오늘 쇼트 프로그램에서 김연아의 성적이 별로였다면 어땠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동시에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김연아 1위라서 좋은 겁니까? 아니면 김연아의 피겨가 좋은 겁니까? 당신이 보고 있는 김연아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혹시나 김연아의 가슴에 대한민국 태극기가 박혀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김연아는 그냥 김연아로서 링크에 선다. 일본 선수 3명이나 제치고 우리 연아가 1위를 했으면. 이런 소망이 있었다면 소망교회 가서 기도나 하시던가.

 

파파라치처럼 연습장면 찍어서 줄줄이 내보내는 SBS, 연습장면 염탐하곤 어떤 점프가 좋지 않네, 줄줄이 포털 메인에 보고서 작성하는 찌라시나, 지겹기 그지 없다. 우리 연아를 지켜야 해. , 님하, 너나 잘 하세요. 거품 같은 관심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김연아를 두들기고 있다. 걱정된다. 실로. 우승 못해도 상관없다. 연아야. 그저 나중에 후회되지 않을 만큼 잘 놀다 내려오렴. 나는 실로 당신들이 이런 이야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초등학생들도 전국등수를 확인하는 이 시대의 정서가 제정신이 아님을 자각하지 못하는 당신이라면 더더욱. 당신은 김연아를 모른다. 그러니 제발, 김연아를 내버려둬라. 우리 연아든, 너네 연아든, 그 연아는 김연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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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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