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별 일을 겪게 되는 일이 결혼일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후 3년 남짓한 세월을 보낸 입장에서 되새기는, 결혼에 관하여.
벌써 3년이다. 3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아내가 돼서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러니까 지금의 아내와는 6년째 알고 지낸 사이가 된 셈인데 우린 남들이 신혼부부라고 부를 때에도 특별히 신혼 같다는 생각을 못했다. ‘4년째 연애 중’이 ‘결혼 4년차’로 갑자기 바뀐 기분이었달까. 어쨌든 연애라는 것이 인생에서 쓸모 없는 단어가 된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혼을 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실감난다거나 그렇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실감하게 된다. 이를 테면 타인의 결혼식장에 가게 되는 경우, 턱시도를 입을 일도 없었고, 주례사를 들을 일도 없었고, 결혼사진을 찍을 일도 없었던 내게 언제나 결혼식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신기한 구경이기도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아서 다행스런 통과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결혼 준비 절차를 밟는 대부분의 예비 부부들과 다른 방식의 결혼 과정을 겪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선 남다른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랬다. 결혼은 일생일대의 쇼핑 기회라고. 부피가 큰 가구부터 사소한 가재도구까지, 사야 할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사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살면서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사라는 유경험자의 조언을 받들어 최대한 절제한다고 했건만 3년을 살고 나니 부질 없이 자리를 차지하거나 어딘가에 쳐 박힌 물건들도 있긴 하다. 이를 테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 같은 것 따위 말이다. 3년
동안, 아니, 결혼하고 1년
사이에 한 세 번 정도나 썼던가. 그러니까 그때는 일생일대의 쇼핑 기회라지만, 희한하게도 인생에서 쓸모 없는 것들이 굉장히 갖고 싶어지는, 절정의
지름신을 접신하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 결혼을 앞두고 세간을 장만 중인
예비부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살면서 이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구매 리스트에서 일단 지워두는 게 좋겠다.
결혼 과정에서 선결 과제는 신혼집을 구하는 일이다. 집을 구하면 일단
결혼 과정의 절반은 끝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아내의 직장과 내 직장의 중간지대에서 집을 보러 다녔고, 최대한 발품을 팔아 일대의 부동산을
샅샅이 방문해 연락처를 남겼는데 그만큼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사실 집을 보러 다닌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단순히 집을 보러 가는 것 같지만 결국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을 훔쳐보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세상엔 정말 별의별 집이 다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집을
구하는 신혼부부는 호구가 되기 좋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신혼집은 결혼식 전까진 구해야 하니 적당한
집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닥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어느 친절한 부동산 주인이 말을 해준 뒤로 그 동안 봐왔던 집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한번은 터무니 없는 집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신혼부부가 살기 딱 좋죠. 그런데 결혼식 날짜가 언제에요?’라고
묻던 의도가 갑자기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집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동네에, 원하던 예산 안에서.
아까도 말했듯이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결혼 과정의 기준점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
과정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테면 우리 부부는 신혼집을 확정하기 전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유인즉슨 성수기 시즌이 와서 항공료나 숙박비가 오르기 시작하는 5월이 되기 전인 4월에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경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4월에 하와이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함께 한
건 나와 아내 그리고 친한 지인까지 세 사람이었다. 나의 결혼 과정을 듣던 이들은 보통 이 대목에서
동공이 확장되는 게 느껴지는데 사실 아내와 나는 어차피 함께 술 마시며 어울릴 수 있는 지인이 있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겠냐는 의기투합으로 상황에
어울리는 지인을 섭외해 신혼여행을 빙자한 그냥 여행을 했던 셈이라 해도 좋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지인이 없었다면 하와이 신혼여행은 지금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와이 여행에 동행한 지인은 하와이 현지에서 금발머리 신부가 주례를 하는 결혼식을 선물했는데 정말 뜻 깊은
추억이 됐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결혼행진곡도
축가도 없는 결혼식이었지만 앞으론 바다가 보이고, 등 뒤론 공원이 이어지는 곳에서 아내와 함께 잘살
것을 다짐했던 기억은 분명 인생에서 잊기 힘든 순간으로 남아있고 남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결국 내가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겪을 수 있었던 남다른 과정들은 사실 그 결혼을 흔쾌히 허락해준 양가의 부모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묵한 미식가이신 장인 어른과 손재주가 남다른 장모님을 뵙기 위해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여행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내게 여행과도 같은 것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