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술이 일그러진다. 예의를 모르는 손녀 앞에서 한번, 이웃에 이사온 동양계 가족 앞에서 한번. 아들의 말처럼 50년대를 사는 사람이다. 포드에서 일생을 보낸 그에게 도요타를 운전하면서 자신의 유산만 노리는 아들은 개탄할 현실에 불과하다. 50년 전 한국전에 참전했던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성조기를 집 앞에 매단 것처럼 그는 뼈 속까지 보수적인 미국 국민이다. 이웃의 동양인들은 하나같이 눈엣가시다. 하지만 그 동양인 이웃들이 늙은 보수주의자를 변화시킨다. <그랜 토리노>는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변하는 건 보수적 신념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하던 보수주의자가 희망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사회로 환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까지의 과정이 그 변화의 본체다. 결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종교적 영험에 다다를 정도의 감동을 선사한다. 표정만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인생 자체를 영화에 투영한 느낌이다. 동시에 촌철살인의 대화가 살가운 웃음마저 마련한다. <그랜 토리노>는 노장의 인생이 반영된 역작이다. 자신의 삶을 관통해온 신념의 무게를 온전히 보존하는 동시에 사회적인 정의를 위해 복수가 아닌 징벌의 혜안을 마련한다. 그 거룩한 희생을 밟고 선 대안 세대는 빛나는 전통에 탑승해 미래로 간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위하여, 아멘.

 

(프리미어 'MOVIE 4人4色')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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