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니콜라스 홀트의 영화에서 니콜라스
홀트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해도 상관 없다는 듯이 그랬다. 그가 바라보는 거울엔 자신의 얼굴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니콜라스 홀트는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다. 배우로서 재능도 있지만 그의 유머 감각을 보면 <어바웃 어 보이> 시절의 소년이라곤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라면 언제라도 연약한 인상의 휴 그랜트처럼 돌변한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연출한 감독 브라이언 싱어의 말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 4>)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샤를리즈 테론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니콜라스 홀트는 중심이 잘 잡힌 배우다. 그의 전작들을 보기도 했지만 직접 보니 그 재능에 탄복하게 되더라. 직접 스턴트를 감행할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체계적이고 안전한 연기를 추구하고 확실히 몰입한다. 정말 보여줄 게 많은 친구 같다. 앞으로 분명 영화계에 큰 기여를 할만한 재목이다.” 그렇다. 지금 니콜라스 홀트를 말할 때, 굳이 <어바웃 어 보이>의 귀여운 소년까지 기억을 더듬는 이는 드물다. 과거형보다 현재진행형의 시제가 어울리는 배우가 됐기 때문이다. 나이만 먹고, 키만 큰 게 아니었다.
<매드맥스 4>는 무법천지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매드맥스> 시리즈의 속편이다. 멜 깁슨이 주연을 맡았던, 심지어 그의 데뷔작이었던, 무려 1980년에 처음으로 제작된 <매드맥스> 말이다. <매드맥스 4>는 1985년에 발표된 세 번째 속편 이후로 무려 30년 만에 발표되는 네 번째 속편이기도 하다. 1989년생인 니콜라스 홀트에게 있어선 생소한 과거형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매드맥스 4>는 그에겐 지금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장에서 내가 연기할 눅스라는 캐릭터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세심한 디자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와우!’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이크업을 통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외모로 변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세계관과 이 캐릭터는 굉장히 색다르군.’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에 욕심이 난다.”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의 잘난 외모를 망가뜨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걸 즐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웜 바디스>에선 기꺼이 좀비 분장을 했고, 두 편의 <엑스맨> 신작에선 새파란 털복숭이 돌연변이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부연설명을 듣지 못했던 관객이라면 ‘저 캐릭터가 니콜라스 홀트라고?’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매드맥스 4>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특이하게 개조된 범퍼카를 운전하면서 “오늘 일진 끝내주는데!”라고 외치는, 해골 바가지 같은 얼굴로 하얗게 떡칠한 상체까지 훤히 내놓은 ‘워보이’가 니콜라스 홀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건, 뒤늦게 알게 됐건 두 눈이 휘둥그래질 거다. 이는 그의 정교한 특수분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 분장을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그의 탁월한 노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처음 읽은 대본은 대본이라 할 수 없었다. 마치 두꺼운 코믹스북처럼 대사가 듬성듬성 들어있는 이미지뿐이었으니까. 게다가 대사도 낯설었다. 줄넘기를 하면서 대사를 읊으면서 그 리듬감을 찾아야 할 정도였다.”
사실 <매드맥스 4>는 그 세계관의 외형만큼이나 거칠고 험하게 다뤄진 작품이다. 요즘의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블루 스크린에서의 안전한 액션신이 보장된 작품이 아니었다. “진짜 자동차가 있는데 왜 CG로 만들어야 하나?”라고 묻는 감독의 발언만으로도 확실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물론 정말 위험한 신들을 위한 스턴트팀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배우들 역시 아찔한 순간을 종종 맞이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홀트가 이런 험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즐긴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세상에 한 대씩밖에 없는 차들이 폭주하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촬영을 하는데 8기통 혹은 12기통 엔진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덕분에 감독님의 ‘액션’ 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아서 가끔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다행인 건 결국 괜찮았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정말 끝내주는 세상을 창조했다.”
사실 니콜라스 홀트는 좀처럼 평범한 역할에 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특이한 역할에만 주목한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그 무엇도 불가능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단순히 변신이나 도전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나와 캐릭터의 공통점이 적을수록 연기하긴 더 쉬운 것 같다. 영국식 발음으로 연기할 때가 미국식 발음으로 연기하는 것보다 되레 어렵다. 미국인 행세를 하면 어디선가 스위치가 작동해서 나 자신과 손쉽게 멀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매드맥스 4>에서의 특수분장도 그런 것이었다. 거울 너머에 있는, 삭발한 머리에서 이어지는 흉터와 상처로 점철된 얼굴을 보고 앉아 있으면 ‘그래. 확실히 나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캐릭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괴상한 분장으로 점철된 그의 얼굴을 보고 헌신이나 희생이란 단어를 생각하겠지만 정작 그에게 특수분장은 날개와 같은 것이었다.
<싱글맨>에 캐스팅됐을 당시 니콜라스 홀트는 한 인터뷰에서 동성애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묻자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캐릭터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잠재적으로 동성애자처럼 보일 수 있는 역할이란 이유로 거절한다면 그게 멍청한 거지.” 그가 자신이 분할 캐릭터를 향해 던지는 물음표란 ‘니콜라스 홀트로서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기 보단 ‘니콜라스 홀트가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 “열두 살 무렵의 내가 어떤 소년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에게 중요한 건 결국 현재다. 자신의 현재 시제에 놓인 영화에 충실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 니콜라스 홀트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