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개척시대, 포트스미스라는 마을에 매티 로스(헤일리 스타인펠드)라는 소녀가 나타났다. 같은 날 마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당일이 범죄자 세 명의 사형집행일이었던 까닭이다. 어쨌든 소녀가 그 마을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말을 사기 위해 포트스미스를 방문한 아버지와 동행한 하인 탐 채니(조쉬 브롤린)가 아버지를 죽이고 주머니의 금화를 들고 인디언 구역으로 달아나버린 것. 영민한 소녀 매티는 그의 뒤를 쫓을 동행자를 고용하기로 결정하고 그 중 거칠기로 악명 높이만 검거율이 대단한 연방보안관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에게 접근한다. 그 와중에 탐 채니가 과거에 저지른 살인의 행적을 뒤좇던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맷 데이먼)가 그들 주변에 나타난다. 이로서 세 사람의 추적이 시작된다.
존 웨인의 서부극으로 잘 알려진 헨리 해서웨이의 연출작 <진정한 용기>를 리메이크하며 화제가 된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는 (국내 수입사에서 가져다 붙인 서로 다른 개봉명과 무관하게) 동명의 원제를 지닌 두 작품의 기원이 된 웨스턴 소설의 대가 찰스 포티스의 <트루 그릿 True Grit>을 영화화한 각색물로서도 높은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해서웨이의 <진정한 용기>는 포티스의 원작과 달리 후일담에 가까운 매티의 1인칭 내레이션을 걷어내고 존 웨인이 연기한 카그번의 캐릭터를 묘사하는데 주력한 영웅주의 서부극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매티의 내레이션을 복원하며 극의 흐름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보다 능동적으로 극적 흐름을 유추하게 만드는 감상자의 역할을 생성시킨다. 극적 발단이 되는 인과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을 걷어내고 인물의 대사와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건의 격발지점을 예측하게 만든다. 이는 보다 많은 서사적 예상과 캐릭터적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카그번을 연기하는 존 웨인과 제프 브리지스의 이미지만으로도 <진정한 용기>와 <더 브레이브>의 차이는 손쉽게 발견된다. 거친 주정뱅이이자 난폭한 총잡이인 카그번이라는 인물은 지저분하고 게으른 이미지가 농후한 <더 브레이브>의 제프 브리지스가 깔끔하게 정리된 인상이 느껴지는 <진정한 용기>의 존 웨인보다 상대적으로 사실적인 감상을 부른다. 극적인 상황에 따라 연기력의 격차가 짙게 발견되는 <진정한 용기> 속 캐릭터들보다도 <더 브레이브>의 캐릭터들은 뛰어난 상황 몰입으로 실제적인 연기에 접근해 낸다. 동시에 <진정한 용기>와 달리 <더 브레이브>는 원작의 텍스트를 통해 예견되는 황량한 풍경으로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이렇게 코엔 형제가 연출한 이미지들은 어린 소녀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좇아 연방보안관을 고용하고 추적에 나선다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흥미진진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특히 결말부의 태도는 두 작품의 대조적인 관점을 녹록히 드러내는 결정적인 한 수나 다름없다. 보다 낙관적이고 경쾌한 엔딩으로 마무리된 <진정한 용기>의 감상적 태도와 달리 <더 브레이브>는 보다 냉정한 시선으로 목표에 다다른 인물들의 관계적 결말에서 황량하고 건조한 회상의 양식으로 갈무리한다. 이는 해서웨이의 영화가 훼손시킨 포티스의 원작이 지닌 세계관을 복원해낸 결과물이란 점에서도 흥미롭다.
다양한 장르적 연출을 시도하면서도 직관적인 시선과 냉소적인 위트로 세상을 관조하는 코엔 형제의 세계관은 <더 브레이브>에서도 유효하다. 낭만주의 웨스턴과 수정주의 웨스턴의 길목에 위치한 원작의 관점은 사실적인 관점과 냉소적인 위트로서 현상을 직시하는 코엔 형제의 시선을 통해 또 한번 새롭게 거듭났다. 소품에 가까운,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의 연출가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코엔 형제는 <파고>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냉정한 태도로 세상을 직관해내는 스릴러물을 통해 품격 있는 걸작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물론 <더 브레이브>가 코엔 형제가 만들어낸 필모그래피 속에서 상대적으로 걸작의 반열에 들만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코엔 형제의 냉소적인 시선이 견지된 <더 브레이브>는 코엔 형제라는 이름 안에서 가능한 영화적 품위가 담긴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기억될만한 작품이다.
웨스턴 복수극이라는 평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으나 <더 브레이브>는 그 사건 속에 놓인 인물들의 입체적인 성격을 통해 극적 전개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 서술자의 위치에 놓인 인물이자 사건의 기준이 되는 매티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다부진 면모를 드러내며 이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동시에 나태하고 독설적이지만 정의적인 위엄을 지닌 카그번과 소심하고 융통성이 부족하나 인정이 깊은 라 뷔프의 동행은 다양한 갈등과 충돌을 빚으며 평면적인 극의 흐름에 흥미로운 에너지를 부여한다. 서부 개척 시대 웨스턴의 풍경을 넓게 조망하면서도 인물들의 성격을 세심하게 조명하는 <더 브레이브>는 세계관의 너른 풍경 속에서 깊은 인간적 체온을 발췌해낸다. 포티스의 원작이나 해서웨이의 <진정한 용기>를 접한 이들에게도 영화의 이런 입체적인 면모는 흥미를 끌만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리메이크와 소설의 영화화라는 형식적 의미를 뛰어넘는 영화적 성취이자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코엔 형제의 장인적인 면모에 대한 재확인으로서도 깊은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더 브레이브>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총망라된 동시에 그들의 빼어난 연기가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이란 점에서 감탄을 부르는 영화다. 똑똑하고 야무진 매티 로스를 연기하는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캐스팅에 가깝다. 소심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을 지닌 라 뷔프는 맷 데이먼이 연기한 지난 캐릭터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나 보다 능숙한 연기적 방식으로서 극에 일조하고 있다. 특히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는 <더 브레이브>의 완성도에 일조한 하나의 영화적 특성이라고 평해도 손색이 없다. 존 웨인의 말쑥함과 달리 지저분한 행색의 제프 브리지스는 극적인 사실성을 더하는 동시에 보다 중후한 위엄을 갖추며 영화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데 혁혁한 공헌을 해낸다. <더 브레이브>가 코엔 형제의 영화가 아닌 제프 브리지스의 영화로 불려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한다.” 잠언 28장 1절을 인용하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극의 마무리까지, 중후한 세계관의 중량감을 유지하면서도 감각적인 리듬감을 통해 신을 열고 닫으며 극적인 흥미를 자아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나간다. <더 브레이브>는 이미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코엔 형제가 일정한 영화적 성취를 완수해내는 장인의 궤도로 들어섰음을 확신하게 만드는 인장과 같다. 동시에 이 작품은 역시 장인이라 불려도 좋을 명배우의 중대한 일조를 통해 빚어낸 웨스턴의 위엄이란 점에서 보다 고무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