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월버그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듯 10대를 관통했다. 암담한 어제는 지났다. 다만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 그는 가장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가족과 함께 오늘을 산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밀수업자였던 크리스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벗고 새로운 삶을 입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가 있다. 가족은 그 남자가 사는 이유다. 그러나 마약밀수업자들의 운반책 노릇을 하던 처남이 얻게 된 큰 빚을 대신 갚기 위해서 다시 밀수를 모색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면서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콘트라밴드 Contraband>는 어느 가장의, 아버지의, 결국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크 월버그는 평범한 삶을 꿈꾸는 그 가장의, 아버지의, 한 남자의 사연을 대변한다. ‘딸바보’로 잘 알려진 마크 월버그(Mark Wahlberg)는 할리우드에서도 가정적인 남자로 손꼽히는 남자다. “아이가 생겼을 때, 미치도록 행복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삶이 실현됐으니까.”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스타배우이자 행복한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그의 오늘은 한때 결코 기약할 수 없는 미래였다.
메사추세스주 보스턴 남쪽 교외에 자리한 도체스터에서 태어난 마크 월버그는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10대를 건넜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열한 살 되던 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마크 월버그는 열세 살 무렵 코카인에 손을 댔다. 열네 살의 나이로 학업을 중단했고, 열여섯 살에는 교도소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다. 마약과 폭력은 마크 월버그의 유년시절을 기워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회복시킨 건 가족이었다. 2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간 그는 검정고시 자격을 얻었다. 특히 희대의 아이돌 스타로 군림했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원년 멤버인 친형 도니 월버그는 동생의 삶을 견인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원년 멤버로 발탁됐지만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린 적이 있었던 마크 월버그가 후에 마키 마크라는 힙합 뮤지션으로 데뷔해서 성공을 거둔 것도 제작자로서 서포트해준 형 도니 덕분이었다.
결과론에 가깝지만 마크 월버그가 경험한 이른 일탈은 현재에 다다르기 위해 자신을 위해 마련된 이른 성장통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이른 나이의 과오는 그만큼 삶의 방향을 일찍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된 셈이다.“후회할만한 짓을 많이 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기까지 스스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진정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났다고 느낄 때까지.” 그가 추구하는 ‘제대로 된 삶’은 배우로서 실현됐다. 배우 마크 월버그의 경력에 있어서 방아쇠가 된 건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감독의 <부기 나이트>다. 7~80년대 미국의 포르노 산업의 열풍과 몰락을 살피는 이 작품에서 마크 월버그는 당대의 포르노 스타로 출연하며 남다른 물건으로서의 자질을 드러냈다. 조지 클루니와 함께 출연한 걸프전 배경의 코미디물 <쓰리 킹즈>와 팀 버튼 감독의 리메이크 SF물 <혹성탈출> 그리고 다채로운 출연진과 캐릭터가 눈길을 끄는 범죄물 <이탈리안 잡>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나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로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유년 시절 온갖 비행을 전전한 콜린 패럴이 야생마 기질의 배우로 성장한 것과 달리 마크 월버그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배우가 됐다. 가족의 불화와 가난으로 인해서 길거리의 비행에 내몰렸던 그가 건강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거듭나며 가족적인 가장의 면모를 갖추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길거리에 내몰려 스스로를 망쳐가던 시절에 그가 꿈꾸던 삶이었고, 영화를 통해서 그런 희망을 회복해나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콘트라밴드>는 마크 월버그의 자전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자가 되길 자처한 그는 자신이 연기한 크리스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얻었다.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상황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각각 다른 상황에서 생각과 행동을 이어나가는 방식이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또한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착하고 성실한 남자다. 문제를 해결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방법을 찾아 나간다.”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고단하고 간절한 여정에 마크 월버그는 기꺼이 동참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제작된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콘트라밴드>는 원작의 뼈대를 최대한 살리고 할리우드의 효율적인 제작방식으로 새로운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특히 아이슬란드에서 활동하는 감독 겸 배우이자 <콘트라밴드>를 제작하고 원작에 직접 출연한 바 있는 발타자르 코크마쿠르(Baltasar Kormakur)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마크 월버그는 그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배우이기도 한 그는 카메라 앞에서도, 카메라 뒤에서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굉장히 잘 파악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줄 알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법을 안다.” 뉴올리언즈와 파나마를 오가며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은 단 37일만에 종료됐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적지 않은 액션 신이 연출된 이 작품이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됐다는 건 결국 제작진들의 신뢰로 구축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콘트라밴드>는 올해 오프닝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현재 마크 월버그는 발타자르 코크마쿠르의 새로운 코미디 연출작에 출연을 결정하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호흡을 맞출 준비를 하고 있다.
마크 월버그는 소문난 타투 마니아다. 지난 해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문신 제거 시술을 받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아이들이 내 문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그 광경을 목격하게 만든 건 아버지로서 전하고픈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신을 지우는 고통을 보여주면서 어떤 행동에는 책임져야 할 고통이 따를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일찍이 삶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을 체험했기에 그 뼈저린 교훈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진심, 마크 월버그에게 있어서 지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가 매일 같이 돌아가야 하는 집에 있다. “나는 두 딸과 두 아들이 생기기 전까지 가정적인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이 나를 변화시켰다. 영화에서처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생각할 여지도 없는 문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크 월버그는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