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젤리클 고양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뮤지컬 <캣츠>를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물론 T.S.엘리엇의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읽었기 때문이야! 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겠죠. 하지만 이미 원작보다 유명해져 버린 뮤지컬을 먼저 염두에 둔다는 게 그리 어리석은 일은 아니겠죠?
사실 (인터미션 20분을 제한) 2시간 20분의 공연을 관람하고 나온다고 해도 저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아요. 젤리클 고양이를 아냐고 객석에 물음을 던지던 고양이들은 공연 내내 젤리클 고양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번도 대답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젤리클 고양이가 어떤 고양이인지에 대한 고민 따위는 금새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고양이란 동물에 대한 호감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거에요. 중요한 건 사실 젤리클 고양이가 뭘까, 라는 고민 따윈 중요하지도 않다는 거죠. 공연을 보고 나서 저 물음표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쩌면 젤리클 고양이에 대해서 되묻는다는 건 내 이름의 연원을 캐묻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일 거에요. 젤리클 고양이는 말 그대로 ‘젤리클 고양이’일 뿐이라고요. 바로 당신이 2시간 20분 동안 주목하는 무대 위의 고양이들 말이죠.
젤리클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고양이의 모든 것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물론 그들은 고양이가 아니에요. 엄연히 사람이죠. 그걸 당신이 알고 있다는 점이 <캣츠>의 묘미입니다. 고양이 분장을 하고, 꼬리를 달고, 고양이의 네발처럼 무릎과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고양이처럼 눈을 비비거나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죠. 그 모습은 실로 고양이처럼 앙증맞거나 도도하고 우아해서 놀라울 지경이에요. 그들은 철저하게 고양이처럼 굽니다. 게다가 그들은 종종 무대에서 뛰쳐내려와 객석 사이를 활보하곤 합니다. 공연이 시작할 때쯤, 무대 위로 슬금슬금 모여들던 고양이들에 집중하다 어느 순간 옆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지 몰라요. 그들은 무대 뒤에서 튀어나오거나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뛰어내려와 당신을 바라보며 노래하기도 하죠. 만약 당신이 운좋은 관객이라면 자신을 선택한 고양이와 객석을 거닐게 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을 거에요. 물론 본인에게 모든 관객의 시선이 모이는 것쯤은 감안해야죠. 하지만 그 눈길에 어떤 부러움이 섞여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건 결코 나쁜 경험이 아니겠죠? 무엇보다도 최고의 팬서비스는 <캣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오리지널 넘버, ‘Memory’의 한 소절을 한국어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이죠. 가히 감동적이에요.
현대무용에 기초한 군무와 독무는 절제된 세련미와 함께 화려한 동선을 자랑합니다. 호사스러운 볼거리임에 틀림없죠. <캣츠>는 연극적인 이야기 흐름보다는 화려한 안무와 흥겹거나 구슬픈 음악을 통해 뮤지컬의 묘미를 철저하게 증명하는 작품이에요. 사실 중심인물의 교체와 함께 단막적인 형식으로 치고 빠지는 <캣츠>의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에게 친절한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동시에 몰입도가 상승하는 관객이라면 이 뮤지컬에 집중하기 힘들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요. 하지만 <캣츠>는 결코 허술한 뮤지컬이 아니에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연관이 있지만 <캣츠>의 이야기 구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캣츠>가 T.S.엘리엇의 시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시집을 하나의 뮤지컬 형태로 완성함에 있어서 <캣츠>는 그 개별적 장르의 특성을 이야기 구조에 반영하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것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스물아홉 마리 고양이들의 사연을 다채롭게 전달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를 누비는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개성이 넘쳐요. 당신이 평소에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그 취향을 다시 한번 재고해보고 싶을 거에요. 게다가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들은 각각 무대 앞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자신들의 사연을 노래하곤 하죠. 그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저마다 제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 와중에 갈등과 충돌도 발생하지만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펼치는 대장정의 궁극적인 주제는 고양이를 존중해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에요. 이렇게 매력적인 고양이가 존중 받을만하지 않나요? 라고 스스럼없이 묻는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낭만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온화하며, 사나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앙증맞은, 그런 고양이라고요. 뮤지컬 <캣츠>는 당신에게 지혜로운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안내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 고양이 울음소리가 재수없다, 라는 편견을 지닌 당신이라면 한번쯤 그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이 젤리클 고양이들은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동물인지 당신에게 새삼스럽게 각인시켜줄 만한 지혜로운 고양이임에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