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정됐던 8시가 조금 넘어서 오프닝 게스트인 태양의 공연이 시작됐다. ‘기도’와 ‘나만 바라봐’를 불렀는데 무대 연출에 어느 정도 능한 느낌이 들었다. 다만 곡의 절반이상을 립싱크로 잡아먹는 라이브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물론 여성 팬들은 엄청난 소리를 질렀지만. 라이브 연주가 아닌 MR이라 음향도 썩 좋지 않았다. 뭐 그저 오프닝 게스트일 뿐이었다. 흥을 돋우기엔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저 1집 솔로 가수일 뿐이다. 물론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을 듯. 이것이 불만스러운 문장으로 보인다면 그저 오해요. 허허.
태양의 공연이 끝나고 30분에 시작될 예정이던 알리샤 키스의 공연은 역시나 지체됐다. 내한 공연은 언제나 30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 게 관례라는 걸 이미 숙지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물론 실내는 살짝 더웠고, 스탠딩 좌석은 살짝 술렁였다. 8시 45분 즈음 스태프로 보이는 외국인 2명이 무대에 나와서 관객에게 파도타기를 유도했지만 그다지 큰 호응은 없었다.
9시 즈음,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자리를 잡은 세션들의 연주가 시작됐고 관객석은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알리샤 키스의 등장! 엄청난 환호와 함께 메인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전체적으로 음향에 대한 큰 결함은 없었다. 잠실실내체육관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괜찮은 사운드를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알리샤 키스의 보컬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게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녀를 본다는 것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뭐 별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Intro와 중간 Interlude를 제외한 총 14곡의 셋리스트, 그리고 2곡의 앵콜은 1시간 30여분을 꽉 채웠다. 셋리스트는 올해 발표한 세 번째 정식앨범 ‘As I am’에서 가장 많은 7곡이 선곡됐고, 두 번째 앨범인 ‘The diary of Alicia Keys’에서 5곡, 데뷔앨범인 ‘Songs in a minor’에서 3곡, 그리고 Unplugged앨범에 수록됐던 Unbreakable과 어셔(Usher)의 앨범에 수록된 듀엣곡 My boo로 채워졌다. 확실한 건, 스튜디오 앨범보다 라이브에서의 보컬이 더욱 폭발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 소울풀(soulful)한 보컬링이란 막연한 단어의 의미가 체감됐다. 관객들의 호응도에 따른 무대의 리액션도 상당히 열성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크게 흠잡을 구석이 없는 공연이었다. 국내 공연장의 열악함을 염두에 둔다면 현지에서 공수한 장비와 세션의 능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평가할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리샤 키스의 실력과 무대매너는 가히 관객의 호응을 끌어내기에 탁월했다라 말할 수 밖에.
공연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열기가 뜨거웠다. 셋리스트가 진행될수록 공연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는 인상이었다. 특히 스탠딩석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꽤나 큰 수확이다. 상당히 대규모의 스탠딩석이 확보된 것이 아님에도 나름 무대와 가까운 곳에서 치이지 않고 여유 있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것도 알리샤 키스의 공연을 말이다! 특히나 공연의 말미에 다다라서 두 번에 걸친 앵콜은 작위적(?)인 의도를 통해 관객의 열기를 끌어냈다. 가히 탁월한 무대매너라 할 수 있다.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중요한 무대매너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No one과 If I ain’t got you로 이어진 두 번의 앵콜은 정말 엄청난 희열을 부여했다. 물론 무엇보다도 곡이 적절했다. 전체적인 셋리스트부터 세션의 수준, 보컬의 상태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아무래도 한가지 지적당해야 할 부분은 알리샤 키스의 공연과 무관하게 티켓의 가격이다. 듣보잡 공연 기획사가 비욘세로 반짝하더니 갑자기 돈독이 올랐는지 터무니 없는 가격을 책정했다. 3층 사이드의 A석 가격이 십만 원대라는 게 말이 되나? 잠실실내체육관에 한번이라도 와서 공연을 본 관객이라면 아무리 그 누가 온다 한들, 정신 줄을 놓지 않고서 그 자리에 십만 원의 거금을 소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공연 당일, 인터파크에서 남은 좌석을 반값에 급매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그럼 초반에 예매한 관객은 뭐가 되겠는가? 이런 식으론 악순환만 도모한다. 결국 제값을 받는 공연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근래 들어 대형뮤지션들의 내한이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이상한 외부적 잡음이 언젠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국내에 내한하는 톱뮤지션들의 공연 티켓가는 한번쯤 심각하게 조정 당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뮤지션들은 죄가 없다.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에 열 올리는 기획사들에 뇌구조를 파헤쳐야 할 것이다. 특히 입장하는 부근에 널린 초대권 암표상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딴 식으로 초대권 남발해서 헐값에 자리를 채울바에야 차라리 티켓가를 2~3만원 낮춰서 좀 더 실속을 챙기는 것도 그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관객도, 기획사도, 서로 윈-윈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