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몰랐지만 오늘만큼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널 만나는 길이 이상하게 피하고 싶어. 그래도 발을 옮겼다. 한동안 못 만났으니 시간 날 때 열심히 얼굴 봐둬야지. 가까스로 인사동 초입에 도착해서 기다리는데 반대로 갔단다. 핀잔을 줬다. 만났을 때 한참 불만스런 얼굴이었다. 그게 또 아니꼬워 한 소리, 두 소리, 아, 이러려고 만난 게 아닌데, 한참 후회하다, 같이 밥 먹으면 친해진다잖아.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그리고 가볍게 술 한잔. 대화가 풀어졌다. 아, 됐구나. 안심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이하게 불안했다. 그래도 마음을 놓았다. 가게로부터 나오는 길, 벼락이 떨어졌다. 세상은 고요했다. 지나는 사람도 많았는데 너밖에 보이지 않더라. 그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고자 조심스레 한마디 한마디. 지난 번에도 한번 그랬는데, 에이, 설마. 그러다 내가 맞은 벼락이 보통 센 놈이 아님을 깨닫고는 뒤늦게 어이쿠, 발버둥을 쳐볼까 하다가 문득 뒤돌아 섰다. 한참 걸어가다 그 놈의 인사동 초입에 다다라서야 정신을 번뜩 차렸다. 미친 듯이 뒤돌아 뛰었다. 아, 이놈의 저질체력. 담배를 끊었는데도 몸은 저질이 됐나 보다. 매일같이 의자에 앉아서 살다 보니 심장이고 폐고, 하나같이 쪼그라들었나. 여하간 가까스로 안국역으로 뛰어내려갔지만 넌 없었다.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받아준다. 경복궁 역까지 갔던 네가 돌아왔다. 아, 아직 희망은 있구나. 잠시 부풀었다.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벼락이었어. 차라리 에라, 이 씨발놈아, 쌍욕을 한다면 그나마 맘 편히 돌아설지 모를 일이건만 그 눈빛이 애처로워, 나도 당연히 애처로워. 이러쿵 저러쿵 달래보고, 자조해보고, 하지만 네 마음은 이미 단단해. 결국 그 단단한 마음 녹이지 못하고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난 끝까지 다시 보자, 라고 인사했지만 차마 염치도 없어. 돌아오는 길, 다행히도 예전과 달리 눈물이 나지 않아. 아, 설마 이게 진짜 그것인가. 문득 신사역에 도착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순간, 기이하게 슬퍼.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어금니를 꽉 물고 집까지 가까스로 전진했다. 이 놈의 난데없는 하수도 공사는 내 맘도 모르는지 집 앞길을 연신 파대고 집에 들어오니 샤워기 쏴 틀어놓은 채 맘 놓고 울어댈 수 없게 물도 나오지 않아.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방문을 틀어박고 넬 노래나 듣다가 엉엉 울었어. 그냥 그렇게 엉엉 울었어. 세상에 쿨한 이별 따위는 없어. 어쩌면 뒤늦게나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될 뿐이지. 아쉽지만 넌 이미 상행선. 난 저 아래 하행선에서 반대로 지나간 열차 바라보며 다시 한번 엉엉. 그냥 모든 것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제발, 다시 보자.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부질없는 미련이라 탓하지 마오. 이게 내 진심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