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를 제압할 상대는 없다. 총알조차도 그에겐 가벼운 쇳덩이에 불과하다. 그는 천하무적이다. 하지만 이 남자, 나태하다. 질서의식도 없다. 언제나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다니는 그는 도시의 필요악이다. 악당이 나타나도 그는 길가 벤치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잠을 자고 있다. 악당을 물리쳐야 한다는 꼬마에게 등 떠밀려 현장으로 출동하지만 그는 시민들의 안전이나 도시의 미관 따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의 영웅놀이가 LA를 위협하고 있다고, 그가 차라리 뉴욕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시민들은 푸념과 질시를 보낸다. 그 남자 핸콕(윌 스미스)은 그래도 술병을 따고 있다.
<핸콕>은 기존의 히어로 무비들과는 개념이 다르다. 핸콕은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히지도 않으며 신분을 가리기 위해 평범남과 히어로의 이중생활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술병을 들고 다니는 고주망태가 되어 음주비행을 일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도시의 기물을 파손하는 꼴통(asshole)일 뿐이다. 물론 그가 도로에서 총기를 난사하며 질주하는 자들을 제압하거나 철도 건널목에 멈춰선 차에 탑승하고 있는 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철도를 막아서는 등, 나름대로의 능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그에 대한 기회비용이 너무나 막대한 실정이다. 핸콕은 악당들로부터도, 시민으로부터도 천대받는 유례없는 초인이자 사회적 필요악이다.
기존의 히어로 무비의 관습을 뒤엎는 설정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다. 제각각 슈트를 갖춰 입은 초인들은 자신의 이중생활에 번뇌하거나 마이너리티로써의 정체성에 고민하곤 했지만-최근 <아이언맨>이 이례적인 사례를 남기긴 했지만- 술병을 들고 날아다니는 핸콕에게 그들은 쫄쫄이 타이즈를 입은 호모에 불과하다. <핸콕>은 히어로 무비의 관성에 짓눌린 무게감보단 가십거리를 양산하는 셀레브리티의 가벼움에 가깝다.핸콕이 우연히 목숨을 구한 홍보전문가 레이(제이슨 베이트먼)가 핸콕에게 ‘당신은 사랑받아야 한다’며 이미지 메이킹 제의를 주고 핸콕이 결국 이를 수용하는 순간 <핸콕>이 지닌 설정의 가벼운 묘미는 확실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꼴통으로 불리던 핸콕이 제멋대로 웃자란 버릇을 억제하며 자숙을 하던 중, 결정적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레이가 준 슈트를 입고 매너있게(?) 악당으로부터 도시를 구하는 순간 그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탈바꿈되고 인생역전에 성공한다. 찬사 받는 영웅의 탄생 과정은 흡사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는 듯한 묘한 뿌듯함을 남기는 동시에 아이러니한 위트를 형성시킨다. 동시에 이는 스타 기획 시스템 속에서 사고뭉치 셀레브리티가 국민스타로 거듭나는 이미지 메이킹 과정과도 흡사하다.
하지만 설정의 묘미가 정점에 달하는 순간, 약발도 떨어진다. 기막힌 설정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 성공했으나 그건 에너자이저처럼 오래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단발성 이벤트에 가까운 소재 덕분에 <핸콕>은 러닝타임을 유지시킬 땔감이 더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자리잡은 것은 간단한 발상전환만으로 상승세를 유지했던 영화적 묘미를 순간 역으로 눕히는 셈이 됐다. 물론 의외의 캐릭터를 전복시키는 깜짝쇼를 펼치며 (스포일러 따위를 접하지 않은 관객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의 효과를 일시적으로 작동시키긴 하지만 그 역시도 약발이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설정의 파격을 통해 버라이어티의 묘미를 펼치던 <핸콕>은 드라마로 연결한다. 랩뮤직처럼 리드미컬하던 재미는 점차 오페라처럼 장중해진다.
전후로 양분할 수 있는 내러티브 전환의 무리수와 함께 영화는 전체적인 흐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창세기 아담과 이브처럼 연인의 운명을 타고난 불사의 남녀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의 비범한 능력을 중화시키는 덕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운명적 비극을 통해 간절한 로맨스의 기운마저 내포하는 후반부는 개별적인 설정으로써 흥미를 유발할만한 사안이지만 기존에 <핸콕>이 지니고 있던 주요한 매력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핸콕이 선량해지는 순간, <핸콕>은 일정한 묘미를 잃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핸콕>은 삐딱하고 불량한 초인의 망나니 짓을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작품이었기에 그 설정에 발전적인 양상을 덧씌우지 못하는 이상, 영화적 효력도 거기서 끝날 공산이 컸던 까닭이다.
러닝 타임의 절반 가량을 꼴통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에 할애한 <핸콕>은 나머지 러닝타임을 메우기 위한 대책마련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10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 안에서 그 설정을 효과적으로 지속시킬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실패한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애초에 <핸콕>의 시나리오는 현재 완성본에 비해 조금 어두운 내용으로 전개됐다 한다.- 기존의 이미지를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용두사미로 전락한 듯한 <핸콕>은 여러모로 아쉬운 기획물임에 틀림없다.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선전하는 윌 스미스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용두사미의 진수를 보여준 <나는 전설이다>의 뒤를 이어 <핸콕>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맞이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