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님으로부터 개편 축사를 부탁받았다. 게으름과 축적된 업무 처리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개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부랴부랴 작성한 글. 늦은 밤에 비몽사몽한 기분으로 써내려갔더니 두서가 없다. 어떤 대단한 야심도 없이 불필요한 잡담이 팔할이다. 맙소사. 아침에 맨 정신으로 보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어쨌든 그래도 네오이마주는 온라인의 열악한 텍스트 사이에서 나름대로 진중한 영화 보기를 추구하는 비평 사이트다. 영화에 대한 깊은 견문이나 애정이 충만한 이들이라면 한번 정도 구경해보시라. 이하는 개편 축하글 전문.
“강한 놈이 오래 살아남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여.” <짝패>에서 나오는 그 대사처럼, 정말 살아남은 자가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뜬금없지만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다름아닌 매체의 증발을 통해서였죠. 작년에 사라진 ‘필름2.0’을 비롯해서 올해 사라진 ‘프리미어’까지, 나름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잡지들이 2년 사이에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미어’에 꾸준히 원고를 보내던 입장이기도 했던 차라 약간은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의 역사를 지니고 있던 매체 하나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침통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알다시피 영화 전문지라는 이름으로 발행되는 잡지는 현재 주간지 2종, 월간지 1종이 남았습니다. 게다가 심심찮게 어느 잡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풍문마저 돕니다. 아니, 사실 풍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설득력이 대단한 소문이 돌곤 하죠. 시장의 상황이 그런 설득력을 부채질하는 바도 없지 않군요. 아쉬운 일입니다. 영화전문지라는 매체가 시장장악력을 지니지 못해서 아쉬운 게 아니에요. 점점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글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사라지고 있다는, 그리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때때로 속상합니다. 온라인도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온라인이 대세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제가 녹을 먹고 있는 ‘무비스트’를 비롯해서 전문영화사이트를 표방하는 온라인 매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대한 포털사이트의 파이에 잠식당해 왔고 지금까지도 존폐의 위기를 건너고 있습니다. 또한 포털 사이트에 종속되지 않고 개별적인 독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오히려 영화 홍보사들이 매체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는 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영화지와 일간지, 그리고 무가지를 비롯한 오프라인 매체와 수많은 닷컴 온라인 연예뉴스 매체들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영화사이트에게 남은 할당량이 떨어집니다. 4~50개 정도의 인터뷰를 했다는 배우나 감독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배우들이 지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해가 갑니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인터뷰도 하나의 마케팅의 영역이며 같은 1시간을 쓰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확률이 있는 매체에게 배려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수긍할만한 입장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효과를 목전에 둔 시야가 때때로 야속한 것이 사실입니다. 적어도 영화만을 고집하고 최대한 영화를 위한 언어를 추구하는 공간에 어떤 배려가 따를 순 없는지 종종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들에게 당장 중요한 건 영화 한편의 성공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영화를 위한 공간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가 아니라 제물을 노리듯, 자극적인 떡밥으로 완성된 헤드라인이 난무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들을 보면 그 기사를 위해 1시간 가량을 소비했을 어떤 배우와 감독의 노고가 안타깝습니다. 그런 단발적인 이벤트성 기사들이 속출하는 건 개인적으로 그 시장의 공모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일부 인터넷 매체들의 수준 낮음을 탓할 일은 아니죠. 그런 상황을 부추기는 배후는 분명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영화담론의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게 만드는 풍토에 어느 정도 이바지 했다고도 저는 확신합니다. 단지 요즘 사람들이 글을 읽기 싫어해서라고 떠넘기는 건 어딘가 억울한 일일 거에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손쉬운 마케팅의 장으로 숙성시켜버린 원인은 분명 쌍방에 있습니다. 영화라는 고유의 가치를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성숙된 매체를 만드는 건 단지 어느 누군가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작은 배려가 아쉬울 때가 적잖은 게 사실이에요. 오프라인 영화전문지가 사라지는 아쉬운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영화만을 고집해 온 영화사이트에 대한 시장의 배려가 아쉽습니다. 속 좁은 투정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적어도 이 문제제기가 작게나마 시장에 어떤 자극이 될 수 있다면 말이죠. 물론 제가 훌륭한 문장력을 구사하지 못한 탓에 대단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만.
영화기자나 평론가는 영화인의 범주에 속하는 일원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하나의 생산품이라 본다면 영화기자는 2차적 생산자 즈음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공정에 참여하진 않지만 생산된 물품을 판매자에게 넘기기 전 면밀히 검토하는 입장이 되곤 하니까요. 요즘은 일반적인 관람객들이 그 대열에 합류하는 시대입니다. 물론 포털 사이트에 산재한 무성의한 평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가 등급을 매기기 좋은 단순한 소비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 역시도 이름 석자를 걸고 별점을 매기는 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느 개인의 별점이, 혹은 다수의 평균이 그 영화의 절대적 가치를 대변할 순 없는 겁니다. 개인마다의 고유한 감상이 결과적으로 그 영화가 창조한 우주가 될 겁니다. 모든 예술은 어떤 식으로든 개개인의 소우주에 잠재적으로나마 영향력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우주들이 접점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감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때 우주는 확장되고 팽창되어 새로운 우주를 이루겠죠. 그리고 네오이마주는 새로운 우주의 확립을 도모하는 공간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음,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누군가를 안드로메다로 날아오르게 할만한 빵상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잡소리가 길었죠. 하지만 이젠 불필요한 주행을 줄이고 결론에 접근해야겠습니다. 결승점을 앞에 두고 옆길로 돌아 동네 8바퀴 반을 돈 기분이지만 이젠 결승점을 통과해야겠습니다. 네오이마주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공간입니다. 제가 이 공간에 대한 축사를 남길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3주년 기념 축사를
사실 저보다도 이 공간에 깊은 애정을 품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매일 같이 정성스레 작성한 글을 송고해주시는 독자회원 님들을 비롯해서 네오이마주의 편집 스태프 분들까지, 사실 제가 네오이마주의 개편을 축하할만한 자격이 없다는 건 그들에 비해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충만한 입장이었는지 증명하기가 무색한 까닭일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네오이마주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접점들이 사라지고 영화에 애정을 표하는 문장들이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그 언어에 목마른 이들이 집결할 수 있는 곳이 사이버 스페이스 그 어딘가에 위안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 고무적인 일일 겁니다.
전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영화기자가 된 건 영화를 보고 주제넘게 참견하는 재미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사랑해요, 라는 간지러운 고백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영화가 저에게 낙을 주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물론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누구 등쳐먹고 사는 건 아니니까 불순분자로 낙인 찍진 말아주세요. 때때로 빈약한 두뇌 회전율을 대체하는 엉덩이의 인내력으로 의자에 빌붙어 문장들을 최선을 다해서 있는 힘껏 싸지르며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요. 그래서 때때로 네오이마주의 애정 어린 고백들을 보면 숙연한 마음을 느낍니다. 그 문장들을 구현하는 원동력은 아마도 애정 그 자체겠죠. 때때로 다크서클을 통해 중력의 힘을 체감하는 생활에 지쳐서 날림처럼 문장을 배열하곤 배째라 신공으로 모른 체 넘어가던 문장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을 깨닫곤 합니다. 특히나 어떤 물질적 대가를 위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자신의 열정과 애정을 통해 산고의 고통을 견뎌낸 듯한 어떤 글들은 객관적인 완성도를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순수한 열정은 어떤 기교보다도 참신한 자극을 주는 법이니까요.
세상이 추악할수록 아름다운 것이 보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이 불필요한 문장을 읽고 있는 그대라면 그 아름다운 것이 영화가 될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전 그 아름다운 것을 이 세상과 공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저는 영화가 인간과 이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소통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영화에 흥미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지점에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각자 나름대로 자신만의 기준을 통해 영화에 애정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 애정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순 없겠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고백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건 중요하겠죠. 네오이마주는 어쩌면 여러분의 충만한 애정을 배려하는 장소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테고요.
어쨌든 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살아남아주세요. 그래서 네오이마주를 살려주세요. 영화를 통해 꾸준히 아름다움을 추구해 나가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보는 그 아름다움을 세상과 공유합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복수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노는 것만큼 훌륭한 저항은 없거든요.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당신, 여기서 잘 놀아주세요.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아남아 봅시다. 사족이 길었지만, 개편 축하 드립니다. 이 짧은 말을 하려고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라도 알리던 병사처럼 비범하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전 원래 문장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니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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