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앞두고 산통에 시달리는 산모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한다. 휠체어를 탄 채 분만실로 향하는 산모는 당장 맞이한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시에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곧 잉태의 축복은 사산의 저주로 돌변한다. 갑작스런 출혈과 함께 유산을 알리던 의사는 곧이어 태아의 주검을 꺼내기 위한 절제술에 돌입한다. 비명을 지르는 아내 앞으로 뒤늦게 분만실에 들어온 탓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남편이 캠코더를 들이민다. 순간 의사가 말한다. “아이가 살아있어요.”온 몸에 피에 젖은 아이가 아내의 얼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한번 날카로운 비명으로 분만실을 뒤흔들던 아내는 비로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다.
아내의 악몽에서 시작되는 <오펀: 천사의 비밀>(이하, <오펀>)은 진짜 악몽 같은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 한 가정의 비극을 담보로 한 스릴러다. 세 번째 아이를 유산한 부부가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영민하고 착한 여자아이를 입양하지만 딸이 된 입양 소녀는 어느 순간부터 괴물 같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점차 의심에 빠져드는 아내, 이를 부인하는 남편은 지난 날의 비화를 꺼내 들고 갈등에 빠져들며 아이가 계획한 파국으로 발을 담근다. 친절한 이방인의 유입이 갈등을 부르고 감춰진 속내가 파국을 모색하는 과정은 어느 스릴러 영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주요한 설정 가운데 하나란 점에서 <오펀>이 활용하는 서스펜스의 장치들은 딱히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없다.
악마적 영악함을 지닌 아동 캐릭터로부터 강력하게 발산되는 서스펜스는 <오멘>과 같은 오컬트 무비의 기시감을 부른다. 동시에 입양아가 평화로운 가정을 뒤흔든다는 설정은 <케이프 피어>와 같은 가족 지키기 스릴러에서 활용하던 전술과 유사한 것이다. <오펀>은 ‘낯선 자의 친절을 경계하라’는 스릴러적 규칙에 입각한 캐릭터 장르물이다. <오펀>이 새 술을 담은 부대는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오펀>은 뛰어난 응용력을 선보이는 호러이자 스릴러다. 사악한 본능을 고스란히 선보이는 아동 캐릭터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악마적 매력을 선사하며 이는 <오펀>이 곳곳에 매복해둔 장치들과 더불어 장르적 착시를 이룬다. 순진무구한 아동 캐릭터를 악의 근본처럼 묘사하는 동시에 호러적인 연출방식을 더하며 전략적으로 초자연적 예감을 부른다.
캐릭터의 완성도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만큼 어린 배우의 영민한 연기가 관건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오펀>에서 에스터를 연기하는 이사멜 펄먼의 연기는 높게 평가 받을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에스터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노골적인 본심을 드러내는 냉정한 눈빛으로 돌변할 때마다 긴장감이 새어 나오고 이는 서사의 진행과 함께 두텁게 축적되며 영화 안에서 지속적인 서스펜스를 구축한다. 또한 <오펀>은 순진무구한 아동 캐릭터를 절대악의 대상에 국한시키지 않고 아동 특유의 유약한 심리를 이끌어냄으로써 궁극적인 장르적 목적성에 접근한다. 이기적인 아동의 심리를 전시함으로써 절대적인 신비에 기대지 않고 이성적인 병리학으로서 범죄적 논리를 설득시킨다.
말미에 다다라 밝혀지는 진실은 사실 <오펀>이 야기시킨 모든 서사적 이해를 온전히 전복시키는 반전 그 자체다. 아동 캐릭터라는 정보를 통해 이해되던 심리적 구조를 일거에 전복시키는 동시에 스토리의 흐름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반전으로서의 쾌감을 부른다. 물론 추격과 난투로 점철되는 후반부의 단순화된 흐름은 심리적 긴장감을 유지하던 그 이전까지의 흐름과 배반적인 감상을 부르지만 그 상황을 통한 절대적인 긴장감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서스펜스를 구가하고 있다고 인정할만하다. 정서적 긴장감의 양태가 달라질 뿐, 흐름의 양상은 훼손되지 않으며 서스펜스의 절대량은 보존되거나 더욱 상승한다.
물론 아동 캐릭터를, 그것도 입양아를 악의 이미지로 치환하고 공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일부 특수한 계층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불순함이 감지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장르적 완성도를 염두에 두자면 감안할 수 있는 성공적 투자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정도의 의도적인 필요악쯤은 충분히 감안하고 장르적 성취를 즐기는 것이 타당하다. 그만큼 <오펀>은 인상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그리고 효과적인 연출력까지,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부르는 스릴러다.
미소 너머로 본심을 가린 채 가족을 위협하는 이방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악마적 캐릭터, <오펀: 천사의 비밀>은 기시감을 부르는 영화다. <오멘>과 같은 악마적 아동이 등장하는 오컬트를 비롯해서 <케이프 피어>와 같은 가족지키기 스릴러까지, <오펀>이 흡수한 장르적 전례는 차고 넘친다. <오펀>이 영리한 영화라 말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오펀>은 새로운 전형이라기 보단 뛰어난 응용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악한 유아적 캐릭터를 통해 장르적 착시를 발생시킨 뒤, 관객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무엇보다도 에스터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점차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마다 연출되는 긴장감이 서사의 진행과 함께 두텁게 쌓여나간다. 결과적으로 <오펀>이 이룬 장르적 성취의 팔 할은 절대적으로 에스터를 연기하는 이사멜 펄먼의 연기력에 얹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말부에 다다라 내던져진 반전 역시 호불호의 차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존재하나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적절한 흐름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확실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말미에 다다라 난투극으로 변질되는 양상이 영화를 단순화시킨다는 인상도 들지만 역시나 그 순간조차도 절대적인 긴장감이 발생한다. 인상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그리고 효과적인 연출력까지,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부른다.
폐쇄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는 신분을 초월하는 수단이자 때때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서 여성의 외모는 유효한 재능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유효한 수단이다. 다만 선천적 한계가 그 가능성을 좌우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엔 후천적 선택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
과거의 여성보다 현대의 여성이 보다 큰 미적 욕망을 품을 수 있는 것도 그 가능성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접근 가능성에 있다. 더 이상 아름다운 외모란 물려받지 못하면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와 성형이 지배하는 현대의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외모란 특수한 재능의 영역에서 점차 필수적 덕목의 수준으로 이해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가학원>은 그런 세태를 반영하는 영화다. 최고의 쇼호스트였던 효정(유진)이 미스코리아 출신의 후배에게 밀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자신의 위치에 위기감을 느끼다 외모적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과정은 특수한 직장의 분위기를 담보로 연출된 보편적 이미지에 가깝다. 동시에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요가학원에 참여하게 되는 효정을 비롯한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외모에서 비롯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요가학원>의 설정에 일면 그럴 듯한 구석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도 관계의 설득력에 있다.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여성들의 관계는 권력적 욕망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으며 질환적 수준의 광기를 표출한다는 점에서도 시대적 증후를 표면적으로 노출한다. 요가학원이라는 집단의 형태 자체가 시대적 광기를 표출하는 공포의 근본 지점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그녀들의 선택은 부질 없는 집착을 넘어서 필연적 본능에 가까운 절박에 가까운 요구량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증후를 장르적 공포로 치환한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쓸만하다. 하지만 <요가학원>은 명확하게 그 아이디어 이상의 결과물에 도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영화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로 같은 공간과 우아함과 불길함을 동반한 미장센이 시각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본질적 의도는 철저하게 망각된다. 지극히 예상범위를 맴도는 자극적 영상이 권태롭게 전시되고, 평면적인 사연을 담아내기 위한 캐릭터들이 덧없이 나열되다 차례로 퇴장한다. 그 가운데서 무기력하게 낭독되는 일차원적인 메시지가 설득력을 얻지 못한 채 귓가를 맴돈다.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로 건축되지 못한 사연들은 손쉽게 와해되며 확실한 방점을 찍지 못하고 뜸만 들이는 장르적 분위기는 결말에 다다라 차갑게 식어버린다. 어느 지점에서도 방점을 찍지 못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력도, 흥미를 유발할 만한 장르적 성취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그 와중에 보상받을 길이 막막한 배우들의 육체적 노고만이 안쓰럽게 눈에 밟힌다.
선혈이 선명한, 상흔이 뚜렷한, 공포에 질린 소녀가 공장지대에서 발견된다. 신체 곳곳에 학대의 흔적이 가득한 소녀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소녀가 발견된 공장지대 건물 내부엔 가학적 증거들이 즐비하다. 의문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과연 그 안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큐적 질감의 영상 너머로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연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사연은 다시 한번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의문을 증폭시키고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물음표의 미로를 만들어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봉쇄한다.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잔혹한 이미지가 전시되는 스크린을 응시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을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은 실로 잔혹한 영화이기 전에 강한 의문을 발생시키는 영화다.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가학적 사연을 짐작하게 만드는 시작 이후로, 역시나 근본을 알 수 없는 무참한 학살신이 시선을 장악하고 그 지점부터 충격이 고스란히 쌓여나간다. 모든 의문의 주체인 루시(밀레느 잠파노이)가 눈물을 동반한 학살을 자행하고, 정체불명의 괴인으로부터 근본을 알 수 없는 공격을 당하고 쫓기게 되는 순간까지, 관객은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을 공략하는 서스펜스에 난도질 당해야 한다.
쏘고, 베고, 찌르고, 가르는 고문적 이미지가 생생하게 눈앞을 오가는 광경은 치가 떨릴 만큼 잔인한 감상을 부른다. <마터스>가 핸드헬드로 포착한 혼란의 도가니를 통해 캐릭터의 공황적 심리에 동참하고 있다고 믿게 됐다면 공포에 질린 캐릭터의 얼굴을 관찰하는 외부자의 위치를 문득 깨닫고 캐릭터가 내지른 비명과 함께 저만치 다른 편으로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말 것이다. 폭풍우처럼 거세게 몰아치는 서스펜스의 여정이라 할만한 중반부까지의 과정은 장르적 연출 면에서 가히 탁월하다 칭해도 좋을 만한 수준을 일관하는 동시에 극한적인 체험에 가까운 공포를 깊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정체를 드러내는 극악한 세계관은 앞선 시각적 자극을 잊게 만들 정도로 참담한 심경을 안긴다. <마터스>의 본질은 그 지점에서 발효된다.
탁월한 장르적 연출과 극한의 가학적 이미지를 동원한 중반부까지의 과정은 사실상 후반부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수련과 같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편적인 이미지즘의 총합을 통해 전가되는 서스펜스의 즉물적 자극을 넘어서 좀처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만드는 공황적 충격이 엄습한다.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의문에서 시작해 감정을 후벼 파는 서스펜스가 거칠게 휘몰아치고 나면 후두부를 강타하듯 충격적인 세계관이 머리를 들고, 밑도 끝도 없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다. <마터스>는 불순하게 여겨도 무방할 정도로 극악한 영화다. 의문을 품게 만드는 극단적인 참상이 거칠게 전시되고 나서야 베일을 벗는 끔찍한 세계관의 정체는 결과적으로 그것의 의미에 대한 해석적 빌미를 전혀 제공하지 않으면서 제 스스로 물음표를 파기한다. 그것은 선의의 여운이라기 보단 악의적 도피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대체 뭘 본거냐. 하지만 끝난 영화는 말이 없다. 참혹한 기분과 어지러운 심정이 모든 감정이 휘발되듯 창백해진 심리 안으로 어지럽게 맴돈다.
끝없는 의문 사이로 감탄과 탄식이 명확히 동반되는 <마터스>는 어떤 의미로든 분명 놀라운 영화다. 장르적인 방식 안에서도 뛰어난 연출적 자질을 선보이고, 좀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사의 저력이 대단하다. 동시에 그 끔찍한 이미지를 전시하는 방식 역시 관습을 잘 따르면서도 창의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깊게 파고 드는 참담함 너머로 내려앉은 의문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공포를 넘어 극한의 불순함을 선사한다. 그 불순함을 좀처럼 잊을 길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끔찍하다.
쏘고, 베고, 찌르고, 가르고, 치가 떨릴 만큼 잔혹한 이미지가 눈 앞을 오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욱 잔혹한 건 그 이후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은 실로 잔혹한 영화다. 거침없는 시각적 자극을 견디고 나면 동통처럼 짓누르는 심리적 충격이 엄습해온다. 단편적인 이미지의 수준을 넘어 순수의 경지에 다다르는 극악한 세계관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만든다. 좀처럼 끝을 알 수 없는 의문과 함께 감정을 후벼 파는 서스펜스가 한차례 휘몰아친 뒤 후두부를 강타하는 충격적 세계관을 전시한 후, 밑도 끝도 없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다. <마터스>는 어딘가 불순하다고 의식되는 영화다. 극악한 참상 뒤에 베일을 벗는 끔찍한 세계관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의 빌미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선의도, 악의도, 결국의 해석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결말은 선의의 여운이라기 보단 악의적 도피처럼 느껴진다. 분명 어떤 의미로든 놀라운 영화다. 감탄과 탄식의 이중주로 놀라움을 채운 뒤 남는 건 끝없는 의문이다. 그러니까 대체 뭘 본거냐. 하지만 끝난 영화는 말이 없다.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그 불순함을 좀처럼 잊을 길이 없다.
깜깜한 건물로부터 달아나 빛을 향해 뛰쳐나오는 소녀. 상처투성이 얼굴로 영문을 모르는 겁에 질린 채 폐허 같은 건물로부터 뛰쳐나오는 소녀의 모습에서 이유 모를 두려움이 전이된다.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은 박차고 튀어나온 호기심 속에서 자리잡은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정체가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시각적인 자극을 넘어선 심리적 중압감이 수혈된다. ‘순교자(Martyrs)’라는 의미의 <마터스>는 신앙이라는 전위적 형태를 파헤쳐 전복시킴으로써 본질을 자각하게 만든다. 피의 전시보다도 피의 목적이 각인된다. 끔찍한 건 이미지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세계관이다. 전작 <천상의 목소리>(2005)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신성 모독(?)적 관점을 견지한 전력이 있는 파스칼 로지에는 <마터스>를 통해 그 비관적인 세계관을 불순한 영험적 체험 수준으로 한차례 끌어올린다. 살갗을 벗겨내는 스너프 필름의 생생한 가학의 살 떨림보다 냉소적 극단이 진하게 섞인 선혈의 진심에 마음이 시리다.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잠재된 진심의 농도가 진한 충격을 선사한다. 제41회 시체스영화제 2관왕에 오른 <마터스>는 할리우드 제작사와 리메이크 판권 계약까지 체결했다. 영화제 상영 이후 국내 정식개봉이 결정됐다. 순도 100%의 순수악, 나쁜 피가 흐른다. 피가 차오른다. 가자.
요즘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장경아(이하, 장): 거의 매일매일. 송민정(이하, 송): 한 3주 째 계속 했나.
촬영 끝나고 나서 휴식기간은 좀 가졌나요? 손은서(이하, 손): 한 일주일 쉬었나? 오연서(이하, 오): 3월 달에 끝났는데 후시녹음하고 그러느라 계속 모였죠.
촬영장을 떠나서 이렇게 만나면 어떤가요? 유신애(이하, 유): 똑같아요. 오: 지겨워요.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웃음) 손: 저희가 영화 준비하기 전부터 계속 함께 지냈기 때문에. 송: 기사에 쓰시는 거 아냐. ‘그만 만나고 싶다. 지겹다.’ 이렇게. (웃음)
아무래도 동갑내기 배우들끼리 모여서 촬영현장은 화기애애했을 것 같습니다. 송: 굉장히 화기애애했어요. 유: 완전 시트콤? (웃음) 장: 맞아. 시트콤이었어. 나이도 비슷하니까 즐겁게 촬영한 거 같아요.
<여고괴담> 전작들은 다들 봤나요? 장: 저희는 다 봤는데 (옆에 있는 오연서를 가리키며) 얘만 못 봤어요. 오: 예. 전 공포영화를 못 봐요.
공포영화를 못 보지만 자신이 출연한 공포영화는 봐야 되겠네요. 오: 그래도 저는 언제쯤 귀신이 나올지 대충 다 아니까, 그 때마다 적절히 피하면 되요.
일단 자기 연기를 보다 보면 영화가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장: 맞아요. 맞아. 오: 자기만 보게 돼.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우울한 감수성이 짙어서 배우 스스로의 기분이 쳐지거나 심리적으로 지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혹시 누군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만한 분이 계시나요?
장: 아무래도 동갑내기 친구다 보니까 다들 화기애애했던 거 같은데요.
누구 가릴 것 없이 다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나 보군요. 오: 아무래도 나이가 같다 보니까 마음이 잘 맞아서. 송: 저희는 만나기만 하면 수다에요. 안 그래도 기자 분들 사이에 말 많다고 소문났다던데요. (웃음)
다들 또래 나이라서 친해지는 것도 어렵진 않았을 거 같습니다. 촬영장을 벗어나서도 서로 어울리는 일은 없었나요? 오: 만나서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그냥 대학생들이나 다름없어요. 송: 촬영이 없을 때도 따로 만나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먹고. (웃음) 오: 저희 여고생 아니랍니다! (웃음) 장: 촬영 들어가기 전에 두 달 전부터 이춘연 대표님이나 감독님이 저희를 모아 놓고 연기연습을 시키기도 했고, 지방에서 촬영을 하느라 방을 같이 쓰기도 했거든요. 그게 친해지는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 거 같아요. 오: 매일 연습실에 모여서 연습하다 보니까, 그리고 촬영할 때는 숙소를 둘이서 같이 써서 더 친해졌죠.
유신애 씨는 막내였는데 언니들이 잘 챙겨주던가요? 유: 오히려 저는 언니들이 많이 챙겨줬어요. 장: 그런데 신애는 은근하게 사람을 휘두르는 게 있어요. (웃음) 유: (깜짝 놀라면서)? 오: 경아 너한테만 그래. (웃음) 장: 연서가 어느 날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숙소 사용할 때도 항상 리모콘은 신애 차지였어. 오: 자기가 졸리면, ‘언니 졸려?’ 이러고 불 꺼버리고 자고. (웃음) 송: 혹시 언니들한테 경쟁심 느꼈니? (웃음)
여자들은 질투가 심하다고 하잖아요. <여고괴담5>도 사실 여자들의 질투를 공포로 표현하기도 하죠. 이렇게 여자 다섯이 모였는데 혹시 경쟁심이 생기진 않았나요? 유: 그거 다 물어보시던데. (웃음) 장: 정말 항상 나오는 질문이지만 서로 너무 안쓰러워서 경쟁할 수 없었어요. 한두 명을 힘들게 몰아붙이는 촬영 스케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다 죽어가듯이 축 쳐져 있으니까 서로 불쌍했던 기억만 나요. (웃음) 오: 촬영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요. 하루 종일, 아니면 3일에 걸쳐서 한 사람이 촬영 분량을 소화하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저희끼리 이 날은 소이 데이(day), 유진 데이, 은영 데이, 이런 식으로 불렀어요. 그 날은 하루 종일 걔만 촬영하는 날인 거죠. 송: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누군가가 있거나 캐릭터가 비슷하다면 경쟁심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다들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거 같아요. 오: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주로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열 명이었는데 다들 예고에서 연기를 지망하는 친구다 보니까 누구 한 명이 연기 성적을 잘 받으면 질투하고, 그런 게 미묘하게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는 다 친한 척해도 뒤에서는 욕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때론 미워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내가 너보다 더 못한 게 뭘까, 하고 자책하면서 그 친구가 미워지고. 유진이랑 은영이도 사실 소이를 끼워주긴 하지만 은근히 왕따시키잖아요. 그런 게 여자들 사이엔 다 있는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기분은 어떻던가요? 손: 전 이제껏 계속 맡았던 역할이 고등학생이라서 새로운 감흥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진주 내려갔을 때, 저희가 촬영장으로 쓰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보충수업 중이었어요. 그렇게 실제 여고생들도 보니까 옛날 생각은 났어요. 송: 좋았어요. 왠지 여고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 같은 경우는 머리까지 잘랐거든요. 원래 좀 긴 머리였는데 그렇게 자르고 교복까지 입으니까 여고생이 된 듯한 느낌? 외모부터 바꾸고 나니까 캐릭터에 빠지기가 쉬웠어요. 내가 더 은영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고. 오: 전 걱정이에요. 머리 잘랐을 때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영화 보니까 앞으로 시집은 다 간 거 같던데. (웃음) 송: 맞아. 우리 정말 너무 망가졌어. 나도 내가 나올 때 너무 싫었어. 극단적인 신이 많으니까 망가질 것도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망가졌을 줄은 몰랐어요. (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나 어떡해’. (웃음) 오: 너는 귀여웠다니까. 송: 아니야~. 나도 정말 처참했어. 오: 너는 차라리 귀신이라도 되서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하겠지. 난 사람인데도 그랬잖아. 그리고 나는 살인미수라니까, 살인미수. (웃음) 우리 실장님이 영화보고 나서 그러시는 거에요. ‘연서야, 너 이제 CF 못 찍겠다.’(웃음)
학창시절에 본인들은 어떤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유진이랑 비슷했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욕심도 많고. 그런데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한다는 점에선 다른 편이었죠. 그렇게 집착하진 않았으니까. 장: 솔직히 언주는 착하다기 보단 약간 못난 아이잖아요. 순수해서 더욱 무책임하고 자기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고 하나밖에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아이랄까. 제가 어릴 때 언주처럼 좀 그랬던 점이 있거든요. 뭔가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만 봤다고 할까. 그게 남한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각 못하는 거죠. 순수함이 가져온 이기주의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은 시나리오만 보고 언주를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저는 막상 못났다고 생각했고요. 만약 영화를 보신 분들 가운데 언주한테 많이 화가 난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의도한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걸 언주와 같은 학생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손: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와 비교해보면 소이와 제가 별로 비슷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친했던 애들이 같은 학교로 따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한두 명만 같은 학교로 가고 그러면 꼭 같이 올라왔던 친구랑 더 친해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은영이는 유진이에게 굉장히 의지하는 아이잖아요. 친구 좋아하는 건 비슷해요. 그런데 악랄하게 누구 뒷담화를 늘어놓는다던가, (웃음) 아빠한테 그렇게 맞았다던가, 그런 건 다르죠. 유: 정언이는 화가 나면 다 표출하고, 언니들한테도 당돌하게 대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화가 나면 다 삼키고 표현을 안 하는 편이에요. 완전 상반된 성격이죠. 낯을 많이 가리면서도 완전히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다르고.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각자 자기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만만치 않게 쌓였을 것 같은데요.
오: 저는 유진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니까 자아가 성립되기 전이잖아요. 자기에게 중요한 남자친구를 뺏기는 것도 큰 충격이었을 테고, 자기와 친한 친구가 임신까지 했잖아요. 들어보면 우리 그룹에 속한 것도 그 남자를 뺏기 위해서라고 나오기도 하고요. 제가 감독님께 인물분석표를 드렸는데 전 유진이가 가톨릭학교에 다니지만 무교일 거라고 썼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유진이는 절실한 크리스찬이 아닐까’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왜요?’ 물었어요.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원래 하나님은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벌을 심하게 주신다고, 그러니까 유진이는 자기가 심판자로서 은서를 벌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성당에서 얘를 죽이려고 하는 거고. 나쁜 사람은 벌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송: 사람들도 가장 불쌍한 애라고 말하지만 저는 은영이가 너무 불쌍해요. 맨날 아빠한테 얻어터지고, 믿었던 친구한테 이용당하고, 결국엔 자살까지 하잖아요. 그렇게 은영이가 힘들어할 때 누군가 위로해주고 손을 내밀어 줬다면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까진 안 갔을 텐데. 자살을 할 때도 누구 하나 손 내밀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 왜, 내가 네 이름 불러줬잖아. (웃음) 송: 언주도 나만 따라다니잖아. (웃음) 장: 그래서 뭐야, 스토커야? 막 이러고. (웃음) 송: 못된 건 유진인데, 은영이가 제일 얄밉다나. 그래서 은영이만 따라다니고. 왜 은영이만 못살게 구냐고. 너무 불쌍해서 더 애착이 남는 거 같아요. 오: 그런데 은영이가 소문은 다 냈잖아. (웃음) 손: 소이에겐 복합적인 감정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애들끼리 있으면, ‘소이가 제일 나빠’ 이렇게 결론이 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영화는 그렇게 끝나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이가 가장 짠한 삶을 사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기 대신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남은 거잖아요. 이 친구가 계속 살아가는 동안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소이가 가장 불쌍하게 느껴져요. 송: 정언이도 살았잖아. 유: 나는 뭐야. (웃음) 오: 정언이는 혼자 행복할지도 몰라. 집에서 엄마 사랑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웃음) 장: 저는 실제로 연년생 동생이 있거든요. 정언이를 보고 동생이 많이 생각났어요. 학교에 같이 다니니까 집에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싸워도 학교에서 동생이 어떤 애한테 당하고 있으면 진짜 돌아버리는 거죠. (웃음) 그래서 언주가 죽은 다음에 귀신이 돼서 정언이한테 함부로 하는 친구들을 죽이는 것도 이해가 갔어요. 제가 언주라도 그랬을 것 같고. 저는 정언이가, ‘우리 언니는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복도를 가로지르고 갈 때 솔직히 진짜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런 면에서 공감하는 바가 있었죠. 유: 저는 외동딸이고, 언니가 없어요. 그래서 언니가 있는 기분도 잘 모르고, 가족이 죽는 경험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주변 분들이나 언니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간접경험을 많이 얻어보려 했어요.
유신애 씨 말처럼 실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을 겁니다. 그 밖에도 각자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오: 마지막 성당 장면을 찍을 때 한번은 낮 4시부터 다음 날 낮 2시까지 줄곧 제 신만 촬영했었어요. 그러다 보면 진짜 악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정말 실제로 상대방을 바닥으로 끌고 가거나, 잡아 뜯기도 하고, 그렇게 다 실제로 감정이 이입되는 거 같았죠. 그 전엔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막상 극한 상황에 몰리는 기분을 느끼니까 뭔가 해야 될 거 같고. 송: 저는 감독님과 굉장히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사실 저보다 감독님이 은영이란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직접 쓰신 이야기니까. 저는 은영이가 자살할 때 불행하게 죽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는 행복하게 죽어야 된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그렇게 신마다 제 머리 속에 딱 박히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감독님 얘기가 다 끝나면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손: 저희끼리 손을 잡는 신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말보다 눈빛 하나로 소통하는 게 더 좋을 만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없었나요? 장: 언주는 친구 때문에 죽잖아요. 그런데 언주는 소이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것도 없고 뭔가를 받은 것도 없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 백만 번은 여쭤본 거 같아요. 그때마다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이, 만약에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면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지 않아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순수한 시절’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일부로 특별한 의미를 넣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보통 고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게 진짜 맞는 거 같았어요. 만약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서 그렇다면 오히려 순수하게 죽거나 희생하진 못했을 거 같아요. 오: 저는 왜 유진이가 그런 들통날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들킬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도대체 저런 위험을 안고 밤에 저런 짓을 하고 있을까 싶어서 좀 이상했죠. 정말 얘는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언주도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잖아요. 은영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과연 유진이 얘는 정말 죄책감이 없는 악마일까 생각했죠. 고등학생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남자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만의 행위가 있죠. 예를 들면 손을 잡고 같이 화장실까지 간다던가. 송: 그건 여자들만 알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웃음)
그래서인지 여자들의 관계를 동성애로 그리기도 쉬운 거 같아요. 실제로 여고에 떠도는 동성애 소문도 많잖아요. <여고괴담5>에서도 소이를 향한 언주의 마음이 때론 우정이라기 보단 사랑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도 있고요. 손: 여자들의 우정은 집착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어요. 저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더 친한 모습을 보면 질투를 심하게 느끼기도 하고, 그게 결국 집착이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유: 남자들은 자존심을 가장 크게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관계를 가장 크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그렇게 손잡고 가는 것도 자기가 관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더 집착하는 거래요. 장: 그런데 언주는 대사만 봐도 충분히 동성애스럽다고 느낄만한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죽는 날 같이 죽을 수 있을까’그런 것도 있고, 대학교 갈 때까지 함께 있자고 하고. 손: 사실 너무 닭살스런 대사들이 많아서 애들이 되게 힘들어 했었죠. 하는 저희도 너무 닭살스럽고. 오글오글. (웃음) 장: 그런데 저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다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들은 나가서 놀아야 된다고 하고, 여자한테는 집안의 유대를 강조하면서 키우잖아요. 명절 때도 여자들은 다 일만 시키고,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아무래도 그런 걸 보면서 크니까 여자들끼리 끈끈하지 않을 수 없죠. 오: 외국사람들이 한국여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거 보면 이상하대요. 그렇게 보면 그것도 우리나라 여자들만의 고유한 습성인 거 같아.
피를 보는 영화다 보니 피 분장하는 장면도 많더군요. 그것도 사실 고역이지 않던가요?
송: 끈적거려서 몸에 묻으면 굉장히 신경도 예민해지고 짜증나요. 그리고 다른 사람 옷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거든요. 그래서 사람들도 다 기피하고. (웃음) 경아가 피 분장을 제일 많이 해서 고생했을 거에요. 저희는 처음에 언주가 그렇게 티를 많이 안 내길래 피 분장에 금방 적응되나 보다 그랬는데 마지막에 제가 피 분장을 해보면서 대체 그걸 어떻게 그걸 참았나 싶었어요. (웃음) 오: 머리를 내밀어서 피를 떨어뜨리는 장면이 있는데 피가 제대로 안 떨어지는 거에요. 계속 분장을 지웠다가 다시 하고 그러니까 나중엔 힘들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에요. 그 피 분장이 굉장히 짜증나는 작업이에요. 송: 아, 그리고 나 죽을 때 피바다에 누워있었잖아요. 장: 나도 죽었어. (웃음) 송: 피가 차가워서 춥고, 계속 끈적거리니까 그냥 다들 쉬는 시간에 쉬는데 저는 그냥 누워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유: 그래도 언니는 낮에 해서 다행이야. (웃음) 장: 맞아. 제가 떨어져서 죽은 걸 정언이가 발견하고 달려와서 죽은 저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는데 전 그냥 누워있는 역할이었으니까 제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빨리 끝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잖아요. 신애 최고의 감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우는 장면이라서, (이빨을 꽉 깨물면서 위협적으로) ‘빨리 끝내라!’이럴 수도 없고. (웃음) 유: 그런데 원래 그 장면이 더 많이 나오기로 했는데 잘 안 나왔지. 처음하고 중간에 은서 언니가 양호실에서 생각하는 그 때 조금 나오고, 끝에 다시 조금 나와야 되는데. 장: 그게 조금 잔인하다고 편집됐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만 잠깐 나왔죠.
고생해서 찍은 장면이 영화에서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잘 표현되지 않았을 땐 연기자 입장에서는 아쉽겠죠. 유: 저는 특히 머리를 가위로 잘랐던 신 있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히 소름 끼치고 무섭게 나올 거라고 기대를 했어요. 저희가 모니터로 볼 때는 굉장히 소름 끼쳤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뭔가 너무 어설프고. 송: 초딩이 막 폭발하는. (웃음)
진짜 자기 머리였나요? 유: 아니요. 가발. 오: 그런데 본인 머리도 조금 잘렸대요. (웃음) 때리는 신도 영화보다 훨씬 많았어요. 손: 저도 맞는 신이 더 있었는데 다 없어졌고. 오: 머리 잡고, 막 찍고, 뺨도 맞고. 손: 감독님께서 더 가자고 하셔서 더 맞았는데 다 편집됐어요. (웃음) 오: 유진이가 성당에서 격자 모양으로 된 고해성사실에 소이를 가두잖아요. 원래 나중에 문 열고 또 때려요. 손: 성모상으로 저를 또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졌고. 오: 다행이었어요. 그것까지 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지. (웃음) 장: 저는 정말 깜짝 놀랐던 게 제가 옥상에서 애들 백그라운드로 혼자 서 있다가 사라지는 건데, 그때도 피칠 다하고 옥상에서 혼자 서있었거든요. 그걸 스크린으로 보니까 제가 아니어도 되겠더라고요. 그냥 점같이 있던 애가 갑자기 사라지니까. 오: 게다가 언주가 모니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거 하나 찍으려고 경아가 서울에서 진주까지 내려왔었어요. 그 한 컷 때문에. 장: 한 5분 찍었나. 대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본인에게 너무 맞지 않아서 하기 싫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손: 처음에 소이 역할 맡았을 때 소이 전체가 다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소이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감독님하고도 이야기도 많이 했고.
혹시 다른 캐릭터에 욕심이 나진 않던가요? 오: 처음엔 다 있었대요. 저도 사실 소이가 하고 싶었어요. 손: 전 오히려 유진이 하고 싶었어요. 저희끼린 그랬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요. 오: 진작 알았으면 바꿔달라고 얘기했을 텐데. (웃음) 유: 전 정언이 빼곤 다 하고 싶었어요. (웃음) 저희가 오디션 볼 때 쪽대본이 나왔었는데 그때 제가 보기엔 정언이가 굉장히 당돌하고 화를 잘 내니까 저랑 성격이 너무 달라서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디션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봤겠죠? 송: 1박 2일 때는 다 같이 합숙을 했기 때문에 계속 마주쳤죠. 오: 사실 오디션 기간은 짧았어요. 2주도 안 됐거든요. 처음 오디션 보고 한 이틀 인터미션 지나서 이틀 있다가 2차 오디션 또 보고, 3일 있다가 3차 오디션 보고, 그 뒤로 결과가 바로 나왔으니까. 송: 인터넷에 바로 바로 결과가 떠요.
인터넷으로 확인할 때 긴장되진 않던가요? 어쩌면 영화 보는 것보다 오디션 결과 확인할 때가 더 떨렸을 거 같습니다. (웃음) 송: 그럼요. 클릭할 때 얼마나 떨리는데요. 오: 그래서 찍을 때 더 친해진 거 같아요. 너무 살벌한 경쟁을 이겨냈기 때문에. 송: 전쟁이었죠. (웃음) 서로 같이 힘들었던 걸 아니까 더욱 가족같이 느껴지고, 내가 힘든 만큼 이 친구도 힘들게 왔으니까.
다들 대학생이니까 학교 얘기를 해봐도 좋을 거 같네요. 장경아 씨와 오연서 씨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이시죠. 원래 서로 잘 아는 사이였나요? 오: 경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해서 친해질 계기가 없었어요. (웃음) 장: 저도 얼굴만 아는 정도?
송민정 씨 같은 경우는 유일하게 다섯 분 중 연기 관련 전공이 아니더군요. 송: 영문학과 간 건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 특기자 전형으로 수능을 안보고 토익만 봐서 대학에 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대학 들어가고 연기를 바로 시작했어요. 원래 연극영화과를 갈까 생각했는데 더 멀게 봤을 때 영문학과를 가면 두 분야를 다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두 개를 다 고려해서 그렇게 선택한 거죠. 오: 그럼 우리는 뭐가 되니. (웃음) 송: 너희는 그래도 예고 나왔잖아. (웃음) 오: 민정이는 인생이 ‘비비디 바비디 부’에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다 이뤄져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인생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대요. 송: 운이 정말 좋았던 거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꿈꿔온 건 아니었어요. 뉴질랜드 있을 땐 연기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 있었죠. 종종 거기서 <가을동화>같은 한국 드라마를 비디오로 봤는데 그럴 때마다 막연하게 연기에 대해서 생각만 한 거죠. 그렇다고 연기를 꿈꿔서 한국에 온 건 아니에요. 한국에 중3 말쯤 와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렇게 지내다가 길거리 캐스팅이 돼서 이쪽 일에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렇게 모델부터 시작하게 됐고 점점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사실 송은정 씨 같은 경우는 <여고괴담5> 이전에 <아랑>이나 <외톨이>같은 공포영화 출연경력이 있죠. 공포영화만 세 번째 출연이네요. 송: 그런데 전편하고 <여고괴담5>에서 캐릭터가 워낙 달라요. 지난 번엔 굉장히 우울한 히끼꼬모리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밝은 신도 있고, 감정 신도 있고,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만큼 굉장히 좋았던 거 같고요.
나머지 네 분은 연기 관련 전공을 선택해서 진학하셨죠. 그만큼 자기 분야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만큼 불안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연서 씨와 유신애 씨는 예고 때부터 연기 전공을 했죠?
오: 저는 예고 출신이라서 고등학교 때부터 그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저희 같은 예고 출신들은 뭔가 다른 걸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저와 같은 친구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 말곤 배워온 게 없으니까 굉장히 불안하다는 거죠. 연극영화과 나와서 옷가게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자신은 연기 말곤 도대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고. 장점이 있다면 이렇게 계속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것만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거? 왜냐면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고, 제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으니까, 이거 아니면 죽을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죠. 유: 저도 어렸을 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한 길만 바라봤고, 그렇게 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그곳만 바라보니까 거기에 더 집중하고 매달리게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매달릴수록 해야 될 건 더 많아지고, 가야 할 길이 더 뚜렷하게 보이고요. 그러니까 연기에 매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저는 한가지만 하기도 벅차요.
사실 오연서 씨는 다섯 분 중 작품경험이 가장 많습니다. 드라마 경력도 있고, 데뷔작도 <반올림>이었죠. 다른 분들에게 특별히 조언을 주거나 그랬던 적은 없었나요? 오: 다 같은 신인이고, 다 같이 배우는 입장이니까 그런 건 없었어요. 서로서로 많이 배우는 거지, 누굴 조언해줄 입장이 아니니까.
오연서 씨는 유독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도 많았죠. 사실 때리는 사람 마음이 더 불편한 법이죠. 오: 맞는 사람들이 저한테 하루 내내 정말 잘해요. (웃음) 그런데 저도 때리는 게 마음 아픈 일이잖아요. 그래도 거의 한번에 오케이 나서 다행이었죠. 최소한 두 번? 그런데 솔직히 못 때리겠어요. 처음엔 너무 살살 때려서 NG나기도 했죠. 송: 살살 때렸는데 신애는 오버 액션하고. (웃음) 오: 정말 살살 때렸거든요. 그냥 약하게 때렸는데 신애가‘악~!’하면서 날아가서. (웃음)
할리우드 액션이었군요. (웃음) 유신애 씨는 지난 출연작이 공포영화인 <고사: 피의 중간고사>였어요. 유일한 필모그래피가 공포였는데 또 한번 공포영화에 출연했네요. 유: 저는 있는 경험이라곤 공포밖에 없으니까, (웃음) 다른 장르가 어떤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워낙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어요.
유신애 씨는 아역으로 드라마 <M>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도 공포였군요. 유: 말하기가 창피한 게 정말 조금 나왔고, 사실 그때 기억도 나지 않거든요.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걸 말하기가 너무 창피해요. 송: <뽀뽀뽀>도 했잖아. (웃음)
손은서 씨와 장경아 씨는 연기나 방송 분야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두 분이 연기를 지망하게 된 사연이 궁금한데요. 손: 저는 원래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관심사가 굉장히 달랐어요. 중학교 때는 성적이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싶은 거에요. 그래서 저한테 집중할 시간을 많이 가졌고, 3학년 때 진로를 연기로 정해서 학교를 갔어요. 그런데 연기를 준비하다가 광고 미팅도 가게 되면서 먼저 CF를 찍게 된 거죠. 처음부터 준비했던 건 연기였어요. 장: 전 원래 무용 전공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적이 없으면 굉장히 못 견뎠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예원이랑 서울예고 목표로 무용을 했고 결국 목표로 하던 학교에 들어갔었는데 사실 무용은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었던 거에요. 초등학교 때는 개념이 없어서 제가 진짜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무용하는 모습을 너무 예뻐하셔서 그 때부터 하게 된 건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멋도 모르고 치열하게 한 거죠. 제가 딱 하나밖에 안 보는 성격이라서 그걸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도 불만 없이 굉장히 치열하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서울예고 입학하니까 연기 커리큘럼이 있어서 수업을 받다 보니까 굉장히 무용이랑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무용은 무조건 선생님 스타일에 맞춰서 해야 되요. 이 선생님이 이게 좋다고 해도 저 선생님한테 가서 이렇게 하면 점수를 안 주기도 하고, 뭔가 예술적 자율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 때 연기에 굉장히 많은 매력을 느꼈어요. 결국 예고를 고1까지 다니다가 자퇴하고 공부해서 동국대로 진학했죠. 사실 그 전에 집에서 쫓겨날 뻔도 했어요.
장경아 씨는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셈인데 어땠나요? 스크린으로 자기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일 텐데. 오: (영화보기 전에) 되게 신나 있던데. (웃음) 장: 사실 언론시사회라는 게 기자님들이 영화를 보고 평가하는 자리인 줄 알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온 영화를 드디어 본다는 마음에 마냥 신나있었거든요. 그런데 보는 내내 완전 떨렸어요. 연서 손을 꽉 잡고 봤는데 둘 다 떨면서 봤죠. 오: 자기가 나오는 거 보고 자기가 놀라고. (웃음)
귀신 역할이라 좀 놀랐나 보죠. 장: 촬영할 때는 (도수가 있는) 렌즈를 빼고 빨간 컬러 렌즈를 끼고 있느라 모니터링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고 봤는데 화면에서 갑자기 막 튀어나오니까 저도 놀란 거에요. 오: 실제 촬영할 때보다 무섭게 나온 거 같아.
손은서 씨는 최근 개봉된 <시선1318>에도 출연했죠. 다섯 분 중 근래 가장 가깝게 개봉된 영화에 출연한 배우라고 해도 되겠군요. 손: 사실 <시선 1318>은 2007년 12월에 3일 동안만 촬영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의 현장감을 <여고괴담5>으로 이어나갔다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죠.
<시선1318>에서 이현승 감독이 연출한 <릴레이>에 박보영 씨와 함께 출연했는데 <여고괴담5>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여고괴담5>에서는 굉장히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손: 현장 분위기야 화기애애했지만 저는 감정 잡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소이를 연기하기 위해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 잡느라 시무룩해져서 힘들어하니까 스태프 분들이 소이 씨는 뭔가 되게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대요. 그런데 저는 몸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감정 때문에 그랬는데 다들 그렇게 이해하신 거 같더라고요.
다들 파란만장하군요. 부모님과의 충돌이나 갈등은 없었나요? 오: 저는 많이 맞았어요. 저희 집은 서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연기한다고 올라간다니까 자꾸 어린 게 서울 가겠다고 하니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픈 거죠. 그런데 얘가 말로 해선 듣질 않아서 많이 맞았던 거 같아요. (웃음)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요즘에는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저도 많이 힘드니까 새벽에 전화하고 그래요. 손: 저도 지방이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다녔는데 부모님 반대가 많이 심했어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걸, 수능 보고 바로 올라가서 입시 준비하겠다면서 아무것도 안 도와주셔도 되니까 그냥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결국 대학교에 합격하고 계속 이 길로 오게 된 거에요. 부모님들은 불안하고 안쓰러우니까 반대하시겠죠. 그래서 저는 좀 더 믿음이 가게끔 노력했던 거 같아요. 송: 저희 엄마는 일단 대학만 제대로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대학교 가고 나서 제가 연기를 시작한다니 굉장히 좋아해주셨는데 지금은 일하고 늦게 들어오니까 걱정도 많이 하세요. 제가 짜증날 정도로. (웃음) 그래도 반갑게 생각하시고 좋아하시는 편이죠. 장: 저는 아까 말한 것처럼 어린 나이지만 7년 동안 쌓아왔던 전공이 있는 거잖아요. 무용계에서는 솔직히 예원이랑 서울예고, 이대가 (엄지손가락을 들면서) 제일 이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그 상태에서 대학만 잘 간다면 앞날이 보장될만한 커리어를 쌓아온 건데 그걸 한 순간에 다 날려버리겠다고 하니까 부모님께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고,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저한테 뭐라고 많이 하시고. 너는 왜 순수예술을 안하고 딴따라를 하려고 하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제가 그 말 듣기 전까진 무용이랑 연기를 병행하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길 듣고 나서 자퇴를 하게 된 거에요. 제가 7년 동안 스스로 하고 싶지 않았던 걸 하면서 억눌려있었다고 생각했던 걸 그때 그냥 표출해버린 거 같아요. 그 전엔 엄마한테 그냥 착한 딸이었고, 사춘기 한번 없었거든요. 교복을 줄여 입는다던가, 그런 것도 해본 적 없었고, 그냥 굉장히 착한 딸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을 계기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이번엔 좀 말해야겠다 결심했던 거 같아요. 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적극 밀어주셨어요. (웃음) 오히려 저희 엄마는 제 얼굴에 뭐 하나만 나도 저녁에 팩 들고 오시고. (웃음)
아무래도 대부분 진로에 대한 불안을 느끼거나 부모님과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물들의 갈등에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지점도 있지 않았을까요?
손: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 생각이 너무 다르니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예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고민은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되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죠. 그래서 모든 비밀은 친구들과 공유하게 되고. 저희 작품에 공감대를 느끼는 건 그런 점이었어요.
각자 경험차가 있기만 현재 다들 <여고괴담5>을 통해 가장 큰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몇몇 분들은 처음이라서 겪었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고요. 송: 맨 처음에 촬영할 때 카메라가 뒤통수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심지어 제 머리로 카메라를 가리기도 했죠. (웃음) 조명을 거꾸로 받을 때도 많았고. 장: 스태프 오빠가 카메라 초점을 잡아놔서 움직이면 안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멋대로 움직이다 보니까 혼난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초반엔 친구들 촬영할 때 제 촬영이 없더라도 계속 촬영하는 걸 봤어요. 저는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촬영해야 되는지 모르니까 좀 힘들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죠. 연서가 연기하는 걸 보고 많은 걸 배운 거 같아요. 오: 왜 이래, 오늘? (웃음) 그런데 확실히 저희 촬영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다들 빨리 현장에 적응한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솔직히 이런 촬영현장이 처음이었거든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빨리 찍어놔야 되는 거니까 상황이나 캐릭터에 대해서 이해할 틈도 없이 막 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저도 느꼈던 거지만 신인일 때 선배가 와서 뭐라고 혼내면 주눅들고 더 못하게 돼요. 그런데 저희 촬영현장은 그런 게 없으니까 일단 너무 좋아서 뭔가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보여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장: 연서가 마지막에 성당 신 찍을 땐 정말 구질구질하게 보일 정도로 열심히 찍었어요. (웃음) 진짜 너무 불쌍할 정도였죠. 귀신이 이렇게 죽이러 가기 위해 돌아보는 사이에 바퀴벌레처럼 막 기어가고. (웃음) 소이한테 고해소에 들어가자 그러면서 자기만 나와서 잠가버리고. 송: 비열해. (웃음) 오: 그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런데 이거 우리끼리 너무 자화자찬하는 거 아닌가? (웃음) 경아는 연기가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힘든 걸 절대 내색 안 해요. 짜증낼 수 있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내지 않더라도 뒤돌아서 낼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랬어요. 제가 경력이 조금 더 많다고 해서 이 친구들보다 연기를 잘 하거나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한테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여고괴담> 시리즈를 통해서 성장한 여배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이 시리즈에 출연한다는 점 자체만으로 기대가 컸을 것 같고요. 손: 그래서 오디션이 치열했던 거 같아요. 송: 그런데 시사회 전날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있었는데 영화보고 나니까 없어졌어. (웃음)
일동: 맞아! 맞아! 나도! 오: 영화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끼리 서로 칭찬하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일단 영화를 보니까 내 연기부터 시작해서, 진짜 충격 먹었어. 칭찬할 게 없잖아. (웃음) 송: 전 정말 머리가 새하얗게 됐어요. (웃음) 오: 사람들 머리 속에 저런 이미지가 너무 박힐까 봐 걱정도 앞서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세게 나와서.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슬펐어. (웃음)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거죠. (웃음) 그래도 언젠가 이 작품을 다시 되새기는 날이 올 겁니다. 혹시 앞으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오: 전 그냥 발랄한 역할하고 싶어요. 이번에 이런 역할을 했지만 저 원래 절대 이렇지 않거든요. (웃음) 다음엔 좀 사랑스러운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귀엽게 망가지기도 하고. 장: 저는 조금 히스테릭한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기 감정을 배제하고 전문적인 직업에 대한 열의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굳이 예를 들자면 <하얀 거탑> 김명민 선배의 여자버전 같은. 손: 전 약간 중성적이거나 액션연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여고괴담5>는 저한테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송: 저는 발랄하고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노다메 칸타빌레>나 <호타루의 빛>같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캐릭터 있잖아요. 약간 망가지면서도 재미있고, ‘센빠이(せんぱい)’ 이러면서 선배 졸졸 따라다니는. 그런데 사실 <여고괴담5>에서 제 캐릭터도 발랄하지만 공포영화다 보니까 그런 모습을 부각시키기 어려웠잖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선 그런 걸 좀 더 보여주고 싶어요. 유: <님은 먼곳에>에서 수애 선배님처럼 파란만장한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라비앙 로즈>처럼 파란만장하면서 굴곡도 많은 주인공의 일생을 다룬 영화도 좋고.
부모님께서도 영화를 보시고 싶어하실 텐데 걱정되겠어요. 송: 전 아까 전화 드렸어요. 죽는 거 보고 충격 받지 말라고. (웃음) 장: 난 처음부터 죽는데. (웃음) 오: 난 살인미수라고. (웃음) 송: 공범이잖아. 나는. (웃음)
피로 맺은 계약. 자살을 약속하는 소녀들.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하, <여고괴담5>)은 부제처럼 동반자살을 약속한 동급생 여고 소녀들의 의식을 비추는 가운데 시작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가운데 촛불을 어스름하게 밝힌 엄숙한 성당에서 각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내고 피를 떨어뜨린 계약서에 손을 얹는 의식은 비장하다. 침묵의 제의를 지배하는 건 정적으로 대변되는 의문이다. 동반자살을 도모하는 소녀들의 사연에 물음표가 새겨진다. 그리고 의문에 휩싸인 정적을 부수는 커다란 울림을 통해 괴담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여고괴담5>는 사춘기의 트라우마를 호러의 자질로 연동시키는 기존의 시리즈와 동력은 비슷하다. ‘여고’라는 환경이 머금은 ‘괴담’이라는 소재는 어딘가 설득력 있는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여고괴담5>는 그 설정의 유효함을 소진하는 또 한번의 기획이다. <여고괴담5>는 정서적으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 발생하는 기시감은 작품의 자질까지 평가된 결과가 아니다. 모호한 형태로 침잠된 정서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태도가 그렇다. 아이러니하지만 공포스럽지 않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가 표방한 장르적 의도는 명백하다. 그만큼 그 의도를 기준으로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여고괴담5>는 무섭지 않기로 따진다면 시리즈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몇 번 정도의 깜짝쇼가 때때로 움찔하게 만드는 요량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공포의 수위까지 나아간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르적 특징이 열악하다. 스테레오 타입의 사연으로 치장된 캐릭터들도 아쉬운 대목이다. 개별적인 캐릭터 각자를 두르는 인과관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개개인의 갈등엔 적당한 당위가 존재한다. 그 갈등을 유발하는 사연의 깊이가 지극히 얕다.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그리고 그 평면적인 사연이 입체적인 구조를 이루지 못하고 두꺼운 평면의 형태로 포개져 나열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충돌하는 사연들로부터 파생되는 감흥이 지극히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긴장감의 결여도 이 지점에서 비롯되는 느낌이다.
어둡고 흐릿한 인상을 유지하지만 그것이 싸늘하거나 으시시한 감정을 담보하지 못한다. 물론 귀신보다도 사람이 더욱 무섭다라고 이해되는 결과는 흥미롭다. 여고생이라는 예민한 시절의 풍경을 바탕으로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엇갈리는 관계의 침몰을 지켜본다는 건 나쁘지 않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람이 귀신보다 무섭다는 건 장르적으로 끔찍한 패착이다. 나약한 장르적 해석과 빈곤한 상상력이 동원된 스토리는 <여고괴담5>이 기본적인 자산 관리가 불성실한 작품임을 인지하게 만든다. 신예 배우들의 연기엔 일장일단이 있다. 다만 그 연기를 온전히 평가하기엔 캐릭터의 설계가 안이하다. 이는 분명 캐릭터가 배려해야 할 기본적 요구가 불충분한 탓이다. 이런 결과가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의 자신감을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시리즈의 가장 큰 고비를 맞이하는 인상마저 든다.
<여고괴담2: 메멘토 모리>가 떠올랐다. 정서적인 기시감이 그렇다. 물론 그 정도로 비범한 감상을 부여한다는 게 아니다. 침잠된 정서만 그렇다. 무섭지 않기로 따진다면 시리즈 가운데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두어 번 정도 움찔할 정도의 깜짝쇼를 제외하면 놀랄만한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안타까운 건 평면적인 사연이다. 개별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갈등엔 적절한 당위가 있다. 다만 그 개별적 사연들이 지극히 스테레오 타입이다. 거기까지도 좋다. 그 개별적 사연이 충돌하는 양식이 어떤 입체적인 감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불필요한 사족이 동원된다. 평면을 구조로 쌓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평면이 계속 포개져서 두껍게 평범해지는 느낌이랄까. 점차 심심함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어둡고 흐릿할 뿐, 으시시하거나 싸늘하지 않다. 귀신보다도 무서운 사람의 내면을, 그것도 여고생이라는 예민한 시절의 풍경에 담아놓고자 한 의도는 나름 야심적이다. 다만 진짜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장르적으로 끔찍한 패착이다. 해석력이 연약하고, 상상력이 빈곤하다. 가톨릭 미션 스쿨이라는 배경은 그저 고딕적 환경을 병풍처럼 두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잔혹하다는 수사가 민망할 정도로 핏빛의 농도에 비해 압박이 약하다. 애초에 경력이 짧은 배우들의 연기를 논한다는 건 사족이다. 연기적 어색함을 찍어내는 것보다도 캐릭터를 치장시켜주기 힘든 작품의 자질이 문제다. 10주년 기념작이라는데, 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게 될 기념작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경력이 짧은 어린 배우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내심 안타까운 심정마저 든다.
짧지만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는 <드래그 미 투 헬>을 탐색하기 좋은 밑그림이다. 강력한 저주와 지옥의 이미지가 연동되는 오컬트 소재의 강림은 <드래그 미 투 헬>의 장르적 밑그림이 낡은 시절의 이미지에서 비롯됐음을 알리는 것과 같다. 마치 쌍팔년도 호러 영화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다만 여기서 쌍팔년도의 어감은 ‘촌스럽다’가 아닌 ‘고전적이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요즘 보기 드물게 강렬하고 압도적인 정통 호러 영화다.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효과음과 이미지를 동원하는 <링>과 <주온>과 같은 일본산 스몰볼 호러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게 손이 크고 담대한 정통호러다.
1949년, 멕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 40년 후로 점프컷된 영화는 미국의 한 은행에서 본격적인 서사를 다시 전진시킨다. 대출 업무를 상담하는 크리스틴(알리슨 로먼)에게 대출연장신청을 부탁하는 노파 가누시 부인(로나 가버)의 불결한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카메라는 <드래그 미 투 헬>이 전면에 내세운 공포의 근간이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잔혹한 이미지를 통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기 보단 불결한 이미지를 통해 혐오를 자극하는 <드래그 미 투 헬>은 공포라는 감정을 두려움에 가두지 않고 우스꽝스러움으로 진전시킨다. 전형적인 B급 정서로 무장한 악취미의 이미지 속에서 공포와 유머가 절묘한 궁합을 자랑하듯 맞물려 굴러간다.
대출연장을 거절한 크리스틴에게 노파가 저주를 퍼붓는 광경은 현실적 리얼리티에 초자연적 공포가 주입되는 시작점과 같다. 노파가 크리스틴에게 내린 저주는 염소의 형상을 한 악마 라미아의 저주이며 이는 크리스틴의 일상을 점차 무시무시한 수렁으로 밀고 내려간다. 오컬트적 신비가 가미된 악마주의적 공포가 리얼리티의 풍경 안에서 고스란히 보존되는 광경은 단연 복고적이며 때때로 참신하다. 낡고 낡은 장르의 관습을 고스란히 차용하는 동시에 B급 유희의 이종교배를 통해 관습적인 리듬감에 새로운 활력을 형성한다. 신체훼손과 피칠갑의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이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전달한다.
동시에 압도적인 전율의 긴장감 사이로 순발력 있게 끼어드는 유머는 농담처럼 가볍지만 좀처럼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한다. 호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전형적인 B급 정서의 악취미와 연동시키는 방식은 오히려 장르적 전형성을 탈피하는 동시에 장르적 자질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효과적인 방식이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이블 데드>시리즈로 대변되는 샘 레이미의 근본적 재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예감했거나 혹은 예감하지 못했거나, 어느 쪽의 입장에 놓여있다 해도 <드래그 미 투 헬>이 만들어내는 난장질의 풍경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특히나 정치적으로 공정하며 압도적인 감상을 부르는 결말부는 오르가슴에 가까운 쾌감을 선사한다. <드래그 미 투 헬>은 공포가 극대화시킬 수 있는 쾌감의 극단적 너비를 실감하게 만드는 문제작이자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블데드>의 샘 레이미를 새삼 재확인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21세기의 기념비적인 호러영화라 불려도 단연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