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여자 상사가 그랬다. 듣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글래스 실링(glass ceiling)’이라는 숙어가 있다. 직역하자면 ‘유리 천장’이란 뜻이지만 ‘여성이나 어떤 집단이 높은 지위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막는 장벽’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차별은 뿌리 깊은 전통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통용되고 유전자적으로 세습되면서 때론 교묘하게 역할의 분리처럼 강요되는 차별적인 유전자가 사회 도처엔 여전하다. 어쩌면 굳건한 남성성의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여성의 공성전과 남성의 수성전은 현대 인류사의 한 단면을 차지하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성경에 따르면 야훼는 에덴동산의 외로운 독거남을 위해서 그의 늑골 하나를 여성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자란 남자에게 있어서 뼈를 내어준 존재라 할 수 있겠다. 탈무드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것이 남자가 잃어버린 늑골을 되찾고자 하는 본능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기도합시다, 는 훼이크고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남성은 항상 여성을 ‘소유’하고자 했다. 그래도 된다고 믿었다. 아니, 믿을 것도 없이 그랬다. 전쟁에서 여성이 전리품처럼 여겨진 것도 그래서다. 전쟁이 지배하던 역사의 주인공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 건 어쩌면 야만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위치에 서있는가. 남자만 지배하는 시대가 끝났을 뿐 남자가 지배하는 시대가 끝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서론이 거창했다. 어쩌면 거창한 핑계를 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자다. 군대도 다녀왔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하기 최적화됐다고 여겨지는 ‘남자 직원’ 중 하나다. 무슨 자신감이냐고? “군대문화에서 익힌 계급적인 충성심이 강하다.” “군대 경험을 통해서 상하 관계에 익숙해서인지 무언가 지시를 내리면 일단 부딪혀 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여자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정확하게는 ‘여자 상사’로부터. 지금부터 인용되는 말들은 모두 여자 상사들로부터 얻은 답변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 상사란 직장 내에서 최소한의 결정 권한이 있는, ‘팀장’급 이상의 직책을 지닌 여자들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무기명으로. “누런 소가 일을 잘하오? 검은 소가 일을 잘하오?”라고 묻는 황희 정승의 질문에 밭 갈던 농부가 굳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타산지석 삼았다. 그 농부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면 검색하길 요망하며 본론으로 다시 정주행.
분야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자 상사들은 직장 내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서 직장 내에서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원 시절엔 조금 생각이 달랐다고 한다. “옆에서 볼 땐 답답하고 줄서기에만 급급해 보여서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팀장이 되고 보니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깍듯하고 다른 팀으로부터 주요 정보를 수집해오는 정보력도 있다.” 여자들은 보통 남자들을 정치적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관계를 형성시킨다. 관계는 바로 정보망이다. 정보가 패처럼 돌려진다. 좋은 패는 아무 곳에서나 펴는 게 아니다. 이기고 싶은 상대 앞에서 펴는 거다. 인정받고 싶은 상대에게 던져야 한다. 그러니 동료들은 몰라도 상사는 알게 돼있다. 그 패를 확인하게 되는 쪽은 상사일 테니, 그 정치적인 관계로부터 얻어지는 정보의 장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저 동료 여자들이 한심해 여기는 단합회장에선 은밀하게 정보가 오고 간다.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일 때도 남자들은 대놓고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들은 즉각적으로 반대의견을 표한다. 표정 관리도 잘 안 되는 편이라 일을 주는 입장에선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골목대장 놀이를 하는 게 남자다. 유전자적으로 서열을 나누고 패를 가르는 게임에 능하다. 어쩌면 군대는 그런 본능을 보다 구체적으로 계발시키는 조직일지도 모른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는’ 일상에 2년간 체류하다 보면 방사능에 피폭당한 사람처럼 상명하달 방식의 수직적인 조직 체계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게임상에서 일단 클리어해야 하는 스테이지처럼 느껴지는 거다. 상사에 대한 복종심도 존재하겠지만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복하겠다는 욕망도 적지 않을 거다. 뭐,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기도 하고.
“남자들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당장의 흥미에 이끌려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아이템을 개진하는데 그러다 보면 논리에 막히는 경우도 있고 큰 관점에서 허술한 측면이 발견된다. 남자들은 아무래도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디테일한 가능성을 깊게 파고드는 편이라 무언가를 추진할 때 더뎌 보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다 안전성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아서 신뢰하게 된다.” <화성에서 온 여자, 금성에서 온 남자>에서 남자는 목적을 성취할 때 만족을 느낀다고 했고, 여자는 누군가와 자신의 느낌을 공유할 때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남자는 결과적인 완성을 추구한다. 여자는 그 순간의 흥미를 인정받길 바란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먼저 딴 것도 여자였다. 선악과를 권하는 여자를 믿고 역시 한 입 물었던 남자는 여자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애초에 리스크 있는 거래는 피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부동산 교훈극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장점들이 남자들의 뛰어난 경쟁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야근시키는데 무리가 없다는 건 과연 장점인가?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언제나 현명한가? 무조건적인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이 사업에서 유리한가? 이 모든 장점들을 빛내주는 건 남자들 자신일까, 그 장점을 요구하는 사회 혹은 조직문화의 분위기일까?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성비가 여전히 높은 만큼 남자들에겐 좀 더 많은 선배가 있기 마련이고, 남자들 특유의 선후배 문화에 적응한 사람들에게 유리한 조건이 갖춰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여자들에게 애초에 불리한 경쟁이다.” 그러니까 출발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결혼이나 육아 문제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잠재적으로 여자들에게 지속적인 중요 업무를 맡기는 걸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큰 것 같다.” 출발선도 다르지만 트랙의 조건도 차별적이란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 ‘상사’의 위치까지 오른 여자 상사들이 남자의 경쟁력을 인정하는 현실이다. 어쩌면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를 남성보다도 치열하게 습득한 여자만이 그 유리 천장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조직의 논리를 합리화하는 건 아닐까.
반대로 어느 남자 상사는 말한다. “여직원들은 빨리 이해할 줄 알아서 편하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자신에게 없는 것을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성별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라고 느껴지는 환경을 진단해야 한다.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건 여자들에 대한 경계심리가 있는 거다. 관료적이고 계급적인 시스템 말이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편하게 일하면서도 저마다의 책임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녀의 장점이 편안하게 수용되는 사무실의 풍경은 당장 요원해 보인다. 현실적으론 지금의 직장에서의 최적화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의 경쟁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경쟁력이 조직을 진보시키기 보다 조직에서의 생존에 유용한 것이라면 과연 그 경쟁력을 존중해야 할까.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경쟁력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성별이 아니다. 언젠가 당신이 누군가의 상사가 됐을 때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그 무엇에 관한 고민일 거다.
(ELLE KOREA 10월호 NO.252 'ELLE career')
'culturi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클 패스벤더, 크고 아름다운 사나이 (0) | 2014.02.28 |
---|---|
정리해야 사는 남자 (0) | 2014.01.19 |
다시 도는 LP (0) | 2014.01.19 |
결혼식은 없어도 결혼은 있다 (0) | 2014.01.19 |
[미생]이 말을 걸었다 (0) | 2013.12.23 |